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소설
사기
김영분
모 쇼핑가 2층에 위치한 강당이다. 안에는 어림잡아도 백명은 넘을 듯한 할머니들이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다. 무대에서는 밴드가 곡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검정 쟈켓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준수한 중년 남자가 마이크를 현란하게 돌리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
“잘한다. 잘해. 앵콜.”
“박지점장이 최고여.”
중년남자를 둘러싸고 앉은 객석에서 흥에 겨운 할머니들이 소녀처럼 얼굴이 상기되여 무대를 향해 소리지르고 있다.
흘러간 청춘이 야속한참에 터프하고 흥겨운 메들리는 가을에 말라가는 락엽같은 할머니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숙자할머니도 부자연스럽게 박자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복덩이 홍보관이 해변의 작은 도시에 자리잡은지 한달이 되어간다. 숙자 할머니는 아파트에 같이 사는 할머니들이 나누어 주는 작은 쪽지를 받고 추천 받아서 열심히 출석도장을 찍으며 다니고 있다. 여기에서는 매일 노래와 춤으로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준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휴지나 간장과 같은 생필품을 공짜로 나누어 준다. 그리고 운이 좋을 때는 점심에 간간히 떡국도 얻어먹을 수 있다.
“아이구 사모님, 래일은 건강에 억수로 좋은 천일염으로 선물을 준비했으니 친구들을 데리고 꼭 나오세요. 자, 이 쪽지는 추천서이구요. 많이 데리고 오시면 선물도 많이 드립니다. ”
얼굴이 허여멀쑥한 박지점장은 푸짐한 선물과 구수한 입담으로 한달사이에 허리를 뒤로 제낀 로파로부터 90도로 구부린 할머니들까지 골고루 불러모았다.
“사모님. 오늘 즐거우셨나요. 많이 웃어요. 웃어야 복이 옵니다. 웃으니 너무 예쁘잖아요. 소녀같아요. 래일은 더 재미있는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풍선처럼 마음이 들뜬 할머니들을 박지점장은 친절하게 배웅을 하고 있다.
순간 숙자할머니는 황홀하다. 70평생에 언제 이렇게 사모님이라 불리워보고 왕후대우를 받아봤을가.
원수같은 령감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다 크지도 않은 아이들과 50을 갓 넘긴 자신을 저버리고 차사고로 그만 황천길로 먼저 가버렸다. 하늘나라로 떠나간 사람은 발 펴고 자는지 모르지만 령감이 떠나간 그날부터 숙자할머니는 혼자 두 남매를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느라 허리 펼새가 없었다. 살아 생전에도 무뚝뚝하기로 손 한번 살뜰히 잡아보지 못했다. 자식들은 다행히 둘다 대학을 나오고 혼기에 맞게 반반하게 시집장가를 가서 이젠 자기 살림을 온천히 하고 있어 그나마 덜 억울하다.
하지만 숙자할머니는 쉬지 않고 돌아가던 기계가 기름칠 할 때가 된 것처럼 여기저기 삐거덕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몸에 부품들이 제 기능을 충실히 하지 못할 신세가 되였다. 삭신이 쑤시고 아파서 남들이 다 한국 가서 로후대책으로 돈벌이 한다는 그 흔한 보모노릇도 못할 지경이여서 딸네 집으로 와서 살기로 했다.
“경애야. 이봐라. 오늘은 몽고표간장이다. 요즘 안 그래도 간장 살려했더니 잘 됐다. 이 에미가 공짜로 얻어온거라 좀 내다보거라.”
“엄마두 참. 공짜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그 사람들이 할머니들한테 매일 공짜선물 주면서 잘 구워놓은 다음에 비싼 물건들 팔려고 그러지요.”
경애는 할머니들을 노리는 홍보관 사람들이 아니꼽던 참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그래 니 아는게 많다. 이젠 에미 말이라면 그냥 메주로 콩 쑨대도 못 믿는구나. 이래서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고 했지라. 내 팔자에 무슨……흑흑”
어느새 숙자할머니는 서러운듯 손등으로 눈굽을 훔쳤다.
경애는 홀로 자식들을 위해 애를 쓴 엄마가 70이 되고 몸이 쇠약해지니 판단력도 흐려지고 유난히 자식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숙자할머니는 끝내 홍보관에 갔다 오더니 4000원짜리 침대커버를 두개 사왔다.
“경애야, 빨리 와봐. 이건 토마린성분이 들어간 침대커버다. 토마린이 있어 원적외선을 방출한단다. 관절염도 고치고 실면증도 고칠 수 있대. 그리고 얼마나 튼튼한지 20년을 써도 문제 없단다. 너무 좋다 해서 두개를 샀다.”
“헉, 엄마!”
경애는 너무 놀라 소눈방울이 되여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좋으면 하나 사면 되지 그것도 두개씩이나. 지금 4000원하는 침대커버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설령 있다 해도 우리가 그리 비싼 커버 쓸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경애는 련주포처럼 마구 쏟아냈다.
“아니. 절대 비싼 것이 아니다. 박 지점장이 자신을 믿고 한번 써보라고 했어. 그 사람 참으로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이 침대커버를 펴고 자보면 후회 안한다고 했어. 만병통치한단다.”
숙자할머니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석쉼한 목소리에 힘을 실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엄마때문에 내가 못살아. 참 내원. 아, 나 몰라. 성준이한테 전화 할거예요.”
경애는 씩씩거리며 남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성준아. 엄마가 오늘 4000원짜리 침대커버를 두개나 사셨다. 어떡해. 너가 좀 말해봐.”
경애는 홱 하고 전화기를 엄마손에 쥐여주었다.
“그래. 에미다. 성준아.”
숙자할머니는 잘못을 저지른 소학생처럼 풀이 죽었다.
“엄마, 침대커버 사셨어요?”
“그래. 좋다고 해서 너까지 주려고 두개를 샀는데 글쎄 너네 누나가 내가 비싸게 주고 샀다고 야단을 치는구나.흑흑”숙자할머니는 억울하다 못해 흐느끼였다.
“엄마.그거 우리 장모님도 사왔는데 내가 잠을 자보니 몸도 상쾌하고 개운하고 좋더라구요. 나 안그래도 엄마하고 누나한테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 정보력이 좋아서 금방 알고 사셨네요. 참 잘했어요. ”
“성준아, 정말이니? 그거 자보니 그렇게 좋디?”
숙자할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본다.
“경애야, 전화 받아봐라. 내 말이 안 틀렸다잖아.”
경애는 눈쌀이 꼿꼿해서 전화기를 콱 나꾸어챘다. 수화기 저쪽에서 동생 성준이의 느긋한 목소리가 전해왔다.
“누나, 엄마때문에 많이 당황했지? 엄마가 속으신거 같은데 즐겁게 샀으니 우리도 편히 받아주자고. 그 돈은 내가 낼테니 누나랑 나랑 효도하는 셈치고 속아주는게 어때? 다음엔 절대 속지 않게 내가 단단히 얘기해놓을게.”
앗. 성준아. 못된 놈. 언제 이렇게 철 들었니. 이러면 누나가 민망하잖아.
“아. 그렇니. 이 침대커버가 그렇게 좋은 거야. 오. 알았다. 우리 엄마 참 잘 하셨네. ”
경애는 웃으면서 얼른 엄마손에서 커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