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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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3장 (6)
2015년 01월 15일 11시 44분  조회:2577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별동대의 곽털보는 졸개 12명을 거느리고 얼랑산서쪽 곰천골에 와서 추위에 얼고 굳어버린,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체들을 부랴부랴 날라다 한군데 모아놓고는 그곳을 황망히 떠나버렸다.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누가 쐈는지도 모를 총알이 뒤통수를 갈겨 자기도 눈깜짝새에 그같이 황천객이 되어 나딩굴가봐 겁도났던것이다.

   얼랑산을 썩 벗어나 류므허즈가 보이게 되자 한자가 오금을 쉬우느라 걸음을 늦추면서 단김을 내뿜었다.

   <<에라, 명령이고 나발이고 모르겠다. 간대루야 귀신이 여기까지 쫓아오겠냐.>>

   그러자 다른 한자도 단숨을 내뿜고는 헐헐거리면서 두덜거렸다.

   <<개코같이 이눔의 일을  왜 딱 나더러 하라는거야?>>

   <<저 빌어먹을 털부숭이가 손가네한테 잘 보이려구 임무를 자진해 맡고는 남까지 이렇게 고생시키는거지 뭐야.>>

   하고 처음자가 키질하니 이쪽녀석은 음성을 한결 돋우어서 두덜댔다.

   <<젠장! 급행군 안시키면 숨이나 덜차지. 꼴을 보니 다 된 판이야, 힝!>>

   그런데 줄창 앞에서 걷고있던 곽털보가 이 말을 잡아듣고 문득 멈춰서면서 눈알울 굴였다.

   <<어느 아갈머리에서 그런 고약한 말이 나오냐?>>

   자기의 실언이 상관을 격노시켰음을 깨달은 우둔한 졸개는 개털모자를 벗어 땀난 얼굴을 닦으면서 찍소리 못했다.

   <<어느녀석이 함부로 입정을 놀렸느냐말이다, 엉?>>

   털보의 상판에서 엄하고 무서운 기운이 펄펄 일었기에 처음에 말을 끄집어냈던 자가 겁을 집어먹었다. 곽털보는 그 모양을 보고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네가 인자방금 뭐라고 씨버렸냐, 엉?>>

   <<저, 그런게 아니라 나는 저... 굴대장군패의 녀석들이 죽은것까지 우리가 건사해야 할 임무가 뭔가구했습지요. 그래서 이렇게 숨이 가쁜 행군을 하는구나하고서..... >>

   <<닥쳐라!>>

   곽털보는 가래짝같은 손을 짝 벌리더니 그자의 언뺨을 올려붙였다.

   <<시러베자식같은 자식. 전혀 눈치도 없단말이야. 이제 리부관이나 손대장앞에서 그렇게 눈치없는 소리를 쳤다가는 네녀석의 혼줄을 뽑아놓고말테다.>>

   그 하졸은 상관의 포악한 성미를 잘 아는지라 그저 허리만 굽실거렸다,

   (네놈들은 아무 때건 움쭉못하게 만들어놔야 해.)

   곽털보는 자기를 자주 겯눈질해보는 졸개들에게 어서 자기를 따라 계속 급행군이나 하라고 강요했다. 그통에 그들은 유므허즈로 빨리는 돌아왔다.

   난처한 국면을 돌려세울 방도를 골똘히 찾고있었던 리경광은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곽털보를 수고했다면서 자기곁으로 조용히 불렀다.

   <<그래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네 시체들을 제대로 다 찾기나했는가?>>

   <<딱 서른여섯갭니다. 거짓말같으면 다른 사람하고 물어보시오. 난 그것들을 찾느라고 정말 애먹었다니따.>>

   <<그러니까 우리네 인원중엔 도망치게라곤 없고 서른여섯 시체가  몽땅있더라 그 말이지?>>

   <<저 그건.... >>

   임무수행이 거칠었던 곽털보는 순간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멍해졌다가 노적부리면서 말했다.

   <<부관님은 저더러 시체 서른여섯개를 어떻게 하든지 꼭 찾아내라고 하잔않았습니까. 서른여섯개나말입지요. 틀리게 보고하면 개아들놈입네다. 믿지 못하겠으면 다른사람한테 물어보라니까요.>>

   (자식이 미런한줄 알았더니 배주머니에 의송이 들었구나.)

   리경광은 속으로 웃으고나서 고개를 번쩍 들어 눈을 꺼무럭거리고있는 곽털보를 다시보았다. 달아난 놈이 없을수 없었다. 그런데 이 곽털보는 굴대장군과의 접전에서 없어진 자들의 시체 36개를 찾아내라했더니 그 수자만큼 아무시체나 급급히 찾아놓고는 무서워서 줄행랑을 놓아 거기를 떠나왔음이 뻔했다. 그랬으면 또 어쨌단말인가. 이제 더 캐고 물어봐야 별수없는 일이였다. 살아서 뺑소니친 놈이야 다시끌어올 재간이 없잖은가.

   <<됐어, 수고했네.>>.

   리경광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고나서 그와함께 갔다온 졸개들더러 쓸데없이 마을을 싸지르지 말고 푹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그자리로 곧추 손창유를 찾아갔다. 주위에 살아남은 60여명의 잔병이나마 다시는 더 줄지 않게끔 할 대책을 시급히 연구해야하거니와 맞붙어 싸울 때 이쪽에 붙잡히운 굴대장군의 부하녀석을 처리할 일도 연구해야 했던것이다.

   손창유는 마침 제아들을 비롯한 몇사람과 포로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문제를 내놓고 론의하고있는 중이였는데 죽여러리자는 주장과 살려주자는 주장이 맞서고있었다.

   <<그래 임자의 생각에는 어쨌으면 좋을것 같은가?>>

   손창유는 리경광을 보자 그의 의향부터 물었는데 너의 태도에 따라 가결을 짓겠다는 심산인것 같았다.

   <<우선 들어봅시다. 그자들을 죽이자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고 리경광이 좌중을 돌아보며 반문비슷이 하자 팔장을 끼고 앉아있던 손자량이 눈두덩을 푸들거리면서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간단하오. 지금 나의 머리는 <모욕에 복수하라!> 호소하고있단말이요. 나는 그놈들을 아예 싹 다 없애치우게 옳다고 보오. >>

   도저히 묵색일수 없는 분풀이를 해야겠다는 주장이였다.

   <<단지 그 목적뿐이라면야 다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

   리경광이 이렇게 말했더니 참을성없는 손자량이 광란에 모대길 때 모양으로 자리를 차고 벌컥일어났다. 그리고는 옆구리에 매달려 거들거리는 칼집으로 제 허벅다리를 때렸다.

   <<내칼이 울고있소. 분해서 울고있단말이요. 공산군놈들한테 집을 빼앗기우고 나앉은것만도 통분한데 제 편에서 달려들어 우릴 이 꼴루 만들어놓다니 원. 이보담 더 큰 모욕이 어디있소?>>

   (그래서 포로를 죽여치우겠다는말인가. 이 얼마나 단순하고 우매한 인간인가.)

   리경광의 입가에는 조소를 머금을 때면 의례 잡히군하는 잔 파문이 일었다. 그까짓 하치않은 포로를 놓고 아글타글 다투고십지는 않았자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들보담도 더 포악한 손창유가 포로를 죽이지 말자고 주장하는데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하여 그는 자기를 손자량일방과 대립되는 위치에다 놓고 견결히 나왔다.

   <<손부대장은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 바라오. 파리새끼만도 못한 그자들을 없애버려 우리한테 그래 무슨 리득이 있겠소?>>

   <<리득이야 없지.>>

   손자량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다면 리득이 없는 짓을 왜 하려고 하오? 그렇게 해서 좋을가?>>

   리경광은 입가에 다시한번 남을 조소할때면 생기군하는 잔주름이 일었다.

   <<우리는 난경에 처할수록 랭정하게 사고할줄을 알아서 불행을 덕행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보오.>>

   손자랑은 자기를 깔보고하는 말같아 코방귀를 킁 하고 뀌였으나 자기로서는 그의 총명을 따를수 없음을 알고있었기에 치미는 울화를 꾹 참는수밖에 없었다.

   <<리부관은 그래 그놈들을 살려서 뭣에 써먹자고 그러우?>>

   <<나는 그들을 제곳에 돌려보내서 우리 서로가 대단한 실수를 하고있다는걸 굴대장군께 알리자는거요.>>

   <<옳으이! 그래야지. 굴대가 모르니 저렇게 인사불성으로 사나와지고있는게 아닌가.>>

   점도록 사색에 잠겨있던 손창유는 머리를 끄덕여 리경광의 주장을 찬동했다.

   리경광은 두령의 춰줌을 받자 어깨를 추슬리면서 자기의 주장을 피력했다.

   <<우리에겐 시급히 해야 할 일들이 많고도많습니다. 그러니 제편끼리 싸우는 머저리짓은 당장 중지해야 합니다. 나는 곽기무를 시켜 시체들을 수습하게 했지요. 그랬더니 우리 편 실종자 서른여섯의 시체를 모두 찾았담니다. 다시말해서 이건 우리의 대오엔 저쪽처럼 비렬한 도주자가 없음을 증명하지요. 지금 우리는 남은 인원이 60여명밖에 안되지만 이건 실로 믿을만한 존재들이라 봅니다. 그래서 역경속에서도 희망은 보이는거고 따라서 힘도 나는겁니다. 우리는 이 정수분자들의 대오를 보존해야하거니와 시급히 대책을 세워 대오를 확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능히 짧은시일내에 난국을 돌려세워 동산재기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지를 않고 우리가 다시금 무턱대고 손가장을 탈환하려 든다면, 그런다면 그것이야말로 뱀이 참대통에 기여들어가 스스로 죽을길을 찾음과 마찬가질겁니다. 그러니 가장 명지한 처사는 그래도 의연히 그곳에다 사람을 들여보내서 암암리에 우리의 대오를 조직해놓는 것이지요. 이런일들을 해놓아야만 우리는 실속이 있게 됩니다.>>

   <<옳아 고견일세!>>  

   늙은 손창유는 자기도 시종 그 생각이라면서  정세를 민감하게 판단하고있는 부관의 모략에 속이 뜨끔하도록 감탄했다. 사실이 그러한바 지금의 이꼴을 해가지고는 호룡산으로 들어갈수도 없거니와 더욱이는 손가장을 탈환한다는건 대부등에 겯낫질하듯이 어림도없는 짓이였던 것이다.

   손창유는 이윽토록 침묵에 잠겼다가 정중한 어조로 행동방향을 제시했다.

   <<첫째는 못난 굴대녀석이 무모한 짓을 다시하기전에 호룡산으로 돌려보내야하는거고 둘째는 믿을만한 최마름이 있으니까 사람을 마을에 들여보내여 련계를 달아야한다. 그리고 셋째는 우리들의 력량을 시급히 춰세우기 위해서 당장 확군하는데 손을 써야 한다. 여기 류므허즈의 남정들을 끌어넣어야하거니와 북림촌과 만보툰의 젊은놈들까지도 그 어떤 방법을 써서든 끌어넣어  한주일내에 우리 별동대를 적어도 5백여명은 되게끔 만들어야 할것이다.>>

   이에 반대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하는게 옳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였다.

   <<그래 너는 다른 의견이 없느냐?>>

   하고 손창유가 아들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는게 좋다면야 그렇게 합지요.>>

   손자량은 항변할수 없는 사실앞에서 순종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여겼전 것이다.

   손창유는 포로들가운데서 우두머리 녀석을 끌어 오라고 지시했다. 불을 적게때서 3일간이나 헛간이나답지 않은 추은집에 갇혀있었던 포로들의 처지는 실로 말이 아니였다. 세상에 제일질긴것이 과연 사람의 목숨인가싶었다. 포로들은 갇힌뒤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먹다보니 배가죽이 사등뼈에 달라붙고 손발마저 얼어들어 말이아니였다. 감때사나운 별동대녀석이 그들중에서 우두머리라 짐작되는 자를 총탁으로 밀어 잡아갔다.

   이 장아무개라 하는 포로는 손자량이 별동대를 휘동하여 마치도 굶주린 승냥이같이 남림촌에 달려드는바람에 하마터면 죽을번했다. 그때 그는 제 동료와 함께 뉘집에서 술을 퍼먹다가 별동대가 함성을 지르며 즉쳐들어온다니 <<오금아 날살려라>> 뛰였는데 산발탄에 동료가 맞아 죽고 그는 털모자만 잃고 겨우살아났던 것이다.

   별동대의 돌연습격을 받아 마을밖으로 쫓겨난 불대장군은 반나마 흩어진 저의 랑아영졸병들을 겨우모여놓고 펄펄 뛰면서 손창유를 의리도 모르는 악한이라느니 흉한이라느니 씨종자도 못남겨둘 인간망종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된욕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만보툰에 들어가 숨을 돌렸다가 급시에 남림촌을 들이쳐 일격에 별동대를 없애버리려했다. 그러나 그 뜻은 이루기 어려운것이였다.  별동대는 마을에서 퇴각하여 얼랑산까지 가서는 바로 곰천골에서 계속 뒤를 쫓는 랑아영을 반격했던 것이다. 별동대는 적잖은 손실을 보았다.  랑아영도 마찬가지였다. 굴대장군은 마침내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저의 졸병들을 미처 그러모으지도 못한채 달아나버렸다. 이 장아무개는 그통에 대오를 잃고 갈팡질팡하다가 나중에는 낮선고장이라 방향마저잃고 헤맸다. 그러다가 겨우 한무리의 인간들이 집체로 움직이는것을 보고 쫓아갔는데 아뿔사, 제편이 아니였다.

   <<야 이거,어디서 나진 똥파리냐!>>

   하면서 별동대녀석들은 좋아라고 그를 납작 붙잡았던 것이다. ... 포로는 어느 한 큰 집의 동쪽방에 먼저 끌려들어갔다.

   그 방안에는 두젊은 장교가 앉아있었다. 손자량과 리경광이였다. 심술궂은 뱁새눈을 가슴츠레뜨고 보는 손자량의 차디찬 랭소에 부딧치자 포로는 흠칫 몸을 떨었다. 계다가 손자량이 옆구리에 차고있는 칼까지 보니 가슴이 막 떨려났다.

   <<흐흐흐!>>

   손자량은 야비한 웃음을 짓고나서 입을 열었다.

   <<자식이 꼴보기좋다. 꼭마치 뜨물독에서 끄집어낸 쥐새끼같구나. 네놈은 성이 뭐냐?>>

   <<장, 장가올시다 나리님!>>

   포로는 자기가 받은 모욕과 수치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리경광이 턱짓으로 부하더러 포로를 건너방으로 데려가라했다.

   포로가 나타나자  얼굴이 기름한 70대의 늙은이가 <<에헴>>하고 침묵을 깨쳤다.

   <<머리치켜들고 나를 보거라. 내가 바로 너희들이 이름을 들어 알고있는 손창유네라.>>

   손창유의 이러한 자아소개에 포로는 정신이 펄쩍들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보았다.

   (아, 별동대 손대장이 바로 너로구나! )

   이 늙다리악마가 자기를 세워놓고 생간이라도 빼먹을것 같은 공포에 포로는 온몸이 전율했다.

   한편 별동대의 거두들은 포로의 몸에서 눈길을 되거두면서 술렁댔다.

   <<너는 량아영에서 무슨급을 했느냐?>>

   하고 손창유가 질문했다. 포로는 떠는 음성으로 겨우 대답했다.

   <<저, 저는 아무런 급도 추지 못한 졸병이외다.>>

   장삼이 맥없이 비청거리는 그를 땅바닥에다 눌러앉혔다.

   식은땀을 쫙 흘린 포로는 머리를 치켜들고 다시 보는 순간 화뜰 놀랬다.

   (아니, 이건 누구냐?.... 상판이 객주집 칼도마 같이 생긴..., 네녀석은 호룡산에 왔다가 달아나버렸다던 그 장감이란 녀석이 아니냐. 넌 나를 모르지만 난 네가 어떤자란걸 다 알고있다. 너도 예전엔 굴대장군의 막역지우였다면서....)

   앞이가 다 빠져 입을 벌리면 어금이만 보이는 늙수그레한 자가 묵묵히 가늠하는 눈매로 포로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봐, 그 굴대녀석이 이제 살면 얼마나 희떱게 살리라고 의리를 팔고 량심을 버린다냐 엉?.... 세상에 별 못난자식 다 보겠다. 흐흐흐!...>>

   이 늙다리가 바로 살모사였고 그옆에는 별호가 부엉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입을 열어 야유하는 투로 굴대장군을 비난했다.

   이 네명의 옛 마적들은 얼마전까지만도 동사자였던 굴대장군에 대한 험담을 꺼내놓고 저들이 당한 참담한 봉변에서 쌓여진 원한과 피곤을 푸는것이였다.

   <<개도 원체 악한은 아니였소만 의리를 배반하니 글러먹었지.>>

   하고 손창유가 운을 떼자 장삼이 받아서 굴대장군을 비난했다.

   <<빈대도 코등이 있고 쪽제비도 나짝 있다구했거니 가슴 한구석에 손톱만한 량심이라도 있었으면 벼슬이고 뭐고 뿌리치고 나처럼 언녕 거기를 떠나왔을거야.>>

   그러자 부엉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잖구. 그게 말하자면 바로 조조의 밥을 먹고 류비의 일을 해준다는걸세.>>

   이번에는 살모사가 독아같은 어금이를 드러내고 웃더니 자못 진정스러운 태도로부터 굴대장군을 두둔했다.

   <<이제라도 자반성응 하고 돌아서면야 의연한 친구로 될수있지요. 그런데 멋모르고 처음부터 웃어른께 붙었으니 이건 누렁개가 교자에 오른 격이라 꼴보기가 참....>>

   <<굴대가  밑천이 어떤 사람인거야 내나 형제들이나 다 잘 아는게 아닌가.>>

   하고 손창유가 야유하면서 스산한 웃음을 짓더니 한마디 더 보탰다.

   <<저팔개가 아무리 거울들고 이리보고 저리보나 사람이야 아니지.>>

   이 말에 모두들 <<하하하>>하고 웃었다. 숨이 한줌만해서 듣고있던 포로는 야차같은 이네들의 속창을 도무지 알수 없어 눈을 퀭하니 뜨고 보기만했다. 그러니 손창유가 먼저 낯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입을 열었다.

   <<네 듣거라, 내나 굴대나 다가 감쪽같이 그놈의 공산군녀석들의 계책에 빠져 그만 죽기내기로 서로싸웠구나. 이거야말로 귀신이 알아도 곡할노릇아니고 뭐냐!>>

   포로가 무슨말인지를 몰라서 그냥 퀭하니 보니 손창유가 대방더러 깨단을 하라고 똑똑히 알려주었다.

   <<너희들이 바로 남림촌에 들었을적에 굴대한테 편지를 날려보낸건 우리 아니고 공산군이 한짓이네라. 우리들지간에 리간을 도발하느라고 꾸민 수작이였지. 그런줄도 모르고 우리는 머저리같이... 계책에 빠져 서로 생사별판하고 싸웠단말이다. 사사령이 원병을 보낸것이 옳고 굴대역시 호의를 갖고 찾아왔다는걸 나는 알고있다. 그런데 일은 이렇게 개코같이 돼버렸지 후!... 모두 우리가 불민했던탓이로다.>>

   그의 말은 무거운 한숨으로 끝났다. 미구에 리경광이 손자량과 함께 이쪽 방으로 건너오더니 포로를 향해말했다.

   <<우린 너히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러니 안심하고 밥을 먹은 후 인츰 떠나가거라. 이건 저 우리네 별동대 손대장님의 결책이거니 너는 가거든 너들 랑아영 영장께 꼭 전해야 한다. 실수를 안 후에도 제편끼리 그냥 싸운다면 이건 정말 망신스럽고도 당국에 죄를 짓는 행위로밖에 되지 않으니 용서받자 못할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랑아영의 장영장이 제 병사들을 시급히 철수해가지고 호룡산으로 되돌아가길 권념한다고 전하거라. 너 내 말을 알아들었냐? 어느놈이나 중도에서 뺑소닐 치지 말고 너희들은 다가 꼭 그리로 가야한다. 그러지 않을시에는 너희들 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도룩을 내고말테다!>>

   이건 무서운 명령이자 약속이였다. 하지만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기에 포로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려 감사함을 거듭 포시했다. 그리고는 지어 비루먹은 개가 오라에서 벗어난것처럼 좋아서 히죽거리기까지 하다가 거기를 급히 나와버렸다.

   <<이제는 어떻게 한다?>>

   얼마안되여 리경광은 별동대의 림시지휘부를 나왔다.

   발밑에서 빠작거리는 눈길을 밟으면서 그는 혼자말로 중얼댔다.

   <<손가장을 탈환해보려고 지금 나시덤빈다는건 사실 천하없이 미련한 짓인거다. 암만생각해도 하루빨리 호룡산으로 들어가는게 상수야!>>

   리경광은 고집센 손창유를 겨우 설복시켜 돌려세웠다. 그리하여 한시름을 놓긴했어도 이제 확군을 해서 인마가 불으면 손자량이 그 턱을 믿고 제 아버지 모양으로 쓸데없는 용맹을 부릴가봐 슬그머니 걱정됐다. 실로 이 리경관만 없으면 별동대고 손가족이고 다 무슨 꼬락서니가 되겠는지 생각하면 그저 한심하기만했다.

   <<부관님!>>

   한 별동대원이 인사하는것을 받고서야 리경광은 자기가 사색에만 잠기다보니 길을 지나쳤다는것을 알고 돌아섰다. 그가 지금 찾아가는 집에는 곰천골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한 부상자가 있는 것이다. 본래는 두녀석이엿는데 한녀석은 마을에 업어와 몇시간안되여 죽어버렸다. 만일 그녀석까지 살아있었다면 더 큰 부담이였을것이다.

   <<저녀석까지 죽어버렸더면 차라리 좋았겠는데 꾸역꾸역 살아서... 에참, 시름거리야.>>

   이렇게 입속말로 되뇌이면서 문을 떼고 들어가보니 집안에 주인들은 없고 부상자만 혼자 누워있었다. 인기척이 나니 잠든것 같던 부상자가 여든에 이앓이하듯 맥없는 앓음소리를 냈다.

   (다른 녀석들은?... )

   부관이 친히 찾아왔음을 알자 낯이 대리석같이 하얗게 변한 부상자는 앓음소리를 더냈다.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달리고있는 그자가 불쌍했다. 하지만더는  방법없었다. 리경광은 서글픈 웃음을 거두고 가련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모질 아픈가? 조금만 더 견지하라구, 이제 약이 오면 제대로 치료해줄테니까.>>

   그것이 련민의 정을 보이는 따뜻한 위안의 말같아 부상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나와 귀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사내답지 못하게 울긴 왜 울어. 희망을 가지라구.>>

   <<그 말씀 너무도 감사해서유. 그래두 산개가 죽은 정승만은 낫지유.>>

   이건 자기는 죽지 말고 살고프다는 간곡한 념원이였다.

   리경광은 부상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몸을 오싹떨고나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하잖은가. 어떡허나 죽지를 말고 살아야 해.>>

   부상자의 창백한 얼굴에는 화기가 돌았다. 삶을 갈망하는 그의 속대사를 촉기빠르게 읽어본 리경광은 자기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눈을 쪼프리고 아느새보다가 몸을 돌쳐 나와버렸다. 그 서슬에 방안에서는 심란한 랭기가 회오리쳤다. 한순간이나마 야릇한 흥분이 스며들었던 부상자의 가슴에 이름못할 공포가 또다시 덥쳐들었다.

   좀 지나자 털보기 들어왔는데 자기는 리부관이 보내서 위안하러 왔노라고 부산을 떨었다. 그런데 어딘가 직심스럽지 못한 그의 거친 얼굴에서 불길한 흉조가 내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부상자는 앓음소리를 끙 내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내가 고약을 가져왔는데 지금 당장 상처에 바르자.>>

   곽털보는 부상자가 동의하건말건 머리에 감은 헝겊에 손을 댔냈다. 가래짝같은 손으로 머리를 사정없이 집어서 돌리는통에 부상자가 아프다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건말건 얼굴빛이 무섭게 변한 곽털보는 권총을 재빨리 꺼내여 그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펑!>>하는 소리와 하께 부상자는 령혼이 날아나 애처롭던 비명소리도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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