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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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혈 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9
2011년 11월 02일 08시 04분  조회:5722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역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3부

 19.      

   산촌마을의 아침 대기는 참으로 맑기도하다.

  《그 적삼 벗지. 땀에 절었는데 씼어야지.》

   서일의 처 채희연은 롱짝에서 차곡히 개여진 흰 광목적삼을 꺼내여 남편앞에 내놓으면서 갈아입게 하고는 식솔들이 입던 옷가지들을 거두어 함께 함지에 담아갖고 빨래하러 앞내가로 나갔다.   

   어제까지 正義團 무장대원들의 옷을 빨래해준 그녀다. 마을에는 지난해 가을부터 계화와 정해식이 로씨아에 가서 좁쌀 5마대를 주고 바꾸어 온 재봉기(裁縫機) 다섯틀로 피복공장(被服工場)을 세워 전문 대원들이 입을 복장을 만드는 외 20여명의 부녀로 조직된 자원봉사대가 따로 있어서 그들의 빨래까지 전문 담당하고 있었다. 채희연이는 제집의 농사일을 비롯하여 가무(家務)를 혼자 떠메다싶히 하면서도 짬만 나지면 자원봉사에 나서군했다. 

   나이가 어느덧 11살이 된 아들 윤제는 네 살 위인 누나 죽청이와 여러해동안 마을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보살핌을 받았다. 한데 죽청이가 중학반을 졸업했으니 이젠 누나의 보살핌을 전처럼 받을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건 없었다. 이제는 소학교 5학년생이 됐으니까. 윤제는 총명한 애였다. 명동학교에도 漢文課가 설치되여 학생들이 넙적글을 배우고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차지 않은지 윤제는 늘 옥편을 펼쳐가면서 기타의 서적들을 즐겨보았다.

   이날은 방학첫날이였다. 학교로 가지 않고 집에서 놀게 된 윤제는 제 아버지가 손수 지은 <<會三經>>이 눈에 띠이자 그것을 쥐여 펼치였다.

     夫施不適量 非仁也, 裁不中度 非智也, 行不稱權 非勇也.
 《부시불적량 비인야, 재불중도 비지야, 행불칭권 비용야.》

   윤제는 한글자 한글자 뜯어 읽었다. 소경이 담벼락을 만지는 격이였다. 

   죽청이가 옆에 있다가 귀담아 들어보니 구절구절을 생생하게 되새겨지는지라 아버지가 번역해준 그대로 뇌이였다.

  《대저 베풀되 되질에 맞지 않으면 어진 것이 아니요 자로 재되 되질에 맞지 않으면 지혜로운 것이 아니며 행하되 저울질에 맞지 않으면 날램이 아니네라.》

  《누나야, 건데 이건 어떻게 번역하나?》

   죽청이는 동생이 손가락으로 짚는 글자들을 읽으면서 번역한다.

  《<是故 推小及大 恕之至也ㅡ 시고 추소급대 서지야>
  그러므로 작은 것을 미루어 큰것에 미침은 용서함이 지극한 것이요,
   <矯枉質直 識之審也ㅡ 교왕질직 식지심야>
  굽은 것을 바루어 곧게 함은 분별함이 자세한것이요,
  <舍輕持重 義之決也ㅡ 사경지중 의지결야>
 가벼운 것을 버리고 무거운 것을 가짐은 옳음의 결단이니라.》

   그는 아래에 이어진 문구마저 계속읽으면서 번역했다.

  《되질함은 범위가 있고 잣대질함은 거리가 있고 저울질함은 표준이 있나니 범위를 정함은 중심을 세움에 있고 거리를 미루어 아는 것은 위아래 사방을 맞춤에 있고 표준을 세움은 중간을 잡음에 있느니라.》

   윤제는 두눈을 크게 뜨고 제 누나를 대견스레 보는 것 같더니 머리가 엉뚱하게 돌아져 어디 얼마나 아는가 볼까고 등사로 초판된 경서의 전부를 한 장 한 장 번져가면서 다 읽고 번역을 외우라고 했다. 그랬다가 그는 되려 요 괘씸한 애야 모르거든 허심하게 배울 념은 안하고 왜 버릇없이 노는거냐 하고 꾸중을 듣고말았다.

   윤제는 힛죽 웃어 무안스러움을 뭉때리면서 물었다.  

  《누나야, 이건 아버지께서 지은거 맞지?》

  《맞잖구, 백포 서일지음이라잖았니.》

  《듣른사람 이걸 제대로 번역하자면 무척 힘들꺼야, 그렇지?》

  《물론이지. 직접 지은이를 내놓고는.》

   어느덧 시간이 가서 어머니가 빨래함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죽청이는 그제야 어머니의 일손을 돕지 안았다는걸 깨닫고는 스스로 미안해하면서 밖으로 달려나가 씻어 온 빨래를 함께 바줄에 널었다.

  《오늘 왠지 그 사람이 자꾸 눈에 삼삼하구나.》

   희연이가 빨래를 널면서 은연중 내뱉는 소리에 딸이 의아스레 놀란다.

  《누굴 그래요, 어머니?》

  《최삼용란 사람을 말이다. 내 간밤꿈에 그이를 또 봤네라.》

  《아니 어머니두 어쩜! 호호호....친분이 깊었던 남잔가요?》

  《요 발칙한 년 보지 원!》

   딸이 엉뚱하게도 의심을 품는지라 어미는 힐끗 가로보고나서 알려줬다.

  《네 아버지 소시적 딱친구였네라. 길웅의 아버지랑 민수의 아버지랑 다같이. 짜개바지 시절부터 고향서말이다.》

  《그렇다면 죽마구우겠네요! 그렇지요? 오, 알만해요! 아버지랑 소시적 한서당서 공부했다는 네 친구중 그 사람아닌가요? 맨먼저 장가가 자식보고....인천이라던가, 어디서 장사를 한다던 그 아저씨!》

  《그렇네라. 네가 어릴적에 우리 집에 왔다간적도 있네라. 기억나느냐? 늘 인간삼락을 주장해서 동무간에 놀림받더니만....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있는지....간밤의 꿈애기를 했더니만 네 아비도 언젠가 꿈에 몇번  봤다면서 오래도록 소식막혀 답답하다 하시는구나.》

   과연 최삼용은 이런 불안스런 세월속에 어떻게 살아가고있는지?....

   “일민보”가 이번 기미운동에 관해서 중국신문이 발표한 몇가지 통계수자를 그대로 옮겨 실었다.

   

   기미운동에 국내에서만:

   시위운동참가자ㅡ 1353, 768명.

   현지피살자ㅡ 6, 679명.

   부상자ㅡ 14, 610명.

   수형자ㅡ 18, 359명.

   소각된 건물ㅡ 5, 678호.            

         

   이무렵 상해임시정부 내무부는 7월 한달에만도 비밀리에 특파원을 함남, 경북, 서울, 충북, 평남, 강원, 황해 등지에 파견했고 교통부, 통신부에서도 활약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련통제가 실시되면서 남만의 獨立團에서 완고한 늙은 선비의 집합체인 紀元獨立團이 점차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그것이다. 상해임시정부 기관인 평안북도 독판부와 독립단체본부에서 김승학(金承學), 백의범(白義範), 백기준(白基俊) 등 세사람을 국내에 특파원으로 파송하여 련통제와 독립단지부를 조직케 했다. 백의범과 백기준은 용천, 의주 등지에 잠입 활동하고 김승학은 편안남도와 황해도일대에 밀행하면서 연통제와 독립단 지단설치에 노력한 결과 80여개소의 지부를 설치하고 수백명의 청년과 많은 액수의 군자금을 모집해갖고 남만 독립단본부에 돌아온 것이다. 이로부터 紀元獨立團은 공화적민주주의를 제창하는 상해입시정부를 반대하여 정면으로 맛서오던 종전의 태도와 립장을 고치게 된 것이다....

   명동학교 운동장의 한쪽모퉁이다. 창격훈련을 하다가 쉬는참.

  《통화현서 우리 교포 객주집이 왜경의 수사를 받았다며?....》

  《평안도 선천 태산면장이 사살됐다는구나!》

  《그 사건에 이광혁이란 청년이 잡혔다잖아. 한데?....》

  《방금 그쪽서 새소식이 또 하나왔어. 그 사건을 획책한 일행 몇사람  기차타고 평양가서는 백주에 시가전을 했다는구나. 왜경을 총살하니 관공리가 크게 근신하는데 함일이라구 하는 우리 사람이 잡혔다나, 젠장!》

  《또 있어. 고관면에 가서 주구배를 토벌했다는가. 그건 희소식이지.》

  《그거 다 남만 독립단에서 해낸 전공아닌가, 부러워!》

   이러저런 소식에 정의단 무장대원들은 속이 다시한번 들쑤셔났다.

  《남은 그러는데....우린 이러고만있을건가?》   

  《아따, 서단장각하가 하신 말씀 벌써 잊었나, 때가 오면 싸우리라던.》

   한 대원이 충고하는 것 처럼 붙는 불에 키질했다.

   바로 이런 때에  성묵이 채오화 함께 나타났다. 그 둘은 근일 왜의 주구배로 전락된 자들이 간도에 있는 일본제국총려사관의 사촉에 의하여 동간도와 북간도에다 일민단(日民團)과 보민단(保民團), 강립단(强立團)을 세우려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여 이를 미연에 제거하기 위한 방책을 의군부(義軍府) 지도부와 함께 연구하러 화룡현 신봉동 명월구에 간지 3일만에 곧바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대원들의 흥분 된 얼굴을 먼저발견한  성묵이 무언가 다른 감촉이 느껴져 방금 무슨 얘기를 그리들 진지하게들 하고있었느냐 물었다. 그러자 방금전에 입을 놀리던 대원이 숨기지 않고 남만주 독립단이 적과 싸우는 얘기를 했노라 하고는 불만스러움을 토로했다.    
 《남은 나가 싸우는데 우린 언제까지 이러고만있을건가요?》

   그 장소에 훈련감이자 무장단의 부단장인 라중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못들은척 우선 잠자코있었다. 대원들이 갑갑함을 못이겨 가끔 불만을 토하는건 자연스러운거라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는 다 말했느냐, 참 잘했어 하듯 빙그레 웃고나서 일어나 말문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적의 포위속에서 몇해째 훈련을 계속하고있는데 그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어느때건 한번 크게 겨뤄 볼 전쟁을 맞이하기위해서가 아니냐. 한데도 인내가 부족한 조급증에 견디지 못해 서둘러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을 생각해보았는가?.... 결국 허점만 드러나 위험하게 될것이라면서 그는 이야기를 하나 할테니 어디 들어들 보라했다.

  《내 이 얘기는 방금끝난 세계대전기간 영국군과 토이기군이 싸울때의 일이다. 영국군 사령은 밀정을 보내여 토이기 병사들의 상황을 알아오도록했다. 그래서 토이기군은 생활의 궁핍으로 시달림을 몹시받고있음을 알게됐다. 이같이 탐지가 되자 영국군사령은 즉시 궐연 12만보루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비행기에 실어 토의기군의 진지에다 투하했다. 토이기군인들은 배가 고픈데다 한창 담배초기까지 들던차라 그놈의 <례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지라 이 게 웬 <복>이냐 얼싸좋다고 덤벼치면서 서로 빼앗아 피웠다. 한데 그놈의걸 피운자는 모두 그만..... 생각들해보라, 어떠게 됐을가?》

   모두들 량미간을 끌어 모으는데 한 대원이  먼저 무릅을 탁 친다.

  《그렇지, 모두 취했어! 취한거야! 그 담배속에는 아편이 들어있었을거야!》

  《바로 그렇지. 그래서 토이기군은 녹작지근 맥을 못쓴거고 영국군의 진격해오니 방선이 어떻게 됐겠는가, 홍수에 토담무너지듯  개꼴이되고만거야.》

   라중소는 말을 마치였다.

  《라부단장님!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경각성을 잃고있었습니다.》
 
 한 대원이  깨달음이 생겨 자아반성을 이렇게 했고 다들 훈련을 게으름없이 하리라 스스로 결심하게됐다.

    묵이도 전쟁얘기를 해서 기분을 돋구었다.

  《천팔백 공 오년에 있은 일이라 한다. 불란서가 오지리와 싸울 때 나폴래온이 오지리군대를 오래도록 포위하고도 섬멸할수 없었다. 대치상태에서 오지리군이 포위를 돌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나폴레온은 오랜 생각 끝에 간첩을 오지리군내부에 들여보내기로 맘먹었다. 간첩은 이태리군의 맥커통수를 찾아 <불란서에서는 나폴레온을 반대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나폴레온은 틀림없이 나떨어지고말것이다. 그러니 좀만 지나면 형세는 좋아질 것이다.> 라고 나발불었다.

   맥커통수는 그말을 곧이듣고 그만 경각성을 늦추고말았다. 그래 어떻게 되었는가? 불란서군이 성밑까지 온 것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서 깨달은 것이다. 허나 때는 이미늦었다. 오지리군은 불란서군의 강력한 공세에 배겨내지 못하고 투항하고말았다. 맥커는 자기의 칼을 나폴레온에게 바친것이다.》

  《나폴레온이 간첩전을 멋지게 해냈군!》

  《맥커장군이 너무도 무경각했지. 머리는 뭘할려구 달고있었나?  그것이 혹 날조된 요언이나 아닐가 의심하고 조금만이라도 경각성을 높혔더래두 맥커장군은 그런 꼴은 되지 않았을거다.》

   대원들은 이야기를 듣고 너한마디 나한마디 소감을 말했다.

   단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장방형의 펼쳐진 태극기가 걸려있고 왼쪽벽에는 액틀에 넣은 檀君神租畵像이 걸려있는데 그 위에 눈에 확 안겨드는, <<독립을 위하여 싸우자!>>는 한글구호가 희칠을 한 반듯한 벽에 송조체의 커다란 먹글씨로 또렷하게 씌여있  아래에 正義團이 제정한 4대강령과 7대규약, 3대부신(符信)이 있었다.

   

   4대강령

   ㅡ. 정대한 의리의 찬양.

   ㅡ. 정당한 의무의 이행.

   ㅡ. 정직한 의무의 장려.

   ㅡ. 정순한 의리의 찬동.

   7대규약

   ㅡ. 서약을 반드시 실천함.

   ㅡ. 명령을 반드시 집행함.

   ㅡ. 양민을 침범하지 말 것.

   ㅡ. 다른 단(團)을 간섭하지 말것.

   ㅡ. 규율을 반드시 준수할 것.

   ㅡ. 역무를 반드시 부담할 것.

   ㅡ. 망언을 하지 말 것.

   3대 부신(符信).

   ㅡ. 단장의 인증 또는 증권의 호수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복종하지 않을 것.

   ㅡ. 단장의 수집명령에 의하여 굴기(屈期) 집행할 것.

   ㅡ. 서약서와 동호의 증권이 있지 않으면 단원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 단 증권을 분실했을 때는 보증연서로서 청원함, 또한 본 증권의 호수를 비밀로 할 것.

     커다란 탁상을 중심에 놓고 량켠으로 나무의자 10여개가 놓여있는, 그리 너르지 않은 방안은 해광이 잘들어와 늘 밝고도 정결했다.

   正義團의 團長室은 서일의 집무실면서 중진들이 매일 모이는 회의실이기도했다. 중요인물들인  계화 , 라중소, 이홍래, 채오, 량현 등은 단장실옆방에서 각기 제사무를 보았다.

   이날 오후 명동학교의 널직한 마당에서 500명 무장단원의 집회가 있었다. 일본의 침략과 조선의 현상황에 대한 서일단장의 보고를 듣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동양평화>를 부르짖으면서 린근의 약소국들을 삼키는 철두철미한 침략자인 것이다. 그자들은 천방백계를 다하여 침략의 리유를 찾고있는데 때로는 침략을 당하는 자 본신의 나약과 무능함에도 주요한 원인이 있으니 마땅히 잘 반성해 필요가 있는것이다.

   일본이 류쿠를 삼킨 것을 보기로 하자. 당시 류쿠(琉球)군도는 때로는 중국에 조공했고 때로는 일본에 조공했다. 그들은 주권이 분명하지 못하여 어느 국가에 귀속한다고 딱 잘라 말한적이 없었다.

   1873년 이 섬의 어선이 대만동안에서 좌초되였는데 어선의 어민들이 대만의 포수들에 의하여 피살되고말았다. 이때 일본정부는 중국정부에 향하여 대만의 포수들을 처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그 요구를 거절하고말았다. 그 리유란 간단했다. 대만의 내부와 동부는 중국의 관할내에 있는 것이 아니니 관계치 않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혼동스럽기 짝이 없는 정부의 말이였다. 일본은 대만을 점령할만한 리유를 얻은 것이다.

   이듬해에 일본은 정식으로 출병하여 대만의 주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점차 대만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 것이다.

   그후 4년내에 일본은 공공연히 류쿠를 점령하고말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대만과 다르고 류쿠와도 다른 것이다. 우리 나라는 완전한 주권국으로서 력사가 유구한 것이다. 하건만도 서방의 제국주의, 이를테면 영국같은 나라는 고의적으로 대한이란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였음에도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다른 강국들도 이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의 대한은 일본의 칠성판에 오른 고기덩이가 되어버린것이다.

   미국은 어떠했는가? 1905년 루즈벨트대통령은 루드를 국무경으로 임명했다. 우리가 그의 도움을 받자고 하자 루드 국무경은 시간이 없다면서 우리 나라의 특사를 접견하지도않았다.....타인의 핍박에 의하여 고생하면서도 다른사람으로부터 원조를 받지 못함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조약에 따르면 고려는 마땅히 독립해야 한다. 그러나 고려는 독립할 힘이 없기에 성사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루즈벨트의 말이다. 우리의 대한이 과연 독립할 힘마저 없는 나라였단말인가? 그야말로 외국의 침략을 정당화시키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언론인것이다......

   일본은 1873년부터 이미 원대한 안목을 가지고 침략준비를 위한 밀모를 해온 것이다. 일본이 이 기간동안 침략한 곳을 보면 남쪽으로는 대만, 류쿠, 팽호이고 북으로는 싸할린섬을 차지하고 우리 나라를 합병한 것이다. 이제 또 만주와 씨베리아를 점령하려하니 46년간 계획해 온 원래계획의 절반은 이미 실현한 셈이 된다.》

   서일은 이것이 바로 <<동양평화>>를 부르짓고있는 일본의 작태라 점을 찍으면서 조선에 대한 그자들의 행동을 아래와 같이 구술했다.

  《일본은 한 때 정책을 변화시킨다고 하였다. 그래 변화시켰던가? 실제로 변화시키기도 했다. 세상사람들도 과연 그런줄로만 안다. 허나 그것은 외면적인 현상이였지 내막은 그렇지 않아 결국 모르는것이라 하겠다.

   첫째, 일본은 정책을 변화시킨다고 하였지만 이는 공언이요 실은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둘째, 정책을 변화시킨다해도 한국사람의 원한은 삭일수 없는 것이다.

   셋째,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미전부터 일본사람은 믿지 않는 것이다.

   넷째, 한일 량민족은 너무도 깊은 원한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이제는 화해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서일은 숙연히 귀담아 듣고있는 대원들을 일별하고나서 말을 다시이었다.

  《모두 알아야 한다. 깊어진 원한때문에 화해의 여지조차 없다는것을. 그렇지 않은가?.... 하기에 일본이 자기들의 정책을 변화시킨다 해도 때는 이미 늦은것이요 실상 변화시키더라도 문제는 근본 해결할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 2천만 겨레의 가슴속에는 일본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감정밖에 없다. 한일합방때로부터 굳어지기 시작한 이 감정은 뿌리가 깊으니 세대를 이어 풀릴 것 같지 않다. 물론 일본도 과거의 정책에 시행착오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가 요구하는건 다만 <독립> 두글자뿐이다! 가령 우리가 왜정의 시기에 독립을 성취못하더라도 독립에 대한 마음은 종족이 멸할때 까지 이어질 것이다.》  

   서일은 잠간 숨을 돌리고 나서 계속이었다.

  《한국이 독립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 만국회의가 약소국가를 구원하는 법률을 세웠는가?.... 한국이 독립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국제에 내놓고 론할 문제도 아니며 더구나 구걸해서 해결될  문제는 더욱 아닌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국제적인 권고에 의하여 도덕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도 아닌것이다. 왜서 아니라는가? 한마디로, 이는 단순한 인성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원한문제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기에 나는 타인이 우리의 운동이 옳이니 그르니 평가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이는 오로지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를뿐이다.》

   연설은 청중의 열열한 갈채를  받았다. 

   “일민보”와 “ 국보”는 일제히 그의 연설요지와 함께 평론문장까지 실어서 독자들을 널리 교육했다.

   사흘이 지나 7월 10일. 서일은 뜻밖의 손님을 하나 맞이하게 되었다.

   이날은 그가 있는 단장실에 정신과 계화를 비롯하여 孔敎會의 김 붕, 김일봉과 김성 등 전날 일본총리 하라기요우를 서힐(書詰)한 그 여섯사람이 한자리에 다시 모여 형세를 연구하고있었다. 근일들어서 在間島日本總領事館은 동만과 북만일대에 있는 기독교나 다른 어느 교단체보다도 특히 大倧敎와 孔敎會의 활동을 더 엄밀히 주시하면서 이 두 교가 합치여 조직한 正義團의 활동 그리고 이미전부터 이 지방에다 자리잡고 은밀히 자라온 독립군무력에 대해서 정황을 탐지해내려고 신경을 쓰고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여 그들은 이를 대처할 방법을 재삼론하고있었다. 물론 이일로 이미  묵이와 채오가 義軍府를 찾아가 동조협조의 방법으로 친일조직들을 제거하기로했지만 세심한 조사와 대응책을 세우는 것이 실제적으로 더 필요했던 것이다.             

   왕청, 용정, 화룡은 물론 밀산, 동경성에 대종교도가 많아 웬간한 친일세력이 아니고는 발을 붙이기 힘든 것이다. 다시말해 이런 지방에서는 적의 세력이 민간에 까지 뿌리내려 지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적의 령사관이나 경찰서가 있기는 해도 여기서는 그것이 통치력이 없었기에 日民團이니 保民團이니 强立團이니 따위를 세워 점차 저들의 세력을 구축하려 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데 그것이 남만같이 되기는 어려운것이였다.

   그럼에도 적은 온갖수단을 다해서 그것들을 세우려 하면서 밀정을 배양하여 들이밀려할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正義團은 정신차려야 한다면서 단원각자는 물론 교도들에게 립장에 흔들림이 없이 경각성을 한결 높일 것을 강조하는 한편 支團은 전주민을 책임지고 발동하여 자기 마을을 자각적으로 지키게끔했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에 경비대장 이교성이 단장실에 들어와 서일에게 귀속말로 최삼용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고 보고했다.

  《뭐라? 최삼용이가!》

  《예. 서단장님과 막역친구라면서....막상 그렇다해도 안그렇습니까?》

   이교성은 신원이 확인되기 전에는 조사를 해봐야겠기에 경비실에 앉혀놓고 우선 먼저 알린다고했다.

  《교성이! 인자 뭐라구했소? 최삼용이라했지? 그가 왔다는 소린가? 어데 있는지 이리루 데려와야잖아. 그인 또한 내친구기도해.》

    성묵이가 자리에서 벌꺽 일어나 서일을 향해 만나자는 뜻을 내비치는데 흥분된 목청이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

   이교성이 물러간지 이윽하여 허활이 최삼용이를 데리고왔다. 보아하니 그들은 마을에 들어서는 그를 경비실에 잡아놓고 조사를 아느새 한 것 같았다. 이쪽에서는 뜻밖의 상봉이라 기쁨보다 외려 놀램이 더 많았다. 

  《어이구! 친구만나기가 이리두 힘들줄이야, 원!》

   최삼용은 반가움절반 불만절반이였다. 자기는 서일의 친구라 밝혔는데도 보초선에서 막무가내로 억류하고 이것저것 지지콜콜 캐물으면서 선선히  대면시켜주지 않는것이 저으기 유감스럽다는거다. 

  《왜놈들만 경비할줄을 알까. 우리도 제도가 있어서 무릇 낯선 손님이면 누구를 분문하고 의례 조사를 받는거니 그리 알고 노여움을 삮히라.》

   서일은 그에게 이정도로 타이르고나서 다른사람과 인사를 시켰다.

   다들 서일단장의 친구라니 각별한 친절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인사를 마친 최삼용의 거동은 거북살스레도 부자연스웠다. 눈길은 단군화상과 태극기와 벽에 새겨진 구호에 자주날려가는데 어굴에는 긴장한 빛까지 어린다. 아마 숭엄함이 친절을 망각한 압박감을 안겨주는 모양이다. 

  《바깥벽에다는 <명동학교>라 간판을 걸어놓구서는?....》

  《뭐가 잘못된 것 같다는말인가? 내가 이 학교를 세우고 여적지 교장노릇을 하고있다는걸 모르고왔나보지? 이건 교장실이야. 태극기하고 천조영정을 대하니 어때? 아마 본지도 아득할거야. 그렇지?....자, 집에 가자!》

   서일은 최삼용을 제집으로  끌었고   묵은 친구가 온 것을 박기호에게 알리느라 저켠 교무실쪽으로 달려갔다.

  《처랑 아이들이랑 다 무사하니? 그지간 어떻게 보냈냐? 》

   서일은 친구를 데리고 단장실을 나와 집쪽으로 걸음을 놓으면서 말을 꺼냈다.

   최삼용은 그지간 어떻게 보냈느냐의 물음에 대답이 언죽반죽이다.

   (이자식 오장이 바귀지 않았나?)

   “까마귀날자 배떨어진다”고 적이 정의단의 동태를 탐지하려고 애쓰는  이때 그가 돌연히 나타났으니 서일은 자연히 의문이 갈마들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예전모양으로 친절히 대했다.

   서일의 처 희연이는 전날 꿈에 본 얘기까지 하면서 최삼용을 반겨맞았다. 최삼용은 정말 그랬느냐 기뻐하면서 제 둘째아들놈과 동갑인 윤제의 머리를 쓰듬어주면서 너도 제 애비를 닮아서 총명이 과인가겠구나했다.

   <<칭찬말아요, 제앞글도 제대로 못읽는 앤데, 뭐.>>

   죽청이가 말했다.

  《네가 죽청이지? 이젠 제법 처녀꼴이 나는구나!》

  《기껏 먹어야 올해 열다섯살인데요 뭐. 중학을 방금 졸업했어요. 이제 개학이 되면 이웃마을가서 거기학교 선생노릇할거얘요.》

   희연이가 알려주었다.      

   오누이는 정주간으로 나가서 <<會三經>>을 다시펼치였다.

  《사람의 낳는 것이 마치 싹이 흙에 있음과 같아 때는 일르고 늦음이 있으며 흙은 기름지고 메마름이 있어 혹은 알곡이요 혹은 쭉정이라 알곡은 좋은 땅에서 되고 쭉정이는 굳은 땅에서 되는것이니 오직 중간땅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섞이니라.》

  《누나야, 그럼 이건 어떻게 번역하나?》

  《좋은 땅에 박히면 상등뿌리가 되고 굳은 땅에 박히면 하등뿌리가 되나니 상등뿌리는 밝은이요 하등뿌리는 어리석음이니라.》

   웃방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 귀를 재고 듣고있던 최삼용은 질끔 놀랬다. 어쩌면 그들이 자기를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했던 것이다.

   그는 과연 서일이 의심품고 속으로 건너짚은대로 오장이 바뀐 사람이였다. 인천에서 3.1시위에 참가했던 그는 경찰에 잡혀가 취조를 받았다. 취조과정에 경찰은 그가 대종교의 주요인물이자 만주 독립운동진영에서도 지도급인물로 부각되고있는 서일과는 어려서부터 막역지우(莫逆之友)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를 넘겨받은 조선주둔일본군의 정보기관에서는 만주지역에 있는 독립군의 실태를 탐지해 바치는 것을 교환조건으로 그와 그의 식솔들을 살려주기로 했다. 하여 최삼용은 그자들의 첩자신분으로 밀파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쪽 세친구는 전혀 무감각한 듯 화기애애한 분위속에서 지나간 옛일들을 회억했고 파란만장한 세월속에서 어떻게 하면 무난히 살아갈가 하는 화제를 내놓아 최삼용이 또한번 “인간삼락”을 부르짖게했다.  

   서일은 마을경비용의 총외는 일체무기를 모두 감추도록 밀령을 내렸다.  그래서 최삼용은 대원들이 經書나 한자를 배우고 체육시간이라 하여 빈주먹에 도수련습이나 하는 모양을 약 3일가량 구경하다 그만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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