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건강과 시간을 팔아 돈을 바꾸고 늙어서는 돈을 팔아 건강과 시간을 바꾼다》는 담론은 인생을 관조하는 인간들의 자조(自嘲)가 아닌가 싶다.
지난해 내가 존경하는 한 학자가 간암진단을 받은 후 3개월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생명의 마지막 3개월간에 《치료비용》이라는 명목에 따라 지불하고 간 돈은 무려 수십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때 나는 죽음나라의 대문을 노크하고 있는 불치병 환자들의 돈주머니를 노린 의료, 의약, 보건식품 등 업계의 함정이 얼마나 많은가를 절감할수 있었다.
젊고 늙음을 떠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돈 팔아 건강과 시간을 바꾼다》는 말도 한가닥의 희망을 빙자한 사기일수밖에 없다. 죽음은 인간들의 영원한 불치병이기때문일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들이 사랑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영원한 불치병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지 않나 싶다.《사랑의 날》이라고 하는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매스컴들의 보도기사가 하나같이 돈으로 도배되여 있는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생각이 무리만은 아닌듯 싶다.
☞ 대도시 최고급 호텔들은 젊은 련인들을 유치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 상해의 한 호텔은 최고급 룸을 밸런타인데이 룸으로 꾸며놓고 하루밤 방값을 8만 8천 888원으로 올려놓았다. ☞ 련인들이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찾는 물건은 붉은 장미와 쵸콜릿이다. 밸런타인데이 전후에 북경의 꽃가게들은 평소 한송이에 3원씩 팔던 장미꽃을 송이 당 10~20원으로 가격을 인상시켜 놓았다. ☞ 심양시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여 순도 99.95%의 기념은화를 발행했다. ☞ 무한시의 한 마켓컨설팅 회사는 밸런타인데이에 첫사랑을 찾아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첫사랑을 찾는데 지급하는 비용은 2000원이다. ☞ 올해의 밸런타인데이는 주말이다. 홍콩 려행사들은 대륙련인들을 유혹하기 위한 3박2일의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전후로 꽃과 호텔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북경석간(北京晩報)》,《경화타임지(京華時報)》, 《위클리 홍콩》등 신문에서 인용함)
이런 기사를 읽다 보면 밸런타인데이가 《사랑의 날》이기보다는 《상인의 날》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짙어진다. 중국에 상륙한지 불과 십년도 안되는 사랑의 날이 시작부터 《소비형 축제》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은 슬픔이 아닐수 없다. 아무리 현대인들의 사랑이 타락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날》만큼은 돈과 관계없는 순수한 《사랑의 축제》였으면 하는 아쉬움때문일것이다.
물론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중국대륙에까지 성공적으로 상륙한 밸런타인데이는 이미 고도로 상업화된 축제였다.
미국에서는 미국인의 80%가 밸런타인데이에 선물을 하기때문에 그날 10억장의 카드와 1억 1000만 송이의 장미 그리고 11억 달러 어치의 쵸콜릿이 미국시장에서 팔린다는 통계가 있다. 그리고 일본의 상점들은 불황을 탈출해보려는 몸부림으로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녀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에서 화이트데이(3월 14일-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까지의 기간을 젊은층 집중공략기간으로 잡아 판촉전을 벌인다고 한다.
금년 밸런타인데이에는 미국에서,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수치로 알려주는 《사랑탐지기 》가 출시되여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이 장치가 작동되는 컴퓨터에 전화기를 련결한뒤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를 하면 《탐지기》가 상대방의 음성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5점부터 마이너스 1점까지 7단계로 나누어 컴퓨터 화면에 데이지 꽃잎으로 점수를 매겨준다고 한다. 가장 뜨거운 사랑은 5점, 반대로 가장 미지근한 사랑은 마이너스 1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랑탐지기》를 개발한 회사는 떼돈을 벌어 좋겠지만 사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탐지기》를 사용해서라도 진짜 사랑을 찾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탐지기》소비자들은 어딘가 측은해 보인다.
이렇게 《소비형 축제》나 《판촉형 축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상혼에 절여진 사랑의 축제는 아시아의 또 다른 하나의 문명고국인 인도에서 전통문화의 저항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이 국회의사당앞에 모여 《밸런타인데이는 서구로부터의 문화적 오염》이라고 주장하면서 밸런타인데이를 금지하라고 국회에 촉구했고 인터넷 신문인 《테헬카》는 《밸런타인 데이는 제국주의의 또 다른 형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금년에는 《밸런타인데이가 전통적인 인도문화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힌두교《바즈랑 달》회원들이 밸런타인데이라고 적힌 대형 십자가를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했다.
그런데 인도에 못지 않는 문명의 력사를 갖고 있는 우리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밸런타인데이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차라리 우리에게 사랑에 관련되는 문화적 콘텐츠가 없었다면 그 답습을 쉽게 간과할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밸런타인데이보다 더 훌륭한 명실상부한 《사랑의 날》이 있는 실정이다. 《더 훌륭하다》는 수식어는 문화의 상대론적 립지에서 보았을 때 문제가 있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동양문화권의 립장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역설하기 위하여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아래의 비교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주기 바란다. 최근 영국에서 500년전의 밸런타인 련애편지가 발견되면서 밸런타인데이 력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지만 축일의 기원은 아직도 분명치 않다. 3세기에 순교한 성 밸런타인을 기리는 축일이라는 주장과 로마이교도의 루페르칼리아 축제설이 엇갈리고 있고, 또 성 밸런타인과 구애습관과는 련관이 없고 다만 동면에서 깨여난 새들이 짝짓는다는 2월 14일이 성인 축일과 합일되여 사랑의 날이 되였다는 주장도 있다.
거기에 비교했을 때 우리에게는 3000여년의 력사전통을 가진 《사랑의 날》이 있다. 까치들이 모여 몸둥이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만난다는 칠석(음력 7월 7일)은 기원설화에서 전개되는 사랑이야기로 보나 력사의 깊이와 문화콘텐츠의 가치를 보아도 명실공히《사랑의 날》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조상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개발에 게으름을 피워왔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전통적 사랑의 날은 상업주의에 편승한 밸런타인데이에 밀려나 사라져가고 있다.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얼마전에 페막된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2차 회의에서 부분 대표들이 청명, 단오, 추석을 국가의 법정 공휴일로 정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그 리유로는 젊은이들이 서양의 명절을 더 선호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전통명절문화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공휴일과는 상관없이 중국의 전통적 《사랑의 날》을 살리자는 주장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명절문화는 인간만이 행할수 있는 특수한 행위라고 할수 있다. 전통명절문화는 전통문화의 확립으로 그 사회를 안정시키면서 정신적으로 그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하비콕스는 《일상적인것을 단절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과거로 개방시키는 제축과, 경험적 타산이 무시하고 통과해버린 방문을 낱낱이 열어봄으로써 혁신의 가능성을 확대시키는 환상》(《바보제》, 1973)으로 명절축제문화의 의미를 새겼다. 따라서 축제의 원형은 민족의 연원과 관계되는 아득한 태고로의 귀의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귀의를 통해 문화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봄으로써 새로운 혁신과 창조의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다.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불치병이다. 그 불치병 때문에 인간은 생명중 가장 귀중한 젊음을 불사르기도 한다. 그러한 사랑을 기리기 위하여 동양과 서양에서는 사랑의 축일을 만들었을것이다. 이제 우리는 상혼에 가리여진 사랑의 날의 진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지 않나 싶다. 전통명절인가 수입명절인가를 떠나 우선 련인들의 돈주머니를 겨냥하는 사람이 없는 순수한 사랑을 위한 《사랑의 날》이 되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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