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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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의 거목 정판룡교수님을 기리며
2011년 09월 26일 11시 05분  조회:4322  추천:24  작성자: 강순화

                                 
      금년 10월 7일은 우리 조선민족의 걸출한 교육가이시며 문학가이시고 사회활동가이신 연변대학교 전임 부총장 정판룡교수님의 서거 10주기 기념일입니다. 민족문화의 거목이셨던 선생님은 저명한 학자로서 수많은 젊은 후학들을 양성하셨으며 우리민족의 진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혼신의 정열과 지혜를 몰부은 훌륭한 문화지성인이시고 우리민족의 거두였습니다. 한 위인으로서는 너무나도 짧은 70세의 인생 로정에서 선생님은 우리민족의 교육과 문화발전을 위하여 그야말로 많고 많은 업적을 쌓아 오셨습니다. 그 숭고한 정신, 그 드넓은 흉금, 그 자애로운 얼굴, 그 우렁진 목소리는 수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 가슴속에 아로 새겨져 무시로 우리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운명의 안배였을가요? 나는 행운스럽게도 12년간이나 이렇게 저명하신 민족의 대가 정판룡교수님 슬하에서 함께 사업할 수 있는 인복을 지니였습니다.

    1989년말, 연변대학 한어학부에서 사업하던 내가 선생님의 부름으로 성립주비중인 조선한국연구중심에 전근했을 때 선생님은 우리대학의 부총장이면서 또 우리 연구중심의 주임을 겸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벌써 선견지명을 가지시고 연변대학의 민족적 학과적 특성을 살려 중국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에 조선한국연구중심을 창립하심으로서 연변대학이 중국내에서의 조선한국학의 위상을 정립함에 있어서 획기적인 공헌을 이룩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러하였듯이 처음 교수님을 대할 땐 무척 존경하면서도 또 접촉하기 어려운 분으로 여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의 그 후더운 성격과 너그러운 인품은 언제나 친 부모와 같은 뜨거운 정을 느끼게 하였으며 령도이자 스승으로서의 아낌없는 지도와 친절한 가르침은 나로 하여금 항상 신심 가득히 사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학부사무실에서 교무공작을 하다가 과학연구부문으로 옮겨오니 처음엔 어떻게 학술연구를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나에게 주저없이 임무를 맡기고 과감히 실천해 보도록 고무격려해 주셨습니다.

    기억에도 새로운 1990년 10월 한국의 한 사회학회에서 우리 연구중심과 함께《중국조선족사회연구》학술토론회를 가졌는데 10여가지 연구항목중《녀성의 사회적 지위》라는 종목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이 문제는 강동무가 맡아해야 하겠소. 녀성문제가 아니요?》라고 하시며 대담히 연구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고무와 격려에 힘을 얻은 나는 열심히 사회조사를 하고 자료를 찾고 정력을 몰부어 연구하고 집필한 끝에 학술회에서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은 한편의 훌륭한 론문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첫 론문이 되어 그후 수년간 많은 연구과제를 완성해 나갈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실천 과정에서 학문의 법칙과 규범을 모색하고 연구방법을 찾아내여 몇년간 30여편의 중국조선족연구와 녀성연구 론문들을 국내외 학술간물에 발표함으로서 1997년 1월에는 파격적으로 부연구원이라는 고급직함까지 평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참다운 가르침과 지도가 오늘의 나를 이끌어주시고 키워주셨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으며 조금만 밀어 주면 얼마든지 커갈수 있는 그 젊은 시절에 정판룡교수님 같은 참 스승을 만난 평생의 행운으로 하여 항상 자랑을 느끼군 합니다.

    선생님은 민족의 전당인 연변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뛰여난 행정력을 과시함과 동시에《연변대학의 특색은 조선한국학연구》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이 유리한 우세를 충분히 발휘하고 발전 제고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친히 연구중심을 세우셨을 뿐 아니라 교내의 각 사회학과 연구기구들을 단합하여 20여차의 국제학술회와 국내외 학술활동들을 활발히 조직 지도함으로써 수많은 학술성과로 연변대학을 정상에로 끌어 올렸습니다.

    1999년 5월, 청천벽력으로 불치병 진단을 받으신 후에도 선생님은 의연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완강한 의력과 투지로 병마와 싸우셨고 한 두번도 견디여 내기 어렵다는 항암화료를 열두차례나 기적같이 견디여 내셨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죽지 못하는가 보오》라고 하시며 조금만 정신이 들면 필을 들어 글을 쓰시군 하셨습니다. 아마 생명에 대한 굳은 신념, 불타는 삶의 정열이 선생님을 그렇게도 용히 버티게 하였는가 싶습니다.

    2년 반이라는 기나긴 투병생활, 전후 무려 열네차례나 병원에 입원하시면서도 선생님은 항상 후학들에게 조선족사회 문제들을 피력하셨고 또《내가 알고 있는 일들은 내가 죽으면 다 파뭍혀 버리게 되니 살아 있을때 내가 다 써 놓아야하오.》라고 하시면서 우리문단의 우수한 작가, 평론가들의 일화 30여편을 매일 만여자씩 쓰시여《장백산》잡지에 련재해 주시면서 인생철리가 빛발치는 감격적인 글들로 독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어데 그뿐입니까? 중국 조선족의 문화교육사업을 자신의 평생사명으로 간주하시고 투병중에도 그 힘든 몸으로 사회의 각종 지성인활동에 참가하시여 보귀한 지도와 연설을 하셨고 또 친히 한국 우리은행 비지니스클럽의 자금을 쟁취하여《중국조선족아동장학회》를 설립하시여 금년에 이르기까지 이미 9년간이나 이 기금으로 만여명의 실학아동을 구하고 극빈학생들을 도와 공부할 수 있게끔 이끌어 주셨습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일주일 전에도 선생님은 우리대학의 곤난한 학생들을 념려하시면서 병상에서 6명의 학생들에게《정판룡교육기금장학금》을 친히 내주셨습니다.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려운 생의 마지막 시각에도 선생님의 그 뜨거운 마음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힘들게 장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굳게 잡아 주시던 그 모습은 차마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의 화면이였습니다.

    더욱더 사람들을 경탄케 하는것은 선생님의 유언이였습니다. 평시 장학금의 운영을 걱정하시더니 떠나시면서 안해 왕유선생님께 치료하고 남은 돈을 몽땅 장학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왕유선생님은 학교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중히 글을 올려 정선생님의 유지대로 집에 남은 11만원의 저금통장을 몽땅《정판룡교육기금장학회》에 바쳤습니다. 참으로 후세에 길이 빛날 거동이요 천사의 마음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또 당신이 수십년간 수장하시고 아껴 보시던 도서 2000여권을 몽땅 연구중심에 기중하시여 학자들의 연구사업에 쓰이도록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서가에서 한권 한권의 책들을 뽑아 등기하고 정리하면서 우리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을 그렸습니다.

    아, 가물가물 꺼져 가면서도 유난히 밝게만 빛나던 한대의 굴직한 초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몽땅 불태우던 그 맑은 령혼, 추호의 사심도 없이 민족교육사업에 혼신을 바쳐온 거룩한 그 모습 그 덕성에 만민은 우러러 보며 높은 산도 머리숙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너무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일찍 훌륭한 스승님을 잃었습니다. 선생님이 키워 주고 이끌어 주신 수많은 제자들은 영원히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으며 오늘도 선생님을 한없이 그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70주년 생일날에 제자들에게《사람은 살아서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여야 하오.》라고 진지하게 부탁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우리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너무도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도 일찍 떠나가시니 그 슬픔에 하늘도 울부짖었고 땅도 통곡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서거 10주기를 추모하면서 우리는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꼭 훌륭히 사업해 나갈것이며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모든 정력과 지혜를 다 바칠것입니다.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하늘나라에서라도 항상 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에《정판룡 문학편》출간기념모임에서 발표했던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 한석윤 선생님의 시를 재삼 읊어 보면서 정판룡교수님에 대한 추모의 글을 마칩니다.
                                                                   
                                                                                                                2011. 9. 26

 


                       스승님께 올리는 시

                                                          한 석 윤


                   멀리서 바라보면 산이였습니다
                   하얀 구름 서리서리 허리에 감고
                   하늘을 떠받치고 선
                   아아한 산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서보면 내물이였습니다
                   키작은 풀들과 눈맞춤하며
                   도란도란 정다운 이야기 끝이 없는
                   살가운 내물이였습니다.

                   민족문화산맥의 제일봉에 오르시여
                   세기의 아침해 남먼저 마중하며
                   민족의 앞날에 채운을 뿌려주시면서도
                   만인의 입에 도인으로 칭송받으면서도
                   언제나 언제나
                   맨발바람으로 고학의 길 떠나시던
                   그날 그 농부의 아들로 살아오신 스승님

                   스승님의 그 거룩한 모습에서 저희는
                   잘 익은 이삭일수록 머리 숙이고
                   물이 찬 병일수록 소리가 작다는
                   참인간의 정도를 깨칠 수 있었고

                   스승님의 그 거룩한 행실에서 저희는
                   싱싱하게 피여야 할 우리 민족의 길에
                   내가 설 자리, 내가 해야 할 일
                   불씨로 받아 가슴에 피울 수 있었으니

                   아, 정녕 산이면서도, 우람한 산이면서도
                   한뉘 민초들과 이웃하여 내물처럼 살으신 스승님
                   스승님은 언제나
                   민족의 산으로 우뚝 솟아있을 것입니다
                   민족의 좌표로 영원할 것입니다.
                   
                                                                              2001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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