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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럿이 한사람을 끌고 들어와 방바닥에다 철썩 놓았다. 별동대경위련장 게뚜더기가 체포된자한테서 들춰낸 권총과 비수를 손자량앞에다 공손히 바치고 한켠에 물러가 서서 큰 공이나 세운것 처럼 으쓱해하였다.
맥꼴잃고 늘어진 최재명의 꼴은 형편없었다. 체포될 때 주먹으로 마구조겨대는 통에 코등이 맞아 터졌고 옷단추가 떨어졌으며 신과 모자마저 어느놈이 벗겨갔는지 없었다.
<<두놈 왔다는데 한놈은 왜 붙잡아들이지 않느냐?... 뭐라, 빼워버렸다구?>>
손창유는 대단히 노여워서 눈갗을 푸들거리며 입을 다시열지 않았다.
<<밥통같은것들! 마을보초는 어떻게 섰길래 들어오는것도 모르구 나가는것도 잡지 못했어?>>
손자량은 걸레부정한 저의 졸병들에게 한바탕 욕사발을 퍼붓고 쫓아버렸다. 그러고나서 모멸에 찬 미소를 짓고 포로를 한참동안 도고히 쳐다보더니 치째진 뱁새눈을 까들면서 주먹으로 상을 탕 쳤다.
<<넌 어떤 놈이냐?>>
게목지르듯하는 소리에 화뜰 놀랜 최재명은 피투성이 된 얼굴을 들어 보이고는 고개를 다시 지르숙이며 이발을 앙당그려물었다.
<<이자식아, 네가 어떤놈이란것도 대지 않을테냐? 좋다, 어디한번 맛을 봐라!>>
곽털보가 손자량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졸병 셋을 시켜 그 자리에서 최재명을 발가벗기였다. 그리고는 두 손목을 묶어 대들보에 올리달았다. 악한들은 가죽띠를 풀어쥐고 때렸다. <<짝! 짝! >>하는 모진 소리가 났다. 허연 몸뚱아리에 단통 검붉은 줄이 죽죽 일어서기 시작했다. 가죽띠가 한번씩 몸을 감아칠때마다 최재명은 듣기 아츠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도 사정없었다. 15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는 까무러치고말았다.
<<아버지, 이자가 줴치는 소릴 들으니 조선놈입니다.>>
<<장극발놈을 쫓아내니 이번엔 공산군탐정이 염통까지 파고들었댔구나 흠! 발꿈치를 잡으려드니 어디 한시인들 맘놓겠냐. 내 눈앞에서 당장 끌어내가라, 보기싫다!>>
손창유는 앞골을 짚으면서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손자량이 공산군정찰병을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려고 칼을 뽑으려는것을 리경광이 잠깐만 창으라고 제지시켰다.
최재명은 이쪽 건너방에 끌려와서야 정신이 들었다. 비도몇이 그의 알몸뚱이에다 옷을 입히느라고 끙끙 거렸다. 이러는 사이에 코등에 안경을 건 젊고 맵짜게 생긴 사나이가 한자리에 박은듯이 서서 독기어린 눈으로 쏘아보고있었다. 별동대부관 리경광이였다.
<<일어날만한가? 일어나봐!>>
제 조선사람의 말을 들은 최재명은 정신이 들었지만 자기절로 일어설수 없었다. 리경광이 눈짓하자 방금 옷을 입히던 자들이 그를 끌어 일으켜 걸상에 앉혔다. 최재명은 막 쓰러지고싶었지만 악한들의 발에 또 사정없이 채울가봐 모지름을 쓰면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가 맨머리에 맨발인것을 보고 리경광이 물었다.
<<모자는 어쨌구 신은 어디다 팽개쳤냐><<
한자가 멋쩍게 씩 웃더니 자기가 쓰고있던 털모자를 벗어 최재명의 머리우에 올려놓았다.
<<신은 누가 벗겨냈어?>>.
<<부관님, 그건... >>
<<그건 어쨌다는건가? 쩨쩨하게... 당장 가져다신겨!>>
다른 한자가 변명을 못하고 나가더니만 신을 가지고 들어와서 쵀재명의 앞에다 훌 던졌다. 리경광은 그것이 새것같은 구두였기에 입가에 야릇한 랭소를 머금었다. 정탐온자가 먼길을 걸을줄을 알면서 저따위 신을 신고 떠난게 리해안되거니와 상당히 괴이쩍고 흥미있는 일같아보였던 것이다.
<<이봐, 이 권총과 단검은 임자해지?>>
리경광은 걸상에 가 앉으면서 상우에 있는 권총과 단검을 눈으로 가리켰다.
<<예, 제, 제햅니다.>>
그 상우에는 권총과 단검외에 최재명의 몸에서 수색해 낸 다른 시시한 소지품들도 있었다. 리경광은 손수건에 쌌던 자그마한 수첩종이장 갈피에서 4촌짜리 사진 한 장을 꺼내여 손에 들고 유심히 보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음, 꽤나 해사하게 생긴 계집이로군, 모양새를 보니 촌뜨긴 아니겠는걸!>>
최재명은 목을 세워 얼핏 보고는 고통스레 한숨을 내쉬였다. 그건 그이 약혼녀사진이였던 것이다. 리경광은 사진과 구두를 번갈아보다가 시선이 다시 최재명의 몸에 와서 고착되듯이 멎었다. 근 2~3분가량이나 까딱않고 쏘아보는데 마치도 포로한 자의 똥집까지 말짱 끄집어내여 털어보려는상싶었다.
<<이건 누군가?>>
사진을 다시쥐더니 들어보이면서 묻는데 그의 음성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의사의 딸입니다. 저의... >>
<<음, 약혼녀겠구만. 임자는 아마 도시태생이지?... 그런거같애. 어느모로보나 그렇다는게 알리거든.>>
최재명은 고개를 들고 멀거니 보았다. 리경광의 태도가 어찌나 온화했던지 얼었던 속도 금시 녹아내리는것 같았다.
<<임자는 학교를 얼마나다녔는가?>>
친절감을 자아내는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가 다시묻는 말이였다.
<<중학을 졸업하고 1년간 집에 있었습니다.>>
<<음, 그만했으면 공부를 꽤 했군. 보아하니 집살림도 괜찮겠는걸. 색시감도 그럴듯한걸 고르구. 뭐 의사딸이라했지?... 련애한지는 오랜가?... 음, 애정이란건 본시 이성간의 우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니 그게 얼마나 달콤하고 좋은건가. 하지만 이 세상에는 애정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버린 사람이 많은건 물론이고 어떤이는 사랑을 맺었다가 단맛도 보지 못한채 불행한 종생을 맺고마는수도 있거던. 생각해보게나, 인생락도 보지 못하고 하루아침의 이슬로 되어버리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가엽고 불쌍한가.>>
심문자의 이런 은근하고도 측은한 말에 최재명은 그만 참을수 없는 설음이 북받쳐올라 울기 시작했다.
리경광은 한참 말없이 지켜보면서 내처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임자가 여기로 온 목적은 무엇인가?... 왜서 대답이 없는가,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말이여?... 죽기가 겁나지 않거든 어디 입을 다물어봐.>>
<<예?!.... >>
최재명은 몸을 떨면서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랬다가 몸을 떨고는 다시 머리를 드는데 공포와 절망과 애원으로 하여 그의 낯빛은 질리고 처량했다. 리경광의 변해버린 낯색과 거칠어진 음성에서 협박과 위협을 몸서리치게 느낀 그의 마음은 그만 걷잡을수 없이 동요되고말았다.
<<정찰목적은 적이 방어준비를 하는가 아니면 퇴각도주를 하려는가를 알아내는것이였습니다.>>
하고 그는 따지고 묻는대로 고스란히 댔다.
<<지금 손가장엔 군대가 얼마나있느냐?>>
<<5백여명 있습니다. 주력은 가고 한개 영만 남았습니다.>>
<<별동대에 있던 조선놈들은 뭘 하고있는가?>>
<<기의련말이지요? 지금 그저그러고 있습니다.>>
<<그저 그러고있다는건 무슨소린가? 밥만 먹고있다는 말인가, 어쩐단말인가?... >>
리경광은 못마땅한듯 뱉어버리고나서 담배케스에서 궐련을 꺼내여 입에 물었다. 그의 매서운 눈살에 최재명은 몸을 오싹 떨고나서 숨을 톺았다.
<<지, 지금은 후,훈련을 하고있습니다. 부대에는 편입되지 않구서... 앞으로 자체로 마을보위를 하게 된답니다.>>
<<음ㅡ >>
리경광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생각을 더듬더니 또 불쑥 들이댔다.
<<임자네 거게말이여, 공산군에 려홍이란 사람이 없는가? 그놈은 꼭 거기에 들어갔을텐데... 왜 놀라는거야 알고있다구?>>
<<예. 전 알고있습니다.>>
최재명은 겁기먹은 눈매로 전에 여러번 들은적있는 이 같은 민족의 별동대장교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을 떠듬거렸다. 전에 김려홍이 말하던, 제정때 경찰서장질했다가 지금은 별동대부관으로 되었다는, 교활하고 잔인하다는 리경광이가 바로 이 인물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최재명은 겁이 나면서도 자기의 불행한 운명을 어떻게 하면 건져볼수 있을가고 애를썻다. 그는 려홍이가 손가장에서 도망쳐 도시로 간 사실부터 시작해서 시경비대에 들어갔다가 인차 인민무장부대로 넘어온 일이며 정찰반장으로 있다가 얼마전에 정찰패장으로 승급된 일이며 지금 바로 손가장에 있으면서 자기의 직책을 다하고있을뿐만아니라 여러차례나 공을 세워 절찬을 받은 사실이며를 죄다 고해바쳤다.
<<가만ㅡ 전번에 가짜편지를 만들어 등신같은 굴대장군한테 주어 우릴 싸움붙인건 너희들이였지?>>
<<예, 그건... 그건 우리 사람들이 한 짓이였습니다.>>
최재명은 이미 변질해버린 자신의 죄를 갑자기 깨닫고 비지땀을 흘리였다.
리경광도 최재명못지 않게 속이 얼어드는것만 같았다. 일본이 망하고 만주국이 없어지고 세상이 뒤바뀌우는통에 그도 피고석에 오른 죄인으로 치부되였다. 그런데 고맙게도 국민당이 품을 벌리고 안아주었기에 위만경찰서장노릇을 하면서 백성들을 극악하게 살육한 리경광에게도 새 출로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사변이 나자 놀랜 족제비모양으로 손가장에서 인차 도망쳐 일본인난민들과 휩쓸려 고생하며 덤버치던 그는 홀몸으로 할빈에 가려고 떠났다가 오랜 구면인 장삼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장삼은 안장코와 비밀리에 손잡고 아르금시에서 폭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을 타산이라면서 전도가 보이니 자기와 함께 있자고 권고했었다. 그런데 그 폭란시도가 사전에 폭로되는통에 시경비대한테 진압당하고말았다. 도시에서는 그이상 배겨낼수 없어서 호룡산을 바라고 떠났는데 도시를 벗어나자 공교롭게도 려홍이를 만나 미처 피할새도 방비할새도 없이 채찍에 면상을 얻어맞았던 것이다.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끔찍한 봉변이였다.
심문이 일단락끝났다.
<<리부관, 그놈을 어떻게 했소?>>
리경광이 입을 열기전에 손자량이 그와 물었다.
한때 패기와 지모로 이름있었던 로마적 부엉이, 살모사와 함께 금을 조금밖에 바치지 않은 포로들을 다시 붙잡아다 처리할 일을 상론하고있었던 장삼이 말결을 달았다.
<<리부관은 아마 그자의 속을 다 뽑아냈겠지? 그래 그놈이 뭐라고 탄백했소?>>
리경광은 그를 힐끗 봤을 뿐 응대하지 않고 곧추 손창유한테로 갔다.
<<대장님!>>
<<왜 그러는가?>>
상반신을 엇비스듬히 젖히고 홀로 무슨 생각에 골똘했던 손창유는 얼굴을 돌려 가슴츠레하게 쪼프린 눈으로 부관을 보면서 물었다.
<<대장님, 제가 방금 그자를 심문해봤는데... 우리를 이지경에 몰아넣은건 확실히 공산군의 작간이였다는게 밝혀졌습니다.>>
<<뭐라, 굴대와 우릴 맞붙게 만든거말인가?!>>
<<예, 바로 그걸말입니다. 우린 지금 그자들의 계책에 빠져 넋살먹고있습니다.>>
<<음, 빨갱이들! 과연 지악하구나!>>
손창유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는 꺽꺽 치를 떨면서 포로한 인민무장부대 정찰병을 당장 다시끌어오라고 분부했다. 손창유앞에 다시끌려간 최재명은 고양이한테 물리운 쥐모양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방금전에 리경광앞에 탄백한것처럼 물어보는대로 죄다 고해바쳤다.
<<손대장님, 공산군이 가짜편지를 만들어가지고 작간을 피웠다면 그자들이 우리네 비밀암호문은 어떻게 알았을가요?>>
낯가죽이 고목같이 투들투들하고 앞이빠진 부엉이가 꺼플진 눈을 치뜨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에 마적들 사이에 련계를 지을때면 특별암호문을 사용하여 서로간 신임을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네들만 알고있었던 급비의 암호문이였는데 지금 인민무장부대사람들이 알고 써먹는다는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나락에 빠진자 흐느껴우는데
창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은
오늘도 무상무념하도다.
이것이 암호문이였다. 손창유는 뇌이고나서 중얼거렸다.
<<공산군이 나의 필적을 본딸수는 있어도 암호문을 알고 써먹을리는 만무하다. 보아하니 굴대장군이 경솔했던 모양이다. 돼지같이 미련한 그자가 틀림없이 종이장 첫머리에 암호문이 있는가 없는가도 보지 않았던 모양인가부다.>>
<<아버지, 제 보건댄 아버지께서 생각이 너무나 단순한것 같아요.>>
하고 손자량이 자기 아버지의 미욱한 판단을 비웃었다.
<<다시 생각해보시우. 아버지께서 믿어온 동료들가운데서 공산군에 잡힌 자는 없겠는가요 뭐? 그런 사람이 탄백할 때 그 암호문을 내놓지나 않았는지두 모르지요.>>
<<넌 그게 무슨 소리냐? 안장코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순난했느니라. 이 창유는 그를 믿는다.>>
그는 아들이 체신머리없이 입정을 마구 놀리는것 같아 언잖아하면서 자기는 자기를 따라 사선을 넘어 간난신고를 함께 하고있는 사람들을 어디까지나 믿고있다는 뜻에서 전에없이 존엄한 기색을 보였다.
손자량은 입가에 피여난 조소를 숨기느라 외면했다가 다시입을 열었다.
<<암호문이야 서로 신임을 보이느라 사용한게 아니였던가요. 굴대장군은 자기가 의리를 저버린 인간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 아버지가 자기한테 그런 암호로 련계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바꿔놓고 아버지가 그 처지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네 말이 난삽하니 듣기 거북하구나, 에헴!>>
손창유는 건가래를 떼고나서 말이 더 없었다.
<<오빤 공연히 아버지만 노엽히네. 그러지 말고 공산군을 대처할 방도나 찾았으면 좋겠어요.>>
여직 자지 않고있었던 손옥란이 말밥에 끼여들면서 오빠를 나무랐다.
<<나도 그 생각이요. 공산군도 공산군이려니와 장극발이도 여기서 쫓겨났으니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것만은 사실이 아니요.>>
하며 장삼이 몸을 새우등모양으로 꼬부리고 누워자는 몸종애 있는데로 발을 뻗치고 앉아있는 손옥란을 넌지시 건너다보면서 동을 달았던 것이다.
<<자네는 굴대가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지키고있다가 오기만 하면 맞받아해치우겠다는 말인가?... 그래선 안되네. 공산군의 계책에 빠진걸 알면서도 제편끼리 싸운다면 그건 정말 큰 과오아닌가. 제 발등을 도끼로 찍는 머저리노릇이구 미련한 짓이지 뭐야. 하니까 고생스럽긴 해두 사람을 보내서 굴대장군도 이 일을 알고 자기의 과실을 깨닫도록 하는 상책인것 같애.>>
<<아버지두 원! 범의 아가리에다 강아지를 던져보렵니까?>>
손자량이 아버지가 어디까지나 굴대장군과 화해하려는것을 보자 데퉁스레 말하고는 낯이 지지벌개졌다. 손옥란은 오빠더러 제발 화를 내지 말아달라고 애걸했다. 원병으로 온 사람과 공연히 원쑤를 맺었는데 이제 또 부자지간에 금이 생겨 마음이 단합하지 않는다면 무슨꼴이 되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기때문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를 은근히 애모하는 리경광을 바라보았다. 리경광은 이 과년한 처녀의 처량한 몰골에서 일패도지의 처지에 이른 손가족의 운명과 아름답지 못한 자기의 전도를 예감하고 사지가 탁 풀리는 감이 느껴져 서글픈 미소만 지어보였다.
<<조률개는 마을에 있다냐?>>
한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던 손창유가 포로에게 집적 묻지 않고 자기의 부관에게 물었다.
<<예?... 그, 그건 제가 물어보질 않았지요.>>
리경광은 황송해하면서 무릎꿇고 앉은 재명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 손끝으로 머리를 툭 쳤다.
<<고개들고 나를 봐,... 네가 손가장에 있는 가게방을 알지?>>
<<예? 전.... 전 그런게 있는줄을 모르는데요.>>
최재명은 확실히 몰랐다.
<<거기에 조률개라구 하는 중국사람이 있는건 모르냐 그래?>>
<<예?... 예! 그런 사람이 있다는건 들었습니다만은 지금은... >>
<<지금은 뭘 하고있느냐? 손대감 듣게 중국말로 대답하거라.>>
<<지금 갇혀있습니다.>>
<<뭐라구?!>>
손창유가 벌떡 일어나앉으면서 다시 말하라고 했다. 최재명은 그의 굳어진 상판을 보자 와들와들 떨면서 죠률개가 인민무장부대가 마을에 들어온지 며칠안되여 요언을 날조하고 조(朝),한(漢) 두 민족지간에 리간을 도발하려다 마을사람들에게 적발됐고 붙잡혀서 실컷 매맞고 디지까지도 같혀있는 사실을 아는대로 말했다.
<<최마름은 붙잡히우지 않았느냐?>>
<<그 사람이야 조선사람인데 왜 붙잡히우겠습니까.>>
부엉이가 총명을 뽐내면서 앞질러 말하자 최재명은 감히 부정할수 없어 그저 머리만 숙였다.
<<붙잡히우지 않았단말이지 음!... >>
조률개가 붙잡혔다니 허구픈 웃음짓던 손창유의 굳는 낯가죽에 일순간 시름놓는듯한 잔 파문이 일었다. 손창유는 최재명을 건너방으로 끌어가라했다. 그러자 부엉이가 손창유곁으로 다가왔다.
<<손대감은 손가장을 기어코 탈환해볼 생각이신가요? 정녕 그렇다면 저도 무조건 붙쫓으렵니다. ...송조때 륙수부(陸秀夫)와 장세걸(張世杰)은 임금을 등에 업고 바다로 피난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고 명조때 철현(鐵鉉)은 연왕에게 김름에 튀겨 죽음을 당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하잖습니까. 그네들의 충성심은 모두 후세에게 귀감으로 되지요.>>
<<맹세가 굳으니 감사하고 뜻을 알아주니 감사하네!>>
손창유는 막료의 지성어린 충언을 듣게 되자 감개에 목이 메이는지 격정이 담긴 음성으로 뒤말을 이었다.
<<허나 성인께서 론어에 이르기를 <너무 급히 서두르면 도리여 일이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네. 하기에 나는 지금 조급증을 버리고 온당하게 목적을 이루어볼 방법을 찾고있는 중일세.>>
<<나도 저 포로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
하고 이번에는 살모사가 가까이로 다가왔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지독해서 살모사라는 별명까지 달고있는 이 오랜 마적은 늙어서 이발이 수태빠졌건만 신통히도 살모사의 독아모양으로 아직 든든히 남아있는 송곳이를 석유등잔불에 드러내며 자기의 속구구를 피력했다.
<<렬세한 조조가 판도에서 원소의 군대를 대패시킨것도 치중(輜重)을 소각하는 계책을 생각해냈기때문이였지. 우리도 우세한 공산군을 쳐부수고 손가장을 탈환하자면 조조처럼 합당한 계교를 써야 한다고 봅네다.>>
<<옳은 말이네.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건 모르는바 아니네만 일시 머리가 잘 돌지를 않아서 망설이는중이라네. 허나 손가장엔 그래도 나를 붙좇는 사람이 더러 있을줄로 아네. 그러니 나는 마름을 시켜 암암리에 <지하수향대>라는걸 조직했다가 때가 되면 한번 내외로 협공해볼 타산인데.....>>
<<과연 현명한 생각입니다. 저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손행자는 작은 벌레로 변하여 철손공주의 배속에 들어가 그를 전패시켰답니다. 우리도 똑똑하고 약빠른 자를 하나 손가장에 잠입시킵시다그려!>>
바둑을 노는 자가 때로는 옆사람의 훈시를 듣고 궁리가 더 잘 돌 때가 있는 것이다. 손창유는 살모사의 말을 듣자 신심이 더럭 생겨 한번 먹은 마음을 꼭 실행하자며 나섰다.
그들보다 나어린 장삼이나 리경광이나 손자량은 손창유가 자기의 결의를 단행하려는것이 한갓 만용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터에 입을 닫아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손창유는 마치도 시를 읊듯이 지껄이였다.
<<제 집을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니 통탄한 마음 구천에 사무치누나. 뜻있는 인걸이면 풍찬로숙을 례사로치려니 와신상담하며 피묻은 장검 휘둘러 가슴맺힌 한을 플 그때를 기다리노라.>>
한편 아까 신을 벗기던 자가 최재명을 다른데로 끌어갔다.
<<이자식아, 왜 바로걷지 못하는거냐?>>
포악한 그자는 총탁으로 최재명의 궁둥이를 쳤다.
<<에쿠!>>
최재명은 앞으로 꼬꾸라질듯 휘청거리다가 겨우 몸을 바로세웠다.
밤공기는 살을 에일듯이 찼다. 삼태성이 기울었고 북두칠성도 앵돌아졌다. 새벽이 거진되여오는 모양이였다. 기운이 좀만있어도 도망쳐보려고 애쓰겠지만 이제는 그럴 용기도 맥도 없었다.
한 집의 마당에 이르러 그자가 소리치니 주인이 잠을 깨고 일어났다.
<<뭘 꾸물대고있어, 문을 얼씨덩 열란말이야. 이젠 이놈을 가둬야겠어.>>
주인이 쿨룩거리며 문걸쇠를 벗기고 문을 열자 최재명은 떠밀리워 안으로 들어갔다. 허섭스레기 세간들을 넣은 더러운 방이였다.
<<내가 이쪽 방에서 자지 않고 지키겠다. 그런줄 알고 날밝을 때까지 꼼짝말고있어, 알아들었냐?>>
비도는 사나운 개마냥 으름장을 놓고나서 돌아나가며 한마디 더 씨벌였다.
<<네놈의 구두는 어쨌든 내거다.>>
최재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명당 사처방같이 추운 방에 갇힌 그는 복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날만 밝으면 저 악한들이 나를 끌어내다 죽일것이다. ... 아아, 내일생은 이것으로 끝장나고만단말인가?... 내신세 어이하여 이꼴이 되였냐, 어찌하여?) ... 나이가 아까왔다. 새파란 청춘에 부모도 약혼녀도 다시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창자가 끊어지는것 같았다. 극도의 절망과 공포에 몸을 떨면서 그는 서럽고 애달파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가 저도모르게 페부를 쑤시는 육체적고통에 온몸이 수축되면서 눈이 스르르 감겼다.
최재명은 악마에게 끌려 천길지옥에 들어가 염마졸한테 각을 뜯기우는 꿈을 꾸다가 웬 소리에 놀라 소스라쳐 깨여났다. 몸서리치는 무서운 악몽이였다. 식은땀이 후줄근히 밴 일신을 만져보니 팔도, 다리도 , 목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러자 안도의 숨이 훅 나갔다. 그런데 저건 또 무슨 소릴가?... 날이 휘영청 밝았는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 욕지거리소리, 말이 울부짖는 소리, 어디론가 뛰여가는 쿵쿵 소리... 개들이 죽어라고 짖어댔다. 갑자기 큰 소동이 생긴것 같았다.
<<아, 우리네 부대가 쳐들어온단말인가?!... >>
최재명은 기여일어나 째진 창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보총, 단총, 장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잇었다. 무슨 판국인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소란이 멎자 문이 삐걱 열리더니 웬 사나이가 경황한 얼굴을 쑥 들이밀고 소리치다싶이 알려주었다.
<<젊은인 누구요? 살겠거든 빨리 우리 집에서 나가우. 굴대장군이 손창유를 몰아갔소. 어데 가서 싸움이 붙겠는지, 마을안에서 싸우지 않길 다행이지... 왜 멍해있는거야, 살겠거든 빨리 도망치란데두! 자, 얼씨덩!>>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든 최재명은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자기를 붙잡으려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자 미쳐날듯한 환열에 들떠서 간신히 그리고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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