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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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일호동의 사랑(5ㅡ7)
2013년 09월 15일 17시 09분  조회:3256  추천:1  작성자: 김송죽
 

                                 5

 

 

   가을철을 잡아들어 찾아온 비는 여름내 쏟아부은 폭염을 한꺼번에 식혀버릴 양 밤새껏 끊지 않고 구질구질 내리더니 새날이 휘영청밝아서야 맥을 버리고 그쳤다.

   초가의 처마밑에서는 지렁물이 똑똑 떨어진다.

   동산머리에 감빛노을이 비끼더니 해가 떠올랐다.

  《꼭-꼭-꼭-》

   잠을 일찍 깬 멧새가 이 나무 저 나무 옮아가면서 명쾌한 기분으로 노래를 불렀다.

   청신한 아침대기였다.

   시르맨커서켠의 울바자안에서 싱싱하게 자라고있는 무우와 가을배추는 마치 록색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이 산듯했고 거기에 이어붙은 개암나무뙈기건너산의 들쑹날쑹한 바위들은 밝은 해빛에 만물상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당날로 돌아가리라던 남병호는 박로인을 도와 물고기를 잡아주다보니 꼬박 한주일을 눌러지내다가 마을로 돌아갔다. 그지간 로인과 함께보낸 즐겁고도 유쾌한 시각들은 그의 마음을 점점 더 풀어버리기 어려운 바오리로 묶어 여기에다 잡아두고 있었다. 그는 갈 때 우선 거둘낟알이 거의없을 지경으로 페농이 되고만 논판에다 불을 콱질러놓고는 할빈 큰형님네집에 가 딸을 만나보고다시오리라했다. 와서는 박로인의 바쁜일손이나 더 도와주리라는거다. 박기섭은 그가 아무때찾아와도 자기는 환영하리라했다.

   젊은이는 과연 낙언을 지키였다.

   서로지간의 신임과 인정은 아마 이렇게 해서 구축되고 도타와지는모양이다.

   날이갈수록 가을 빛은 짙어가고 있었다. 여름내내 청일색이였던 온갖나무들이 이제는 저마끔 제멋대로 울굿불긋 아롱다롱한 옷을 바꿔입고 치장을 해서 산간은 여름철보다 한결 화려해졌다. 이것은 오로지 자연의 고칠수 없는 섭리에 따른것이리라.

   하다면 자연만 화려할가? 그런건아니였다. 화려함은 인간에게도 있는 것이다. 헌데 그 화려함이 자연에 비겨 대체어떨지?

   제일보기실은 것은 렴치모르는 불청객이였다. 그런자는 오지 않아도 여지껏 경건히 살아온 박기섭이였다. 한데 그자들이 나타나면서부터 박기섭의 평온은 위협받고 기분잡치였다.

   일은 이러했다.

   날이 건뜩들리고 명랑해진 어느날 오전. 생각밖에 이제는 다시오지 않으리라여겼던 부향장이 토지관리일군 김씨와 함께 웬 1남1녀를 배동하여 일호동에 다시금 나타났던 것이다. 정말 반갑지 않았다. 아니 저건 그 녀석이 아니여! 박령감은 저쪽 1남1녀중 사나이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장용팔의 아들 근식인지라 저으기 놀랬다. 과연 오래간만이다. 그는 지금은 <<홍위병>>때와는 모양이 다른 상고머리를 했고 입은 옷은 값비싼 검정가죽쟘바였다. 로인은 껍질이 벗은 딱정벌례를 알아보듯 그이임을 첫눈에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건만 저쪽은 흡사 면목을 모르는양했다. 과연 기억에 없어서 그럴가? 남을 해쳐놓은 일로해서 대할 면목이 서지 않을 때 속이 켕기면서도 허심하지 못하다보니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은 반성할 용기가 모자라는 사람이면 거개가 그러하듯이 그도 대하기가 뭣한지라 일부러 자기는 이쪽을 아예 잊은양 아닌보살을 하고있었다. 네놈이 그래도 좋다. 그를 곱게대해줄 박령감이 아니였다. 이쪽은 눈길을 옮겼다. 그의 곁에 붙어 아양떠는 해사스레 생긴 젊은 한족녀인은 아마 비서아니면 정부일 것이다. 성품이 진중치못한 사람은 돈잘벌면 그걸 자랑하기위해서 이런모양으로 냄새피우면서 다니는게 지금은 류행병처럼 되어가고있는 세월이 아닌가. 자식이 네놈이 팔자는 좋은모양이다 멋부리는 꼴보니 하고 박령감은 속으로 뇌깔이였다.

  《아유, 참 아름답네요!》

   녀인이 사위를 둘러보면서 요란스레 감탄을 뽑았다.

  《어때 맘들어? 명당이야.》

   상고머리가 입을 그녀귀가에 가져다대며 낮게 말해놓곤 마주보며 헤벌쭉 웃었다.

  《무슨수작질이냐. 네년놈들이 감질을 내고있어.. 어리석은 것들, 여기가 네놈들 손에 차레질줄을 아느냐, 흥!》

   열어놓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던 박기섭은 코방구뀌였다.

   개가 다시짖어댔다. 무슨일인지 나가말리지 않았다가는 일칠것같았다. 그래서 밖에 나갔더니 왕부향장이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왜 또 왔소?》

   로인은 그를 시들히 바라보면서 달가와하지않는 투로 물었다.

  《내가 접때 가면서 뭐랍디까. 다시오마구하잖습디까. 이건 꼭 해결이 나야 될 일이라서 다시온겝니다. 저 이렇게…》

   대방의 쌀쌀한 태도에 부닥친 왕부향장은 신경질이 빡 나는 것을 참고 되도록 부드러운낯색을 지으며 변명쪼로 해석을 했다.

  《가만! 해결이 나야 될 일이라니 날 기여히 여기서 떠나라는건가? 아무리어째두 그놈의 해결은 잘 되지 않을거우. 》

   박기섭은 여유를 주지 않고 잘라버렸다.

   로인의 저력있는 목소리는 단판하러 찾아온 저쪽을 땀을 빼게 만들어버릴 잡도리였다.

  《로인님, 그렇게 고집부리지 말구 좀 차견히 잘 토론해봅시다. 제 생각에는 이 일이 얼마든 량편이 다 좋게 협상이 될것같습니다. 》

   김씨가 안달증이 나서 참지못하고 나서서 참견했다.

  《저번때 뭐라구했소. 향에서는 여기를 팔려구한다했지. 그래 누구한테 팔자는거요?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구 그냥 이럴판인가?》

   박기섭이 그하고 제 조선말로 걸고들었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재간이 없는 왕부향장은 낯을 돌려 김씨에게 물었다.

  《이 령감이 이제 뭐라했는가?》

  《누구한테 파는지를 알자는구만.》

  《우리가 아무사람한테 팔든 그걸 알아서는뭘해.》

  《난 알아야겠소.》

   데퉁바리같은 박령감은 고집스레 나왔다.

   심정이 자못 불쾌해진 왕부향장은 사무린눈길로 보다가 입을 열어 알려주었다.

  《정 알고싶다면 알려주지. 우린 늪과 저 산을 여기 이분한테  팔겠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데?》

  《보화건축회사 장경리입니다.》

  《보화건축회사 장경리라, 장경리가 그래 대체 뭘하자구 이 먼데까지 와서 물웅뎅이하구 돌산을 사잔다오?》

  《그것까지 꼭 알아야겠습니까. 그렇다면 알려주지요. 저분은 여기다가 집을 하나 지어볼 계획입니다. 》

  《집을 하나 짓는다? 거 참 별랋구만. 버덕은 놔두고 왜 하필 산골에다는 집을 짓는다오?》

  《허, 되겐 까다롭게 노네. 남이야 왜서짓던 령감이 그것까지 상관하려들건뭔가.》

   젊은사람이니 성미가 달랐다. 전번부터 박령감을 고깝게 여긴 왕부향장은 부아가 동해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두 사람지간의 입씨름을 듣고만있던 김씨가 이마살을 찌프리며 슬쩍 눈짓해놓곤 무어라 귀속말로 소곤댔다. 아마 그러면 협상도 못하고마니 참으라고 충고하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꺼내들고 누구와 잠간 통화하고난 상고머리가 신경을 바싹 도사리면서 왕부향장이 로인과 입겨룸하고있는 것을 옆에서 보고듣더니 상판이 무거운 짐에 깔려 형태를 잃어가는 양철통같이 이그러졌다. 그는 자기가 계획하고 온 일이 그만 뒤틀려지고마는 것 같아서 안달증이 나는지라 그저 참고만있을 수 없어 입을 열고야말았다.

  《로인님, 별게아닙니다. 난 여기다 별장을 하나 지으려고 사자는겝니다.》

   박기섭은 고개를 돌려 얄밉고 아니꼽살스러운 그를 아느새여겨보다가 물었다.

  《뭐라, 별장을 짓는다. 누구핼말인가?》

  《거야 물론 내해지요 뭐.》

  《임잔 누구요? 장용팔령감의 아들아니여?》

  《예. 옳습니다. 제가 그분의 둘쨉니다. 로인님은 저?…》

  《자네가 그래 이 박기섭이를 몰라그러는가?》

  《뭐랍니까? 아, 그럼 저…하하하! 정말 깜짝 몰라볼번… 이거 참 죄송하게됐습니다.》

  《세월이 너무두오래서 그럴수도있겠지. 안그래?》

  《그렇습지요. 로인님인걸 제가 진작알았다면야 어째 인사를 올리지 않았겠습니까.》

   새빨간 거짓말이다. 여기에 그래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왔단말인가? 그럴수가 있을가? 박기섭이 잠간 능청떠는 그를 실까스를 말을 찾느라 함구무언이자 저쪽이 입을 먼저열었다.

  《이런데서 어떻게 혼자삽니까, 병나도 그렇구. 안그렇습니까.그러니 임자가 나졌을 때 자리를 제꺽내놓으십시오. 아까워할게 뭠니까. 협상이 제대로만되면야 로인님도 리득을 택택히 보지요. 정말입니다. 내 솔직히 알려주지요.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니 절대놓치지마시오.》

   어쩌면 이렇게 성근한 충고가있을가. 자기는 제법 로인을 생각하는 것 처럼 나오는 그 리면에는 영락없이 대방을 어리숙하게 보면서 감언리설로 얼려넘겨 제 리속을 채우려는 어리석고 비렬한 본바탕이 철판깥이 깔려있었다. 그따위 이뭉수에 호락호락 넘어갈려고 머리백발이 되도록 살아온 령감이 아니였다.

   박기섭이 입을 열고 물어보았다.

  《자네가 정말 날 생각해 그러는가?》

  《그렇잖구요. 전 솔직한 사람입니다.》

  《솔직한 사람이라? 좋아. 그렇다면 한가지 묻겠네. 언제 오토바이를 타고 여길왔다간일이 없는가?》

  《내가 오토바일 타고요?》

  《그렇네 오토바이를 타고. 둘이였네.》

  《아, 그렇지! 있습니다. 저…》

  《그때 말리누라 걸어놓은 고기를 가져갔지?》

  《예. 그건 저…》

  《남은 흙집에서 사는데 돈많이 벌었다구 별장까지 져놓구 살자구드는 사람이 그래 고기를 못먹어서 남의 핼 훔쳐갔나?》

   자기의 행실을 고깝게 여겨온 이쪽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태도에 부딧치고보니 가슴이 섬찍해났다. 창피를 당하고 있는 상고머리는 이 자리에서 무여지게 추락되는 자기의 위신을 건지기위해 급급히 발명했다.

  《사실은 이렇게 된겝니다. 우린 그날밤에 동창생들이 한데모여 강가에 가 우등불만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마끔 술안주감을 준비해갖고 가기로했습니다. 난 여기에 오면 말린고기쯤은 사갈수 있겠다여기고 그날낮에 내 비서 하나를 데리고 오토바일 타고왔더랬지요. 그런데 와보니 집이 비여있더군요. 그래 주인도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서게된건데 마침 장대기끝에 마른고기가 뀀채로있는게 눈에 띄이길래.... 도리대로하면 응당 기다리고있다가 그걸 사갖고가야지요. 그런데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갈것같아 에라 주인없으면 뭐라나 우선먼저갔다먹고 후에 값을 곱으로 쳐 갚아주자했지요. 그런것이 그만…..미안하게됐습니다. 미처 사과못한 벌로 값을 열배로드리지요. 그게 모두 스믈다섯마리더군요. 한 마리에 50원씩 쳐서 1250원을 드리면안될까요, 지금 당장말입니다.》

   심정이 언녕 토라졌던 박기섭은 상고머리가 제법 사내답게 통크고 대범한체 노는 꼴을 째려보다가 그의 말에 언질잡아 비꼬는 투로 뱉었다.

   《값을 열배로주겠다? 돈많으니 과연 못해보는 짓없네. 값을 이제야 주느라 부산떨지 말구 부끄러운대로 도루집어넣게. 내가 그 고기를 개한테 먹인셈치지. 》

   《하 이거 로인님이 대단히 노여운모양이네.》

   《노엽잖구. 바꿔놓구 자네면 그래 노엽잖겠는가. 어디 대답해봐. 안그런가구.》

   《야 이거정말 이러면 단판두 곤난하겠네.》

   상고머리는 안달증이 나서 뇌이고는 탐욕이 끓고있는 눈으로 산과 늪을 한 번 휙 쓸어보았다. 박령감의 눈도 따라돌았다.   내놓을수 없었다. 남에게 줄수 없었다. 너무나 정든 곳이였다.

  《나하구 뭘 단판한단말인가. 늪을 팔라구? 흥. 꿈은 잘꾸네.  난 도적놈한텐 똥물도 안주는 사람이야. 그렇다는거나알구 망신 더하지 않겠거들랑 오솝소리돌아가, 알아들었는가, 돌아가란말이야, 냉큼!》

   정중하고도 어딘가 분노와 멸시가 차있는 로인의 축객령은 비수마냥 대방의 가슴을 콱 찔러놓았다.

   어느새 제주인의 의사를 알아채기라도한듯이 개까지 큰입을 사려물면서 으르렁거렸다.

  《어! 어! 이 개! 이 개!》

   덴겁한 사나이는 자기가 당장 물릴 것만같아서 비실비실 뒷걸음치면서 넋빠지는 소리를 했다.

   나라에서 개혁개방을 하니 요몇년사이 이러한 변비에도 장사를 하거나 기업을 꾸려 벼락부자로 된 사람이 적잖았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사아서 기껏 향락을 누려보자고 한다. 하여 형세를 보고 별장을 지어 팔아서 큰돈을 더 벌던지 아니면 그것을 팔지 못할시는 아예 자기가 향수하려는 것이다. 상고머리가 바로 그러했다. 한데 그는 말도 더 꺼내보지 못하고 그만 물에빠진 장닭모양이돼갖고 돌아ㄱ4ㅏ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돌아간지 얼마안되여 남병호가 경쾌한 오토바이소리를 휘몰아갖고 일호동에 나타났다. 열흘전에 여기에 왔다가 돌아가서는 전처럼 친구들과 휩쓸려다녔건만 어쩐지 가깝고 무료하게만 느껴지던 그를 내재적인 리심력이 여기로 떠민 것이다. 젊은이는 오토바이를 세우자바삐물어왔다. 

  《그 사람들이 어째 또 왔댔습니까?》

  《가는걸봤나?》

   예. 까만〈오디〉를 채석장에다 주차해놓구서 여기루 들어왔던모양이죠. 네사람 함께 그것에 앉아가는걸 제가봤습니다.》

  《꼴보기싫게 허튼수작들을 하구있어.》

   박기섭은 일의 자초지종을 그한테 아려주고나서 의미시장하게 말했다.

  《철이 오니 알리는구나. 여름에는 그처럼 청일색이던 나무들이 변해버렸지. 단풍든 잎들이 색갈은 모두 제마끔아닌가. 세월이 달라지니 인간도 량심들이 저모양으루 고약해진거야..》

 

 

                                                               6

 

 

   마가을이 지나고 땅거죽이 꺼둑꺼둑 얼기시작하는 초겨울의 어느날 남병호가 일호동으로 왔다. 헌데 신색이 이전만달랐다.

  《 네 모양 어째그래. 옘병하잖았어. 보기가 구차하구나.》

  《제가 어떻게요?》

   젊은이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울적한 심기는 감추지 못했다.

   박기섭은 그가 지금 내신 어떠한 일로 모진고뇌속에서 방황하고있음을 직감했다. 젊은이는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머밀머밀하다가 고개만 외로탈아버린다. 아무리봐야 심상치 않았다.

  《웬일이여. 무슨일이라도 생긴거아니냐?》

   박령감이 바싹 다조져물었더니 젊은이는 뜻밖에 응대는 하지 않고 울었다. 두줄기의 눈물이 핏기없이 매말라가는 그의 뺨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니 사내녀석이 울기는 원.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벙어리속은 난에미도 몰라. 말이나해야알지.》

   박기섭은 젊은놈이 바보같이 그러는게 보기가 민망스러워 꾸짖었다.

   그제야 젊은이는 입을 열어 제 신세를 하소했다.

  《난 이젠 어쩔까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말이다.》

   남병호의 손이 호주머니를 더듬다가 그만뒀다. 한국에서 안해가 붙인 편지를 아침에 받아 읽어보았는데 너무나도 믿기어려운 기막힌 내용이라 화김에 찢어던지고말았던 것이다. 안해는 편지에 자기는 그렇게 한국남편을 따라온 후 기실은 갈라지지 않고 그냥 부부로 되여 지금은 사내애까지 하나 낳아 살고있다는 것, 하늘이 정해준 운명인데 이제 더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러한줄을 알고 다시 더 기다리지말아달라는 것, 이전에 아기자기살았던 정은 절대 잊지 않으리라는 것, 딸애의 공부할 돈은 장차 더 부쳐보낼테니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 애정은 가꾸기에 달린것이니 자기보다 더 좋은 대상을 새로얻어 잘살아달라는 것 등이 그 내용이였다.

   아무렴 이럴수야있는가, 남병호에게는 그것이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였다.

  《그럴줄을 알았어. 내 그래 뭐라던가.》

   박로인은 얼굴에 딱한 기색을 지으면서 자기앞에 앉아 여지껏 속히워온 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쿨쩍거리는 젊은이를 원망스레 보았다. 네 각시가 어디서 무슨일을 하는가를 알아보라했더니 내보고 사인정탐을 내놓아 뒷조사를 하라는건가 그러면 부부감정이나 벌어지게되는게아니냐며 듣지 않던 그, 자기들은 약속을 단단히 하고 가짜리혼을 했길래 안해가 마음이 절대 돌아지지 않으리라 굳게믿고있던 그, 자기 안해는 이제 돈을 많이벌어갖고 꼭 돌아오리라던 그를 그는 한바탕 되게 꾸짖고싶었다. 그가 만약 남이 아니고 제 자식이라면 야 이 무럼생선같은 녀석아 어른의 말을 들을건 들어야지 고집은 웬 고집이였더냐 하고 따귀라도 한매 불이 펄쩍나게 갈겼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식이 아니니 그럴수는 없었다. 젊은이는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닥다들이고보니 실망한 나머지 어쨌으면좋을지 몰라 진정못하면서 지어는 생의 용기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박기섭은 그가 고민에 잠겨 모대기는 꼴을 아느새 지켜보고있노라니 가슴이 물큰하도록 측은한 감이 들어 열려던 입을 닫아버렸다. 실은 그만 소매 할 일이 아니였다. 하늘의 조화를 예측키어렵듯이 알기어려운 것이 사람의 속마음이였다. 안해를 고지식하게 너무믿어온 그가 그저 병신스러울뿐이였다. 병신을 왜 병신됐느냐고 욕해선 뭘하는가. 그러지 말고 차라리 마음의 아픈상처나 무마해 그것이 되도록 빨리아물게 하는게 보다나은 처사일 것 같았다.

  《나하구같이 서남골에나 갔다오자.》

  《거기는왜서요?》

  《오소리놈 어데숨었는지 정찰해둬야지. 그리구 바람두쐴겸. 그모양돼갖구 집안에만 들어박혀있다가는 울화병날라.》

   젊은이는 박령감의 권에 끌려 시르맨커를 나갔다. 헌데 서남골에 들어간 그들은 해종일 헤맸거만 털빛이 새노란 황가리와 뾰족한 주등이가 감실한 족제비만 몇 마리 보았을 뿐 오소리는 구경못했다.

  《그따위걸 내놓구는 아무것두없구만요.》

   늙은 것은 말이 없는데 젊은 것이 더 지쳐서 주절댔다.

  《왜 아무것두없다나? 제대루찾지 못해 그렇지 많구두많아. 각가지 짐승두 있구 약재두 있구. 어디 그것뿐인가 다른 필요되는것들두 있지.》

   자연은 완연히 탈바꿈을 했다. 모든게 발가숭이로 돼버렸다. 나무들은 아무것도 없이 뼈만남았다. 겨울은 모든 것을 매몰해서 유(有)를 무(無)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것이 남병호가 시각으로부터 받은 감수이자 인식이였다. 헌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직 농사를 지으면서 돈을 퍼줘야만 비료를 쓸수 있다는 생각과 그런 생각으로 하여 굳어버린 습성때문에 그는 농민이지만 가석하게도 응당알아두어야 할 상식마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단풍들어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나무가지에서 말끔히 떨어졌다. 바위산을 내놓고는 다른 산들이 모두 두터운 나뭇잎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 나무잎이불이 차츰썩어 부식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름에 계곡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해면을 밟는것만같은 감을 주는 유기질함량이 많은 그런 검은 흙은 실농군이 얻고싶어하는 좋은 비료였다. 하건만도 젊은이는 그저 잡아팔면 돈가치가 대단히 갈 짐승만을 찾아볼 궁리나했지 그런 흙같은 것에 대해서는 근본 생각지도 않았다. 전혀 애착이 없었던것이다. 이런 사람이 그래 땅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랴. 따져놓고보면 그는 지금 촌에서 살기는하지만 온전한 촌사람도 아니고 도시사람도 아닌 얼간이변종이였다.

   시대가 인간을 조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세대의 젊은이들은 시대를 잘만났으니 참으로 행운이다. 그들은 보수적인 환경속에서 속박받으며 살아왔던 전세대의 사람들보다 더 대담하길래 사상을 해방하는 것도 빠르고 신생사물을 접수하는 것도 빠를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박령감같은 늙은이들의 그 나이 때에 비해보면 자주의식도 독립의식도 더 강해진 것이다. 헌데 지금 모든 젊은이가 다 그렇게 되고있을가? 아니다, 그런것은아니였다. 시대가 만들어준 팔부도 있고 기형아도 있는 것이다. 박기섭의 눈에는 남병호가 바로 시대가 만들어준 오작품인 그 두가지중 어느하나같이 보이였다.

   그런 오작품을 곁에 두고 속이 뒤번져 어떻게 보고만있겠는가. 박기섭은 남의 일에 개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절망과 타락의 변두리에 이른 사람은 구해내야한다는 인간적인 자각에 의무감에 떠밀려 남병호를 한 번 더 깨우쳐주어 제구실을 하게 만들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서산골에서 시르맨커로 돌아오면서 헐망해진 집을 수리하듯이 젊은이에 대한 개조공정을 벌리였다.

   《내가 수수께끼를 하나낼테니 어디맛혀보게나.》

   《좋습니다 내시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제일불쌍한가?》

   《그거야 집도 없이 떠도는 거지지요 뭐.》

   《틀렸어.》

   《그럼 뭠니까. 거지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있단말입니까.》

   《있잖구. 내 알려주지, 세상에 제일불쌍한건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일세. 알아들었는가 제구실못하는 사람.》

   《아, 그렇습니까!》

   남병호는 알았노라하고는 그만 머리를 뚝떨구었다.

   박기섭은 수수께끼를 더 내지 않고 그가 홀로 생각에 잠기게 아느새 내쳐두었다.

   젊은이는 밤이 되어 자려고 자리에 눕기는했어도 오래도록 속잠은 들지 않고 궁싯거리였다.

   

   날은 점점 더 여물어가고 있었다. 늪에는 살어름이 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개가 짖어 남병호가 나가보니 웬 노루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시르맨커에 왔다가 그만 굴속에 엎디여있던 억대스런 개한테 들켜 혼줄이 빠지고 있었다. 개는 노루를 멀리달아못나게 이리쫓고 저리쫓고했다.

   이거야말로 절로굴러든 고기덩이였다.

   뒤미처 밖으로 달려나온 박령감이 개와 젊은이를 지휘했다.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내가 서쪽을 지키겠으니 넌 북쪽을 지키라! 간다! 간다! 그놈을 늪에다몰아넣어라! 늪에다!》

   개가 쫓으며 뒷다리를 물고 사람이 아우성이쳐대면서 앞을 막으니 포위를 뚫지 못해 진퇴량난에 빠진 노루는 하는수없이 끝내 늪에 뛰여들고야말았다.

   네다리 다 얼음을 구멍내고 들어간 노루는 그것을 뺄수도 없고 더 뛸래야뛸수도 없어서 마침내 사람의 손에 잡히우고말았다. 

  《나는 그저 조급할 뿐 미처궁리안납디다. 그런데두 로인님은참 묘합니다. 노루를 늪에다몰아넣어야 잡는다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제꺽생각해냈습니까?》

   《이건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 아니네. 나는 허저족친구네 집 사람들하구 같이있을 때 그들한테서 배웠네. 해마다 물이 어는 이맘때면 우린 바로 이런 방법으루 노루를 잡군했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나갖구는 인생을 살아가는것두 그렇네.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모르게 될 때는 남이 사는걸 보구 따라배워야하는걸네》

   젊은이가 묻는 말에 박기섭이 하는소리였다.

  《그래야지요. 로인님의 그 말씀이 옳은거같습니다.》

   남병호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면서 자기의 지금신세를 놓고 다시생각하니 문득 새삼스레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반성하게되였다. 수께끼에도 세상에서 제일불쌍한건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라하지 않는가. 나는 그래 제노릇을 하고살았던가? 그렇지를 않았지. 눈이 멀정해갖고 제 녀편네까지 남한테 떼우구.....이건정말 머저리중에서도 상머저리였지. 언녕 변심한 녀인을 제것이라 굳게믿구 부쳐오는 돈이나 받아쓰면서 그걸 자랑으로 여겼으니.... 남을 얼마나 웃길 노릇이였는가. 사람살아가는 옳은 방법이 무었인것도 모르고있었으니 나는과연  인간구실을 못한게 아닌가..... 남병호의 속쓰라린 깨달음이였다. 

 

   첫눈이 내렸다. 그것이 벌방에서는 녹아버려 자취를 감춰버리겠지만 여기는 달랐다. 아예 자리를 잡는 눈이였다. 첫눈인데도 와도 모질게왔다. 그래서 산이며 늪이며가 밤새에 온통 두터운 솜이불을 덮은것만같았다. 이럻게 깨끗할수야있는가! 해가 뜨니 새하얀 눈이 밝은 빛에 반사되여 눈부시였다. 그렇게 정결하고 새하얀 눈으로 단장한 산이며 바위츠렁이며 바위너설로 형태를 이룬 산이며 다가 한결 아름답고 신비해보였다. 그야말로 여기는 사시장철 경치좋은곳인가보다! 

   박기섭령감은 아침을 먹은 후 다커투에 올라가 착고 세틀과 모양이 활비슷한 사냥도구 두개를 가져왔다.

  《이건 뭡니까?》

   남병호가 자기는 생전처음보는 물건인지라 호기심갖고 쥐여들고 물었다.

  《그것말인가. 그건 허저족이 사냥하느라 옛날부터 써온 서르미라는 걸세. 짐승이 다니는 길에다 그걸 노끈갖구 비끌어매놓고는 뒤를 당겨서 살을 메우는데 짐승이 가다가 길에 느린 줄을 발로 걸어놓게 되면 그놈의 살이 벗겨져 쌩 날아가 맛히게 되어있네.》

  《높이는 어느만큼쯤해서 매놓는가요?》

  《여우나 승냥이나 놀가지를 잡자는거니까 그놈 짐승들의 키를 가늠해서 매놓네. 이제 내가 그놈을 어떻게 놓는갈 제 눈으루 친히 보구서 배우게.》

  《오늘부터 사냥을 나가렵니가?》

  《그래볼가구.》

   남병호는 기뻤다. 취미를 붙이는데가 있어야했는데.... 박령감의 권유대로 그와 함께 있으면서 겨울한철 짐승잡이나 해서 고뇌풀고 걷잡기어려운 마음도 안착해보려는 그였다.

   짐승들이 눈우에다 군데군데 지도를 그려놓았다. 두사람은 황가리나 족제비를 잡아보자고 시르맨커부근에다 덫을 놓고 나서 짐승이 새로낸 눈길에다 작은 디딜착고도 놓았다. 그리고는 승냥이, 여우를 잡을 서르미도 놓고 너구리굴을 들추려고 개를 데리고 서남골로 들어가기도했다. 시르맨커를 떠날 때였다. 남병호가 거기갔다가 만일 곰이라도만나면 어쩔가요해서 박기섭은 그럼 이것을 들라면서 지다창을 하나 주었다. 그건 량변이 칼날같고 끝이 뾰족하며 길이가 한자푼한 창날을 길다란 참나무대에다 꽂은건데 창목에다는 손가락 두넓이만한 가죽오리를 탱탱 감아놓았다. 전에 허조족사냥군들은 곰을 잡을 때 이것을 썼던 것이다. 곰이 일어서거나 덥칠 때 이 창으로 목아래의 허연데를 겨누고 숨통을 드립다찌르는데 우둔한 곰은 창을 쥐여당긴다. 그래서 그걸 쥔 사람도 자연히 앞으로 딸리게되기마련인데 창날만 들어가곤 더 들어가지말라고 그렇게 가죽을 가락지모양으로 감아놓은 것이다. 박령감은 그것의 사용방법을 알려주면서 이런 창을 허조족의 말로는 《지다》라 한다고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렴치없는 녀석을 오소리잡놉이라구하는데 왜서 그러는지를 아는가?》

  《모릅니다. 내가 그런걸 알리있습니까. 왜 그러는가요?》

   박령감은 재미있는 이야기 한가지를 그한테 들려주었다.

  《내 먼저 너구리얘길하지. 그놈들은 과연 재간둥이들이라네. 그놈들이 제가 사는 굴을 만들어놓은것만 봐도 그렇지. 잠자는   굴, 먹거리를 장만해두는 굴, 똥오줌을 누는 굴 …너구리를 내놓구서야 어느 짐승이면 제굴을 그렇게 층층 만들어놓고살가. 그놈들이 그런 굴을 지을 때는 함께 살 씨족들이 다 동원하는건데 그 가운데는 전문 흙을 파는 놈이 따로있고 판 흙을 나르는 놈이 따로있고 안벽을 두드려 단단하게 다듬고 장식하는 놈이 따로있는거네. 말하자면 각자의 기술과 능력 특장에 따라 분공을 한다는거네. 그놈들이 공정을 어떻게 하는지 아나. 흙파는 녀석이 앞발로 흙을 팔 때 한놈이 배를 하늘로 올라가게 해뜩 누워있다네. 다른놈이 파낸 흙을 그놈의 배에다 올려놓고는 눌러놓고 올려놓고는 눌러놓네 그래서 무지가 되면 다른 것들이 누운녀석의 귀를 물어당겨 흙을 다른데에 갖다가 던져버리는거네. 그러니 운반도구로 된 그 너구리가 꼴이 어떻게 되겠나. 공정이 끝나 굴이 다 되면 그놈의 등가죽의 털은 긁히고 째져서 말이아니지. 그걸 보고 여렀은 보기참 안돼서 아프겠구나 이걸 어쩌나 하면서 홀홀 불어준다네. 털빠진 놈은 아프지만 자기는 집체를 위해 헌신했다는 자호감으로 해서 분해하지두않는다네.》

  《아니, 고놈들이 어쩜 그렇게! 하하하!》

   꾸며낸 동화같지 않았다. 짐승들도 인간을 본따면서 살아가는게 하도기특하고 감탄돼서 젊은이는 소리내여 웃었다. .

   박령감이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오소리란놈은 어떤가봐. 그놈은 제살굴도 짓지 않구 여름내내 빈들빈들 놀다가는 겨울이 와 추우면 남이 그같이 힘들게 만들어놓은 굴에 기여든다네.》

   《그래서 오소리와 너구리가 한굴에서 사는모양이죠.》

   《그렇네. 렴치짝없는 놈이지.》

   《그래서 오소리를 잡놉이라 욕하겠구만요.》

   《그렇지.》

   이날 그들은 여우가 낸 눈길에다 서르미를 두틀놓고나서 산기슭의 넘어진 오랜고목근처에서 너구리굴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개가짖어댄데다 남병호가 방법도모르고 지다창을 무턱대고 굴에다 들이민통에 안에 있던 놈들이 앞통로를 제꺽맊고 다른통로로 해서 깊이숨어버린탓에 잡지 못했다. 세밑에 가서야 내굴을 쐬여 몇놈잡았다. 어쨌든 종자는 남긴거다. 그들은 쪽제비와 황가리를 여러마리잡아팔았다. 개와 싸워보자고 찾아온 승냥이를 세 마리잡고 여우도 두 마리잡아 가죽을 벗겨팔았다. 산짐승잡이는 재미 있었다. 남병호는 자동차의 부르릉거리는 소리도 사람의 떠드는 소리도 없이 조용한 산간의 맑고도 아늑한 서정적인 환경속에서 번뇌를 잊고 그 겨울을 박기섭로인과 함께 유감없이 즐겁게 보냈다.

 

 

                                                                    7

 

   이듬해의 봄. 남병호가 박기섭로인을 찾아와 자기는 이젠 농사지을 생각도 외지에 벌이갈 생각도 없으니 함께있도록해달라 사정했다. 박기섭은 그 청을 선듯받아주지 않고 머리속에 생각을 굴리였다. 함께있으면서 늪에다 양어를 좀 더 크게하면 자기도 덜적적해서 좋지만 젊은이마저 중같이 만들어놓을수는 없었다. 그는 젊은이보고 자기처럼 늙어죽을때까지 홀아비로 살아갈셈인가 그러지 말고 농사를 계속지으면서 알맞는 색시감이나 얻어 장가나 어서가라했다. 생각해보니 하긴 그것도 틀리지는 않는 말이였다. 이젠 아예 속세를 떠나 중질을 하자고들면모르겠지만 아직 정욕은 펄펄 살아있는 숫놈이였다. 그래갖고 산에만 들어와있는다면 사실 다시장가간다는것도 어려울것이였다. 하여 그는 지금은 우선 박령감의 의사에 쫓도록했다.

   여름이 되니 어떻게 여기 늪에 고기가 많다고 소문이 나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낚시꾼이 하나 둘 달려들기시작했다. 그들중에는 자기는 도시에서 일부러찾아왔는데 제발잡게해달라고 비라리청을 하다싶이 사정을 하는 낚시질열성가들도 있었다.

   박기섭은 안된다고 딱 막아버리려다가 그러면 먼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사람을 너무나 랭혹하게 대하는 것 같거니와 자기는 그들로부터 괴벽한 깍쟁이라는 나쁜 평을 받을게 빤해서 생각한 끝에 돈을 얼마간씩 받기로 하고 그네들이 늪에서 낚시질하는 것을 허락하고말았다. 이렇게 되어 일호동의 작은 늪은 대외로 개방이 되었다. 헌데 또 정작 그렇게 하고보니 전만 수입은 썩 되는데 돈 몇푼내기실어 도적낚시질하는 사람이 있었다. 박기섭은 그런 사람이 발견만되면 개를 풀어놓았다. 그러면 저쪽은 덴겁하여 달아났다.

   여기에는 죽탕같이 발을 어지럽힐 길이 없었다. 일호동에서부터 지금은 돌을 캐지 않는 남쪽의 채석장까지는 자동차는 들어오기 어렵지만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서는 얼마든 다니는 오솔길이 예날부터 나있었는데 그것이 모래길이여서 좋았다.

   어느날 남병호는 자기가 다루고있는 논 일곱짐에다 비료와 약을 다 치고나서 일호동에 왔다.

   《로인님, 한가지알려드려야 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직은 일러그렇지 이제 좀 더있으면 낚시질꾼이 형편없이 쓸어들겝니다. 》

   《그건왜서?》

   《내가 요즘 시내에 갔다가 도는 말을 들을라니 거기 낚시협회에서는 올해부터 여기 일호동늪을 자기들의 중점활동장소로   선정하고있답니다.》

   《좋아 어디 그렇게만하라지. 나두 손해볼건없으니까. 그런데 그럴려면 그네들이 나하구 협의가 있어야하지.》

   《거야물론이지요. 그렇게 않하구야됩니까. 그들도 이제 그러자고할겝니다.》

   《내 그 사람들이 어째 여기를 특별히 맘들어하는지를 알만하다. 그건 고기잡이도 고기잡이려니와 여긴 경치까지 유별나게 좋으니까 그러는거네. 작년에 장근식이가 왜 여기를 그토록 욕심냈겠나. 빤하지 않아. 밑천얼마넣어 별장만 하나 지어놓으면야 여긴 좋은 료양지로 되어 영락없이 뗏돈을 벌것같아서였네.》

   《그런데 시내사람들은 여기가 좋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가?》

   《모르지 그자식이 여기를 달라구왔다가내한테 퇴박맞고는 일부러 훼방을 놀게만드느라 시내낚시질꾼들한테 소문낸것이 이같이 번져가는지두. 아무리생각해봐두그래.》

   《정말그렇다면 이건 해가 복으로되는게 아닙니까.》

   《세상일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지. 이것두 아마 하늘이 이 령감을 알아주는건가봐.》

   《아마그런거같은데 저 로인님.》

   《무슨일 또 있나?》

   《우리가 여길 아예 료양지로 만들어버리면안될까요.》

   《안될거야있나. 그러잖아 작년에 그 일이 있은후부터 나도 머리가 그쪽으로 돌아가고있는중이네.》

   정보를 중히여기고 장래를 설계해보는 이런 대화는 적시적이거니와 중요한것이였다.

   박기섭은 가불간 장가를 한 번 다시가야 할 남병호가 그일에 대해서는 대체 어느정도나 신경쓰고있는가를 알아보았다. 남병호는 자기가 보아둔 녀자가 하나있다고 하면서 일이 되겠지요했다.

   《제마을녀잔가?》

   《아닙니다. 외지녀잡니다.》

   《뭐라, 외지녀자라?》

   《예. 교련하쪽에 있는데 작년에 본남편과 이맞잖아서 끝내리혼하고 지금혼자살고있습니다. 일곱살난 딸애 하나데리구요.》

   박기섭은 그의 말을 듣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교련하쪽에서 이리로 시집오자구한다지. 아마두 딸린 새끼있어 거기서는 재가하기 어려운모양이지.》

   《그래그런게 아닙니다. 녀자측이 딸린자식있어도 꺼리지 않으니 같이살자고 청혼들어오는게 여럿된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먼데루 시집오자구하나.》

   《거야 연분이 줄을놓아서 그렇겠지요. 올해 나이 서른넷인데 고향에 와서 살고십답니다. 우리는 서로 면목아는사입니다.》

   《면목아는사이라?》

   《예. 우리가 그쪽에서 살 때 중학을 함께다녔습니가. 그는 이고장서 태여나서 여섯 살 때 그쪽으로 이사를 갔던겁니다. 그리곤 거기서 학교를 다녔구 스므다섯살을 먹어서는 바로 지난해에 갈라진 본남편한테 시집갔던겁니다. 》

   《성명이 뭔데?》

   《로영애입니다.》

   《로영애라!》

   박기섭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늘 빨간 명주댕기로 종종머리를 매고다니던 한 깜찍스런 계집애의 동그란 몰골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 계집애가 바로 로명호의 딸이다. 딸만 셋이였던 로명호가 아들생각이 간절해서 뭐니뭐니해도 사람의 인소가 제일이라는 구호를 죄치면서 끈기있게 자식생산을 계속해서 다시본 것이 결국은 제언니들모양으로 달고나오라는 고추는 달고나오지 않고 어미배속에다 떼놓고 나온 그녀여였던 것이다.

   남병호가 박기섭이 낯빛까지 흐려가면서 저으기놀라는 모양을 보고 괴이쩍어했다.

  《어째그럽니까?》

  《대상이 로영애라니 그러네.》

  《그럼 로인님도 로영애를 압니까?》

  《알다말다. 그게 죽은 로명호의 셋째딸아닌가. 걔가 바로 도시서 살다가 〈하방〉한 이듬해에 태여났지.》

  《아, 그런가요! 로인님은 무어나 다 아는구만요!》

   이번에는 남병호쪽이 되려놀랬다. 그는 마을사람들한테서 들어 항미원조 때 조선전쟁판에 나가 피흘리며 싸운 박기섭로인이 문화혁명기간 억울하게도 목에 패쪽달고 투쟁받았다는건 알고있어도 그를 그토록만든 장본인이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영애의 아버지였다는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박기섭은 그 일은 말하지 않으리라 작심했다.

   남병호는 자기는 아직도 련애중인데 이제 어느때 한 번 자기가 기회를 봐서 대상을 데려다가 꼭 인사를 시키겠노라했다.

   이렇게 공교로울변이라구야. 저녀석을 빨리 재처를 하라 독촉했더니만 하필이면 로가놈의 딸을 눈에들어할건뭔가. 과연 말과같이 데려온다면 어떻게 대해줘야하는가. 그를 만나면 자연히 로명호를 또 한번다시 상기하게될것인데 그러는게 결국 무슨 좋은점이있는가. 상처입은 과거는 꿈속에서도 재생되지말아야했다. 이제는 분하고 쓰라린 기분만을 자아내게하는 지난날을 다시회억하기싫었던 박령감은 난감한 일에 봉착하게되였다.

 

   주인이야 어떻든 일호동의 새날은 산새들의 즐거운 노래속에서 막을 올리고 막을 내리였다. 흙에서 진주를 캤다면 누구나 그것이 과연정말 진주일가고 의심할것이고 대체 어떤모양인지 보자고하듯이 일호동역시 상고머리가 갖고싶어서 침을 흘린 곳이라 소문나는바람에 자연히 차츰차츰 여러사람의 안목에 들게되였다. 시내의 낚시질꾼만이 아니였다. 남병호가 왔다간지 한주일만에 저 앞마을의 20여명되는 젊은이들도 자전거를 하나씩 타고 일호동에 나타났다. 일부러 계획하고 원족을 온 것이다. 전에는 이런일이 없었다. 그곳도 산을 의지하고 있는 촌이여서 도시사람들모양으로 산이 그렇게 그리운 것은 아니였다. 그역시 하나의 양생법이라 할가 자아안위라 할가, 어느때부터였는지 그 마을에는 아무데도 벌이를 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농한기를 무료하게 그저보내자니 멋없어 계(契)를 묻듯이 제 동갑을 찾아 띠끼리모여노는.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래서 무언중에 또래와 또래끼리 마치 경쟁이라도 하다싶이 놀아주는판인데 오늘 그중의 한또래가 이왕과는 색다르게 활동을 조직했던 것이다. 이 활동의 조직자가 다른사람이 아니라 여기를 제집같이 드날들고 있는 남병호였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한것은 로영애가 좀 더 두고보자던 청혼을 수락하고 이젠 같이살자면서 교련하에서 일부러 찾아왔기때문이다. 동갑들은 남병호보고 잔치를 하라느니 빨리한턱내라느니 닥달을 놓았다. 이에 당자는 좋다 내마 그깟거야 문제냐. 그런데 우리는 곧 려행잔치를 떠나겠으니 술한잔 얻어먹을 결심이 있거든 어디 따라오라해서 오늘 이렇게 원족이 조직되였던 것이다.

   박기덕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조직되여 자기의 독립령지로 놀러온 것을 무척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가 요즘 기억속에 더듬어보았던 녀인이 나타나 그의앞에 다가왔다.

  《인사하오, 나를 늘 친자식같이 여겨주고있는 박로인이요.》

   남병호는 박령감의 앞에서 자기가 로인의 동의도 수소문도 없이 문득 한무리를 데리고 오게된 연유를 말하고나서 영애를 그에게 인사시켰다.

  《네가 로명호의 딸이라지. 그러구보니 어렸적의 모색이 약간알리는구나. 넌 제 누나들보다 어미의 모색을 더많이 닮았네라.  .애기때부터 빨간댕기를 특별히 좋아하구. 내가 누군지 알만하냐. 넌 아마 이 늙은이가 좀 기억날게다. 》

  지울수없는 것이 세월이 남기는 흔적이였다. 박령감은 얼굴이 아직은 젊은바탕이나 아이어머니로 되어서 눈가에 벌써 잔주름이 잡히기시작해 초로의 증상이 보이고있는 젊은녀인이 머리를 공손히 숙이여 하는 인사를 받고나서 튀여오르려던 격정을 삭히면서 온화한투로 말했다.

   그때는 비록 학령전의 나어린 계집애였지만 벌써 지력이 트기시작한 때였기에 로영애는 얼굴이 강마르고 다리 하나를 살룩살룩 절면서 자기네 집에 자주놀러다니던 한 사람을 지금도 잊지않고 있으리라. 그는 영애를 무척고와했다. 어느핸가 그가 알사탕을 사주어서 영애가 그것을 받아먹은적도있다. 어찌나좋던지. 그래서 영애는그를 좋아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그렇게 좋은 사람이 갑자기 발길을 끊고 다니지 않았거니와 목에다 글을 쓴 커다란 패쪽을 걸고 마을사람들한테 자주몰리우기만했다. 그가 왜서 그렇게 험악한지경이 됐는지? 영애가 초중을 다니면서 아버지한테 물었더니 아버지는 계집애가 공부나할게지 쓸데없이 그건알선 뭘하느냐면서 알려는주지도 않고 신경질만 부리였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땐가 한 번은 어머니가 아버지보고 당신은 그래 무슨낯짝에 그 사람을 다시대하겠소 하면서 지청구하고는 탄식하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영애는 어머니가 말하는 그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다리를 절는 어른이리라여기고  어머니에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고 캐물었다. 그랬더니 어머니도 쓸떼없이 네가 그런거나알아선 뭘하는가면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영애는 지금도 모르고 있다. 세월이 오래되니 한때 의문되고 미타하던 일이 이제는 머리속에서 영잊어지나답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 이렇게 만나게될줄이야! 로영애는 물기어린 눈매로 그를 마주보면서 말했다.

  《제가 왜 모르겠어요. 로인님께서는 절 무척 고와하면서 사탕도 사주지 않았던가요. 로인님은 정말좋은분이였어요.》

  《내가그랬던가, 허허허!》

   박로인은 웃음으로 이제 영애를 마나면 하려했던 지난때의 말과 감정을  뭉때리고말았다. 대방이 안겨주는 한마디말에 열층두께의 얼음이 녹고 가슴은 후련해진 그였다.  

   비누거품같이 떠있는 하얀구름사이로 해가 웃으면서 얼굴을 내미니 맑고 청신한 대기속에 함뿍잠겨있는 일호동의 초가와 늪과 산은 한결 아련한 정취를 자아내고있었다.

   놀려고 온 마을의 젊은이들은 시르맨커서쪽의 바위산을 올라가보고 내려와서는 그 산기슭에 있는 한 너럭바위우에다 저마끔준비해갖고 온 음식들을 꺼내여 놓고는 빙 둘러앉았다.

   돌을 고이고 걸어놓은 가마안에서는 고기국이 끓고 있었다. 남병호의 결혼잔치삼아 조직된 원족이였다니 아끼고싶지 않았다. 박로인은 물고기가 얼마든지있다 너희들은 오늘 해먹고푼걸 마음껏해먹고가야한다 그러지를 않는다면 이 늙은건 성을 내리라했다.

  《로인님,갑시다! 갑시다!》

   젊은이 하나가 그를 상석에 모시였다. 그리고나서 결혼례식순서대로 한다면서 남병호와 영애를 끌어다 그의 앞에서 큰절을 하게했다. 남병호와 영애는 오늘부터 정식부부로 된다. 그런데 좀 유감스러운 것은 신랑도 신부도 살아있는 친부모는 없었다. 량측 다 형제자매들이있긴해도 그들은 다가 바깥벌이를 하느라 헤매고있으니 없는거나다름없다. 오기어려운 그들을 꼭 생빈으로해야 할 리유가 뭔가. 아무리 윤기간이라해도 인정을 모르면 그는벌써 남이되고마는 것이다. 내가 변을 당했을 때, 고민 할 때, 방황 할 때, 절망 할 때 구원의 손길을 보내고 포섭해 주는 사람― 인애가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친구고 형제고 부모인것이다. 젊은이들은 불행했던 두 사람의 새로운결합을 축하하면서 한결같이 남병호의 얼었던 가슴을 녹여주고 이끌어주고있는 박기섭로인을 높이 칭송했다.

    박기섭로인은 전해에 자기가 만들어두었던 말린 산사편을 몽땅 내놓고 그들의 술좌석에 끼이였다.

   《이건뭐라는겝니까?》

   가마에 쪄낸 아가위를 으깨여서는 꿀을 치고 록말을 넣어서 그걸 끓이면 산사편이 되는데 모두들 생전처음먹어보고 있다.

   점심식사가 다되자 록음기에서 유쾌한 음악이 터져나오기시작한다. 오락이 시작된 것이다. 술이 얼근하게 된 젊은이들은 저마다 재간껏 마음껏 노래도 하고 춤도 췃다.

  《이눔의 유축에서두 오락을 놀아보는 때가 있구나!》

   젊은이들이 많이와서 이렇게 놀아주니 유쾌하고 만족스러운지 로인도 환락과 기쁨에 도취되여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오늘부터 살렵니다.》

   이날 남병호는 돌아가지 않고 영애와 함께 일호동에 남았다.     례식을 꼭 올려야 하는건가. 박기섭로인은 새결혼증을 보고는 두말않고 시르맨커를 비우고 자기는 다커투에 올라가 잤다.

 

   가을에 시르맨커를 허믈고 그 자리에 아담한 벽돌집 한채를 일떠세웠는데 호적부에 등록된 이 집의 식솔은 모두 다섯이였다. 젊은부부에 녀자애 둘 그리고 로인한분. 마을의 이름은 여전히 일호동이라했다.

 

                                         

 

                                                 할빈에서

                                              1997,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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