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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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3장 (2)
2015년 01월 08일 20시 07분  조회:2671  추천:1  작성자: 김송죽
 

2.

 

   <<야 이거 몸이 떨리는구나.>>

   <<내 털옷 벗어드릴가요?>>

   손자량은 걱정되고 안타깝고 분해서 떨고있는 제 애비를 성심껏 위안해주려했다.

   <<싫다, 벗지를 말거라. 너나 얼지 말아야지.>>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다. 말잔등에 간신히 몸을 얹고 다니는 늙은 손창유는 절망에 가위눌려 성난듯한 푸름푸름한 얼굴을 들어 멀리 뻗어간 눈덮힌 련산련봉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세상은 넓건만 왜 이리도 몸둘 곳 없느냐. 내가 여기를 주름잡듯 다니던 시절이 이젠 옛날로 돼버렸구나. 생각하면 분해서 원, 몸이 떨린다.>>

   <<아버지, 이 아들은 절망하지 않을텝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구멍 있겠지요. 두고보십시오, 백배로 천배로 복수할텝니다.>>

   <<반가운 말이다. 지금도 이 애비의 부탁이란 곧 그거로다. 헌데 애야, 너 리리성골안으로 들어가지를 말고 얼랑산으루 해서 가는게 어떻겠냐?>>

   <<건 왜서요?>.

   손자량은 말잔등에서 몸을 획 돌리더니 의아한 눈길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아버진 그래 호룡산으로 빨리 들어가지 않고 이눔이데서 그냥 쫓겨다니다가 마지막엔 나마저 싹 다 잃어버릴 작정인가요?>>

   손창유는 아들의 과격하고도 례모없는 말에 기분이 몹시 상했으나 참고 달래듯이 조용히 핀잔했다.

   <<넌 아직 경난을 더 당해보지 못해서 안되겠구나. 곰곰이 생각해보거라 내 생각엔 어쩐지 그리루 가는것도 위험할것 같다. 공산군은 내가 사사령을 찾아서 호룡산으로 가리라는걸 알고 썩 앞질러 길목을 막을게 아니냐. 그리구 또 실상 먼길을 우회해서 간다해도 우리가 이런 주제면 사사령이 반가와하겠냐말이다. ... 다 소용없네라. 오로지 자신한테 힘이 있어야 하네라. >>

   <<얼랑산으로 해서 가면 어디로 가나요?>>

   손자량은 잠시 궁리하는 기색이더니 또 이렇게 불쑥 물었다.

   <<남림촌에 들어가겠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내가 하는 말인즉 바로 그리루 가자는거다. 거기에 가서 숨을 돌리면서 좀 기다려보자. 사사령이 내가 극난에 빠진줄을 알면서 아무러면 원병을 보내지 않겠느냐.>>

   손창유의 추측은 옳았다. 사문동은 랑아영이란 이름까지 달아 원병을 보냈다. 랑아영 영장 굴대장군은 사문동의 명령대로 손창유를 구원하러 남림촌으로 왔다. 그로서도 옛상전이였던 손창유와 내내 반목하면서 원쑤로 지우기보다 화해하는편이 좋겠다고 여겨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도착한 첫날부터 사람을 여러패로 파견하여 향방없이 쏘다니는 손창유를 찾음으러써 그한테 자기는 옛정을 잊지 않고 구원하러 왔다는것을 알리려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백마를 탄 사람이 토성밑까지 와서 자기는 손창유의 련락병이라면서 편지 한통을 화살에 감아 쏴던지고는 달아나버렸던 것이다.

   (손창유가 왜 옛습관대로 이렇게 통지를 전하는걸가?)

   굴대장군은 심상치않은 기분으로 그것을 펼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거기에는 분개로 하여 머리카락마저 곤두서게하는 글발이 적혀져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니라 손창유가 아무리 곤궁에 빠졌다해도 배신자의 동정은 추로도 받을 의향이 없으니 그따위 너절한 생각은 걷어장지고 써썩 무러가라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만 실망한 굴대장군은 지금 호의도 몰라봐주니 어디 두고보자고 이를 갈면서 절치부심하는지경에 이른것이다.

   손창유는 형편이 이렇게 된줄은 전혀모르고 있었다. 북림촌에 들어갔던 그는 숨도 채 돌리기전에 손가장에 있는 인민무장부대가 추격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랬다. 그는 아들과 장삼의 완곡한 주장을 꺾을수 없어 가기쉬운 큰길은 버리고 리리성골짜기로 해서 호룡산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가면서 아무리궁리해봐도 이 꼴로는 창피해서 거기에는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더 고생하더라도 원군을 기다려서 한번 다시 손가장을 들이쳐보자고 구슬러보았는데 아들은 한사코 반대해나섰던 것이다.

   (이럴때는 젊은놈이 나덤벼치겠는데 이건 도리여 거꾸로 됐으니 원.)

   손창유는 속으로 아들을 원망했다. 그러나 아들은 또 아들로서의 속구구가 있었던 것이다. 무론 그도 창피스럽긴하지만 (이것은 사문동이 만들어준것이다.)  호룡산에 들어가 사문동과 담판해서 적어도 환개퇀의 병력을 얻은다음 손가장을 송두리째 뽑아버리자는 심산이였다.

   리경광이 말을 몰아 옆쪽에 와 붙더니 채찍쥔 손을 들어 앞에 보이는, 왼쪽 산아래에 웅크리고 앉은 집을 가리켰다.

   <<저걸 보오, 이런 유축에 인가가 있구만!>>

   좀 쉬였다가 다시떠나는게 어떻겠는가 하는 의사였다. 손자량은 그의 말에 좆았다. 인제는 배도 고파거니와 몹시 지쳤다. 그야말로 팔공산의 초목이 모두 적의 군사처럼 보여서 내처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고 떠돌며 갈팡질팡했으니 이대로 더 지쳤다가는 혜여날것 같지도 않았다.

   그 집은 뙤장을 떠서 지은 흙집이였는데 산옆댕이에다 얼마간되는 밭을 일쿠고 령감로친이 살고있었다. 련락병이 먼저 들어가보고 나와서 정황을 알리자 손자량은 지체없이 자기의 경위병을 이끌고 들어갔다. 집주인령감과 로친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 한무리의 모양새 험악한 인간들을 보자 겁을 집어먹고 부들부들 떨었다. 손자량은 그들을 당장 바깥에다 쫓아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집안을 샅샅이 뒤지게 해서 가질만한 물건은 하나도 남기지 않게했다. 돼지우리안에는 큰돼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당장잡아라했다. 늙은 량주는 저들은 그 짐승 한 마리에 생명을 붙이고있으니 제발 잡지말아달라고 비두발괄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백여명의 굶주린 자들은 튀도 채 하지 않은채 각을 뜯어 가마에 넣고 급급히 삶았고 나무가리를 헤쳐 군데군데에다 모닥불을 피우고 쬐였다.

   한창 이러는판에 보초병이 뒤꼬리를 따라온 수상한 사람 하나를 붙잡았다.

   <<이놈아 네가 우리네 뒤를 밟아온걸 보니 틀림없는 공산군이구나.>>

   몇이 달려들어 불문곡직하고 뚜드려패기부터했다.

   <<제, 제편사람이요! 날 때리지말어!>>

   하고 잡히운자는 아우성을 쳤다.

   이때 리경광이 집안으로부터 달려나오며 무슨일났느냐고 소리쳤다. 때리던 자들은 그제야 자기들은 수상한 자를 붓잡았노라 보고했다.

   <<넌 웬놈이냐?>.

   리경광이 이렇게 묻자 그자는 엉엉 울면서 한편사람이라했다.

   <<난, 난, 당신넬 찾느라고 죽도록 고생한 사람입네다. ...굴대장군이 날보고 손대장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라했습네다.>>

   <<뭐라구? 좀 차견히 말해라, 내가 리부관이다.>>

   <<아, 그렇쇠까, 부관님! 우린 호룡산에서 온 원병입네다. 지금 남림촌에 와있습지요. 벌써 여러날째 거기서 기다리고있는뎁쇼. 정말입네다.>>

   <<뭐라, 굴대장군이 호룡산에서 원병으루 왔다구?! 지금 남림촌에 있다구?!>>

   리경광은 그의 말을 듣고 몹시기뻐했다. 그러면서 애매하게 매를 맞아 입술이 터지고 낯이 형편없이 된 그자가 또 우는 꼴을 보이자 무지하게 우악살스런 제 부하들을 향해 너희들은 사람도 가려볼줄을 모르는 미런충들이라고 되게 책망했다.

   한편 손창유는 굴대장군이 원병으로 남림촌까지 와서 자기를 찾고있다는 소리를 듣자 정신이 펄쩍 들었다. 하지만 자존심강한 손자량이만은 원병이 나온것을 반가와할 대신 도리여 저의 창피로 느끼면서 풀풀거렸다.   

   <<아버지두 원!  갑자기 무슨 자비심이 생겨서 그따위 배신자놈을 다 믿고 찾아가렵니까? 이 산골에서 차라리 얼어죽는대두 난 그런놈을 믿고 찾아가 구원해달라고 애걸하진 않을텝니다.>>

   <<이거야 어디 애걸하는거냐.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보자.>>

   손창유눈 여러말로 고집센 아들을 설복했다. 그는 저의 옛상전을 배반했던 굴대장군이 호룡산에서 나와 위엄을 무릅쓰고 구원하러왔으니 너그럽게 대해주기로 하고, 그가 마음이 돌아섰으면 더더욱좋은 일이니 반갑게 여기고 그와 합세하여 손가장을 도로찾는게 옳은일이라고 중언부언했다. 여기서 남림촌이 얼마멀지 않았다. 드디여 아버지의 의사에 붙쫓기로 작심한 손자량은 례모를 차려 마을로 들어가기전에 련락병을 보내여 선통하기로 했다. 그런데 련락병은 해질녘으로해서 되돌아왔는데 그 꼴이 말이 아니였다.

   <<웬 일이냐, 엉?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말이다?...>>

   손자량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웨쳤다. 련락병은 저의 상관을 원망스레 보다가 터진 얼굴을 좀 보라면서 소리내여 엉엉 울었다. 마음놓고 들어갔다가 된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굴대장군은 손창유의 련락병이 왔다고 알리니 저의 부하더러 당장 잡아들이라 해놓고는 생각밖에도 된욕설을 퍼부었던 것이다.

   <<이놈아, 넌 과연 겁도 모르는 인간짝이로구나! 아침에 고약한 편지를 던지고 달아낫던 놈이 왜 또 찾아왔느냐? >>

   <<아, 아니, 굴대장군님! 무, 무슨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가 언제 여기루 왔댔다구 그럽니까?>>

   <<닥쳐라! 네놈이 안왔댔으면 다른놈이 왔었겠지. 이 장극발이가 아무리 못났기루 의리도 모르는 위인인줄 알았더냐? 뚜드려맞고 나앉았으면 군소리말고 빌붙어 숨이나 돌렸다가 제 가고픈데로 가버릴게지 무슨 개소리였느냐? 구렝이보다 더 음흉한 손가놈! 나더러 배신자라구? 나의 구원은 바라지도 않겠다구? 흠!>>

   성이 머리끝까지 올리민 굴대장군은 손가족을 마구 욕지걸이하고나서 찾아온 련락병을 바지를 벗겨 엉덩짝을 실컷때려 쫓아버렸던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문세냐?... 그 개같은 굴대가 구원하러 왔다는게 잡말이구나. 의리도 없는 무지막지한 놈이 회과는 하지 않고 그따위짓을 해?>>

   손창유는 애매하게 얻어맞은 제 련락병의 고발을 듣고 눈갓을 푸들거리면서 이를 갈았다. 손자량도 굴대장군이 온갖욕지걸이를 다했다는 말을 듣자 이를 북북 갈았다.

   <<개같은 극발아, 돼지같은 극발아! 네가 량심없이 우릴 욕했단말이지? 이건 치욕이다, 참을수 없다! 참을수 없다!>>

   그는 연신 고함을 질러대면서 공중에 대고 삿대질하더니만 칼을 뽑아들고 살기등등해서 밖으로 휑하니 달려나갓다. 그리고는 별동대를 찾느라 헤맸다는 그자를 단칼에 찍어죽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맥없이 퍼더버리고 앉아있는 저의 병졸들을 마구쥐여일으키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던 것이다.

   <<모두 일어나라, 싸워야한다. 보복해야한다!>>         

   패잔병들은 시들해서 일어났다.

   손자량은 자기를 따라 남림촌을 점령만 하면 대공을 주고 상도 후하게 줄테니 말을 들으라고 한바탕 구슬리고는 말에 먼저 올라 앞장섰다.

   남림촌동구밖에는 북쪽의 그윽한 계곡으로부터 흘러나온 자그마한 개천이 있는데 희한스레 겨울인데도 그것이 얼지 않았다. 손자량은 졸병들이 그 개천을 건늘념을 하지 않고 주춤하니 살기등등해서 고함쳤다.

   <<겁쟁이같은것들, 돌아서면 내칼에 없다! >>

   주저주저하던 졸병들은 그제야 발을 적시면서 내를 건넜다. 그들은 그러고는 마치도 굼주린 이리떼모양으로 고함지르며 마을을 향해 달려들어갔다.     한편 마을밖을 경계하고있던 랑아영의 보초병은 갑자기 나는 고함소리를 듣자 허겁지겁 달려들어가며 급한 소리를 내질렀다. 

   <<공산군이 온다! 공산군이 온다!>>

   <<뭐, 뭐, 공산군이 온다구?!>>

   눈이 뒤집힐지경으로 놀랜 굴대장군은 문을 걷어차고 바깥에 달려나왔다. 과연 고함소리가 앞뒤산을 흔들었다. 그는 도망치려다말고 생각을 굴려보니 이건 손가장에 있는 인민무장부대가 아니고 별동대의 패잔병들이 아니냐는  의심이 문득 떠올랐다. 원래는 제편이였는데 하면서도 그는 사실을 규명하지 않고 해볼테면 해보자는 배포로 맛서 싸울잡도리를 했다.

   <<이 밥통같은것들아, 빨리, 빨리 집합해라!>>

   그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병졸들을 집합시켰다. 그러나 규률이 문란해진 졸병들은 마을에 흩어진채 쉽게 모여주지 않아서 굴대장군은 졸병들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채 황급히 응전하지 않으면 않되였다. 과연 막바지에 이른자가 발악적으로 달려드는 판이니 그 기염이 대단히 무서웠다.

   굴대장군은 자기가 취한 행실이 너무나도 조폭했다는것을 생각하고 손가족이 곧 앙갚음하러 달려들리라는것을 예견하기는 했으나 그네들이 이같이 검질기고 흉맹하게 달려들리라고까지는 미처 생각못했었던 것이다.

   접전이 벌어졌다. 손자량이 미친것 같이

   <<이놈 굴대야, 덤벼들라!>>

   하고 웨치면서 칼을 들고 좌충우돌하니 총으로 쏴눕힐 재간도 없었다. 그의 칼이 한번 번쩍일때마다 하나씩 찍히워 절명하는것을 보게되자 굴대장군은 간담이 써늘했다. 그는 그만 목숨아 날살리라고 창황히 도망쳐버렸다.

   굴대장군을 놓쳐버린 손자량은 너무도 분해서 무릎꿇고 투항하는 자를 셋이나 칼로 찍어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러고나서 굴대장군처소에 달아놓은, 그 푸른바탕에 허옇고 알칼진 승냥이 이발을 그린 랑아영기발을 잡아채여 갈기갈기 찢으면서 앙천대소를 했던 것이다.

   <<네놈의 승냥이이발이 아무리 날카로와도 이 손가족을 물지는 못할거다! 으하하하!.... >>

   <<잘했다! 이 애비가 이제는 분이 좀 풀리는구나!>>

   손창유는 아들을 칭찬했고 손옥란은 오빠를 자랑했다.

   손자량은 졸병들에게 한 락언을 꺾어버릴수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중히 건사하고있는 자기 집의 보물이라도 끄집어내여 이번 기회에 한번 크게 인심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손가장에서부터 혈로를 뚫고나온거나답잖은, 지금 죽지도 달아나지도 않은 부하들의 원을 꺼주고 이로써 아버지와 자기 그리고 손가족의 그 드높던 명예와 선망을 유지하고 별동대의 명을 부지해나가려고 마음먹었다. 헌데 아들의 이런 기미를 눈치챈 손창유는 그를 붙잡고 간곡히 타일렀다.

   <<네가 벌써 그것들에 손을 댈 예산이냐. 그게 어떻게 모아둔 보물이라구 벌써.... 아직 그걸 부려먹을 난경까지는 이르지 않았네라.>>

   <<아버지 그럼 어떻게 하랍니까? 이 자량이가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들으랍니까?>>

   <<그래 달리는 방법이 없겠냐?>>

   손창유는 아들을 쳐다보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이 마을을 털어내자는건가요! 금광촌이니 집집에 담은 얼마씩 금이 있을겝니다.>>

   손자량은 주먹으로 무릎을 툭 치고 일어났다.

   <<얘야, 너 제발 덤비지를 말아다구. 자칫하면 다 끓여놓은 국을 먹지도 못하고 쏟듯이 랑패보고말리라. 병사들더러 장금을 준다고 해라. 어김없이 준다고 해라. 이 손가족은 거짓말할줄을 모른다고 하거라.>>

   <<그래놓구선 난 또 참으란말입니까, 아버지?>>

   나도 너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그러나 대국을 돌보아 당분간은 참아야 하네라. 우리가 마을에 들어서자 손부터 대서야 되겠냐. 안되네라 안돼. 그렇게 조급해서는 안되네라. 우선 여기사람들한테서 환심을 얻도록하는게 우리한테는 백번유익할게다. 그다음에는...  >>

   손창유는 수하에 애중한 막료인 장삼과 부엉이와 살모사가 아직 남아있으나 이번만은 리경광을 특별히 따로 불러다 놓고 분부했다.

   <<이번에는 자네가 머리를 써야겠네. 될수있는 한 일이 순조롭게 되도록 해야 하겠는데 우선 포로한녀석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글쎄요.>>

   리경광은 눈을 꺼무럭거리면서 미간을 모았다.

   <<이런처리는 우리들의 리해득실과 관계되는건데요.>>

   <<내 생각같아선 그네들중에서 <장>자 붙은 녀석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죄다 풀어놓는게 좋암직하네.>>

   <<풀어놓다니요?! 제 집으로 돌려보낸단말입니까?>>

   <<그렇네, 보아하니 도망치지 않고 포로된걸 보면 대부분이 굴대가 이 마을에 와서 강제로 모집해들인 자들인것 같단말일세. 내가 수향대를 모집할 때도 보면.... 집구석이라고 한사코 떠나기 싫어하니... 우린 이자들을 제집으루 돌려보내줍세. 환대를 한다는 우리네 뜻도 보이고... 그네들이 굴대를 찾아갈건같지 않아. 부모처자를 팽가치고 달아날수는 없으니까.>>

   리경광은 느릿한 그의 음성을 귀담아 들으면서 속으로 늙은게 그래도 궁량은 있구나 하고 탄복하면서 그의 지시를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할건 <장>자가 붙은 자들로 잘 조사해보고... 여기에 집이 있는 놈에 대해서는 되도록 아량있게 대해주는게 좋암즉허네.>>

   <<딴은 옳은 말씀인가봅니다. 그렇게 하지요.>>

   리경광은 선선이 대답하고 거기서 물러나와 전령병들을 데리고 곧추 학교쪽으로 향했다. 학교는 둬줄건너 골목북쪽에 있었는데 그것은 광복전에 일본사람들이 지은것이였다. 포로된 자들이 지금 거기에 갇혀있는것이다.

   리경광이 흰 양가죽을 댄 누런 일본장교외투를 걸치고 학교앞마당에 이르러 보니 숱한 사람들이 모여서 수선대고있었다.

   <<이제 나리가 오는 모양이다!>>

   하고 누군가 소리치는통에 떠들던 사람들은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길을 내라, 리부관께서 들어가신다!>>

   전령병이 목청을 돋구어 소리치니 몰렸던 사람들이 량쪽으로 쭉 갈라졌다. 학교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곧추 났다. 두렵고 혐오하는 수많은 눈길들이 리경광의 거만하고 멋스러운 몸에 집중되고있었다. 그러다가 다음은 여기저기서 비난의 말들이 튀여나왔다.

   <<허, 저것 좀 보지. 위만때 경찰서장노릇하던 조선놈이 지금은 중앙군장교루 돼서 행세하네.>>

   <<별동대부관이라나, 급도 꽤 올리췄네.>>

   <<암만 멋을 부려두 오그라든 신셀세.>>

   리경광은 그따위소리는 들었는 둥 말았는 둥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 학교로 들어가더니만 전령병보고 한 교실의 문을 열라했다.

   문이 렬리니 안으로부터 구리터분한 냄새가 확 풍여나왔다. 리경광은 상을 찡그리며 뒤주춤했다. 헌데 그의 이런 찌뿌둥한 거동이 도리여 포로된자들의 눈에는 거역할수 없는 위엄으로 보였다.

   <<너희들중에 집이 이고장에 있는 사람은 나오거리. 나와서 복도에 가 줄을 서거라!>>

   리경광이 명령했다. 하지만 독기담은 그의 눈살에 기겁을 해서 감히 움직이지를 못하다가 그가 낯색을 좀 너그러이 하는것 같으니 그제야 먼저 몇이 일어나 선줄을 끌었다.   

   <<줄을 제대로 서라!>>

   전령병이 소리를 쳐 줄을 바로세우고보니 교실안에 남은것이라고는 다해봤자 스무명도 되나마나했다. 그자들을 그냥둔채 문을 도로 잠그게 하고나서  리경광은 복도에다 줄세운 포로들을 바깥에 끌어내가게 했다.

   <<너희들은 모두가 집이 여기에 있다는데 그게,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럼 좋다. 너희들중에 <장>자붙은 사람은 손들라.>>

   서로들 쳐다볼 뿐 손드는 자라곤 없었다. 리경광은 이마살을 찌푸리고나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가 하는 말은 한자리래도 급을 얻었던 녀석은 여기에루 나서란말이다. 못들었어?... 반장급부터 나오거라, 냉큼!>>

   이런 위협적인 명령에 한 사내가 눈우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절망적으로 울어댔다. 꼴을 보니 자기를 끌어내다가 죽이는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리경광은 전령병에게 눈짓하여 그를 끌어내게했다. 그가 몇 대 얻어맞고서야 끌려나오는것을 보게되자 열대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쓸어나왔다, 리경광은 그네들의 의혹과 불안에 잠긴 얼굴을 쓸어보고나서 코를 킁킁거리며 다음과같이 정중히 선포했다.

   <<모두들 잘 듣기 바란다. 우리 중앙군은 나라의 사명을 지니고 싸우니만큼 민법을 매우 존중한다. 별동대대장님의 특령이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제 집으로 돌아들가거라.>>

   포로들은 너무도 뜻밖인지라 어둑거둑 보기만하다가 한자가 먼저 선손을 빼서야 왁 흩어져 가버렸다.

   리경광은 나머지 열댓되는 인간들을 하나하나 훓어보고나서 이런것들은 제대로 얼리고 구슬리기만하면 써먹을수 있을것 같아 이름을 등록해놓고 돌려보낸다면서 포로감시를 맡았던 곽털보더러 지휘부로 압송해가라했다.

   포로를 가둬놓은 교실을 지키던 보초병이 갑자기 달려오면서 한자가 교실바닥에 깐 널판자를 가만히 뜯고 숨는것을 발견했노라 보고했다. 예상밖의 이 사건은 하마터면 큰 소동을 일으킬번했다. 리경광은 당장 그자를 붙잡아내라고 명령했는데 별동대졸병들은 그 교실바닥에 깐 널판자를 거의 다 띁어제껴서야 그를 겨우 끌어낼수 있었던것이다. 키가 꺼부정하고 눈두덕이 불룩하여 뚝바위같이 생긴 녀석이였다. 그를 끌어내오자 마을사람들가운데는 앙갚음을 하려고 달려드는 자가 여렀되였다. 알아보니 도망치려던 자는 시초부터 굴대장군을 섬기면서 련장질을 하던 인물이였는데 여기로 온 첫날밤에 벌서 부녀자부터 강탈했던 것이다. 리경광은 살려둬야 마무짝에도 써먹지 못할 이런 인물 하나를 잘 처리하는게 별동대의 위신을 높이고 낮추는데 관계된다는것을 깨달았다.

   <<에ㅡ 내가 여러분께 똑똑히 알려드립니다. 굴대장군을 놓고보면 이따위 못된놈에게 권리를 줘서 선량한 백성들을 해치는 못된짓만 하게했으니 우리같이 정수한 중앙군은 아닌겁닙니다. 그자들은 한마디로 중앙군의 명예를 편취해가지고 행세해먹는 토비무리였습니다. 모두가 그런줄을 알고 그네들과는 철저히 관계를 끊기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백성에게 재난만을 주는 굴대장군마저 잡아서 무릎꿇게 할텝니다. 오늘 도망치려 한 저놈은 민분이 있는 놈이길래 용서해줄수 없음!>>

   리경광은 혀바닥에 기운이 올라 한바탕 불어댄 후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널판자밑에서 잡아낸 그 련장을 총살해버렸다. 그러고나서 집이 다른곳에 있으면서 굴대장군을 붙좇은 자들은 일률로 죄를 묻지 않고 별동대에 편입시킨다고 선포했다.

   손창유는 리경광의 이같은 처사에 대단히 만족해하였다.

   <<보아하니 자네가 과연 책사답네. 그렇게 함이 우리께 유익한건 물론이거니와 온 중앙군에도 유익할걸세! 자, 이제는 자네가 여기 내한테루 보내서 이름올려놓고 집에 보낸 녀석들은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별동대에 끌어넣겠는지 거기에 대해서나 연구해봅세.>>

   (령감쟁이두 원. 그자들을 끓어넣는게 무슨 대순가. 버젓이 평을 하라 해놓고는 장금은 언제쯤이나 내줄 심산인지 모르겠구나. 자기 호주머니에 가득한 보물은 내놓기 아까와 아마두 여기를 떠날때는 집집을 털어 사병들을 달랠셈인가?... 토비는 토비구나!)

   리경광은 속으로 이렇게 한바탕 점치고 욕하고나서 눈을 꺼벅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대장님, 내가 보건댄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됨니다. 그보다도 평공(平功)이 끝나면 사병들에게 말한대로 장금을 나눠주는게 더욱 긴박한 문제라 보아지는군요.>>

   <<자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 나도 정신이 다시드는군! 참 그게 딱하고 급한 일이긴 하지.>>

   손창유는 모사라고까지 칭찬해준 이 총명한 젊은이한테 자기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리경광은 수전노인 이 늙은 상전의 난처한 처지를 속속드리 간파하고 눈을 꺼벅꺼벅 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기회에 자기의 지혜를  한번 본때있게 발휘함으로써 그의 두터운 환심을 거머쥐는게 아무모로보나 랑패있을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위망도 위망이려니와 그보다도 상기 약혼만했지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미루는 손옥란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어떻게 하나 자기의 손탁에 넣으려는 야망이 끓렀던 것이다.

   <<무슨 신통한 수가 없겠는지?... 자네 웃는걸 보니 궁리가 도는 모양이구려!>>

   <<방법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요. 일후에 우리들의 명예는 털끝 하나 손상시키지 않고도 목적을 이룩할 방법이이 있습니다.>>

   <<그렇다? 그럼 그게 뭔지 어서 말해보게!>>

   손창유는 구미가 무척동하는 모양이다.

   <<글세, 나한테도 보물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걸 벌써부터 털어먹었다간 후일이 걱정된단말일세. 그래서... >>

   <<하필 자기걸 써버리자할게있습니까.. 그게 얼마나 귀중한 보물인데...>>

   리경광은 한바탕 조롱하고싶은 생각을 억누르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계교를 생각해냈을 때면 의례 그러하듯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바르면서 조바심에 들떠있는 늙은 령감을 넌지시 보다가 속삭이듯 긴하게 말했다.

   <<이 남림촌은 워낙 금광촌이니 금점군들이 많은줄로 압니다. 옛날부터 고리쟁이집엔 버들가지가 있는 법이고 갖바치집엔 가죽이 있을게니 금점군의 집에 금싸래기가 없을리 없지요, 안그렇습니까?>>

   <<암, 그렇구말구. 거야 흐린날 구름이 있는것과 꼭 같은게지, 그런데?... >>

   <<저는 이런 방법을 하나 궁리해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손에 포로로 되었던 자들에게 모두 금을 바치게 하자는겁니다. 졸병은 한사람에게 닷돈씩, 그우의 놈들에겐 한사람이 일곱돈씩... 금을 바치지 않으려거든 우리 별동대에다 자기 몸, 자기 목숨을 들여놓으라죠. 이렇게 하면 우린 손해볼게 쥐뿔도 없을게 아닙니까.>>

   <<음ㅡ 거 참 묘한 방법이로군! 허허허, 자네야말로 모사답군! 진짜루 나의 모사야!>>

   손창유는 속이 흐믓해나서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리경광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치하했다. 리경광이 여직 받아보지 못했던 과분한 치하였다.

   리경광은 이렇게 되자 결심을 내렸다. 손창유가 골치아파하는 실제문제를 자기가 어떻게 하나 해결해주자고 맘먹었다.

   이틑날 남림촌에는 사람들이 제일많이 다니는 거리의 큰 집 바람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통고가 나붙었다.

 

<<남림촌백성들에게 고함:

 

중앙군별동대는 현재 잠시적인 어려움에 처했기에 이 글을 내여 여러분의 열성지극한 성원을 요망하는 바이다.

굴대장군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강박징병하여 두 개패에 이르는 병력을 모집했었는데 우리는 거기에 가담했던 이들에게 죄책을 묻지 않고 돌려보낸바있다. 그런 처리를 고맙게 여긴다면 당사자는 도리대로 스스로 감사표시가 있기를 요망한다. 관대처분을 받고 석방된자 매인이 금 5돈씩 바치기 바란다. 명령이니 불복자는 그 후과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중앙군별동대  대장  손창유

                                                      부관  리경광

    
                                                  1946년 정월 X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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