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족의 전통문화가 원앙새를 사랑의 심벌로 선정했듯이 우리 민족은 기러기를 사랑의 새로 꼽는다. 기러기는 암수의 의가 좋고 사랑이 깊을뿐만 아니라 짝이 죽으면 다시 다른 짝을 구하지 않는 정절(貞節)의 새이다. 때문에 우리의 전통혼례에서는 나무로 만든 목기러기를 백년해로의 서약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사용한다.《 신랑은 목안(木雁)을 쥐고 / 신부는 건치(乾雉)를 쥐었으니/ 그 기러기 날 때까지/ 두 정 그치지 않으리…》(이옥-조선왕조시대 시인). 이러한 상징성때문에 홀로 된 사람을 짝 잃은 《외기러기》라고 한다.
박경식은 기러기띠 녀자이다. 그녀는 순정으로 살아간다.《누구나가 인정해주고 누구나가 부러워한》 행복했던 46년간의 결혼생활이 그랬고 악성뇌종양으로 남편을 잃고 《외기러기》로 된 외로움 역시 그러하다. 그녀는 길림성 영길현 천강 출신이다. 1953년 9월부터 1957년 7월까지 연변대학 조문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시절에 만나 함께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버린 련인(김도권)과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 뜨거웠던 사랑을 결혼에 골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에서 조선문학과 세계문학 강의를 담당했던 그들 기러기부부는 1994년 전후로 퇴직하게 된다. 슬하에 일녀 일남을 둔 가정생활은 화려하게 흐드러져가는 타입은 아니였지만 가끔 가다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화목과 사랑이 넘치는 일상의 련속이였다.
그러던 박경식은 뒤늦게 《인간의 행 불행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인것》임을 깨닫게 된다. 《절대적으로 행복한 사람도 없고 절대적으로 불행한 사람도 없다.》
2001년 3월, 일본의 어느 대학강단에서 쓰러진 《남편이 불의의 잔인한 병으로 수술대에서 겨우 잔명을 이어받은 때로부터》그녀의 《나날은 불안과 초조와 고통으로 범벅이 된 암담한 시,공간이였다.》그러나 그녀는 고통을 딛고 일어선다. 그리고 《남편에게 기대여만 산 안해가 이제는 남편의 지팽이가 되여야 할것이다. 내가 성한 한 남편을 절대 허전하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그런데 불행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언어능력과 기억력이 점점 쇠잔해지고 있는 남편을 간호하던 그녀에게 2002년 11월에 폐암진단이 내려진것이다. 《내 명이 이뿐이라면 굳이 더 살자고 모대길것 없이 흔연히 깨끗하게 떠나야지!》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내가 병원에 가고 없는 동안 그리 불안해 하더라는 남편을 보자 홀연 눈물이 고여올랐다. 〈그래,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버려두고 나 홀로 먼저야 못 가지요. 당신을 고이 먼저 보내드리고 뒤를 따르리다.〉》 (2002년 11월 22일, 일기) 그 시각부터 그녀는 남편 먼저 가면 안된다는 강한 집념으로 살아간다. 언어능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리고 의식마저 날따라 몽롱해가는 남편을 향한 그의 사랑은 자신의 불치병에 대한 공황을 초월한다. 병원에서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그녀는 남편을 위한 《체념할수 없는 희망을 기탁하면서》 《센바쯔루》(천마리의 종이학)를 날마다 접는다. 《설사 그것이 나타날수 없는 기적이라 하더라도, 이뤄질수 없는 헛된 꿈이라 하더라도, 나는 한결같이 빌면서 접고 접고 또 접는다.》 (2003년 7월 4일, 일기) 이제 그녀의 사랑은 진지한 집념으로 나타나는 순정의 기호로 되여버린다.
2003년 12월 2일, 김도권교수는 안해가 병석에서 형언키 어려운 고통을 이겨가며 접은 《천마리 깨끗한 학무리에 옹위되여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이제 박경식은 《외기러기》가 되였다. 《꿈에 임을 보러 베개에 지혀시니/ 반벽(半壁) 잔등(殘燈)에 앙금(鴦衾) 참도 찰사/밤중만 외기러기소리에 잠 못 이뤄하노라.》(이정보) 《지난밤 꿈에 남편을 보았다. 그 새 지지리도 그리웠건만 꿈이 없더니 어제 밤에 보았다.》(2003년 12월 17일, 일기)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에 두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내게는 아직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의지로 삼는 자식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나의 사랑이 수요된다…. 아버지의 몫까지 사랑을 주어야지!》(2003년 12월 12일, 일기)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의미는 《추억의 곳간》에 모아둔 사랑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70이 되면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것인데 이제는 혼자 완성할수 밖에 없다. 이제 《불치의 병》도, 죽음도 그녀에게는 무서움으로 될수 없다. 그리움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생의 마지막 순간 남편을 찾아 떠나갈 준비가 되여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남은 인생이 길지 않은만큼, 이 제한된 시간내에 서둘러야 할 일》이 있는 만큼 그녀는 《강한 의지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진지하게, 즐겁게, 열렬하게 살아온 그이와의 보람있는 생을 꼭 애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주기》(2003년 12월31일, 일기) 위해 박경식은 이미 한권 분량의 일기를 정리하고있다.
그러나 박경식 기록보관소의 비공개시효(時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그녀는 우선 4편의 수필을 내놓았다. 앞으로 계속 발표되였으면 싶다. 그녀의 글에는 작고 소사하고 감동적인 일상과 함께 사랑과 행복에 대한 작은 깨달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박경식의 사랑은 《감동바이러스》이다.그녀의 사랑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감동바이러스》에 감염된 《감동환자》가 되여버린다.그래서 그녀의 글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읽을수가 없다.
박경식의 사랑에는 여백이 없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그 한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했었고 그가 떠난후에도 그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때문에 사랑으로 가득 차버린 그의 가슴에는 슬픔이나 고통이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행복하다.
콜린 하긴스 작 《19 그리고 80》의 주인공 모드는 《나는 아름다움을 보고 울어. 그건 인간만이 느낄수 있는 감정이야.》 라고 말한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싶은 사람들에게 박경식의 수필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읽기전에 손수건을 꼭 준비할것도 귀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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