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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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죽음에 대한 모택동의 태도
2013년 10월 17일 01시 20분  조회:4945  추천:3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죽음에 대한 모택동의 태도

 

 

1951년 1월 21일, 모택동은 상해시위에 보내는 전보에서 지시하기를 “상해같은 이런 크 도시에서는 금년내에 아마 2,000명은 처결해야 문제가 해결될것같다. 춘기에 300~500을 죽여 적의 기염을 꺾어놓고 민기(民氣)를 높혀야 한다.

3월 18일, 모택동이 천진에서의 반혁명진압에 관한 보충비준을 보면 ”반드시 참답게 연구하고 주밀하게 포치하여 몇번 많이죽여야 문제가 초보적으로 해결될것 같다 ....금년내에 1,500명을 죽여야하는데(이미죽인것 150명)  4월말전에 먼저 500명을 죽여 계획을 완수한다면 우리는 곧 주동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큰도시와 중등도시들에서도 따라서 모두 반혁명분자를 몇차례 많이 붙잡고 많이 죽이라고 “요구”했던것이다.   

3월24일,모택동은 요수석(饶漱石)에게 전보로 “상해와같이 이렇게 큰 대도시에서는 몇 번 많이 붙잡고 많이 죽여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4월13에 남경시위에다 반혁명진압에 관해 비준한 것을 보면 “지난때 거기서는 손이 너무나작아 살인을 크게 과시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철저히 전변해서 아주좋다. 성적이 커 앞자리에 섯다.”고 칭찬했다.

모택동은 살인을 “과시”하지 않으면 “손이 작다”고 엄하게 비평하면서 여러번이나 손이 크게 많이죽여야한다고 독촉했던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이면 그 후과가 어떠리라는건 모택동도 아는지라 많이 붙잡고 많이 죽일때는 잘못붙잡고 잘못죽이는 현상이 없게하라는 말을 한 것이다.    

3월30일,모택동은 산동분국에다 보내는 반혁명진압지시에 “반혁명을 일찌기죽이건 늦게죽이건 큰관계없다..... 하지만 무모하게 잘못죽인다면 영양이 매우좋지 않은것이다.”고 했다. 이런말을 후에 기등규(纪登奎)와도 하면서 “죽이지 않아도될건 되도록 죽이지 말아야한다”고 했던것이다.

자료출처 <<建国以来毛泽东文稿>>

 

그러나 건국초 토지개혁때나 반혁명진압때를 보면 붙잡지 말아야 할 사람을 붙잡아 잘못죽인것이 적지 않다. 례를 들면 문화명인 김용(金庸)의 아버지   사량용(査良鏞)의 부친 사추경(查枢卿), 량우생(본명은 陈文统)의 부친 진신옥(陈信玉), 주자청(朱自清)의 아들 주매선(朱迈先)같은이들은 인민을 위해 좋은일을 했다. 혁명에 자금을 조달하고 공산당간부를 엄호했던것이다. 그들중에서 주매선(朱迈先)은 고중을 다니던 1936년도에 비밀리에 공산당에 들었거니와 당을 위해 적잖은 일을 한것이다. 그럼에도 1951년 토개와 반혁명진압운동때 “불법지주”, “반혁명죄”를 날조하여 처결한 것이다.    

 

김용(金庸),  량우생, 주자청(朱自清)은 다가 지명인사다. 모택동은 주자청(朱自清)을 높이평가했고 김용(金庸)과 량우생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등소평, 료승지 등 국가령도들이 청하여 접견을 받은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잘못된 그 억울한 안건에 대해서는 30여년이나 질질끌다가 사인방(四人幇)이 꺽꾸러져 80년대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평판을 한 것이다. 백성들이 그래 사람을 그같이 되는대로 붙잡고 죽이면 억울하다는것을 모르는줄알았던가?
 

세상에서 제일귀한것이 사람이고 제일귀한 생면도 사람의 생명인 것이다. 인생은 한번밖에 없다. 한데도 자기가 권리를 잡앗다해서 운동이라는 이름을 빌어 사람을 함부로 마구죽인다면 그것은 죄악으로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문제를 놓고 모택동은 벌써 섬북에 있을때부터 깊은조사연구도 없이 마구죽이면안된다면서 무고한 생명을 빼앗으면 그건 죄악이라했다. 그러면서 해결방안을 내오기도했던 것이다.    

새정권을 세운 후에도 그는 여전히 많이 붙잡고 많이 죽이였는데 역시 마구붙잡고 마구죽이지 말아야한다는 따위의 말을했다. 그러면서 잘못죽이면 영향이 아주나쁘다고도 말했다. 허나 속은 달랐던 것이다. 하기에 그의 물음에 기등규(纪登奎)가 자기는 사람을 잘못죽였다했건만 그는 왜서 사람을 잘못죽였는가고 캐묻지 않았거니와 잘못죽인 사람에 대한 사후처리에 대해서도 한번도묻지 않았던것이다. 모택동이 그같이 따져묻지 않으니 기등규(纪登奎)도 역시 잘못죽인 사람에 대한 평판문제같은건 아예 생각조차하지 않았거니와 누가 물으면 그저 건성으로 “긴급한상황에서 사람을 죽인거야. 조사할새나있어야지.”했던 것이다. 그가 한마디 더할수 있는 댓변이였다면 “그랬어, 내사 사업을 잘하지 못했지.”였다. 그같은 태도는 제손에 죽은 자의 원한이 어떤지를 근본모르거니와 추호의 죄책감마저도 느끼지 않는, 인성을 떠난 랭혹이였다!

               

우리 중국에서는 력차의 운동에서 억울하게 목숨잃은 원혼(冤魂)을 어느때야 제대로 다 안위(安慰)하고 달랠지?  생각하면 오로지 슬퍼지는 마음뿐이다. 날조된 죄명으로 직접 박해를 받은 사람, 다시말해 억울하게당한 사람의 고통이 진정 어떤지는 그 본인을 내놓고 다른사람은 잘 모른다. 나역시 칠성판에 올랐다내린 사람이여서 그 맛을 안다. 죽지 않은게 천만다행인가한다.
모택동이 섬북에 있을 때 처럼 문화혁명때도 그냥 “사람의 머리는 염지처럼 베여도 다시자라는게 아니다”고 가르쳤더라면 해방후 수차의 정치운동에서부터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그같이 수백만에 이르는 원혼(冤魂)이 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택동은 수정주의를 막아내기 위해서 “문화혁명”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좋은게 뭔가? “문화혁명”이 그래 백성에게 복리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가?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모주석을 의연히 신처럼믿고있다만 그를 어찌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하겠는가? 문제는 아무런 리익도 가져다주지 않는 혁명은 해서는 뭘하냐 그거다. 그는 수정주를 막는다고했다. 그래 그것을 막아서는 뭘하는가? 좋은게 대체 뭐였는가?  모택동 그는 흐루쇼브를 때려죽일 놈 수정주의두목이라 미워하면서 중국의 백성은 모두가 자기를 따라 그를 철천지원쑤로 여기고 죽도록 미워하라고 이끌었다. 그래 그러지를 않았던가? 헌데어떤가? 오늘에 와 따져보면 쓰딸린의 독재를 폭로하고 비판한 흐루쇼브의 비밀보고는 절대 망언이 아니였다. 한데도 우리가 그를 수정주의자요 뭐요하면서 지어는 붉은 공산진영의 죄인으로 몰아버린것은 대단히 잘못된일이였다. 그것이 그래 어디 실제와 부합되는일이였던가? 쏘련공산당에서 바로 쓰딸린의 착오를 규정하려고 애쓰는 때에 우리는 그들을 방해한 것이다.

한편 중국은 되려 쓰딸린을 전반긍정하다보니 전에는 형제였던것이 등을 지고 갈라지고말았으며 두나라당간에는 론전을 크게 하게되였던 것이다. 그래 어떻게 됐는가? 중쏘지간의 대론전이 결국은 모택동이 쓰딸린의 독재기풍을 담습하게하여 마침내는 세계사에 전대미문의 대재난ㅡ문화대혁명을 끌어냈으니 중국으로놓고보면 그이상 더 큰 불행이 어디있는가?..... 없다!

침통한 교훈이다.

 

모택동이 발동한 문화혁명은 사람을 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때리는 것으로 끝나고말았다. 흐루쇼브는 모택동을 수탉처럼 싸우기를 좋아한다고 웃었는데 그 조롱하는 비유가 과연들어맞는다. 왕명(王明)이 좋은사람인지 나쁜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그도 모택동을 호투뻔즈(好鬪分子) 라 했다. 그는 그러면서 모택동을 “당대진시황”라 했다. 과연 내생각과 같은 말이였다. 모택동은 언젠가 스스로 제 호매로운 기개를 뽑낸바있다.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과 싸우니 기쁘기 한량없다”

바로 싸우기를 좋와하는 그의 심태를 적라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진시황이 다 뭔가, 왔다가 울고갈지경이였다.

기원전 213년에 진시황은 유사들이 옛것으로 오늘의 것을 반대하며 사학(私學)을 통하여 조정을 비방하니 금지시켜야한다는 승상 리사의 말을 듣고는 <<진기(秦期)>>외의 다른나라의 력사책과 민간에서 사사로이 류행되고있는 <<시>>, <<서>>등 책들은 전부몰수하여 소각하고 460여명의 방사와 유생을 생매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택동은대체 어떻게 했는가를 보자. 다만 그 방법이 다를 뿐이였지 모택동이 지식분자를 죽인 수자는 그의 몇백배도 더되는 것이다. 국가간부로부터 일자반급도 없는 보통백성에 이르기까지..억울하게 목숨잃은것이 몇천만이니 지천이 놀랄일이 아니고뭔가?!

 

그는 공산국제의 령수로 돼볼려고 꿈꿧다. 주제넘게 남의나라일까지 간섭할건 뭔가? 제가 대체뭔데?..... 등소평이 생전에 중국은 이제부터는 “혁명”을 수출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모택동이 혁명을 수출해서 잘된게 뭔가? 캄보쟈에서에 일어선 “폴포트기념관”을 거기사람들은 “모택동죄행관”이라고도 한다. 왜서그렇게 되는가는 이제 다음글에서 차츰 밝히겠다.  

 

우리는 한때 흐르쇼브를 히질기게 욕했다. 그런데 이제와 알고보니 그한테 죄없다. 우리는 어리석게 남을 타매했던 것이다. 왜서? 그것은 그가 내가봐도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와서 보면 그는 개혁파였다는 것이 알린다. 그는 서방의 자본주의국가에 비해 뒤떨어지는 쏘련의 경제를 일떠세우려고 개혁을 설계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응당 흐루쇼브를 붉은공산진영의 개혁선줄군으로 봐야 옳았을 것이였다. 그때 중국의 9평은 쏘공의 “3화와 2전” 즉  “화평공처, 화평경쟁, 화평과도. 전민의 국가, 전민의 당”을 나쁘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게 뭐가 잘못되였단말인가?

다른게아니다. 모택동은 국제공산운동의 령도권을 제손에넣으려고 극좌의 면모로 출현하여 쏘련공산당을 비판했던 것이다. 남을 그같이 비판하고 반대하다보니 결과 중국은 스스로 대재난으로 점철된 문화혁명의 길을 걷는 운명이 된게 아니였던가!? 

과연슬픈일이다!    

 

문화혁명은 너무나도 많은 비극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발광이 좀만적었어도, 인간의 존엄을 조금만 존중했어도, 인간의 생명이 아까움을 좀만알았어도 “황제의 발끝”에 있는 북경의 대흥현(大兴县)이나 호남도현(湖南道县)모양으로 그어떤 법적인 절차도 없이 많은 “오류분자”의 자손ㅡ이제 젓을 빠는 유아에 이르기까지 제맘대로 칼로 목을 자르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노끈으로 목죄여죽이고, 생매장을 하는 야만적인 살인극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리성이 좀만있어도 젓먹는 애까지 두동강내는 참극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 중국에서도 그 재난의 기록이 될 “문화혁명기념관”이 일떠서고야 말 것이다. 움직임이 보인다. 그때면 그것이 또 누구의 무슨관이 되겠는가?........ 

모택동을 3ㅡ7로 보라는데 그건 공산당의 저울이다.
력사는 인민이 쓰는 것이지 그 어느 당이 쓰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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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6 ]

16   작성자 : 아래4번은
날자:2016-01-08 10:32:48
아래 4번은 전형적인 위선자구나.
그런 사유를 갖고서 어떻게 사는가?
내눈에는 그저 무지하게 가엽이보인다.
15   작성자 : 저런
날자:2015-11-07 08:46:33
아래 분, 그런 머리를 갖고 어떻게 사노?! 불쌍하다.
14   작성자 : 저런
날자:2015-11-07 08:46:23
아래 분, 그런 머리를 갖고 어떻게 사노?! 불쌍하다.
13   작성자 : ??
날자:2013-11-21 14:04:32
建国以来毛泽东文稿》(第1—13)과 이 글이 뭐가 크게 상관이 있습니까?

모택동에 대한 증오심은 리해할만 하지만 력사인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시구시한 평가보다는 개인의 어떠한 감정이나,성향으로의 발로인 극단적인 평가는 아니라고 봅니다.적어도 建国以来毛泽东文稿》(第1—13)은 필자님과 같은 감정이나,성향의 발로에 치우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2   작성자 : 아래4번보시오
날자:2013-10-28 21:50:54
《建国以来毛泽东文稿》(第1—13卷)全文
作者:遵化党史网 来源: 中共遵化市委党史研究室
나보고 골목에서 뒹구는 책에서 수집한 자료를 력사당안인양한다는데 너무나 몰리해를 하는게 아닐가? 뭐가 한심한가?《建国以来毛泽东文稿》13권을 추천하니 한번 잘읽어보고 나를 매도하던지 어쩌든지 하시오, 위협은말고.
11   작성자 : 옳습니다.
날자:2013-10-23 22:05:24
듣고보니 아랫분말이 옳습니다. 그렇게 했더면 좋앗을걸그랬네요. 좋은 충고줘서 고맙습니다. 글을 더 주의해쓰겠습니다.
10   작성자 : 아하
날자:2013-10-23 20:05:48
량우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해가 없었겠는데 모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오해했을것 같네요. 량우생(梁羽生)- 본명이 진문통(陈文统)이라고 해야 일목료연하여 알아보기 쉽잖았을가요? 김용의 본명도 查良镛인데 하나만 적고 량우생은 괄호안에 진문통이라고 했으니 독자들이 더욱 어리벙벙해 할것 같은데요. 차라리 “량우생(梁羽生)”이라고 하나만 적든지 “본명이 진문통(陈文统)인 량우생(梁羽生)”이라고 적었으면 독자들이 쉽게 알아보았을텐데요.
9   작성자 : fgh
날자:2013-10-22 09:00:20
해답글
량우생(陈文统)= 한사람 두가지 성명임.
8   작성자 : 천박
날자:2013-10-21 22:16:38
량우생(陈文统) 이것이 무슨 뜻인지요?
7   작성자 : 일언
날자:2013-10-20 16:11:48
정말 좋은 글을 읽었다.
이 런 글은 확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택동의 우상을 깨야한다.
과오가 3이고 공젹이 7일이라고 하는데
사실 따져놓고 보면 과오가 아니라 죄악이다.
그리고 3:7도 거꾸로 된 비례다
죄악이 7일이고 공적이 3이라고 봐야한다.
이미 전 세계가 모택동과 스탈린 히틀러를 가리켜
인류의 3대 악마로 평하고 있다.
6   작성자 : 일언
날자:2013-10-20 16:11:38
정말 좋은 글을 읽었다.
이 런 글은 확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택동의 우상을 깨야한다.
과오가 3이고 공젹이 7일이라고 하는데
사실 따져놓고 보면 과오가 아니라 죄악이다.
그리고 3:7도 거꾸로 된 비례다
죄악이 7일이고 공적이 3이라고 봐야한다.
이미 전 세계가 모택동과 스탈린 히틀러를 가리켜
인류의 3대 악마로 평하고 있다.
5   작성자 : 고맙습니다
날자:2013-10-17 11:07:48
두분 성근한 권고를 해줘서 고맙습니다.ㅡ 송죽
4   작성자 : 한마디
날자:2013-10-17 10:21:12
한심 합니다. 골목에서 뒹구는 책에서 수집한 자료를 력사당안인양

꺼내든것 같은데, 당신이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거룩하신 분입니다. 글을 보면 인격이 보입니다. 자기를 매도하지 말고, 자제하십시요.
3   작성자 : 한마디
날자:2013-10-17 10:21:05
한심 합니다. 골목에서 뒹구는 책에서 수집한 자료를 력사당안인양

꺼내든것 같은데, 당신이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거룩하신 분입니다. 글을 보면 인격이 보입니다. 자기를 매도하지 말고, 자제하십시요.
2   작성자 : sy10088
날자:2013-10-17 09:08:16
많은 글을 쓰셨군요. 존경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성 경향이 강한 문장은 중국 조선족 작가로선 마땅치 않다고 보아집니다. 마음속의 울분을 쏟고나면 변비환자가 배설한것처럼 신체에는 좋을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죠. 이렇게 용속한 자기표준으로 위대한 정치인물을 함부로 폄하하는 작가님이 자기의 경박함과 무지함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순박한 조선족 백성으로서 자기 본분을 초월하여 중국의 정치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해 봤자 아무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자칫 미움만 살수 있으니, 우리들의 일이나 놓고 많이 의론하는 것이 조선족 문인으로서의 바른 자세라고 봅니다.
1   작성자 : 근데여
날자:2013-10-17 07:19:45
문화대혁명을 하나의 극단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면
님의 글에서 표현되는 님의 사유도 하나의 극단으로 달리고 있어요.
물론 님이 문혁기간에 억울하게 박해를 당하고 감옥생활을 하면서 피눈물나는 고생을 한 것은 알겠는데...그리고 이로 인해 님이 문혁과 모택동에 대해 원한에 사무쳐 이를 갈고 있다는것도 알겠는데...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너무 극단적으로 문제를 보지 않아요. 물론 문혁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만...모택동의 공과 과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습니다.모택동이 절대적인 신에서 三七開로 본다는 자체가 이미 대단한 진보이고 간부 종신제에서 임기제로 바뀌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 자본주의로 타매하던 많은 생산방식,생산관계들이 도입되고 언론도 과거와는 비할바없이 많이 자유롭고 개방되여 있지 않습니까? 님이 이런 글을 올린다는 자체가 중국이 거대한 진보와 발전을 했다는 반증으로 됩니다.
모든 발전과 변화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눈깜짝할사이에 전환이 가능할까요? 나라와 사회, 인간은 이러한 급속한 변화를 감당할수 없으며 극심한 혼란만 야기하고 오리혀 양호한 염원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그 최종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서민들한테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방면에 많은 좋은 실례가 있습니다.

너무 원한에 사무쳐서 피해의식에 절어 사시지 마시고 보다 넓은 흉금으로 안광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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