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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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과 보고서
2006년 02월 28일 00시 00분  조회:5529  추천:67  작성자: 황유복
수필과 보고서



미국의 녀성학 학자 매릴런 앨룸은 1997년에 《유방의 력사》라는 녀성의 젖가슴에 관한 연구서를 출간하였다. 앨룸은 녀성의 유방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고 했다. 가령 유방을 보게 되였을 때, 아기는 음식을 생각하고, 남성은 섹스를 생각하고, 의사는 병을 생각하며, 장사군들은 그것을 달러의 기호로 보고, 정신분석학자들은 그것을 변함없는 무의식의 가장자리에 유치시키려 한다는것이다. 하나의 객관적 존재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관조의 시각은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다.

수필과 보고서는 모두 픽션이 아닌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진실을 보는 시각이나 접근하는 방법은 철저하게 다르다. 사회학 학자나 문화인류학 학자는 제3자의 시각으로 관찰된 진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려 하지만 수필가는 감정이입이 된 자신의 느낌에 따라 나름대로 그 진실을 해명하고 어떤 정신과 운명을 제시하려 한다. 제1회 중국 조선족 어머니 수필공모 대상 수상작인 《콘돔을 넣으며》(《도라지》2003년 제6기)는 글쓴이가 생활하는 그 지역 성(性)풍속담론이다. 옛적(글쓴이가 어릴 때)에는 동네아줌마들이 모여서 불륜을 저지른 녀성을 집단 구타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인간》들 사이에는 《내 안해 아닌 다른 사람의 녀자를 ⟨훔치고⟩ 내 남편 아닌 다른 사람의 남편을 ⟨도적질⟩하는것이 80년대 나팔바지 류행하듯 류행시세를 타고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만연되고 있다.》 그래서 《애인》을 《내여 놓고 자랑하는 축들도 많》아 그만큼 《그 ⟨붐⟩은 보편성과 정당성을 띠고 있다는 말로도 통한다고 보아야 겠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이렇게 《가정하나 남편(안해)하나 건사하기도 퍼그나 힘든》 세월에, 글쓴이의 돈타령에《질린 남편이 자기도 돈 벌러 나가봐야겠다》고 한다. 《녀자는 돈 없으면 못쓰게 되고 남자는 돈 좀 벌면 못쓰게 된다던데 내가 돈돈하다 못쓰게 될가봐 남편은 근심인것이고 나는 그렇게 돈 벌러 떠나는 남편이 또 걱정이다.》 결국 남편도 외지에서 《 남의 녀자를 ⟨훔칠⟩것이》 뻔한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남편의 짐에 콘돔을 넣어준다.

글쓴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작품에 자신을 개입시키면서 사적인 생활의 가장 은밀한 치부까지 리얼하게 토로했다. 좋은 수필이 갖추어야 할 필요여건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작품에서 삶의 진실을 해명하려는 글쓴이의 노력을 읽을수 없다는것이다. 작품의 전개는 시대의 《류행》에 따라 흘러가기이다. ① 옛적에는 민간에서 불륜을 엄하게 벌주었다. ② 그런데 요즘은 불륜이 《빠른 속도로 만연되고 있다.》 ③ 심지어 《애인 없다》면《축에 들지 못하는 사람으로 통하고 있다.》 ④ 남편이 돈 벌려 나선다. 결국 남편도 외지에서 불륜을 저지를것이 《불 보듯 뻔한것이다.》 ⑤ 남편의 행장에 콘돔을 넣어준다.

《왜서 우리들은 이런 생활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일가?》라는 질문을 하면서도 (사실 그런 ⟨생활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될것도 없고, 또 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더 이상 답안을 찾으려는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이러하니 나도 《류행》에 따를 수밖에 별도리 없다는 정도이다. 어떻게 보면《류행을 따른다》기 보다는 한 술 더 떴다는 인상을 준다. 가령 남편이 외지에서 다른 녀자와 간통을 했는데 그것을 《시대적 류행》으로 보고 그 불륜을 너그럽게 봐주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시름없이 자고 있는 아들애를 위해서라도 얇은 유리컵같이 쉽게 깨여지는 요즘 가정들을 본받지 않으려고》 아직 떠나지도 않은 남편에게 《간통면허증》을 먼저 만들어 준다는것은 아무리 불륜이 《류행》되는 시대라 해도 비약이 아닐수 없다. 《콘돔을 넣으며》는 삶의 진실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기때문에 수필보다는 수필의 형식을 빌린 지역 성풍속보고서에 가깝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가령 글쓴이가 콘돔을 남편의 짐에 넣은 다음이라도 《내가 성관계의 배타적 독점권을 일방적으로 포기했을 때 우리 가정은 지켜질수 있을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다시 《그렇게 지켜진 가정은 행복할 수 있을가?》라는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해 보았다면 글의 결말은 확 달라질수도 있을것이고 《보고서》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좋은 수필로 탈바꿈할수도 있었을것이다.

혼외정사가 아무리 《사회적 류행》으로 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생활방식》을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글쓴이는 관찰했어야 한다. 고대 로마제국말기 로마의 성풍속은 극도로 문란했었다. 그러나 초기기독교인들은 그런 《생활방식》을 거부했었고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은 멸망했고 기독교는 흥기했다. 《콘돔을 넣으며》가 작성될 그 무렵 세인들에게 큰 감동을 준 사랑이야기가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1971년 조선에서 류학하던 베트남 청년 팜응 옥카인은 조선 처녀 리영희와 사랑을 나누게 되였다. 그런데 1979년 베트남과 조선의 국가관계가 악화되면서 두 련인은 통신마저 끈긴 상태의 생리별을 하게 되였다. 2002년 베트남국가주석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두 련인은 서로가 기다리고 있었음을 확인할수 있었고 그해 10월달에 결혼식을 치르게 되였다. 그들이 31년간 생사마저 알길 없는 기약 없는 사랑을 인내하고 기다릴수 있은것은 오직 사랑에 대한 신념 하나뿐이였다고 당사자들은 말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부부처럼 행복한 사람이 없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처럼 불행한 사람도 없을것이다. 후자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외도나 불륜을 간단하게 매도할 수 없다. 부부간의 성행위 일지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라면, 그것은 동물적인 성교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할수밖에 없다. 반대로 혼외정사라 해도 사랑의 진실이 확보되여 있다면 그것은 정당한 행위로 리해될수도 있다.

그런데 《콘돔을 넣으며》는 성욕에 관한 담론이면서도 사랑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시간을 주체할수 없이 밀밀 치미는 욕구를 자제하라고 요구할수도 없고 또 자제하라고 해도 자제가 아니 될것이다. 결국 남편도 자기것 아닌 남의 여자를 ⟨훔칠⟩것이고 나 아닌 다른 누구에 의해 심신이 ⟨도적이 들⟩것은 불 보듯 뻔한것이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끈질긴 욕망이다. 그러한 욕망은 통제가 없거나 제약이 없이 표출될 경우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수도 있지만, 인간의 사랑을 통해 승화될 때는 창조의 에너지로 될수도 있다. 사랑의 유무에 따라 성욕은 두 개의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팜응 옥카잉과 리영희는 31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릴수도 있었지 않는가?
떠나는 남편의 행장속에 콘돔을 넣는 행위는, 사랑이 식지 않은 부부사이라면 그것은 남편에 대한 모독이나 불신으로 해석되기 십상이고, 사랑이 완전히 식어버린 부부사이라면 그것은 화사첨족(畵蛇添足)보다 더 쓸데없는 군일일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식기 시작한 부부사이라면 《엷은 유리컵같이 쉽게 깨여지는 요즘 가정》을 위해서 그보다 더 위험한 불장난은 없을것이다.

20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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