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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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반우(反右)와 문혁(文革)에 대한 단상
2013년 03월 23일 02시 56분  조회:4399  추천:5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반우(反右)와 문혁(文革)에 대한 단상

나에게 성이 권씨인 옛친구가 하나있는데 나보다 몇 살 손우인 그는 현위생계통에서 사업하다가 나이가 되니 퇴직을 했다. 내내 우파모자를 쓰고 숱한고생을 한 그도 청년시절 한때는 내같이 문학에 뜻을 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만건데 그가 한번은 나에게 자신의 경험이라면서 심심히 권유하는 것이였다. 나더러 그 누구건간에 그가 만약 공산당원이라면 그런 사람앞에서는 천만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였다. 그건 왜선가고 내가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인즉은 그들은 다가 머리에 뿔난거야 김선생이 자기맘만큼믿고 고려없이 아무말이나했가는 뿔에 떠밖혀 작살이 나는거야 하는 것이였다. 공사병원의 같은 우파 김의사도 그렇게 말했고 내가 초중시절 벌조중(勃朝中)에 다닐때 존경하고 가깝게보냈던 지리교원 리성실(李成實)선생님도 언젠가 나에게 그같이 일깨워준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이나 그제나 내생각이 어떠면 어떤대로 내뿜는 성질인 나는 당시 내가 나이어렷기에 반우투쟁에 말려들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것이 대체 어떤 운동이였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겁을 주었을가했다.
돌이켜보면 사실 자기생각 자기견해라해서 맘놓고 다 토로 할 수 없었던 것이 지난날 중국사회의 실정이였던 것이다. 그들의 권유에 일리가 있는지라 나는 각별히 말을 조심하면서 한때 흥미를 가지고 반우파투쟁에 대해서 연구했다.

1957년의 반우파운동은 모택동이 친히 계획하고 발동하였는바 그것은 중국의 지식분자들에게 지우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잎힌 일대의 재난성적인 잘못된 운동이였던 것이다. 원 <<인민일보>>사장 이였던 호기위(胡紀偉)의 말을 들어보면 호요방이 당중앙주석이 되자마자 우파들을 모두 평판해야한다고 했다는거다. 그런데 등소평이 동의하지 않았다나?  알고보니 원인이 있었다. 당시 당중앙의 반우파운동령도소조 조장이 바로 등소평이였으니 반우파운동은 그가 집행했던 것이다.

1957년 그때에 중앙통전부장이였던 리유한(李維漢)은 자기의 회억록에다 다음과같이 썼다.
“공상좌담회기간에 어떤 사람은 진정한 자본가라야 다해봣자 얼마안되니  대표성이 크지 않다했다. 그래서 규모를 부단히 늘구었는데 북경에서 오금수(吳金粹), 천진에서 동소신(董少臣), 상해에서 리강년(李康年) 등을 찾아 그들더러 명방(鳴放)을 하라해놓고는 우파로 몰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는것을 ”인사출동(引蛇出洞)“이라했다. 적대투쟁방법을 그같이 인민내부에 써먹었으니 그것은 곧바로 적아를 뒤섞어놓은 것이다”
1957년에 모택동은 전적으로 그같이 전쟁때나 쓰기 적합한 이른바 “유적심입(誘敵深入), 취이섬지(聚而殲之)” 즉 적을 깊이끌어들이여 섬멸한다는 따위의 책략을 썼으니 그건 그가 많은 자기사람들을 완전히 적으로 인정하고 반우파투쟁이라는 명의로 한차례 전쟁을 발동하듯이 잔인한 소멸전(掃滅戰)을 했다는것을 말한다.
                                 
(<<歷史學家茶座>> 第13輯)

모택동은 반우파운동을 발동하면서 말하기를 “우파는 극소수다. 전국적으로 다해봤자 몇천명, 많아봣자 몇만명밖에 않될테니 그네들이 세상을 뒤엎지는 못할것이다”했다. 그런데 결국은 우파가 55만에 이르었으니 반우파운동이 확대되여도 기막히게 확대되였던 것이다. 그때의 “숙청방법”이라는 것을 보면 지어는 지표를 내와서는 그 지표를 아래에다 떨구는 따위의 현실적이 못되는 야만적인 수법을 쓴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세상 그 어느 나라에서 자국의 지식분자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잡아먹은적이 있었던가? 과연 지천이 들어도 통탄하여 분노할 일이아니고뭔가!  알아야 할 것은 그때 모택동은 방침을 내놓았을 뿐 구체적인 사무는 보지 않고 등소평에게 맏겨버렸다는 그것이다. 55만의 우파가 어딘가!
등소평, 그역시 생전에 그같이 대원안(大怨案)을 만든적이 있었다면 그누가 쉽게 믿으랴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실인 것이다
모택동의 인치(人治)주장을 마감까지 과감히 반대하면서 법치(法治)를 주장해온 고집스러운 그였지만 모택동이 사망하고 “사인방”이 꺾꾸지자 “잘못을 바로잡는 형세”에는 어쩌는 수 없이 우파를 평판해서는 안된다는 제 고집을 접고만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게 과연옳았다. 아니그러고 고집부렸다면 뭐가되겠는가? 그랬다면 그역시 쌓은 공이 얼마였던지간에 국민의 빈축을 영원히 면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깨달음과 뉘우침은 그야말로 귀한 것이다.
“모택동은 1957년이후부터 착오가 점점 더 많아졌다.”
이것은 등소평이 한 말이다. 그의 그러한 평가는 옳은것이다.

총적으로 보면 1957년이전에는 모택동이 령도하는 것이 옳았지만 57년반우파투쟁을 해서부터는 점점 망태기를 캐기시작한 것이다.  

“반우파운동은 정치상 한길을 걷는 사람, 합작하는 자를 배척했거니와 문화예술계의 으뜸가는 인재들을 쓸어버렸고 사상계의 철인들을 요절시켰으며 조국건설에 깁급히 수요되였던 수많은 지식분자들의 전도를 망쳐버림으로 하여 중화민족과 공화국에 아주침통한 국상(國殤)을 입힌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더한것은 계급적인(실상은 진정한 무산계급도 아닌) 전면적전정을 야기시킨 그것이였다."
                          
(2010年10月30日. 文汇报. 读书周报)

 

단번에 55만에 달하는 우파분자를 만들어내여 그들을 엄벌에 처했는데 그 대다수가 로동개조를 하다가 문화혁명이 끝나서야 비로서 명예를 회복했다. 거의가 일생을 망치고만것이다. 생명을 잃은이는 또 얼마였겠는가!....

나는 반우파운동을 보고  문화혁명을 친히 겪으면서 깨달은바가 있다. 무엇인가? 국가에서는 건국이래 약간의 력사문제의 결의에 대한 선전을 중시해야한다는 것, 문혁의 잔얼들을 깨끗이 숙청해야 한다는 것, 문혁기념관을 세워야한다는 것,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뉘우침이 없다면 력사는 또다시 반복될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하야 한다는 것 등이다. 투서기기(投鼠忌器)라고 기물을 깰까봐 쥐를 때려잡지 않아서야되겠는가, 요새 인터넷을 보면 어떤 네지튼들은 공공연히 반우파투쟁은 옳았다느니 문화혁명을 다시해야한다느니 뭐니 나발분다. 그따위 나쁜놈은 견결히 잡아버려야 한다.

내가 말하려는건 국가가 대중이 바라는 법치(法治)는 중시하지 않고 그 어느 한 개인이 세도를 부리는 인치(人治)를 하게 놔둔다면 차례지는건 오로지 전국민이 이미 맛볼대로 맛본 재난이 다시돌아올뿐이니 국가는 전면적인 교육을 일으킴으로써 공화국내에 다시금살아날 수도 있는 황권사상(皇權思想)을 그 어느때든 꼭 철저히 매장해버려야한다는 그것이다.
강조하거니, 국민모두가 지난때의 “반우(反右)”는 중국의 원기(元氣)를 훼멸했고 “문혁(文革)”은 중국의 령혼(靈魂)을 훼멸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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