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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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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입당
2021년 12월 20일 15시 25분  조회:391  추천:6  작성자: 회령
        수필
                                                  화선입당
                                                                                                            회령

지금 건당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중국공산당을 찬송하는 노래가 전세계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최근에 당중앙에서 내린 기념활동에 관한 지시를 보면 당사학습을 참답게, 열심히 함과 동시에 당의 정확성과 성적을 많이 말하라고 하였다. 이건 응당한 일이다 그도리는 나도 안다. 그러면서, 나는 이글에서 당의 조직건설에서 중시하지 않으면 아니될 문제ㅡ사상상의 입당문제를 말하고저 한다. 사상상의 입당은 한 당원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지 할 뿐만아니라 당의 생명을 결정하는, 극히 관건적인 중대한 사항이다. 이면에서 지난날 나는 적지않은 실례들을 보았다.

화선입당이라고 하면 아주 숭엄한 마음이 앞선다. 그것은 생명을 바치고 입당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대가를 요구하는 혁명임무앞에서 뒤로 물러설수도 있으나(그렇게 해도 나쁘다고 할수는 없는데도.) 선뜻히, 견정히, 나서서 임무를 맡았을때 본인이 입당을 신청했다면 죽었어도 살았어도 중국공산당조직은 그를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입당한 당원을 화선입당을 하였다고 한다. 화선입당은 전쟁년대에 많았다…

화선입당이란말은 아주 무게가 있는, 장엄하고 거창한 말로서 함부로 쓰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투사비수”(鬪私批修. 사심을 투쟁하며 수정주의를 비판 함.), “토구납신”(吐久納新.낡은것을 버리고 새것을 받음.)이 시작된 후부터는 입당이 많아졌는데 갑자기 입당한 사람은 거지반 화선입당을 하였다고 하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입당을 한다거나, 하였다면 사람들은 입을 삐쭉거리며 씰룩거리며 평론이 많았다. 그럴때면 유관령도에서는 “그동무는 화선입당을 한(할) 사람이요!”하고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중구난방 풀머구리처럼 떠들어 대던 주둥이들이 쑥 들어가고 잠잠해 지었다. 여기서 내가 직접 본 그 “화선입당”을 몇개만 보기로 한다.

직원이 대여섯밖에 안되던 모 변강산골병원에 “6.26지시”를 관철하면서 의과학교졸업생, “6.26백의전사”가 배치되였는데 대뜸 2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속에서 내과의 박선생부부는 현병원에서 내려왔는데, 박선생은 병원혁명위원회주임모자를 직방 쓰고 내려오고 안해인 조선생은 일반의사 신분 그대로 왔다. 그리고 내지의 모 현병원에서 사업하던 김선생부부도 “6.26백의전사”로 내려왔는데, 남편인 김선생은 보통외과의사고 그의 안해인 리선생은 소아과의사 였다. 김선생부부는 당조직의 배양을 받아오던 입당적극분자 였다. 그외에도 약국, 화험, 부유보건하며 의무인원이 여러명이 선후로 왔는데 그속에는 의학원졸업생(공농병학원, 2년학습.) 허선생과 두달간의 생산대(촌민소조)위생원(衛生員)훈련을 받은 서호사도 있었다.

이 산골병원에 원래는 중의사, 중약사, 서약사아줌마, 의학원졸업생 강선생과 위생학교호사반졸업생 장호사, 그리고 산파아줌마(부유보건)가 있었다. 원장은 회계가 겸하고 있었다. 강선생과 장호사는 제대로 의학을 배우고 국가의 통일분배에 의하여 이곳에 왔다. 그들은 여기서는 자기들의 업무수평이 제일높다고 자부하는데, 공사(향)의 간부들과 군중들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강선생은 결혼한 몸으로 집은 시가지에 있고 이곳에서 독신생활을 하는데 사람이 수수하지만 꽤 미남형으로 생겼으며 겸손하고 온순하며 사업태도가 좋아서 군중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가정성분이 상중농이다. 하다보니, “나는 아이때부터 남의 눈치를 살피며 매사에서 조심을 하며 성장했고 그것이 성격으로 되기까지 했다.”고 그러니까, 나는 정직하게 온순하게 자란 사람입네다… 하는 암시적 말을 잘했지만 뒤통수에 손가락질을 받을 일을 몇가지 하였다. 그것은 하숙집의 말광대같은 두 딸과 안고 자는것을 본 동네 아낙네들이 소문을 퍼뜨린것이 한가지고(그래서 원장의 권고대로 병원의 방을 하나 가지고 이사를 했다.) 또 한가지는 입원한 환자(은행의 젊은 녀자. 남편은 외지에 있음.)의 병실에 불도 켜지않고 밤중에 들어가 퍼그나 있은일이다. 이일은 장호사와 서약사 아줌마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그날밤 그들은 직일이였다.) 그리고 인공류산, 부과질병을 진료 한다면서 내진실을 두었는데, 내진할때는 반드시 산파아줌마, 혹은 장호사거나 서약사 아줌마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단골로 다니는(불임증이요 무슨염증이요 하면서.) 반질반질한 녀자 서넛이 올때마다는 강선생이 혼자서 처치를 했다.

장호사는 남의 발등을 디디고(발등을 밟히운 처녀는 정신분렬증에 걸리고 말았다. 좋은 처녀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아깝다고 하였다.) 대대(촌)의 단서기를 하는 유망한 청년과 약혼을 하였는데, 단서기청년은 정말로 일을 잘해서 입당을 하고 다른 공사 단위서기로 발탁까지 되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로 그가 바람을 무척 피워 당증과 공직을 떼우고 도로 쫓기워 올줄이야?! 하여 파혼을 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로처녀가 되였다. 그와 강선생의 관계는 무척 애매하여 뒷말이 많았다.

강선생과 장호사는 입당적극분자로 명단에 오른지는 몇해가 되지만 이러루한 불미스러운 사적들 때문에 입당을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장호사는 복무태도가 대단히 나쁘고 자고자대와 교오자만등 성격적 결함까지(기실은 사상문제라고 하였다.) 가미가 되여 내외, 전공사적으로 곱다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보니 번마다 미끌어지군했다. 하지만, 강선생과 장호사는 몇해가 되여도 자기들이 입당을 못한 원인이 원장때문이라고 철천지원한을 품고 있었다.

뜻밖에 분풀이를 할 기회가 왔다. 공사적으로 강선생과 장호사는 제일먼저 반란을 이르켰다. 확실한 정보는 시가지에 집이 있는 강선생이 가져왔다. “…주자파를 잡아내는 운동이 산불처럼 급속히, 맹렬히, 전국적으로 타 오르기 시작했다… 크던 작던 령도자이기만하면 우선 때려부순다… 학생들이 주력인데 초중이상 학교들은 문을 닫고 애들이 전문 령도를 잡는 혁명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강선생의 귀속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들며 흥분한 장호사는 자기와 친한, 학교와 기관단위의 몇사람에게 극비중요소식(강선생이 자기한테서 들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말라고 백번 당부를 했다.)을 즉시 전달했다. 시가지에서 일어난 바람은 인차 이 산골구석에도 불어왔다. 강선생은 뒤에서 반란파 맹장들에게 궤책을 대주고(반란파고문아라고 했다.) 앞에서 날뛰며 지휘하는 일은 장호사가 하였다. 어느날 오후 장호사는 초중학교의 선생 두 사람과 함께 학생애들 30여명을 데리고 장부를 적고있는 원장에게 갑자기 덮쳐들었다.

그날부터 횡액을 당한 원장은 “주자파”요 “류망”이요 “탐오범”이요 “조선수정주의 특무”요 한 꼬깔모자를 번갈아 쓰고 얼굴에 광대를 그리우고 개패며 녀자들의 찢어진 낡은코신을 목에걸고 헌 양철통을 뚜드리며 개처럼 목에 바줄을 매여 절뚝거리며 아이들에게 끌리우며 거리를 조리돌림을 당하였다. 그리고 도시호구여서 다섯식구가 그의 몇푼의 월급에 매여 사는데 그 월급을 짤리우고 보조도 짤리웠다. 외다리 잔페군인인 원장(고아출신, 화선입당, 전업시 조선인민군대위, 중국해방전쟁, 조선전쟁 참가자.)은 1년거이 모진고생과 수모를 당하였다. 그런데, 강, 장이 난처하게 된것은 아무리 닥달을 해도 꼬깔모자에 쓴것같은 죄장은 털끝만치도 없은것이다. 강, 장의 행패에 기관단위간부들과  빈하중농군중들이 분노하였다. 어데서부터 나왔는지, “상중농이 혁명한 사람을 투쟁한다!”(장호사는 하중농이다.)느니, “상중농이 빈고농을 친다.”느니,  “계급보복”이라느니, “환향단이 왔다.”느니, “순전한 개인보복”이라느니… 하면서 여론이 물끓듯 하였다. 보아하니 이건 순전한 생트집 개인보복이였든 것이다. 사람들은 무리를 쳐 와서는 원장을 끌고 거리조리돌림을 하는 장호사들과 마구 걸고 들었다. 대경실색한 강과 장은 술책을 바꾸어 거리조리돌림은 그만두고 “조선특무”라는 죄목을 물고늘어졌다. 그혐의사실이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였으나 증실인을 댈수없는 상항에서 어쩔수가 없었다. 조선전쟁후퇴시기 원장은 어깨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대오에서 떨어지다보니 10여일 혼자서 적들을 피하며 북으로 들어오다가(호송하던 전우는 회생되였다.) 유격부대를 만나 구원을 받은것이다. 언젠가 이런 회고담을 한적이 있었는데 강과 장은 그것을 물고늘어졌든 것이다. 적후에서 10여일이나 지나서 북으로 왔다는것이, 전우가 희생되였다는것이 심히 의문스럽다는 것이였다. 이런 기막혀 죽을 노릇이 있는가?! 원장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짝지발지팽이로 땅바닥을 마구 뚜드리며 나를 거리에 끌고나가 때려 죽이라고 고함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워낙 매몰차고 악착스러운 장호사는 눈알 한번 깜빡거리지 않고 증실인을 두 사람만 데려오면 되니까 어서 데려오라고 하면서 해죽거리기도 하고 표독스레 쇄된악청을 지르기도 하였다. 의뭉스러운 강선생은 사람들의 의심만 부추겼다.

대련합과 탈권호소에 따라 다른 단위들에서는 혁명위원회를 모두 내 왔으나 병원만은 원장의 문제를 결론하지 못하여 소위 업무령도소조(당원인중약사와 서약사, 장호사)가 행사를 하는데, 조장은 보황파 중약사였지만 실제로는 장호사가 주단을 했다. 그의 뒤에서는 강선생이 고문, 참모역활을 하였다. 병원은 사람은 대여섯밖에 안되지만 공사적으로, 현적으로 유명한 “로다난”(老多難) 단위로 널리 조명이 났다. 하여, 선후로 “빈선대”(빈하중농선전대), “군선대”(해방군좌파지지선전대)가 들어왔으나 문제를 조금도 해결못하고 가버렸다. 후에 “6.26지시”관철로 박주임 등이 오자 얼마후 원장은 현혁명위원회에서 현위생국에 올려갔다. 그는 현위생국에 가서 몇달 있다가 리휴를 하였다.

박주임이 온후 “로선분석”(자기와 련계함.) “비림비공”(批林批孔. 림표와 공자를 비판.) “투사비수” “토구납신” 등 정치할동은 줄기차게 진행되였다. 따라서 입당적극분자도 우후죽순마냥 용솟음쳐 나왔다. 그들로는 로 적극분자들인 강, 장, 김, 리이고 새로 뛰쳐나온 적극분자 조, 허, 서, 오회계 등 여덟사람이였다.

다른사람들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대체적으로 면목이 있지만 조선생과 오회계에 대해서는 생소하기에 조금 소개를 해야 할것같다. 조선생은 이미 알다싶히 박주임의 안해로서 내과의사 경력은 몇년이 된다. 하지만 업무실력보다 인물이 잘나서 지명도가 높았다. 특히 무도를 잘 추고 노래도 꽤 하는데, 현병원약국의 모모와는 퀴퀴한 일로 구설이 많았다. 그것은 려관방에 드나들며 사람들눈에 여러번 띄웠기 때문이다. 의사로서는 일반적 수평이였다. 오회계는 박주임이 와서 급히 물색해 데려온 회계다. 원장을 위생국으로 전근시키라는 현혁명위원회령도의 특별지시로 해서 오회계는 천만 뜻밖에 병원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그는 재무학교를 졸업하고 집이 있는 이 산골공사의 공소합작사(상점)에 분배를 받았다. 그런데, 소액이긴 하지만 탐오행위가 있어서 분사로 보냈는데 역시 개변이 없었다. 하여, 령도에서는 그를 상점후근잡공으로 두었는데 병원에서 달라고 하니 얼씨구 밀어보냈든 것이다.

병원에서 입당은 경쟁이 치렬했다. 공사에서는 한해 한번 입당을 비준하는데, 병원에 주는 명액은 하나뿐이 였다. 그러나 공사당위서기이시며 혁명위원회주임이신 왕동지가 병원은 여느단위들보다 입당적극분자가 많기에 명액을 더 줄수도 있다고 하였다. 특히 화선입당이 나올경우에는 무조건 입당을 시킬거라고 하였다. 왕동지는 공사혁명위원회가 성립될때 현혁명위원회로부터 직방 임명되여 온 령도였다. 공사의 원래간부들은 부서기 한사람과 선전위원을 내놓고는 몽땅 토개간부출신인 당위서기와 사장을 싸고도는 보황파들이여서 “쓸만한 간나덜이 한마리도 어부소…”였던 것이다.(왕동지가 미개한 산골 조선아덜이라면서 멸시하며 한 말.) 왕동지는 현량식창고 공인으로서 마대치기반의 공인이였는데, 반란을 억세게 잘해서(특히 패거리 싸움때.) 화선입당을 했고(소문에는 입당지원서의 신청인 이름을 혈서로 썼다고 했다.) 현혁명위원회 위원에 오르기까지 했으며 이 산골공사에 파견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를 더 한다면, 왕서기가 와서 공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할때 구성원을 왕서기 “숴라 쏸”(말대로)으로 제꺽 결정했는데 반란파에 일변도를 한 원 부서기와 선전위원 외에는 몽땅 반란파맹장들에서 뽑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친히 “홍색변강보루”를 건설했다고 코가 우뚝해서 자랑하였다.

병원의 박주임은 포부가 큰 사람이였다. 그는 지구병원 혹은 지구위생국의 령도로 되는것을 분투목표로 한 사람이였다. 그는 광영한 “6.26백의전사”란 붉은꽃을 달고 혁명위원회주임이라는 령도발판에까지 올라서서 여기로 온 이상 한번 본때스레 3, 4년좌우 하면 지구급 나아가서는 성급의 벼슬도 가능하리라는 신심을 갖고 있었다.

박주임은 공사령도, 특히는 왕서기와 무척 친하고 상급령도와도 가급적 좋은관계를 맺기에 매우 예민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업에서 그는 “6.26지시”관철락실이라는 슬로건을 받들고 전방위적으로 억세게 공작을 전개하였다. 병원에는 강, 장 두사람을 직일처럼 집을 지키게 하고 그외의 직원들은 각 대대위생소에 내려보냈다. 그는 그들을 “6.26공작대”라고 높히 불렀다. 공작대의 임무는 대대합작의료건립, 위생방역, 계획생육, 애국위생, 맨발의사, 위생원 배양… 등등이였다. 동시에 그는 장사덕, 뻬쮼, 뢰봉을 따라배으며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아 지식분자의 세계관, 인생관을 더욱  혁명화하며 빈하중농을 위하여 전심전의로 복무하며 다면수로 되기위한 활동 등 정치사상건설과 업무건설도 억세게 틀어쥐였다.

하향공작에서 조선생과 리선생은 며칠씩 상황에 따라 안배를 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이미 셋씩 있었기때문이다. 강과 장은 처음에는 병원의 업무를 자기들한테만 송두리째 맡기는것 같아서 은근히 코가 우뚝했다. 그런데, 케를 보니 그게 아니였다. 다른입당적극분자들은 자기의 선진성을 이리저리 피뤄치며 활학활용 (活學活用) 할말이 많고도 끝없는데, 자기들은 말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지만 산사상을 가지고 남을 감동시키며 활학활용을 할 건데기가 없음을 감촉했든 것이다. 환자에게 어떠어떠하게 복무를 잘 했다는 소리는 묵은소리고, 다른사람들은 이 묵은소리도 농업에서 대채를 따라배우는 혁명운동이거나 전쟁준비사업에 붙혀서 생동활발하게, 멋드러지게, 감동적이게 장광설을 청산류수로, 웅변적으로, 발언시간을 초과하면서 내리풀었지만 자기네는 규정한 시간을 초과하기는 고사하고 다 쓰기도 힘겨웠다. 이러다가는 또 입당이 틀려지기는 명약관화였다. 강은 자기에게 “입당벼슬론”류독이 있었다고 산사상을 침통하게 참회를 했지만, 그래서 이순간부터는 진정한 당원으로 되기위한 입당을 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하였으나 누구도 그의말을 믿지않았다.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왕서기와 박주임이 너의 안해를 소학교의 부교장으로 안배해 주고 집까지 지어주겠으니… 네가 번번히 하는 맹세대로 이곳 변강에 뿌리를 박으라고 권고를 해도 그는 안해가 말을 듣지않는다고, 리혼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아이가 둘이나 있고… 하며 구실을 대였고, 거기에 상중농성분과 원장을 혹독하게 박해한것, 남녀작풍문제 등 문제들로해서 가장 렬세였지만 벼슬하려는 욕망과 우선 시가지로 가려는 욕망을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것을 전 공사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하향을 시켜달라고 신청을 했으나, 조선생이거나 리선생이 병원에 있을때에나 하향해서 며칠씩 고된농사일이나 하고왔다. 장도  “입당벼슬론” 류독으로 현적으로 첯 녀자원장이 되겠다는 산사상이 있었다고, 엄격하고도 첨예한 자기해부를 하였으나 령도로부터 군중에 이르기까지 그를 곱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에게는 “입으로만 혁명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다. 공사당위서기이시며 공사혁명위원회주임이신 왕동지만은 장호사를 고와하며 좋아하며 높히 긍정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장호사가 군중들의 미움을 산다는건 그가 반란정신, 투쟁정신이 높기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번은 왕동지가 병원 박주임에게 내부지시를 해서 장호사입당신청재료를 공사당위에 올려보내게 하였다. 그때는 기층지부에서 입당심사를 할때 군중대표(입당적극분자들이 위주임.)가 참가해서 신청자에 대한 견해를 즉 보는바를 말하게 하였다. 거수가결에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장호사의 입당문제는 토론하나마나 였다. 그것은 박주임자신부터가 전혀 동의는 고사하고 코방귀가 나왔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박주임은 완동지와의 우의를 중시해서 가만히 유관재료를 구전하게 갖추어 보고를 하였다. 토황제가 다 누구네 아들이냐고 하는 왕동지께서는 아주 위엄있게 틀거지를 차리며 기세꿋꿋해서 입당심사회의에서 장호사를 내놓았는데, 웬걸?! 99프로가 뽀이꼬트를 하는게아닌가?! 왕동지는 처음으로 코밥을 먹고 속이 쭝ㅡ 했다.

시시콜콜 너무길게 말했는데, 이제부터는 속도를 내자. 왕서기와 박주임이 이 공사에서 사업하는 기간내 병원서는 련속 4명이 화선입당을 했다. 순서별로 소개를 한다면 다음과 같다.

제일 처음으로 화선입당을 한 사람은 조선생이다. 조선생은 2ㅡ3일씩 3, 4리 되는 곳에있는 대대위생소에 집에서 다니며 몇차례 출근한것이 당원표준에 부합이 되는 선진사적으로 재료가 되고 마을의 개에게 물릴번 하였으나 막대기를 갔고다니며 출근을 견지한것이 화선입당재료에 들어가기까지하며 입당을 하였다. 그는 위생소를 지키며 대대의사를 자기대신 농촌로동에 나가게 하였다. 후에 왕서기가 지식청년 강간건으로 감옥에 잡혀가면서 자백한데 의하면 기실은 왕서기에게 궁둥이진상을 한것이 화선입당을 쟁취케 한 것이다.

다음, 서호사는 미녀이며 과부인 엄마와 "합작하여 활약을 잘한덕"이 크다. 그는 산골농촌인 이곳에 집체호 지식청년으로 왔는데, 엄마가 한상 잘차려서 생산대간부들을 두번인가 세번인가 대접하고 딸이 생산대맨발위생원 학습을 가게 했다. 두달의 말타고 꽃구경식 훈련이 끝난후 엄마는 왕서기를 공략하여 딸이 명정언순 병원의 서호사로 되게했고, 제방뚝공사장에 단위기관직원들이 로동을 나갔을때 휴식시간에 노래를 서너컬레를 불러 사람들의 혁명열의를 북돋아 주었다는 사적등이 화선입당의 생동한 재료로 되였다. 물론 활학활용 사상회보재료도 여러편 있다. 서호사는 입당후 변강에 영원히 박는다던 뿌리를 뽑아가지고 인차 시가지로 가서 튼튼히 박았다. 그런데 병원원장과 바람을 써서 총호사장에까지 승진을 잘하다가 남편에게 물매를 맞고 얼굴까지 훼손되고 리혼당하는 참극까지 당하고 말았다. 시병원으로는 남편의 줄시(인맥)를 타고 들어갔는데 배은망덕을 한것이다.

허선생은 입당신청서를 신문지 넉장에 일필휘지 붓글씨를 써서 병원복도와 공사청사복도에 붙인것이 아주 경천동지의 화선입당재료로 되였다. 그도 입당을 하자 인차 “영원히 변강에…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다 바쳐…”를 유감스럽게도 조직의 "공작의 수요"때문에 실천못하고 현병원으로 전근을 했다. 미녀인 엄마가 문교위생 탈(부문)을 책임진 현혁명위원회부주임과 장기 간통관계여서 이 풍부한 천연록색자원이 효과를 냈든것이다. 허선생은 병원의 어느호사를 지분거리다가 그의 약혼자에게 귀통을 얻어맞은것이 그만 두 귀가 다 귀먹쟁이가 되고 말았다. 약혼전인데, 크게 랑패를 본것이다.  

마지막으로 오회계의 화선입당을 요약 소개를 하고저 한다. 위에서 안바지만 박주임은 오회계의 재생부모나 다름이 없다. 의리가 있는 오회계는 온갖 탐오재간을 다 발굴활용하여 박주임을 재력으로 받들었다. 그는 병원의 직원들의 복리를 위하여 생산대의 묵밭을 다루어 콩농사를 하고 초약재배도 한답시고 하며 직윈들을 끌고 다니며 선두적으로 로동을 하였다. 여기에 풀어넣은 돈에서 오회계는 괜찮게 “소비돈”을 썼다. 가을후 매인에게 콩을 10여근씩 나눠주고 남어지는 박주임이 상급령도에게 농촌토산물을 “맛 보시라!”하는 인사에 충당하였다. 그리고 병원건물, 직원주택등을 건축,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난방용 석탄등 화목을 구입하거나 기타의 비품을 구입하는 등등의 지출에서, 그는 각종 기회를 만들어  거기서 뜯어낸 금액으로 소금고를 만들고 박주임의 “활동”에 재정지원을 하였다. 물론, 본인도 굶지는 않은거고. 오회계는 근검절약, 자력갱생, 근검치원(治院) 등 표양을 받으며, 술울 먹고  나무수레에서 떨어져 왼팔 손목을 삐끗한것이 재료로 가공되여 역시 화선입당을 하였다.

오회계의 입당은 박주임 임기의 마지막 화선입당이였다. 그것은 병원이 현, 지구, 성에서까지 농촌애국위생, 합작의료, 계획생육, 위생방역 등 사업에서 선진단위로 되면서 훌륭한 령도간부로 이름이 난 박주임이 정책에 의하여(“6.26백의전사”들을 원단위에 복귀시킴.) 원단위로 돌아(부원장으로 승진) 갔기때문이다. 얼마후 오회계는 박원장의 도움으로 중의원, 시병원 등 단위 재무실을 전전하다가 후에는 정부기관 모 국에 가서 재무과장을 하였다. 개혁개방초기 오회계는 원견성이 있게 절대로 없다던 한국친척과 인차 서신거래를 맺고 부부가 출국방문까지 하였다. 홍콩을 경유하여 한국에 한번 갔다온후 오회계는 거액의 국가돈을 탐오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는 무슨기계설비 를 들여온다면서 딸라를 외국에 부친후 인차 출국을 하고말았다. 계획적인 도망을 친 것이다. 안해는 궁궐같은 집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스리슬쩍 따라갔는데 오회계가 이미 새살림을 시작한후라고 했다.(집과 전부의 재산을 몰수했다.)

원 단위로 간후 박주임은 간암으로 사망하고 조선생은 의학원때의 자기선생에게 재가를 했다. 그리고 약국의 무도짝과 “우정”을 새롭게하였다.

김선생과 리선생 부부는 시종일관 꾸준하게 참답게 사업을 잘하다가 “입당적극 분자”라는 소게신을 가지고 정책대로 원 단위에 돌아갔다. 그들은 하향하면 대대위생소 의사가 위생소에 그냥 있게하고 자기가 고된 농업로동에 참가하였다. 하여, 군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간 입당심사에 들긴했어도 신통히도 둘이 다 언변이 없었다. 하여 산사상인식을 잘 표달하지 못하여, 그리고 박주임의 안배에 의하여 다음번에, 다음번에 하고 미루다가 돌아가라는 정책을 맞은것이다.

“6.26백의전사”들과 화선입당을 한 “진짜배기 끌끌한, 신선한 혈액”들이 선후로 이 산골공사를 떠난후 청천벽력같이 “4인패”가 일망타진이 되고 말았다. 공사병원은 다시 한산해 지었다. 당지부도 없어지고 중의와 중약사 령감은 투슈를 하였다. 병원은 현병원에서 한사람이 대개 두달씩 내려와서 업무령도를 하였다. 정치후각이 예민한 강선생과 장호사는 된서리를 맞은 호박잎처럼 풀이 완전히 싹 죽어버렸다. 그들은 입당을 완전히 포기하고 타락하기 시작했다.

강선생은 어찌되였든 이 산골공사병원에서 제일 오래동안 사업한 사람이고 입당 적극분자경력도 자신의 말로는 14년이라고 하는데 하여간, 제일 긴 사람이였다. 그러나 작풍이 나쁘다는 락인때문에 령도는 말할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꿈에도 그를 당원과는 근본 련계를 시켜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받겠다는 단위도 없어서 시가지로의 전근도 부지하세월이 였다. 소문에는 그의 안해도 바람이 세다고 하였다. 강선생은 변소에 개명치 못한 락서를 하는가 하면 녀자들에게 추잡한 육담을 내놓고 꺼리낌이 없이 해대였다. 사람들은 강선생이 음새(성정신병)를 쓰는것 같다고 수근거리기까지 하였다. 개혁개방초기 강선생은 술을 먹은탓인지 왜서인지 자기숙사에서 죽었다. 병원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다보니 언제 죽었는지도 몰랐다 발견은 장호사가 하였다.

장호사도 당조직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입당벼슬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와서 쫓겨온 단서기와 결혼을 하였다. 장호사는 공사혁위회 왕주임, 강선생 등과의 은밀한 관계와 류산까지 한 꼭지를 “단서기”씨에게 단단히 잡혀 있었고 또 그의 꼭 다시 일어설거라는 호언장담에 잡혀있었던 것이다. 개혁개방이 된후 그는 병원의 약품을 외상으로 가지고 다니며 조선장사를 하였는데 해관검사원과 변강통행증발급을 책임진 사람 등과 바람을 썼다. 그리고 인공류산, 접산, 부과처치 등을 하면서 돈을 받아서는 몽땅 자기가 꼴깍했다. 그는 탐오한 돈을 물어넣고 “캐출”(공직에서 제명)을 당하고 말았다. 이래저래 화와 울분만 남은 “단서기”씨는 고혈압, 심장병, 신경증 등 병으로 앓다가 젊은나이에 죽었다 장호사는 한국의 어떤령감에게 국적까지 떼여가지고 재가를 갔다. 그런데, 독사의 독액을 채취하는 일을 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소위 “화선입당”을 한 그 몇사람들은 자신의 형상을 더렵혔을 뿐만아니라 사회적 영향도 몹시 나빴다. 원인은 사상상에서 입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가 입당동기가 우선 불순했다. "입당벼슬론"이 아니면 "입당우월론"이 입당하려고 무진애를 쓰는 동기였고 원동력이 였다. 그들은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듯 "인민을 위하여... 당의 혁명사업을 위하여... 나의일체를 공헌하며..."였으나 속심은 철저히 "나의 리익을 위하여!"였다. 근본상 사상상의 입당을 운운할 여지가 없었다.

나무는 조용히 서 있고자 하지만 바람이 자지않는것처럼 언제나 당내에 불순물이 혼입된다. 물론, 그것은 아주 적은량이지만 해독이 크기에 반드시 즉시즉시 제거해야 한다. 당원은 사상상에서 입당해야 한다. 이것은 당의생명을 담보하는 근본이며 당의전투력을 보증하는 근본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면에서도 풍부한 경험과 교훈을 갖고있다. 사상상에서 입당한 공산주의자들의 하나로 뭉친 힘이 있기에 중국공산당은  필승불패의 당이며 오늘까지 왔고 새중국이 있게 하였다.

당원은 시종 초심과 사명을 명기하고 당성으로 자률해야하며 조직은 시시각각 당의 순결을 눈동자처럼 지켜야 한다. 이것은 영원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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