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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기인 정치가 리항복57) 로련충의 이야기
2016년 01월 09일 07시 01분  조회:1960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57.로련충의 이야기
 중풍이 낫지 않은  리항복은 처음에는 망우리에 류배되였다가 여섯번이나 자리를 옮겨 비로소 북청이란 산골로 류배소를 정하였다. 1628년 1월 18일, 63세의 로인인 백사 리항복은 회양의 은설이 덮인 철령(铁岭)을 넘으면서 피눈물 솟는 시조 두수를 지어 읊었다.
            장사왕 가태부*야 눈물도 여릴시고
            효문제 승평시에 통곡은 무삼일고
            우리도 그런 때 만나시니 어이 울고 하노라.
                        *가태부-중국 서한시기의 시인 가의
           철령* 높은 재에 자고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冤泪)*를 비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 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철령-강원도에 있는 높은 령의 이름
                        *고신원루-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
  그해 2월 류배지인 북청땅에 이른 백사는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수가 없었다.그는 시 한수를 지어 읊으며 숨막히는 아픔을 달래였다.그 시의 마지막 두구절은 다음과 같다.
겹겹이 싸인 산이 호걸을 가두려는데
            천봉우리 바라보니 갈길을 막았구나. 
    (群山定欲囚豪杰, 回望千峰锁前程)
         
    리항복이 북청에서 귀양살이를 하고있을 때 린근에 사는 고을의 원님이며 선비들이 매일 그의 처소를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고 학문에 대해 묻곤하였다. 그중 한 서생은 누구보다 자주 찾아와서 문안을 올리고 말동무도 해주었다. 리항복은 이  젊은이와 사귀면서 그가 비록 살림살이가 구차하고 먹물은 별로 먹은게 없었지만 품성이 순박하여  은근히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였다.
어느날 그 서생은 백사를 찾아와서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아뢰면서 리항복에게  도움을 청하였다.백사가 젊은이의 말을 들어보니 사정은 대개 이러하였다. 전날  도사(都事)가 그 고을에 이르러 서당을 찾아와서 서생들의 학습능력을 시험을 쳐보았다.
그날 이 서생은 천자문을 옆구리에 끼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도사가 이 서생의 앞에 대뜸 기러기 안(雁)자를 가리키면서 읽으라고 하였다.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몹시 당황해진 서생은 머리가 벙벙해져서  일시 그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생각나지 않아서 입을 열지 못했다.
“왜 대답을 안하는고? 어서 대답을 하여라.”
 도사가 어서 대답하라고  독촉하자 그 서생은 모른다는 말은 차마 할수가 없어서 이마에 진땀을 흘리면서 쩔쩔매였다.
옆에 앉아있던 한 서생이 이 정황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기러기 안”하고 가느다란 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긴장할대로 긴장해진 이 서생은 끝의 “안”자는 어렴뭇이 들었으나 무슨 <안>자라고 하는지 몰라 부들부들 떨었다.그러자 “안”자를 알려줬던 서생이 화가 동해서 “정말로 로련충이네.”하고 투덜댔다.
  “로련충”이란 말은 원래 무지막지한 상놈을 모욕하는데 쓰이던 말이였다.
  서생은 자기의 동창이 한 “로련충”이란 말을 정답인줄 알고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로련충 <안>자입니다.”
그 말을 듣고난 도사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그는 이 서생이 너무도 아둔하여 글을 배워낼 재목이 아니라 판단하고 그를 서생의 명단에서 지워버리고 장정을 뽑는 명단에  편입시키려고 했던것이였다.
 “네가 그런 간단한 글자도 알지 못했으니 나인들 너를 도와줄 무슨 좋은 방도가 있겠느냐?”
“대감님께선 꼭 좋은 방도를 찾으실수 있을것입니다. 제발 소생을 한번만  도와주십시오.”서생은 리항복대감에게 자기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말하면서 도움을 빌고나서  돌아갔다.
다음날 도사가 백사 리항복을 찾아가서 문안을 올다.
리항복은 이 기회에 그 젊은이를 도와주려고 마음먹었다. 
“대감께선 귀양살이를 하시느라 무척 옹색하실텐데 반찬은 무엇을 드십니까?”
“만약에 기사(己沙)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고기맛을 볼수가 있겠는가?”
“기사란 도대체 무슨 물건입니까?”
“북녘 사투리로는 생치(生雉)를 기사라고들 하더구만.”
“그럼 그밖에 다른 반찬거리는 없는지요?”
“로련충이 있긴하네만 얻기가 매우 어려워 한달에 간신히 한두마리에 그칠 따름이라네.”
“로련충이라고요? 로련충이 무엇입니까?”
“이 고장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는 워낙 서울말과 크게 달라서 이 지방에서는 기러기를 로련충이라 부르더군.”
“아, 그렇습니까?”
도사는 가슴속에 집히는게 있어서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하관이 전날 시험장에서 로련충이란 말로 하여 한 서생을 락방시킨적이 있습니다. 하관이 기러기 <안>자를 내놓고 물었더니 그 서생이 로련충 <안>자라고 대답하기에 하관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그 젊은이를 락방시킨적이 있습니다.이제 대감의 말씀을 듣고보니 하관이 그만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도사의 말을 듣고나서 리항복이 말했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는가? 청년 명관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자네는 앞날이 구만리같은 젊은이의 전도를 망쳐 그들의 평생 원망을 살 일은 삼가해야 하네.”
리항복이 시치미를 따고 이렇게 말하자 도사는 그에게 제때에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나서 하직했다.그는 고을의 동헌에 돌아오자 그 서생의 이름을 군적에서 지워버리고 서생의 명부에 다시 올려놓았다. 기실 북도사람들이 기러기를 로련충이라고 부른다는것은 리항복이 서생을 도우려고 림시 지어낸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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