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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련재 (11)
2018년 01월 03일 09시 33분  조회:1335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이색적인 이스람국가 말레이시아
 
     나는 싱가포르에대한 좋은 인상을 가진채 4월23일 싱가포르를 떠나 말레이시아 유람을 떠났다. 싱가포르는 워나 말레이시아국에 속하였다. 1965년에 말레이시아에서 퇴출하고 독립하였다. 독립후 두나라 사이에는 변경지대가 형성되고 해관이 있게 되였다.
      말레이시아 해관을 통과하자 말레이시아의 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작달만한키에 가마잡잡한  그 가이드는 성이 예씨이고 나이는35살이라했다. 화인후예라 했다. 그는 자아소개를 하면서 자기의 중조 할아버지때에 광동에서 살길을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얼굴이 검지요, 중국사람 같지않지요, 나는 중국사람의 피를 물고 태여 났지만 말레이시아에서 태여났으니 말레이시아 사람이죠, 하지만 중국을 사랑합니다.”하면서 눈을 깜빡이며 유모아를 석여가면서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하였다. 지루한 려행길에서도 예씨의 말을 듣고 보면 웃음이 절로나며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몰랐다.
     우리는 해관을 벗어나 관광뻐스를 타고 4시간 달리여 말레이시아의 고도 마류쟈에 도착 하였다. 
     싱가포르에 있을때 싱가포르의 가이드가  말레이시아는 전형적인 이슬람국가이고 타이는 불교의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나라로 가던지 가는 그 나라의 종교를 존중하라고 부탁했다.
    마루쟈 시내에 들어서니  내가 영화를 보는 감이 들었다. 마치 아랍과 중동아시아의 이슬람 나라로 오지않았냐? 하는 꿈같은 환각이 들었다. 뾰족뾰족한 지붕, 힌벽체, 복숭아식 창턱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문화와 종교의 이색적 색채를 다분히 풍기고 있었다.
     싱가포르에 있을때 싱가포르에서는 쌀, 채소, 과일, 육류, 물을 대부분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해 온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말레이시아는 전형적인 농업국으로서 발전하지 못한 나라라고 예측하였다. 그런데 정작 말레이시아에 와보니 예측이 완전히 180도로 바꾸였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에 못지지않게 발전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떤면에서는 싱가포르보다 더 우수한 점이있었다. 싱가포르는 자원이 없지만 말레이시아는 자원이 풍부하고 개발할수 있는 잠재력이 내포되여 있어 보이였다. 말레이시아에는 석유, 석, 흑보석, 팜핵유가 풍부하여  떠오르는 새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국토에 비하여 인구가 적은 말레이시아는 부강한 나라로 될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해관으로 부터 마류쟈까지 오는 4시간동안 차창밖으로 보이는것은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은 일망무제한 세계에서 제일 큰 팜핵유 나무 숲이였다. 이런 나무들에서 생산되는 팜핵유는 여러가지 유지작물중에서 “세계기름왕” 으로 불리우고있다. 기름야자의 과일씨의 속살을 짠 기름을 팜핵유라한다. 한어로 “種油)”라한다. 말레아시아에서 생산되는 팜핵유는 세계에서 으뜸이라 한다. 길 량켠에는 팜핵유 나무와 이름모를 열대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라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 전경을 보노라니 비좁은 싱가포르에서 비벼대며 사는것보다 넉넉하게 사는 말레이시아가 더 가슴을 시원하게 하였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에 영국식미지로부터 독립하였다. 말레이시아는 처음 뽀르뚜갈의 식미지로 되였다가 후에 화란식민지로 그후에는 영국의 식민지로 되였고 한다. 말레이시아에는 지금도 여러 나라들의 문화와 건축기술이 슴배여 있었다. 말류자에 있는 고적들이 그 력사 사실을 충분히 알려주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국토면적은 3000평방킬로메터이고 인구는 2800만명인데 그중 말레인이 65프로를 차지하며 화인 35프로 인도인이 7프로를 차지한다고 한다. 종교의식이 농후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여러가지 종교를 허용하면서도 이스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는 두가지 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정부의 법이고 다른하나는 이스람교 법이라한다. 법을 집행하는데도 나라의 법과 종교 법을 동시에 사용한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두가지 혼인법을 실행하고 있었다. 이스람교 신자들은 혼인 법상 일부4처제를 허용하지만 다른 민족은 일부1처제라 한다. 그원인은 과거에는 화인이 더 많았는데 마레이시아인들은 자기민족 인구를 증가하기위하여 이런 법을 제정했다 한다. 일부4처제를 실시한후 말레인들의 인구는 급증하였다 한다. 일부4처제를 실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재산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말레인들은 보편적으로 17-18살이면 결혼하는데 일반적으로  23살이 되여 두번째 부인을 맞게된다고 한다. 둘째 부인을 맞으려면 첫 부인이 동의한다는 싸인이 있어야하고 재산의 절반을 부인목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세째 부인을 맞으면 둘째부인의 싸인을, 네째 부인을 맞으려면 세째 부인의 싸인을 받는식으로 네부인을 맞을수 있다고 했다. 특이한것은 집안의 행사나 국사가 있을때에는 첫 부인의 앞에서고 차례로 서서 행사에 참가한다고 했다. 부인을 여렀을 하다보니 한남자에세 생기는 자녀는 무려 20명이 된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의 관방어는 영어, 마라어, 중어, 인도어였다. 종교국가인 말레이시아에는 일년에 설을 네번 센다고한다. 음력설, 양력설, 모함메드탄생일, 이스람설이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교육을 중시하였다.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가는데 드는 학비중 70프로는 정부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자녀가 많은 가정일수록 우혜대우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시회치안이 엄하지 않는 나라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런 말이 돌고 있었다. “깡패는 경찰을 무서워하고 경찰은 부자를 무서워 하고 부자는 깡패를 무서워 한다.” 이말은 여실히 말레아시아의 사회현상을 표현한 말이였다.
     싱가포르를 떠날때 가이드가 이런 말을하였다. 말레아이시아에 가면 가방을 조심하라고 했다. 가방을 꼭 앞에 놓고 다니라 했다. 가방을 뒤에다 메고 다니는것은 남이 가지라고 하는것이라 했다. 말레아시아는 싱가포르보다 날치기 도적이 있어 안전하지 못 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그 말을 못 믿을 정도의 위험한 경우를 당해 보지 못 하였다.
     말레이시아에는 화인들의 부자가 많다고 했다. 화인들은 어찌하여 부자가 많은가? 하는 질문에 예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화인들은 하루에 100원을 수입하면 다음날에는 어떻게 그돈을 구울려 200원이되게 만들가? 궁리하는데 말레인은 100원을 수입하면 이 돈을 어떻게 써버릴가? 를 생각한다”고 했다.
     마류쟈시는 말레이시아의 옛 수도였다. 근대에와서 말레이시아 수도를 꾸알라릉크루로 정하였지만 지금 다시 수도를 마류쟈로 옮기고 있었다. 이미 금융기구만은 꾸알라릉크루에 남겨두고 행정기관들이 륙속 마류쟈로 옯겨왔다. 마류쟈에는 유명한 고적과 문물들이 많으곳이여서 볼거리가 많았다. 시내를 돌면서 보면 이스람교회당과 력사유적지와 문물을 흔히 볼수있다. 강택민주석과 리붕총리가 다녀왔다는 삼보절과 삼보 움물을 볼수있고 또 화인들의 지체로 자금을 모아 부지를 사서 공동묘지를 만든것을 볼수있다. 공동묘지 안에는 작은 비석를 세우고 세면트로 만든 12,000여개의 작은 무덤이 있었다. 이 무덤속에는 제2차세계대전시 일본침략자에게 학살당한 화인들이 많다고 한다.
      마류쟈시에는 말레인 집거구와 화인집거구, 인도인 집거구들이 있으며  화란, 뽀르뚜갈, 영국인이 살던 집거구와 고거들이 있었다. 화인 집거구에서 간판을 보면 간판웃면에 한문은 크게쓰고 영문은 작은 글자로 쓰여져 있다. 하지만 다른곳은 영어를 크게쓰고 한문을 작은 글로 쓰여 있었다. 과거 외국인들이 거주하였던 집들들은 지금 대부분  박물관이나 도서관 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국기는 얼핏보면 미국성조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 미국국기는 각주를 대표한 별들이지만 마레이시아 국기는 별무니에 반달과 파란 줄이 있다. 파란줄은 백성을 말하고 반달은 종교를 말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는 종교의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단합시키고 나라의 건설을 재우치고 있었다.
      말류쟈시의 한 어덕 숲속에 말레아시아 정부대청이 있다. 정부대청 아래 숲속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스람대성당이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대 성당에는 세계각국에서 온 신자들과 유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숭엄한  대청에 들어갈때 반드시 신과 모자를 벗어야 하고 녀자들은 회색 도포를 입어야 들어갈수 있었다.
       마류쟈시에는 고층 건물이 없다. 보편적으로 3-4층집이다. 집은 높지않지만 화려하게 지었다. 이곳은 바다물에 침적된 땅이여서 지질기반이 약하여 높은 층집을 지을수 없다고 했다.
      려행을 떠날때 자료에는 끌신을 휴대하라고 쓰여 있었다. 왜서일까? 하면서도 떠날때에는 끌신을 준비하고 떠났다. 광주호탤에 들고 보니 광주호텔에는 끌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다른곳에도 광주처럼 호텔에 끌신이 있을줄로 여기고 끌신이 짐이 된다고 여겨 버렸다. 정작 싱가포르, 말레아시아에 와보니 호텔들에는 끌신이 없었다. 어떤호텔에는 비누도 없었다. 끌신을 버렸으니 맨발로 호텔 안에서 다니였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이스람교의 교리에 따라 돼지고기와 개고기를 먹지못하며 개를 학대하지 못한다고 했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를 먹는다. 말레아시아 사람들은 기본상 입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었다.  입쌀은 이모작 벼여서 풀기가 없어 코바람에도 날닐것 같았다. 입밥을 먹으면서 연변의 입밥 생각이 났다. 식당에서는 때마다 각자의 구미에 따라 먹도록 서양식, 중국식 음식들을 마련하였다. 료리는 소고기, 닭고기, 해어. 닭알복음과 두부, 양배추, 양파, 시금치, 홍당무우, 대파, 유채 데침이 있어 내 식상이 맞았다.
    말레이시아는 국왕군주제 국가이며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왕을 최고 통치자로 섬기면서도 의회제도를 실시하고 국민투표 방식으로 각정당 대표를 설출하고 여당의 대권을 장악하고 총리를 수반으로한 정부가 국가 대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오전 열시가 되면 호화롭기 그지없는 금빛찬란한 황궁 앞으로 영국식 호위병 복장을 입고 말을탄 말레아시아 왕궁위병들이 위풍당당하게 검열하는 것이 인상적이였다.
      말레이시아에서 흔히 보게되는것은 길가와 거리들에는 각정당을 대표하는 기발과 현수막이 보이였다. 한창 대선 때여서 대선 후보자들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관광업을 기둥 산업으로 삼고 있었다.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힘을 모아 좋은 환경을  마련하고 있었다. 유람객들의 편안하게 자고 다닐수 있으며 맘껏 자실수 있고 유쾌히 놀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서비스에는 아직 일본과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감이 들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의약과 식품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정부에서는 석유, 석, 보석 생산을 공업의 중점대상으로 삼고 추진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중부에는 1700메터의 높은 운정산이 있다. 화인 황선생의 거금을 투자하여 산꼭대기에 유희장, 수영장 음식점, 도박장, 상점, 호텔을 건설하여 매일 수만명이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휴식의 한때를 보내게했다. 말레이시아는 깨끝한 나라이다. 삼면이 바다로 되였다. 말레이시아의 서쪽 해변가는 깨끝하지 못하였다. 서쪽 해변가가 깨끝하지 못한 리유는 서해 앞바다로 세계각국의 배들이 다니며 흘러버린 기름과 같은 오물이 많기때문이다. 대신 동해안 바다는 맑고 깨끝하여여 유람할수 있는 명소들이 많았다.
     말레이시아를 돌아보면 도시마다 원시림속에 잠겨 있는감이 든다. 마류쟈나 꾸알라릉크루를 보면 큰 도시이지만 나무숲속에 집이 뭍쳐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인의적으로 나무를 심고 꽃나무를 키운 감이 들지만 말레이시아는 전혀 그런감이 없다. 자연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도심에서도 원시림을 볼수있다. 말레이시아의 나무들은 대부분 열대 나무들이여서 잎파리가 무척크다. 원시림속에는 키큰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엉키여 살고 있으며 어떤곳에는 고목들이 쓰러져 썩고있는 원시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의 원시상태를 보존하면서도 상반되게 수도 꾸알라릉크루의 도심은 국가 기관과 금융기관의 몰키면서 땅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마치 미국의 뉴욕의 상업거리 월가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도시중심은 하늘을 찌르듯 치속은 고층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천루 숲속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높은 건물은 쌍탑식으로 지은 88층에 탑높이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으로서 높이336메터에 달하는 쌍탑국제 호텔이였다.
     말레이시아 수도 꾸알라릉크루에는 민족력사 박물관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다. 작지만 잘 꾸미여 지난 세기마다에 격은 력사사실과 말레아시아 원주민들의 생활과정을 여실히 잘 알려주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나무입과 나무껍질로 엮어서 지은 옷과 그들이 살던집,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였던 원시적인 생산공구들은 그대로 재현하여 보여주었다. 그 고물을 보면서 나는 사색의 여운을 남기였다 박물관 안에는 19세기초에 건설하였다는 작은 기차와 철길이 있어 지난 세월을 도리켜 보게 하였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기념으로 말레이시아산 커피와 쵸코린을 샀다. 말레이시아의 특산이라 하여 샀다. 이번에 유람을 하면서 한가지 지식을 배웠다. 나는 과거 관광공사의 수입래원은 어디에서 오는지 몰랐다. 이번관광을 통하여 관광공사의 주요 수입래원은 많은 유람객들이 소지품과 기념상품을 많이사는데서 온다는 리치를 알게 되였다. 하기에 관광을 조직한 유람단체의 안내자들은 갖은 수단을 가리지않고 관광객들의 관광상품을 많이사도록 추동한다. 듣는 말에 의하면 홍콩 려행사 가이드들은 려행자들이 물건을 사지않으면 상점밖으로 못나오게 한다는 말이 들었다. 우리를 알선해주는 가이드들은  그렇게 강요하지않고 려행객의 자유에 맏기였다.
     마레이시아에는 귀중한 천연 흑보석이 난다. 나는 이전에 보석이란 먼지 모르고 자났왔다. 이번에 진정 보석에대한 지식을 얻게 되여 시야를 넓혔다. 보석은 글자 그대로 보배만큼 귀중한 돌을 말한다. 천연적으로 생긴 보석돌은 홍색, 갈색, 람색,검은색 등등이 색갈 무뉘를 같고있는데 잘 부서짖않고 색갈이 날지않고 불에 숩사리 녹지않는 강도높은 돌이다. 말레아시아 장공들은 이런돌을 가공하는 높은기술을 소유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북부지방은 넓은  알곡생산기지다. 기온의 높고 강수량의 많아 농작물 재배에 적합하였다. 주요하게 벼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서쪽 산구는 목축업 기지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모작을 하고 있었다.
     까리만딴도에는 석유가 많이 매장되여 있다. 석유수출로 말레아시아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석유를 대량을로 수입한다고 했다.
     싱가포르 못지지않게 말레아시아도 깨끝한 나라였다. 3일동안 체류해 있는동안 파리나 모기를 보지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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