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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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6)
2015년 02월 03일 10시 34분  조회:2159  추천:0  작성자: 김송죽
 

               6

 

   

 

   민호는 흑룡강북안 로씨야의 불라고베쒠스크와 마주하고있는 흑하(黑河)에 와서야 적잖은 새소식을 듣게 되였다. 옹근 3년철을 어래무에 들어밖혀있다보니 귀머거리장님이나 답지 않았다.

   독립운동자들이 동산재기를 꿈꾸고 만주에다 참의부(參義府),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라 하는 준국가식의 자기 민족의 정부를 건립해 갖고는 그 두리에다 동포들을 묶어세우고 계몽을 하면서 반일활동과 투쟁을 계속 활발히 전개해나가고 있었다. 흑하에 와서야 들은 소식이였다. 이러한 소식은 지어 너무나 돌연적인 감까지 주면서 그를 걷잡기어려운 희열에 잠기게 만들었다.

   오, 나를 받아다오! 어서 받아다오! 적막과 고독에 묻혀 갈팡질팡 하는 나를 안아다오! 따뜻한 동포애로 포근히 안아다오!… 민호는 절절히 웨치면서 로씨야로 건너간 친구를 안타깝게 불렀다. 친구야, 내 친구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차라리 가지나말았을 것을… 한시급히 어래무로 돌아가고 싶었다. 서둘러 준비하여 안해를 데리고 동포가 많이 모여사는 녕안(寧安)이나 해림(海林)쪽으로 가고싶었다. 이 북만에서는 거기에 신민부가 있다잖는가. 다른 누구면 몰라도 한때 자기가 있었던 북로군정서의 김좌진장군(金佐鎭將軍)이 주장이 되여 세운 정부라니 민호는 애틋한 감회속에 굳건한 믿음이 갔다.

   마침 동강진까지 가는 배가 있어서 민호는 제꺽 올랐다. 돛이 순풍을 안을시 옹근 세주야면 집에 당도할것이다. 나와있은 시간이 모두해야 8일. 하건만 그것이 마치도 여덟달이 된것만같았다.

   민호는 집을 나올때의 일의 되새겨졌다. 친구찾으러 정작 떠나자니 츄얼의 맑던 얼굴이 단통 흐려났다.

  《왜 이러오. 아까도 날보고 친구를 찾아봐야한다해놓구선?》

  《찾지 말란는게 아니얘요.》

  《그럼 왜 그러오?》

  《나가면 며칠 걸려요?》

  《열흘쯤 걸릴것 같소..》

  《열흘이나? 어디멜 가시겠어요?》

  《흑하에.》

  《그렇게 먼데루요?》

   츄얼이는 아래로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들어 남편을 마주보는데 크고 동그란 눈에는 어느덧 맑은 이슬이 가랑가랑 맺혀있다.

  《가지말라오?》

  《…》

  《내 갔다가 인차오지. 안올가봐 그러우. 어린애기같이 울긴...》

   입을 감쳐물고있던 츄얼이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민호는 사랑스러운 안해를 자기 품에 꼬ㅡ옥 안아주었다…

   츄얼이는 엄마집에 가지 않고 남편올때까지 기다리겠노라했다.

오늘도 츄얼이는 시내가에 앉아 쿵캉치를 불고있을 것이다.  남편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민호는 흐름이 줄기찬 흑룡강의 물결을 탄 배가 겨울에 얼음강판을 미끄는 퉈르치만 못지 않게 빨리달리건만 그것이 굼벵이같이 굼뜬 것 같았다.

    돛배가 어래무에 이르니 이틑날 오후 5시경이였다. 민호는 사공더러 배를 치더룽이네 시르맨커에 대여달라해서 거기서 내렸다.

    치더룽네 시르맨커는 비여있었다. 사람만 없는게 아니라 고기잡이 도구며 간이살림도구도 없었다. 그사이 자리를 옮긴건가? 그럴리는 없겠는데… 민호는 시르맨커 동남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해서 얼마가량 가다가 남에서 곧추흘러내리고있는 어래무시내를 따라서 올라가기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기덕이와 같이 치더룽의 손에 구원되던 날 유만진이네 그 낡은 배에 앉아 마을로 가던 때의 일을 다시금 회상했다. 그때 그가 탄 배의 노를 저은 사람이 지금의 처남 나쟈였다. 츄얼이는 배의 앞코숭이에 앉아있었는데 뜨물독에 빠져 퍼덕이다가 거의 죽게된 장닭같이 꼴불견이 되여갖고 백꼴못쓰는 이 민호를 자주눈빗질했던것이다. 소녀의 고운 눈이 흐려져있다가 때로는 웃음을 담기도했다. 그래서 민호는 저 계집애의 속맘은 어떠할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걸가 아니면 놀려주는걸가 하고 진가를 가늠하느라 공연히 속을 태웠던거다…

   저기 짝을 맞춰 새 쌍이 된 비둘기의 보금자리마냥 안해와 함께 여직살아온 시르맨커가 보인다. 민호는 기쁨에 마음이 달뜨기시작했다. 혹시 안해가 부는 쿵캉치소리가 들리지나 않나해서 귀를 강구면서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한데 시르맨커에 이르러 보니 냇가 말뚝에 매여 있어야 할 우머르천이 보이지 않고 개도 짖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가? 개를 두 마리씩이나 데리고 마실을 갈수는 없겠는데… 불러봤자 헛짓이였다. 간밤에 내린 소낙비에 산물이 내렸는지 내물이 불었다. 민호는 옷을 훌 훌 벗어 감아 머리우로 치켜들고 겨드랑을 치는 시내를 건넜다.

   웬 일이냐?… 내를 건는 민호는 차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문은 쇠를 놓지 않았거니와 제대로 닫겨있지도 않았다. 그래 들어가보니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수라장이 돼버린 장면. 안켠 구석에 세워놓고 간 총이 보이지 않았고 벽에 걸렸던 안해의 화상도 벗겨져 바닥에 뒹굴었다. 거기에는 어지러운 발자국이 큼직하게 찍혀있었다. 일났구나! 민호의 가슴속에 널장같은것이 뚝 떨어졌다.

  《츄얼이!》

   그는 밖으로 달려나오면서 목놓아 안해를 불렀다.

   새들만 놀래여 달아날 뿐 사방은 괴괴하다.

   늪으로 달려가보았다. 버려둔 통발만 있을 뿐 거기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그길로 곧추 마을을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츄얼이는 친정집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아, 왜 인제야 오나?》

   허저인장모가 사위를 보더니만 붙잡고 락루했다.

   며느리 둘도 울음을 터치였다. 오열에 떨었다. 처가는 급기야 초상난 집같이 되고말았다.

   민호가 발작적으로 목소리를 뽑아세웠다.

   -《츄얼이 어딜갔어요?!》

   나쟈의 처가 울음을 그치고 알려주었다.

  《시누이가 잃어졌어요!》

   츄얼이가 잃어지다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민호는 이런 뜻밖의 변고에 그만 명문이 꺽 막혀 말도 울음도 나오지를 않았다. 녀인들이 밖으로 달려나가려는 그를 꼭 붇드는것이었다.

  《어디로가나 이 사람아.》

  《내가 찾아볼텝니다!》

  《이 사람아 이젠 귀신이 다 됐을 사람을 어떻게 찾는다구 그러나. 어ㅡ엉…》

   절망한 장모는 맥진하여 울음소리마저 겨우뺐다.

   나쟈의 처가 재다시 터지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나서 입을 다시열더니 좀 더 소상히 알려주었다.

  《츄얼이는 그저께 잃어졌어요. 그전날 여기와서 숙아하고 같이 버섯따러갔어요. 절이를 하겠다면서…이틑날두 가자구 약속해놓고서는 점심때가 지나도록 오질않지요. 그래 대체 어찌된 일인가구 숙아가 그리로 가보니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고 개마저도 죽어있더래요. 그래서…》

   나쟈도 린화도 집에 없었다. 치더룽도 없었다. 그들은 당날로 츄얼이를 찾아 떠났다고한다. 츄얼이는 살해되여 강에 던져졌거나 아니면 랍치되였음이 분명했다. 이같은 변출불의(變出不義)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으랴. 그지간 온 마을이 동원되여 그를 찾느라 분주탕을 놓았다고 한다.

   어느 악한이 그따위짖을 했을가? 무슨 목적에 남의 유부녀는 해치는 걸가?…민호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아, 내 츄얼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일찍왔어도 이런 변고는 생기지 않았을것을.

   마침 츄얼의 딱친구 우야즈가 찾아왔다. 얼굴이 해쓱하다. 그녀도 친구를 잃어 몹시 상심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야즈는 눈길이 민호에게 미치는 순간 놀래면서 제자리에 돌같이 굳어져버리는것이였다. 왜 이럴가? 그녀는 속에 넣어두자니 가책이 심해 발거리를 놓아 대책을 세우자고 찾아온건데 은연중 잃어진 제 친구의 남편을 대하고 보니 웬 일인지 가슴이 몹시 떨리면서 입이 열려지지를  않았던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 하나의 몸에 박히였다. 우야즈는 고개를 꺾고 아느새 잠잠하다가 머리를 다시금 치켜들었다. 코날이 상큼하게 일어선 그녀는 맥이 풀린 갸날픈 손으로 마치 죄지은 사람같이 떨리는 제 가슴을 짚었다가 도루내리면서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용기내여 입을 여는것이였다.

  《내 좀 할말이 있어서 왔어요.》

   민호는 행실이 착하고 얌전한 이 처녀가 필시 제 친구의 실종과 유관되는 그 어떤 일을 말하자고 이런다는것을 제꺽 알아채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야즈, 뭘 알고있소. 어서말해보오.》

  《이상한 일 한가지 봤어요. 그그저께 전날 루싼이가…》

   처녀는 말꼭지를 떼고는 더 뱉아내지 못했다.

  《얘야 너 뭐라니?…루싼이까 어쨌단말이냐?》

   나쟈의 처가 다구쳐물었다.

  《루싼이가?》

   장모도 눈이 둥그래졌다.

   우야즈는 목구멍에 뼈라도 걸린 것 처럼 고통스러운 낯색을 지었다. 왜 저럴가? 츄월이를 제 각시로 삼지 못한 루싼이가 지금은 우야즈와 좋와지내는 처지였다.

   민호는 흥분과 조급증을 가까스로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야즈! 야즈는 아마두 뭘 좀 아는것같은데 시원히 말해주오. 그래야 야즈도 속이 개운해질게 아니요. 딱친구가 잃어졌는데.》

  《말하지요. 그그저께전날 난 루싼이가 웬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는걸 봤어요.》

  《그그저께전날이라지?…그그저께전날에는 우리 걔가 제 둘째형님하고 같이 버서따러갔는데.》

  《어머니, 가만. 들어보자요. 그래서?…》

   둘째며느리의 말이다.

  《그저그래요. 난 그것밖에 몰라요. 하도이상해서…》

   나쟈의 처가 물었다. 

  《야즈는 루싼아한테 물어보지 않았나요?》

  《물어봤어요. 그날 어디에 갔더랬는가구. 건데 루싼이가 지금두 제대로 알려안줘요. 그러니 난 더 이상해서…》

  《음!…》

   민호는 생각에 깊이잠기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우야즈가 제 련인의 의심스러움을 찾아와서까지 고발할 때는 알쪼가 있는것이다. 낯모를 사람 둘이란말이지. 그게 어떤자들이며 무엇때문에 산으로 들어갔을가?…루싼이는 왜 진상을 말하지 않을가?…의문이 꼬리물었다. 우야즈의 적발이 터무니없는건 아니였다. 아리아드나의 실오리같은 이 단서를 놓칠수 없었다. 그이상 무엇을 더 바란단말인가. 멍청해서 쭈물거릴 때가 아니였다. 민호는 우야즈보고 알려줘서 고맙다 그 누구와도 네가 고발하더라는 말은 안할테니 안심하라 하고나서 그 자리로 곧바로 루싼이를 찾아갔다.

    루싼이가 집에 없었다. 고기잡이 나간 것이 아직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날이 저물어가고있었다. 파아란 물새가 울며 제 굴을 찾고있을 때 노의 삐걱거리는 소리들려왔다. 마을동쪽 내가의 버들숲을 가르고 있는 실오리같은 오솔길을 혼자서 오래동안 초조히 바장이던 민호는 마침내 돌아오고있는 루싼이를 발견하고 불렀다.

   《루싼이 내 좀 보자구!》

    루싼이는 와뜰 놀라면서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나야. 귀신도 아닌데 놀라기는. 한가지 알아볼일이 있어서…》

    이쪽은 벙긋 웃어주곤 배를 가까이에 대이라고 손짓했다. 

   《무, 무슨일을 나하구…》

    루싼이는 배를 기슭에 갔다대이면서 떠듬거렸다.

   《다른일아니야. 요전날 루싼이가 사람 둘을 데불구 산에 들거간적있나? 이 마을의 사람아닌.》

    도적이 발 저리다고 캐물었더니 루싼이는 대번에 얼굴에 황기가 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왜 대답이 없나? 난 루싼이를 죽일놈으로 보고 이러는게 아니야. 그저 루싼이가 누굴 데불구 뭣하러 산에는 들어갓댔는갈 똑똑히 알자구할뿐이야. 숨기려말구 솔직히 바른대로 알려줘.》    

   《나도 면목은 모르는 사람들이요. 정말이요.》

    루싼이는 입을 닫아걸려다 될것같지 않으니 실토하고말았다.

    그날 한낮때였다. 루싼이는 큰강에 놓은 주낚들을 거둬서 배에 싣고 지금모양으로 이 내를 올라왔다. 아침에나 아니면 저녁켠에 갔어도 그는 그런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고 모면했을것이다. 그가 민호네 시르맨커를 지나고있을 때 공교롭게도 웬 낯모를 외지사람 둘을 만나게 되였던거다. 그자들은 그를 보고 배를 좀 가까이에 세우라해놓고는 여기 이 집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갔느냐고 캐물었다. 루싼이는 처음에는 수상쩍어 그건 왜 묻는가고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자기들은 여기서 사는 두 조선젊은이와 잘아는 사이인데 오래간만에 와보니까 집이 비여있어서 묻는거라했다. 루싼이는 의심을 거두고 아 그런가 청년 하나는 약 둬달전에 어디론가 가버리고 하나만 남아 지금 색시얻어 살고있는 중이라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둘은 아 그런가 우린 여직 그런줄도 모르고있었지 하고는 친구지간에 아무렴 대사를 알리지도않다니 원 하면서 몹시 서운해하기까지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한자가 루싼이보고 남아서 장가간건 어느사람인가고 물었다. 루싼이는 그게 정민호라고 곧이곧대로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저쪽은 그렇다면 더욱만나고싶다면서 그가 그래 어디로갔는지 모르는가고 물었다. 루싼이는 민호가 외출해서 없고 집에는 지금 각시혼자있는데 그도 오전에 버섯따러 산에 들어가는 것 같더라했다. 그랬더니 저쪽 둘은 무어라 귓속말로 소곤대다가 그더러 녀인이 버섯따러 어느 산으로 가더냐 꼭 만나볼일이 있으니 데려다달라했다. 루싼이는 그러고싶지 않았다. 그러자 내색을 알아차렸는지 한 녀석이 호주머니에서 돈 5원을 꺼내놓으면서 이래도 네가 사정을 안봐줄테냐했다. 간청속에 은근한 위협이 있는지라 대가 약한 루싼이는 겁을 더럭 집어먹었다.  그 돈을 받고 길을 서주자니 자기가 죄를 짓는 것 같고 안그러자니 변을 당할것만같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루싼이는 궁리하다가 에라 주는 돈이나 받고보자했다. 그래서 둘을 자기 배에 태우고 마을까지 왔고 와서는 데리고 서산에 들어간건데 그날 그들은 츄얼이를 찾지 못했다. 이 일이 있어서 며칠안되여 어래무마을에서 츄얼이가 실종된 변이 나진거다.

    사건조작자는 뛸데없이 그자들이였다. 민호가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었더니 루싼이가 둘중 하나는 키가 민호만큼 크고 하나는 좀 작은편인데 작은자가 상판이 희멀끔하고 이쪽의 다른 한 자는 이마에 험상한 흉터가 나있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그것이  칼상처같더라고 했다. 이마에 흉터있더라?…칼자리갔더라?…그럼 그게 진사해겠구나! 그리고 낯이 희멀끔하다는 자는 가철군이겠구나! 민호는 이같이 속으로 짚었다. 기병대를 나와버린 처남 나쟈가 언젠가 볼일있어 동강진에 갔다오더니 대중검거때에 붇잡아서 류치장에 가두었던 가철군이가 언녕 탈출해버린 일과 그를 다시체포하지 않고있는것으로 해서 사람들이 아문을 허깨비라 되게 비난하더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래서 민호는 한때 그 자식이 앙갚음을 하자고 또 달려들지나 않을가고 근심했고 그러다가 죄짓고 숨어사는 놈인데 아무렴 이제 또 감히 나서랴고 경각심을 풀었는데 오늘 끝내 이런 변을 당할줄이야. 이제는 원쑤가 누구라는게 똑똑해졌다.       이 결원(結怨)은 피를 보아야 풀릴것이였다. 

    

    민호는 이틑날 어래무를 훌쩍 떠났다. 그날 상판이 희멀끔하게 생긴자가 말말간에 제 동료보고 방정(方正)에 사는 사촌형네 집에 가는 수밖에 없다더라고 하더라니 거기에 가 그자들을 찾아보기로 작심했다. 방정은 의란서쪽에 접해있는 현의 소재지다. 송화강을 그냥 거슬러올라가노라면 이르게 된다. 민호는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이 되는 동강진에서 요행 열래진(悅來鎭)까지 가는 배를 잡아탔다. 열래진은 동강현과 접한 화천현의 소재지인데 거기까지만 가도 길을 퍽 줄이는 셈이다.

    하나의 집념이 요긴한 것을 잊고있었다. 민호는 열래진까지 와서야 자기가 휴대한 비수 한자루만 갖고서는 원쑤 둘을 대적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담량만 믿고 과대하면 승산이 없는 모험이 되고마는거다. 그는 어떻게 하나 권총 한자루를 꼭 구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 생각은 뜻대로 되였다. 배사공과 말했더니 연줄이 생겨 그는 돈 15원을 주고 깜찍하고 멋들어진 골트권총 한자루를 손에 쥘수 있었던것이다.

    권총을 사갔고 인차 열래진을 떠난 민호는 날저믈기전에 80여리 웃쪽에 있는 가목사(佳木斯)에 당도했다. 도보로 그곳까지 오고보니 날이 저물었고 온 몸은 녹초로 되고말았다. 그는 거기 부두가에 있는 한 자그마한 싸구려려관에 들었다. 남은 려비가 얼마안되니 아껴써야했다.

    려관에서는 손님의 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호가 거리에 나가 전병 몇잎을 사먹고 돌아오니 그 려관에 함께 든 손님들이 지난 때 여기서 발생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민국 6년(1917년). 그러니까 6년전이다. 그해의 겨울에 강북에 있는 소백룡(小白龍)토비가 이 가목사를 털려해서 한바탕 소란이 생겼을 때의 일이다. 토비가 쳐들어온다니 가목사에서는 그자들의 략탈을 막고 상민(商民)들의 공황을 피면하기 위해 의란부(依蘭府)에다 전보를 쳐 지원해줄것을 바랐다. 하여 의란부에서는 그곳에 주둔하고있던 관영장(關營長)더러 병사를 150명 거느리고 가 시내를 지키게끔했다. 12월 14일에 과연 소백룡토비가 송화강북쪽으로부터 박근했다. 그러자 가목사에서는 경비대, 경찰대와 상퇀(商團)을 동원하여 각기 구역을 맡아서 보위케 하는 한편 성내의 한산한 사람들은 한곳에다 집결시켜놓고 지켰다. 이틑날 밤 3시쯤해서 경비총부에서는 의란에서 온 패를 서문밖에 보내여 거기에 있는 소학교를 수위케함과 동시에 사생들은 모두 성내로 피신케 했다. 이것은 본래 임무를 리행하는 좋은일이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이 발생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그 다음날 날씨가 급변해 추워 견딜수 없게되자 관병장은 자기의 그 병사들을 데리고 성안에 들어와 몸을 녹이게 했다. 헌데 이 기회에 병사들은 학교의 돈푼가는 물건은 말끔히 훔쳐냈다. 그래서 학교는 토비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심한 재난을 당하고말았던것이다.

   누가 지은건지 항간에는 지금도 <토비와 군대는 한바지입은 한집안식구라네> 하는 민요가 생겨 이 입 저 입 불려지고 있다…

   가목사에서 배로 의란까지 갔다. 공부를 마친 청량이가 거기 관부 어디에 배치되여 직원노릇을 하고있는데 츄얼이가 실종된 일을 알기나하는지 모르면 같이 제 녀동생을 찾도록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들려보니 청량이는 린화가 진작와거 알려 함께 츄월이찾으러 가고 없었다. 눈먼송아지 방향도 모르고 덤비듯 대체 어디로들 갔을가?…

    

    민호는 거기서 더 지체하지 않고 방정으로 갔다. 풍진 세월이다. 낯선 고장이 그를 알아주랴. 민호는 워낙 계획부터가 막연했다. 사촌형이면 의례 성이 가씨일테지 하고 가씨성가진 집을 찾자니 그것조차 찾기어려웠다. 무엇에 비틀렸는지 사람들은 빤히 아는일도 자기와는 상관없으면 모른다면서 말하기를 싫어했다. 민호는 이런줄도 모르고 사흘간이나 헤매쳤다.

    츄얼이는 어디에 있는지 마름쇠도 삼킬놈들이 안해를 삼켜버린게 아니냐. 민호는 악당녀석들이 지금 안해를 강포점유하고 제멋대로 유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면서 구곡간장이 토막나는것만것만 같았다. 

   해가 넘어갔다. 려관에 돌아오니 몸이 해나른하면서 다리각이 싹 물러나는것만 같았다. 가철군을 보기는커녕 그림자도 찾지 못했으니 헛고생아닌가. 밤을 자고보자해도 막연해서 그저 한숨만 새여나왔다. 누구와 이런 사정을 말이라도 해봤으면 좋으련만 련민과 동정과 한숨도 함께 지어줄 사람이 없는 이 세상이 그저 야속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질뿐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감, 개처럼 버림받고있는것만 같은 느낌, 이러한것들이 그를 비감에 잠겨들게 만들고있었다. 하지만 내 안해를 내가 찾고 악당을 잡아 꼭 복수를 하고말리라는 그 결심 하나만은 땅속에 깊이 박아놓은 바우와도 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민호는 흉한들의 손에 죽은 개 두 마리를 생각했다. 그자들은 개에게 독약을 먹였는지 두 마리 다 상한데없이 숨을 거두었다. 그런것을 야수들이 건드리지 않게 하느라 두 처남댁이 시르맨커앞의 황철나무가에다 묻어버렸다. 개는 죽어 무덤이라도 있건만 츄얼이는 악한의 손에 무덤하나 만들어 줄 수 없게 죽은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골백번도 더 들었다. 민호는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서 어느땐가 츄얼이가 자기보고 조선사람들의 풍속을 배워달라해서 알려주던 일을 회상했다.

    신혼의 포근한 기분속에서 이야기가 점점 가경으로 들어갔다. 츄얼이는 정신이 빨려들어 귀를 강구었다. 눈에 보이는 듯 손에 만지는 듯 형용까지 해가면서 엮어댄 이야기가 그토록 감칠맛이 났던지 총명하나 세상구경을 널리못하다보니 시야가 좁은 녀인을 황홀케 하면서 일종의 걷잡기 어려운 흥분과 함께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갈구하께끔 든장질했다. 내가 무지개같이 아름다울 한복을 차려입고…풍속을 배워내고…현숙한 안해로 된다면 조선에 계시는 시부모님들은 맘들어하겠지. 귀여운 자식을 낳고 남편과 시부모님들을 잘 모시고…이러면서 꿈많던 허저인안해였다.

  《이것봐요, 웃지 말아요. 난 벌써 있어요.》

   민호는 집을 떠나기 전날밤에 츄얼이가 하던 말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수줍음을 머금던 그녀의 고운 얼굴이 눈에 삼삼히 떠올랐다.

  《뭐가있단말이요?》

   남편이 어정쩡해하니

  《아이참, 깜깜부지네. 그것두모르겠나요. 여기있어요.》

   츄얼이는 남편의 손을 끌어다 자기의 배를 만져보게 했다.

  《뭐있다구. 난 모르겠는데.》

   능청을 떠니 얼굴이 빨갛게 물든 안해는 손가락으로 남편의 이마빼기를 살짝 뚱겨놓았다.

  《달거리가 없은지 두달이 돼요. 열달만 차면 낳는대요.》

   안해의 배속에다 심어놓은 것이 아들이건 딸이건 성별을 가릴 것 없이 다 좋았다. 그저 낳으면 잘 길러야지 중하를 느끼면서도 나에게도 이젠 일점혈육이 생기는구나 하는 새로운 감수와 희열에  가슴벅차올랐던 민호였다.

   

   그는 방정에 온 이틑날에도 헛수고만했다.

   려관에 돌아오니 여기서도 가목사에서 처럼 손님들이 토비를 화제에 올려놓고 운운하고 있었다.

  《잡혀 죽은 사람 집이 여기 방정에 있다우. 산삼캐러갔다가 그만 잘못됐다누만, 심마니가.》

   《혼자갔다오?》

   《아마 그런모양입데.》

   《그 사람 정신나갔어. 혼자 산에 들어갈건 뭐야.》

   《산에 혼자간다구 다 일이 생기나 뭐. 지역땅만 밟지 않으면 별문제지. 액운은 바로 그네들의 변계를 넘어들어간데서 떨어진게야. 그런 토비들은 금을 그어놓구서는 여기까지 내것이다 하지. 그런데루는 나라님이 들어간대두 경을 치게된다나.》

   《그래서 죽여치워버렸다는건가?》

   《그렇지. 그래놓구는 본인의 가정에다 그런줄은 알라는 부고를 보낸거야.》

   《그러면서 장비까지 택택히 지불했다오.》

   《모를소리구만. 토비가 그렇게 마음후하단말이요, 그래?》

   《모르겠다, 정말인지.》

   《거기 비적두목은 그래 누구라오?》

   《위삼포요.》

   《위삼포라?  거 어디서 딱 듣던 이름같은데…》

   《얼빤한 사람. 아직 염왕산의 두령 위삼포도 모르다니 원. 자넨 아마 북만사람아닌모양이지.》

    염왕산! 듣기만해도 소름끼치는 이름이였다. 흉악한 악마인데 그래 그런 토비한데도 량심이란게 있단말인가? 불가사이한 일이라 민호는 전혀 믿고십지 않아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정에 온지 5일째되는 날 민호는 이상한 사람 하나를 만났다. 점심을 먹자고 어느 구석진곳에 있는 관자집에 들어갔을 때다. 술 반근을 받아놓고 채가 오기를 기다리는판인데 한 사나이가 나타나 홀로 앉아있는 그의 몸에 눈을 밖기시작했다. 민호는 제 생각에만 골똘해있다보니 뒤늦게야 대방을 발견했다. 보통의 한인모양으로 개씹단추 여러개를 단 회색옷입고 머리에는 채양졻은 밀집모자를 올려놓은 그는 손에다 파초잎부채를 쥐고있었다. 나이는 마흔살가량. 실팍한 체구에 얼굴빛은 검실검실 했다. 그래서 의표는 단정해도 상인인지 직원인지 그 신분을 대중하기 어려웠다. 하여간 농민이나 어부같지는 않았다.

    청한 채 한접시 들어와 술을 마시려는데 그 사나이가 다가들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임자는 무슨 족이요?》

   《어디맟혀보시죠. 내가 무슨 민족인것같습니까?》

   《음…》

    민호의 대꾸에 대방은 보살웃음을 지어가며 눈을 껌적거린다.

   《옷입은걸 보면 허저사람같은데 아니야.》

   《그럼 내가 어느 민족이겠습니까?》

   《글세… 그래서 내가 점쳐모는게 아닌가. 잘 모르겠어.》

   《난 조선사람입니다.》

   《오, 그래! 꼬리방즈.》

   《말 좀 삼가시오. 꼬리방즈라니요. 고려인이라구 해야지.》

   《오! 하하하… 내 말이 그만 욕으루 됐구만. 하하하....》

    그 사나이는 사람좋게 웃으면서 관자집주인더러 청한 술과 안주를 달라해서는 민호와 겸상했다.

    첫 인상이 괜찮았다.

   《그 옷 지은걸 보니까 알뜰한 녀인의 솜씨로구만. 여봐, 젊은인 허저녀잘 각시루 삼지나 않았소?》

   《아니,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의 물음이 의표를 찔렀다.

    대방의 깐깐한 관찰에 민호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가 지금 입고있는, 옷갓을 누른빛나는 보드라운 가죽으로 하고 동글고 기름한 고기뼈단추 일곱개를 내리 단 이 하늘색의 비단옷은 알뜰한 츄얼이가 솜씨를 다 피워서 결혼례복으로 지어준 것이다. 자기가 연람(延攬)하고 있는 이 사나이는 심성이 고약한 것 같잖아서 민호는 그렇다, 옷은 각시가 해준것이다고 이실직고했다.

    대방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바르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허허, 고려사람이 다즈녀잘 얻어사는구만. 글쎄 그러게…이러구보니 내 눈이 보배야. 젊은인 그래 집이 어딘가?…보아하니 객지에 나도는 사람같은데.》

   《내 말이지요. 난 집이 어래무에 있습니다.…가보았다구요?…그렇습니다. 난 기막히는 일 있어서 여기루 온겁니다. 무슨일인가구요?…안해를 잃었습니다…수일전에요.》

    대방은 어쩜 그런 불상사도 다 있느냐면서 끔쩍 놀랬다.

    민호는 여기서 자기의 처지를 물어주고 가엽시 여기면서 동정까지 보내는 사람을 이제 처음본다. 한데 술을 제꺽 들이키고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리는 그 생면부지의 사나이는 허저인이였다.

    려관에 와 누우니 또 안해생각뿐이다. 이 밤은 어느놈한테 시달림 받는지…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온갖의 착잡한 생각만 갈마들어 모대기치는데 누군가 문에다 《똑! 똑!》손기척을 낸다.

   《누굽니까?》

   《저얘요. 문 좀 열어줘요.》

    녀인의 목소리였다.

    민호는 려관에서 일보는 하인으로 알고 일어나 잠근 문을 열어주었다. 그랬더니 나이 퍼그나 되는 뚱보녀인이 짙은 향기와 크림냄새를 피우며 들어왔다.

    민호는 미처 생각이 돌지 못해 어정쩡해 있다가 딴 감촉이 느껴지는지라 정색해서 물어보았다.

   《무슨일있습니까?》

    그 뚱보녀인은 머밋거리다가 엉덩이를 꼬며 수작을 피웠다.

   《객지에 나다닐라니 적적하잖아요. 내가 오늘밤 동무해주죠.》

   《저, 그건?》

   《많이 받잖겠어. 오원만내요.》

    그렇구나, 너도 갈보년이로구나, 어제 밤에는 구미여우같은 젊은 계집이 달려들더니 오늘밤은 이따위 똥되놈추물이 감겨드는구나, 제길할! 민호는 보기만해도 역겨워나는지라 정신을 펄쩍차리면서 황황히 거절했다.

   《시, 싫어! 나, 난 싫어!》

   《에그, 옹졸한 손님이네요! 왜 그래요? 고깟 돈 몇푼 아까와 보고싶은 재미도 안보고 잘래요?》

    상판이 유들유들한 뚱보년은 치포를 걷어올려 흰 허벅지를 드러내보이면서 아양떨어댔다.

    민호는 이마살을 찡그리며 눈길을 제꺽 거둬버렸다.

   《어때요. 자볼가요.》

    징글스레 놀면서 찰거마리같이 감겨드는 꼴이 사내들을 숱해 홀려먹은 계집이였다.

    민호가 외면하는 사이 어느결에 년놈의 해면같이 부드러운 손이 몸을 주물렀다.

   《이년이!》

    민호는 활 밀어놓았다.

    갈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갔다.

   《빌어먹을 화냥년!…그깟 더러운  밑구멍 어디다내놓자구. 저따위년들을 잡아가두는데는 없나, 젠장!…》

    령험(靈驗)없는 구멍이였다. 그년이 발가벗고 감긴다해도 민호는 사타구의 그것이 일어설것 같지 않았다. 한심하게 더러워졌을 그놈의 공공변소를 갖고 돈빨아내자니 괘씸하고 구역질나서 욕했다. 그러다가 민호는 불현듯 정신이 들어 몸을 발딱일으켰다. 내가 무슨 궁리를 하고있느냐. 그년이 내 몸을 만졌어. 내가 권총지닌걸 알았을건데 가서 경찰에 고발하면... 그런데두 멍청히 앉아있다니!

    전해에 성립된 전성유격대영무처(全省游擊隊營務處)가 이해의 5월 10일부터는 흑룡강독군(黑龍江督軍)겸 성장(省長)인 오준승(吳俊升)이 발포한 《성방군대강(省防軍大綱)》에 의해 성방군영무처(省防軍營務處)로 규정되였고 성장공서(省長公署)는 명령을 내려 그것이 자체의 무장실력을 키움과 동시에 성내의 치안을 유지하게하였다. 하여 토비들의 활동을 견제하는 한편 사창(私槍)을 지닌 자에 대한 감독과 징벌을 엄하게 하고있는 판이다. 그러니까 이제 붙잡혀 사출이 나는 날이면 볼장은 다 본다.

    들키지 말고 도주해야했다. 민호는 주인과 간다는 말도 없이 며칠간 묵고있던 려관방을 슬며시나섰다.

    그런데 일은 참 공교롭게 되였다. 그가 방금 문을 열고 나서자 경찰 셋이 려관에 막 들이닥치는 판이였다. 어느새 갈보년의 밀고를 받은것이다. 이런 위기일발의 시각에 민호는 그자들이 대방이 누군가를 미처 알아보기전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자기와 마주친 자의 턱주가리에 강타를 먹여 꼭그라뜨린 후 다른 한자를 다리걸어 재껴놓고는 내꼴봐라 줄행랑을 놓았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경찰들은 넋살먹고 어리둥절했다가 뒤늦게야 정신차리고는 호각을 불었다.

    민호는 어서빨리 이 현성을 뛸쳐나가자고 마음먹고 강가로 달려나갔다. 거기에 배가 여러척있었던거다. 하지만 이 밤에 그를 실어다 줄 배사공이 어디있으랴. 그는 아무배든 훔쳐타고 어래무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강기슭에 매여져 있는 쪽배 몇척을 다 살펴봐야 노가 있는 쪽배는 하나도 없었다. 어느 병신이 그래 배를 훔쳐가라고 노대를 거두지 않고 배에 그냥 내쳐두랴..

    현성의 밤거리는 소란해지고 있었다. 경찰이 총출동하는모양이다. 운수가 꺼벅거릴때다.

    도망은 커녕 자칫잘못했다가는 붓잡히우고만다. 

    민호는 자기가 이런데서 빠져나간다는 것이 용이치 않음을 깨닫고 어느 한 쪽배에 제꺽기여들어가 거기에 숨어버렸다.

    여름밤은 점점 깊어갔다.

    웬 일인지 소란은 인차멎어버린다.

    쪽배는 애기를 담은 요람같이 흔들렸다.

    민호는 눈에다 저울추를 달아맨것만같아 깜빡 잠들고 말았다.     

    너무 곤해서 꿈도 없는가. 그는 배가 무엇에 부딧쳐 몹시 흔들리는통에 잠을 깨고 눈을 펀들떴다. 어느새 날이 휘영청 밝아오고 있었다. 다른 배의 임자가 아침일찌기 어디로 갈 일이 있어서 배를 돌리다가 남의 배를 건드려놓았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쪽의 배에서 웬 사람이 벌컥 일이나니 저으기 놀란다. 

    당황해 하지 말아야했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하고 나서 태연스레 배에서 내린후 강물에 세수하고는 거리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놓았다. 자기로도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지 모르면서.

    그가 얼마가지 않아서였다. 호각소리 갑작스레 나기에 머리들어 보니 저기 앞에서 순경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는 다른 순경들에게 련락을 보내고 있는참이였다.

    제길할! 사태는 위급하게 되였다. 몸을 제꺽 돌려 옆골목으로 달려들어간 민호는 저기 우물가에서 한 더벅머리 아이가 방금 말에게 물을 먹이고 돌아서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순경몇이 뒤쫓아왔다.

    민호는 뛰여가자바람으로 더벅머리아이를 밀쳐 넘어뜨리고는 고삐를 채여 말잔등에 제꺽 올랐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탄알이 귀뿌리를 앵-앵-스쳤다.

    말은 총소리에 놀랬는지 아니면 분노해서인지 죽어라고 네굽을 놓아 눈깝짝사이에 현성을 나와버렸다. 불의(不義)의 략탈자를 등에 태우고 줄달음을 놓고있는 이 체대크고 털빛이 윤기나는 백마는 관동(關東)의 호마(胡馬)였다.

   

    동녘에 둥실 떠오른 해를 보니 현성을 뛸쳐나온 그가 지금 남쪽방향으로 곧추가고 있었다.

    마을 몇 개를 지났다.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못해갔다. 이대로 그냥가면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내가 도망 쳐도 목적지는 있어야할게 아닌가. 민호는 말이 숨을 좀 돌리게 하느라 천천히 몰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밭으로 나가고 있는 농군을 만나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농군은 마을이름을 알려주면서 남쪽으로 더 가면 큰마을은 없고 작은 마을 몇개 더 있을 뿐 거기만 벗어나면 무인지경의 산간지대라고 알려주는 것이였다.

    어디로 가면 좋을가?…민호가 여긴가저긴가 방향잡기 어려워 초조불안한판인데 북쪽으로부터 한무리의 마병이 나타나 추격했다. 저 자식들이 그냥쫓는구나!…민호는 다시금 말을 내몰기시작했다.

    말은 다시 질풍같이 달렸다.

    그래도 계속 추격해왔다. 내가 이러다가 잡히겠구나, 그렇게 되면 끝장인걸…민호는 필사적으로 말을 내몰았다.

    아마 백여리는 더 달려왔을것이다. 그제야 추격자들은 점점 맥을 놓으면서 총만 갈기다가말았다. 내가 네놈들을 끝내 뿌리쳤구나. 이젠됐다. 만세!

    길은 그냥나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산중길인지 알수없거니와 여러갈래로 갈라졌다. 민호는 그만 어리벙벙해지면서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다. 서남방향으로 길을 바꾼것 같기도 하고 남쪽으로 그냥가는것 같기도 하고…길은 분명하건만 사람을 미혹시키니 민호는 졸지에 이게 토비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야 하는 불길한 생각이 불쑥나면서 머리카락이 쭈빗이 일어섰다. 젠장! 나도 산삼캐러 들어왔던 사람꼴이 되지나 않을가…몸이 오싹해났다. 민호는 어서 여기를 돌아나가려했다. 한데 가면갈수록 수미산이였다.

   《씨팔! 내가 이거 미궁속으로 게발아들어온게 아니냐.》

    민호는 침을 뱉아가며 혼자서 두덜댔다.

    이때였다. 네 말이 맞다 이놈아 하듯이 갑작스레 난데없는 오라가 휘-익 날아오더니 그의 목을 걸어챘다. 민호는 말잔등에서 허망나가 딩굴었다. 어데 숨었댔는지 억센 괴한 둘이 달려들어 눈깝짝새에 그를 묶어버렸다. 미처반항할 새도 없이 잽싸게 그리고 사정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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