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정체성(identity)은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속에서 대답되여지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자기다움의 사상을 뜻한다. 이를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자아 외부의 변화에 직면하여 이루어지는 자아의 적응(adaptation)기제》로 정의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정체성이 타자와의 차이―그것도 그 사회에 있어 문화적으로 강화된 차이를 만들어가면서 자신이 누구이며 그 사회속에서 자신의 존재의의와 위치는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한편 정체성은 순간적인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역할의 산물(상황적정체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역할, 상황, 그리고 집단들과의 관계속에서 고정된 의미로 남기도 한다(사회적정체성 및 개인적정체성). 정체성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정체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해석하고 해석된 의미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 사람은 진공상태에서 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존재이기때문에 개인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개인이 소속감을 갖게 하는것은 피부색이나 얼굴모양과 같은 생물학적, 육체적 특징만이 아니고 오히려 공동의 력사적, 문화적인 관습과 전통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이러한 공동의 경험과 습관의 의미가 의심스러울 때 인간의 정체성은 도전받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정체성을 모색하게 된다.
민족정체성은 인간이 갖는 정체성의 한부분이다. 민족정체성은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 공유된 민족적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a sense of belonging)이라고 볼수 있다. 이것은 한 개인의《자아개념(self-concept)》의 일부분인데 이것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를 스스로 정의하거나 또는 타인들에 의해서 정의되여질수 있다.
정체성 리론을 장황하게 설명한데는 물론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남계의 수필에서 그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특별히 강조된데도 원인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 조선족사회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있는것은 아닐가, 바로 이점이 남계가 자신의 수필에서 정체성의 문제에 특별히 주목하고있는 원인이 아닐가 하는 생각에서다.
한 개인의 삶의 의미는 인간의 정체성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즐거운 삶이라고 하더라도 정체성을 상실하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기때문이다.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가 이 경우다. 이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기호라 할수 있다. 그런데 남계는 이름다운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유복자여서 유복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를 이름으로 써온것이다. 그러나 수필에서 사실상 소학교에 입학하는 날 김선생님이 유복(遺腹)이 아닌 유복(有福)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것은 이미 고유명사가 된셈이다. 남계의 이름콤플렉스는 수필을 발표할 때 《남계》라는 호를 사용하고있는데서도 은연중 드러난다. 이 수필에서 남계가 말하고자 한것이 사실은 유복이라는 이름의 래력,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속에 담겨진 해방후 우리 사회의 정신사였다고 보여지지만 그 정신사속에는 남계라는 한 인간의 정체성 확인과정이 드러나고있다.
그러나 남계의 정체성인식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민족적이다. 그는 첫사랑의 실패에서 그러한 민족적정체성을 처음 확인하였다고 하였다. 《첫사랑의 실패는 가장 참담한 방식으로 나에게 <민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었다. 그것도 내가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과 민족정책>이라는 학과목에서 배울수 없었던 심층적인것을 터득케 했다.》(《내가 만들었던 눈사람》에서) 여기서 남계가 터득한 리치는 민족성을 통한 한 인간의 정체성 문제다. 그래서 《그때의 깨달음이 ⟨조선족⟩에 대한 나의 사랑의 씨앗이 되였고 오늘에 성취한 나의 학문의 에너지》가 될수 있었던것은 아닐가? 내가 알기로 남계가 이룩한 풍성한 학문은 한마디로 조선민족의 문화적특징 혹은 민족적개성에 관한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연구는 결국 남계가 소속된 집단, 즉 중국의 조선족이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존재할수 있는, 혹은 중국에 존재해야 하는 리유를 밝히고있는셈이고 이는 곧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확인과정이기도 하다.《사랑의 언어학》이나 《사랑의 민족학》 등 남계의 중수필들에는 이러한 남계의 학문적업적이 단편적으로나마 모습을 보인다. 《사랑의 언어학》에서 남계는 《아이 러브 유》나 《워 아이 니》형의 사랑표현은 마치 규격화되여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된 공업제품과 같아 개개인의 개성이 완전히 함몰된 상태라 하고 그래서 애쓴다거나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한번 구해놓으면 변하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쓸수 있는 조화(造花)와도 같은 말이며 거기에는 생기도 향기도 없다고 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민족어에는 그런 규격화된 사랑표현이 없기때문에 우리 말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남과 녀는 개개인의 문화적개성을 추구할수밖에 없다고 했다.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사랑의 표현은 진한 향기로 되여 상대에게 전해질수 있다.》고 한 남계의 결론은 남계의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사랑의 민족학》에서는 더구나 비슷한 모티프를 가진 아랍, 유태, 조선 등 세 민족의 고사를 비교하면서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감싸안는다. 비록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랑의 선택에서 철저하게 아랍민족의 상업주의 원칙을 적용시킨 아랍공주나 계약주의 원칙에 따른 유태공주, 그리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을 선택한 조선처녀중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모두 자신의 문화적인 기준에서 사랑을 선택한것일뿐이다. 그러나 《사랑을 주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사랑을 받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충일하고 지순하다.》는 남계의 평가는 어쩔수없이 민족적이다. 비교하고자 한 세 이야기의 선택 자체가 그렇고 주는 사랑을 참사랑이라고 한 인식이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사랑은 문화적산물이다. 사랑이 구성되는 방식은 사랑의 주인공들이 소속된 그 민족의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특성에 좌우된다.》는 결론 역시 민족적인 견지에서 도출된것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중수필 《선택》에서는 그러한 민족애를 바탕으로 오늘날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고있다. 1999년 한해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신생아수는 3800명인데 이는 10년전의 4분의 1을 좀 웃도는 정도라 하고는 이대로 나간다면 2049년에는 0출생을 기록할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제시한다. 그 중요한 원인이 조선족녀성들의 한국 출가와 도시 유흥업소 류입에 있다고 보고 이런 국면을 역전시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선족남성들이 열심히 배우고 일하며 책임성있는 인생길을 새롭게 선택하는것뿐이라고 지적한다. 남계의 민족적 책임의식을 나타낸 대목이라 하겠다. 남계는 또 이렇게 촉구하고있을뿐만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책임있는 립장에서 실천하고있다. 북경의 조선족을 위해 조선족학교를 운영한다든지, 민족문화의 생존을 위해 경제난에 처한 《도라지》잡지를 지원해준다든지, 우리 민족의 농업경제와 민족경제를 글로벌시대에 적응시키기 위해 China-corean.com이라는 인터넷싸이트를 창립 운영한다든지, 조선족집중촌건설을 추진하는 등 남계의 민족엘리트로서의 책임있는 실천은 또다른 측면에서 민족정체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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