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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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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2013년 11월 23일 09시 01분  조회:2337  추천:2  작성자: 회령
          실화
                                               대가
                                                                   회령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재미나는 골에서 범이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대통령을 비롯해서 촌장에 이르기까지 간부들이 특히 명심해야할 명언이다. 왜냐하면 조상님들이 이른 이 교시를 망각하고 너덜대다가는 엄청난 대가를, 지어는 패가망신(집은 박산이나고 자신은 죽는다)하는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구도공사(향)당위 부서기 신덕수는 앞길이 쫙 열린 사람이였다. 그는 의무병역에 갔다와서(3년간) 다시 농사일을 하면서 사도대대(촌) 민병련장을 하였다. 장가가고 아들딸 오누이까지 보았지만 그의 패기는 그냥 씩씩해서 계속 민병련장을 했다. 그는 공사무장부의 모든지시를, 지어는 얼떨떨한 지시도 군사명령으로 받들고 무조건 집행했다. 이를테면 “공사간부들이 요즘 출출해서 개추렴을 할가하는데 거, 좋은걸루 한마리 갖다주오.”하고 부장이 한마디만하면 그는 규정시간내에 훌륭히 완성했다.

깨끗히 손질까지해서 콩팥 한개 먹지않고 믿음직한 전사(민병)를 파견해서 가져다 주었다. 값은 물론 받았다. 부장이 값을 2,3원 더 후하게 주어 개임자는 입이 벙글써해서 좋아했다. 어떤 할머니나 아낙네들은 그에게 개를 팔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는 꺼리지 않고 성근히 들어줬다. 공사에서는 재미가 들어 노루, 멧돼지, 꿩, 산천어, 하마(기름개구리)…를 잡아 오라고 할때도 있었는데 그는 한번도 어김이 없이 규정시간내에 명령을 완성 하였다. 이런 토산물은 대부분 경우 공사에서 상급령도에게 코밑치성을 올리기 위한 수요에서 하달한 명령이기에 그는 정치,군사적 임무로 간주하며 견결히 완수 하였다.

이런때는 민병훈련이라는 명분으로 공수(보수)를 받았다. 전사들은 신식무기로 “실전”을 하기에 사기가 올라 흥분하며 좋아했다. 사냥에는 아시보총(반자동보총)이 퉁포나 민병의 38식보다 훨씬 좋았는데 총과 탄알은 무장부에서 보장해 주었다. 임무완성후 전사들에게는 훈련의 각도에서 꽈다당! 몇방씩 갈길수있는 혜택이 있었다. 민병의 무기로 사냥한다는건 모가지가 떨어질 엄중한문제 였다. 그러나 무장부에서 상급과 소통하기에 별문제 였다. 하지만 군중들이 내막을 모르게 엄격히 비밀을 지켰다. 어떤때는 임무를 초과하기도 했는데 초과부분은 부장의 비준대로 그들의 소유였다. 비밀리에 추렴을 하거나 나누어 가졌다.

   문화대혁명 10년기간 신덕수의 표현은 좋았다. 그는 문혁초기에 민병훈련을 비롯해서 령도말을 잘들으며 일을 잘하여 공사, 현의 표양을 받은것으로 해서 류소기의 자산계급수정주의검은로선과 라서경(해방군총참모장)의 반혁명군사로선을 집행한 졸개라고 피둬(비판투쟁)를 대대서기 주임과 함께 두어번 받고 풀려 났다. 그가 인차 해방된것은 군중위신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벼슬자리를 노리는자도 없었다. 심부름이나 하는, 벼슬도 아닌 그따위 벼슬을 탐내는 반란파는 없었든 것이다. 해방받은후 신덕수는 반란파들을 따라다니며 어록노래도 부르고 충성무도 추고 구호도 따라부르며 적극성을 표현했지만 누구에게나 미움살일은 될수록 피하였다. 하여 대대혁명위원회 부주임으로 제꺽 선거되고 또 인차 입당까지 도 쉽게 하였다.

얼마후에는 공사혁명위원회 부주임으로 승급하여 호미강댕이(호 미자루)를 놓게 되였다. 생각밖으로 수라상을 받게된 그는 정신을 바싹 가다듬고 사업에 열심하였다. 그는 하향할때면 군대가방에 모주석어록책과 일철에 따라 호미아니면 낫을 꼭 지참하고 다녔다. 어느공사의 당위서기는 공사운동대회날에 논판을 돌아보고 왔다는 표시로 바지가랭이를 짝짝으로 걷어올리고 장딴지에 흙을 바른후 고무신을 꿀쩍거리며 한시간 늦어 대회장에 나타나서 개막사를 하고 또 밭을 돌아보겠다며 퇴장했는데, 하여 사람들의 우스개감으로 되기까지 했지만(가짜 초유록이라고) 신덕수는 그런사람이 아니였다. 농사일은 몸에 밴 것으로 젊은나이에 고될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부지런히 하향했고 하향해서는 사원(농민)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한몫을 하는 상등로동력 선줄군이였다. 기층 간부들과 무엇을 토론하거나 회의하는건 될수록 밤에 하였다. 생산에 영향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공작작풍 군중태도를 주의하였다. 누구와나 먼저 인사를 건네며 이것저것을 세심히 관심해 주었다. 이를테면 집의 로인님께서 무고하신가. 돼지가 앓는다던게 어떤가. 량식곤난은 없는가…

   그는 자기가 점으로 잡은 사도대대를 대채건설에서 한폭의 붉은기로 되게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사도대대는 드디여 현의 모범으로 되여 지구에서도 이름을 날리게 되였고 대대서기는 현의 모범서기로 되였다. 신덕수는 “초유록식간부”(전국모범간부. 하남성란고현의 현위서 기.)라고 현위의 표양을 받았다. 그해 그는 당위부서기로 임명되면서 정식 국가간부로 넘었다.

   사도대대 부녀주임 서영자는 구도공사에서는 1등가는 미인이였다. 170에 가까운 키꼴은 녀자키로서는 껑충해서 보통 보기싫지만 그는 키에 맞게 풍만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발달해서 곡선미가 뚜렸했다. 인물은 말그대로 함박꽃이였다. 그때세월에는 미인이라느니 성감이 좋다느니 하면 저급적취미의 추잡하고 음탕한 말을한다고 고상한 풍격을 갖춘 혁명자들이 격분해서 질타하였다 사람들은 서영자를 배구선수 같다고 하였는데 그는 고중때 정말로 학교배구선수 였다. 사도대대에 집체호로 내려온지 3년도 안되여 그는 한마을에 있는 빈농 리씨네 큰며느리로 되였다. 남편은 부대에서 패장을 하는 군관이였다.

그때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영자는 호구를 시집에 옮기고 시집에서 살았는데 생산대량식을 타먹는 진짜 사원으로 되였다. 어수선한 집체호에서 사는것보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당시에 처녀들의 우상이다싶이한 군대, 그것도 훤칠한 군관총각과 백년가약을 맺은것이 꿈만 같았다. 그는 흥겹게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영자는 농촌호구로해서 훗날 막대한 대가를 치루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다. 군관총각이 휴가로 집에 왔을때 그들은 벼락같이 약혼식을 하고 떳떳히 첫날밤까지 치뤘다.(사실 영자는 이미 파겁을 한 처녀였다.) 당자들도 급했지만 두집부모들은 더욱 급했던 것이다. 리씨네는 호함진 며느리감이 너무도 탐이 났다. 상등로동력일건 두말할것도 없고 애를 무우뽑듯 쑥쑥 잘 낳을것 같았다. 그리고 고중이 아닌가! 농촌에서 글이란 쓸모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문벌이 대뜸 높아진다. 아들위신도 올라가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것이다. 영자네 집에서는 딸의 행실을 알기에 하루하루가 늘 조마조마한데 군대와 그것도 군관과 약혼한다고 하니 와뜰 놀랐다.

그들은 리씨네가 하자는 대로 박자를 맞추었다. 아니, 아예 결혼식까지 해 버리고 싶었지만 패장은 그러지 못하기에 아쉬웠다. 참는수밖에 없었다. 대신 한품에 들었으니 밥은 다 된 것이다. 든든한 도장을 찍은것이다. “에미나새끼! 날쌔긴 날쌔. 그래두 제노릇은 한다니까! 류망이 되면 그걸 어쩐단 말인가…”생각만해도 끔찍하고 골치 아프다. 그들은 정말로 한시름을 놓았다. 첯날밤, 이슬이(출혈) 없으니 군관총각은 대뜸 기분이 죽었다. 영자가 배구를 치다가 쫠 넘어져서… 증명인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자 군관의 흥분은 다시 발동이 되였다. 그러나 미타한 생각이 영 사라진건 아니였다.

그후 총각은 제대하고 도시에 있는 유리공장 공회간부로 안치를 받았다. 얼마후 결혼을 하였지만 영자를 도시로 데려올수는 없었다. 호구가 38선처럼 걸렸든 것이다. 자기가 자원만 하면 대뜸 농촌공사로 전근할수 있었으나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안치판공실, 민정부문으로 찿아다녔으나 정책상 방법이 없다는데는 하늘 쳐다보기였다. 올때는 껴안아 줄것처럼 하던 놈들이 굳어진 얼굴이 무뚝뚝하기를 마치도 법관같았다. 인맥을 구축해야겠는데 그것은 하루이틀에 될일이 아니였다. 한창나이의 신혼부부는 말그대로 감질이 날 지경이였다. 다시 집체호 지식청년으로 돌려 놓으면 일은 다 해결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제길! 어떻게 한담…죽을 맛이였다. 농촌호구가 너무도 후회되였다 영자는 신랑곁으로 가기위해 골몰했다. 방법은 뒤문을 뚫는수밖에 없는데 닭마리나 술병으로는 어방도 없는 것이고 돈이 제일인데 그럴돈이 또한 어데 있는가. 돈이 있다고 해도 줄이 없이야 어떻게 먹이는가.

   어느날! 영자는 신덕수가 문뜩 떠올랐다. 신서기에게는 위에 문과 줄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던한 사람이다. 다른사람을 될수록 방조해 주려고 한다. 영자는 자기의 고충을 신서기에게 고백 하였다.
   “잠도 안오고… 앞으로 어떻게 삽니까. 이렇게…”
   “리동무가 우리 공사로 오면 어떨가?”
   “그건 안됩니다. 도시를 놔두고 이 산골로 오잘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나부터도 한평생 농민은 못하겠어요.”
   “그럼, 입당결심은 거짓말이구만.”
   “입당은 못해도 일없지만 도시로 못가는건 절대로 안됩니다. 신서기! 도와 주십시요.”
   “하ㅡ. 그렇구만. 그런데 얼핏생각에도 이게 어디 쉬운일이겠소? 나는 이런일을 도무지 못해봐서…어떻게 말한단 말이요. 령도들과. 이것참, 난처한 일이구만.”
   “어떻게 하든지 도와 주십시요. 신세는 꼭 갚겠어요.” 말하고 보니 영자는 반짝 떠 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으로 신세를 갚는단 말인가. 미인계가 있다! 신서기를 꼭 잡으면… 물고 늘어지며 강타를 안기면 일이 뜻밖으로 빨리 성사 될수도 있지 않겠는가…영자는 얼굴이 화끈화끈해나고 가슴이 활랑거리였다.
   모내기철 어느날 영자가 집에서 꾀병을 앓고 있는데 신서기가 마을로 오는것이 보이였다. 가장바쁜 대회전시기라 마을은 텅텅 비여있었다. 집에는 물론 영자 혼자뿐이였다. 그날, 신서기는 영자를 끌어안고 비단요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다. 어느날 신서기는 시에 회의가는 길에 영자를 이틀후에 오라고 가만히 련락하였다. 이번에는 호구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공인모집이 있으면 꼭 되게 하겠다는 것이였다. 영자는 신이나서 엉덩춤을 추기까지 했다.

   이틀후 영자는 오후에 뻐스를 타고 본가집으로 갔다(뻐스는 하루 한번임.) 그는 어머니와 함께 부랴부랴 저녘술상을 마련했다. 초대되여온 사람은 신서기 외에 퉁방울 같은 눈을 뒤굴거리는 공안국장과(한족) 로동국 무슨간부라는 사람이였다. 영자부부는 그들을 구세주로 지극정성 받들어 모셨다. 구세주들은 며칠 굶은사람들인지 술과 개고기를 걸탐스레 먹어댔다. 그것이 그지없이 기쁘고 고마웠다. 일은 상머리에서 말끔히 해결되였다. 밤늦게 헤여질때 국장과 간부는 영자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놓을념을 하지않았다. 그들은 만사시름을 다 놓으라고 하면서 영자의 어깨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기까지 하였다. 신서기와 남편은 따돌리우는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곁에서 무척 즐거워 하였다. 신서기는 초대소로 돌아가고 영자부부는 셋집으로 갔다.

   이튿날 오전 9시경, 신서기는 약속대로 영자네 셋집으로 왔다. 남편은 출근하고 집에 없었다. 거두절미, 그들은 가랑잎에 불이달리듯 화끈 엉켜 붙었다. 신서기는 11시차로 돌아가야 했기에 두어번 재미를 보자면 시간을 아껴야했다.

   영자의 남편은 전날술로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메슥해서 옆사람께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해가 본가에 갔으려니 했는데 문에 잠을쇠가 없었다. 그는 흐믓해서 살며시 문은 당겼다. 문은 안으로 걸려 있었다. 안해가 자는지…살그머니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피가 대뜸 머리로 용솟음 쳤다.! 그는 뛰여들며 라체로 엉켜붙은 년놈을 징박은 구두발로 마구 짓밟았다. 숨이 찰때까지 머리며 몸뚱이를 무차별 뭉개 놓았는데도 년놈은 떨어지지 않는게 아닌가! “이, 개쌍놈들아!” 그는 소리지르며 또 한바탕 짓밟았다. 여전하였다. 웬일이야?! 그제야 정신이 든 그는 안해와 신서기가 살려달라고하는 말을 들을수 있었다. 그는 건 가래침을 한입가득 퉤! 뱉아놓고 가시집으로 갔다.

   시병원에서는 영자를 마취시켜 신서기를 떼여 냈다. 질경련이라는 희귀한 병이였고 그보다 더욱 희귀한 현장이였다. 반백이 넘은 외과주임은 책에서는 보았지만 실지병례는 처음이라고 감탄을 했다.
   그날밤, 신서기는 외과병실에서 어정어정 나간후 트럭에 뛰여들어 자살했다. 영자는 세상모르고 잤다. 나흘 되던날 밤, 영자는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은채로 4층복도에서 창문을 기여넘어 떨어졌는데 그대로 죽었다.
   사람들은 이러니 저러니 여러가지로 말들이 많았는데 결론에 가서는 이구동성으로 “죽기를 잘 했다!”고 하였다.

                                                                                                                                                                      0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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