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소설
무더운 8월이였다.
아르하왜집령(阿而夏倭集玲)의 그윽한 계곡은 꼬박 5일간 민주련군의 한 기마정찰소부대를 자기 품에 넣고있었다.
정찰패장 김려홍은 말잔등에서 까끔 라침판을 보고는 지나온 로정을 계산후 다시전진하군했다. 아무리 낮선 심산속에서도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있는 이 대오는 지나온 수개월간에 자기의 부대와 함께 단련되고 성장하여 지금은 정찰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하나의 정예한 소부대로 되었다.
한낮이 되어 대오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이깔나무들이 무창한 밀림속을 빠져나와 마침내 각가지 고목들이 성기게 자란 혼성림대에 들어섰다. 여지껏돌파한 고산준령이나 잔산단록들은 모두가 그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명을 주었다. 대체로 보아 이곳에서 산줄기는 동서로 뻗었는데 동켠이 좀 틔였다. 정찰병들은 누런 채송화가 가득 핀 너럭바위가 있는 곳에 이르러 말을 쉬웠다. 모두들 유쾌한 기분으로 산경치를 구경했다. 어떤 사람은 푸른 바위솔을 뜯어보았고 어떤 사람은 빛이 푸름하고 얼룩얼룩한 심성암을 연구나 하는것처럼 직심스레 보기도했다. 어디를 보나 녹음이 짙은 숲이다. 꽃이 다 핀 산겨릅나무, 손바닥같은 잎이 여러갈래로 째진 단풍나무, 회백색껍질에 바늘모양의 잎이 사철푸른 분비나무, 잣송이가 달린 잣나무며 종비나무같은것들이 키돋움하며 서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벙어리뻐꾸기 한 마리가 마치 대통을 뚜드리는것처럼 <<꿍! 꿍!>> 울면서 다래넌출이 지주근을 땅에 깊이 박고 희한하게 뻗어올라간 나무에 날아와 앉는다.
<<동무들 저길 보시오. 노루가 있습니다!>>
누군가 가다듬는 목소리로 웨치길래 보니 건너산에 털빛이 누런 산짐승 다섯 마리가 떼지어서 풀을 뜯고있어다.
<<옳지, 반찬거리가 생겼는걸!>>
<<가만, 쏘지 말어. 저건 사향노루야! 귀한 짐승을 맹탕잡아서야 되나.>>
청송이가 모제르를 제꺽 드는걸 금록이가 제지시켰다. 짐승을 겨누었던 청송이는 감히 쏘지 못하고 입소리로 <<땅!>>하고 총알나가는 시늉을 했다. 풀을 뜯고있던 짐승들은 과연 총소리를 듣기라도 한것처럼 고개를 번쩍 들고 귀를 쭝깃하더니 그만 달아나버렸다.
<<궁노루야 궁노루야 령민하긴 한데 겁쟁이가 되어 틀렸구나.>>
누군가 즉흥시라도 읊듯해서 모두들 웃었다. 산이 이러듯 수려하거늘 땅속에 묻힌 금은보화인들 또 얼마나 많으랴! 어디로가나 사랑스럽고도 자랑스러운 땅ㅡ 이 신성한 국토가 워쑤들에게 유린당하지 말고 인민의것으로 꼭 되어야 하리라 고들 했다...
려홍이는 변화무상했던 지나간 몇 달동안의 국세를 조용히 돌이켜보았다. <<양대가리 내걸고 개고기판다.>>는 속담이 있으니 이는 표리부동한자가 남을 속이고 나쁜짓을 꽤함을 꾸짖어 비유하는 말이였을것이다. 일반적으로 반혁명량면술법을 써온 장개석은 저의 상전으로 떠받들고있는 미국의 원조하에 내전을 일으킬 만단의 준비가 되었으니 3개월내지 6개월간이면 인민해방군은 전부 소멸할수 있노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면서 공산당측과 맺었던 <<정전협정>>과 <<정협결의>>를 란폭하게 찢어버리고 동북에 대한 진공을 발동하여 장춘과 사평을 점령한후 7월에 들어서는 공개적으로 해방구를 향해 전면적인 대진공을 발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몇만리 대양건너 저쪽 아메리카에 있는 미국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중국에 와서 이러니저러니 참견이란말인가? 사람들은 승냥이란 짐승이 본시 완악하여 한번 눈독들인 고기덩이를 보면 기어이 삼켜보자고 달려들므로 죽어도 그 본성은 고치지 못한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19세기말 미국인 레이드는 자기가 쓴 <<팽창문제>>라는 글에서 <<합중국의 세력이 필리핀에 뻗은후, 중국을 방어하는 장벽이 형성되였다... 오직 우리의 방침이 틀림없다면 합중국이 필리핀을 점령한후로 태평양은 벌써 미국의 한 호수로 변하였다.>>라고 하였고 스콧트니어링은 <<미국에 있어서 필리핀이 가지는 중요성은 바로 독일의 교주만, 영국의 홍콩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한다.>>했으며 미국상원의원 퍼프릿츠는 더욱 명백하게 <<필리핀군도는 영원히 우리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광대한 시장은 직접 필리핀뒤에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느 하나도 버려선 안된다. ...우리는 동방에서 우리에게 앞길을 열어주는 기회를 버릴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한즉 미국이 오늘 자기의 군수창고에서 꺼낸 군수물자로 국민당군대를 장비시켜주고있는 일이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이미 공포된 자료에만 보더라도 미국은 지난 6월말까지 도합 45개사의 국민당군대를 무장시켜주었으며 륙군, 해군, 공군, 특무, 교통경잘, 참모, 군의, 군수 등 군사인원 15만명을 훈련하여주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그들은 또 군함과 비행기로 국민당군대 14개 군 도합 41개사와 이밖에 8개의 경찰종대까지 하여 합계 54만여명을 해방군을 진공하는 전선에 수송하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어는 저들의 해군륙전대 몇만명까지 공공연히 중국대륙에 등륙시키고있는 것이다.
지난 1월에 국공량당은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전전령>>을 발포하였으며 또 미국댚ㅅ가 참가한 <<3인소조>>와 <<북평군사조처집행부>>까지 조직하였었다. 헌데 그것들의 실제적효과와 작용은 어떠했는가? 바로 <<조처>>를 집행하는 기간에 미국특사 마샬은 국민당정규군 2백여만의 80프로를 해방구를 진공하는데 편리하도록 일체 가능한 방조를 준 미국정부를 그럴즛하게 변호해나서고있다.
국민당과 미국이 이같이 긴밀히 합작하고있으니 북만에 있는 중앙선견군토비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기고만장해서 날뛰던 이자들은 인민무장력의 타격을 받아 이미 백공천장이 되어가고 사문동의 10만군대도 거의 와해되건만 국민당이 동북에 대한 진공을 개시하자 다시금 일어나 그 공세와 배합해보려고 하는것이다.
지난 몇 달동안에 동북에는 국민당의 진공을 분쇄하기 위한 튼튼한 인인무장력인 동북민주련군이 건립되였다. 아르금시에서 조직되였던 인민무장부대는 민주련군 독립퇀으로 편성되였는바 준엄한 투쟁의 시련속에서 단련성장한 이 강철의 대오는 호룡산습격전이 있은 후에도 무려 50여차의 싸움에서 거듭 승전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괴멸상태로부터 다시금 부활하고있는 선견군 별동대를 추격하여 완전히, 철저히, 깨끗이 숙청해버릴 임무를 맡고있다. 내내쫓기우기만하고있던 별동대는 얼마전에 산자파라는 마을에 들어박혀 잠시 숨을 돌리고있었다. 사문동의 제일가는 측근자인 손창유도 그러고보면 숨이 꽤나 질긴축이였다. 그는 기어코 새로운 폭란을 일으켜 볼 심산으로 멀리 쫓겨가면서도 온갖의 위협공갈수단으로 병졸들을 새로 긁어모으는 한편 손가장에서 이미 괴멸되여버린 랑아련을 다시금 조직해보려고 각처를 쏘다니며 말을 빼앗아들이고있었다.
정찰패는 지금 말을 빼앗아들이기에 광분하고있는 그 한무리 략탈자들의 행적을 찾아서 소탕해버릴 임무를 맡고 여러날째 철로이동의 산간에서 고생하고있는 중이였다.
오후 3시경에 정찰병들은 계곡을 완전히 벗어나와 키 큰 교목들이 드믄드믄있는 한 산에 올랐다. 사방을 휘 둘러보니 아직 완전히 틔인 곳이라곤 보이지 않고 앞은 관목림으로 이루어진 구릉이 기복을 이루고 있었다. 발부리를 내려다보니 골짜기에는 버들들이 무성하고 계곡에서 나온 작은 실개천이 동북방향으로 흐르고있었다. 이것은 칠리성하(七里星河)의 한 지류로 될 것이였다. 정찰병들은 산아래 남쪽 기슭에 자그마한 목피막이 하나 있는걸 발견했다. 아마 양봉군이나 아니면 포수군이 살고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런 산중에서 인가를 만나니 미상불 반가운 일이였다.
대오가 산을 내여 가까이에 이르러 보니 막앞에 벌통이 두 개있고 막은 비여있었다. 려홍이는 말에서 내려 빠끔히 열려진 출입문가로 다가가 막안을 들여다보았다. 자그마한 구들우에 노루가죽을 두장 붙여 깔개로 했고 벽가에 낡은 렵총이 한자루 놓여있었다. 가구라고는 통털어 땜질한 오지독 두 개와 자그마한 솥 하나에 사기그릇 두세개밖에 없으니 초라하고 단조한 살림이였다. 하지만 이것이 주위의 목가적인 환경과는 제법 잘 어울였다.
막아래 가위나무와 버드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 숲속에서 개가 갑자기 짖으면서 달려왔다가 누가 쫓기나한것 처럼 도로들어가면서 악패듯 짖어댔다. 막주인이 분명 그속에 있으련만 웬 일인지 나오지 않고 개만 더 요란스레 짖었다.
<<허허, 주인이 나오질 못하는걸 보니 무던히구 겁나는 모양이지!>>
려홍이가 이렇게 말하며 입에 손나팔을 해대고 크게 소리쳐 불렀다.
<<막ㅡ주ㅡ인ㅡ !>>
허나 아무런 반응이 없고 개만 여전히 짖어댔다.
다시 또 불렀다. 연거푸 몇 번불러서야 한사람이 느직한 걸음으로 나오는데 손에는 푸덕거리는 산천어 몇 마리를 꿴 버들꿰미가 들려있었다. 허리가 약간 굽고 머리가 희슥희슥한 늙은이였다.
<<로인님, 안녕하슈?>>
려홍이는 례절바르게 인사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서워마십시오. 우린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지나가던 길에 말을 좀 쉬울가해서 그럽니다.>>
늙은이는 풍상에 잡힌 주름살많은 얼굴을 돌려가면서 80여명의 말탄 끌끌한 병사들이 어깨에 멘 총이며 회록색의 군복이며 앞가슴에 붙인 네모난 휘장이며 지어는 각반을 친 다리까지 깐깐히 훑어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뭘하는 사람인가?>>
<<우린 고약한 짐승잡으러 다니는 군인들입니다.>>
<<고약한 짐승을 잡는다? 음....>>
로인은 눈가에 웃음빛이 떠올랐다.
<<로인님, 우린 토비잡을러 다니는 동북민주련군입니다!>>
려홍이는 앞가슴에 단 휘장을 자랑스레 보이면서 민주련군은 공산당이 령도하는 백성의 군대인데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번신시켜주기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싸운다고알려주었다.
<<허 그런가!... 그렇다면 반갑네, 반가와. 자네들이 와서 반갑네!>>
로인은 호탕한 웃음을 텃치며 려홍이더러 마음놓고 말과 군인들을 쉬우라 했다. 그리고는 막안으로 휑하니 들어가더니 옹배기를 들고나와 방금 나왔던 버들숲으로 들어가서 랭수를 가득 담아갖고 돌아왔다. 랭천의 샘이니 어서들 목을 추기라는 것이였다. 알고보니 올애 나이 예순둘에 나고 성이 리씨라는 이 한족로인은 광복전에 항일련군을 여려번 도와준적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본래 무원현일대에서 살았는데 1937년 일제의 대토벌에 처자를 다 잃고 홀몸으로 산중에 피신하여 천렵과 수렵으로 외롭게 지내오는 터였다. 그리하여 그의 가슴속에는 꺼질수 없는, 원한이 서려있은 것이다. 철천지 원쑤였던 일제가 망했다더니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중앙군이라 이름을 내 건 비적이 새로 생겨나 산간마을들에까지 뛰여들어 략탈한다는 소문을 들은 후로는 여지껏 불안에 잠겨있은 그였다. 더욱이 요즘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인선보호대>>라는 자들이 온갖의 감언리설과 위협공갈로써 민간의 말들을 거둬가고 있으니 큰 의혹과 불안을 느껴오던 참이였다.
(인선보호대라?...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별동대놈들인게 틀림없겠구나. 그놈들의 뒷덜미를 잡아야지.)
려홍이는 내심의 감정을 누르면서 그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고 물었다. 그랬더니 로인은 린근 세 개마을에 다 있다면서 정동쪽에 있는 마을은 삼합강(三合崗)이요, 그 남쪽에 있는 마을은 오룡자(五龍子)며 북쪽에 있는 마을은 흑랑구(黑狼構)라 알려주었다.
려홍이는 전투용가방에서 군사지도를 꺼내여 그 마을들의 위치를 확정한 뒤 색연필로 새로 표기해넣었다. 로인은 마을들의 호수며 그리로 가는 길이며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여기에 머물러있으면서 적정을 탐지하고 답새겨야겠구나.)
려홍은 전원 휴식을 선포했다. 전사들은 개천에 뛰여들어 세수를 한다, 미역을 감는다 하면서 즐거이 휴식했다. 취사병들이 저녁밥을 지으려고 전사들의 미대를 모으는것을 보자 리로인은 한 전사더러 자기를 따라오라 손짓했다. 두사람은 아가위나무와 버드나무들이 무성한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각을 뜬 짐승고기를 들고나왔다. 그것은 목피막로인이 오늘새벽에 렵총을 놓아 잡은 각을 뜬 노루고기였던 것이다.
모두들 로인이 시키는대로 여기저기서 삭정이를 주어다 우등불을 피웠다. 밥이 다 되자 로인은 칼로 베며서 불에 구운 방자고기를 맛보라면서 매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과연 별맛이였다. 이건 여직 정찰을 다니던 중에서 정말 제일 멋진 한차례의 야외식사라 하겠다.
목피막로인은 정찰병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나 했다.
오랜 예전에 이 산중으로 포수 하나가 늘 사냥하러 다녔는데 평생을 수렵으로 보낸만큼 사냥술 역시 보통이 아니였다. 그러한 그에게 딱 한가지 고질이 있었으니 그것인즉 제 재간만 맏고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먹지.>> 하면서 집을 떠날 때면 식량을 갖고 다니기 싫어하는 습성 그것이였다. 한번은 그가 산중을 헤매다가 토끼새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부득불 굶어야 할 난경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산신령이 그를 가엽시 여겨 백발로인으로 화하여 나타나 깜질이 샛노란 싸리 한묶음을 주면서 <<넌 이것을 잘게 썰어 가마에 넣고 푹 삶거라. 조심해서 불을 때되 가마안에서 물잦는 소리 나기전에는 절대 뚜껑을 열지 말거라. 먹을 물은 뒤산바위츠렁에 있을테니 밥을 다 먹고는 네가 그곳에 가 찾거라.>> 하고는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 포수는 물론 산신령이 시키는대로 싸리를 잘게 썰어서 가마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한참 지나서 가마속에서 싸리가 끓기 시작했고 구수한 밥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기증을 이기지 못한 포수는 조급증이 나서 그만 뚜껑을 열어재끼고 말았다. 그랬더니 싸리는 겨우 절반이 밥으로 되었다. 포수는 하는수없이 절반배를 채우고 북산으로 물먹으러 올라갔다. 찾아보니 바위틈에서 과연 샘이 흘러나오는데 그 량이 어찌나 적은지 급해맞은 포수는 화김에 그만 사냥총으로 바위구멍을 늘구려고 뚜졌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뿔사, 이게 웬 일인가? 구멍에서 샘이 흘러나오기는 커녕 흙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더니 뚝 끊고 인차 고갈되여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배가 차지 않은데다 기갈까지 번진 포수는 산속을 채 나오지도 못하고 그만 죽고말았다는것이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거짓말이긴하나 그속에 어떤 일이든 성공하자면 조급성을 삼가하고 진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의의가 내포되여있는것 같았다.
저녁이 끝나자 려홍이는 세 개의 정찰분조를 조직하여 오룡자, 삼합강, 흑랑구에 파견하여 적의 수자는 얼마나 되며 말을 략탈한 정황은 어떠한가 하는것을 알아오게 했다.
이에 2반 반장 박금록이는 청송이와 몸집이 헌칠하고 든든한 리춘성이란 전사를 거느리고 도보로 삼합강으로 전찰을 떠났다. 세사람은 목피막이 있는 산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얼마가량 가다가 개천을 건넛다. 곧추 동쪽으로 15리가량 더가야 했다. 그들 셋은 느티나무들이 서있는 산굽이를 돌아 그 발치에 있는 개천을 건너가게 되었다. 개천물은 곱게 핀 저녁노을에 유별나게 맑았는데 물속에서 노니는 버들치와 산천어가 환히 들여다보였다.
금록이가 물을 마시느라고 기슭에 배를 붙이고 거꾸로 엎디였는 사이에 갑자기 다급한 웨침소리가 터졌다.
<<뭐야, 뭐야?>>
벌떡일어나보니 아뿔싸, 청송이가 물속에 쑥 들어가 잠겨버리는것이아닌가. 금록이는 옷도 미처 벗을 겨를이 없이 풍둥 뛰여들어가 허우적거리는 그의 머리카락을 덥석잡아 끌어냈다. 청송이는 어찌나 넋살을 먹었던지 물을 토하자 해나른해서 다리를 퍼더버린채 그만 풀섶에 늘어지고말았다.
<<거 재간있는 헤염군일걸. 하하하!... >>
리춘성이 눈이 퀭해진 그의 꼴을 보고 익살스레 놀려주면서 쾌활하게 웃어제꼈다.
<<그따위 재간으로 물속에 있는 고기를 잡겠다구?... 못잡느대두 말을 듣지 않더니 뛸데있나... 잘코사니야, 하하하!... >>
<<나는 물이 깊다는건 생각지두않고 그만... 실수를 했어.>>
<<실수라는게 뭐야, 어리석은 짓이였지. 그만큼 떠돌아다녔으면 어떤물이 깊고 얕은것쯤이야 이제는 알아야지, 안그래?>>
금록이는 성질이 바람개비처럼 진중하지 못하면 이같이 봉변을 당하기 일쑤라고 그를 뚱겨주었다.
세사람은 거기서 젖은 옷들을 짜입은 뒤 다시금 길을 조이였다. 그들은 내내 소삽한 산길을 택해 걸으면서 주위를 세심히 살폈다. 그러면서 약 한시간가량을 더 걸으니 잡풀이 무성하고 습기 많은 오랜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잡풀이 듬성듬성한 곳에는 말발자국들이 환히 드러나게 찍혀져있었다. 한둘은 아니고 숱한 말발짝들이였다.
<<야 됐소, 더 큰 고기를 만나게 됐소!>>
청송이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기분을 부쩍냈다.
버덩은 북켠에 있고 길은 그섶에 다가붙어 곧추 동쪽으로 뻗었는데 1리도 채 가지 않아서 나지막한 산이 나졌다. 리로인은 그 산너머에 마을이 있다고 알려줬던 것이다. 말발작은 바로 그리로 향했다.
황혼이 깃들었다. 산우에 올라 몸을 숨기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박암속에 백여호되는 마을이 산기슭을 따라 동남방향으로 길죽하게 누워있었다. 세 정찰병은 산경사지에 있는 옥수수밭과 조이밭 이랑사이로 몸을 숨기면서 마을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사군데서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말이 투레질하고 싸움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이 이토록 어수선한 것으로 보아 비도들이 들어온지 그리 오래지 않음이 분명했다. 세사람은 어느 한 실그러진 토담집 채마밭을 에돌아서 마을안으로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한곳에 이르러 보니 몇집건너에 말들이 매여져있는데 갓 베온 옥수수장과 푸른 콩대를 썰지도 않은채 먹어대고있었다. 세여보니 모두 25필이였다. 다른데도 있겠는데 돌아다니며 세여본다?... 그렇게 하는게 신통치 않았다. 보초서는놈에게 들키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무가리에 숨어 방법을 연구하려는데 머리가 더부룩한 비도녀석 하나가 집안에서 나오더니 말들이 매여져있는 가까이에다 모깃불을 피워놓기 시작했다. 그가 궁둥이를 하늘로 올리고 한창 불을 불어대고있는데 한녀석이 말을 세필끌고와서 청을 드는 것이였다.
<<여봐, 내 말도 여게다 좀 매자구. 자리가 없어서 그래.>>
모깃불피우던자가 머리를 건들 쳐들더니 생파리떼듯 볼부은소리부터 했다.
<<이거 참 시끄럽겐 구네. 임잔 또 어디서 온 까마귀야?>>
<<난 리부관패야. 흑랑구서 방금 도착했어.>>
하면서 방금온자가 맛깔스럽잖아 구시렁거렸다.
<<이거 원 제기, 쉰필이나 되는 말을 너덧이서 어떻게 건사해내는가. 이러다 공산군이 알고 달려들면 제몸 하나두 건사하기 힘들판인데, 젠장!... 여봐, 그래 이 말들은 어디다 건사하면 좋겠나?>>
<<헝, 시끄럽겐 구네. 그런걸 나한테말하문 어떡해? 내가 뭐 마관인줄 아나, 챗!... 우리도 건사해야 할게 마흔 여섯필이나 돼, 마흔 여섯필이나.>>
<<그럼 꼴 베온거라두 좀 달라구. 저기 담장밑에라두 매놓고 먹일테니깐.>>
<<쩌쩌, 상판이 꽹가리같은 자식이 렴치짝두 이만저만이 아니네. 왜 저절루 베다 먹일념 안하구 시끄럽게 구는거냐 마을만 나가면 곡식이 쌔쿠벼렸는데두?>>
<<쌔쿠버렸다?... 그렇지, 그럼 낫이나 좀 빌려줘. 제편사람끼리 깍쟁이짓은 좀 작작하구.>>
<<허, 자식이 말은 잘두 해쌌네! 바보같은 자식, 오입질도 시켜야 할테냐? 왜 제맘대루 아무 집에나 들어가 빌려달라구못해?>>
<<이거 젠장, 이놈의 노릇 못해먹겠다!>>
말을 끌고왔던 비도녀석은 밸이 올라 마치도 모주먹은 돼지처럼 게두덜거리면서 그만 가버렸다.
(쉰에 마흔여섯이라. 말이 모두 구십여섯필이구나. 그러니 구태여 세느라할 필요없구나. 이젠 놈들이 들어있는 집이나 알아보자.)
금록이는 이렇게 마음먹고 두 정찰병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한곳에 이르니 불빛이 유별나게 밝은 큰 집이 나졌다. 가까이 가서 숨어볼라니 비도들이 그 집으로 들랑날랑했다. 불빛이 쏟아자는 커다란 창문이 열려진 서쪽칸에서 돌연히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는 보초병이 어정거리였다. 금록이는 조바심이 생겼다. 집앞에 한쪽으로 치우쳐 그리 높지 않은 나무가리가 있었다.
(그렇지, 저 꼭대기로 올라가면 집안을 볼수 있겠구나.... 헌덴 저 빌어먹을 녀석이 나무가리론 왜 가냐?... )
보초병은 그냥 서있기가 싫었던지 나무가리에서 새단을 쑥 뽑아놓고 털썩 주저앉는 것이였다. 그래서 나무가리곁으로도 갈수 없게 되었는데 웬 사람이 터벅터벅 오더니 곧추 집있는데로 갔다.
<<넌 누구냐?>>
새단을 깔고 앉았던 보초병이 벌컥 일어나면서 거칠게 소리쳤다.
<<왜, 왜 그러우?... 난, 난 이마을 사람이우. 임자네 장관을 좀 만날가해서... >>
보초병은 치켯던 총끝을 숙이면서 어성을 돋구었다.
<<시끄럽게 장관은 왜 자꾸 찾아오는거야? >>
이말에 마을사람은 한숨을 길게 뽑으면서 격분에 떠는 음성으로 푸념질을 했다.
<<임자네 부댄 너무도 규률이 없소. 남의 콩밭을 다 결딴냈으니 우린 뭘먹고 살라우?... 이건 참 억울해서 못살겠다이.>>
보초병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밀막았다.
<<어디루 들어가겠다구 이래? 어르신님들이 술마시는데 괜히 경칠라구.>>
그래도 마을사람은 부덕부덕 들어가려했고 보초병은 점점 더 사나와지는 몰골을 해가며 들여놓지 않았다. 이러는 틈에 금록이는 나무가리우로 제꺽 올라갔다. 집안에서 다시금 벅적 고와대는 소리가 났다. 안을 들여다보니 중앙군장교모를 쓴 비도 여럿이 박나비모양으로 천정에다 끈을 매서 두리운 석유람프가에다 차려놓은 술상에 둘러앉았는데 넓은 이마에 뱁새눈인자가 창가를 마주앉아있는게 환히 보였다.
(가만있자, 저게 손자량이 아닌가? 틀림없겠다!)
손자량의 용모가 어떻게 어떻게 생겼다는것을 여러버이나 들었던 금록이는 가슴이 세차게 들뛰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권총을 뽑았다. 단번에 복장을 쏴눕히고싶없던 것이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그자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더니 번열이 나는지 장교모를 태깔스레 뒤통수에 붙이고 누런 장교복단추를 벗겨 앞자락을 활 혜쳤다. 그리고는 술에 얼근히 취한 상판에다 선웃음을 쳐가면서 희떱게 장담했다.
<<흥, 두고보라구. 이 자량이가 이제 1천기마병을 제꺽 만들어낼테란말이야. 장총통이 살아계셨다, 금원제국인 미국이 원조를 하고있는데 우리가 싸워 승전못할게 뭐란가말이여. 이제 그놈들을 빈대눌러잡듯이 없애치워야지 음... 우리는 다시일어나 공과 위훈으로 영예를 얻고 국군을 영접해야한단말이야!>>
안경낀자가 이 말에 그래야지 하고 맞장구를 치고있으니 그는 틀림없는 리경광이였다.
<<첫째 뜻을 굽히지 말고 싸우는 것이고 둘째 역시 뜻을 굽히지 말고 싸우는거야. 이것이 바로 우리네 신조란 말이요!>>
(개자식! 신조고 나발이고 우리가 이제 네놈들에게 넋살먹이는걸 보아라.)
금록이는 속으로 이렇게 단단히 벼르면서 나무가리에서 내려왔다. 셋은 목피막을 향해 줄달음을 놓기 시작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