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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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도 기행
2016년 09월 17일 07시 29분  조회:1814  추천:1  작성자: 최상운
                                                     해남도 기행
 
 
                                               1. 해남도로 가다
 
       지난해 10월2일 우리 려행단은 중국의 최남단에 있는 보배섬 해남도 려행을 떠났다. 해남도로 간다고 하자 내 마음은 설레이였다. 해남도는 나이 숙부님이 1948년도에 해남도 해방을 위하여 다녀왔던곳이다. 이번에 숙부님의 다녀오신길을 다시 밟게 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해 났다.
       연길에서 오후 4시30분에 떠난 연길-광주행 비행기는 저녁22시40분에 광주공항에 도착하였다. 광주공항을 2년사이 다섯번 경과하다보니 이제는 좀 익숙하여졌다. 거대한 광주공항은 중국의 문호로서 그 역활을 잘 하고 있었다. 비행기들이 어찌도 많은지 리륙할 비행기들이 활주로에 들어서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날 연길의 낯 기온은 섭씨15도였고 밤기온은 섭씨 2도였다. 그런데 광주의 밤 기온은  섭씨25도였다. 다른때에는 장춘공항에서 두시간씩 기다렸는데 그날은 장춘공항 대합실에내려 30분 휴식하고는 지체없이 예정된 시간대로 광주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광주공항에 있는 남방항공공사의 안내실에서 인츰 호탤에주숙 전당지를 내려보내여  우리는 광주남항호텔에 주숙하게 되였다.
        호텔에서 하루밤 무사히 자고 이튼날 아침 5섯시 반에 집합하여 차를 타고 다시 광주비행장으로 향하였다. 달리는 뻐스안에서 빵과 음료수로 아침식사를하였다.
       오전 8시30분에 광주- 해남향 비행기가 광주공항 리륙하였다. 비행기는 10시에 해구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대합실 출구에서 한 청년이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다. 그가바로 해남려행사에 파견한 안내원 손원배였다.  27살인 그는 산동 제동사람인데 해남대학을 졸업하고 려행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쑈쑨이 말에 의하면 해남성의 면적은 3.4만여평방 평방킬로이고 인구는 790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그중 120만 명의 리족, 묘족, 회족등소수민족들이 있다고 했다. 성소재지는 해구라 했다.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는 해남은   1988년4월에 광동성에서 리탈하여 해남성을 되였다고 했다. 해남성의 주요 광광도시로는 해구시와 삼아시가 있다고 했다. 해남도의 동선 중선 서선에 있는 많은 경관들은 유람하기 좋은곳이라 했다.
        해남성은 열대 계절풍 기후로 여름이 길고 계울이 없으며 고온으로 비가 많이 내리며 월평균 기온은 섭씨20도이상이 된다고 했다. 해남성은 중국의 중요한 관광성으로서 햇빛, 백사장, 푸른바다. 푸른하늘, 야자림이 매혹적인 열대풍경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해남도는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중국에서 제일 작은 육지 성이며 제일 큰 해양성이라 했다. 이제 우리가 보면 해남도의 신기한 지형지모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바닷가 경치와 짙은 리족 풍속, 신기한 열대우림, 특히는 아무런 오염도 없는 생태환경을 볼것이라 하였다. 쏘쑨이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절로났다.
 
                                          2. 화교농장과 오공사(五公祠)
 
       우리는 해구공항을 떠나 대북시로 가기전에 먼저 신농시에 있는 화교농장으로 갔다. 이 화교농장은 60년대 중기에 동남아에 거주하고 있던 화교들이 당지인들과 충돌이 생기여 그 나라에서 살기 힘들자 이곳 해남도에로 이주하게 되였다. 중국정부에서는 화교들을 조직하여 이곳에 농장을 건설하도록 도아 주었다.  화교들은  동남아 여러나라들에서 휘귀한 과일 묘목과 꽃씨를 같고와서 이곳에 심었다고 했다. 그들은 불모지인 이 땅을 개간하여 처음에는 작은 실험지로 부터 현대화 설비를 갖춘 농장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지금 농장은 과학적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경영관리를 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 볼수없는 신기한 열대 식물들이 있었다. 농장에는 코코야자, 바나나, 파인애풀, 여지, 망과, 파파이아, 재크프르츠등과일이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색갈과 무뉘를 자랑한는 꽃들과 이름모를 과일들이 나를 현혹하게 하였다. 기온이 좋아 사시장철 나무가 프르싱싱하고 꽃이피여 유람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농장에서는 유람객들이 편리를 위하여 농장을 구경할수있는 전용차를 마련하였다. 농장의 범위가 어찌도 넓은지 차를 타고 농장을 한바퀴 도는데 네시간이 걸리였다. 우리는 전용차를 타고 농장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우리는 화교농장을 돌아본후 고추 해남도에서 유명한 력사문물이 있는 오공사를 찾아갔다. 오공사는 해구시 동남쪽에서 4km떨어진 곳애 위치해 있었다. 중국의 력대의 통치정권에서는 해남도를 대륙과 동떨어진 교통이 불편한 불모지 땅이라 하여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을 류배를 보내던 류배지로 정하였다 한다.
        오공사 량측은 학보당, 관가당, 고옹정사, 소공사, 부리천, 동주정, 복파사, 경원 등으로 원림식의 뭄물고적군을 형성하였는데 총칭해서 오공사라 무른다. 청나라 광서 15년(기원 1889년)당, 송 시기에 해남도에 밀려간 리덕유, 리강, 조정, 호전, 리과오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라 하여 오공사라 이름했다 한다. 리덕유는 당대에 두 번이나 재상으로 부임한 사람이다. 그는 정무에 업적이 충출하였으나 후에 파별싸움에서 져 해남도로에 쫒기워 갔으며 해남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남송때 리강 등 네사람은 모두 금나라 병사들이 침입할때 진희 등 투항파에 의해 해남도에 쫒겨갔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 하는 이 다섯 사람은 억울함을 당했어도 일편단심 붉은 마음을 변치않고 해남도에 중원문화를 전파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방면에서 당지 인민들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하여 해남사람들은 그들을 위하여 오공사를 수축하였다.
 
 
                                                   3. 해구시(海口市)
 
 
        우리는 화교농장과 오공사를 돌아본후 해구시로 갔다. 해구시는 해남성의 성소재지로서 해남도 북단에 위치해 있다. 해남성에서 제일 큰 강인 남도강이 이곳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하여 해구라는 이름을 얻게 되였다. 전 시의 면적은 2305평방킬로메터이고 시구의 인구는 138만명이다.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는 해구시는 청나라 함풍 8년(기원 1858년)에 대외통상구로 개발되여 중국의 대외통상항 항구의 하나로 되였다. 민국초년에 해구진이라 하다가 1926년에 시로 승격했다.  1988년 4월에 해남성으로 하고 경제특구로 되였으며 해구시를 해남성의 성소재지로 정했다. 해구시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열대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 여름이 길고 겨울이 짧으며 점심 한때 덮고 밤이면 서늘하다. 가을에는 태풍이 자주 불어와  해구시 주변의 나무들은 한방향으로 기울려저있었다.
        해구시는 경주해협과 뢰주반도와 마주하고 있는데 해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며 나라 안팎에 이름난 해변관광도시이기도 하다 해구시의 평균기온은 23.8도씨이다. 해구시는 대체적으로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낫다. 해구시를 돌아보면 해구시는 넓은 지역을 같고 있으며 나무가 많고 꽃이 많아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였다.
 
 
                                            4. 삼아시와(三亞市) 아룡만(亞龍灣)
 
 
        우리는 해구시에서 하루밤을 자고 이튼날에는 해남도에서 제일 볼거리가 많다는 삼아시로 향하였다. 해남도를 유람하고난 사람마다 삼아시와 아룡만에 대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알고보면 사람들이 삼아시와 아룡만을 극찬한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해남도를 보배섬이라하고 삼아시(三亞)를 진주라고 말한다. 그 진주속에 초생달같은 아룡만(亞龍灣)이 있다.
       우리는 삼아시에 도착한후 삼아시를 돌아보았다. 삼아시는 해남성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서 해남성 남부의 도시이며 교통중심지이다. 삼아는 해남도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세 갈래의 강이 합류하는 삼아 하구에 있다 하여 삼아시라고 한다. 삼아시의 총 면적은 1919평방킬로메터이고 인구는 약 50만명이다. 삼아는 중국의 동남연해 대외개방의 황금해안선인 최남단에 있는 대외무역통상구이다. 삼아는 중국의 남대문이고 국제 열대 바닷가 풍경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삼아는 남해 재군도들을 보호하는 후방기지로서 그의 전략적위치가 국방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삼아에는 한족, 리족, 묘족, 회족, 등 2여개 민족들이 집거해 있는곳으로 그중 리족이 17.8만명, 묘족이 2907명, 회족이 6424명이 있다고 한다. 삼아에는 여덟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삼아시 교외에 있는 짙은 민족 특색을 나타내는 묘족 마을을 돌아보았다. 묘족마을은 대부분 2층으로 된 목조 가옥인데 아래층은 동물이 들어있는 우리로 되여 있고 2층은 사람이 살고 있는 살림방이였다. 마을 문앞에는 소머리뼈를 달아매 놓았다. 소며리뼈가 많으면 부자집이라 한다.
       삼아에는 완만한 곡선을 그린 초생달 같은 해안선에 고운 백사와 푸른 바다가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 뒤로 녹색의 야자수 사이에 서유럽식의 별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모택동주석이 묵어가셨다는 초대소도 있었다.
       삼아시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수정, 화강암, 대리석, 금광 등 30여가지의 지하자원이 있다고 한다 남해수역에는 많은 석유매장되여 있다고 한다. 어업자원도 풍부하다고 한다.
        우리는 삼아시를 돌아본후 하루밤을 삼아호텔에서 잔후 이튼날 아룡만으로 향하였다. 삼아시에서 동쪽으로 20km가면 망령산 아래에 아룡만이 있었다. 도심을 벗어난 차는 30분달리여 아룡만을 환히 볼수있는 마령산 정류소에 도착하였다. 마령산에서 내려다보니 해만이 연연히 몇리를 뻗어나가 마치 초생달이 바다가에 내려 앉은것 같아 보이였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고장 사람들은 이곳이 지형이 초생달같아보이고 룡이 꿈틀거리는 형상과 같다하여 아룡만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하여 세인들로부터 “천하 제일만”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아룡만이 더욱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것은 연연히 8킻로메터나 뻗은 모래톱 앞에 5섯개의 녹색 섬이 그사이를 장식하고 있고 바다물이 오염이 없으며 공기가 특별히 깨끗하고, 푸른산, 푸른물, 흰모래, 괴석, 아늑한 산굴이 있어 현대관강의 5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한다. 아룡만은 전국의 중점 관광지 하나이며  이름난 휴가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서 5섯개 섬을 돌아 보았다.  바다물은 어찌나 맑은지 물속의 작은 조개들도 환히 볼수 있었다. 물은 맑을수록 새파란 색을 띤다. 나는 맑디맑은 바다물에 발을 잠그어 보기도 하고 하얀 백사장위로 걸어보기도 했다. 야자수나무 아래에서 사진도 찍고보니 날듯이 기분이 좋았다.우리는 다섯개 섬을 다 돌아본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팀원들을 보고 아룡만에는 볼거리가 많은데 각자의 흥치에 따라 구경하라고 했다. 오후 한시전으로 이곳에 모이라고 하였다.
        나는 선참 해수욕장으로 갔다. 해수욕장 입구매표처에서 여러종류의 표를 팔고 있었다. 나는 해수욕장입장표와 잠수함을 타는 표를 삿다. 해수욕장입장권은 50원이고 잠수함을 타는 표값은 200원이였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잠수함을 타보았다. 잠수함이 천천히 해면 아래로 내려가자 바다위에서 볼수없던 생물들을 보게 되였다. 대야만큼 큰 조개 느릿느릿 기여가는 해삼 이름모를 각종 어류와 조개류들이 보이였다. 한시간 가량 잠수함이 바다속을 돌고서 다시 부두로 돌아왔다.
        해수욕장 안에는 해수욕을 하는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어린시절에 자주 강에서 혜염을 치며 놀았다. 여러가지 혜염을 칠줄 앓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물놀이를 하지않았다. 수십년 물놀이를 못하였으니 수영재간도 잊었으리라 여기였는데 정작 바다물에 뛰여 들고보니 생각밖으로 수영 재간을 있지않고 있었다. 여러가지 동작으로  혜염을 치고 보니 마치 동년시절로 되아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맘껏 해수욕을 하고 나서 나는 해양동물 양식장구경을 갔다. 나는 먼저 해양동물 양식장으로 갔다. 이 양식장에는 여러가지의 색갈과 무니를 가진 크고작은 수천종의 조개들이 있었다. 조개를 키우는 양식장 옆에는 바다고기를 키우는 양식장이 있었다. 벼라별 색갈과 모양을 가진 크고작은 바다고기들이 선을 보이고 있었다.
        해양동물 양식장 너머에는 해양동물 훈련장이 있었다. 이 해양동물 훈련장에서 돌고래와 물범의 표현하는것이 인기를 끌었다. 돌고래들은 조련사의 말과 행동에 따라 높이 솟았다가 날렵하게 먹이를 낙아채기도 하며 둥근 테구멍을 날아넘기도 했다. 밖에서 걸을때 뚱기적 거리던 물범은 물가에 들어서면 어찌도 령리한지 교련사의 지휘를 잘 받아 여러가지 고난도 동작을 하여 관람객들 의 절찬을 받았다. 둔충하게 생긴 악어도 교련사이 지휘에 따라 곧잘 표현을 잘 했다.
        해수욕과 해양동물 양식장을 구경하고나서 점심을 자시고 나니 집합시간이 되였다. 우리는 가이드의 뒤를 따라 아룡만삼림공원으로갔다. 아룡만삼림공원은 선착장에서 멀리 않은 마령산에 있었다. 공원안에는 열대, 아열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밋밋하게 자란 종류나무, 코코아야자나무, 바나나나무, 망과나무와 파인애풀, 여지, 파파이아, 재크푸르츠 등 나무들에는 탐스런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그나무와 어울려 키가큰 꽃나무에는  꽃들이 만개하였다. 그윽한 꽃향기를 나는 취하였다.
        저녁에는 배를 타고 아룡만의 야경을 구경하였다
        오 늘 맘껏 아룡만을 구경하고 나니 선간세상이라도 갔다온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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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강추
날자:2016-09-18 08:01:44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더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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