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가장 적절한 비유
리항복이 진심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보좌를 내놓으려 한다는것을 안 몇몇 반대파들은 이때가 리항복을 조정의 요직에서 몰아낼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선조왕을 설복하려 하였다.
“전하,오성대감의 사직서를 받으십시오.예로부터 평안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 둔다지 않습니까? 오성이 정승을 맡지 않아도 정승질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경들이 무엇을 안다고 큰소리를 치는가? 경들이 오성의 뒤발꿈치만 따라갈만 해도 나는 벌써 결단을 내렸겠네.”
선조왕은 리항복이 정승직을 내놓는것이 안타까워서 하루하루 뻗치였다.
리항복은 무려 여덟번이나 사직서를 올려서야 선조왕은 그의 뜻을 꺾을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그의 사직을 허락하였다.
병오(1606)년에는 대마도의 도주 의지(義智)가 사절을 보내여 강화할것을 요청하였다.전쟁을 발동했던 동쪽 오랑캐들이 조선과 강화를 맺으려면 성의와 믿음을 보여야 했다.
이때 령의정에 오른 류영경(柳永庆)이 임금에게 건의하여 임진년에 조선 임금의 릉을 파헤치고 보물을 훔쳐간 도적놈들을 다 잡아 조선에 보내면 대마도와 강화를 하겠다는 국서를 대마도 사절에게 보내였다.
한달이 지난 어느날, 의지는 소위 조선임금의 릉을 도굴했다는 죄수 두놈을 잡아서 조선에 보내왔다.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간이 배밖에 나와서 그런 만인공노할 죄를 지었나?리항복은 도적놈이 어떻게 생긴 놈인가 하고 죄수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조선임금의 릉을 도굴한 도적놈들은 나이가 스무살이 되나마나한 새파란 젊은이들이였다.이자들은 임진란이 일어나던 당시에 나이가 칠팔세밖에 되지 않겠는데 어이 이런 애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임금의 릉을 도굴한 도적이라는것인가?참으로 손바닥으로 낯을 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이였다.
리항복은 즉시 두죄수 형틀에 묶어놓고 문초를 했다. 리항복이 문초를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은 지은 죄를 낱낱이 불어내였다. 알고보니 그놈들은 근년에 본국에서 살인죄를 저질러 사형판결을 받은 사형수들이였다.
대마도 도주가 조선과 진정으로 강화할 성의가 없을뿐만 아니라 조선임금의 릉을 도굴한 도적놈까지 비호하고 있다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그런데도 령의정 류영경은 대마도주와 강화를 맺으면 자기의 공로를 크게 부풀릴수 있다고 생각하고 종묘에 첩보를 올린 동시에 그들을 사면하려고 시도하였다.
리항복이 조선의 국왕을 릉멸한 그놈들을 조선땅에서 죽여 왜놈 사절에게 조선국의 엄정한 태도를 보일것을 청했으나 조정의 많은 대신들은 진상을 밝히면 류영경에게 해가 미칠까봐 령의정의 주장을 따르고말았다.
어느날 김계(金稽)라는 신하가 조정에 상소를 올려 선조왕의 생부인 덕흥대원군(德兴大院君) 리초를 왕으로 추존하기를 청하였다.리초는 선조왕이 즉위한 2년후인 1569년에 대원군으로 추존되였을 뿐 대원군의 역할도 해본적이 없었다. 이것은 류영경이 선조왕의 환심을 사서 장기적으로 정승직에 남아있으려고 수하를 시켜 간계를 부린것이였다.
선조왕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생부를 왕으로 추존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는 임금이라는 명예를 얻고싶던터인지라 생부의 추존을 반대할 리가 없었다.그러나 선조왕은 원칙을 지키는 대신들의 반발이 두려워서 감히 독단하지 못하고 형식상의 조회를 열었다.그는 조회에서 김계가 올린 상소문을 읽게 한 뒤 신하들을 돌아보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고 물었다.
임금에게 빌붙어서 높은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야심을 품은 무리들은 일제히 훌륭한 상소문이라느니, 진작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했어야 한다느니 하며 서로 앞다투어 덕흥대원군의 추존을 합리화시키려고 덤비였다.
성품이 대쪽같은 리항복은 임금에게 아부하기 위해 도리에 당치 않은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간신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수가 없었다.그는 성을 내지 않고 조용히 력사사실을 들어가면서 여러사람들을 경계하였다.
“이런 일을 웃대에서 강행한 사람들로는 한나라의 애제(哀帝),안제(安帝),환제(桓帝),령제(灵帝) 등입니다. 아래대에 와서 이런 일이 옳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로는 송나라의 주자(周子),장자(张子),정자(程子),주자(朱子)였습니다.”
리항복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고 직접 자신의 태도를 표명하면 많은 신하들과 목에 피대를 세우며 싸워도 결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그리하여 그는 정면충돌을 피하고 에도는 방법을 모색하였다.그는 력사상에서 공인하는 혼군과 성인들이 이런 부당한 일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했는가 하는 실례를 일일이 라렬하면서 신하들이 리지를 잃지 밀고 력사의 죄인이 되지 않도록 인도하였다
리항복의 말을 듣고 큰 계시를 받은 많은 신하들은 무조건 임금의 눈치만 살피면서 세력에 아부했다가는 력사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것을 깨닫고 자책감에 얼굴을 붉히였다. 그리하여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는 토론은 중지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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