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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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1장(7)
2014년 08월 24일 22시 45분  조회:2890  추천:1  작성자: 김송죽
 

 7.

   말은 계속달렸다.

   장포와 파이풀과 갈대들이 무성한 진펄을 에돌고 시개천 몇 개를 건너온 려홍이는 오후 3시경에 벌써 모래와 자갈들로 다져진 널다란 신작로에 들어섯 말을 달렸다. 길은 바로 그가 해방받았던 아르금시로 곧추 향했는데 저멀리 완만한 기복을 이룬 완달산령의 다른 한 지맥의 끝머리에 활짝펼쳐진 드넓은 평원이 시야에 안겨왔다. 송화강의 습윤한 공기는 기분을 한결 맑게 해주면서 전야의 새로운 풍치를 돋우어주고있다. 말은 줄창 단걸음으로 오다가 속도를 차츰 늦추면서 기분좋게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 굴뚝들이며 급수탑이 보였다. 도시는 점점 가까웠다.

   려홍이는 한곳에 이르어 말을 세우고 훌쩍 뛰여내렸다. 이제 시내로 들어가면 말은 필경 저녘을 굶게 될 것이니 풀을 미리 뜯기우는덧이 랑패없을것 같았다. 그는 산속에서 헤매던 때와는 달라서 말이 혹 신작로로 달아날가봐 고삐로 앞다리 하나를 매놓은 후 길옆풀밭에 들이몰았다.

   말은 주인의 너그러운 처사에 감사해서인지 코를 프르르거리고는 초리를 저어대면서 식성좋게 풀을 뜯기 시작했다.

   (네놈을 탔길래 내가 여기까지 쉽게 올수 있었지.)

   려홍이는 도시쪽을 바라보면서 한시름 놓이는듯한감을 느꼈다.

   (그런데 막상 시가지로 가선 또 어떻게해야 한담?... )

   추억속에 영원토록 남게 될 그 사모자에서 있었던 일들이 마치 무성의 활동사전처럼 다시금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고마운 사람들과 너무도 섭섭하게 갈라졌구나.)

   가슴속에서 원칠두네 식솔에 대한 고마움에 뒤미처 그네들과 갑작스레 리별하게끔 만든 손지주에 대한 증오심이 바글바글 끓어올랐다. 이젠 사모자와 같은 자그마한 마을마저 평온을 잃고 불안에 휘말려드는 판이니 도시는 형편이 어떠할가? 이렇게 찾아가는게 옳은 행동일가?... 이러루한 종잡을수 없는 생각에 자겨 한참 모대기고 있느라니 도기쪽으로부터 말탄 사나이 둘이 급히 올라오는게 눈에 띄였다.

   (도대체 무슨 사람들일가?)

   려홍이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걸음에 지친 말들이 주억거리며 오고있었다. 말이 가까이 옴에 따라 그걸 타고오는 자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더욱 똑똑히 들렸다.

   <<허! 저눔의 말 참 젛은데!>>

   <<좋아! 그런데 저건 누굴가?>>

   <<글세... 우리만자 달아난칠가?>>

   려홍이는 가딱않고 주의깊게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서른살미만의 사나이들이였는데 골을 보니 그리 좋은축들인것 같지 않았다. 한자는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다른 한자는 얼굴이 얼굴이 얄팍한게 일견 교활해보였다. 헌데 그자들은 남의 말에 무던히도 요심이 끌렸는지 제 갈길은 가지 않고 말을 세우는 품이 쉬고갈 잡도리였다. 건정 거덜말을 타고 온 우락부락하게 생긴자가 말에서 먼저내려 고비를 저쪽 부루말을 타고 온자에게 던져주고는 코를 킁킁 거리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려홍은 속으로 바싹 경계하면서 일부러 외면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자는 바투다가더니 제먼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꼭같은 길손이구려!... 성부지명부지네만 담배나 한 대 빌자구.>>

   <<난 담배없어.>>

   려홍에게 워낙 담배라곤 없었거니와 있다해도 주고싶지 않았다. 첫거동부터 실답잖아보이는 이 작자가 뻔뻔스레 담배부터 달라니 불쾌한 회의감만 치미는터였다. 그자는 게면쩍어졌는지 내밀었던 손을 도로거두고 눈살을 찌푸렸다가 멋쩍게 벌쭉 웃었다. 그리고는 뒤통수에 삐딱하니 올려놓은 모자속에 손을 넣어 머리를 긁적이고나서 승마바지호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 새 권련 한갑을 꺼내여 터뜨렸다. 려홍이는 그꼴을 보니 멋없이 희롱당한것 같아서 슬그머니 화가 동했다.

   << 자기한테 담배있어가지고 렴치좋게 손을 내밀건 뭔가, 되지못하게?>>

   백납이 먹어서 낯에 허옇게 어루러기생긴 그자는 상판이 설익은 말대가리처럼 벌개나더니 무안결에 맥빠진 너털웃음을 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공연히 성내누만. 자, 그러지 말구서 내가 권하는 담배나 한 대 받으라구.>>

   <<싫어 내 언제 담배달라던가?>>

   려홍이는 랭연히 거절해버리고 뒤끝을 따져물었다.

   <<대체 어떤사람이길래 가던 길이나 갈거니 시끄럽게 남을 함부로 건드리는거야?>>

   <<아, 아니, 이거... 허허허!>>

   백납먹은 자는 상통을 찡그리며 어설프게 웃더니 다배를 붙여 둬모금켜고나서 풀섶에다 홱 던져버렸다.

   <<제길할, 이눔의 걸연은 아양모르는 계집맛처럼 슴슴해서 피울 멋이라구 없다니.>>

   려홍이는 선입견으로 남을 대하는건 옳지 않지만 처음부터 사사스러워보이는 이따위 속내모를 인간과는 절대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더욱이 요즘 행길엔 강도들이 빈번히 나타나서 대낮에도 사람을 겁탈하며 작경을 부린다던 원칠두로인의 말이 새삼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방의 일거일동에 세심한 주의를 팔면서 덤벼만 들면 자기도 맛서서 단호한 수단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한편 대방의 이러한 수민한 심사를 눈치채지 못한 백납먹은 자는 려홍이가 만만치 않아보이니 허투루 범접할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어딘가 타협적인 투로 다시금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임자는 어디루가는 길인가?>>

   <<남이야 동으로 가건 서으로 가건 상관할게 뭐요?>>

   려홍이는 퉁명스레 대꾸하면서 행실이 치뜰고 고약한 그를 아니꼽게 보았다. 백납먹은 자는 고개를 저쪽으로 돌려 감질내는 탐욕스런 눈으로 절따말을 보더니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반죽좋게 너르레를 떨었다.

   <<임잔 조선사람같은데 우리 중국말을 써 잘하는구먼! 건데 말타구서 어디루 가는길인가? 시내루간다구?... 에구, 가지두말라이.>>

   <<건 왜서?>>

   <<진압이야, 거기선 지금 마구 진압을 한다니까.>>

   하면서 그는 손짓까지 해대며 살을 덧붙이였다. 려홍이는 임자가 무슨 말을 이렇게 하는가고 놀라운 눈길로 다시금 여겨보았다. 그자는 얼룩진 얼굴에 정색을 했다.

   <<정말이야, 거짓말이면 개아들놈이라니까. 거기서는 조금이래두 의심나는 사람이면 죄다 붙잡아서 영창에 집어넣고있어. 그래서 우린 끝내 배겨내질 못하구서 이렇게 나온다니까.>>

   (영창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

   려홍이는 영창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처졌다. 하지만 해방된 지금에 와서 거기에다 대관절 어떤 사람을 집어넣고있는 것일가? 시내에선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있는가?... 이런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갈마들었다.

   저켠으로 갔던 자가 두손에 말고삐를 쥐고왔다. 입술이 얄팍하고 낯에 주근깨투성인 그는 몸에다 향수를 잔득뿌려 사향쥐처럼 냄새를 피웠다. 백납먹은자가 말에게 풀을 뜯게 할게지 왜 끌 왔느냐고 나무랐다. 그러나마나 그자는 그런 말에는 상관않고 려홍이의 이마에 있는,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발견하더니 눈을 올롱하게 뜨며 다그쳐 묻는것이였다.

   <<이마에 생채기는 왜 그렇게 났소?>>

   려홍이는 떡심좋게 그를 치떠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곰한테 뜯기웠어.>>

   <<뭐, 곰한테 뜯기웠다구?!>>

   <<그랫어. 난 곰하구 싸웟더랬지.>>

   <<저런! 어떻게 되어 곰하곤 싸웠나? 그런걸 난 또... >>

   백납먹은자가 눈이 떼꾼해서 물었다. 려홍이는 눈짐작으로 이자들은 틀림없이 약한자면 숙보고 억센자에겐 덮어놓고 빌붙는 그 런 강포쟁이라는걸 민감하게 깨닫고 태연스레 응부했다.

   <<어째서 싸우게 되었는가구?...하, 거야 그놈의 짐승이 사람잡아먹자구 달려드니까 싸운게지. 그게 뭐 대단하다구 그러는가.>>

   <<대단하잖구, 남들은 승냥이도 겁나서똥줄갈기는판에 곰과 맞다글어 싸웠으니 그게 어디 보통으로 할노릇인가!>>

   <<그렇잖구, 정말 대단하다이!>>

   백납먹은자가 저의 동료의 말에 맞장구쳐서 그만 자기를 스스로 졸망한 위인으로 치부해버리고말았다. 려홍이는 이런때엔 그럴듯한 말로 둘러맞추는 림기응변술을 써먹는것도 괜찮음을 알았다.

   보기좋게 제꺽 속히운 두 졸보는 남을 떠보려던 어리숙한 궁리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말았다. 과연 백납먹은자는 려홍이는 딴눈으로 다시보게되였다. 보면볼수록 자기보다 몇갑절 억척스레보여 그만 엄지손가락을 빼들면서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위 대장부라 할수 있소!... 용감하거던!... 호객이야, 호객이란말이야, 으하하!... >>

   이쪽녀석은 사향쥐냄새만 피울뿐, 주눅이 들어 설설 기여드는 소리였다.

   <<실말이지 내같은 담기로선 아예 엄두도 못내겠어, 참 대단해!>>

   <<사내루 태여나서 그만한 담량도 없어?... 하하하!>>

   려홍이는 이렇게 소리내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호기가 가득 담겨졌다. 그자들은 려홍이의 신분에 무등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은 어데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산중에서 사나운 짐승과 격전을 치르었는가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려홍이는 지레짐작한바가 있는지라 주저없이 척척 꾸며댔다. 실로 이런 경우엔 제일하기쉬운게 거짓말이였다. 그는 이름과 살던 지점을 아무렇게나 주어대고나서 자기가 집을 떠난지 벌서 보름도 나마 되는데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이루 형언키 어려운 고초를 겪었노라고 했다. 어떠한 모양으로 생긴 산중턱에서 여차여차하여 낮잠을 자게 됐고 산을 쏘다니는 곰한테 들키워서는 그놈의 품에 안겨 버둥질치다가 여차여차하게 비수를 꺼내여 숨통을 찔러 죽여버리고 살았노라고 슬슬 꾸며댔다. 그랫더니 두녀석은 딱 곧이듣고 더더욱 경탄을 금치 못했다.

   려홍이는 이 졸보들을 속여먹은게 고소해서 속으로 씩 웃었다. 려홍이는 남의 말을 욕심내여 엉큼한 심보를 갖고 달려들었던 이따위 꽝포쟁이들앞에서는 끝까지 만만치않음을 보여야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네들이 아무리 발라맞추며 개여올려도 따라웃지 않고 랭담햇다. 그랫더니 그것이 더욱 효험을 냈다.

   <<임자는 걷보게 벌써 들차게 생겼어. 가때사나운 성격이겠거던. 이 괄룡이도 성격이 그래서 바로 인자같은 사람을 놓아한다니까.>>

   하면서 백납먹은자는 자기를 어른이라해봤다 소인이라해봤다 하면서 려홍이를 한바탕 더 치살리고나서 관상쟁이 관상보듯 눈을 지긋하고 다시보더니 엉뚱한 물음을 들이댔다.

   <<보아하니 임자도 나처럼 마음붙일 곳 찾아다니는 사람같은데 안그렇소?... 그렇겠지! 내가 면버루 알아맞혔다니까. 이 관룡이가 눈이 얼마나 밝은 사람이라구 헤헤헤... 나하고 함께 가자구. 내가 가는 곳이면 임자도 마음들거네. 그래 같이 가겠나 안가겠나?>>

   <<어데루 간다고 그말인가? 대체 천당인지 지옥인지두 모르구 그저 눈먼 송아지 원앙소리 듣고 따라가듯할수는 없잖은가!>>

   려홍이는 이렇게 반문하며 벌쭉 웃었다. 어리석은 자의 어르석은 궈유지만 부러 마음이 동하는것 처럼 해보였던 것이다. 그랬더니 백납먹은 자는 양양자득해서 나섰다.

   <<호룡산이야 호룡산!>>

   <<호룡산이라구? 거길가선 뭘 하게?>>

   <<뭘 하긴, 가면야 잘되지. 거기선 바로 우리네 큰 패가 조직되고있어.>>

   <<큰 패가 조직된다구?... >>

   <<그렇네, 대단히 큰 패야. 이 북만에서는 제일 큰 패로 될터인데 이름은 보안대라고 해.>>

   <<보안대라구?... >>

   려홍이는 의혹에 젖은 눈길로 그자를 여겨보았다. 사향뒤쥐같은자가 백납먹은자의 말에 동을 달았다.

   <<그렇지, 보안대라구하는건데 인제 눈깜짝새에 만명무장대로 될거요. 나 이 유건이가 점쟁이는 아니지만두 제가 놀리는 혀바닥을 내걸고 담보하는 말이라니까.>>

   <<음!ㅡ 과연 대단한데! 그렇게 큰 무리를 그래 누가 만드는가?>>

   려홍이가 이렇게 나서니 백납먹은 자가 시뚝해서 침방울을 튕기였다.

   <<거야 두말할것 없이 큰어른들이지 뭐.>>

   려홍이는 큰어른들이란 도대체 어떤 인물들일가고 속궁리했다.

   <<임자는 모를거야.>>

   백납먹은 자가 의혹이 가시지 않은 려홍이의 낮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뒤말을 이었다.

   <<만청때 살았고 강덕때도 살면서 뜻을 키운 명사호걸들도 많이되지.>>

   <<저런!... >>

   려홍이가 짐짓 놀래는것처럼 하니

   <<이를테면 안장코란 별명가진 어른도 있지.>>

   하면서 백납먹은자가 자기 코를 누르는 시늉까지 하고는 다른 이름을 하나 더 대는것이였다.

   <<우리네 직접상관은 그고 버금으로 가는건 장삼이라고 하는분이야.>>

   <<장삼이라, 뭘해먹던 사람인가?>>

   <<시내에서 협화회 회장노릇을 했더랬지.>>

   <<음, 그러니까 인제 보니 말짱 그러루한 사람들이 무리를 만들고있는판이로구만.>>

   <<쩌쩌... >>

   백납먹은 자가 말을 가로챘다.

   <<임잔 왜 자꾸 <무리>를 만든다고하는가? 그걸 <무리>라 안하고 ,부대>라고 해야 옳단말일세.>>

   <<부대라? 그렇다면 거기에 들면 군인으루 되겠네 허허... >>

   <<그렇지, 그렇구말구.>>

   백납먹은 자는 이렇게 긍정하고나서 려홍이의 말투를 시정해주었다.

   <<그걸 만든다고 하면 상식적인 말이 못되니까 창립한다구 해야 옳은거야.>>

   <<만들건 창립하건 그따위사람들이 나서서 하는 일이라면 난 들지 않을테야.>.

   <<그건 왜서?>>

   하고 물으면서 백납먹은 자는 눈을 크게 떴다.

   <<난 지주나 그따위 주구들이 하는 노릇이면 싹 다 반대야.>>

   <<그네들이 자넬 해친적이 없어도?>>

   <<매한가지야. 우리 마을 지주가 무장대를 조직하면서 급을 줄테니 들라는것도 뿌리치고 나온 내야.>>

   <<저런 허허! 과연 맹랑한 짓을 했군그려.>>

   백납먹은 자는 제멋에 겨워 떠들어대더니 이어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임잔 그네와 용추간이엿던 모양이군.>>

   <<옹추간이구말구. 난 그자를 원쑤로 보고있어.>>

   <<허 그렇구만. 정 그렇다면야 시끄럽게 자꾸 권할 필요야없지. 사내대장부로선 배짱도 있어야 해.>>

   백랍먹은자는 려홍이의 말에 슬그머니 공감을 표시하면서 자기소개에 달라붙었다.

   <<나도 지주와는 뒤틀린사람이야. 우리네고장에 말이야. 난 금성에서 살았어. 그곳 조나으리에겐 고운 딸이 하나있지. 난 그 계집을 채가지려다가 성못했어. 그 빌어먹을 두상이 자기 딸을 내놓고 흥정을 했거던. 그래서 나보다 주먹살 더 센녀석이 차지했어. 젠장! 갖겟으면 콱 가지라지. 조가네 딸아니면 이 관룡이가 장갈 못갈가! 흥, 난 화김에 그만 거기를 떨쳐나왔더랬어... 누가 잘되나 어디 두고볼테니까.>>

   려홍이는 그말을 듣자 무망간에 조소를 머금었다.

   <<사내대장부로서 쩨쩨하게 그따위 일에 다 앙심품고 다녀? 위인이 과연 불출이로구나, 하하하... >>

   백납먹은자는 이렇게 비난을 받게되자 낯을 일그러뜨리며 덤덤해졌다. 헌데 그가 금성에서 왓다고하니 려홍이로서는 왕복룡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복룡이는 갈라질 때 고향에 돌아가면 꼭 원쑤놈을 찾아 복수를 하고야말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이 려홍이가 가기만하면 삼생기연짝사랑처럼 대래주겠다고 뜨겁게 말했다. 금성이 어떤곳인지 그곳에 가면 발붙일수나 있겠는지?... 려홍이는 왕복룡에 대한 정을 잊을수 없어 마침내 자기는 그곳으로 갈 의향이라 말했더니 백랍먹은 자는 얼른 도리질해 나섰다.

   <<흥, 가지두말어. 무서운 골방이지. 내가 나온걸 보라니까. 출세하겠더든 그래두 호룡산으로 가야해.>>

   공명심에 들뜬 사람이 티없이 깨끗한 령혼을 갖고 살기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였다. 려홍이는 지금 공명심에 들뜬 인간나부랭이를 코앞에 놓고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백납먹은자는 저절로 그 어떤 감마로운 환상에 잠겨 벌쭉 웃더니 동료를 턱짓하며 말했다.

   <<저치를 보게나. 나는 평생에 출세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지만 저치는 사고팔고(四苦八苦)를 두려워하면서도 보기드문 색광이란말이야 허허!>>

   <<사고팔고라,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려홍이는 의혹에 싸여 물었더니 백납먹은 자는 제법 손가락까지 폈다굽혔다하면서 설명했다.

   <<사고팔고란걸 차례로 셀것 같으면 이러루한거야. 나고, 늙고, 앓고, 죽고 하는 일에서 사랑과 리별을 하고 남한테 원망과 미움을 당하고 구하여도 얻지를 못하고 음이 성하여 지랄이 나는 거야. 하니 인생의 쓰라린 고통이지.>>

   <<그러니 저치는 색정을 만족하려고 호룡산에 간단말이지? 하하하!..>>

   려홍이는 어이없이 웃으면서 길에서 만난 이 생면부지의 인간들을 다시 여겨보았다. 그러고보면 호룡산은 말짱 이러루한 무리들이 모여들고있는 날부란당 본거지임에 틀림없었다. 온갖류형의 건달군, 사기군과 악한들이 한데모여들어서는 법석구니를 놓으면서 세상을 한번 저들의 천하로 만들어보자고 떠들고 음모를 꾸밀것이며 그런 다음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발끝이 미칠수있는데까지 뛰여다니며 살인하고 방화하고 략탈을 할 것이다!...

   려홍이는 가망없는 짓이라 여기면서도 한번 인간의 량심으로 그들을 타일러보았다.

   <<우리 조선사람속담에는 <열사람 형리를 사귀지 말고 한사람 죄짓지 말라>는 말이 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호룡산은 나쁜곳이니 가지들말게. 불여귀, 불여귀! 어서 돌아감만 못하가니깐, 돌아감만 못해!>>

   <<우리더러 돌아가라구? 흥!>>

   <<그렇게는 못하겠는걸!>>

   두 작자는 마치 듯지 못할 말을 듣기나한것 처럼 펄쩍뛰였다. 백납먹은자는 왜서 남의 양양한 전도를 희롱하며 비웃는가고 목에 피대를 세우며 대들었다.

   려홍이가 자리차고일어나니 백납먹은 자가 흉살스레 이를 사려물었다.

   <<네가 나를 비웃어놓고 어디로 가려느냐?>>

   <<아무데로 가건 네가 상관할게 뭐냐?>>

   려홍이의 두눈에서는 삼엄한 푸른빛이 번쩍했다. 두녀석은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려홍이는 그자들을 쏘아보고나서 몸을 획 돌려 배포유하게 자기 말께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말을 끌고 신작로에 올라서니 도시쪽으로부터 말탄 사나이 둘이 또 달려오고있었다.

   <<장나리가 오는구나!>>

   려홍이는 그 소리를 귀전에 들으며 말잔등에 제꺽 뛰여올랐다.

   몇발작못가서 말이 서로 스치고 지나가게 되엿을 때 려홍이는 부루말을 탄 사람의 상판이 객주집칼도마같이 움푹우무러들어간것을 얼핏 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공교로울변이라구야! 글세 키작음 몽골말을 타고 오는 다른 한 사람은 바로 2년전에 려홍이를 감옥에 처넣었던 그 철천의 원쑤 리경광이 아닌가! 그자는 지금도 대모테안경을 걸고있었는데 굼에도 생각지 않던 려홍이를 이 자리에서 만나게되자 초풍하듯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려홍이는 이발을 사려물고 삥삥 돌아치는 자기 말을 앞으로 쓱 몰아 달아지나가면서 채찍으로 그자의 상판을 죽어라고 냅다갈겼다. 순간 리경광은 짧고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면서 꼬꾸라지듯 말잔등에 엎드렸다.

   <<멍청이같은것들! 말을 왜 빼앗지 못했나?>>

   뒤등에서 다른 말탄자의 괴악진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려홍이는 죽어라고 말을 뛰웠다.

   <<땅! 땅!>>

   총소리가 갑자기 나면서 려홍이는 왼쪽어깨죽지가 떨어지는 것 같은 모진 아픔을 느꼈다. 련이어 총알이 여러번 귀전을 스쳤지만 맞지 않았다. 뜨거운 피가 적삼을 적시면서 흘렀지만 그는 그것을 감촉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죽어라고 말만 뛰웠다. ...

   정거장에서 선로를 바꾸며 분망히 오가는 화물차들의 기적소리와 부두에서 울리는 배고동소리가 한데 어울려 도시는 한마디로 광복전에 없었던 새로운 활기를 떼고있는것만 같았다.

   시내중심을 바라고 말을 달려 들어간 려홍이는 말잔등에 앉은채 지나가는 행인 한사람을 붇들고 병원이 어데 있느냐고 물었다. 행인은 부근에 있는 공원맞은켠의 한 병원을 알려주었다.

   갖춤새가 그닥 크지 않은 병원은 위만때 달고있던 <<자선진료소>>라는 간판을 그냥 달고있었다.     

   려홍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약냄새푹배인 방안에는 병보러왔는지 아니면 그저 한담이나 나누러왔는지 딱히 모를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다. 의사는 보통키에 몸집이 뚱뚱한 사람이였는데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앉으면서 새로 들어온 청년을 안경너머로 한번 슬쩍 보고는 아무말도 없었다. 려홍이는 말을 달려오던 심한 요동이 멎자 어깨가 당장 떨어져나가는것 같은 진통을 느꼈다. 그래서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한테로 다가가 사정을 들었다.

   <<선생님, 저를 좀 먼저 봐주십시오. 저는... >>

   아직 오십미만의 그 한족의사는 유들유들한 낲을 들어 려홍이를 힐끔 쳐다보더니만 입가에 씁쓸한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려홍이는 아픔을 참느라 이지러진 얼굴로 다시한번 사정을 드리댔다.

   <<저를 좀 먼저 봐주십시오. 아파죽겠습니다. 여기로 오다가 그만... 난 그만 강도가 쏜 총에 여길 맞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탄알에 맞은 려홍이의 어깨를 보고 끔찍해하는데 의사와 마주앉아 무엇인가 이야기하고있었던 빼빼마른 한 사나이가 남의 사정은 전혀 무가내하고 중뿔나게 참견했다.

   <<그러잖아도 요즘은 매일 공짜로 치료해달라는 사람들뿐이여서 선생께서는 골머리를 앓고계시는중이라오.>>

   치미는 밸대로 하면 그자를 한 대 답새겨주고싶었지만 려홍이는 꾹 참고 의사의 낯색만 다시살폈다.

   의사는 려홍이의 호주머니에 땅돈 한잎 없는게 뻔했던지 전혀 달가와하지 않는 표정이였다. 명색이 의사엿지 의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항일지하공작자를 탐지해내는것을 업으로 삼아온 이 교활한 왜놈 헌병대특무의 속내를 생면강산인 려홍이가 알수는 없는 일이였다.

   려홍이는 랭대에 분이 치밀어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달리는 별수가 없었다. 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울며불며라도 빌붙는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사람이 아무리 량심없기로서니 어찌 생뗌으로 치료해달라고 하겠습니까. 두고보시오만 절대로 배은망덕을 하지 않을테니 좀 치료해주십시오.>>

   <<거야 저... 그래서가 아니라 실은 헴!>>

   의사는 헛기침을 짓고나서 뜨적이 총상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권총알은 다행히도 려홍의 쩍 벌어진 단단한 어깨뼈는 다치지 않고 상박골 웃부분만을 약간 갉아먹으면서 살에 들어박힌것이였다. 하지만 의사는 빡빡한 가제로 상처를 닦더니 약을 좀 발라주고나서 밀어버렸다.

   <<안되겠어, 안되겠어! 파상균이 범하잖게 조심하면서 큰병원으로 가보는게 좋암즉해. 나한텐 와과수술기라곤 없으니까.>>

   (이제 또 어디로 간단말인가?... )

   려홍이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서 방바닥에 주저앉고말았다.

   바로 이때 문소리가 쾅 하고 났다. 간밤에 앙앙불락하는 본댁과 쟁집이 생겨 나중에는 머리카락을 꺼들며 싸움질을 해서 생채기까지 생긴 얄망궂은 의사첩년이 휑하니 들어와서 야살을 떨기 시작하였다.

   <<아니, 당신은 오늘도 마당에다 말을 척 사매놓고서 날 속였군요? 내놔요, 내놔! 전날 말사주고 번돈도 있겠는데 어서 내놔요. ...난 내 가고픈데로 가게 빨리 내놔요!... >>

   의사는 이마살을 잔뜩 찌푸리며 내뱉듯 응대했다.

   <<무슨 미친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말은 무슨 말을 샀다고 그 야단인가말이여?... >>

   <<그렇게 시침을 떼지 말아요. 두눈이 멀정한 나를 대낮에 속이려들여요?... 그럼 바깥에 매놓은 말은 무슨 말이예요? 어서말해요, 어서요!>>

   이렇게 되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들은 부랴부랴 바깥으로 나갔다. 의사도 혹 누가 말팔러왔느부다 해서 신발을 끌며 뒤따라나갔다.

   바깥 길가의 전주대엔 절따말 한필이 매여있었는데 어느새 숱한 행인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있었다.

   <<아니요, 나는 거기에다 천원 한 장을 더 붙이오.>>

   <<체, 어째서 그 값만간다구그러우? 난 거기에다 또 천원 한 장을 더 붙이겠소.>>

   하면서 사람들은 제가끔 뎡험있는 마도위모양으로 임자도 찾지 않고 말값부터 매기고있었다.

   집안에서 뒤늦게나론 려홍이는 그네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그저 묵묵히 듣기만했다. 상처를 치료하자면 말을 내놓아야하는데 사선을 함께 넘어온 말을 팔아먹자니 가슴이 저려났다.

   안경쟁이의사는 말을 보자 욕심이 부쩍 끓어올랐다. 더구나 이 말의 임자가 돈없이 외상으로 치료를 해달라던 조선족청년의것이라니 순식간에 그의 심보는 달라졌다.

   <<이게 과연 자네의 말인가?>>

   의사는 아주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려홍에게 물었다.

   <<말을 팔 마음이 있는가?... 팔겠다면 다시 상론해봅세... 그러면 내가 젊은이의 상처도 책임지고 말ㄲ므히 고쳐줄테니까... >>

   려홍이는 아무럼ㄴ 응대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했다. 말이 욕심나니 치료해주겠다는 의사, 기실 의사의 량심이라고는 전혀없는 그 비루한 인간으로 보느라니 부아통이 치밀어올랐다.

   바로 이런 때였다.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섰다. 캡을 눌러쓴 청년이였다. 려홍이는 어디선가 한번 본일이 있는 느낌이였다.

   (내가 저 청년을 어디서 보았던라?... 오, 그렇지! 출옥하던 날...)

   려홍이는 무등 반가왔다. 그래서 그한테로 달려가는데 저쪽에서도 어느결에 알아보고 달려왔다.

   <<아ㅡ 니 이게 누군가!?>>

   <<아 이거... 저... 그록이지?!>>

   <<옳소, 내가 금록이요. 이름을 아직두 기억하고있구만! 하하하... >>

   금록이는 마치도 오래 갈라졌던 벗을 만난것 처럼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려홍이는 피자국이 슴배인 자기 어깨를 들여다보는 금록에게 오는 도중에 당한 봉변과 여기서 있은 일을 짤막하게 알려주었다. 금록이의 얼굴색은 단통 변했다. 그는 놀랬다.

   <<가기요, 여기 아니면 고칠데없겠소.>>

   박급록은 강경한 표정으로 의사를 돌아다보며 만원을 준다해도 말은 팔지 않을테니 어서 길이나 비티라고 호통쳤다. 그리고는 려홍이를 재빨리 부축하여 말잔등에 태운 뒤 곧장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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