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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정민호는 1921년 6월 28일, “자유사시사변(흑하사변이라고도 함)” 때 흐룡강에 뛰여들어 다른 한 독립군과 함께 생사를 헤매다가 4일만에 한 허저인어부의 손에 의하여 구원, 그곳에서 허저인 세습향장의 딸과 결혼, 임신한 몸으로 원쑤에게 랍치된 안해찾으러 떠났다가 그만 북만의 유명한 염왕산 토비ㅡ 위삼포손에....
전기적 색채를 띤 소설은 스토리가 매우 굴곡적이다. 허저인의 풍속과 토비들의 생활은 허구가 아닌 사실그대로다. 작품에 나오는 할빈, 가목사, 의란, 밀산, 당벽진, 가진구 등 북만 지구의 지명들도 모두 그대로이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력사의 갈피속에 묻혀있는 하나의 신비스런 세계를 독자들은 보게 될것이다.
장편소설
관동의 밤
김송죽
1
끝내 싸움이 붙고야말았다. 정면에서 기병이 달려들고 좌우량켠에서 보병이 사납게 접어들었다. 수류탄이 요란스레 작렬하는 속에 기관총이 울부짖었다. 마치 긴 쇠사슬이 콩크리트바닥에서 발광하듯 딩굴면서 끌려가는것만같았다. 그러던 기관총이 갑작스레 멎고 이번에 터지는건《우라!》웨침소리.
결사적인 반격도 소용없었다. 이쪽은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말았다. 결정적인 패배를 의미하는 그 모양은 마치도 흉흉한 홍수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마는 토답같이 무기력하고 처참했다.
방금전만해도 제법 완강해보이던 부대가 이렇게 갑작스레 붕괴되다니! 전사들은 총탄에 쓰러지고 말발굽에 밟히우고 포탄에 동강났다. 그리고 그래도 포로로는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혈로를 뚫으려고 결사적인 발악을 했다. 하지만 이제 어디로 더 간단말인가. 앞에는 물결세찬 흑룡강! 간신히 이곳까지 다달은 이들은 하는 수 없이 총을 팽가치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이같이 죽을 고비에 들어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나젊은 한국독립군전사 정민호도 끼여 있었다. 때는 1921년 6월 28일. 이것이 바로 조선의 독립운동사에 비극으로 기록을 남긴《자유시사변》인것이다.
다른 어디로는 퇴각할래야 퇴각할 수 없어서 강에 뛰여든 정민호는 대안인 중국쪽을 향해 죽을 둥 살 둥 헤염쳤다. 한데 강을 건널 재간이 없었다. 이 강은 그가 엽때것 건너본 여느 강과는 퍽 달랐다.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깊거니와 대단히 널다란 강이였던것이다. 허 이걸 어쩐다, 자칫 물귀신이 되어 고기밥으로 되고말겠구나. 정신차려야지. 기운을 내자, 기운을! 앞으로 전진하자, 앞으로! 정민호는 모드레를 짚어 강을 건느려다가 몸을 해뜩 뒤번지고는 두팔로 후리질을 했다. 하지만 흐름이 거센 강물은 그를 삭정이같이 아래로 아래로 밀어갔다. 꼭 마치도 가지고놀기라도 하듯이.
그런다고 맥을 버리랴. 멀지 잖은 앞쪽에서 또 다른 하나의 누군가 대안을 향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저치만 따라간다면 이 강을 건널수 있겠구나. 그는 오로지 죽지 말고 살아야한다는 그 하나의 집념뿐이여서 젖먹던 기운까지 다썼다. 한데 앞에서 헤염치던 젊은이가 얼마못가서 마치 숨박꼭질을 하듯이 물속으로 몇 번 들어가더니만 다시올리솟지를 못한다. 나역시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의식이 갈마들자 민호는 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에, 바로 명재경각(命在頃刻)에 다달은 이때에 하늘이 내려주는 구호신(救護神)인양 무언가 검스레하고 길다란것이 우로부터 떠내려오고 있었다. 오, 한얼님! 죽을 수가 닥치니 살 수가 생기는구나! 물에 빠진 놈 짚오라기라도 잡는다고 정민호는 혼신의 악을 다 써서 마침내 그것을 잡았다. 그것은 아름드리 통나무 두 개를 꺽쇠로 무어놓은것이였다.
정민호는 그우로 간신히 기여올랐다. 분노와 격분으로 하여 간에 불이 붙고 결장이 터지는것만 같으던 그는 내가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나자 이를 갈면서 저주담긴 욕설을 퍼질러댔다.
《더러운 자식들, 제편끼리 싸우다니 원! 사람웃긴다, 사람웃겨! 싹 되져라, 싹 되져! 빌어먹을 개자식들아!》
바로 이 시각에 박일리아의 싸할린의용대는 로씨야의 볼세비키군과 배합한 흑룡주 오하묵의 자유대대의 손에 풍비박산이 되고만것이다.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어쩌면 이럴수가?..... 응당 원쑤에게 돌려야 하는 총끝을 제편의 가슴에다 견주다니?.... 이게 대체 무슨놈의 꼴인가. 같이 손잡고 내나라를 빼앗은 일본놈을 몰아낼 궁리는 안하고?.... 너무나도 저주롭고 통분한 일이였다.
이것은 청산리싸움을 치르고나서 만주에 있던 여러 독립군이 공동작전을 요망해 로씨야로 건너가자 군권을 장악해보려는 그곳의 불순한 야심가들의 암투로 인하여 빚어진, 그야말로 동족상잔의 수치스러운 비극이였다.
통나무는 살같이 아래로만 떠내려갔다.
이때였다. 다른 하나의 가련한 손이 그의 몸을 싣고 달리는 통나무에 간신히 와 닫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팔을 뻗힌 정민호는 그의 손목을 얼른 잡아당겼다. 그통에 통나무는 하마터면 뒤번져질번했다. 무거운 버들단같이 끌려 올라온 젊은이는 배속에 가득한 물을 토하자 그만 기신없이 너부러지고만다. 이쪽은 이마에 차분히 내려덮힌 그의 머리카락을 쥐여 얼굴을 다시보았다. 전혀 생면의 젊은이였다. 자식이, 넌 니항군전사로구나. 아무튼 우린 한동포 한편이였구 신세또한 같은 놈이였어. 정민호는 속으로 이같이 뇌이면서 그가 미끌어 다시 강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붙잡은채 한얼님께 제발 구해주십사고 빌었다.
정민호는 고향이 강원도 통천이다. 대를 내려오는 어부집의 자식인 그역시 여느집의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밥보다 가난의 쓴맛을 더많이 보면서 스므살을 넘긴것이다. 우로 형이 셋이였건만 둘은 병마에 죽고 큰형은 백부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집에 씨받이로 남은건 그뿐이였다. 어느핸가 아버지가 간다온다는 말도 없이 어디론가 훌쩍 사라졌다. 그래서 아직은 응석부릴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제 힘으로 무어든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이른새벽부터 바다가에 나가 고기배를 기다려서는 그것이 오면 고기를 사 넘겨 팔거나 아니면 남의 고기밸을 따주고 푼전을 받았던것이다.
그가 13살나던 해의 여름 어느날, 집을 나간후론 종무소식이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병신이 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다시나타났다. 한데다 그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여서 그는 물론 누나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해도 어머니만은 용케도 제 남편인걸 알아보고는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했던것이다.
《온, 귀신이 된 줄 알았던니 죽잖구 살아왔어.》
《천제님이 날 가엽시 여겼나보지.》
《그래 어떻게 됐수?》
《어떻게 될거있수. 패하구말았지. 나 원 기막혀서....》
아지는 이러시곤 마치도 어혈진 도깨비 벌물켜듯이 자배기에 있는 먹다 남은 명태국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에 알게 된 일인데 그는 그지간 채응언이 이끄는 의병대에 들어 쪽발이 왜놈침략군을 몰아내느라 목숨걸고 싸웠던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렴
강원도 금강산 일만일천봉
팔만구천 암자 법당에다
산채불공말구
외로운 이내몸을 네가 괄세를 말라.
어느날 민호가 제 친구들과 진종일 바다가에 나가 놀다가 흥얼대며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자식이 셈평좋구나, 너 그렇게 놀구멍수만 찾구서야 사람질을 하겠냐, 너마저 까막바보로 돼버리면야 이젠 누가 쪽바리놈한테 빼앗겨버린 나라를 찾겠느냐 하면서 되게 꾸짖어서 일은 그만 집어치우고 공부를 계속했던거다. 민호는 소학을 마저다니고는 이어 17살이 되어서야 서울에 올라가 큰형이 있는 백부집에 기거하면서 거기의 중앙중학을 다녔다. 한데 3.1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아쉽게도 공부를 채 하지 못하고말았다.
일제는 혈안이 되어 만세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주도는 하지 않았지만 목청이 좋아 대렬에 끼여 목청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줴쳤던 민호는 큰형과 함께 일경의 수사를 피하느라 구석진 집으로 갔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대노할줄이야.
《비겁한 자식, 그따위 쥐새끼같은 담량갖구서야 뭘해먹겠느냐. 만세를 부른다구 독립이 될건가. 왜 총들고 나가 싸울 념은 안하구서 집구석에는 게바라드는거냐.》
그래서 둘은 독립투사들이 무장항쟁을 준비하느라 운집하고있는 만주를 바라고 고향을 훌쩍 떠난건데 도보로 의주까지 오고보니 큰형 민수는 그만 급성사구체염에 걸려서 되돌아가고 민호만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들어온거다.
마침 이때에 상해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설립되였고 만주각지에는 국민회니 군정부니 대한군정서니 대한독립단이니.... 명칭이 각가지인 독립단체들이 한창 우후죽순마냥 생기고 있었다.
민호는 류하(柳河)에 군사인재를 배양하는 학교가 섰다는 소문을 주어 듣고서는 거기에나 가볼가고 하다가 한동안 김원봉(金元鳳)의 의열단에 가담해보았고 나중에는 왕청에 가 그곳에 자리잡고있는 대종교의 무장부대이자 만주에서는 실력이 가장 큰 독립군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경, 군영을 옮기느라 서일총재(徐一總裁), 김좌진장군(金佐鎭將軍)을 따라 청산리(靑山裏)산골까지 갔다가 거기서 독립군토벌을 나선 일본군과 여러날 대판으로 싸워 크게 이기고는 여러 독립군과 함께 전략적이전을 하느라고 로씨야로 건너가니 그도 따라서 건너갔다.
희망을 한가슴 가득안고서.
하지만 걸국은 지금의 이런 꼴로 되고만것이다. 과연 신수사나운 운명이 아닌가!
너부러졌던 니항군청년이 마침내 눈을 뜬다. 민호처럼 헌칠한 키는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단단하게 생겼다. 민호가 먼저 얼굴에 웃음을 담고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봐, 대체 누군가? 우리 서로 알기나해야잖아.》
《난 최뾰똘이요.》
《뭐라, 최뾰똘이라! 그래 올해 나이는?》
《열아홉.》
《그렇겠지. 열아홉이라..... 허문야 내보다 두 살아래구나. 난 성 정가구 이름은 민호다. 건데 우리가 그냥 이렇게 내려가기만하면 어쩌나. 이러다간 바다객이 되고말텐데.》
이 말에 니항군청년은 낯빛이 몹시 어두워질 뿐 말이 없다.
흐름이 거센 이 대하는 동남방향으로 그냥 흐르다가 동강진(同江鎭)에 이르러서는 송화강과 합쳐 방향을 동북쪽으로 꺾게 되고 아래로 썩 더 내려가 로씨야 원동의 수부인 하바롭쓰크에 이르러서는 우쓰리강과 또 합친다. 그런 후 강물은 광활한 대지를 꿰지나 나중에는 오호쯔끄해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는 무변의 바다다.
니항군젊은이는 절망하고 있었다.
민호가 입을 다시열었다.
《이거 참. 배가 등가죽에 붙는다. 곰이라구 발바닥핥겠는가.》
《......》
《일없어 절망은 하지 마. 솟아날 구멍있겠지.》
민호는 청년에게 용기를 돋구느라 이러고나서 두눈을 조용히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가마히 우에 계시사 한으로 든 보시며 낳아 살리시고 늘 나려주소서.》
대종교의 원도(願禱)였다.
니항군젊은이는 눈귀로 힐꿋 보고는 낯을 돌려버린다. 속으로 넌 무슨놈의 구제비소리를 그렇게 하느냐 하는것 같았다.
민호는 매가 저 하늘높이 날아예는것을 부러운 눈으로 올려다보면서 사색에 잠겼다. 내가 만약 매로 변할수 있다면 국경너머 고향까지 훨훨 날아가리라. 집에 가면 부모님들을 만나보고 이젠 시집을 갔을 누나들과 매부들도 만나보리라. 그들앞에서 통분함을 하소하리라. 로씨야놈들의 배신과 골육상잔에 망태기로 돼버린 우리 독립군! 오 암담한 미래여!.... 감슴속에 찬건 안카까움뿐이였다.
한데 이놈의 강에는 왜서 배도 안보이는걸가?
두사람은 손바닥 네 개를 노로 삼아 통나무를 강기슭에 붙여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허사였다.
어느덧 낮이 다 가서 해가 서산너머에 떨어지자. 사위는 재빨리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일몰의 여광에 핏빛처럼 번득이던 강물도 탁류로 변해버렸다.
두 젊은이를 실은 통나무는 마치 밑도 끝도 한정없는 암흑의 심연으로 달려들어가는것만 같았다. 아아, 어떻게 하면 이 상태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가. 정처없는 표류, 괴괴한 정적에 반죽되여 갈마드는 위구 때문에 두 젊은이는 한숨만 토했다. 그리고는 지쳐버렸다. 그들은 운명을 통나무에 맡긴 채 그만 잠에 골아떨어지고말았다. 사경이라 꿈도 없이 곤하기만했다.
어둠이 걷히면서 새날이 밝아오자 한가닥 구원받을 희망이 보였다. 그들은 아래로부터 물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큰배 한척을 발견한것이다. 배는 연통으로 검은 연기를 토하고있었는데 틀림없는 로씨야륜선이였다.
《우라!》
《이젠 살았구나! 만세!》
니항군청년도 민호도 미칠것만 같은 희열에 잠겼다.
통나무는 아래로 떠내려가고 륜선은 우로 올라와서 거리는 각일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ㅡ우ㅡ웅ㅡ》
한데 륜선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정하게도 그냥 지나갔다. 륜선의 고물에서 일고있는 길다란 포물선은 가냘픈 통나무를 그네뛰듯 요동치게 만들어놓았다. 그통에 두 젊은이는 구원되기는커녕 되려 하마터면 물귀신이 될번했다.
그야말로 위험한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것이다. 민호는 가슴밑바닥으로부터 치솟는 증오와 분노를 입으로 뱉어냈다.
《좆같은 마우재놈들아, 급살이나 맞고 싹 뒈져라!》
올라오는 배도 내려가는 배도 더 볼 수 없었다. 무인지경을 흐르고있는 대하는 흡사 죽음의 바다와도 같았다. 시간이 흘러 지지리 고통스러운 하루낮이 지나고 또다시 칠흑같은 밤이 덥쳐들었다.
그러기를 세 번. 4일만에야 그들은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었다.
정오가 거진되여 올 무렵에 그들을 실은 통나무는 어느덧 강폭이 훨씬 넓어지고 흐름이 완만한 곳에 들어섰다. 갈매기들이 주위를 빙 빙 돌면서 따라왔다.
둘은 저기 앞에서 쪽배 하나가 남쪽기슭은 향해 강을 건너고있는것을 발견했다. 한데 다가 이제는 너무도 굶고 지쳐서 숨이 간들간들했다. 그렇다고 이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쳐버릴 수는 없었다.
민호는 경련이 일듯이 떨리는 손으로 자기가 입고있는 흰적삼을 벗었다. 그리고는 제리니코의 그림 <<메뒤즈호의 뗏목>>의 사람들처럼 그도 그것을 머리우에 깃발처럼 간신히 쳐들었다.
저쪽에서 쪽배를 몰던 사람이 다행히 그네을 발견했다. 40대의 사나이였는데 노를 저어 다가오더니 닻을 뿌려 통나무에 박혀있는 꺽쇠에다 걸었다....
두 젊은이는 개가 악패듯이 짖어대는통에 깨여났다. 그들은 강둔덕에 있는 막안에 있었다. 배를 몰던 구명은인이 어디론가 가버리자 그들은 기슭에 있는 말뚝에다 떠내려가지 말라고 매놓은 통나무에서 내려 이 막안으로 기여들어왔고 먹을것을 찾다가 물통안에 붕어와 메기가 있으니 그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는 식곤증을 못이겨 그만 느러졌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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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리(1791ㅡ1824) 프랑스의 대표적화가. 대담한 데생 및 색조와 정감적인 표현에 의해
들라크르와 등과 함께 랑만파의 거장이 되었으며 거작 <<메뒤즈호의 뗏목>> 등이 유명함.
고기막의 출입문이 그대로 활짝 열려있었는데 밖에서 사람 여럿이 벗티고 서서 막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두 다섯. 그중 넷이 머리에다 봇나무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물이 난 허름한 옷들을 입었다. 그리고 삿갓을 쓰지 않고 맨머리로 그네들과 함께 있는 다른 한 사람은 삐여진 미모의 소녀였는데 정기도는 두눈은 호기심이 가득차 있었다. 그녀가 너무 게걸스레 먹어서 마른풀우에다 짓을 피워놓은 니항군청년의 구토물을 발견했는지 상을 몹시 찡그려 가면서 무어라 쫑알댔다. 생김새가 어딘가 다르거니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있는 그들은 민호가 처음대하는 민족이였다.
황둥개가 당장 주인손에서 사슬을 끊고 두 불청객에게 달려들 잡도리였다.
손에 삼지창모양의 작살을 쥔 50대의 년장자가 개를 더 짓지 못하게 해놓고는 중국말로 나오라한다.
《일어서자. 설마 우릴 죽이겠냐.》
민호는 겁나서 벌벌 떠는 니항군청년의 팔을 끄당겼다.
바깥은 햇빛에 눈이 부시였다. 개만 짓지 않으면 한없이 적막해질 강안에 실같이 가느다란 한갈래의 오솔길이 막가까이에 있는 채마밭을 에돌아 가둑나무들이 무성한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 남쪽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면서 다시 말할맥도 나지 않았다. 민호는 중국말을 아는 그 어른을 향해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뜻으로두손모아 국궁재배했다.
심덕이 무던해보이는 그 사람은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를 짓더니 지금은 구명은인이 되는 그 광대뼈가 불거진 막주인과 모색이 그를 닯은걸 보니 분명 아들일 사람더러 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가자했다.
사람 7명이 쪽배 두척에 갈라타고 강가를 떠났다.
얼마내려가지 않아 흑룡강에 흘러들고있는, 남쪽에서 곧추내려오는 한가닥의 자그마한 시내가 나졌다. 쪽배들은 그 시내에 들어서서 우로 올라갔다.
시내의 량안에 고기막아니면 채소막같은것이 띠염띠염 있었다.
배는 아느새가서 인가가 40호쯤되는 한 자그마한 마을에 당도했다. 어래무(卾來木)라는 허저족마을이였다.
처마가 거의 땅에 다을지경 낫다랗고 풀이영을 한, 그래서 흡사 비오는 날 도롱이를 입고 뒤를 보느라 쭈크리고 앉은것만 같은 초라하고도 궁상스러운 반토굴집과 나무다락들이 어빡자빡 제멋대로 널려 있었다. 이것이 그래 사람사는 동네란말인가?....민호의 뇌리에는 불현듯 내가 하와이를 발견하고 그곳의 토착민들손에 잘못된 쿡(cook)의 신세가 아닐가싶은 불길한 예감이 스치였다.
여기는 인류의 문명이란 거의 닿지 않은것만 같았다. 두 조선젊은이는 적이 놀랜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배에서 내렸다. 이들과는 오로지 중국말로만 겨우 소통이 되는 민호였다.
통나무를 끌어왔던 허저인은 성명이 치더룽이였는데 그가 바로 시내의 서쪽둔덕에 있는 첫집에서 살고 있었다. 치더룽은 제가 구원한 두 조선젊은이를 그 집앞에 있는, 물개암나무를 엮어 벽을 만들고 억새로 지붕을 한 자그마한 다락에 들라했다. 그래서 바라올라가 보니 고기비린내가 물큰났다. 이것이 허저인들이 다커투라고 부르는 고기창고였는데 지금은 비여있었다.
분명 구출은 된것 같은데 이네들이 이제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가, 굶은것을 알고 먹을걸 줄가 아니면 좀 쉬운다음 쫓아버릴가, 아니면?.... 민호는 이제는 류랑걸식의 길을 걸어야 할 신세구나 생각하니 예측키 어려운 앞날이 막연하게 걱정될 뿐이였다.
운명이 한그믈에 걸린 친구역시 그러할것이다. 낯이 해쓱해진 니항군청년이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풀풀 한숨을 련발하는데 치더룽이 끓인 물고기를 질그릇에 담아 들고 다커투로 올라왔다. 숟갈까지 내놓으며 먹으라해놓고는 돌아간다. 니항군치가 자기는 먹지 못하겠다해서 민호혼자서 정신없이 퍼먹었다.
그러는 사이 니항군청년이 자기의 고독하고도 비참한 신세를 말했다. 그의 아버지역시 전에는 의병이였는데 그가 죽자 형님과 누나와 어머니 그리고 그까지 넷이 고향을 버리고 삼촌이 이사를 간 로싸야의 연해주로 건너가 거기 동포가 모인 신한촌(新韓村)에서 살았다. 한데 왜놈의 군대는 거기까지 가서 교회당에 불을 지르며 조선사람을 못살게굴었던것이다. 어머님과 누나는 그자들 손에 살해당했고 형님은 이 동생을 데리고 복수하겠다며 빨찌산에 가입했다가 어느날밤 격전때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다. 하여 지금은 그만이 달랑 남은건데 제 조선어로 부르면 성명이 최기덕이였다. 나라가 독립되거든 그때가서 제 이름도 되찾으리라면서 삼촌이 그같이 지었노라했다.
치더룽의 열두살먹은 아들녀석이 다락에 와보고 달려가더니만 아까의 그 나이 많은 사람까지 왔다. 그가 이 마을에서는 가장높은 어른으로 받들리우는 세습향장ㅡ 가싼다였는데 성명은 유만진이다.
가싼다는 민호를 향해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말로 너의 친구가 왜서 해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울었는가고 캐듯 물어왔다. 하여 민호는 그의 불우한 신세를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가싼다는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만면에 동정하는 빛을 띠는것이였다.
이틑날 저녁켠에 가싼다 유만진이 다시나타나더니 그들을 자기네 집으로 데려갔다. 식솔이 여덟이나 되는 그는 그래도 삼간짜리 괜찮은 흙집에서 살고 있었다. 물고기깝지를 창문에 제대로 규격맞게 붙여놓고 사는 이런 집이 이 마을에 몇호가 안되였다.
유만진은 두 조선젊은이를 서쪽방에 류숙케 했다. 그리고나서 이틑날 아침에는 사슴의 골수유(骨髓油)를 버무려 만든 좁쌀밥을 해주었다. 후에야 알았는데 라라부다라고 하는 그것이 허저인들이 귀객에게만 대접하는 최고의 특별음식이였다. 두 조선젊은이는 자기들이 여기와서 생각밖에 분에 넘치는 훌륭한 대접을 받고있음에 놀랬거니와 그것을 페부로 느끼기 시작했던것이다.
치더룽은 유만진과 성이 다르건만 그를 친삼촌이라했다. 하여 이쪽에서는 왜서일가했다. 실은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허저족은 17세기반엽까지도 여전히 부계종법씨족(父系宗法氏族)단계에 머물러있었으니 뒤늦게 개화된 민족인것이다. 씨족내의 혼인을 엄금하고 씨족심판을 하며 씨족숭배와 혈족복수 그리고 집안에 과부가 나지면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제집안에서 재가를 하게끔하거니와 친속이 재산상속권을 갖는 등의 법규가 있었으니 이것이 여느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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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래무ㅡ허저인의 이름과 지명들은 발음 그대로임. *가싼다ㅡ허저인의 세습향장.
*쿡(1728ㅡ1779)ㅡ영국의 항행가. 3차에 걸쳐 태평양해안,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를 탐험하여 이의 령유(領有)를
선포하였으며 남극을 주항. 1778년에 하와이를 발견하였는데 이곳에서 토착인에게 살해당함.
과는 다른 그 씨족사회의 특성이였던것이다.
허저족의 씨족조직을 하라모쿤이라했는데 그것은 그 씨족내부의 사무를 관리하는 조직형식이였다. 하라란 본래 씨족인데 후에 씨족이 와해됨과 함께 점차적으로 성(性 )의 명칭으로 변하고말았다. 모쿤은 가족 또는 종족(宗族)을 칭하기도한다. 19세기 60년대전에 하라는 곧 씨족조직형식이였거니와 또한 청나라정부가 이 일대에다 설치한 지방행정단위이기도했다. 어떤데서는 하라 혹은 모쿤을 단위로 하여 하라다(씨족장) 혹은 모쿤다(가족장)를 설립하거나 가싼다(향장)를 설립하기도했다.
허저족은 둬하제를 실시했는데 둬하란 허저어로 친속이라는 뜻이다. 둬하제는 씨족형식으로서 성원들로 하여금 공동히 혈족복수를 위한 전쟁에 참가하거니와 자기 씨족의 리익을 위하여 공동히 준수 할 씨족내의 법규까지 있었는데 그것이 줄곧 19세기말까지 존재해있었던것이다.
허저인의 오랜 씨족으로는 유청하라, 우디컹하라, 루르러하라, 거이커하라, 푸티커하라, 비라컹하라가 있었는데 이러한 옛씨족의 명칭은 그 대부분이 거주지역의 이름이 아니면 근처에 있는 시냇물이거나 산 혹은 짐승의 이름에서 따온것이였다. 그런데 씨족이 해체됨에 따라 그 씨족의 이름들은 성씨로 변하였고 후에는 성씨의 첫글자음이 변하여서 허저인의 성으로 고착되였다.
유씨성은 유컹하라라 하기도하고 치렁하라라 하기도 하는 씨족명칭이 변해서 된것인데 치렁하라는 바로 치무인허라 하는 강물에서 온 이름이였다. 그리고 그 강의 첫글자가 또 치(齊)성을 만들어냈으니 유씨와 치씨는 아주 친밀한 족원(族源)관계가 있는것이다. 한즉 유만진이 치더룽을 조카라 하고 치더룽이 유만진을 삼촌이라 부르는건 무리가 아니였다.
세습향장인 유만진을 놓고 보면 수렵기술이 그 누구만 못하지 않거니와 일처리를 공정하게 해서 집법자로서의 자격이 있거니와 여기 이 어래무마을의 생산, 생활, 혼례, 상사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잘 처리해가고있다. 하기에 그는 온마을 사람들한테 신용이 있거니와 애대를 받고있는것이다. 게다가 금상첨화(錦上添花)라 가싼다에게 그같이 고운딸까지 생겼으니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소녀는 이름이 츄얼이였는데 이제 나이가 16살이였다.
막에서 본 미인소녀가 바로 그였고 자주대하게 되니 민호는 자연히 가슴이 설레여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방의 녀인이건만도 왜서 이럴가?.... 눈치를 보니 니항군청년역시 그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꼴이였다. 저치도 내처럼 반했어.
어래무에 온지 어느덧 한주일이 되어온다. 그지간 민호는 쇠잔한 몸을 춰세웠건만 니항군청년은 여전히 맥골을 쓰지 못했다. 날고기를 너무먹고 탈이 난거다. 죽기가 설운것이 아니라 아픈것이 설쿠나. 어떻게 할까? 민호는 걱정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한다. 가만있자, 쇠고기에 체한데는 까마귀종이잎이나 아가위를 달이여 사탕에 타먹으면 되고, 돼지고기에 체한데는 꿀이나 엿이나 사탕을 많이 먹고 물고기에 체한데는?.... 젠장!
민호는 중이 념불외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리가가 그만 선문도 없이 주방건너의 동쪽방문을 뚝 떼고 들어갔다.
주인마누라와 딸이 바느질을 하고있다가 젊은이가 문득 들어오니 몹시 의아쩍어한다. 아뿔사! 내가 이거.... 민호는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얼굴이 뜨거원나길래 돌아섰다. 그랬다가 이대로 나가버리면 공연히 오해만살것아서 그는 몸을 다시돌렸다. 그리고는 자기가 여기로 들어오게 된 사유를 말했다. 어리무던하게 생긴 주인마누라는 혀를 차면서 그렇다면 언녕말할것이지 왜서 인제야 찾아오느냐고 민호를 가볍게 나무리고는 머리수건에다 꽃수를 놓고있는 딸을 보면서 시켰다.
《츄얼아 네가 얼씨덩나가 쑥갓이나 미나리를 캐오거라. 든든치못한 손님이 날고기에 몹시나 체한모양이구나.》
《쑥갓도 미나리도 없으면 어떻게 할가요, 어머니?》
《애두원. 깻잎이라도 뜯어와야지. 그걸 무쳐먹어도 될거아녀.》
《그러지요, 어머니.》
츄얼이는 일손을 얼른놓고 일어섰다.
그녀는 주방에서 싸리광주리르 찾아 손에 들자 민호를 향해 살짝 웃음을 날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저 계집애가 날보고 웃는구나! 왜 저렇게.... 민호는 달콤한 환상에 잡기면서 가슴이 달떳다.
니항군청년은 주인마누라가 딸이 캐온 미나리를 짓찧어서 낸 즙을 한종지먹고 체증이 뚝 떨어졌다.
어느새 두주일이 지나갔다. 이제는 가야한다. 한데 가면 어디로 간단말인가? 민호도 니항군청년도 목적지를 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젠 몸도 다 회복되였는데 남의 집에 그냥 엎어져 페를 끼쳐서야 되는가. 속담에 <가는 나그네는 뒷꼭지예쁘다> 했는데. 아무데건 동포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자. 찾아내야한다. 둘은 이같이 마음먹고 주인집과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그랬더니 가싼다 유만진이 아니 이 사람아 부대가 없어졌다면서 가기는 어디로 간다구 그러는가. 좀 더 눌러있으면서 형세를 보고 떠나세 하면서 극구 말리였다. 하여 둘은 못이기는 척 주저앉고말았다.
조상때부터 어업과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세상 희소의 이 민족은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주식으로 하면서 그들만이 창조해 낼 수 있는 독특한 식문화를 갖고 있었다.
유만진이 말했다.
《우리 집에 낟알은 귀합니다만은 그대신 고기야 흔하지. 겨울철에 절인게 아직도 있구 말린것도 있지. 강에 고기가 쌔쿠버렸으니 제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손꿉놀리면야 절대루 굶어죽을 념려는 없는거야. 고기로는 라부타하를 해먹어도 되고 소우룬을 해먹어도 되고 타스하를 해먹어도 되고.... 그거야 제맘대루지. 안그런가 손님. 겨울에는 쑤라카가 그래두 좋지. 먹어봤는가?... 그럴거야, 모를거야. 임자들이야 우리완 습관이 다르니까. 허지만두 괜찮아. 첨엔 입에 맞잖을 수 있겠지만 자주먹어나면 습관이 될거네.》
이 말이 너무나 고마워서 민호는 코허리가 시큼해났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담아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우린 벌써 습관이 된걸요. 라부타하나차을사차는 우리네 조선사람도 실은 잘먹습니다.》
중국말은 답벼락인 니항군청년이 벙어리가 되어 두눈을 꺼무럭거리면서 낯색만 살피고 있었다. 그도 초면인 이 허저인 가싼다의 사심없는 후더운 접대에 감격하고 있었다.
............................................................................................................................. *라부타하ㅡ소금, 초, 고추기름을 넣어 버므려 먹는 물고기생회. *소우룬ㅡ지져먹는 것. *타스하ㅡ실을 내여 먹는 것.
*쑤라카ㅡ겨울에 언고기를 칼로 저미거나 대패로 얇게 밀어 소금에 찍어 먹는 것. *차얼차ㅡ말리운 고기.
허저인들은 잡자리를 몹시 주의해서 가른다. 무릇 유만진이네같이 가법이 엄하고 부유해서 삼간집을 짓고 사는 정도면 로인은 서쪽방에, 젊은이는 동쪽방에서 잔다. 그리고 이 집같이 한칸에 남북구들이라면 남쪽구들에서 부모들이 자고 북쪽구들에서는 자식들
이 자는것이다. 허저인들은 서쪽방을 신성하게 여긴다. 그래서 조상
의 신위같은건 서쪽방에 모시거니와 귀빈이 와도 거기에다 밤을 재우는것이다.
아버지가 손님을 모셔오게 되자 장가간 큰아들 나쟈가 처자를 데리고 시르맨커로 갔다. 그리고 그들 내외가 있었던 동쪽방의 남쪽구들은 서쪽방을 내놓고 건너간 늙은 내외가 차지하고 북쪽구들은 둘째아들 린화가 차지한것이다. 서쪽방의 구들하나는 비우면서까지 이 한집의 식솔들은 이같이 자리변동을 했다.
7월하순의 어느날 의란(依蘭)에 가 공부하고있는 가싼다의 셋째아들 청량이가 방학이 되어 집에 왔다. 그는 오면서 짐을 두짝 가져왔는데 하나는 좁쌀이 들어있는 새로 짠 나무상자고 다른 하나는 의류외에 사기그릇과 냄비가 들어있는, 꽃무늬도안을 놓아 만든 봇나무껍질상자였다. (그 상자는 나쟈의 제작품이였다.) 유씨네 집에는 이젠 이러한것들이 그리 희구하지 않았지만 내내 이런 오지에만 묻혀 살면서 세상물정에는 까막눈이나답지 않은 다른 집들에서는 얻기 힘든 진품이였다. 특히 값비싼 경덕진의 사기그릇과 알류미늄제의 냄비가 그러했다.
먼 외지에 나가 공부하는 청량이가 왔다니 시르맨커에 가있던 며느리도 이제 네 살난 아들을 데리고 제 남편을 묻어왔다. 그녀는 옷섶이 무릎아래로 내려오고 허리품이 좀 솔며 아래폭이 넓고 소매는 짜르고 윗목이 있어도 목달개는 없는 자색의, 그네들의 말로는 우티팅이라 하는 만족식의 치포를 입고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발에다는 바닥이 두툼한 배모양의 신을 신었다. 그녀의 두가닥으로 땋아 뒤로 쪽진 동그란 머리에는 하얀 고기뼈비녀가 꽂혀있고 귀에는 은제의 우야칸이 걸려있었으며 두 팔목에는 시더리가 끼여있었다. 바람과 볕에 그슬리긴했어도 아직은 젊고 고운 얼굴에 늘 웃음을 담고있는 그녀는 그 나이의 여느 각시들과는 옷매무시건 단장이건 같지 않게 우아하니 일견하여 잘사는 집의 며느리가 다르긴 달랐던것이다.
허저인들은 옛날부터 물고기가죽과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지어는 이불까지 만들어 덮었다. 그래서 어피부(漁皮部)라는 이름까지 갖고있는건데 가싼다네는 외지에 나가 공부하는 아들이 있어서 더구나 제집사람을 그같이 단장시킬 수 있는모양이다.
식솔이 다 모이자 백면서생티가 나는 청량이가 저들의 풍속에 따라 먼저 부모앞에 꿇어 엎디여 절을 올리고 이어서 큰형과 아주머니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들은 절을 받고나서 그의 볼에다 가볍게 입을 맞추어 그가 방학에 집으로 돌아온것을 환영했다.
유만진이 청량이더러 집에 손님으로 들어 온 두 조선젊은이한테도 인사를 하라했다.
《자, 우린 이렇게 하지.》
청량이가 초면인사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하는것을 보자 민호가 시원스레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청량이는 얼결에 대방과 악수를 나누고 나서 마치 외성인을 만나기라도한 것 같이 눈이 동그래졌다. 모색이건 옷맵시건 아주 다른 이켠 두 청년이 그로서는 난생처음보는 종족이니까 그럴 수 밖에. 하지만 다행히 민호가 중국말을 좀 아는터로 그런대로 의사소통이 되어 그와 청량이는 이날저녁으로 일면이 여구하게 되었다.
청량이가 입을 열어 제 민족이 걸어온 력사이야기의 부리를 땃다.
《우리 허저인은 보다싶히 자기의 민족어가 있긴해도 문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무를 깎거나 아니면 가죽을 오리고 풀을 꽂아 어떤 일들을 기억해두군했지요.》
아니 아직 제 민족문자도 없었단말인가! 민호는 적이 놀랬다.
사실 그러했다. 허저인들은 긴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내내 흑룡강, 송화강, 우쓰리강연안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이 세줄기의 대하가 흐르고 있는 광활한 지역에서 살고있는 고대주민을 선진(先
秦)때에는 숙신(肅愼) 혹은 직신(稷愼)이라 불렀고 한위(漢魏)때는 ...............................................................................................................................
*시르맨커ㅡ허저인식의 반토굴의 고기막. *우야칸ㅡ구걸이. *시더리ㅡ옥팔찌..
*의란(依蘭)은 삼성(三姓)이라고도 하는데 금조(金朝)이래 줄곳 북만의 송화강연안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읍루(挹婁)라 불렀으며 남북조(南北朝)때에는 물길(勿吉)이라 불렀고 수당(隨唐)때에 이르러서는 말갈(靺鞨)이라했다. 말갈은 7부로 나뉘였는데 그 중 제일 큰 두 개의 부중에서 속말부(粟末部)의 우두머리 대조영(大祚榮)은 발해를 일으키고 흑수부(黑水部)는 녀진국(女眞國)을 세웠던것이다. 여기서 흑수부가 바로 허저족의 원조(遠祖)가 되는것이다. 허저인은 청나라때에 정부의 강압과 유인책에 배겨내지 못하고 적잖게 동화되여 만족 혹은 한족으로 되어버리기도 한 것이다.
참으로 기구한 민족이로구나! 민호는 어쩐지 눈물나도록 서글퍼지면서 장탄식이 나갔다. 지금 일본이 조선을 먹었거니와 이 만주까지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이것이 남의 력사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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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하얼빈)= 김송죽의 두번째 장편소설'관동의 밤' 이 민족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688 쪽에 87만자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은 력사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소설은 “9.18”사변후 항일의용군의 항일과 토비들의 항일을 다루고있는데 민족청년 정민호를 주인공으로 전기적인 색채가 농후하고 스토리가 굴곡적이다. 특히 허저족의 풍속과 토비들의 생활은 허구가 아닌 사실 그대로 묘사하여 타민족 문화를 접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특정력사의 갈피속에 묻혀있는 우리 민족의 반일, 항일 력사를 다른 측면에서 알수 있다.
/최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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