수필
단 하루의 선생
김영분
딸애가 다니는 학교는 집 근처에서 꽤나 유명한 공립중학교이다. 학교청사를 고래등처럼 크게 지어놓은 만큼 교수 실력 또한 쟁쟁하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여 입학등록을 할 때면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줄레줄레 늘어선 입학지원생들이 대문 밖까지 이어져있다. 흡사 매표구에 늘어선 대기 행렬 같았다.
딸애의 담임은 펑퍼짐한 몸매에 사각턱을 가진 30대의 녀교사이다. 무표정이 특기인 양 웃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격이 급하기로 번개불에도 콩을 볶아 먹을듯 애들을 닥달한다. 천사처럼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하던 지난 학기의 담임과는 사뭇 달랐다.
딸애가 집에 와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네 담임은 칭찬은 가물에 콩 나듯 하는 반면 훈계는 하루삼시 밥 먹듯 한다는 것이였다.
까마귀도 이뻐보이는 정겨운 고향땅을 떠나 타지생활을 한 지도 어언 20년이 된다. 하다보니 몸에 배인 것이 조심성과 겸손이다. 딸애의 학교생활을 은근히 걱정스러워하면서 딸애의 선생님만은 시종일관 겸손에 또 겸손을 기울여 맞아주었다.
공립중학교의 담임은 명실공히 넘지 못할 큰 산이였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담임이지만 항의는커녕 우리 애한테만은 윽박지르지 않기를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매년 담임이 바뀌기 때문에 1년 뒤에는 좀 나은 선생님이 차례지겠지 하는 요행 심리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학기, 부드러움 속에 원칙이 묻어나는 담임이 반을 위해 건설적인 의견을 제기하라고 했을 때 우리 학부모들은 오구작작 많이도 떠들었는데 이번 학기는 학부형 위챗그룹에서조차 모두 새 담임의 기압을 감지했는지 누구도 마른기침 한번 하지 않고 있다.
당신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자기도 엄청 힘이 들다고 직설적으로 하소연하는 마당에 명철보신의 능수가 된 학부모들은 담임의 격한 발언 마디마디에 찜질방의 안과 밖을 오가듯 비지땀과 식은땀을 쏟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담임으로부터 생뚱같은 문자를 하나 받았다.
“어머님, 제가 일주일 동안 연수를 가게 되는데 래일 학급으로 오셔서 규률을 지켜주세요.”
“내가?”
갑작스런 제의에 나는 작은 감탄이 새여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어깨가 귀까지 치켜들렸다.
“청도시 중학교 교장단이 우리 학교를 시찰하러 오는데 제가 마침 연수를 떠나는 날이여서 애들 규률이 너무 걱정스러워 그럽니다. 하루만 시간 내서 규률을 봐주세요.”
엄격한 만큼 책임심이 강한 담임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타산인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천만번 거절을 웨쳤지만 머리는 제꺽 리성을 찾았다. 싫어도 가야 한다는 것, 걱정스러워도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이 때 뇌리를 스치는 묵직한 기억 한편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딸애의 담임 문자에 나의 소시적 꿈이 떠올라 심장이 고동을 치고 있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였다. 마흔 고개를 넘기기까지 십여년을 공장에 출근하는 생활에 부대끼며 살다보니 소시적 꿈은 진작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되였다. 그런데 불쑥 딸애의 담임으로부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문고리를 받아쥘 줄이야.
‘꿈은 꾸어야 한다.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라는 말이 나의 사정에 딱 들어맞았다.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으면서 교원이라는 꿈은 종착역 없이 떠도는 뭉게구름처럼 부서진 지 오래되였지만 담임의 뜻밖의 문자는 내면에 수그러져있던 소박한 꿈을 화들짝 흔들어 깨웠다.
평소에는 엄격하기로 무섭기까지 하던 딸애 담임이 너무 고마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실웃음이 절로 나갔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 반에 나는 딸애 손을 잡고 나란히 학교로 떠났다. 유치원선생님도 못해본 내가 갑자기 중학교 담임직을 하루 맡아야 한다니 가슴이 떨렸다. 세련되고 학식이 있어보이는 선생님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우아래로 양복을 맞춰입고 구두를 받쳐신고 머리도 잘 말려 한껏 도톰하게 부풀려올렸다.
단 하루의 선생님 자격이라지만 자상하고 친절히 미래의 씨앗을 보듬어주리라 뛰는 가슴을 달래고 또 달래였다.
복도에 들어서니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애들이 머리를 끄덕이며 아침인사를 해왔다. 애들의 머쓱하고 착한 눈매, 조금은 경계하면서도 례의를 갖춘 웃음, 천진하고 밝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났다. 나도 웃몸을 약간 구부리며 따뜻하게 목례를 보냈다. 학생들의 인사에 감격하여 괜히 뒤돌아보며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눈으로 지켜봐주었다.
딸애는 쑥스러운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먼발치에서 서성이더니 먼저 교실로 달려 들어갔다. 이제 내가 학생들의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저 교실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규률담임’이라는 신분으로 오늘 하루 강단에 올라서게 된다. 한발자국을 뗄 때마다 벅찬 설레임에 나는 하늘을 오르는 듯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가 지난밤 내내 고민을 거듭하면서 여러가지 버전을 준비해두었다.
“어험!” 하고 마른기침 한번 하고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성큼성큼 교실로 들어섰다.
수십쌍의 초롱초롱한 눈길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려왔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얼굴에 힘을 주어 웃었다.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송이 엄마입니다. 담임께서 연수를 간 까닭으로 오늘 저와 같이 하루 공부하게 되였습니다. 우리 함께 규률을 잘 지키면서 즐겁게 지냅시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교실 여기저기에서 요란하게 들려왔다.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자리에 앉아 목에 힘을 주면서 과문을 읽어댔다. 청소를 하는 아이가 스적스적 밀걸레질을 하고 숙제검사를 하는 학생이 왔다갔다하면서 책상 사이를 드나들었다.
나는 강단 오른쪽에 놓여진 선생님 자리에 앉아 반을 둘러보았다. 교실 뒤편 흑판보에 실린 흑세력을 물리치자!는 글과 함께 힘있게 그려진 커다란 주먹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록색식물이 흑판보 량켠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다육식물과 란은 창문턱에 나란히 세워져있었다.
바르고 씩씩한 아이들이 정의감 넘치고 아늑한 공간에서 한눈 팔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무언의 흥분이 가슴에 차올랐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여서 어른 키를 자랑하는 아이들이지만 ‘규률담임’인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입을 떼였다.
“선생님,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선생님, 받아쓰기를 하겠습니다.”
“선생님, 청소를 다했습니다.”
나는 아주 로련한 선생님인 양 알았다고 머리를 연신 끄덕였다.
성취감이 피여올랐다. 아이들의 공손한 태도로부터 나는 형식이 아닌 진정한 선생님이 되였다. 선생으로서의 긍지를 느꼈다.
이 때, 핸드폰 액정에 문자가 떴다.
“어머님, 현재 아이들 규률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서 반 위챗그룹에 보내주세요.”
대놓고 사진을 찍으려니 학생들한테 미안해나 살며시 사진 몇장 찍어서 반 위챗그룹에 올렸다.
“일곱시 넘어서 온 학생들은 지각생입니다. 지각한 학생 명단 올려주세요.”
나는 곱살하게 생긴 반장애를 찾아서 누구누구 아직 안 왔느냐고 물었다. 명단을 작성해서 올려야 한다고 전달하니 익숙한듯 흑판에 큼직하게 지각생 몇명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나는 차마 그 명단을 반 위챗그룹에 올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담임 개인위챗에 보냈다.
“숙제는 다 바쳤는지요? 숙제를 완성하지 못한 학생 명단도 올려주세요.”
연수를 간 담임으로부터 업무지시가 끊이지 않고 떨어졌다. 걱정이 태산같은 담임이 당장이라도 반에 나타날 것 같이 불안해났다.
아침 자습시간이 끝날 때까지 보고해야 할 업무는 줄을 이었다. 푸주간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고발을 이어나갔다. 졸지에 꿈을 실현했다고 싱숭생숭했던 마음은 오간 데 없어지고 끝없이 아이들 허물을 보고해야 하는 고발쟁이선생으로 되여버렸다.
“오늘 외부 학교에서 우리 학교에 시찰하러 오기에 복도 규률을 엄수해야 합니다. 감점당하지 않게 큰소리로 말하거나 뛰여다니는 학생이 있으면 바로 지적해주세요.”
“네번째 수업시간에 자습을 합니다. 규률을 잘 봐주세요.”
한창 뛰여놀 나이에 수업시간 내내 꼼짝 않고 있다가 10분 휴식시간에도 잠자코 있으라니 애들이 측은하고 불쌍해보였다.
점심밥을 먹고 아이들은 또 금방 교실로 들어서서 점심자습에 들어갔다. 오전 내내 한번도 아이들에게 엄한 소리 내지 않은 탓인지 점심자습시간에는 교실 안이 웅성웅성했다. 그런데도 나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며칠 뒤에 있는 학교 예술절 합창종목에 맞추어 필요한 복장을 선택하느라고 서로 자기 주장을 세우며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모아지니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교실 안이 웅웅거렸다.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세월의 턴넬을 지나 천진란만했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작은 일에도 열심히 토론을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구김살 없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노라니 30년 세월이 안개처럼 걷혀 눈앞으로 다가와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 반은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갑자기 마른 나무가지가 퍽하고 끊어지듯 딱딱한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퍼졌다.
반 뒤문에 어느새 안경을 건 중년의 남자선생님이 엄숙한 얼굴로 서있었다. 눈빛이 깨진 유리처럼 날카롭고 차거웠다.
“너희 반 오늘 점심규률 5점 감점이야. 오늘 학교에 시찰하러 오신 외부 손님들도 많은데 이렇게 떠들어서 어떻게 하려구?”
돌개바람처럼 씽하니 나타난 호통소리는 메마르고 뾰족한 가시뭉치가 허공을 누비며 터지듯 온 교실을 메웠다.
웅성이던 애들은 불에 덴 것처럼 흠칫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하나, 둘 책을 펼치고 숙제를 하는지 쓱쓱 써내려갔다. 애들이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 앉자 우뚝 서있는 내가 보였는지 남자선생님은 자못 놀라는 눈치였다.
“학부모님이 계셨군요. 으흠. 애들 큰소리 내지 않게 규률을 잘 부탁합니다.”
안경을 추스르며 나가는 뒤모습을 보자 그제야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감점이라 했지? 안돼. 감점이라니. 담임이 감점당하지 말라고 학부모까지 내세웠고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임 하는 날에 감점이란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니.’
“잠간만요. 선생님.”
검은 쟈케트를 입은 남자선생님은 날렵한 걸음으로 옆반으로 건너가 창문가에 서서 까치발을 하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급히 따라나온 나를 보더니 까치발을 내리우고 머뭇거리며 돌아섰다.
“선생님, 애들이 정말 복장문제 때문에 토론을 했지 떠든 게 아닙니다. 제가 애들을 누르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감점은 하지 않으면 안될가요?”
“그게 으흠. 그래도 그게…”
“제가 대리로 하루 담임을 맡았는데 감점당하면 담임한테도 면목이 없습니다.”
“학부모님이 하는 일도 제쳐놓고 대리담임으로 규률을 봐주는 정성을 봐서 감점은 안하겠지만 오늘 외부 교장단 시찰이 있어서 우리 학교 이미지를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꼭 떠들지 않도록 잘 지켜주세요. 교장한테 들키면 나도 혼납니다.”
비는 데는 강철도 녹는다더니 남자선생님은 그래도 너무 각박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날 저녁, 반 위챗그룹에 담임의 메시지가 떴다.
“오늘 송이 어머님 수고 많았습니다. 그런데 규률이 아주 나빴다더군요. 반장으로부터 보고를 다 받았으니 연수 끝나고 돌아가서 애들을 엄격히 요구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한시도 신경을 늦추면 안됩니다. 자습시간 한시간을 놓치면 몇시간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더 엄격히 요구할 것입니다.”
힘내고 야단 맞은 기분이 들었다.
꽃이 아무리 빨리 무성히 피기를 바란다고 어찌 매일 물만 줄 수 있을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맞춤한 습도를 유지해줘야 하고 간혹 가다가 비료 몇방울을 떨구어주어야 하고 따스한 해빛도 쪼여줘야 할 것이다.
매일 물을 쉴새없이 주고 있는 선생님과 수수방관하고 있는 학부모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들, 단 하루의 선생이란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에구, 다음주 우리 또 죽었다, 죽었어.”
문자를 보던 딸애가 가볍게 탄식했다.
(《연변녀성》2019.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