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관광팀에는 류씨성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금년에 년세가 80세이고 철도부에 사업하다가 정년퇴직한 분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강서성 사람인데 지금은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였다. 년세가 많은 류씨는 키가 큰편이고 젊은 류씨는 160cm작은 키였고 나이는 쉰 한살이라 했다. 두 사람 다 자신은 한고조 류방의 후예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작은 류씨는 남들의 눈에 띄우지 않을 수수한 용모를 가진 사람이였다. 내가 보건대도 작은 류씨는 눈에 차지 않았다. 처음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어디에서 왔냐? 물었다. 그 사람은 자신은 강서성 사람인데 지금은 북경에 산다고 하였다. 그가 북경에 산다고 말하여도 어쩐지 시골티가 다분하여 전혀 북경사람 같아 보이지않았다.
그는 달리는 뻐스안에서, 식사 할때나 상점에가 물건을 살때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않고 있었다. 새롭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고 수시로 느낌을 문자로 적는것이였다. 그는 휴식시간이면 노트북을 사용하였다. 쉴짬이 없을 정도로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엇가라 사용하면서 뭔가 쓰고 있었다. 그의 모든 행동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이 뭘하던 사람일가? 궁금해났다.
며칠간 함께 려행을 하면서 보니 그 사람을 허술하게 볼 사람이 아니라는 감을 느끼였다. 그 사람은 나이에 비하여 행동이 잽싸고 판단력이 좋았다. 눈동자를 팽글팽글 돌리면서 주위를 관찰하고 머리를 살래살래 저으며 뭔가 사색하는것이였다. 그는 의문되는것이 있으면 속에 묻어두지않고 꼭 알려고 하였다. 그는 항상 가이드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까다로운 질문을 바투 들이 대곤하였다. 어떤때에는 너무 꼬치꼬치 캐여 물어 대방을 난처하게 할때도 있었다.
나는 예전에 “산이커야 그림자도 크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은 류씨를 보면서 키작은 사람을 두둔해 나서게 되였다. “ 키가 큰 사람중에는 머저리가 있으나 키작은 사람에겐 머저리가 없다.” 말이 있듯이 내가 볼봐엔 덩치 큰 사람들이 꼴대없이 흐물적 거리며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더러있다. 대조적으로 키작은 사람은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적고 대신 야무지다는 말을 듣는다. 고금중외의 위인들을 보면 체격이 웅장한 사람들이 큰일을 해내는 실례가 많지만 키작은 사람 또한 키큰 사람 못지지않게 위대한 위훈을 떨친 실례가 많다.
작은 류씨는 꼼꼼한 사람이였다. 이번 려행길에 안해와 같이 왔다. 그는 려행을 떠나면서 빈틈없이 준비를 하고왔다. 려행길에 필수되는 생활용품과 음식물을 준비하고 왔다. 식사를 할때 보면 그들의 밥상은 다른사람들 밥상보다 풍성하였다.
작은 류씨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두바이에 온후 대번에 뉴스인물로 급상했다. 우리는 아부다비에서 두바이로 온후 두바이시내를 돌아 보았다. 저녁때가 되자 주숙지로 갔다. 우리는 두바이 시교에 있는 한 호텔에 주숙을 정하였다. 우리가 호텔로 갈때 가이드가 이런말을 하였다. 두바이에는 여러개 5성급호텔이 있다. 호텔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고 서비스도 다르다고 했다. 많은 고급호텔 중에서 제일 호화로운 호텔은6성급 호텔이란 영예를 지닌 “알 아타” 호텔이라고 하였다. 그 호텔의 하루 주숙비는 인민페로 1만2천원이라 했다. 나는 하루 주숙비가 1만2천원이라 하자 호텔이 설비가 얼마나 좋고 서비스가 또한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번쯤 그런 호텔로 가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
내가 호텔 등기처에서 등기할때 보니 다른 팀원은 다 있는데 작은 류씨 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자 어디로 갔을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그 시각이 되자 보이지 않던 작은 류씨부부가 나타났다. 곁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날 작은 류씨 부부는 우리와 같은 호텔에 들지않고 하루 주숙비가 1만2천원인 “알 아타” 호텔로 갔다 왔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외국 려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경제력이 있고 생활상 여유가 있으며 문화적 차원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수있다. 여유있게 사는 사람일지라도 하루 호텔 주숙비가 1만2천원이라면 아름차 감히 그런 호텔로 갈 념두도 못낼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앗던 류씨가 신비로운 그 호텔로 갔다 온후 뉴스인물로 되였다. 그들 부부에 대하여 부러워 하는 사람과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어느 조용한 기회에 류씨에게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가? 물었다. 류씨는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되여 강서성에서 북경으로 오게 되였나? 물었더니 류씨는 자기의 지난일을 이야기 했다. 류씨는 남창시 교외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여 났다고 했다. 고향에서 어렵게 초급중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했다. 개혁 개방후 고향마을 떠나 작은 장사를 시작하였다고 했다. 장사에 미립이트고 자금이 축적되자 현성에 와서 건축업을 시작하였다 했다. 일이 잘 되자고 그랬던지 건축업이 호황기를 맞이했다고 했다. 후에 더 큰 사업을 하려고 북경으로 왔다고 했다. 북경시 교외에다 집을 여러채 사놓았는데 몇해 안되여 집값이 몇배올라 그는 큰 돈을 벌게되였다고 했다. 지금은 부동산 사업이 잘 안된다고 했다. 그는 부동산 산업을 잠시 중지하고 머리도 쉬울겸 형세를 알려고 세계려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를 보고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겠다고 했더니 그는 머리를 저으며 그렇지 않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장남인 자기가 가정 중책을 맡아 하였다. 했다. 어린나이에 가정 중책을 맞고 많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나한테 자기손을 보였다. 손을 보니 손가락이 굵고 뼈마디가 튀여난것을 보아 일을 많이 한손이 분명했다. 그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못하고 순전히 자수성가 ( 自手成家 ) 한 사람이라 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항상 학문이 짧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문화가 짧은 자신의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습하여 남창시 공업대학 통신학부에 입학하였으며 대학에서 경제관리학을 배웠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따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작은 류씨의 눈에서는 보석과 같은 강의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류씨에게는 아들, 딸이 있다고 했다. 딸은 영국 류학을 마치고 지금 북경에서 사업하고 있으며 아들은 미국 류학중이라 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주고 있었다.
작은 류씨는 마음이 고운 사람이였다. 우리가 카이로에서 “금자탑” 구경을 갈때였다. 우리가 뻐스정류소에서 뻐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앞으로 한 부녀가 아기를 안고 다가 오면서 돈을 구걸하는 것이였다. 가긍한 그들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팀원들은 저마다. 1원짜리 동전을 주었다. 그런데 작은 류씨는 10딸라를 주는것이였다. 또 한번은 뻐스정류소 마중켠에 어린이 둘이 오가는 사람을 보면서 머리를 굽석이며 돈을 구걸하였다. 류씨가 그 장면을 보자 그 애들을 보고서 오라고 손짓했다. 그애들이 오자 류씨는 애들에게 5딸라씩 주는것이였다. 작은 류씨는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어느때나 그저 스처지나지 않고 꼭 돈을 주는것이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작은 류씨를 경모의 눈길로 보게 되였다.
작은 류씨는 지금 북경에 살고 있지만 항상 고향사람들을 잊지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자금을 지원하였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자선사업과 교육사업에도 많은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한때 남창시 정협위원으로 되였다고 했다.
나는 이번 려행 길에서 작은 류씨를 보고 깨알같이 여문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작디작은 깨알을 얼핏 보면 눈에 차지않지만 그 깨알속에 잠겨있는 기름과 고소한 맛이 입맛을 돋구어준다. 작은 류씨는 외모는 수수해도 풍부한 사회 지식과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그의 아름다운 마음은 깨알 맛 처럼 향기로웠다.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