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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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문화의 상대성과 수필
2006년 03월 03일 00시 00분  조회:6441  추천:68  작성자: 황유복
문화의 상대성과 수필



중국과 한국의 음식문화가운데 공통점을 지적하라고 한다면 개고기식용이 그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료리방법은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 식용한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개고기기호인구를 어림잡아 중국에서 년간 식용되는 개의 수자는 한국에 비해 60배는 넘지 않나싶다. 그런대 좀 이상한것은 서양인들이 개고기 식용을 문제 삼아 중국이나 중국 사람들을 비방한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지만 한국이나 한국 사람을 매도하는 경우는 가끔 보게 된다.

2001년 한일 월드컵 때 프랑스의 녀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를 먹는 사람들은 야만인》이라고 한국인들을 욕했고, FIFA(세계축구련맹)의 블라터회장은 월드컵 기간에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해서 한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에 앞서 1988년 서울올림픽 전야에, 미국 보스턴에 본부를 둔 《세계동물애호가협회》가《개를 먹는 나라에서 어떻게 올림픽을 치를수 있는가》라면서 서울올림픽보이콧을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였다. 그 사건을 한국인들은《보신탕 악령》이라고 한다. 그때 나도 우연히 개고기 론쟁에 휘말려든적이 있다.

1988년 이른 봄의 어느 하루, 나는 보스턴한국학학회로부터 리셉션에 참석해 달라는 통지를 받았다. 지정되 시간에 케임브리지의 어느 음식점에 도착하여 나는 그날 리셉션은 한국 전남대학교 송기숙교수의 래방을 환영하기 위해 마련되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개에 따르면 송교수는 《어머니의 깃발》등 여러권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한 이름있는 소설가였다. 만찬회에 참석한 10여명중 두분의 한국교수와 나 외에는 모두 보스턴지역 각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백인교수들이였다.

식사도중에 화제는 자연스럽게 몇 달후에 개최될 88서울올림픽에 관한 이야기로 련결되였다. 그런데 연회의 주인측에 동물애호가협회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개를 식용할수 있는가?》라면서 흥분했다. 송교수는 한국인들이 식용하는 개는 미국인들이 기르는 애완용개가 아니고 식용하기 위해 기르는 똥개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미국 교수는 개면 개지 식용할수 있는 개가 어디 있을수 있느냐며 반박했다. 이 정도 되니 송교수는 궁지에 몰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는 들러리로 연회에 초대된 만큼 조용히 밥이나 먹고 있었는데 송교수의 처지가 너무 딱해 말참견을 했다.


《남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 중국에서도 개고기를 먹기 때문에 한마디 하겠습니다.한국이나 중국에서 개를 식용하는것은 문화인류학적인 문제가 아닙니까? 서양인들은 말고기를 먹지만 한국인들은 먹지 않습니다. 서울올림픽을 보이콧하기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도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뉴욕타임〉지에 난 기사를 보셨겠지만 미국인들의 쇠고기 소비량은 다른 나라의 3배 이상입니다. 나도 돈과 시간만 있다면 한달안에 세계에서 쇠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미국인들을 지탄하는 1000만명의 서명을 받아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인들은 소를 신으로 모시지 않습니까? 인도에 가면 인구도 많겠다⋯ 소도 개도 모두 동물입니다. 사랑하겠으면 다 사랑해야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송교수를 괴롭히던 미국인 교수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서울올림픽 개최전야에 나는 서울올림픽국제학술회의에 초청되여 평생처음 한국을 갔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회의 조직자측의 요구에 응하여 한국의 10개 대학을 순방하면서 특강을 하게되였는데 마지막 강의를 전남대학교에서 하게 되였다. 특강이 끝나자 나는 송기숙교수에 끌려 광주 무등산정상에 있는 한정식집에 마련된 리셉션에 참석하게 되었다. 송교수는 20여명의 친구교수들에게 몇 달전 미국 보스턴에서 있었던 개고기 론쟁을 소개하면서 그때 내가 당신을 궁지에서 구해주었다며 재삼 감사하다고 했다.

개고기 론쟁에서 내가 응용한 리론은 문화의 상대성(cultural relativity)원리이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간에는 그 어느 민족의 문화가 더 좋고 옳은것이며, 또 어떤 민족의 문화는 더 나쁘다거나 틀린것이란 평가를 할수없다는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민족문화만 우수하고 타민족문화는 렬등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문화중심주의에 빠지게 되거나 자민족문화가 렬등하다고 주장하는 민족문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것은 문화간의 교류가 빈번해지고 있는 이른바 《세계화시대》에 수필 쓰는 사람들이 갖추지 않으면 안될 덕목중의 하나이다.

북경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나젊은 한족교수가 몇 일전 추천서를 받아가기 위해 나의 연구실에 왔다가 어느 조선족문인이 쓴 국호에 관한 수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갔다. 저녁에 시간을 내여 한족교수가 지적한 글(《연변문학》2005년 제5기)을 읽고 나는 그 교수가 흥분한데는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의 수많은 조대들의 국호는 모두가 한글자이고 조선의 조대들의 국호는 모두가 두글자, 혹은 세글자이다.》라고 서두를 뗀 글쓴이는


《국호를 한글자로 쓰고있음은 내세움이 아닐가?
이 세상은 나 하나다.나 하나만이 영원하다. 드팀
이 없는 쇠소리나는 최강음은 둘 아닌 하나이다.
말하자면 하나는 으뜸이요 제일이다. 나는 이 세
상에 둘도 없는 천자(天子)이다.
반면에 하나는 고독하고 외롭고 안전하지 못하
다. 둘만이 서로 보완하며 의존되여 평형이 이루
어지고 그래서 안전감이 있다. 고려(高麗), 거룩
하고 아름다운 나라, 조선(朝鮮), 아름답고 싱싱
한 아침의 나라, 이름만 봐도 마음이 느긋하고 푸
근하다.》

라는 주장을 폈다. 내가 보건대는 글쓴이의 전문 지식의 결핍으로 생긴 문제이지만 한족교수는 자기 민족문화중심주의의 문제, 즉 문화 상대주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 3국시대, 남북조시대, 5대(五代)시대 등 력사시대에는 《이 세상은 나 하나》가 아닌 여러나라들이 각축을 벌리며 공존했지만 그 나라들의 국호도 모두 한 글자였다.

중국의 한자는 뜻글이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모두 독립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를 최초에 만들어 쓸 때(상나라) 거부기의 등뼈나 소뼈에 칼로 새겨 넣었고 그후 주, 진, 한 나라 때에도 대나무쪽(竹簡)이나 나무쪽(木簡)에 써야 했기 때문에 글쓰기가 너무나 불편했다. 따라서 그때에는 될수록 한 자로 표현할수 있는것을 두 자로 쓰지 않았다. 곡식, 과일이나 동물 등 원산지가 중국인것는 다 한 자로 이름지어져 있다. 벼(稻), 기장(黍), 조(稷), 콩(豆),밀(麥), 배(梨), 대추(棗), 감(柿),소(牛), 돼지(豚), 닭(鷄) 등이 그렇다. 그러나 외부에서 전래된것들은 두자 나 두자이상으로 되는데 그원인은 원산지 사람들이 만든 이름을 음역하거나 형용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옥수수(玉米), 사과(萍菓), 포도(葡萄), 석류(石榴), 바나나(香蕉), 락타(駱駝), 앵무새(鸚鵡) 등 많은 이름들이 그렇다.

국호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한 글자인데 조선은 왜 두 글자인가? 중국인들이 주변 민족이나 국가 이름을 적을 때 그들의 자칭(自稱)을 비슷한 한자음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몽골(蒙古), 주르친(女眞), 로씨야(俄羅斯-俄國), 잉글랜드(英格蘭-英國), 아메리카(美利堅-美國),프랑스(法蘭西-法國) 등이 모두 그렇다. 고려는 고구려라는 이름가운데서《구》자를 생략한것인데 당나라 때부터 이미 그렇게 사용했다. 고구려(高句麗)라는 한자(漢字)가 당시 고구려인들의 어떤 자칭을 기록했는지에 대해 아직 정설이 없다. 나는 그것이 수리(높다는 뜻)구루(성)를 한자음으로 기록했다고 본다. 조선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이다.《조선》이라는 이름을 최초에 기록한 문헌은 중국의《관자(管子)》라는 책이다. 때문에 조선도 우리 조상들이 《조》자와《선》자를 골라서 지은 이름이 아니고 고대 중국인들이 고조선인들의 자칭을 비슷한 음의 한자로 기록했을 뿐이다.

국호를 한글자로 썼다고해서 《 이 세상은 나 하나다. 나 하나만이 영원하다⋯. 말하자면 하나는 으뜸이요 제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사실 주(周)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국호가 어떻게 변하던지 관계없이 중국인들은 《중국(中國)》이라는 두 글자로 자기 나라를 자칭해 왔는데 그 두 글자에는 《세상의 중심의 나라》라는 뜻이 있어 도리어《자기중심》이라 할수있다. 그리고 《고려(高麗)》나《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은 고대 중국인들이 비슷한 한자음으로 우리 조상들의 발음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아름다운》혹은《아름답고 싱싱한 아침》이라고 자화자찬할 문제가 아니다.

민족문화의 비교는 아니지만 하위문화(subculture)의 비교에서 문화의 상대성을 거부하는 수필도 가끔 보인다.《나는 촌스러움으로 승부한다》(《연변문학》2005년 제4기)라는 수필은 글쓴이가 농촌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도시학교에 진학하면서 경험하게 된 농촌문화와 도시문화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시도한 비교가 처음부터 평형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시작부터 작심하고 도시인들의 단점을 골라 농촌인들의 장점에 비교시키고 있다. 도시사람들의 리기적 심리와 행위, 천박함을 들어 자신(농촌사람)의 정직함, 진솔함과 비교하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촌스럽다.〉 나는 이 냄새를 고양하고 〈촌스러움으로〉 승부한다. 그때면 우리들의 이 세상은 훈풍의(이?) 도시의 가로수에, 거리에, 아빠트에가득 매달리고 그래서 세상은 칼라가 물결칠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한다.

도시문화는 그렇게 부정적인것들로만 구성된것이 아니다. 그리고 농촌문화도 그렇게 긍정적인것으로만 구성된것 역시 아니다. 도시사람들 가운데도 정직하고 진솔하고 인정이 있고 남을 돕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직함, 진솔함, 인정미 등도 시골사람들의《특허품》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 재해가 들어 피해가 막심할 때, 농촌의 실학어린이들을 위한 《희망공정》그리고 어느 개인이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치료비가 없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사회적인 모금운동은 거의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진행된다. 《난로에 도시락을 차례로 올려놓고 훈훈한 누룽지냄새를 맡아가며 둥그렇게 삥 둘러앉아 서로 권하며 아기자기 나누어먹던》시골인정도 좋지만 도시에는 평생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모아온 거금을 《희망공정》에 희사하는 더 큰 도시인정이 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장점을 《촌스러움》으로 정의한 자체도 도시문화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이 생활하던 문화 환경을 떠나 새로운 문화 환경에 진입했을 때 《내것만이 좋다》는 자기 스펙트럼을 통해서《남의 문화》를 바라볼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장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빨리 습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도시환경에 와서 농촌문화만 고집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옛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때밀이군》,《구두닦이》,《웨이터》나 《웨이터리스》도 부동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의 직업에는 상하귀천이 없고 인간으로서 그들 또한 평등하다. 그들에 대한 글쓴이의 《촌스러움》의 리해도 바람직한것이 못된다.

도시문화에는 발전지향성이 강하기 때문에 도시화는 사회발전의 대명사로 되어 있다. 도시문화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촌스러움》의 고집은 나젊은 학도에게 있어서 현명한 인생 선택이라 할수 없다.
부동한 문화간의 교류가 부단히 빈번해지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다른 문화권의 문화를 리해하고 존중할수 있는 문화 상대주의의 정신이 아쉽다.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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