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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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중국식의 필부대(筆部隊) (2)
2013년 03월 05일 05시 24분  조회:3851  추천:2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중국식의 필부대(筆部隊) (2)

 

나는 앞글에서 대자보를 언급했다. 지난때의 일을 살펴보면 대자보(大字報)나 소자보(小字報)나그것들은 다가 선전공구로서 하나의 공동한 점이라면 남을 폄하하고 헐뜯는 고약한 습성과 본능을 갖고있었다는 그것이다. 그것들의 차이란, 대자보가 대중에게 선전을 널리하는데 비해 소자보는 대부분이 어떤 요원의 내막을 적발, 폭로하는 정도에 이르는 글이라는 점이다. 현세(現世)에 들어 중국에서 대자보(大字報)와 소자보(小字報)가 활개를 친것은 6~70년대 즉 대약진운동, 반우파운동과 문화대혁명때였다.

대개는 문장을 꾸밀줄을 아는 사람이 일본의 필부대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필을 잡고 글을 썻는데 문맹을 내놓고는 그 시대를 살면서 글자를 좀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아마 거의다가 그것들을 읽어봤을 것이다. 그러했으니 대자보건 소자보건 그건 다가 그년대 중국식정치생활의 한 본새를 잘 보여준 것이다.

 

모택동은 1958년 3월, 성도(成都)회의때 “대자보는 춘추시기에 벌써 나왔으니 력사가 오래다”면서 말하기를 우리는 중국에서 발명된 이것을 버리지 말고 농촌에서도 널리사용하게끔 해야한다고 했다. 하여 그것이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 들어가게 되였던 것이다.

 

대자보(大字報)가 처음으로 많이쓰이기는 1957년도 반우파투쟁때였는데 바로 그것이 그번의 “운동”을 엄중하개 확대시켜놓았던 것이다. 그당시의 대자보들을 보면 많이는 되도록 색깔이 같잖은 종이를 썻는데 형식도 여러가지였다. 짧은글, 잡문, 구호에다 만화까지 동원되여 종이면들을 채웠던 것이다.

반우파투쟁에서 대자보가 널리사용되면서 따라 대변론이 벌어지군한건데 그때는 그것이 많이는 남을 헐뜯고 공격하는 무기로 리용되였던 것이다. 한데 우수운건 어떤사람은 대자보를 썻다가 우파로 몰리고 어떤사람은 대자보의 적발에 의하여 우파로 되몰리우고 만 그것이다. 대자보를 정치무기라 하지만 따져보면 그것이 실상은 무산계급에도 자산계급에도 유익한건 아니였다. 례를 들어 반우파투쟁이 겉보기에는 대자보에 의하여 “승리”한것 같지만 기실은 그 “승리”로 인하여 치룬 대가는 너무나도 엄중했으니 말이아니였다. 55만에 이르는 지식분자가 우파모자를 썻으니 어딘가! (어떤 사람은 실제수를 300만으로 까지 보고있다.)


우파로 몰린통에 그들의 운명이 처참하게 된건 제쳐놓고 그네들이 소유했던 유능한 기능마저 제대로 발휘 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으니 그로인해 국가가 입은 손실은 얼마나컷던가? 이 세상에서 제나라의 지식분자를 그같이 기를 펴지 못하게 눌러놓고 박대한 나라는 아마 중국을 내놓고는 더 없을것이다!

지난때의 반우파투쟁은 그 무슨 휘황한 “승리”인것이 아니라 력사에 꼭 치욕으로 기록이 돼야 할 대원안(大寃案)인 것이다!

 

더 중요한것은 당이 계급투쟁을 진행함에 있어서 그 후에도 실제를 엄중히 탈리하여 무릇 지식분자면 “고린내”난다면서 지어는 몇째 몇째라는 딱지를 붙이였거니와 평생 “개조대상”으로 결정해놓았기에 군중속에서의 위신을 형편없이 크게 실추시킨 그것이다. 그런다고 로동계급대오가 더 건실하고 공고해졌던가? 아니다! 

이만큼 각설하고 지나간 “문화대혁명”을 보기로 하자.  본래는 모택동이 길어야 3년내에는 끝내려는 생각이였지만 그의 재간으로서도 도저히 수습할 수 없어서 10년간이나 지속되였던 그 대내란은 따져보면 “대자보”가 지속적으로 작용하면서 혼란을 조성한데도 원인이 있는것이다.

 

“문화대혁명”이란건 어떻게보나 근본 하나의 혁명이 될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반혁명”이라할수도 없는것이다. 근본적인건 모택동이 계급투쟁에 대한 인식과 타산이 틀린데있은것이다. 모택동의 위신은 중국혁명이 승리함으로 해서 나날이 높아갔던바 그 자신에게 교오하는 정서가 생기였고 개인적인 독단이 발전하여 당내의 민주와 법제를 파궤하였기에 결국은 불행한 후과를 초래하고말았던 것이다. 우리 나라는 본래 정치, 경제, 문화가 락후한축이였다. 그렇다는것을 알면서도 혁명이 승리한 후 제때에 그런 상태를 벗어메체지 못한것이다.  그리고  문화, 교육, 지식분자 에 대한 여러방면의 장기적인 편향도 있었으니 그런것들 다가 “문화대혁명”을 일으킴에 비상히 중요한 작용을 한 것이다. 봉건전제주의류독으로하여 영향이 있는데다 공산당은 집정후 성숙된 리론과 효과적인 감독이 결핍했고 반수방수(反修防修)를 맞지 않게도 국내, 당내에다 확대했거니와 공상적인 사회주의목표를 세우고는 그것을 추구한것이다. 이런것들 다가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발동된 주요원인으로 되였던 것이다.(胡喬木: “文革”不是革命,是內亂!)

하건만 그 진가를 도저히 알수없었던 수억만의 중국백성은 모택동을 붉은태양으로 여겼고 그가하는 일이면 모든것이 다 옳다면서 하늘높이 떠받든 것이다. 그를 숭배함이 지어는 신을 믿듯이 열광적이였으니 국민의 무지를 더 말해 무엇하랴! 

“갈수록 수미산”이라 온 사회의 인간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으면서 점점더 험한 가시밭으로 이끈것이 바로 도처에 나붙은 대자보와 구호였던 것이다.

“모주석은 영원한 태양!”

“모주석을 목숨으로 보위하자!”

“누가 모주석을 반대하면 우리는 그의 개대가리를 까부실테다!”

“문화혁명을 끝까지 진행하자!” 등등.

온 사회의 분위기가 그러했기에 만약 그 누가 그와 당에 대한 티끌만한 회의나 불만을 품어도 끝장을 보는 판이였다. 대자보가 곧바로 대민주를 발양하는것이라 했다. 과연그러했단말인가?

1978년 12월 13일 중공중앙사업회의 때 엽검영이 선포한 통계수자 한토막만이라도 한번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잔혹하게 박해받은 사람이 1억이니 전국인구를 9억으로 칠 때 그 비례는 9분의 1이 되는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자 2천만을 넘고 손실본 국민경제는 인민페로 8천억원에 달한다.”

 

중국은 문화혁명때 명실공히 세상어느 한 나라도 따를 수 없는 방대하고 튼튼한 필부대(筆部隊)를 갖고있었던 것이다. 대재난을 만듬에 “대자보”가 100프의 작용을 했다. 그렇다면 손에 붓을 잡고 그것을 직접 쓴 사람은 어떻게 봐야하는가?

1980년 9월, 5계전국인대3차회의는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45조의 이른바 “4대자유”라는것을 취소하기로 결정했고 두해지나 1982년 11월하순부터 12월상순에 이르는 사이에 개최된 5계전국인대5차회의에서는 수개된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을 통과했는데 “4대자유”에 유관한 조문(條文)이 철저히 지워지고말았다.  

대자보는 끝내 력사의 흔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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