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보기모임을 가지고 일주일에 한번씩 휴식시간을 리용해서 영화 한편을 보고 제가끔 나름대로 관후감을 털어놓고는 이러쿵 저러쿵 서로 쟁론을 벌리기도 했다. 참, 재미있고 의의있는 모임이였다. 영화란 늘 실생활보다 한층 높은 차원에서 각색되는 생활의 재현이기에 많은 감동에 가슴을 적시게 되고 이외의 충격에 심장이 툭툭 뛰게 되고 화면속의 짙은 정감흐름에 피의 흐름이 빨라지게 된다.
지금은 영화예술도 예전보다 휠씬 다채롭고 우아해졌고 발전했다. “하리파인(下里巴人)”식의 직설적이고 적라라하고 직감적인 표현수법으로부터 점차 “양춘백설(阳春白雪)”식의 굴곡적이고 은유적이고 회유적이고 은은하고 유모아적인 표현수법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주제의 심각성, 인물들의 이미지, 줄거리의 파노라마적인 굴곡성도 실생활의 방울방울 떨어지는 이슬의 세절속에서, 평범한 백성들보다 더 평범한 배우들의 세련된 연기에서, 화려한 화면의 클로즈업화로 시력효과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영상의 기교로 피곤해지는 관중들의 시각적정서에 활성산소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이미지로 새롭게 오픈되고 있는 영화들을 보면서 한가지 뚜렷한 공명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상을 새롭게 느껴보았다.
흘러간 세월속에서 우리 만백성들이 이러저러한 정치와 경제적인 동란과 격변의 폭행에 릉지처참 당하고 상처를 입었던 아픔을 다시 살살 긁어내여 아련하고 알싸한 아픔을 다시금 느껴보게 하는 과거사의 재현이였다. 개혁개방초기에 우리의 문학과 영화작품들에서 이러한 과거사들을 “상처문학”이라든가 “뿌리찾기”창작활동을 통해 저수지의 수문을 활 열어젖혀놓은듯 왈왈 토해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적라라하게 노기충천하게 직설적으로 활딱 벌거벗고 수십년의 종천지한을 성토식으로 풀어냈었다. 그렇게 풀어내고 씻어내고 처치했기에 그 아픔의 상처가 점차 아물어버렸던것이다. 헌데 오늘날에 와서 작가와 예술가들은 그 아물어버린 상처를 다시금 뜯어내며 잊어먹을가 하던 그 아픔을 재차 되새겨보게끔 시도하고 있다. 그제날처럼 주먹을 내들고 구호를 웨치는 성토식이 아니라 잔잔한 생활의 흐름을 타고 아득해지는 추억속에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음미식의 예술적매력을 보이고 있다.
영화 “귀래(归来)”에서는 문화대혁명가운데서 억울하게 당했던 한을 한 녀자의 병태적인 기다림속에서 아련한 회한을 금치 못하게 하였고 영화 “세월속의 영화(电影的往事)”에서는 한 녀자애의 변태적인 성장과정을 통해 되찾을수 없는 그때 그 사람들과의 친분을 위해 소리없는 눈물을 금치 못하게 하고 영화 “살자니 살면서(活着)”에서는 해방전 가족의 변천사로부터 해방전쟁의 처참함, 그리고 해방후의 생산자료의 공영합작화, 대약진의 용광로의 불길, 재해년의 배고픈 고생, 문화대혁명의 뒤죽박죽에 이르기까지의 입었던 상처를 해학적으로 긁어내여 쓰디쓴 웃음속에서 아련한 아픔을 감내하게 한다. 너도나도 다 알고있는 세월속의 그 이야기였고 또 반복적으로 표현되였던 사회문화적테마이지만 또 다른 형식으로, 또 다른 맛으로, 또 다른 색채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람들의 령혼속에, 사람들의 정감속에 깊숙이 잠겨있었던 그 앙금을 체로 쳐내는 감화력을 보이고 있다. 정말 잔잔한 경이로움에 세세히 젖어드는 매력이였다. 구호식이나 성토식같은 표현수법으로서는 표현할수 없는 매혹적인 감화력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종합예술로서의 이처럼 매혹적인 매력을 종합적으로 표현하자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종합예술분야에서는 아직 이런 종합적인 예술매력을 추구함이 부족한것 같다. 우리의 문학에서, 우리의 가무에서, 우리의 화술에서, 우리의 촬영에서 아직까지 잔잔하게 아련하게 소리없이 가슴을 적셔주고 해학적인 유머속에서, 은은한 음미속에서, 굴곡적인 회유속에서 여운을 남기며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할만한 작품들이 너무나 적다. 새 작품들이 나올 때마다 대단하다고 좋다는 절찬의 소리는 높아가고 있지만 진정 독자나 관중들의 공명을 자아낼만한 작품은 너무도 적은 실정이다. 예술은 량으로 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질로 승전고를 울린다고 고금중외의 경전명품들이 경종을 울려준지도 이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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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소이다!
근간에 중국문단에 새별들이 많이 떠오르며 명작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구만. 이제 김군이 소개한 작품들을 잘 봐야겠소. 좋은 작품을 한번 보면 새롭게 느끼는 점도 많고 그에 따라 정신도 분발되고 힘도 생기게 되오.
우리 문단에도 이런 명작들이 나오고 70여년전 동만의 밤하늘에서 반짝이였던 윤동주와도 같은 새별들이 오늘날 다시 나타나 반짝이기를 기대하는 바이오!
홍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