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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력사가사 " 한 양 가 " 제5장
2015년 09월 03일 12시 58분  조회:2005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제5장
 
예종(睿宗)1)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청주한씨부인(清州韩氏夫人)이오 부원군은 한명회(韩明浍)라
예종대왕 사기(史记)보면 무자(戊子)년에 등극하여
기축(己丑)년에 승하하니 춘추가 이십이라
청춘이 아깝도다. 고양(高阳)땅 삼십리에 
창릉(昌陵)2)이라 이름있고 파주땅 사십리에 
왕비릉은 공릉(恭陵)3)이라.
 
 성종(成宗)4)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청주한씨부인이오 부원군은 한명회라 
둘째왕비 뉘시든고 파평윤씨(坡平尹氏)부인이오 
부원군은 윤기무(尹起亩)라 
한명회 여복(女福) 좋아 따님 둘 두었다가
맏따님은 장성(长成)하여 예종왕비 되시었고
둘째따님 장성하여  성종왕비 되였으니
따님복이 이상하다.  한 왕비도 어렵거늘
두 왕비가 되였으니 그때 호강 오죽할가
예종 성종 두 임금 촌수를 따지면은
예종은 삼촌이오 성종은 조카로다
에종성종 두 왕비 촌수를 따져보면
친정으론 친형제요 시가로는 숙질(叔侄)이라
국혼(国婚)이니 이러하지 백성집은 못하리라
국운이 비참(悲惨)하여 국상(国丧)이 또 생긴다
갑인(甲寅)년 삼월일에 성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사십이라
 
 연산주(燕山主) 5)등극하여 혹정(酷政)한지 십일년에 
조정에서 공논하여 대궐에서 내던졌네 
연산주 그 부인은 거창신씨부인이오
 신승선(慎承善)의 따님으로 양주땅 태주면에 
연산주 무덤있고 양주땅 칠십리에 
부인무덤 안치했네
 
중종(中宗)6)대왕 반정(反政)하여 병인(丙寅)년에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거창신씨(居昌慎氏)부인이오
부원군은 수근(守勤)인데 둘째왕비 뉘시든고
파평윤씨부인이오 부원군은 여필(汝弼)이라
세째왕비 뉘시든고 파평윤씨부인이오
부원군은 지임(之任)이라 이때가 어느땐고
기묘(己卯)년 사월초라 조정암(赵静奄)7),이음애를 
철망으로 얽어매어 천리원정 정배시켜
 고생하다 죽었으니 신원(伸冤) 못해 한이로다
기묘사화(己卯士祸) 볼작시면 참혹하고 가련하다
자고로 명현달사(明贤达士) 억울하게 죽는것은
소인들의 작간(作奸)이라. 중종대왕 불민(不敏)하여
팔년정사(八年政事) 했다는게 명현들만 죽였고나
오호라 슬프도다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국상(国殇)이 또 생긴다. 신축(辛丑)년 칠월일에
중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오십이라
광주땅 삼십리에 능이름은 정릉(靖陵)8)이오
양주땅 삼십리에 왕비릉은 온릉(温陵)9)이라
고양땅 삼십리에 둘째왕비 희릉(僖陵)10)있고
양주땅 삼십리에 세쨰왕비 태릉(泰陵)11)있다
 
인종(仁宗)12)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나주박씨(罗州朴氏)부인이오 부원군은 박용(朴墉)이라
인종대왕 사기보면 신축년에 등극하여 
임진(壬辰)년에 승하하니 정치는 고사하고
춘추가 아깝도다. 고양(高阳)땅 삼십리에
효릉(孝陵)13)이 그 능이오 왕비릉도 동원이라
 
명종(明宗)14)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청송심씨(青松沈氏)부인이오 부원군은 심강(沈钢)이라
명종대왕 등극하야 십년을 하신후로
정치를 못하시고 부원군이 섭정(摄政)하여
조정에 호원(呼冤) 일고 백성은 도탄(涂炭)이라
국운이 불행하야 국상만 자주 난다.
정묘(丁卯)년 유월일에 명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삼십이라 양주땅 삼십리에
강릉(康陵)15)이라 이름있고 왕비릉도 동원이라
 
선조(宣祖)16)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 뉘시든고
나주 박씨(罗州朴氏)부인이오 부원군은 응순(应顺)이라 
둘째왕비 뉘시든고 연안김씨(延安金氏)부인이오
부원군은 제남(悌男)이라 국가는 침체하나 
충신렬사(忠臣烈士) 극진하다. 이때가 어느땐고
임진(壬辰)년 칠월이라. 국운이 불행하여
무참한 난(乱)이 난다. 임진(壬辰)년 삼월일에
국왕이 현몽(显梦)하니  “국왕은 아나이까?
신(臣)은 바로 삼국시기 관운장(关云长)의 혼령(魂灵)이오
오시(午时)에 남문(南门)으로 일승(一僧)이 수레에다
대농싣고 올것이니 그 중 잡아 죽이고서
대농을 화소(火烧)하오. 그렇게 아니하면 
조선장수 수만명도 왜적 감당 못하리다”
두어말 여쭌후에 간곳이 없는지라
놀라서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梦) 이 아닌가
이튿날 선조대왕 최경회(崔庆浍)를 명하시어
오시(午时)에 남문으로 일승(一僧)이 대농싣고
입성(入城)코자 할터이니 그 중 잡아 죽이고서
대농은 화소하라 엄명(严命)을 내리였네.
오군문대장(五军门大将)이 군병을 거느리고
남대문서 기다리니 일승(一僧)이 오는지라
그놈잡아 결박하고 대농을 깨여보니 
팔척신장(八尺神将) 수십명이 천군만마(千军万马) 거느리고
일시에 내닫거늘 즉시(即时)에 화소(火烧)하고
그 중을 타살(打杀)하니 혼령(魂灵)이 탄식(叹息)하며 
왜국으로 돌아갔네. 수월(数月)이 안지나서
수만명 군병(军兵)들이 창졸(仓卒)간에 들어온다.
그때 왜장 누구던고 도대장(都大将)은 소서비요
아장(牙将)은 청정(清正)이라 모사(谋士)는 누구던고
평수길(平秀吉)이 분명하다. 도대장(都队长) 소서비(小西飞)는 
십만대병 거나리고 평양만(平壤湾)을 들어와서
연광정(练光亭)에 좌정(坐定)하고 청정(清正)이와 하라복은
동해로 상륙(上陆)하여 진주(晋州)성을 들어서니
촉석루의 삼장사가 명시를 남겼구나
“촉석루중 삼장사(三壮士)가 일배소지(一杯笑指) 장강수(长江水)라
장강만리(长江万里) 유도도(流涛涛)하니 파불갈해(波部竭兮) 혼불사(魂不死)라”
그 글뜻 풀어보면 “촉석루의 세 장사가
한잔술 손에 들고 긴 강물 가리켰네
장강 만리 흐르는 물 파도가 안마르면
애국의 혼(魂) 죽잖으리”  이때에 진주기생(晋州妓生)
논개(论介)17)의 거동보소 최경회(崔庆澮)18)의 애첩(爱妾)으로
장군(将军)이 죽은 뒤에 절개를 지켰도다.
이때 마침 왜장들이 촉석루에 모여앉아
논개의 인물곱단  풍성(风声)을 높이 듣고
논개를 불러와서 권주(劝酒)하고 노닐면서
취흥(醉兴)이 도도(滔滔)할제 논개의 거동보소
촉석루 난간(栏杆)에서 두 장수 목을 안고
내천(川)자로 내렸구나 일개 여자(女子) 기생(妓生)으로
이팔청춘(二八青春) 고운 절개(节概) 수중고혼(水中孤魂) 되얐으니
충절(忠节)은 불사(不死)로다. 이때에 홍의장군(红衣将军)
곽재우(郭再佑)19)의 장략(将略)보소 이만의병(二万义兵) 거나리고
화왕성(火旺城)에 진(阵)을 치고 적포성에 불을 놓아
수천 왜병 죽이였네. 장할시고 조중봉(赵重峰)20)은
오천병(五千兵) 거나리고 금산(锦山)에 진을 치고
용맹한 신립(申砬)21)장군 팔천기(八千骑) 거나리고
 탄금대(弹琴台)에 진을 치고 어검(御剑)받은 권율(权栗)22)장군
일만군사 거나리고 행주산성(幸州山城) 들이치고
충성있는 정기룡(郑起龙)23)은 육천병(六千兵) 거나리고
상주읍(常州邑)에 진을 치고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24)은
거북선을 지휘하야 적의 해로(海路) 막았으나
수(数)도 없이 많은 왜적 곳곳마다 웅거(雄居)하니
패(败)한것은 조선이오,  죽는 군사 조선이라
 
  주1)예종:조선 제8대 왕(1468~69 재위). 이름은 황(晄). 초자는 평보(平甫), 자는 명조. 세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파평부원군 윤번(尹璠)의 딸 정희왕후(貞熹王后)이다.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이며, 계비는 우의정 한백륜의 딸 안순왕후이다
2)창릉(昌陵):조선 제8대 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의 능,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龍頭里)에 있다. 
3)공릉(恭陵):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에 있는 조선 제8대왕 예종의 원비(元妃) 장순왕후(章順王后)의 능
4)성종(成宗):. 조선 제9대 왕.  재위 1469∼1494.  이름은 혈(娎). 
5)연산주(燕山主): 조선의 제10대 임금, 재위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  휘는 융(漋),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6)중종( 中宗): 조선 제11대 왕.  재위 1506∼1544.  이름은 역(懌)이다. 자는 낙천(樂天)이다. 성종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윤씨(尹氏)이다. 비(妃)는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의 딸이다. 제1계비(第一繼妃)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
7)조정암(赵静奄):조선조 중기의 문신 조광조의 호.
   8)정릉(靖陵):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조선 제11대왕 중종의 릉.
9)온릉(温陵):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 비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능. 
10)희릉(조선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능,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다.
11)태릉(泰陵):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15윤 씨의 능.
   12)인종( 仁宗) 조선 제12대 왕. 재위 (1544~1545 ). 이름은 호. 자는 천윤. 중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의 딸 장경왕후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의 딸인 인성왕후이다.
   13)효릉(孝陵)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조선조 제12대왕 인종과 비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朴氏)의 릉.
14)명종(明宗 ): 조선 제13대 왕. [개설] 재위 1545∼1567. 이름은 환(峘), 자는 대양(對陽). 중종의 둘째 아들로 인종의 아우이고,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
15)강릉(康陵):강릉은 중종과 문정왕후 윤 씨의 아들인 제13대 명종(1534~1567)과 인순왕후(1532~1575) 심 씨의 릉. 명종은 후사 없이 죽은 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으로 등극한 후부터 8년간 문정왕후 윤 씨가 섭정했고 155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친정했지만 외척인 윤원형, 윤원로 등에 의해 허수아비왕노릇했다.
16)선조( 조선 제14대 왕.  재위 1567∼1608.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아들이다. 비는 의인왕후이며, 계비는 인목왕후이다. 1567년 명종에게 후사가 없어 제14대 왕으로 즉위했다. 
17)론개(论介):의기 주씨(義妓朱氏) 또는 의기 신안주씨(義妓 新安朱氏, 1574년 9월 3일 ~ 1593년)는 조선 선조 때의 관기이다. 그녀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장을 유인하여 남강(南江)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8)최경회(崔慶會, 1532년 ~ 1593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 또는 일휴당(日休堂),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19)곽재우(郭再佑): 1552년 8월 28일 ~ 1617년 4월 10일)는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 34세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문장의 글귀가 왕의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고, 40세가 넘도록 고향에서 학문과 낚시질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큰공을 세운 의병장.
     20)조중봉(赵重峰): 조헌(趙憲, (1544년 ~ 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유학자이자 경세사상가, 의병장이다.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시호는 문렬(文烈). 본관은 배천(白川). 성혼의 문인이다. 
     21)신립(申砬):신립(申砬, 1546년 10월 23일 ~ 1592년 4월)은 조선 시대의 무신이자 장수로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와 진주판관,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첫 해에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고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군이다.
     22).권율(权栗):권율(權慄, 1537년 ~ 159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영의정 권철의 막내 아들이자 리항복의 장인이다.
     23)정기룡(郑起龙):(1562(명종 17)∼1622(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곤양 정씨(昆陽鄭氏)의 시조.  초명은 무수(茂壽).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곤양 출신. 증 호조참판 철석(哲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판서 의걸(義傑)이고, 아버지는 증 좌찬성 호(浩)이다.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동.
     24)이순신(李舜臣):이순신(李舜臣, 1545년 (인종 원년) 4월 28일 (음력 3월 8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한성 출신이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임진왜란때 수군절도사를 맡고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등 해전을 령도하여 세꼐 해군력사상에서 명장으로 전해내려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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