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마시다보면 맛이 있을때가 있다. 나는 애주가는 아니다. 아직도 술맛을 제대로 모른다. 어떤술이 명주고 어떤술이 가짜술인지를 구별할줄 모른다. 다만 술을 마신뒤에 뒷골이 아프지 않으면 좋은술이라 여길뿐이다. 나이를 먹고보니 내가 마신 술중에서 어느술이 제일 맛이 있었더냐? 자기한테 물어 보았더니 아마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퇴근후 공장대문 앞에 있는 상점에 들려서 간단한 술안주에 배갈술을 마이였던 그 술이 제일 맛이 있었다고 생각 된다.
25년전일이다. 모이다보니 한 직장에 40세 이상의 되는 사람이 여섯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여섯사람의 성씨가 각각 달났다. 재료원 강길복씨, 물자구입원 로랑재(盧朗財)씨, 전공 허재원씨, 설계원 태경화씨, 공회주석 김증길씨, 총무였던 나까지 우리 여섯사람은 술 동아리가 되여 늘 같이 술을 마이였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시간은 한 시간이면 족했다. 퇴근 벨이 울리면 우리 여섯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대문가에 모였다가 함께 상점으로 들어갔다. 상점 주인도 우리가 부지련히 다니자 익숙한 단골 손님이 되였다며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옆칸에 상을 차려놓고 간단한 안주와 배갈 술을 올려놓는것이였다. 빙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을 마시였는데 어쩜 그 술맞이 그렇게 달콤하고 향기로웠던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 마시였던 술의 향기를 생각하면 입술을 감빨게 된다.
음식은 배가 고풀때 먹으면 맛이있고 굶주린 사람에겐 머나 다 맛이 있다. 술도 마찬가지다. 적은 술이 맛이 있다. 지금은 생활의 유족하여 술이 귀한줄모르고 자기의 주량대로 맘껏 마일수 있지만 그때는 달났다. 술도 귀하고 월급도 낮았다. 월급이래야 60-70원밖에 안되는 세대주들의 돈집갑은 헐렁했다. 그러니 흥정망정 돈을 팔며 술을 마일 정도는 안됐다. 우리 여섯사람이 맛시는 술이 한근반 정도였으니 술값으로3원을 때리면 다였다.
음식은 혼자 먹기보다 여러사람이 같이 먹으면 더 맛이있다. 술도 그렇다. 혼자 술을 마일때에는 쓰겁다가도 여럿이 마시면 쓰겁지않고 향기롭다. 술은 참 묘하게도 분위기에 따라 그맛이 다르다. 우스개 말을 하며 술을 마시고 보면 술맞이 별맛이였다. 적은 술이지만 우정을 나누며 술을 마시고 보면 그 술이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보약으로 된다.
우리는 술을 많이 마이지 않았다. 여섯 사람이 한근반을 마시였으니 매 사람이 두량 정도 마시였다. 호주머니가 엷은 우리들은 누구도 술을 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스스로 앓아차리고 술을 삿다. 마치 학생들의 위생청결 당번이 있듯이 자연스럽게 술을 사는 당번이 정해졌다. 나는 어떻게 하다나니 맨 꼴지인 토요일로 배정되였다. 때론 내가 내 당번을 까먹으면 동료들이 “최씨”하며 나를 부른다. 그러면 나는 대뜸 알아차리고 그들을 청하였다.
우리 여섯중에서 주량이 많은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술을 마시다보면 주량이 센 사람이 목소리가 높아지고 술 주량이 적은 사람은 주눅이 들어 목소리는 낮아진다. 나는 자연히 술자리에서 목소리가 낮은 사람이였다. 청년때 몇번 호기를 부리며 술을 많이 마이고 탈이생겨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었다. 후에 술을 보면 마시고 싶어하면서도 그때 혼났던 일을 생각하면서 술을 조심하게 되였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되고 많이 마시면 독이된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남자들의 건강상태를 보면 늙어서도 건강 장수한 사람은 대부분 젊어서 술을 마시지않았거니와 적당히 마인 사람이라고 여긴다. 내 친구들을 보니 “골골팔십”이라고 젊어서 병 자랑하던 사람이거나 술을 못 마시던 약자들이 오히려 건강하다고 뽐내던 사람보다 오래산다. 어쩜 묘하게도 직장의 여섯 친구들중에서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신사람이 먼저 순위로 저 세상으로 갔다. 우리 여섯중에서 생활이 쾐찮고 몸이 실팍했던 전공 허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 몸이 튼튼하다고 자부했던 허씨가 저 세상으로 먼저 가자 왼일인가 싶었다. 그 당시 몸집이 강말났던 나는 몸집이 실한 허씨를 부러워 했다. 내가 허씨를 보고 뚱뚱해지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허씨는 자기 배를 두두리면서 술살이라 했다. 술을 많이 마이면 술살이 오른다는것이였다. 그때는 허씨말이 옳다고 여기였다. 후에 내 나름대로 분석해보니 술을 많이 마시여 살이 지는것이 아니라 술안주를 많이 자시여서 살이졌다고 생각되였다.
젊은시절 나한테는 쌀 마대를 옆구리에 끼고 씽씽 달니며 닭 한마리를 통채로 다 먹고도 배부르단 말을 하지않고 술을 마신다 하면 사발들이로 마셔대던 힘장수 친구가 있었다. 사나이 다운 호기를 가졌던 그 친구도 50살을 못넘기고저 세상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 약자로 놀림을 당했던 팔삭둥이 영팔이가 지금도 팔팔하게 살아있다. 술을 단번에 많이 마이던 호걸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것을 보면 술이 사람을 이기지 사람이 술을 못 이기는 “독”이라 할수 있겠다.
술은 좋은 교제 물이다. “술을 마시고 사촌을 기와집을 사준다.”는 말이 있듯이 술을 마이다보면 남자들은 패기가 있어보인다. 술은 예로부터 사가의 관혼상제로부터 나라의 종묘사직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될 명물로 되였다. 술은 외교적 가치를 창출하며 사람간에 뉴대를 놓아주기도 한다. 친구사이에도 술이 있어야 정도 나누며 다툼도 있다. 또 오랜간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에는 술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회포를 풀수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향기롭게 마셨던 술은 친구들과 같이 상점에 들어가 마신 술이였다고 한다면 두번째로 향기롭던 술은 어떤술인가 묻는다면 나는 로랑재라는 한족 친구와 같이 마시였던 술이라 할것 같다. 내가 직장에 다릴때 사귄 여섯 술 동아리중에서 로랑재와 내가 제일 많이 술을 마시였다. 다른 친구들은 각기 다른곳에 집을 잡고 있었지만 나와 로랑재는 한 마을에 살았다. 한 마을에서 한 직장을 다니고 보니 만나는 차수가 많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우리 두사람은 일요일이거나 명절때에는 가끔 두집을 오가면서 술을 마시였다. 나는 로랑재네 집으로 가면 로랑재 안해가 만들어주는 료리가 맛이 있다고 하고 로랑재는 우리집에와서 나의 안해가 만든 볶음료리가 맛이있다고 했다. 로랑재는 내 안해가 가마에 기름을 붙고 장과 시래기를 달달볶다가 물을 부어서 만든 장국이 세상의 별맞이라 했다. 우리는 조선족음식과 한족음식을 맞보면서 술을 마시였는데 어떤때에는 기분이 좋아 술맛이 향기로워서 어느사이에 술을 적게 마서야 한다는것을 까맣게 잊고서 취할 때까지 마시였다. 술에 만취한 이튼날이면 나는 속이 쓰려나고 머리가 터지듯이 아풀때에는 다시는 술을 아니 먹겠다고 맹세했다. 술 맹세가 개 맹세라고 그래도 친구들과 만나면 또 술을 마이였다. 속이 아프면서도 마셨던 그 술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르며 기억속에서 지우기 힘들다.
두집 남자들이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자 우리 두집의 주방장들도 대방의 장점을 따라 배워 두집의 식탁은 몰라보게 변하였다.
지금 나와 로랑재는 각각 다른곳에서 살고 있지만 만나면 술을 함께 마시며 정을 나눈다. 지금도 우리둘이 마시는 술은 향기롭다.
로랑재와 내 관계가 밀접해지자 자식들도 본받아 사이좋게 지낸다. 가끔 서시장에서 로랑재의 아들 며느리를보면 그들은 나를 보고 “수수 닌 호우아”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술은 저당히 마이면 약이되고 많이 마시면 독이된다는 리치를 터득하게 되였으니 아무래도 약이되도록 술을 마시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