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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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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00)
2018년 05월 11일 11시 37분  조회:949  추천:1  작성자: 김장혁



                          9. 사라진 여 교원

       소낙비가 내린 후 동녘 하늘에는 칠색무지개가 곱게 걸렸다. 반짝 뜬 햇빛은 이슬을 꿰어 끊임없이 황홀한 무지개를 발산했다. 진짜 신화나 동화 속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 같았다.
      초가집 추녀 끝에는 아직도 빗물이 대롱대롱 매달렸다가도 땅바닥에 고인 빗물에 촐랑촐랑 떨어져 수많은 물방울로 부서져 튕겼다. 흥수네 집 추녀와 구새 사이에 거미가 슬금슬금 기어 나와 한창 다시 먹이를 낚으려고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애들이 학교를 다 간 뒤라 춘실이 한창 댕댕거렸다.
      “더러운 나그네 새끼, 되놈 가시나 새끼와 지랄해 보니 어떻던? 어쩌지 못하면서 달려들기는 잘 달려든다. 맥이 뻗히면 변소나 칠 게지. 똥이 엉덩이를 찌를 지경이다.”
흥수는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바닥에 내려가 신을 신고 밖으로 훌 나가버렸다.
등 뒤에서는 춘실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젊은 각시들과 지랄해보면 시래기처럼 된 게 살아날 거 같아?”
(그래, 어쩐지 미련한테 들이대니 그게, 헤헤헤.)
흥수는 히쭉 웃고 나서 대대 사무실로 나갔다.
상순은 대대에 별로 다른 일이 없자 일 밭으로 나갔다. 흥수는 대대 간부답게 사무실을 지킬 줄을 모르고 일 밖에 모르는 상순을 코웃음 치면서 신문을 뒤적였다.
그런데 좀 앉아 있으니 그것이 또 꿈틀거리면서 간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허 참, 내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흥수도 이상할 정도였다.
(혹시 미련과 그걸 했더니 양물이 치료된 건가?)
흥수는 조개턱을 설레설레 저으면서 미련한테 다시 갈까 하다가 쌍까풀눈을 뚝 부릅뜬 충국이 떠올라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것이 자꾸 불룩하게 치밀어 올라 어쩌는 수 없었다.
흥수는 충국의 부릅뜬 쌍까풀눈을 말상을 흔들어 쫓아 보냈다. 충국의 성난 사자 얼굴이 사라지자 불현듯 오옥선의 보름달 같은 얼굴이 눈앞에 삼삼거렸다.
“옳다, 네 놈들이 내 비준도 없이 먼저 임신부터 해. 온 동네에 소문을 자자하게 놓으면서. 충국 놈은 담이 큰 놈이야. 목숨을 내걸고 덤벼든단 말이지. 더러운 개구리 새끼 감히 학의 고기를 탐내? 뭐, 결혼 소개신을 떼 달라고? 임신 했어? 말도 안돼.”
흥수는 옥선을 찾아가 임신했는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옳다. 도대체 어떤 정황인가?”
그는 사무 상 위의 신문을 활 집어 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정 선생을 데리고 갈까?”
주춤 멈춰 서서 궁리하던 그는 생각을 고쳤다.
“아니야. 혼자 가야지. 꽃도 따고 임도 보고 좀 좋아서.”
흥수가 대대 사무실을 나가려고 할 때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생각 밖에도 옥선이 토성 안에 들어서지 않겠는가!
흥수는 대번에 반색했다.
"에헴, 에헴"
     흥수는 헛기침을 하며 인차 치보 주임의  위엄을 차리면서 못 본 체 했다. 아래 칸 위생소에 정 선생도 있고 그 위집에는 새금이 일 밭으로 나가려고 서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생소로 들어가려니 한 옥선이가 뜻 밖에도 대대 사무실에 들어섰다.
“치보 주임, 저 충국을 가만 놔둡니까?”
“어, 그러잖아도 널 찾아가려고 했어. 너희들 언감 이 치보주임 비준도 없이 임신부터 했어? 어디 오늘부터 투쟁받을 준비나 해.”
허나 옥선은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죄 없는 사람한테 또 누명을 씌울 예산입니까?”
“그래 치보 주임 비준도 없이 임신한 게 죄가 아니란 말이냐?”
흥수는 외까풀 눈을 부라리면서 을러멨다.
“너희들, 무법천지로구나.”
옥선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무슨 말을?”
전라도 남도치 돼서 그런가?
흥수는 성질도 꽤나 팩했다.
허나 그는 야욕을 내리누르며 신문을 들어 보는 척 하며 옥선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참 기다려도 옥선이 달라붙지 않자 흥수는 신문을 뒤척이다가 사무 상 위에 놓고 창문 밖을 흘금흘금 곁눈질했다. 새금은 간 것 같고 옆 칸에 정 선생만 있는 것 같았다.
“전 정말 억울합니다. 근본 임신한 적이 없습니다.”
옥선이 눈물이 글썽해 사무상 옆에까지 다가와 하소연했다.
“처녀가 애를 낳은 소문은 감추지 못해. 온 동네 소문이 자자한데도 승인하지 않겠어?”
흥수는 목소리를 낮추었으나 분명 살기가 선뜩 했다.
“건 지주 아들 충국이 나와 억지로 결혼하려는 목적으로 없는 소문을 낸 겁니다.”
“불을 때지 않은 굴뚝에 연기가 날까?”
“정 믿어지지 않으면 옆 칸의 정의사 보고 검사해 보라구 하십시오.”
“너희들이 미리 짜고 들었는지 누가 알아? 우파 의사 검사해서야 어찌 믿어?”
옥선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정색해서 말했다.
“그럼 치보 주임이 직접 검사해 보십시오.”
뜻밖의 말에 이흥수는 입이 함박만 해졌다. 바로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흥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토성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흥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속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내 의사 아닌데 어떻게 검사해?” 
옥선은 누명을 벗으려는 일념 밖에 없었다.
“눈이 저울이라고 내 배를 보면 모르겠습니까? 홀쪽한 배에 무슨 애가 있다고 그럽니까?”
흥수는 능글스럽게  옥선에게 다가섰다.
"치보 주임의 투철한 계급투쟁 안광은 배속에 애가 있는지 없는지까지 다 꿰뚫어 볼 수 있어.” 
그는 옥선의 배를 보려다 말고 창가에 다가가 문발을 치고 문마저 닫아걸었다.
“문은 왜 걸어요?”
“철면피한 연, 누가 들어오면 부끄럽지 않아?”
그제야 옥선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적삼을 올려 걷고 배를 드러내 놓았다.
흥수는 제법 의사 흉내를 냈다.
“아니야, 여기 사무상 위에 누워. 그저 보기만 해서 되겠느냐?”
“그래 이 배를 보면 모르겠습니까? 근본 임신이 아닙니다.”
“아니야, 누굴 속이려고? 손으로 만져 봐야 안다. 애가 만지우지 않으면 때를 벗을 수도 있어.”
옥선은 하는 수 없이 사무상 우에 누우면서 한숨을 호 내쉬며 다리를 맥없이 죽 폈다. 흥수는 양을 덮치려는 늑대처럼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정욕이 끓어 번지는 눈길로 옥선의 하얀 배를 넋 잃고 바라보더니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어디 보자. 으흠.”
흥수는 마른 삭정이 같은 메마른 손으로 옥선의 배를 꾹꾹 눌러 보기도 하고 아랫배를 슬슬 매만져보았다.
옥선은 징그러워 상을 찡그리면서도 배를 내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흥수의 손이 어지럽게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녀는 참을 수 없어 손으로 아랫배 쪽을 막으며 다리를 가두었다.
“애기 정말 없습니다. 치보 주임이 증명 서 줄 수 있습니까?”
“으흠, 임신하지 않았다는 거 증명을 서주려면 쉬운가?”
“배를 만져보고 애기 없으면 증명을 서면 되는 거죠.”
흥수는 외까풀 눈을 가슴츠레 뜨고 옥선을 내려다보면서 누런 이발을 드러냈다.
“허허허. 유일한 방법은 네가 아직도 처녀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알아야 증명을 설수 있다.”
“난 아직도 처녀예요. 하늘땅이 증명을 설 수 있어요.”
“누가 아느냐? 우파인 네가 이제 치보 주임 비준도 없이 애를 설었을 경우 넌 나라 산아정책과 법을 어긴 범죄자로 돼 감옥살이를 해야 해.”
“그럼 어떻게 처녀인지 아닌지 검사한단 말입니까?”
“건 간단하다. 네가 하기에 달렸다.”
순간 흥수는 온 몸에 야욕의 피가 끓어 번지면서 세차게 흐르는 감을 느꼈다.
“입을 꽉 다물고 치보주임의 검사를 받아.”
흥수가 거센 숨을 몰아쉬면서 배를 슬슬 만지다가 능구렁이처럼 손을 아래 하신에 쑥 걷어 넣었다. 뜻밖의 침입에 옥선은 와닥닥 일어나면서 적삼을 내리워 아랫배를 가리었다.
“뭐 하는 거예요? 내가 어디 세 살 짜리 앤가요?”
흥수는 머리가 뗑 해나 신경질을 썼다.
“좋다. 네 년은 죄가 드러날까 봐 겁났구나. 그만두려면 그만둬!”
옥선은 사무상에서 내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검사할 게면 검사나 온전히 할 게지 손은 왜 아래로 들어갑니까?”
“뭐라고? 그래 아래로 들어가 보지 않고 어떻게 검사해?”
옥선은 머리를 휙 휘저어 치렁치렁 땋아 늘인 쌍태 머리를 뒤로 홱 젖히었다. 그녀는 쌍까풀눈을 딱 부릅뜨고 벌겋게 달아오른 흥수를 쏘아보더니 침을 땅바닥에 탁 뱉었다.
“더러운 놈!”
흥수는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듯이 멍해 서서 사무실 문고리를 철꺽 벗기고 나가는 옥선의 등 뒤에 대고 두덜거리었다.
“어디 두고 보자! 더러운 년놈들! 날마다 투쟁하고 비판하고 똥 짐을 메게 하지 않는가. 두고 봐!”
그러나 옥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저녁에 흥수는 옥선과 충국을 투쟁하자고 대대 사무실 마당에 투쟁대회를 열었다.
토성 안 마당에 전등불까지 환히 밝혔다. 사원들이 곤해 하품을 하면서 모여들었다.
“오늘은 누구를 투쟁하오?”
사원들은 곤했지만 뒤숭숭해 물었다.
“충국과 옥선이 임신했다고 투쟁한다오.”
“어쩜 치보주임 비준도 없이 임신부터 하오?”
“볼만 하겠소. 국민당 노총각과 우파 노처녀 결혼 전에 애부터 설었으니까.”
“허허허.”
“호호호.”
사원들이 거의 모여들었다. 하지만 충국만 왔을 뿐 옥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흥수는 황종연이랑 황승연이랑 시켜서 옥선을 잡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개덕으로 달려갔다가 반시간도 안 돼 달려와 긴급정황을 알렸다.
“여우파 오옥선이 집에 없습디다.”
“뭐라고?”
모두 놀랐다.
충국은 “헤헤.” 웃으면서 흥수를 조롱하듯이 쳐다보더니 침을 퉥 뱉었다.
흥수가 충국을 쏘아보았다.
“네놈이 알지? 옥선이 어디에 갔어?”
“내 알 턱이 뭐야? 달아나면 어디로 갔겠니? 너희들 조선 고향에 갔겠지 뭐.”
"뭐? 조선에 도망쳐? 매국역적! 우리 민족을 다 팔아먹는 개쌍년이구나!'
흥수가 성나 고래고래 고함칠수록 충국은 꽤 고소해 "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안 되겠구나. 네 놈이라도 투쟁해야겠다.”
흥수는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차듯이 옥선을 놓치고 대신 충국을 꼬챙이에 꿰 쳐들었다.
“말해! 네 놈들이 언제부터 관계를 발생했어?! 몇 번 했어?! 언제 임신했어?!”
흥수는 연발탄을 발사하듯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장충국은 “허허허." 하고 웃으면서 고함쳤다.
"다 내 잘못했소. 난 오옥선과 근본 성관계를 발생한 적이 없었소.”
“뭐라고? 그런데 어째 온 마을로 다니면서 그런 소문부터 퍼뜨렸는가?”
장충국은 노실하게 말했다.
“오옥선과 결혼하자고 그랬소. 임신했다고 소문내면 나와 결혼 하겠는가 해서 그랬소.”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렸다.
“괜히 옥선 선생만 당하지 않았소?”
“글쎄 말이오.”
흥수는 입을 딱 벌렸다.
“나쁜 놈!”
흥수는 충국의 따귀를 찰싹 갈겼다.
상순은 앞에 나가 충국을 쏘아보면서 욕했다.
“결혼하겠으면 정당하게 결혼해야지. 오선생을 무함해 못 살게 굴건 뭐야?!”
그날 회의는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그 후 옥선은 개학이 됐는데도 학교에도 집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충국의 말대로 옥선은 조선 고향으로 가버렸을까?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설마 의지 가지 없는 늙은 부모를 버리고 조선 고향으로 달아났을까?)
상순과 병완은 모두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0. 청춘의 고백

     신록이 짙어가는 7월 중순에 어머니가 농학원까지 허둥지둥 찾아가 순자를 찾았다.
“엄마, 왜 일하지 않고 왔소?”
순자는 적이 놀라 엄마의 두 손을 잡고 물었다.
숙사의 다른 여동창생들도 놀란 표정을 짓고 순자 어머니에게 얼굴을 돌렸다.
명옥은 순자를 데리고 숙사에서 나가 세면실 쪽으로 가서 말했다.
“홍자가 글쎄 맹장이 터져 하마터면 죽을 번했다.”
“양? 그래 홍자는 어디 있소?”
순자는 단통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다.
“진수해병원에 있다. 문화대혁명인지 뭔지 양패 의사들이 패싸움을 하다나니 수술을 늦게 해 일을 치고 말았다.”
“예? 빨리 가봅시다.”
순자는 숙사에 들어가지도 않고 어머니를 따라 진수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명옥은 버스에 앉아 진수해로 가는 길에 순자의 손을 잡고 “그새 우린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막내딸도 잃을 번했다.”라고 했다.
“예? 무슨 일이 있었습둥?”
순자는 놀라 눈이 뒤집혀질 지경이었다.
명옥은 며칠 전에 있은 일을 말했다.
칼산과 천지꽃산 쪽에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덕돌은 토끼풀을 캐다가 덮쳐오는 먹장구름을 보고 성욱과 동림에게 소리쳤다.
“야, 집으로 가자! 소낙비 내리겠다.”
“응, 가자!”
그들은 토끼풀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마을 쪽으로 내리달렸다.
그들이 태평강을 건너 마을에 들어서기 바쁘게 천지꽃산 쪽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불 구렁이 혀를 날름거려 산중턱을 내리 핥더니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낙비가 대야로 퍼붓는 듯이 억수로 쏟아졌다. 추녀 끝에서 실폭포들이 쏟아져 내리었다.
덕돌이 토끼 굴 쇠살창 안에 금방 캐온 능쟁이랑 쑤셔 넣어 토기를 먹였다. 토끼는 물기를 머금은 생신한 능쟁이를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다.
구들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상순은 창 밖을 내다보다가 덕돌을 돌아보면서 “비가 멎으면 소를 풀어 오너라. 코 깜장이 비를 폭 맞았겠다.”라고 했다.
“예.”
이윽고 억수로 쏟아지던 비가 언제 왔느냐 시피 뚝 멎었다. 덕돌이 혼자 소를 풀러 가려고 할 때다.
성숙이 따라 나섰다.
“나도 함께 가자!”
“누나도 가겠니?”
“응.”
“혼자라도 되는데 무슨 오겠니?”
“가서 버섯을 따오겠다. 비 온 뒤에는 버드나무 밑에 새하얀 버섯이 뾰족뾰족 돋아나.”
“그럼 같이 가자.”
그리하여 성숙은 낫을 들고 덕돌과 함께 소를 풀러 태평강 가로 갔다.
덕돌은 소를 맨 긴 바를 풀어 소를 끌고 집으로 오려고 했다. 허나 소는 한 곳에 매여 있으면서 풀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지 대가리를 흔들면서 좀처럼 떠나오려고 하지 않고 비에 흠뻑 젖은 파란 풀을 자꾸 뜯어먹었다.
이때 갑자기 논물을 막아버리던 집안 집 이상형님 만석이 이쪽에 소리쳤다.
“덕돌아, 큰물이 터졌다. 빨리 태평강을 건너오라!”
덕돌이 위쪽을 바라보니 싯누런 흙물이 보 둑을 마구 넘어 덮쳐 오고 있었다.
“이라! 이라!”
덕돌이 아무리 안간힘을 다해 앞에서 긴 고삐를 쥐어 당겨도 깜장이는 대가리를 흔들면서 떠나려고 하지 않고 자꾸 풀만 뜯어 먹었다. 정말 코등이 새까만 암소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명옥이 말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황급해난 덕돌은 고삐를 어깨에 둘러메고 앞에서 끌었다. 그제야 깜장이는 마지못해 한 발자국씩 움직이면서도 계속 풀을 뜯어먹었다.
집채와도 같은 흙물이 사품 치며 각일각 덕돌의 앞으로 덮쳐왔다.
“빨리 소를 던지고 태평강을 건너오라!”
만석은 논물을 보다가 덕돌을 보고 고함쳤다.
허나 덕돌은 소를 버릴 수 없었다. 빚을 가득 걸머져서 온 집 식구들의 명줄이나 다름없는 소를 큰물에 띠워 보내는 날에는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라! 이라!”
이때 난데없이 버섯을 따러 갔던 성숙이 뛰어와 낫등으로 소잔등을 탁탁 쳤다.
깜짝 놀란 깜장이는 그제야 풀을 먹지 않고 부랴부랴 태평강을 건넜다. 그들이 소를 몰고 강물을 건너 강둑에 올라자마자 저게 뭔가! 그들의 발밑을 툭 치면서 누런 흙물이 들이덮쳤다. 아름드리나무랑 물에 떠 내려와 강둑을 마구 치며 흘러지나가면서 그들의 발밑이 마구 울릴 지경이었다.
“빨리 높은 둑 위로 올라가자!”
“응!”
그들 오누이 제방 뚝 위로 올라갈 때다. 마을 저쪽에서 상순과 명옥이 아들딸을 큰물에 잃어버린 것 같아 소리치면서 이쪽으로 달려 나왔다.
“덕돌아!”
“성숙아!”
그들은 제방 뚝 위에서 소를 몰고 마을 쪽으로 다가가는 오누이를 보고서야 달음박질을 그만두고 걸어왔다.
상순은 다가와 덕돌과 성숙을 와락 끌어안았다.
“덕돌아!”
"성숙아!"
명옥도 덕돌의 머리를 매만졌다.
“어떻게 얻어 본 아들인데 큰물에 잃을 번했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덕돌만 끌어안고 야단치자 성숙은 꽤나 섭섭했다.
“어이구, 아들만 아들이라고 하면서. 딸은 자식이 아닙둥? 원, 내 달려와 낫등으로 소 궁둥이를 쳤으니 말이지. 깜장쇠 강물이나 건넜겠구먼? 쳇. 내 오지 않았더라면 덕돌이 살았겠습둥?”
그제야 명옥은 성숙이 머리도 만지면서 칭찬했다.
“그래, 네가 아니었더라면 금이야 옥이야 하는 덕돌을 잃어버릴 번했다. 네가 정말 덕돌을 따라 나오기를 잘했다.”
상순은 깜장이를 끌고 가면서 “주의를 주었다.
"덕돌아, 이후부터는 소낙비가 쏟아진 후에는 소를 풀러 가지 않아도 된다. 소낙비가 온 뒤에는 큰물이 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들은 다시 살아난 기쁨에 겨워 웃고 떠들면서 깜장이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천만 다행이구먼요.”
엄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순자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들이 진수해 공사 병원에 이르러 병실에 들어갔을 때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홍자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 같았다.
“홍자야, 이게 웬 일이냐?”
“언니!”
순자는 홍자를 안고 울었다. 홍자도 울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말렸다.
“누워 있소. 옆구리에서 대변이 나오겠소.”
“옆구리에서 대변이 나오다니.”
간호사가 다급히 말했다.
“저걸 보오. 꾸르륵 소리 나는 거 보니 또 대변이 나온 모양이오.”
알고 보니 홍자는 맹장이 터져 밸을 한 뼘이나 떼 내고 옆구리에 구멍을 내고 대변을 보게 만들어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밥을 먹으면서도 옆구리로 대변을 보았다. 항문으로 대변을 볼 때는 대변이 나가는 기별이 있었지만 옆구리에 낸 구멍은 시도 때도 기별도 없이 아무 때건 불시에 밀밀 괴여 나왔다.
순자는 엄마를 도와 옆구리에 붙인 붕대를 떼 내고 구멍으로 나온 대변을 받아 닦아낸 후 약으로 소독하고서야 붕대를 대고 반창고로 붙여 놓았다.
“엄마, 집으로 돌아가오. 이젠 내 홍자를 간호하겠소.”
명옥은 순자를 마주보면서 근심했다.
“넌 대학공부를 하지 않고 이래 되겠니?” 
      그러나 순자는
“여동생을 내가 돌보겠습니다. 엄마는 집에 돌아가 일을 하시오.”라고 하더니 뒤 말을 이었다.
      “농학원에선 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문화대혁명’을 합네 하고 무슨 빠얼치('8.27’)요, ‘항대’요, "홍색"이요 하면서 패싸움만 합니다.”
“그럼 수고해라. 그러지 않아도 아버진 생산대 일만 하다나니 돼지랑 닭이랑 제대로 먹이는지 모르겠다.”
명옥은 순자에게 홍자를 맡겨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순자는 반년 동안이나 날마다 홍자 옆에서 대소변을 받아냈다. 붕대도 돈이 든다고 버리지 않고 대변을 털어버리고 비누 물에 손으로 씻어 말린 후 병원의 소독실에 가서 고압가마를 빌어다가 손수 소독해 재차 쓰곤 했다.
순자는 매번 홍자의 옆구리에서 대변을 닦아내고 헤벌린 옆구리에 낸 벌건 구멍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눈물이 샘솟곤 했다.
순자는 정규상과 YB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는 고모사촌 언니 해옥의 소개로 YB병원에 가서 재차 수술을 받게 됐다.
“근심하지 말라. 내 외과에서 제일 유명한 이성일 의사를 소개해줄 터이니 꼭 저 홍자를 항문으로 대변을 보게 수술해줄 거야.”
“그럼 얼마나 좋겠소.”
순자는 고모사촌언니가 고마웠다.
“언니, 정말 고맙소. 이전에 신자가 앓을 때에도 언니가 담보를 서고 치료했기에 신자를 살려냈소.”
순자의 말에 해옥은 식지를 입가에 대면서 “쉿-” 하면서 병원 복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얘야,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병원에서 신자 치료비도 물지 못한 거 알면 홍자를 수술해 주자 하겠느냐? 이번에도 내 담보를 섰다. 치료비를 후에 꼭 문다고 말이다. 외삼촌네 물지 못하면 내가 물겠다고 했다.”
순자와 홍자는 그저 해옥 언니 손을 잡고 감동의 뜨거운 눈물만 주르르 흘렸다.
수술을 받기 전에 마음이 더운 해옥은 자기 외사촌여동생 순자와 홍자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다.
해옥은 영월구에 이사해간 후 공부를 잘해 연변위생학교를 졸업한 후 YB병원에 배치돼 내과의사로 됐던 것이다. 그는 YB대학 졸업생 차대균과 결혼해 문일과 영일 두 아들에 딸 영애를 낳아 기르면서 신화서점 옆에 자리를 잡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창 식사를 할 때 그만 홍자가 실수했다.
      꾸르륵 소리가 나더니 또 옆구리로 대변이 흘러 나왔다. 순자는 황급히 숟가락을 놓고 홍자를 데리고 한쪽으로 가서 대변을 닦아내고 옆구리 구멍에 붕대를 바꿔 채워 주었다.
홍자와 순자는 아저씨를 보기 미안해 머리를 숙이었다.
“어쩌겠니? 이제 이성일 의사라는 유명한 외과 의사한테 보이고 수술하면 항문으로 대변을 볼 수 있을 거야.”
해옥은 점심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홍자를 데리고 이성일 의사를 찾아가 보였다.
그때 외과의 이성일 의사는 홍자의 옆구리 구멍을 보고 대장을 항문에 이어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홍자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고명한 이성일 의사의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홍자는 마음이 뜨거운 해옥 언니의 정성과 리성일 의사의 고명한 수술재간 덕분에 다시 항문으로 대변을 보게 됐다.
옆구리의 구멍도 한 달이 지나자 봉합이 돼갔다.
그때 여동생 홍자를 살려낸 것으로 해 해옥과 순자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순자가 홍자를 간호할 때 남동창생들은 순자의 여동생 홍자를 문안하러 오는 척 하면서 순자를 만나보자고 YB병원에 찾아갔다. 순자와 홍자가 진수해공사 병원에 있을 때부터 리동수는 여러 번 자전거를 타고 병원에 찾아갔다.
이전에 홍자가 옆구리로 대변을 볼 때 있은 일이다.
홍자는 옆구리로 똥이 밀밀 나와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급했다.
허나 그때 동수는 순자에게 자전거 타기를 배워주고 있었다.
“언니, 똥이 나왔소!”
홍자는 고함치고나서 중얼거렸다.
“남은 바빠 죽겠는데 저네는 희죽거리면서 자전거연습 해?”
“오, 알았다. 내 갈게.”
순자는 자전거를 쾅 번져놓은 채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여동생의 옆구리에 나온 대변을 닦아내고 붕대를 갈아대주었다.
동수는 YB병원에 찾아갔다가 순자와 홍자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는 얼굴이 가려워 찾아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순자는 환하게 생긴 인물에 체격이 쭉 빠찐데다가 배구까지 잘 쳤기에 남학생들 속에서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와 연애를 거는 남학생들만 해도 적게 쳐서 열대여섯은 됐다. 허나 순자는 조만에 어느 남자와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한 마을에 사는 경산은 성환을 시켜 자꾸 순자에게 연애를 걸었다. 그러나 순자와 경산은 한 마을에서 태어나 소학교로부터 초중, 고중, 대학까지 동창생이다 보니 너무나도 친하고 서로를 잘 알았다.
상순은 순자가 한 마을의 경산과 함께 농학원으로 갔다 왔다 하는 것을 보고 순자를 불러 을러멨다.
“경산과 연애하는 날엔 종아리를 분질러 놓겠다. 알았니?”
어리둥절해난 순자는 눈을 치켜 떴다.
“아버지, 경산이 너무 좋아 그랩둥?” 
입이 무거운 상순은 그저 호통만 쳤다.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지. 무슨 잔말이냐?”
순자는 아버지를 믿었다. 허나 아무리 경산과 그 집 식구들을 두루 여겨보면서 궁리해보아도 아버지가 반대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혹시 삿갓봉 집 할머니 보고? 아니면? 정말 모르겠어. 경산은 얼마나 꼼꼼하다고. 나하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 할 때면 손수건을 바위돌 위에 펴놓고 나보고 손수건 위에 앉으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살뜰히 여자를 관심할 사람이 어데 있어?”
순자는 안개 속처럼 흐리흐리한 오리무중에 빠졌다.
허나 그녀는 아버지 말을 따르기로 했다. 황차 자기가 경산과 연애를 해 성공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대답하지 않으면 허사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부터 순자는 경산과 허물없는 친구이자 동창생, 아니, 어떻게 말하면 오누이 같이 친한 사이이었지만 연애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어떤 때 경산은 순자의 손을 잡고 진정으로 고백했다.
“우정이 사랑으로 변할 수 없소? 나는 우리 둘의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오.”
허나 순자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평소에 동수는 농학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면 도서관에 가서 연애소설을 빌어다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순자를 낚아채겠는가  연구하는 판이었다. 그는 연애소설을 보고 멋진 구절을 벗겨가지고 순자에게 자주 연애쪽지를 써서 동창생들의 눈을 피해 슬쩍슬쩍 쥐어주곤 했다.
“… 달빛을 빌어 사뿐사뿐 침실로 걸어가는 순자, 그대를 보고 나는 미칠 것만 같소…”
“…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삼추나 보지 못한 것 같이 그립소. 나는 그대를 비단보에 싸서 업고 다니면서라도 천하에 둘도 없이 행복하게 해 주려오…”
“… 나는 피 끓는 청춘과 정열을 다 바쳐 그대를 사랑하오. 아니, 내 심장과 생명을 다 바쳐 사랑해 …”
그러나 순자는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순자는 어쩐지 자꾸 첫사랑 허송림과 비하게 됐다. 허송림은 조개덕의 함흥소학교 때부터 고중을 다닐 때까지 한 학급을 다닌 동창생이었다.
훤칠한 체구에 쩍 벌어진 어깨, 남성다운 어글어글한 눈이라던가, 우뚝한 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잡는 말을 하는 입. 어디를 보아도 이상적인 남자이다. 허송림은 순자를 마음에 두고 한 학급에 다니는 성환을 내세워 자꾸 사랑을 고백해왔다. 허나 순자는 허송림이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고중시절이라 대답하지 않았다.
허송림은 연길에 가서 대학시험 두 과목을 치고 나서 갑자기 순자를 찾아 말했다.
“난 대학시험을 치지 않겠다.”
“건 왜?”
순자는 공부를 잘하는 송림의 말에 깜짝 놀랐다.
허나 송림은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네 봐라. 우리 영숙 누나 의학원을 졸업하고 의사 하지? 형님도 의사지. 그런데 나도 의사를 하겠니? 난 부대에 가서 군관을 해보겠다. 그래야 진짜 사내다울 게 아니야?”
“그래도 다시 잘 생각해봐라. 나도 의학원에 가려고 그러는데 너도 함께 가면 좋지 않니?”
“아니야. 난 시험을 치지 않겠다.”
허송림은 그렇게 대학 시험을 중도에서 그만두고 부대로 자원해 가게 됐다.
순자는 울먹울먹해 떠나가는 송림을 전송했다.
송림은 역에 나온 숱한 동창생들 속에서 순자를 찾아내 손을 내밀었다.
“손이라도 잡아보자.”
순자는 손을 내밀면서 머리를 숙이었다.
“잘 가라. 안전에 주의하고.”
“그래. 내 군관이 된 후 다시 찾으마.”
순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 후 허송림은 부대에 가서도 농학원에 간 순자에게 끊임없이 연정이 꽉 밴 편지를 날려 보냈다. 부대생활이 간고할수록 보고 싶고 그립다고. 지어 순자의 충고를 듣지 않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도 하고. 그 후 그는 또 부대에서 패장으로 제발됐다고 전해왔고 얼마 안 있어 련장으로 승급했다고 하면서 부대에 시집오라고까지 했다. 허나 순자는 소홀히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 살 위나 되는 반장 박위동은 공부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는데다가 크라네까지 아주 잘 불어 농학원의 악대 대장으로 활약했다.
박위동은 쩍 하면 농학원 배구대 대장인 순자를 불러 사업을 토론하는 척 하면서 연애를 걸었다.
그는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순자를 보고 “순자, 내 악대 대장을 그만둘까?”라고 했다.
“그만 두겠으면 그만두오. 나하고 무슨 상관이오?”
순자는 씁쓸해 하면서 “더 할 말이 없으면 가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위동은 순자의 손을 와락 잡으면서 빈정거렸다.
"가지 마오. 내 악대에서 대장으로 활약하면 숱한 여동창생들이 광목에 가시처럼 매달리면 순자가 질투나지 않겠소?” 
“어마나, 박 반장이 악대 대장을 하는데 내가 왜 질투 나겠소? 정말 우습소.”
박위동은 외까풀 눈을 곱게 흘기는 순자를 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 순자는 내 마음을 모르겠소?” 
순자는 외까풀 눈을 치켜뜨면서 복성스레 생긴 얼굴에 그늘을 지었다.
“뭘 말이오?”
박위동은 순자 손을 잡으면서 고백했다.
“난 순자를 사랑하오. 동의되오?”
순자는 손을 빼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순자는 어쩐지 평소에 지분거리는 위동이 그리 좋지 않았다. 쩍 하면 술을 마시고 여대생 숙사에 와서 이 여자 저 여자 지껄이곤 했다. 어쩐지 정파답지 못해 보였던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공부를 잘 해 뭘 해? 술주정뱅이 같은게.)
그러나 순자는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내지 않았다.
“난 아직 어려서 대상문제를 고려하지 않소.”
그러나 박위동은 순자를 놓아주지 않고 집에까지 쫓아왔다. 그러나 순자는 만나주지 않고 은숙과 홍자를 보고 두부나 바꿔 두부장국이나 끓여 대접하게 했다.
그 먼 곳에서 이런 시골까지 왔다가 순자의 복숭아얼굴도 보지 못하고 장국만 마시고 말 그가 아니었다.
그래서 은숙을 보고 이젠 농학원으로 돌아가겠으니 함께 돌아가자고 알리라고 했다.
동네 정자네 집에 피해있던 순자는 그제야 돌아와 위동과 함께 농학원으로 떠났다.
40리 멀고 먼 밤길을 걸으면서 위동은 내내 순자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순자는 기어이 대답하지 않았다.
삼봉동을 넘어 말발굽산이 보일 때는 동녘이 푸름히 트기 시작했다.
박위동은 마지막으로 “정말 내 싫소?” 하고 물었다.
허나 순자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난 아직 어려서 대상문제를 고려하지 않소.”
박위동은 어처구니없어 했다.
“아니 스물세 살이나 되는데 아직도 어리오? 그 허춘림인지 뭔지 하는 군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소?”
그 말에 순자는 머리를 숙였다.
“지금도 편지가 눈송이 날아내리 듯이 자꾸 날아오는 걸 보면 서로 잊지 못하는 모양이지? 군관이 무슨 좋아서 그러오? 부대를 따라 어느 산골로 갈지도 모르오. 그까짓 련장이 다 뭐요? 우리 대학생은 부대에 가자마자 부 패장급이오. 이후에 내 농업국 국장을 하지 않는가 보오. 나를 따라 연길에 가 행복하게 살지 않겠소?”
순자는 함구무언한 채 이렇게 속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착실해야 되지 어느 고장에서 사는게 중요한가? 사람을 얼려도 유분수지. 난 연길이 아니라 한족들이 욱실거리는 곳이더라도 사람만 좋으면 신랑을 따라 어디든지 갈 테야.)
“어디 두고 보기오. 어떤 놈한테 시집가는가?”
둘은 이렇게 영영 갈라졌다. 박위동은 다시는 순자를 찾지 않았다.
확실히 순자는 춘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부대에 간 후 춘림은 계속 연정이 폭폭 배인 편지를 써 보냈다. 그리하여 박위동과 동수, 송영은 가만히 순자에게 날아온 편지를 뜯어보고 다시 밥풀로 붙여 원 자리에 놓곤 했다.
영상해서 순자는 허춘림이나 동수에게서 온 편지나 쪽지를 몽땅 신문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다 엄마한테 맡겼다. 글을 볼 줄 모르는 엄마한테 맡기면 제일 안전하고 비밀을 지킬 것 같아서였다.
“엄마, 이 편지를 누구한테도 보이지 마오.”
“응, 그래.”
그때 덕돌이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
엄마는 순자만 보는 데서 윗방 종이천정을 뜯고 그 위에 편지꾸러미를 올려놓고 다시 천정 종이를 풀로 붙여 놓았다.
그런데 엄마는 순자가 떠나 간 후 며칠도 되지 않아 홍자를 불렀다.
“여기 무슨 편지가 있는가 보자.”

“큰 언니한테 들키면 큰 봉변을 당하겠는데. 난 무서워 못 다치겠소.”
홍자가 덴겁해 하자 명옥은 “근심하지 말라.."라고 했다.
"우리 쥐도 새도 모르게 가만히 뜯어보고 원래대로 붙여 천정에 올려놓으면 된다.”
그리하여 명옥과 홍자는 쪽걸상을 가져다 놓고 올라서서 천정종이를 가위로 살짝 도려내고 편지끄러미를 내리웠다.
“엄마, 난 그래도 겁나오.”
“겁나 말라. 들키면 내 막아나설게.”
그리하여 홍자는 겨우 담을 키워 가지고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눅잦히면서 순자에게 날아온 두툼한 편지꾸러미를 헤치었다.
숱한 편지와 쪽지 그리고 일기책이 나졌다. 거기에는 허송림과 동수 그 외에도 이름 모를 남자들의 연애편지와 쪽지가 가득했다.
홍자는 명옥의 앞에서 그 편지와 쪽지를 하나하나 몽땅 뜯어 내리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덕돌이 신기해 보다가 물었다.
“엄마, 어째 큰누나가 아무한테도 보이지 말라 했는데 셋째누나와 함께 보오?”
섬찍해난 명옥은 덕돌의 눈을 두 손으로 꽉 막으면서 말했다.
“요걸 어쩌니? 덕돌아, 이 담 큰누나가 오면 절대 엄마와 셋째누나 편지를 뜯어본 말을 하지 말라. 알았지? 말해선 안 돼. 큰누나 아는 날이면 보지 말라는 거 봤다고 야단난다. 알았지?”
덕돌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날 명옥과 홍자는 편지와 쪽지 그리고 일기까지 몽땅 읽어본 후 밤늦게야 보꾸러미에 잘 싸서 천정에 올려놓고 다시 천정종이를 원래대로 붙여 놓았다. 그들은 빈틈이 없이 원래대로 된 걸 보고 코를 싸쥐고 윗방에 나와 코를 싸쥐고 순자를 두고 웃고 떠들었다.
허나 며칠 후 큰누나가 오자마자 큰 일 났다.
덕돌은 순자에게 마주 달려 나가면서 첫마디에 고발했다.
“큰누나, 큰누나! 저 엄마하고 셋째누나 큰누나 편지를 다 뜯어봤소.”
“뭐라고?”
순자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공포에 떠는 셋째 여동생과 엄마를 번갈아보더니 덕돌을 내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덕돌은 깜장 쌍까풀눈을 똑바로 뜨고 큰누나를 쳐다보면서 곧이곧대로 일러바쳤다.
“정말이오. 엄마는 나를 보고 큰누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소. 큰누나 아는 날이면 큰일 난다고 했소.”
순자는 윗방에 달려 올라가 천정종이를 와락와락 뜯고 편지꾸러미부터 내리워 보더니 왕왕 대성통곡 쳤다.
“홍자, 네 썩어진다. 감히 내 편지를 뜯어봐!”
홍자는 무릎을 꿇고 빌다가 큰언니한테 귀쌈을 찰싹 한대 얻어맞고 울면서 바깥으로 달아났다. 명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두 손을 잡고 서성거리며 맴돌다가 순자를 말렸다.
"다 엄마 보자고 해서 그랬다. 홍자를 욕하지 말라."
순자는 편지를 와락와락 쥐어뜯더니 그중에서 동수의 쪽지만 골라 두고 나머지는 몽땅 들고 부엌으로 내려가 태워버렸다.
순자는 어쩐지 서란에서 온 남도치 동수에게 마음이 조금씩 끌려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송영이나 박위동이나 다른 남동창생들은 술을 퍼먹고 쩍하면 여자 숙사에 와서 주정을 부리고 여자들을 지껄이다가 돌아가곤 했다. 하여 순자는 저런 남자를 만나면 한뉘 평생 마음고생을 하면서 살겠다고 그들에게 반감을 가졌다.
허나 서란 농촌에서 자란 동수는 여자숙사를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청년답지 않게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이나 숱이 많고 검은 머리나 짙은 눈썹, 그리고 새별처럼 반짝이는 한쌍의 눈, 우뚝 솟은 코 마루…
그때만 해도 순자 앞에서 동수는 술을 그리 마시지 않았다. 그는 농학원 도서관에 붓박혀 연애소설을 보면서 5년 동안이나 고금동서의 명구를 다 써먹으면서 순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연애쪽지를 쓰고 또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순자는 점차 동수의 매력에 빠져 정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기실 동수는 그때 순자가 인차 대답하지 않기에 인내성이 거의 거의 동강 날 번했고 가만히 용정에 가서 답답한 술을 마시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 숙사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자칫 주정뱅이로 몰리어 대사를 망칠 까봐 겁났던 것이다. 그의 인내성 있고 아량 있는 처사가 순자의 마음을 끌었다.
그때 대학생들이 북경으로 가서 모주석의 접견을 받는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순자는 차멀미를 심하게 해 왝왝 토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옆에는 항상 동수가 있었다. 그들은 인산인해를 이룬 북경 천안문 앞에서 하이야를 타고 씽- 지나가는 모주석의 접견을 받고 의화원에 가서 배도 타고 놀았다.
순자는 남동창생들이 자꾸 치근거리는 것이 싫어 혼자 가만히 집으로 돌아오자고 북경 역에 빠져갔다. 그런데 역에서 동수를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어, 순자, 여기서 만났구먼.”
동수는 우연하게 만난 것처럼 꾸몄지만 순자는 그가 진작 자기 뒤를 미행했다는 짐작이 갔다.
멀미가 심한 순자를 동수는 어린애를 간호하듯이 줄곧 농학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간호”해주면서 돌아왔다.
그때 그 살뜰히 간호해주던 동수가 고마워 순자는 동수를 믿기 시작했다.
어느 달 밝은 밤에 동수는 조용히 만나자고 했다.
순자는 흔연히 약속한 지점에 나갔다.
동수는 순자와 나란히 앉아 달을 쳐다보더니 사랑을 고백했다.
“난 순자를 죽기내기로 사랑하오. 내 그대를 한뉘 행복하게 해주겠소.”
순자는 머리를 숙이더니 동수의 품에 안겼다.
“대답해주오.”
“나도 동수동무를 사랑하오.”
그러자 동수는 너무나도 기뻐 순자를 꽉 끌어안고 고함쳤다.
“하하하, 이 날은 끝내 왔구먼. 숱한 남자들이 따라다녀도 순자는 내것이구먼. 허허허.”
동수는 순자에게 뜨거운 키스벼락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달빛아래에서 오래도록 꼭 포옹했다.
달도 부끄러운듯이 얇은 구름 속으로 얼굴을 살짝 감추었다.
                    
                         11. 사위

달빛도 밝은 어느 날, 박경만은 상순이네 집 마당에 와서 사위를 둘러보더니 머리를 들어 구리바라 같이 밝은 달을 쳐다보면서 뻐꾸기 우는 소리를 냈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가 나자마자 저녁을 먹던 은숙은 숟가락을 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로 경찰의 특유한 민감성으로 해 상순은 은숙의 거동이 이상해 뒷간으로 가는 척 하면서 따라 나갔다.
“에헴, 에헴.”
상순이가 보니 달빛아래 바자 저쪽에서 은숙이 머리를 숙이고 서있는데 웬 남자가 서서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가기요. 조용한데 가서 말하기요.”
“난 아직 나이 어려서 연애를 하지 않겠소.”
“허, 정말, 스무 살을 먹고서도 어리다니? 옛날 우리 엄마랑은 열여섯 살에 우리 큰누나를 낳았소.”
사내의 목소리가 퍽 귀에 익었지만 딱히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옛날과 지금 어디 같소? 지금 어디 스무 살에 결혼하는 여자들이 있소?”
“내 지금 결혼하자는 게 아니요. 먼저 서로 얘기나 하자는 거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무슨 연애 소리요? 연애하는 거야 결혼하기 위한 거지.”
“하긴 그렇소. 그래 나와 결혼하겠소?”
“어마나. 별, 누가 그 집과 결혼한다 했소? 약혼도 하지 못하고 결혼하는 법이 어디 있소?”
(저, 저, 못된 놈들이 연애하는구나.)
자기와 명옥도 19세에 결혼했으니까. 애들도 이젠 시집을 갈 나이가 된 것이었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집으로 들어갔다.
은숙이 들어오자마자 상순은 따지고 들었다.
“이제 금방 만난 건 누구야?”
“소변보러 갔는데 누굴 만났다고 그럽니까?”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라리면서 을러멨다.
“너 날 속이겠어? 내 이제 다 들었다. 말해라! 누구야?”
그제야 은숙은 속일 수 없었다.
“박경만입니다. 난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데 계속 연애를 겁니다.”
“음.”
상순은 주먹을 쳐들었다가 내리었다.
박경만이란 안도 저수지를 건설하면서 조개덕에 이사 온 안도 박 씨 집 청년이었다. 사람이 역빠르고 힘도 세기로 소문이 있었다. 글쎄 온 마을에서 혼자 자전거를 사 타고 논 드럼으로 마구 달려 다니는가 하면 한손으로 자전거를 머리 위로 추켜올릴 정도로 힘이 셌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중학교 때 현 중학생축구팀의 선수였다고 하는데 확실히 축구를 잘 해 공사대회에서도 소문이 높았다. 둘째인 그는 성격이 부드러운 형 경권과는 달리 꽤나 팩하고 자존심이 강했다. 마을의 단서기인 그는 당 지부 서기인 상순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청년들을 이끌어 당지부의 호소에 따라 발을 벗고 일해 나갔다. 그리하여 상순은 경만을 장차 전도 있는 청년으로 손꼽았다.
상순은 단 지부 일로 문턱이 다슬 지경으로 찾아 다녔는가 했더니 은숙을 넘보고 다닌 줄은 눈치도 채지 못했던 것이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은숙이 마음에 들어 하면 아무 때라도 시집보낼 앤데 줘 보내야지. 그러나 맏딸 순자가 아직 약혼도 하지 않았는데 둘째부터 줄 순 없지 않은가? 참 답답한 일이야.)
몇 달 후 농학원에 다니는 순자가 집으로 놀러 왔다.
큰언니를 너무 따르는 홍자는 인차 둘째 언니가 마을의 경만과 좋아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순자는 은숙을 불러 물었다.
“야, 너 경만과 무슨 관계냐?”
“연애 관계요.”
“그래 경만이 마음에 드니?”
“양, 한 마을에서 자꾸 얼리는 거 어쩌오?”
“그래도 쉽게 대답하지 말라.”
“내 어찌 하던 언니 무슨 상관이오?”
“야, 정신 있니?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되는데 그리 일찍 시집가면 고생이나 했지 뭣이 좋니? 황차 너보다 세 살이나 이상인 언니도 아직 약혼하지 않았는데 너부터 서둘면 어쩌니?”
“내 시집가는데 언니와 무슨 상관이오? 누가 언니를 스물 셋이나 되도록 약혼하지 말라 했소?”
은숙은 이전에는 언니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지만 이번만은 물러서지 않고 딱딱 들이 받치면서 고집을 썼다.
“너 정말 동네 망신을 시킬 예산이냐?”
“누가 먼저 약혼하면 누가 먼저 시집가는 거지 뭐? 형제간에 순서를 정해 놓았소?”
순자는 은숙을 흘겨보면서 한바탕 훈계하려다가 물앉으면서 그만 두었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오자 은숙은 왕왕 울면서 “아버지, 나와 경만의 약혼을 허락해 주시오.”라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상순은 윗방에 올라가 다리를 틀고 앉았다. 이때 명옥도 일 밭에서 돌아와 정지에 들어섰다.
상순은 윗방에서 “어험.” 하고 마른기침을 떼더니 은숙을 불러 “그래 경만이 마음에 딱 드냐?” 하고 물었다.
은숙은 윗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답했다.
“예. 남자답습니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명옥도 들어와 한마디 했다.
“숱한 딸애들을 두고 줄 때 되면 주기요. 큰 아들도 없는데 든든한 사위라도 한 마을에 있으면 좋지 않소?”
“음. 알았소.”
상순은 명옥에게서 눈길을 떼더니 은숙을 바라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헌데 경만이 팩해서 혹시 너를 마음고생을 시킬 까봐 근심된다.”
“일 없습니다. 내가 다짐을 따니 이후에 절대 나에게 손을 대지 않고 밸을 쓰지 않겠다고 합디다.”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약혼할 때는 다 그런다. 허나 결혼만 하면 약속을 저버리는 게 사내들이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 맞춰 살겠습니다.”
상순은 “너네 정 마음이 맞는다면 언제 경만을 데리고 와서 말을 떼거라.”라고 허락했다.
은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상순은 순자를 돌아보면서 타일렀다.
“어쩌겠니? 저 애들이 연애한지 오래니 먼저 약혼을 허락하겠다. 넌 언제 약혼하겠니?”
그러자 순자는 머리를 숙이며 나직이 말했다.
“나도 남자는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약혼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여동생이 이젠 약혼하는데 너도 빨리 약혼해라.”
아버지 말씀에 순자는 귀밑을 살짝 붉히면서 머리를 숙이었다.
그날 경만은 형 영권과 5촌 삼촌이랑 4촌 형이랑 함께 술과 떡을 메고 와서 사돈보기를 하러 왔다.
상순이네 비좁은 집에는 윗방과 정지에 숱한 친척들로 꽉 들어앉았다.
경만은 상순과 명옥의 앞에 태산이 무너지듯 넓적 엎드리면서 절을 올렸다.
“가시아버지, 가시어머니 은숙을 데려다 잘 살겠습니다.”
상순은 둘째사위의 절을 받으면서 정중히 말했다.
“은숙은 아직 나이 어려서 모르는 것이 많소. 데려다 함께 잘 사오.”
경만은 철색얼굴을 들지도 않은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었다.
“예, 귀여운 딸을 20년이나 길러서 주어 살게 해서 고맙습니다.”
그때 경만이 어찌나 공손했는지 은숙은 저쪽에서 속으로 못내 감탄했다.
뒤이어 경만은 한 마을에 있는 큰 가시어머니 지새금 그리고 가시고모 금옥과 가시고모부 최학철로부터 시작해 상길과 봉선, 채선, 경학 그리고 가시외가편의 근룡과 근삼에게까지 돌아가면서 일일이 절을 다 올리고 나니 땀을 줄줄 흘렸다.
그는 뒤에 선 형한테 가만히 중얼거렸다.
“무슨 친척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소. 절을 하는 게 허리 불러질 번했소.”
그러자 영권은 옆구리를 툭 치더니 곰보 얼굴이 굳어지면서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 장가가는 게 그리 쉬운 줄 알았니?”라고 했다.
가시집에서 술상을 차리자 경만은 무릎을 꿇고 공손히 두 손으로 가시집 어른 들게 술을 따라 올렸다.
상순은 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만은 사위가 부어주는 술을 받아 한잔 쭉 냈다. 경만이 어찌나 공손하고 깎듯 한 예절로 대하는지 명옥은 사람이 밸이 있는 사람 같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경만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었다.
경만은 앞집에서 사는 가시고모부 최학철과 진수해의 가시외삼촌 최근룡에게도 일일이 술을 따라 드렸다. 앞집에 사는 금옥 가시고모네는 맏아들 최철국이 아래로 인자와 인숙이, 국범이, 국빈이가 있었는데 철국은 경만과 친구 사이었다. 상순은 철국에게서 경만이가 뽈도 잘 차고 남자답다는 말을 듣고 둘째딸과의 결혼을 허락했던 것이다. 둘째가시외삼촌 최근룡은 태씨네 딸을 데려다 덕돌보다 한 살 지하인 정옥이 아래로 영길, 현길, 호길, 홍길이를 줄줄 나아 기르면서 재미나게 살고 있었다. 다만 항미원조 전쟁에 나가 부상당해 심장병에 기관지도 좋지 않아 불구자퇴역군인의 접대를 받으면서 농사도 짓지 못하고 정부 보조를 받으면서 힘겹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외삼촌 최근삼에게 술을 부을 때는 주춤 했다. 근삼은 은숙과 동갑이었고 경만보다는 한 살 지하였던 것이다.
허나 별 수 있나. 작은 가시외삼촌인데.
경만은 머리를 숙였다가 들면서 술을 따랐다.
“가시외삼촌, 술을 받소.”
근삼은 몇해전에 금방 장가를 가서 딸애 순애를 보았던 것이다. 후에 또 원길도 낳고...
“양, 행복하게 잘 사오.”
“예.”
뒤이어 그는 시집도 가지 않은 처형 순자에게까지 술을 따라 올렸다.
“처형이라 불러야 할지, 아주머니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소. 시집도 가지 않았으니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뭐 어떻게 부르면 좋겠소?”
순자는 웃음을 띤 경만의 철색얼굴을 마주 보면서 술잔을 받아 쥐고 한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그저 처형이라고 부르오. 아주머니는 무슨 아주머니?”
“그럼 좋소. 처형은 언제 약혼 술을 내겠소?”
“동생네 결혼한 후에 보기오.”
“우리 먼저 결혼해서 안 됐소.”
“무슨 말을, 약혼과 결혼이 어디 정해놓은 순서가 있소? 이제 내 졸업하면 술을 낼게.”
경만은 처형과 잔을 마주치면서 통쾌하게 웃었다.
“은숙이, 처형과 함께 한잔 마시기오.”
그제야 은숙은 고방에서 나와 언니 순자 옆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
“언니, 고맙소.”
순자는 진심 어린 눈으로 여동생 부부간을 마주 바라보았다.
“동생네 서로 아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오.”
“고맙소. 우린 땅을 뒤지는 농민들이 돼서 아무 것도 모르오.”
은숙은 옆에서 경만의 무릎을 툭 쳤다.
“언니하고 무슨 말을, 또 걸고 들겠소?”
“괜찮다.”
순자는 은숙을 보며 웃으면서 뒤 말을 이었다.
“동생 신랑은 단지부 서기 사업도 하지 않소?”
“그래도 대학생 처형보다 사회를 모르고 사오.”
순자는 경만이 어지간히 자존심이 강하지 않음을 느끼면서 동생이 근심돼 한숨을 호 내쉬었다.
순간 그녀는 동창생 동수의 하얀 얼굴과 너부죽한 이마를 가리는 숱 많은 머리카락이 눈앞에 겹쳐 보였다.
이듬해 5.1절에 은숙은 한 마을 여주 박 씨네 둘째아들 경만한테 시집가게 됐다. 생활이 가난한 상순이네는 아내 명옥이 돼지를 친 덕분에 그래도 은숙에게 첫날 한복에 삼일에 입을 옷으로 겨우 몇 견지 사주어 시집보낼 수 있었다.
물론 대대 당지부 서기인 상순이네가 돼지를 두 마리나 쳤다고 뒤에서 흥수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 때문에 아버지가 자본주의 길로 나간다는 말을 들어 어쩌겠소?”
은숙이 눈물을 흘리면서 근심했다.
허나 명옥은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그까짓 거, 개소리거니 하면 돼. 그래 당원은 시집가는 딸에게 첫날 한복도 해 입히지 말아야 한다니?”
이른 아침에 경만은 길을 하나 사이 둔 가시집으로 반시간이나 걸려서야 올 수 있었다.
마을의 종연이랑 창식이랑 주봉이랑 마을 큰길에다 새끼줄을 띠워 놓고 가로 막았던 것이다.
“이보, 경만이, 어디로 가오?”
경만은 중산 복을 빼입고 씩씩하게 걸어오다가 주춤 멈춰서 웃었다.
“각시 데리러 가오.”
종연은 안도에서부터 경만과 잘 아는 친구였다.
명육은 “각시는 누구요?” 하고 물었다.
“뻔히 알면서 묻소?”
“우리 어떻게 아오? 도대체 누구요?”
경만은 시간을 끌기 싫어 “우리 마을 김서기네 둘째딸 은숙이오.”라고 시원히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종연은 “어떻게 돼 한 마을에서 약혼했소?” 하고 물었다.
창식은 길쭉한 얼굴을 찡그리면서 “약혼 경과를 말하지 않으면 이 큰길을 지나가지 못하오.”라고 단단히 잡도리를 하면서 새끼줄을 매만졌다.
경만은 새끼줄을 손으로 쥐어 당겨보면서 “요까짓 게 다 뭐요?”라고 하면서 쥐어 들려고 했다.
그러자 청년들은 경만의 두 팔을 비틀려고 들었다. 경만이 두 팔에 힘을 주며 뻗치자 움쩍도 하지 못했다.
“첫날 신랑과 싸울 예산이오? 장난도 한도 있지. 정말 한심하오.”
그때 덕돌의 팔촌형 경학이 동네 청년들을 나무랐다.
그러자 종연이랑 명육이랑 물러섰다.
“보내주면 술을 주겠소?”
창식이 묻자 경만은 시원히 “양, 큰상 옆에 오오.”라고 했다.
그 말에 창식이 새끼줄을 풀어주면서 “신랑을 따라가 큰상이나 받자.”라고 했다.
새끼줄이 풀리자 경만은 성큼성큼 걸어 은숙이 네 집에 갔다. 철국이 대반을 들면서 경만을 집 윗방에 모시고 들어가 큰상에 앉혔다.
명육이랑 종연이랑 창식이랑 큰상에 앉은 경만의 앞에 두 줄로 죽 둘러 앉아 고주망태 될 지경으로 술을 잘 마신 것은 두 말할 것이 없다.
오전 11시쯤에 신랑 경만과 색시 은숙이 부모와 집안 이상 분들에게 절을 하고 문을 나섰다.
노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오시지 못했기에 후일 전문 찾아가 절을 올리도록 했다. 경만과 은숙은 서로 팔을 끼고 걸었다. 연분홍비단한복을 입은 은숙은 아주 예뻤다. 화장까지 한 쌍까풀눈이 특별히 정신이 나게 고왔다. 종연이랑 창식이랑 신랑 큰상을 물리자 이번에는 신랑각시 먼저 경만이 네 집으로 뛰어가 술을 먹으려고 들어앉았다.
상순은 하나 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칠촌조카 경학과 함께 상빈으로 딸려 보냈다. 덕돌은 둘째 누나와 매형을 따라 가서 상빈 상을 받고 잘 먹었다.
경학은 동네 분들에게 술을 따라 부어주고 말했다.
“팔촌이 한 구들이라고 내 오늘 한 마을에 사는 팔촌 동생 덕돌을 데리고 상빈으로 왔는데 모두 술을 포근히 드오.”
그러자 모두들 상순이 네 집 기둥인 덕돌을 보고 재미있어 하면서 술을 마셨다.
덕돌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빈 상의 과자며 돼지고기며 보지도 못했던 음식을 배 터지게 먹었다.
그는 심심해 누나 은숙이 들어있는 사돈집에 가서 마당에서 뛰놀았다. 그러다가 목이 말라 사돈집도 가리지 않고 들어가 부엌에 가서 물을 달라고 해 마셨다.
사돈 아주머니들은 상빈으로 온 새 각시 남동생인 것을 보고 사발에 물을 퍼서 두 손으로 드렸다.
그러자 덕돌은 물을 마시고나서 배를 슬슬 마시면서 “에이고, 상빈으로 와서 정말 배 터지게 잘 먹었다.”라고 했다.
숱한 사돈들이 배를 그러안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동네 사위를 삼은지 얼마 되지 않아 초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순자가 남대 치 이동수를 데리고 부모에게 인사하러 왔다.
동수는 사탕과자에 술을 사들고 왔다. 그는 가시부모 상순과 명옥에게 절을 올렸다.
상순과 명옥은 금방 동네 사위를 삼고 또 남대 치 대학생 사위까지 삼게 돼 기뻐 어찌할 줄을 몰라 싱글벙글 했다.
노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오시지 못했기에 후일 전문 찾아가 절을 올리도록 했다.
그때 덕돌이 바깥에서 달려 들어왔다.
그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얀 동수를 보고 어려워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구들 끝에 서있었다.
순자가 소개하기도 전에 동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일어나더니 “처남이겠구나. 어서 오라.”라고 하며 덕돌에게 손짓했다.
덕돌은 동수에게 안기면서도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그때 순자가 옆에서 덕돌의 손을 잡고 “매형이라 불러라. 큰 매형이야.”라고 알려주었다.
“매형.”
“오, 그래.”
동수는 열다섯 살이나 지하인 어린 처남을 품에 안고 내려다보면서 “언제 커서 내 술동무를 하겠어?”라고 중얼거리었다.
순자는 동수를 곱게 흘겨보면서 “술을 안 마신다더니 쩍 하면 술 말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동수는 고수머리를 쓱 쓰다듬으면서 가시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상순은 동수를 보고 “큰사위 네는 부모가 다 계시오?” 하고 물었다.
그런데 덕돌이 어찌나 무릎 위에 앉아 호돌 매돌 하는 지 좀처럼 가시아버지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동수는 덕돌을 내려놓고 사탕 알을 쥐어 주고 나서 가시아버지 묻는 말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집에 어머니 계셔요. 형 둘에 누나 둘이 있어요. 전 막둥이예요.”라고 대답해 드렸다.
“음.”
상순은 조용히 들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서 순자가 한마디 보탰다.
“큰조카는 저 동무와 동갑입니다.”
“음-”
상순은 동수를 보고 “서란에 있다던가? 그 곳 농사는 잘 되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수는 별로 고려도 하지 않고 “예. 우리 고향 서란은 땅이 많은데다가 농사가 잘 돼요.” 하고 남도말로 대답했다.
그 남대 말에 홍자는 뒤에서 “저 남대 치 말을 봐라.” 하고 웃었다.
그녀는 큰형부를 남대 치라고 놀리다 못해 항상 “남대 치”(남도치)를 거꾸로 “치대남(치도남)” 이라고 놀려주곤 했다.
“집에 빚이랑 없소?”
상순의 물음에 동수는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한 400원 푼히 빚 졌어요. 아무 것도 아니래요.” 
그 대답소리에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괜히 딸을 고생시킬 까봐 근심됐던 것이다.
눈치 빠른 동수는 인차 말꼬리를 달면서 해석했다.
“건 큰 형님 빚이지 이제 세간나서 살 우리와는 상관없어요. 근심하지 마세요.”
상순은 바로 앉으면서 물었다.
“지금 ‘문화대혁명’ 바람이 대단한데 무슨 조직에 들었소?” 
그러자 동수는 가시아버지 눈치를 살피면서 소홀히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 주물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서기질하는 가시아버지한테 정치 불문이라고 말을 들을 까봐 망설였다.
그때 순자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저 동무는 ‘문화대혁명’에 영 소극적입니다. 내랑 든 ‘봉화’란 조직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소설책을 읽기만 좋아합니다. 저 동무는 농학원에 왔는데 도서실의 연애소설과 세계명작을 수태 읽었습니다.”
그러자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동수에게 물었다.
“언제 결혼하면 좋겠는지? 큰 사돈어른께 물어보았소?”
그런데 동수는 이런 말을 했다.
“결혼식을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식을 할 돈이 있으면 생활에 보태 쓰세요. 이렇게 와서 가시집 부모형제를 보면 됐어요.”
그 말에 상순은 놀라하면서 동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게 어디 될 말이오? 우리 집이 아무리 가난해도 맏딸을 시집보낼 돈도 없을 정도는 아니오. 우리 조선족들은 한뉘에 큰상을 세 번 받는다오. 갓 태어나서 돌 생일상을 받고 시집장가 가면서 큰상을 받고 예순에 환갑상을 받는다지 않소?”
“괜찮아요. 지금은 문화대혁명시기어서 결혼도 봉건전통예식을 타파하고 혁명적으로 해요. 이렇게 와보면 결혼이라고 여기면 돼요. 딱 큰상을 받아야만 하나요.”
허나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어찌 큰상도 받기지 않고 시집보내겠소? 사위에게 큰상을 받기지도 않고 결혼식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엉터리로 하겠소? 이번 걸음은 인사라 치고 집에 돌아가 사돈어른과 토론해 결혼 날자를 정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기요.”
허나 동수는 고집을 부렸다.
“괜찮아요. 원래 결혼식을 할 새도 없어요. 이번에 북대황으로 가면 한 1년 있어야 돼요. 우리 그저 이렇게 떠나가면 함께 살면 결혼과 마찬가지예요. 전 순자만 데리고 가면 모든 거 만족인데요.”
순자도 옆에서 한 마디 올렸다.
“아버지, 근심 마십시오. 이 동무는 저와 약혼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가시집에 부담을 주지 말자면서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저 저와 살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결혼식도 하지 않고 산다니?”
상순은 동수를 마주 보면서 다시 부언했다.
“종신대사인데 잘 생각해보오. 결혼식은 치르지 않고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겠소?”
허나 동수와 순자는 괜찮다고 했다.
“절대 후회하지도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자는 대로 해주십시오.”
그때 홍자도 옆에서 끼어들었다.
“지금은 혁명적으로 결혼한다고 시집갈 때면 모두 대장 함에 모택동 선집 네 권을 달랑 걷어넣고 낫에 붉은 댕기를 매서 보낸답니다. 결혼식 날에 밭에 나가 일하다가 점심에 큰상이라고 겨 떡을 먹는다오. 과거의 쓰라림을 잊지 말고 오늘의 해복을 생각하게 한다던가?”
      허나 아버지가 “어른들 말에 끼어들긴?”하고 흘겨보자
      홍자는 혀를 홀랑 내밀더니 입을 싸쥐고 일어나 조왕 쪽으로 가버렸다.
그 말에 동수와 순자는 희죽이 웃었다. 그들은 착한 효심에서 결혼식마저 치르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홍자가 앓아서 숱한 빚을 진 부모에게 번다하게 결혼하느라고 또 빚더미를 더 지워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종신대사도 마다하고 큰상마저 받지 않은 효심이야 말로 심청이 울고 갈 일이었다. 허나 부모로 된 상순과 명옥은 그 일을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상순은 동수와 순자의 요구대로 동수에게 큰상은 차려주지 못했지만 친척들을 다 불러 맏딸 순자의 결혼식 삼아 술상을 차렸다.
손님들이 많이 오자 덕돌은 정지와 방을 달아 다니면서 진정하지 못했다.
동수는 “덕돌아, 내 수수께끼 하나 내면 맞출래?”하고 물었다.
그러자 덕돌은 좋아라고 매형의 옆에 앉았다.
“돌이 두 개 있는 거 뭐야?”
“돌이 두 개 있는 게?”
덕돌은 인차 손벽을 쳤다.
“아, 알았소. 눈이오.”
“눈이 어디 돌이냐?”
“그럼 뭐요?”
덕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참 궁리해도 맞추지 못했다.
그때 옆에서 순자가 제꺽 알려 주었다.
“호돌 매돌!”
“양? 호돌 매돌? 그게 어디 돌이 두 개오?”
“네가 어찌나 호돌 매돌 했으면 매형이 너에게 그런 수수께끼를 냈겠니?”
“아, 아니야! 그게 무슨 수수께끼요?”
덕돌은 매형의 품에 안기면서 떼를 썼다.
“다른 거 내오. 안되오.”
동수는 인차 “그럼 다른 거 내면 맞춰봐. 응?”
“양. 내오.”
“물이 두 개인 거 뭐야?”
“물이 두 개?”
덕돌은 이번에도 맞추지 못했다.
그러자 큰누나가 또 말했다.
“흐물흐물이지 뭐야?”
“아, 또 나를 놀리는 게구나. 안 되오.”
“그렇게 자꾸 흐물거리지 말라. 그러면 그런 수수께끼를 내지 않는다. 숱한 손님들이 오는데 어른답게 놀아라. 알았지?”
큰누나 말에 그제야 덕돌은 서적을 쓰지 않고 똑바로 앉아 주는 사탕과 과자나 받아가지고 마을에 나가 성묵이랑 동림이랑 나눠 먹으면서 놀았다.
어린 처남 덕돌을 떼놓았지만 동수는 둘째동서 경만과 육촌 형들인 성환과 종학이가 어찌나 “대학생, 대학생” 하고 놀리면서 술을 많이 권하는지 혼났다.
술을 과하게 마신 동수는 입을 싸쥐고 바깥에 나가더니 왈칵왈칵 토했다.
순자는 찬 물을 떠가지고 나가 잔등을 두드려주면서 책망했다.
“동무, 무슨 술을 이렇게 마십니까?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해놓고서도…”
“순자, 미안하오. 동서가 술이 꽤나 세구먼.”
여동생들인 은숙과 홍자 그리고 신자와 성숙이가 큰언니의 결혼을 축하해 밤이 깊어가도록 홍심 충성 패를 목에 걸고 “문화대혁명”시기 제일 유행한 충성가를 쟁쟁한 고음으로 부르면서 충성무를 절룩절룩 추었다.
동수와 순자는 서로 마주 보며 싱글벙글 생글방글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동수도 일어나 걸걸한 목소리로 사랑타령을 아주 멋있게 불러 박수갈채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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