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간의 삶은 무한히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과 사랑은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의 집적(集積)이고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앤 타일러는 자신의 장편소설 《종이시계》에서 말한다.
타일러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자며 매일마다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무한한 반복이라고 할수 있다. 몇년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廊橋遺夢)》의 주인공인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처럼 40대나 50대에 늦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도 인생의 반복이라 할수 있다. 그러한 리치를 시인 김용택은 지난 세기말에 《새로운 세기의 해가 뜨더라도 그건 어제의 해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무한히 반복한다는 생각은 거시적일 수밖에 없다. 미시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 똑같은 반복은 있을수 없다. 어제 내가 먹었던 세끼의 밥과 오늘 내가 먹는 세끼의 밥은 그 내용이나 수량이 같을수 없다. 40대나 50대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 해도 그것은 그들이 20대나 30대 당시에 경험했던 사랑과는 닮을수가 없다. 시간의 추이에 따라 인간은 생물학적 로화과정에서 무엇인가 부단히 망각해가면서 또 새로운것을 배우기때문에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일수 없다. 태양도 모든 행성들에게 빛과 열 에너지를 발산시켜 주면서 식어가고 있기때문에 《새로운 세기의 해》가 《어제의 해》일수 없다.
그렇게 보았을 때 나는 삶은 무한한 반복이라고 하는 타일러나 내일의 해가 《어제의 해》라고 하는 김용택보다는 마거릿 미첼의 말이 더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날린다는 뜻의 《飄》라는 책이름으로 번역된 미첼의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남부 대지주의 딸인 스칼렛 오하라가 남북전쟁에서 남군의 패배로 부귀영화도 사랑도 모두 바람에 날려버린 후 자신의 땅 타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래일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데 소설을 개작한 영화는 그 말을 《래일은 래일의 태양이 솟아오른다》로 대체하고 있다. 둘 다 래일은 오늘의 반복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보고있기때문에 미래지향적이여서 좋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보면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통과 희열로 점철된것이라 할수 있다. 누구나 쉽게 경험하게 되는 실패는 우리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실패가 클수록 우리가 감수하게 되는 불행과 고통은 커진다. 그러나 그 고통을 딛고 분연히 일어서는 사람들에게는 래일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 될수 있고 《래일의 태양》을 맞이할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공의 희열에 젖어만 있지 않고 새로운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역시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인 《래일의 태양》을 껴안게 될것이다.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70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시 외에도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동화 등 다양한 문학작품을 남긴 인도의 가장 위대한 문학가였을뿐만아니라 인도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2004년의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새로운 한해가 낡은 해를 대체했기때문에 우리 모두의 년륜에 한살이 보태여졌다. 지난 한해에 실패하고 좌절하고 불행했던 사람들은 그 마음의 상처들을 2003년의 마지막 언덕에 묻어두고 지난해가 아닌 또 다른 한해의 시작을 시도해야 한다. 지난해의 성공으로 보람을 느꼈던 사람들도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 새해의 태양을 맞이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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