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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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울고 웃었던 나날들
2015년 02월 13일 15시 04분  조회:3889  추천:0  작성자: 홍천룡
 

전번날 영화를 보자고 해서 지인 몇이 텔레비죤방송국관람실에 가서 “귀래(‘归来’ 한국번역명 ‘5일의 마중’)”라는 영화를 보았다. 저명한 소설가 엄가령의 원작을 개편하여 장예모감독이 연출하고 공리와 진도명이 주역을 맡은 영화였다. 명작가와 명감독에 명배우들이 합작해서 찍은 영화라 볼만한 영화였다. 영화는 그래도 명감독에 명배우들이 찍어야 영화 같은 멋이 난다. 은은하고 알싸하게 가슴을 적셔주는 스토리에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빈틈없는 짜임새에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중을 잔잔한 추억속에서 깊어가는 회한을 금치 못하게 한다.

정말 오랜간만에 보는 영화였다. 어느때부터 영화를 보지 않았지? 기억에 아리숭하다. 왜서 영화를 보지 않게 되였을가? 역시 아리숭해서 모르겠다. 영화라면 미쳐서 오금도 추지 못했을 때는 또 언제였던고?

그 옛날 한창 세상물정에 어섯눈을 뜰 때에는 영화가 참, 좋았었지… “ㅏ、ㅑ…”를 받아 외울 시절에 줄을 쳐서 영화관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정말 좋아서 퐁퐁 뛰기도 했고 영사막에서 빛을 뿌리는 오각별과 더불어 우렁찬 “중국인민해방군 군가”가 울려퍼지면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짝짝 쳐댔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영화가 무슨 영화든지간에 영화를 본다면 무조건 좋았던 영화에 미친 시절이였다. 그래서 제일 처음 본 영화가 무슨 영화였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최초에 제일 재미 있게 본 영화는 “꼬마방울”이였다. 전반 영화의 경개가 어떠했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두 뺨이 뽈록 삐여져 나온 “꼬마방울”의 익살스러운 형상만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때부터 영화가 옛말처럼 재미있구나 하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그다음 좀 커서 공포와 긴장감에 떨며 본 첫 영화가 구쏘련의 영화“구역 당비서”였다. 영화는 처음부터 자욱한 포연속에서 피난민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전쟁이란 저렇구나 하는 무서움에 떨었다. 무섭기에 더 보고싶어졌던것 같다. 마치도 무서운 귀신옛말을 더 듣고싶어하는 심리와 같다 할가.

그후 울면서 본 첫 영화가 조선에서 찍은 영화인데 영화제목은 생각나지 않고 대개 이야기정절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한 가난한 집 녀자애가 밤나무밑에서 떨어진 밤을 줏고 있는데 지주집 아들놈이 자기네 밤을 도적질한다고 밤나무에 올라가 가시 돋친 밤열매를 그대로 내뿌린것이 녀자애의 눈을 쳐놓았던다. 병원에 갔으나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못하고 소경이 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만 눈물을 흘린것이 아니라 우리 반, 아니 전체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 눈물을 흘렸었다.

두번째로 울면서 본 영화 역시 조선영화였는데 제목은 생각나지 않고 대략 경개는 이러했다. 한 녀교원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남학생을 업고 다니며 공부시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찍은것이였다. 그 영화를 보고 쓴 나의 감상문을 선생님이 우리 학급 학생들앞에서 격동적으로 읽던 정경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래서 그 영화의 주제가 첫 곡은 지금도 얼마쯤 흥얼거릴수 있게 되였다.

하루도 아니라네

한달도 아니라네

춘하추동 사시절 오고가는 십리 길

비바람 불어쳐도 눈보라 몰아쳐도

……

영화를 보면서 제일 많이 울었고 또한 울면서 본 사람이 제일 많았던 영화는 아마도 조선의 “꽃 파는 처녀”였을것이다. 우리 학급 동학들이 다 울면서 보았고 우리 학교 전체 사생원공들이 다 울면서 보았고 연변관중들이 다 울면서 보았고 전 중국이 다 울면서 보았던 영화였다. 도시뿐만아니라 농촌시골에서도 움직일수 있는 사람들은 다 동원되였었다. 교통이 불편했던 그 세월에 소수레에 앉아서, 손잡이뜨락또르에 앉아서, “2·8”식뜨락또르적재함에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앉아서 도시의 영화관으로 몰려갔고 가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었다. “꽃 파는 처녀”가 왜서 그많은 사람들을 울렸을가? 앞으로 다시 그 많은 사람들을 울릴수 있는 영화가 나올수 있을가? 지금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그 영화를 다시 돌린다면 어떤 반응들이 있을가?

최초에 제일 비감에 젖어 본 영화는 “문화대혁명”직전에 제작된 “농노”라는 영화였다. 서장의 그 비참했던 농노제도와 그 제도가 몰락되고 붕괴되는 과정을 “챵바”라는 주인공을 통해 반영한 영화였는데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이 컸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웃으며 보았던 영화는 아마도 “리쌍쌍”이라는 중국의 희극영화였다. 저명한 배우 중성화와 장서방이 주역을 맡아서 당시 농촌생활가운데 나타나는 낡은 보수사상과 새로운 문명정신지간의 갈등을 희극적으로 반영한 영화였는데 그 당시 관중들을 많이 웃겼었다.

제일 통쾌하게 본 영화는 아마도 “문화대혁명”기간에 싫증나도록 보아온 “3전”영화들이였을것이다. “갱도전”, “지뢰전”, “유격전”… 너무나도 싫증나게 본 덕분에 지금에 와서 별로 할 말도 없다.

제일 싫증나게 본 영화들은 역시 “문화대혁명”기간에 정치적임무로 보아온 소위 본보기극들을 각색해서 촬영한 경극영화들이였다. 경극과 영화는 원래 각기 다른 예술표현형식이였는데 그걸 한데다 얼버무려 놓으니 정말 격에 맞지 않는 장면이나 세절들이 많아서 보기에 너무 갑갑해 날 때가 많았다.

제일 처음 놀랍게 본 영화는 “망향(望乡)”이라는 일본영화였다. 영화에 기생들의 생활이 반영되였던것이다. 당시 우리 단위의 처녀애들이 그 영화를 보면서 “어마나, 영화에다 저런 장면까지 다 찍어낸다니!”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장면을 피해 보았었다.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본것처럼 자기절로 자기쪽에서 망측스럽다고 쑥스러워했던것이다.

제일 랑만적인 분위기에 빠져 본 영화는 인도의 영화들이였다. 인도영화는 대개 스토리도 서민생활에 가깝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아서 인기를 끌었다. 더구나 영화에다 춤과 노래를 유기적으로 잘 배합시켜 전반 분위기를 잘 띄우는것이 특징이였다.

이밖에도 맹물을 들이켜듯 제일 슴슴하게 본 영화들도 있고 제일 괘씸스레 본 영화도 있고 제일 길게 본 영화도 있었고 또한 별나게 본 영화들도 많았었다.

아무튼 영화에 깃든 이야기들을 하자면 끝이 없을상 싶다. 그 시절을 겪은분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영화구경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있었을것이다. 영화를 통해 정감을 키웠고 영화를 통해 사상을 수립했고 영화를 통해 세상물정을 깨치게 된 경우가 많았던 그 시절, 영화관이 사회적인 공공대학으로 되여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일대들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것이다.

요즘 영화에 흥취를 가지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있다고 한다. 영화관람수입이 수백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기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 조선족생활을 반영한 영화도, 특히는 전통적인 생활풍습을 보여줄수 있는 좋은 영화, 즉 명품영화도 제작되여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걸어본다. 다시금 영화에 울고 웃을 날이 돌아오게끔!

연변일보 2015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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