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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투준비하자, 동북인민 3천만
용감히 일어나 총칼을 잡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자
우리의 살길을 굳게 지키자!
에ㅡ 단결하자! 에ㅡ 무장하자!
에ㅡ 단결하자! 에ㅡ 무장하자!~
군민이 굳게 손을 잡아
새 동북을 세우자!
정찰병들은 박금록이 부는 하모니카소리에 맞춰 흥겹게 노래불렀다. 사람마다가 출전을 앞둔 격정속에서 무한한 투지와 용기를 뽐내는상싶었다. 사실 지금은 온 동북땅에 적아진영이 똑똑히 갈라지고 대결을 준비하는 긴장한 분위기가 형성되고있었다. 여기 북만에서는 중앙선견군 토비들을 숙청하기 위한 인민무장력량들이 각처에서 조직장성되고있었다. 조선족들이 집거해있는 지방들에서도 분분히 일떠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향토를 지키기 위해서, 새 동북을 세우기 위해서 한족들과 마찬가지로 자체의 무장대오를 건립했다는 기쁜 소식들이 전해왔다. 목단강 경위14퇀, 계서독립퇀, 호림독립퇀 3영, 녕안경위퇀 7련 등은 모두 조선족부대이고 상지, 수화, 오상 등지에는 강대한 조선족 무장부대인 제3지대가 건립되였다고 한다.
형제부대들의 장성과 성원에서 한결 승리의 신심을 얻은 아르금시인민무장부대는 새해의 전투서막을 열기 위한 최후준비단계에 들어섰다.
세사람의 정찰결과는 과단성있는 결심을 내리도록 독촉했다. 그러니 말발굽산 탄약고를 지키고있는 쏘련홍군에게 급보를 내여 그네들과 별동대의 전문 략탈대인 랑아련을 섬멸해버릴 련합작전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러자면 랑아련이 출동하는 시간을 똑똑히 알아내야 하고 그 시간을 탐지하자면 손가장 정찰을 해야 했다. 랑아련을 섬멸한 후에는 어떻게 할것인가? 뒤를 이어 계속하여 손가장을 들이쳐 그안의 별동대를 섬멸해버려야 한다.
박퇀장은 군용지도우에 수없이 그려진 점과 점사이에 이어진 선들을 손끝으로 긋듯이 하면서 온 정력을 기울이더니 이윽고 머리를 천천히 들며 묵중하게 입을 열었다.
<<마참모장, 우리가 말발굽산에서 랑아련을 복멸한 다음 그길로 손가장을 먼저 처야만 되는 원인은 첫째 적들의 주력이 없는 틈을 타서 진공함으로써 우리의 희생을 적게 내며 쉽사리 공략할수 있는 점이고 둘째 우리가 만약 천지주무장대를 먼저 답새긴다면 하나의 도주자라도 더 손가장으로 들어가 그곳의 력량을 보충하게 될것은 물론이고 손창유가 사문동에게 원병을 청하여 반격을 준비하게끔 틈을 주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다음번 작전에 불리하게 될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손가장을 공략한 다음 잔적을 추격하는데 목적을 두지 말고 일부 병력을 그곳에 남겨 권토중래하는 적을 격퇴시키는 한편 주력은 인차 되돌아서 일거에 천지주무장대를 깨끗이 섬멸해버려야 하겠소.>>
<<옳소! 과연 좋은 방안이요!>>
박퇀장이 자신성있게 한마디 더 보탰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지만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실수하지 말아야겠소. 계획대로만 되면 사문동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것이며 우리는 또 이것으로 새해의 전투서막을 멋지게 여는 것으로 될거란말이요.>>
<<하하하!... >>
마참모장은 넓은 어깨를 들썩이면서 통쾌하게 웃었다. 랑아련은 별동대의 손가락이고 별동대는 선견군의 팔이다. 박퇀장의 말처럼 중앙선견군토비를 숙청하는 전반 전역의 서막으로 될 이번 첫전투를 본때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전투를 잘하자면 지휘자의 정확한 작전계획이 있어야 한다. 이 정확한 작전계획은 정확한 결심으로부터 오고 정확한 결심은 정확한 판단으로부터 오며 정확한 판단은 주밀하고도 필요한 각종 정찰자료를 련관시켜 사색하는데로부터 오는게 아닌가. 과연 자신을 알고 상대편을 안다면 백번 싸워도 두려울것이 없었다.
<<마참모장은 손가장 정찰방법을 어떻게 생각하고있소?>>
박퇀장이 마주앉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적들이 경계를 심하게 하고있을것만은 사실이지만 갖은 방법을 다해서 뚫고들어가야 한다고 보오. 적련락병을 사로잡는 방법 같은건 되지도 않을게니... 모든 조건을 따져보아 나는 이번 정찰의 적임자는 바로 그곳에서 탈출해나온 두사람밖에 없다고 보오.>>
박퇀장은 자기 생각도 바로 그렇다는 뜻에서 빙그레 웃었다.
<<려홍이와 혜옥이를 들여보내잔말이지?>>
<<그렇소, 그들 둘이 속으로 뚫고들어가고 한사람이 밖에서 손을 잡아주는 3인조이면 이 일은 꼭 감당해내리라 믿소.>>
<<전련장은 어떻게 생각하고있소?>>
아까부터 훈훈해지고있는 방안화기에 차츰 녹고있는 성에낀 유리창을 보면서 마치도 그 용해현상에서 어떤 묘계를 찾아내려는 듯 사색을 모으고있던 정찰련 전련장은 자기를 부르는 박퇀장의 목소리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제 생각말입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습니다. 마참모장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헌데 려홍동무가 안으로 들어가는건?... >>
말끝은 의문을 달고 흐리마리해졌다.
자기 생각에도 려홍이 적임자이긴 한데 자기가 도망쳐나왔던 마을로 들어간다는것이 너무도 모험적인 행동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함께 연구해야했다. 하여 박퇀장은 려홍과 혜옥이를 불러오라고 했다. 퇀부통신원은 명령을 복창하고 나가 얼마안되여 두사람을 데려왔다.
려홍이는 항상 상급의 지시를 대기하고있었지만 이렇게 혜옥이와 함께 부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정찰병이 아닌 나는 왜 오라고 했을가?... )
혜옥이 역시 이상쩍어했다. 그는 휴식짬을 타서 춘자, 옥금이와 함께 리홍석이한테서 참회에 젖은 그 수치스러운 탈출기를 듣노라고 정찰병들속에 있다가 불리워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까지 부른 리유를 알수 없거니와 련인과 함께 질휘원들앞에 오니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려워 파겁못한 처녀들처럼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려홍이. 휴식을 좀 했소? ... 방금 어디에 있다가왔소?...>>
박퇀장이 언제나와 같이 첫마디로 묻군 하는 말이였다.
<<예, 휴식을 많이 했습니다. 홍석동무의 이야기를 듣다가 왔습니다. 그는 방금 부대를 떠났다가 혼빵났던 얘기를 하고있던 중이였습니다.>>
<<허허, 그치가 그래 얼빠진 짓을 했던걸 자기절루 뉘우치더란말이지?!>>
마참모장이 비상한 호기심이 생겼을 때처럼 걸걸하게 웃으면서 묻는 말이였다.
<<후회를 몹시 합디다. 다시는 부대를 떠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합디다.>>
모두들 웃었다.
<<어제밤에 저를 찾아와서 자아검토를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구 솔직합니다.>>
하고 전련장이 말결을 달았다.
리홍석의 탈출행위에 대해서 상급에서는 리해하고있었다. 나쁜의식에 지배되여 그렇게 한짓이 아니라는것만은 사실이다. 이번 도주사건은 그 본인은 물로이거니와 도주하면 출로가 없다는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하였다. 부대에는 사람이 많고 경력과 성분들이 아주 복잡했다. 그러므로 적과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는 과정에 어떠한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리홍식은 복수심에 들떠서 조급증을 이겨내지 못해 그같은 행위를 했지만 장차 엄혹한 시련속에서 의식적인 도주자나 반역자가 생겨나지 않으리라 담보하기는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므로 전사들의 사상각오를 높이는것이 선차적인 과업이라는것을 박퇀장은 잘 알고있었다.
<<려홍이, 나는 동무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걸 일고있소.>>
하고 그는 본문제로 들어가기 위해 허두를 이렇게 떼였다.
<<퇀장동지, 저는 지금 휴식보다 임무를 더 맡고싶습니다.>>
드팀없는 정찰병다운 기개였다.
박퇀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려홍의 어깨를 짚어 걸상에 눌러앉혔다. 헤옥이도 그와 나란히 장의자에 앉으면서 수집게 낯을 붉혔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던 마참모장의 머릿속에는 불쑥 <<담이 약한 저런 처녀가 그런 임무를 감당해낼만할가?>>하는 우려가 생겨났다. 그래서 그는 이마살을 찌푸리며 혜옥의 얼굴을 뜯어보더니 시탐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혜옥동무, 동무는 토비가 무섭지 않소?>>
<<예?!>>
혜옥이는 참모장의 질문이 되려 괴이쩍다는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내가 묻는건 혜옥이가 토비놈들이 무섭지 않은가 하는 말이요?>>
<<무슨 토비를말인가요?>>
혜옥이는 여전히 의아쩍은 눈을 그한테서 떼지 않은채 반문했다.
<<손가장 토비를말이요. 귀축같은 그 악당놈들을 다시보면 무섭지 않겠소?>>
하고 박퇀장이 마참모장의 말에 동을 달면서 대답이나 바라듯이 혜옥이를 건너다보았다. 혜옥이는 그제야 자기를 부른 원인이 무엇이겠는가를 눈치채고 가슴을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담차고 오돌진 말이 굴러나왔다.
<<무섭지 않습니다. 열 번, 백번을 다시 봐도 무섭지 않습니다. 지휘원동지, 저를 믿어주세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그는 들뛰는 가슴을 손으로 짚고 태도를 단정히 하려고 무등 애를 썼다.
<<이번 정찰의 특수성으로 보아 우리는 혜옥동무에게도 한가지 임무를 맡길가 하는데.... >>
박퇀장은 혜옥에게 믿음성에 찬 웃음을 보내며 조용하고 엄숙한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우리는 적의 실태를 알아내기 위해서 손가장정찰을 해야 하겠소. 지금당장말이요. 려홍동무, 동무는 사문동이 손창유더러 말발굽산을 돌연습격하여 총과 탄약을 장만하라고 한 지시문을 직접보았지. 지령서는 이미 손창유의 손에 들어갔을게고 손창유는 또 지금 사문동의 지령대로 행동하려할것만은 사실이요. 별동대에는 전문 략탈을 일삼는 랑아련이란게 있는데 그것이 어느날에 말발굽산으로 떠나는가 하는걸 알아내는것이 첫째고 둘째로는 손가장에 남게 될 적의 수자는 얼마며 중기와 경기는 각각 몇정, 박격포는 몇문, 방어배치는 어떠한가 하는것을 상세히 알아내야 하겠소. 이와함께 다른 한 특수한 임무가 또 있소.... 장차 동우의 처남으로 될 사람이 지금 별동대에서 련장노릇한다구했지? 그렇지요, 혜옥동무? 우리는 이번에 그가 총부리를 돌리게 해야하겠소.>>
<<아, 그를 기의하도록 하란 말씀입니까!?>>
려홍은 흥분과 기쁨이 뒤섞인 소리를 하며 벌떡 일어섰다.
<<그렇소, 이건 정말 중대한 문제요. 이 일만 제대로 되면 손가장을 쉽게 해방할수 있게 될것이요.... 우린 이젠 싸움을 해야겠소!>>
박퇀장은 흥분되지도 격동되지도 않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굳게 결의된 제휘자의 기백이 약동하고 있었다.
<<지휘원동지, 저를 보내주세요. 제가 가서 오빠를 투항시키겠어요. 총을 바치고 손들게 하겠습니다!... >>
하는 혜옥의 두눈에는 어느덧 이슬이 맺혔다.
<<허허, 총을 바치고 투항하게 만들겠단말이지? 아니야, 총을 바쳐서야 되겠소? 그대루 쥐고 돌아서서 토비들과 싸우도록 해야지!>>
마참모장은 껄껄 웃으면서 혜옥이한테로 한발짝 다가섰다.
<<혜옥동무, 그놈들이 경계가 삼엄할텐데 마을로 들어갈수 있겠소?>>
<<전... 전, 들어갈수 있다고 생각되여요. 제가 거기를 떠난지 인자 겨우 한달밖에 안되는거고 그놈들이 또 제가 어디로 간지도 모릅니다. 더욱히 제가 이 도시에 와서 군인이 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거예요. 마을사람들도 녀성이 군인질하는건 여태 못보았으니까요!... 저를 보내주세요. 저는 얼마든 꾸며댈수 있어요. 돌배골에 저희네 집안집이 있는데 전 거기에 피신갔다온다고 할텝니다.>>
혜옥의 말은 자신에 넘쳐흘렀다. 모두들 동감이 가서 머리를 끄덕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패장이 그 두사람과 함께 손가장정찰을 가기로 결정하고 퇀부에서는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오래도록 연구되였다.
려홍이와 혜옥이는 장패장과 함께 손가장으로 떠았다. 마침 남으로 나가는 군용렬차가 있었기에 세사람은 그것을 잡아타고 몇시간 달린후 어뜩새벽켠에 자그마한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 정거장은 려홍이 감옥에서 나와 마을로 돌아오면서 금성에 간 왕복룡이와 작별하던 고장이였다. 여기서 손가장이 서쪽으로 거리가 70여리였는데 그들은 40리를 걷고 돌배골이라는 자그마한 산간마을에 들렸다. 호수가 불과 4, 5십호밖에 안되는 이 마을에 조선족이라고는 드나노나 한호밖에 안되는데 혜옥이 말하던 종친이 바로 그 집이였다. 한족마을에서 너무도 오래 산탓인지 외모마저 거의 한족이나 답지 않은 집주인 남씨는 문득찾아들어간 불청객이 모두 동족의 사람들이고 더구나 친척이나답지 않게 지내는 남상백의 딸이 함께 왔기에 반가와는 했으나 이네들이 지금 손가장에서 오는 길이 아니라는것을 눈치채고는 적이 불안해하였다. 그 원인인즉 이 마을에 별동대앞잡이들이 있어서 공산군을 협조해주거나 붓좇기나하면 일가멸족을 당하리라는지 어쩐다는지 하는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악선전을 수태 했기때문이였다.
<<안되겠서.여기에 머물렀다간 괜히 남에게 앙화를 입힐수 있는건 더 말할것 없고 우리가 온것이 앞잡이들한테 들키기만 하면 정체가 미연에 탄로날 위험성이 있으니 곡 떠납시다.>>
하고 장패장이 말했다.
려홍이와 혜옥이는 아무런 의견도 없이 그의 명령에 좇았다. 세사람은 묵은 강낭떡을 얻어먹고 거기를 떠나 기억에 아리숭한 산길을 더듬으면서 손가장을 지척에 둔 북쪽산에 이르렀다. 다행이 날씨는 그리 맵싸지 않고 해덧마저 짧아 어느덧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장패장과 려홍이 남고 혜옥이 혼자 큰길로 해서 마을로 곧추 들어갔다.
보초병이 동대문을 지키고있었다. 말썽이 없을라고 그런지 마침 보초서고있는 사람이 정지항의 아들 정문환이여서 순조로왔다.
<<어이구! 어델 갔다더니만 인제야 오우?>>
하며 어려서부터 이웃에서 살며 친숙해진 그 한족청년은 진심으로 반가와했다.
<<그간 잘 있었어요?... 내가 돌아온걸 누구하고나 말말아요.>>
<<그렇게 하지, 내야언제 남이 못되게 굽데.>>
정문환은 사방을 두리번 살피다가 낮은 음성으로 급촉히 말했다.
<<남한테 들키지를 말고 얼시덩 집으루 가오. 요즘은 <통행증>을 내놔서 그게 없는 사람은 일률로 출입시키지 말고 붙들라 했소.>>
<<어마나! 그럼 어쩐다? 원, 별지랄다하네.>>
혜옥이는 기다란 목수건을 돌려쳐 얼굴 절반을 거의 숨기고 마을안으로 바삐들어갔다. 가뜩이나 널다란 마을안에서도 혜옥이네 집은 례배당이 있는 안쪽에 있어서 한참 걸어야했다. 이럭저럭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 집에 거의 이르고있는데 공교롭게도 마름녀편네와 정면으로 마주쳐 어쩌는수없게 되었다.
<<아이. 이게 누군가, 혜옥이 아니냐?... >>
눈썰미 좋다고 동네에서도 이름있는 그녀가 어느새 제꺽알아보고는 그간에 어디에 가 있었는가며 내흉떨었다.
혜옥이는 돌배골 집안집에 가 있다가 오는 길이라 응대하고는 총망히 집으로 들어갔다.
들은 느닷없이 찾아온 딸을 보자 일희일경 어쩔줄을 몰라했다.
<<허허, 네가 죽지 않고 돌아왔구나!>>
하고 아버지는 자기에게 인사하는 딸을 알아보고 이런 말부터했다.
<<아버지두, 사람의 목숨이 그리도 헐할가요. 호!>>
혜옥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그렁했다.
<<애야, 이 어미는 너를 보내놓고 머리까지 싹 다 셀번했구나. 어디보자, 고생 많이 했겠구나.>>
고생많으신 어머니는 딸을 끌고 거물거리는 등불가로 갔다. 기다랗게 꼬부러진 등재를 떨어버리고는 딸을 보고 또 보았다. 혜옥이는 생글 웃었다. 좀 밝아진 등불에 더 고와진 함박꽃같았다. 어머니는 생각밖으로 조금도 축가지 않은 딸의 몰골을 보고 또 보면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집안에는 량부모만 있을뿐 오빠도 없고 올케도 없었다. 모두 어디로 갔는가고 물으니 오빠는 요즘 집으로 오지 못하고 올케는 본가집에 가서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고있다는것이다. 오칠성령감은 별동대 마구간을 짓다가 지쳐누운 그대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있는데 아마 운명하고말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한다? 오빠를 속히 만나야겠는데... )
혜옥이가 이같이속 을 썩이고있는데 때마침 문이 덜컥 열리더니 오빠가 쑥 들어왔다. 길에서 우연히 마름마누라를 만나 그한테서 혜옥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막 달려왔다는것이다.
<<재가 글쎄 여적 돌배골 집안집에 가 숨어있었다는구나.>>
어머니가 아들이 들어오자 이렇게 알려주었다.
<<오빠, 거짓말이야. 난 거기서 오는길 아니예요!>>
혜옥이는 얼른 오빠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고나서 시름겨운듯 오빠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빠, 어쩌면 좋겠어? 토성밖에서 오빨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
<<누가 왔게?>>
천오는 펄쩍 놀래는 표정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느새 엿듣고 눈이 둥그래졌다.
<<좀 진정해요!>>
갑자기 팽팽해진 분위기에 혜옥이는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혹 누가 바깥에서 엿듣지나 않을가 하는 위구로 하여 온 신경을 귀에 모았다. 문을 살며시 열고 내다보니 바깥은 바람한점 없이 조용했다. 아무런 렴탐군도 없음을 확인하자 혜옥이는 오빠에게만 알리려고 웃방에 들어가 낮은 목소리로 긴하게 말했다.
<<오빠, 려홍이 왔어. 그리구 또 한 사람. 그분은 우리 부대 정팔패장이예요. 그분들은 오빨 만나자구 여기까지 왓어요. 토성밖까지 와서는 날 보고 먼저 들어가 알리라했어요. 열시전에 산신당에 와달라구요.... 오빠, 그렇게 할수있겠어요?>>
<<아ㅡ 그런 일이구나!>>
천오는 자기를 만나려는 그 용의를 집작하니 가슴이 뛰였다. 실로 용기와 대담성으로 과감해 행동할것을 강요하는 숨가쁜 시각이였다. 천오는 한순간 망설이다가 피뜩 정신을 차리고 지금 동문보초를 누가 서더냐고 물었다.
<<정문환이였어요!... 오빤 어쩔테야?>>
<<넌 까딱말고 집에 있거라. 내가 나가볼테다!>>
결심을 채택한 천오는 구들바닥에서 털모자를 제꺽 집어 다시 쓰고 몸을 홱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부모들은 웬 영문인지 몰라 또다시 두눈이 둥그래졌다.
<<무서워말아요. 오래잖아 손가네는 망하게 될거야.>>
<<애야, 쳐들어온다니?>>
전보다 다심스러워진 어머니가 이렇게 캐물었다.
<<엄만 아무 말도 말아요. 나하고 자꾸 묻지두 말구.>>
혜옥이는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양으로 정말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리고는 오빠가 마을밖으로 무사히 나갔다 들어올수 있겠는가에 가슴조였다.
동구밖 약 서너마장되는 곳에 산신당이 있었다. 언젠가 려홍이 야생말같이 날뛰는 붉은 말을 잡아타고 달려갔다 왔던 바로 그곳이다. 거기서 지금 장패장과 려홍은 오빠가 오기를 초조히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정문환은 직심이고 대바른 청년이였다. 언젠가 제 아버지가 리경광이한테 구타당한 일로해서 불만이 대단한 그다. 핍박에 못이겨 별동대에 들긴 했지만 손가네를 더없이 증오하는 그가 때마침 보초를 섰기에 혜옥이는 쉽사리 마을로 들어올수 있었는데 그사이에 혹시 보초가 갈리였으면 어떻게 할것인가?... 불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갈마들었다. 그러나 그는 의식적으로 불길한 생각을 떨어버리려고 무등애를 썼다.
(녀자란건 이래서 담약하다고 하는지 몰라. 하필이면 왜 방정맞은 생각만 할가?... 오빠는 담대하고 궁냥이 넓어서 일을 그르치진 않을거야...)
혜옥이는 오빠를 믿었다. 속은 판판 다르면서도 손가네한테 잘 보여서 별동대내부의 정황을 속속들이 알고있을테니 이제 토성밖으로 나가면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줄것임에 틀림없었다.
과연 그러했다. 련장인 천오는 별동대의 고위급도 아니건만 손가장안의 무기장비정황이며 지어는 구체적인 인원배비정황마저 알고있었다. 손창유는 워낙 군사를 모르면서도 야심만은 남보다 커서 도시를 공점하는데 앞장나설 궁리만하고 그 준비에만 급급하다보니 방어대책이라고는 전혀없었다. 게다가 우두머리들가운데 입이 가벼운자가 있어서 말발굽산무기고를 들이치는, 극비밀에 붙여야 될 략탈계획만저 벌써 밖으로 새나갔다. 천오는 별동대마관인 양운파한테서 들어서 이제 닷새후이면 랑아련이 출발하리라는것까지 알고 있었다.
천오는 토성밖에 나갔다가 한시간도 채 못되여 들어왔다. 그는 산신당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는 장패장과 려홍이를 만나 그네들이 알고저하는 적정을 자기가 알고있는것만큼 죄다 말해주었다. 장패장은 그 자리로 먼저 돌아갔고 려홍이는 천오와 함께 마을로 들어왔다. 천오를 도와서 별동대 2련을 기의시킬 구체적문제를 연구해야 하고 부대가 마을로 돌격해 들어오면 내외가 맞게 별동대를 협공할 작전계획도 세운 다음 손가장의 상세한 형세도를 그려가지고 가야 했기때문이였다. 보초보는 정문환에게 단단히 말했기에 려홍이 마을로 들어온것은 누구도 몰랐다.
천오네 부모들은 산사람 모양을 하고 찾아온 려홍이를 보니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것 처럼 몹시 반갑긴 해도 감히 입밖에 소리도 못내고 그저 눈치만보았다. 천오는 래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인차 나갔다.
려홍이는 웃방에 들어가자 모젤권총을 꺼내놓고 한시름던듯이 편히 앉았다. 이제부터는 여기에 꾹 박혀 은신하고 비밀적인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믿던바와같이 천오는 마치도 기다리기나 한것처럼 기의할것을 제꺽 접수했다. 하지만 이 일을 조금도 눈치 알리지 않게 준비하려면 최대의 조심성이 있어야 했다. 여기는 포악한 손창유가 도사리고있는 별동대본영이니말이다. 숨어있을 시간은 길수 없었다. 그런데 전투가 벌어지기전에 자기의 은신처가 폭로되면 어떻게 될것인가? 그땐 정말로 모든 것이 망태기로 되어버릴것이다. 2련은 기의하지 못하고말것이며 따라서 부대의 진공은 커다란 난경에 처할것이며 이 려홍 하나만 잡혀 죽는건몰라도 남씨네 온 가족이 멸종하고말리라. 이 일은 실로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혜옥이는 웃방에 있는, 이불을 포개여 올려놓은 의농마저 말끔히 비웠다. 만일의 경우 려홍이를 그속에다 숨겨놓자는 심산이였다.
(개같은 놈들이 만일 냄새맡고 집을 수색하려 접어들면 농짝 하나를 례절바르게 뒤지지 않고 가만놔둘가.)
려홍이는 미혼처의 고맙고도 어리석은 궁리를 보고 그저 소리럾이 웃기만했다.
이틑날아침에 바라지도 않은 마름이 슬그머니 찾아왔다. 마침 혜옥이 웃방에서 려홍의 밥그릇과 채그릇을 들고 나올때였는데 밖에서 발자취소리도 나는양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기면서 주인을 찾는것이였다. 문이 열릴리 만무했다. 겨울만 되면 추워서 나들지 않기로 하고 문을 안으로 걸어버린 것이다.
<<거 누군데 남이 봉한 문을 열려고 그러우? 들어오겠거든 정지문으로 들어오우!>>
남령감은 언잖은 소리로 크게 말했다.
<<이거 헴!... 난 닫아건걸 모르구서 웃방으로 들어가자구 했더랬지 헴!...>>
마름은 헛기침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최초시로구만. 어쩌누라 이렇게 일찍이... 올라오시우.>>
남로인은 상을 물리면서 찾아온 사람에게 주인인사를 차렸다. 동네에서는 한문개나 아는 최마름을 유식한 량반이라해서 최초시라 대접해 물러주었다.
최마름은 신을 벗고 닁큼 구들에 올라앉았다. 그가 온것이 민망스럽지만 하는수 없었다. 혜옥이는 례모있게 인사하고나서 담배통을 그의 앞에 가져다놓고 설거지하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허허, 혜옥이가 집에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왔더니 과연 보게 되는구료. 허허, 집떠나서는 고생이지. 아마 한달이 넘나봐, 그래 어델 갔댔더라우?>>
<<한달이우.>>
<<전 돌배골에 가있었어요.>>
혜옥이는 어머니의 대답 끝에 얼른 동을 달고는 은근히 조이는 심정으로 마름의 수상쩍은 거동을 살펴가며 그릇을 씻었다.
최마름은 그사이 퍽 어진 사람으로나 된것 같았다. 분잡하고 소란한 세월에 딸자식을 허궁 내놓고 부모들의 속인들 오죽태웠겠는가고 걱정까지 해주는 것이였다. 어머니는 딸자식 하나인데 부모들의 속을 얼마나 태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말이 맞수다. 우리 집 녀편넬 좀 보라니깐요. 딸을 시집보내놓고도 이런 걱정 저런 걱정 어찌나 다심한지 원. 혜옥아, 넌 부모님들이 너 때문에 얼마나 속을 많이 태웠는지 아냐? 네가 집을 훌 나간후에 동네서도 모두들 걱정했더란다. 이런 세월에 어디루 나다니냐고말이다. ... 애야, 너 그래 어떻게 됐느냐, 그 사람은 만나봤느냐? ...내 묻는건 려홍이를 말이다. 듣자니 그사람은 도시에 가 있다더구나. 넌 아마 그걸 알구서 집에서 떠났었겠지?>>
거짓은 언제나 보기 좋은 탈을 쓰는 법이다. 능청맞은 마름은 기름바른 혀바닥을 내두르며 어정쩡한 개수작을 피워댔다.
<<설사 거기에 가있다 해도 찾기는 막연해요. 한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판에서 어떻게 혜매겠어요. 전 원체 도시가 어디에 가 붙었는지도 모르고 길도 몰라서 그리로 찾아갈려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여적 집안집에 가서 소리없이 처박혀있다가 온거얘요.>>
혜옥이가 이렇게 말하자 어머니도 딸이 돌배골 집안집에가있다가 왔노라면서 불과 30리밖에 안되는 곳이건만 거기는 여기처럼 들볶지 않고 조용한 곳이라 한다면서 증언부언했다.
<<음, 허니까 먼델 간건 아니였구만. 그런걸 모두들... >>
하고 어물쩍거리면서 들어오자부터 은근히 귀를 도사렸던 그는 문틈으로 넌지시 웃방을 살폈다. 그러다가 혜옥이더러 정녕 려홍이를 다시 찾을 마음이 없거든 생각을 고쳐보라면서 전에 한번 있었던 혼사말을 꺼내놓는것이였다. 목단강에 조카벌되는 사내가 하나 있는데 장가를 보내야겠다는 것이다. 마름이 과연 혼사말을 왔을가?... 남령감은 딸이 면목도 내막도 모르는 사내한테는 절대 시집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구실을 달아 랭연히 거절하면서 이런 소리는 두 번다시 꺼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글세, 내 딸 갖고 내 맘대루 하자는데야 방법없지유. 천연연분이야 따루 있을거니 어디 그냥 기다려보게 하구려.>>
마름은 헛방치고보니 더 앉아있을 멋이 없는것 처럼 바당에 내려와 신을 주어신더니 능청스레 비죽이 웃고 나갔다.
<<엉큼한 두상짝! 별 시시한 소릴 다하네. 이제 다시오면 유들유들한 낯짝에다 이 가시물을 콱 씌워놓고말테다.>>
<<얘야, 그게 무슨 소리냐. 들으면 어쩔라구 쩌쩌... >>
어머니는 두덜대는 혜옥이를 이렇게 핀잔주며 등을 밀어 방안에 들여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름의 거동이 수상쩍기만 해서 남령감은 곰방대통을 뻑뻑 빨면서 궁리가 많았다.
<<네가 집에 그냥 있으면 친구들도 찾아올테니 사돈집에 가 올케와 같이 있으면서 며칠간 아예 오지 않는게 나음직하다.>>
<<그렇게 하는게 좋겠소. 그리구 나도 될수록 인츰 돌아가야겠소. 하루라도 더 있으면 어쨌든 위험하니까.>>
하며 려홍이도 남령감의 의견에 동의했다. 일은 순리롭게 되어갔다.
려홍이는 3일간 묵고 깊은 밤중에 토성을 넘어 두발로 걸어서 부대로 돌아갔다.
그가 가버린 뒤, 천오는 정문환이 장원에 불리워가 매를 맞고 갇혔다는것을 알았다. 통행증이 없는 혜옥이를 인정으로 마을에 들여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였다.
(그녀석들이 혜옥이 온건 어느새 알았을가? 그거참 괴상한 일이구나. 문환이 보초설 때 들어왔다는건 어떻게 알았을가?)
천오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생각을 굴리다가 마름마누라를 만났던 일을 상기하고 이건 틀림없이 그년의 조작이라고 짚었다.
(더러운 인간들, 고발을 해놓고 정탐하러까지 왔댔구나.)
천오는 마름부부의 행실을 생각할수록 격분해나서 리경광을 찾아갔다. 리경광은 천오의 좋지 않은 기색을 보자 찾아온 리유를 제꺽 알아맞혔다.
<<거기 앉소. 녀동생이 돌아왔다며?>>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리부관은 내 동생온걸 어떻게 알았소?>>
<<나야 무슨 일이든 알아내는수 있지.>>
<<그렇다면 혜옥이가 왜서 제 집에 맘놓고 있지도 못하고 나갔댔는가 하는것도 알았겠지?>>
하며 천오는 의견과 불만을 력연히 드러내여 캐고들었다.
<<나는 별동대에서 당당한 련장이요. 나도 리부관처럼 당국에 충성하리라 맹세했던 사람이란 말이야. 하건만 제집식솔도 제대로 건사못하는 가련한 신세로 되어야 한단말인가? 리부관께서 우리 집 일을 알았다면 왜 행실나쁜 털보녀석을 처벌하지 않았소? 그래 이 련장의 면목은 아무런 값도 없단말인가? 우리 집 혜옥이는 한달이나 외지에 나가 남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그랬는데도 뒷조사를 받아야 하니 이게 어디 분해서 살겠나말입니다!>>
<<이거 남련장, 공연히 노여워하는구만. 누가 뒤조사를 한다고 그러오?>>
<<마름은 왜 보냈더랬는가요?>>
<<그건 모르겠는걸... 난 그 사람을 보낸 일이 없소.>>
리경광은 이렇게 잘라 말하면서 고개까지 찌붓찌붓 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떠도는 야릇한 웃음은 그의 내흉한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리경광은 정문환이 매맞은것은 엄격히 준수해야 할 규률을 무시하고 통행증없는 사람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라면서 응당 받을 벌을 받고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태는 말인즉 그가 들여놓은 사람이 련장의 녀동생이 아니고 다른 어떤 사람이였다면 대문에다 목을 달아매여 다른 보초병들을 훈계했으리라는것이였다.
정문환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비밀을 지켰다. 하길래 제아무리 역어빠진 리경광이로서도 려홍이 마을에 왔다간것은 알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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