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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치매증
2015년 02월 14일 13시 03분  조회:2283  추천:2  작성자: 회령
     수필
                                              고모의 치매증
                                                                                                 회령

   안해의 고모가 치매증에 걸린것이 70세부터였으니 이젠 7년철이 된다. 그이의 자식들 삼남매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니 유일최선의 대책으로 그이를 경로원에 보냈다. 
   
   고모가 경로원에 간후 나는 안해를 따라 달마다 한번씩 방문을 갔는데, 참으로 서글프길 짝이 없었다. 잡숫는것과 화장실출입은 대수 자립이였으나, 사람을 알아보긴 하지만 대화며 기타의 모든것은 엉망인, 퀭한안질, 온통 크고가는 주름살로 덮힌얼굴, 새하얀봉두란발, 호물어진입(아래위틀이는 어데서 잃어버렸는지…), 장작개비같은 팔, 다리, 몸무게는 5,60근이 되겠는지… 말그대로 백골페인이 다 된 참혹한 그 모습은 볼때마다 안타깝고 불상하고 그의 한생의 불행, 억울함과 그리고 동정, 원망, 격분… 슬프고 착잡한 심정을 한입으로 다 표달할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길고 깊은 한숨만 자꾸 나왔다. 사람의 신수팔자가 어쩌면 이럴수 있단말인가?!… 안해는 번마다 울고 돌아올때도 눈물이 글썽해 하였다. 한번 갔다오면 우리는 며칠씩 울적한 기분이였다. 나는 때론 차라리 방문을 가지말았으면, 안해가 혼자 갔다오겠다고도 했으나 그러나 가지 않을수도 없었다. 얼마를 더 앉겠는지… 생존해 계실때 자주 나들며 조금이라도 보살피는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있을때 잘 해”라는 노래말처럼. 뭐 잘한건 없지만. (자식들은 코앞에 있으면서도 어쩌다 한번씩 방문을 감. 우리는 외지다 보니 하루가 걸린다.)

   고모는 여섯번이나 경로원을 바꾸었는데, 이번에 또 옮겼다. 그것은 경로원의 관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사회가 로령화 되면서 더욱많이 생겨난 경로원은 이름도 좋거니와 내용도 좋아서 그야말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이고 아주 편리한 시설이다. 경로원은 민영도 있고 관영도 있다. 경영자의 봉사약속과 소개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훌륭한 로인복지, 천당이였다. 친인들보다 더 낫게, 더 책임적으로, 살뜰히 보살핀다고 경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력점을 찍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본 바에는 어느것이나 모두 다 입원비보다 봉사질량이 부실했다. 지어는 렬악하기까지 했다. 무력한 로인들을, 죽을날을 기다리며 아무런 의욕도 요구도 없이, 불평불만타발이없이 말그대로 양처럼 온순하기만 한 로인들을 경영자들은 아주 식은죽 먹기로 얼렁뚱땅 관리하는것 같았다. 특히 고모와 같은 어른들은 더욱 쉬운 관리대상인것 같았다. 고모는 밤낮 침대에 누워만 있으며 방에서 나가지 않는데, 세수도 목욕도 머리 손발톱깍기도 잊어버렸고 옷을 갈아입거나 침대이부자리를 정리하거나 빨래하는것도 잊어버렸고 더 먹겠다는 말도 무얼 해 달라는 말도 없어서 관리자는 차라리 품을 덜었다는듯, 상관하지 않는것 같았다. 바깥바람을 쐬우거나 해볓을 쬐우는것 같은 호사는 언녕 없는일이 되였다. “떼를 쓰며 싫다고 해서 어쩔수 없었다.”고 했는데, 우리와도 그러긴 했으나 좀 어루며 달래면 아이처럼 말을 들었다. 치매로인이여서 입원비는 갑절 높았으나 관리품은 갑절 “절약”하는것이 너무도 확연했다. 죽은 반공기(치아때문에 살뜰한 보살핌으로…) 채와 국물에는 기름방울이 한두개, 고기점은 혹 한두점.(로인들의 보건장수를 기원해서 소식위주라나…) 우리는 격분을 억제하며 거짓웃음을 발라가며 의견을 아니, 사정을 매번 했으나 가보면 여전했다. 원장에게 복무원에게 선물까지 했으나 그 효험이 한두번뿐이 였다. 하여, 고모를 자주 “이사”시킬수밖에 없었다. 고모에게는 경로원ㅡ 로인복지ㅡ 천당복이 너무도 없었다. 고모가 거쳐간 그 몇몇 경로원에 고상한 직업도덕은 바라지 않지만 “등가교환”정도의 직업도덕은 요구하고 싶다. 협잡, 사기, 부정부패가 아무리 살판을 치는 풍토라고 해도 로인들을 가지고 비도덕적악덕영업을 해서는 안될일이다. 천벌을 받을 짓이다.(관영의 어느원장은 감옥행을 했다. 경제건으로.) 자기도 곧 경로원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닌가…

   부기: 정신병원의 어떤권위적의사는(원장) 치매가 절대로 아니고 신경질환이니 꼭 장기적으로 치료를 하라고, 치료하면 꼭 낳는다고 각근히 당부를 했는데, 만여원을 썼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점점 더 심해만 갔다. 그래도 그는 약을 떨구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무슨 심사인가… 지금은 치료를 포기했다만.

   나는 고모의 치매원인을 여러면으로 분석해 보았다.

   큰단위인 시건축공사에서 38홍기수로 민족단결모범으로 문예선전대 춤, 노래연원으로 북과 장고도 잘 치고 마음이 비단결 같아서 모범며느리로 소문난 미인의 고모가 어째서 이렇게 제일 불행한 돌이킬수 없는 정신질환에 걸렸을가?

   돌이켜 보면 고모의 불행한 인생길은 결혼으로부터 시작되였다. 6남매에서 막내인 고모는 산골의 가난한 농사군가정에서 자랐으나 초중공부까지 하며 귀엽게 자랐다. 인물곱고 명랑하고 선량정직하고 음전한 고모는 원근에 좋은 색시감으로 소문이 나서 중매가 많았다. 고모는 24살때 모 철로공안국에서 과장으로 사업하는 말끔한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그때세월 시가지로, 그것도 월급쟁이 벼슬높은 간부에게 시집을 갔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자랑이고 기쁨이였다. 몇년후 고모의 호구는 시가지로 옮겨지고 잇따라 시건축공사대집체공인으로 되였다. 그 전에는 건축공사 자갈치기, 역전 석탄부리기 등 막일날품을 팔았다. 민식은 생산대에서 사다 먹었으나 뒷욕을 무던히 먹었다. 돈이면 다냐고. 힘든 농사일은 하지않고 민식은 먹는다고. 민식을 타오는 일이 살점을 뜯는것보다 더 괴롭고 난처한 일이였으나 처지가(농촌호구) 그렇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이렇게 몇년을 고모는 목에 걸리는 밥, 눈치밥 살이를 했다. 시집은 20여평의 헐망한 초가였지만 방은 두개, 청상과부로 아들형제를 키운 쌩쌩한 시어머니, 자기까지 네식솔이였다. 시동생은 간질병으로 직업이 없었다. 풍상고초를 많이 겪으며 살아온 시어머니는 말주변이 좋고 수단이 좋고 성미가 팩하고 까다로왔다. 남편은 술담배도 모르는 정직한 사람이긴 했으나 우스개도 하지않는 꼬장꼬장한 성미의 신경질적 사람이였다. 집안살림 대소사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모두 챙기는데, 40여원 월수입은 1전한푼도 에누리없이 몽땅 남편이 틀어쥐고 관리했다. (이런 상황은 남편이 사망하기전 두어달까지 30여년 주욱 계속되였다.) 그러니까 비누한장 크림한통도 시어머니가 사오고 채소 한포기 쌀과 석탄도 시어머니가 주관하는데 고모는 딸따리차를 끌고 짐군으로 따라다니면 되였다. 사사건건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끝이 없고 훈계(야단 책망)가 빠질날이 없었다. 지어는 세수물을 많이 쓴다고까지, “똥되놈새끼들은(시어머니는 한족들을 왜서인지 깔보며 얕잡아 말했다.) 수건에 물을 조금적셔 얼굴을 딲는데 너는 무슨물을 그리 많이 한바가지씩이나 쓰느냐! 쯧쯧쯧. 헤이구!” 혀를차며 반나절씩 책망하였다. 더욱 난처한건 본가집에서 형제들 혹은 조카들이며 친척들이 놀러오는 때다. 그들도 시가지살림 형편을 대략 알기에 자주 오는것도 아니건만(1년에 혹 한두번) 일단 한번만 왔다가면 온갖 지청구를 고모는 적어서 열흘은 줄곧 들어야 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았는지 두고두고 새김질을 하였다. 남편은 시종 어머니와 박자가 맞았다. 고모의 시집살이는 그야말로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소경3년으로 남편이 사망할때까지 계속되였다. 고모가 해박하지 못하거나 어데가 좀 부족한 사람이였다면 혹 그럴수도 있겠다고 리해를 하겠지만, 이건 멀쩡한 생사람을 닥달이 아닌가. 그래도 고모는 항시 밝은얼굴 일언반구 대답질을 하지 않았다. 그래선가? 시어머니는 사돈집 식구들 앞에서는 그들이 아이든 어른들이든 며느리자랑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여댔다. 주변사람들과도 그랬다는데, 그래서 마음이 비단결 같고 모범며느리라는 칭찬도 생겼는지… 하여튼, 단위에서도 그렇고 곁에서도 그렇고 고모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하나 밉다는 사람이 없었다.

   시동생이 간질병발작을 할때면(보통 밤중, 새벽) 집은 북새통이 된다. 의사왕진을 불러오고 더렵혀진 옷이며 이부자리를 손질하는 등 일들은 거지반 고모의 소임이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얻어오는 처방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제일 힘든것은 죽은사람의 뼈(두개골), 태반, 죽은갓난애를 얻어다 구워서 가루내여 환약을 만드는 일이였다. 이런일은 시어머니와 남편도 끔찍하고 께름하고 구역질이나서인지 전부 고모를 보고 하라고 엄명을 했다. 고모는 울며 겨자먹기로 봉행 했는데, 약효가 있었는지 정성이 닿았는지 시동생은 발작이 뜨음해져서 장가를 가고 몇달후 세간을 나기까지 했다.(훗날 결국 간질병으로 사망.) 결혼해서 10년안에 고모는 맏이로 딸, 아래로 아들형제를 보았다. 그간 시동생네도 남매를 보아 네식구가 되였지만 집은 고모네보다 더욱 가난했다.(동서는 농촌호구, 무직업. 장마당난전을 했는데 성깔이 거칠고 아다모끼였다. 그는 쩍하면 시어머니와 시형에게 불평이였다.) 하여, 고모네가 도우지 않을수 없었고 결국은 두집이 모두 최하층의 극빈생활을 하게 되였다. 혹 어쩌다 팔이 빠지게 맷돌을 돌리고 종일 돌아쳐서 두부를 앗으면(혹 색다른 음식을 해도.) 시어머니는 절반을 갈라 시동생네 집으로 가져 갔다. 일년치고 서너번이 될가? 색다른 음식을 만든날은 고모가 마른군침만 꼴깍꼴깍 삼키는 날아였다.(시어머니도 물론 배를 곯았다.)

   모진세월은 그래도 흘러 3년대식품시대도 용케 넘기고 아이들은 줄렁 줄렁 소학교에 들어갔다. 3년재해마지막해 시동생이 사망하자 풍을 맞아 자리에 누운 시어머니는 3년을 앓고 사망했다. 말은 바른대로, 고모의 부담이 덜어진것만은 사실이지만 불행은 더욱 기막히게 덮쳐왔다.

   문화대혁명이 터져서 얼마후 남편은 조선특무로 지목되였는데 그것도 골간책이라는 것이였다. 남편이 잡혀가서 6년여 소식일점을 전혀 모르며 고모는 생속을 썩였다. 그때로부터 고모의 머리는 백발이 되였다. 십여번 집은 철저한 수색을 당하고(지어는 마분지와 신문지로 도배를 한 천정과 온돌바닥을 일곱번이나 몽땅 뜯기웠다.) 고모와 아이들은 몇십번을 심문당했는지… 기억할수 없다. 후에 해방을 받았지만 남편은 왼쪽귀가 찢어지고 비틀려서 아주 흉칙한 병신으로 되고 두 귀는 멀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허리병, 심장병, 위병은 아주 고질이 되여 페인이 되고 말았는데, 앓으면서 회갑상을 대충 받은후 인차 사망하였다.(61세)

   고모의 지겨운 인생길은 갈수록 심산이랄가? 그이는 또 자식들 때문에 근심걱정을 놓을날이 없었다. 아들 둘은 그래도 고중까지는 공부를 했는데, 큰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쪼궁을 받아 철로에 공인으로 취직을 하고 딸은 초중을 마치자 집체호로 나갔는데 후에 역시 쪼궁을 받아 민족침직창에 취직했다. 막내아들은 초중때부터 부모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그애는 애물단지들의 두목격이 되여가지고 도둑질, 싸움질, 결석을 밥먹듯 하면서 선생들과 파출소경찰들을 신경질이 나게 하였다. 나쁜짓거리들에 자기는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조사해 보면 조직자 지휘자는 막내였다. 하여, 성미가 팩한 아버지는 빗자루찜질을 그칠날이 없었는데 그럴때면 아들은 도망을 쳐서 2,3일씩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집은 막내때문에 편안할 날이 없었다. 제일 속을 썩이는 것은 고모였다. 정작 사달을 치는 아이보다 피눈물을 더 짠것은 고모였다. 천하의 가련한 부모의 마음ㅡ 어머니의 모성애는 어쩔수 없이 애모뿐것이 였다. 애옥살이 따로없는 세월은 흘러 아버지가 앞당겨 퇴직하자 막내는 아버지의 제발로 철로에 취직했다. 이쯤하면 한숨나오게 된것 같았으나 자식들이 커가는 만큼 큰일도 자주 생겼다. 큰딸은 남편이 무슨장사를 한다면서 다른녀자를 끼고 돌아다니며 서푼도 안되는 살림을 다 털어먹고 게다가 가정폭력까지 매일 휘둘러 끝내는 리혼을 하고야 말았다. 딸은 할수없이 서너살 되는 딸애를 데리고 두칸들이 본가로 들어오고 말았다. 단위가 파산되여 그는 이미 무직업이 되였다. 큰아들은 처가에 얹혀 살았는데 안해가 시집과 틀려서 명절이며 생일이며 일체 거래를 하지 않았다. 지어는 코앞에 있으면서도 시아버지제사에도 오지않아 사람들이 가서 데려왔다. 막내며느리에게 결혼시 목걸이를 사준것과 셋집월세를 반년분 대 준것이 탈이였다. 그리고 딸이 들어와 사는것도 심술이 났다. 그는 무직업이여서 놀면서도 자기아이도 보라고 맡기는가 하면 사람들과 시집에 대하여 온갖 악담과 저주를 하여 듣는 사람들은 정신이 나쁜것 같다고도 하였다. 어리뭉그레한 큰아들은 안해말만 따랐다. 막내며느리는 마장도박에 붙어서 빚을 걸머지고 아들은 하해를 한답시고 일본으로 간것이 5년이나 소식한번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에미속이 어떻겠는가?!... 고모는 막내가 살아오라고 불공을 드리고 점쟁이를 찿고 한숨과 눈물이 없는날이 없었다.

   작년여름 어느날, 나는 막내와 술잔을 나눈적이 있었는데 그때 막내는 눈물을 찍으며 이런말을 하였다.(그들부부는 보따리장사를 하는모양. 소문에는 안해가 마장도박빚으로 본가집을 팔아먹기까지 했다고 함.)
   “어머니가 저렇게 된것은 다 내탓입니다.”
   “네탓이라고만 할수없지…” 나는 얼버무리며 괴로워하는 막내를 위안하였다.
   지금에 와서 후회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나 고맙게 들리였다. 딸과 큰아들 입에서는 지금까지 그런말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큰며느리는 사망. 며느리가 죽었을때 고모는 “오래 살지도 못하면서…” 하고 사설을 하면서 매우 애통해 하셨다. 딸은 재혼후 제노릇만 하느라고…)

   우리가 방문을 가면 고모는 꼭 이런말을 하였다. “다 쓸데없소!” 하고는 돌아누워 더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두고하는 말인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를 두고 하는 말인지… 정신이 떠나버린 고모에게서 이 한말씀만은 자신의 한생을 총결하고 하는 올똘한 말씀인지… 한생을 살고 얻은 철학인지… 때론 “다 큰수술을 했는데… 어쩌우…”하기도했는데, 지금도 고모는 자식들을, 친인들을 잊지못하고 근심걱정을 하는걸가…

   나의 생각에는 고모가 치매증에 걸린것은 정신적타격과 심리적부담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인정된다. 고모의 정신력, 심리감당력이 취약한것이 원인이겠지만 그러나 객관요소도 부정할수 없는것 같다. 모주석의 철학론단처럼 사물의 변화는 내인이 원인이고 외인은 조건인데… 고모의 경우도 그런것 같다.

   부기: 그에게는 자신의 퇴직금이 있기에 자식들에게 별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고모는 끝까지 자식들을 돕고 배려한다고 말할수 있을것 같다. 사회에도 미안한 일을 한적이 없다. 그러나 자식들은, 객관은 어떠했든가?!… 불행한 인생… 허무한 인생… 고모와 같은 인생이 적은지 많은지…

   오호 애재.(아아 슬프구나.)

                                                                                                                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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