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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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9)
2015년 02월 03일 11시 32분  조회:1928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9

  

 

 

 

   

     한가지 불길한 추측이 민호를 짖굳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츄얼이도 나덤비다가 인육장사의 마수에 걸려들어 어느 호색한에게 팔려가 육체를 유린당하거나 아니면 이제다시는 남편을 대할 면목이 없다여기고 이왕에 버린 몸이니 에라 모르겠다며 스스로 매춘부로 타락하지 않았나 하는 그것이였다.

    어쩌면 기생노릇을 해온 소춘매가 그 도시에 있는 매춘부들의 정황을  알수도 있을것만 같아 그는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어서 앉으세요. 요즘 뭘하길래 까딱 뵈질을 않았나요.》           장차 산채의 압채부인으로 될 새각시는 그를 무척반갑게 대했다. 호색군들의 지긋지긋한 시달림속에서 그녀를 구원해줬으니.

   《신혼의 재미좋습니까?》

    민호는 소춘매가 성의껏 불까지 붙여주는 담배를 받으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한가지 알아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춘매아주머닌 혹시 거기 할빈의 어느 유곽에 이름을 츄얼이라고 하는 젊은 여자가 있다는 소릴  듣지 못했습니까?》

   《허저인안해를 찾는다죠?》

   《예. 그렇습니다. 이젠 여러해됩니다.》

    민호는 제 남편한테 들어서 대략알고있는 소춘매에게 지난때  자기의 신상에서 발생했던 불행한 일을 쭉 얘기했다. 그랬더니 소춘매는 워낙 유정한 녀인이라 곰곰이 새겨들으면서 그게 어쩌면 남의일같지 않고 자기일같다면서 눈물까지 짓는것이였다.

   《나도 진작생각해봤어요. 십중팔구는 신세기구하게 된 여자예요. 호! 이놈의 세상이 왜 이리도 험악하기만한가요.》

   《아마 조물주가 심술궂어 인간세상을 이모양으로 만들어 낸 모양입니다.》

    민호는 말을 이렇게 밖에 못했다.

    춘매역시 세상이 이모양으로 돼먹은 원인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와 물어봤자 긍정적인 해답을 들을 수는 없을것이요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지라 멋쩍게 힛쭉웃고나거 화제를 돌려 지금 제 시누이로 된 향란이와 그와의 관계를 물었다.

    민호는 전에 츄얼의 행방을 알려고 자기와 향란사이에 협약이 있은것은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

    소춘매는 아 그런가고 찔끔 놀래는 것 같더니만 그렇게 로맨틱한 애정이 더 아글자글한 맛이 있을거라면서 웃었다. 그녀는 나를 좀 봐요 어제까지 음란하고 방자한 탕자들의 노리개질을 했습니다만 오늘은 어느덧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산채의 귀부인으로  된게 아닙니까 호화롭던 화류항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와 천만사람이 듣기만해도 눈살을 찌프리는 토비와 배필을 무을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이것역시 기이하고도 로맨틱한 인연이 아니겠는가했다. 

    그렇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도 민호도 어딘가 운명이 비슷한데가 있어보였다. 

   《어쩌겠어요, 이게 다 타고나 팔자소관이거니해야죠.》

   《타고난 팔자소관이라, 하긴 그런것 같기도합니다만 너무나 억울해서 그럽니다. 그래 아주머닌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까?》

    민호가 재삼 끈질기게 물으니 소춘매는 어쨌으면 좋을가 여짓여짓 하다가 입을 다시열어 알려주었다.

   《저 이봐요, 가슴이야 아플테지만 어떡하겠나요. 각오를 해야죠. 안그래요. 듣자니 할빈 도외에 화옥당이라는 유곽이 있는데 거기에 몸파는 다즈녀인이 하나있다는 소리를 제가 들은적이 있어요. 인물이 괜찮아 손님을 끄는모양데요. 건데 성명이 판달라요. 그 여잔 치무슨 란이라던지.....》

   《치무슨란이라? 그렇다면 틀림없어!》

    소춘매는 이쪽에서 몹시 격동하니 되려 의아쩍어했다.

   《어쩜 그렇게 딱 찍는가요. 성명이 판다르잖아요.》

   《이름이야 다르지만 성씨는 같은걸요.》

   《아니 여긴안해가 성이 유씨라며요?》

   《그렇지, 유씨지요, 유추얼! 허저인은 유씨하고 치씨가 동성동본이 되니까 족계를 따지면 그렇게 되는거랍니다. 참 어쩜...》

    민호는 치즈란(齊芝蘭)이 뛸데없는 안해 츄얼이라 짚었다.

    눈물이 자꾸솟구쳐 눈앞을 흐릿이 가리웠다.

 

    할빈(哈爾濱).

    중동철로의 중심이자 북만주의 수부요 동방의 모쓰크바로 불리우고있는 할빈은 한창 번영기를 맞아 들끓고 있었다. 각국의 령사관이 자리틀고 앉아 서로 주인행세를 했다. 이해의 통계를 보면 할빈은 도시주민 총 42만중에 로씨야인 7만 2천명과 일본인 3천명을 비롯해 외국인이 무려 7만 6천명이 되었지만 상점은 총 6,702개 중 외국인의것이 2,422개였고 공장은 모두 279개 중 근 반수를 점하는 129개가 그들 외국인의것이였다. 한즉 이 신흥의 도시가 실제상에서는 로씨야, 일본,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열강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경제침탈을 다투는 곳이였다.

    지난해, 즉 1926년도에 동성특별구시정관리국(東省特別區市政管理局)에서는 로씨야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시공의회(市公議會)를 해산하고 할빈자치림시위원회(哈爾濱自治臨時委員會)를 성립하였는데 할빈에 주재하고있는 영국, 일본 이태리, 미국 등 령사는 영국과 로씨야가 협정에 위반된다는 명의로 중국내정을 간섭하면서 중국정부에서 할빈시정권을 걷어들이는데 래해 항의했고 지어는 할빈자치림시위원회를 승인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까지한 것이다. 그런즉 할빈은 그야말로 외국인의 천하나 다름없었다.

    이국색채가 다분한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다투어 일어섰고 거리에는 양차, 전차, 하이야와 트럭이 씽씽 달렸고 밤이면 상점마다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전등불과 광고판들이 현란했다. 이같이 공상업이 흥성함과 더불어 유흥업역시 활개치고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도박과 유곽이 제일흥기했던것이다.

    이런판에 민호는 몇해전에 일어진 제 안해를 찾느라 헤매였다.

    민호는 전번에 와서 돌아다니였던, 고루거각이 일떠서고있는 남강의 대직가에서 위치상 동북쪽이 되며 도리구(道里區)와 이어붙은 송화강가의 도외구(道外區)에서 마침내 <花玉堂>이란 간판을 내 건 유곽을 찾아냈다.

    베란다가 서로 련결된 자그마한  2층사합원이였다.

    도외구의 골목들은 외국인주택과 학교와 교회당이 있는 남강의 아스팔트길이나 돌을 밖아 만든 도리의 중앙대가와 같은 좋은 길이 아니였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먼지를 날렸고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주정뱅이들이 쌍스러운 욕을 입에 물고 활개치며 거리바닥을 쓸었다. 도외구는 이같이 워낙 환경부터 다른데와는 비교도 못되였다. 졻다란 옛길에 아직도 나무단을 실은 말수레가 다니니. 푸른벽돌로 지은 고풍의 단층건물들은 낡고 궁상스러워보였다. 로동자와 막벌이꾼, 무직업자와 부랑배가 한데 모여들어 지지고 볶아대면서도 이럭저럭 그런대로 어울려 살고있으니 빈민구를 겨우벗어났구나 하는 감을 주고 있었다.

    이런데 있는 유곽이니 거기를 드나드는 자들이 또한 어느류형이겠는가. 유곽의 문은 돈만 팔면 출입이 다 같다는데....

    서민의 차림새를 한 민호는 도적놈모양으로 주위를 힐끔힐끔 살피다가 간판을 다시올려다봤다.

    출입문이 열려졌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제가 모시지요. 저기로 가자요.》

    그를 먼저발견한 중년의 녀인이 얼굴에 웃음을 개여바르면서  달라붙었다.

    내가 네년을 보자구 온게 아니야. 민호는 뱀같이 감겨드는 그녀의 팔을 탁 쳐 물리치고는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응접실 한쪽벽에 있는 사진판으로 다가갔다. 채색도안을 놓아 꾸민 베니어합판에는 20여명의 머리모양이며 옷모양새가 각이한 매춘부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 장의 사진마다 아래쪽에 카드를 꼽게 만들었는데 어떤것은 비고 어떤것에는 노란 카드가 꼽혀있었다. 카드가 꽂힌데서는 지금 손님을 받고있을것이다.

    갑자기 사내의 마음을 음탕하게 자극하는 흐드러진 웃음소리가 나길래 고개돌려 보니 어느 방에선가 방금 그 일을 끝낸것 같은 갈보년이 위생실로 가고있었다. 할짓을 다하고 유곽을 나가는 사나이..... 둘이 또 헤벌쭉거리면서 들어온다.

   《있구나!》

    매춘부들의 사진을 천방지축 헤집고있던 민호의 두 눈길이 마침내 하나의 사진에 딱 멎으면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에 가까운 탄성이 튀여나왔다.

    유두마저 보일지경 앞가슴을 다 드러낸 반라체에 머리를 틀어올린 젊은 녀인이 웃을 듯 말 듯 어딘가 애수담긴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모양은 변했어도 사진속의 그녀는 틀림없는 츄얼이였다. 씌여진 번호는 제12호. 노란카드가 꽂혀있었다. 민호는 눈에 섹스하는 장면히 밟히자 현훈증이 나면서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것만같아 더 지탱못하고 벽가의 나무걸상에 주저앉고말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모욕과 수치도 있단말인가! 민호는 경련이 일듯 떨리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으며 머리를 푹 숙이였다. 낯은 화로불에 가죽이 익어버리는 것 같았고 떨려나는 가슴은 무형의 란도질에 갈기갈기 찢기고 탕쳐지는것만같았다.

   《에그, 별 못난량반 다 보네. 누군 뭐 빠진 밑구녕인가보지. 남이 받고있는데두 보겠다니 씸암돼진들 배겨낼가 원.》

    필시 이 유곽의 어멈일시 분명한 녀인이 방금 들어온 둘중 어느 하나를 향해 뇌까리며 퇴박주는데 처뱉는 말슴새를 보니 이미 닳고 닳은 계집이였다.

    민호가 내가 아무래도 손님이 돼갖고 츄얼이를 만나얄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달리고있을 때 방금 퇴박맞은 사나이가 무어라 구시렁대면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한데 그의 얼굴을 다시보는 순간 민호는 전기에라도 닿인듯 와뜰놀랬다. 그자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철군이였던것이다.

    내가 저놈을 여기서 만나는구나!

    정신을 펄쩍차린 민호는 마치 용수철에 튀듯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음순간 이런소리 들려왔다. 

   《그년하나 다 닳겠다.》

    어멈이 씨벌대는 쌍스러운 푸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민호도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가철군을 미행했다.

    가철군은 <화옥당>에서 동쪽으로 좀 동안뜬 한 려관으로 들어갔다. 민호역시 거기로 들어갔다. 

   《방금들어온 객이 어느방에 들었습니까? 검정가죽잠바에 목긴 가죽장화를 신은 사람말입니다.》

    물어봤더니 려관주인이 안쪽에 있는 한 방을 가리켰다.

    독방이였다. 발정한 수캐모양으로 헤집고 다니던 가철군은 자기뒤를 따라 들어 온 사나이가 여지껏 적수로 여겨온 어래무 허저족마을의 한국독립군청년임을 알아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졸연간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기가 질린 그는 짹소리못하고 사시나무떨듯 전신만신 떨어댔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출입문은 이쪽이 막아섰고 창문도 안으로 잠겨져 뛸데없으니 독안에 든 쥐였다.

   《헛궁리말고 거기앉거라!》

    민호의 첫마디호령이 떨어졌다. 그처럼 가죽잠바를 입은 민호는 뽐창을 쥔 손을 호주머니에 지른채 벗티고 서서 마치 매가 먹이를 노리듯 그자를 노려봤다.

   《어이구!》

    가철군은 포개놓은 이불우에 털썩 주저앉으며 신음소리냈다.

    민호는 바당에 서있고 그는 침대에 있었다. 당장 죽여버리든지 아니면 태를 쳐놓던지 하고싶었으나 참아야했다. 우선 알아봐야 할 일이 있었던것이다.

   《이놈아, 넌 내가 누구라는 걸 알겠지? 그리구 내가 너를 찾고있다는것도 알겠지? 살겠거든 내가 물어보는 걸 제대로 대거라. 인자방금 유곽에는 왜 들어갔댔냐?》

    저쪽은 협박을 받자 떠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츄, 츄얼이를 보자구.》

   《그럴테지! 그래 츄얼이 여게있는건 어느때부터 아느냐?》

   《어, 어제방금.》

   《어제방금.》

   《어제방금이라? 정말이냐?》

   《정, 정말이요.》

   《정말이라? 그럼좋다, 정말이라하자. 그래 넌 그가 여게있는건 어떻게 아느냐?》

   《곡치환이 알려줘서.》

    민호는 다시한번 놀랬다.

   《뭐라! 곡치환이가?》

   《그렇소. 그가 츄얼이를 여기다 팔아먹을걸 내가 인제야 알구서는....》

   《곡치환! 곡치환! 내가 네놈을 살리지 말았을 걸 그랬구나!》       민호는 전에 인질로 랍치해왔던 그 조롱박같이 생긴 인육장사놈을 눈앞에 다시그렸다. 위삼포가 그자를 죽이지 않고 살려보내게 한것을 후회했다. 그러잖아 그자가 인육장사를 하는 놈이라니 츄얼이도 혹시 그자의 마수에 걸린거나 아닐가 하고 생각했더니 이럴줄이야! 내가 머저리였지!

   《건데 네가 츄얼인 왜 또 찾는거냐?》

    이런 질문에 가철군은 감히 대답못한다. 그는 츄얼이를 꾀여내든지 아니면 협박해서라도 자기가 데리고 살던지 하려고 맘먹으면서 만약시 그것도 되지 않으면 아예 죽여버리려고 여기를 찾아왔던것이다. 워낙 지은 죄가 있어서 한곳에 지긋이 마음붙이고 살수없게 돼먹은 그는 요몇해간 관내까지 나돌면서 건달노릇을 했다. 그러다가 집으로 온건데 자식때문에 밥통떼우고 남의 입 끝에 올라 눈총받으며 살던 아버지가 아들을 보자 분을 이기다못해 넌 내아들아니다 이놈아 하며 쫓아내서 이제는 이런 맘을 먹기에 이른것이다.

    민호는 입을 꾹 다물고있는 가철군을 이윽히 쏘아보다가 한마디 더 물었다.

   《야 철군이 이놈아, 넌 네집이 망한게 네탓이라는 걸 알겠지. 건데도 왜서 내한테다 독수를 뻗힌거냐?》

   《거야 칼들고 배값받아내니까 그랬지.》

    상대편의 대답이 뜻밖에 떳떳한지라 민호는 어이없어 입을 하 벌렸다가 물었다.

   《그래 그저당하기만해야한단말이냐? 네놈이 남의 배를 강탈했는데.》

   《그래두 그렇지.》

   《이런 뻔뻔스런 놈이라구야 원! 너희들이 그래 유씨네 배를 빼앗아다는 어디다 어쨌냐?》

   《로모즈한테다 팔았소.》

   《그랬을테지. 도적이 매를 든다더니 그리구서도... 건데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내 사정은 어떻게 알았냐?》

   《그건 저 가진구에 사는 꼬리방즈한테 들어서.》

   《아니 뭐라?!》

    민호는 한번다시 놀랬다. 가진구의 그 김국정이라는 딸부자가 생각났다. 

   《그것도 동포라 믿어줬더니 한동아리였구나! 빌어먹을!》

    격분해서 민호의 얼굴이 돌연히 험악해지자 가철군은 그가 자기를 당장 죽여버릴줄로 알았는지 손을 먼저쓰느라 발딱일어나 덮치였다. 민호는 호주머니에 지르고있던 손을 제꺽뽑아 주먹으로 대방의 코등을 기운껏 올리박았다. 코등을 깬 가철군은 정신을 깜빡잃고 꼭그라졌다. 그랬다가 그는 정신을 다시차리며 씨벌이였다.

   《두고봐, 너도 끝장이 오라잖다.》

   《개자식! 진사해가 너의 복수를 해줄줄아냐. 그녀석 언녕 내한테 명줄잡혔어.》

    가철군이 절망에 떨면서 다시덤벼들려하자 민호는 뽐창 하나를 뿌려 그의 이마에 박아넣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얼굴표정이 그 사람의 내심을 보여주는 거울이였다. 일이 여의치 않은 사람이거늘 얼굴이 희색일 수 있으랴. 왕견은 예정보다 일찌기 산채로 돌아왔거니와 얼굴에 화기라곤 없는 민호를 보자 큰눈을 데룩거리면서 물었다.

   《갔던 일이 어떻게 됐어? 왜 금시돌아왔나? 또 허탕인가?》

   《아니요. 허탕은 아니요.》

   《그럼 각실 찾았다는 말인가?》

   《그렇소. 찾아냈소. 내 접때말하던 그 유곽에 있더구만.》

   《그러면야 만나보구왔겠지.》

   《만나보질 못했소.》

   《아니뭐라. 제각실 찾아냈다면서? 일부러 보러간 사람이 만나지도않고 돌아오다니 원 무슨소린지. 개바우돌에 갔다왔구나.》

    왕견은 어이없는 일이라면서 놀림절반 비난절반 꾸짖었다.

    하진국이도 와서 왕견이 하는 말을 듣더니만 민호를 과연 맹랑한 사람이라했다.

    민호는 그들에게 자기가 할빈으로 가자마자 <화옥당>유곽을 찾아가 거기에 츄얼이가 있다는것을 확인한것과 그를 만나보려했으나 만나보기에 앞서 우연스레도 츄얼이를 찾아간 가철군을 발견한것과 그를 미행한 끝에 려관에 들어가 위협해 그한테서 사건이 꼬여진 내막을 알아낸것 그리고 여차해서 그의 명줄을 끊어놓고 그만 돌아오고만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원쑤를 면바로 만나 복수를 했군, 잘했어!》

   《아무럼 똑똑한 사람이 허탕을 칠가, 됐소!》

    왕견도 하진국도 이제야 석연치 않던 얼굴에 웃음을 피여올리면서 제일같이 좋아했다. 염왕산의 그 많은 새자들 중 처음부터 변함없이 민호를 따르면서 속맘을 주는건 그래도 이 둘뿐이였다.

    물론 이번걸음이 허탕은 아니였다. 원쑤하나를 없애버렸으니까. 하지만 민호는 그랬다해서 속이 후련한건 아니였다. 소춘매의 말을 들은 후부터 안해가 만약 이 세상에 살아있다해도 십중팔구는 아주 영 버린 몸이 되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과연 딱 들어맞거니와 제 눈으로 보고서 확인까지 하고 오니 자신이 되려 그녀한테 배척단한것 같으면서 모욕과 수치감이 가슴을 썰었던것이다.

    아 이놈의  성실치 못한 나약한 인간의 저주받을 자존심!

    민호는 술이라도 콱 먹고 대취해버린다면 번뇌도 고뇌도 싹 다 잊을것 같았다. 그는 술을 찾았다. 반에는 어느 새자든 갖다놓은것이 없었다. 하진국더러 취사칸에 가 가져오라 시켰더니 그는 가도 문을 잠갔을거라며 등을 딱 붙이고 일어나지 않았다.   

   《에잇, 쪼개서 쥐부스럼에도 못써먹을 물건짝아.》

    민호는 손바닥을 쫙 펴 소리나도록 그의 뒷잔등을 한매 갈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취사칸에 가보니 과연 문에 쇠를 놓아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따라 개도 짖지 않는 산채의 밤은 유달리 고요하다.

    고개돌려 보니 중앙산채 향란의 거실에 아직 불이 밝아 민호는 취침시간이 다 되어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쪽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난 또 누구라구! 언제돌아왔나요?》

    향란이는 그를 웃음으로 반기였다.

   《녁켠에 왔소.》

   《그러길래 난 보지 못했지.》

    향란이는 무엇인가를 캐물으려다 말고 사나이가 자러온줄로 알고 금침에 손을 댔다.

   《나 몽두춘허려구. 반강자있겠지?》

   《있어요. 마시려거든 마셔요.》

    술은 언제나 갖춰두고 있었다. 녀인은 밤중이 되건만 자기를 찾아와 술을 찾는 사나이를 정찬 눈매로 쳐다보면서 남편의 구미를 맟을줄 아는 세심한 주부모양으로 군말없이 벽가에  놓여있는 탁자쪽으로 가더니 거기 궤속에서 술병을 꺼내놓았다.

    술은 전날 민호가 마시다가 채 못마시고 남은건데 깔축없이 그대로 있었다.

   《술은 있는데 안주는 뭐로 할가요, 곤곤자밖에 없는데?》

    향란은 삼은 닭걀 몇 개를 담은 그릇을 내놓았다.

   《그거면 돼.》

    민호는 녀인이 발쿼주는 닭걀을 안주해서 술을 마셨다.

    향란이는 그가 갑작스레 례모없이 무감각해진것 같아 주시했다. 하지만 불쾌함을 표면에 나타내지 않으려하면서 속으로 할빈갔다오더니 왜 이럴가고 속으로 점쳤다. 갔던일이 마음과는 달리 여의치않은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민호는 달걀 네 개를 안주해서 병에 들어있는 반근술을 다 마셔버렸다. 취기가 올랐다. 그는 향란이를 덥썩 끌어안았다. 녀인의 박속같이 희고 말큰한 젓가슴이 얼굴을 살뜰히 쓸어주었다.

   《불이나 끄자요.》

    향란이는 사나이가 체면을 잃고있지만 거절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화옥당>에서 받은 타격에 대항하는 분풀이였다. 숨을 거세게 톱으면서 행동이 거칠어진 사나이는 거의 발광하듯이 그녀를 오래도록 학대했다.

   《오늘 왜이래요 할빈가더니만 병걸린거 아니애요?》

    향란이는 당혹함을 그저 이 한마디로 발로했다.

    녀인은 그가 갓던일이 어떻게 됐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이틑날도 사흗날도 지긋이 입을 다믈고 캐묻지 않았다....

 

    민호가 염왕산에 들어와 네 번째맞는 묘동이 돌아왔다.

    민호는 이번 묘동기간에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산채에서 보낼작정이였다. 그의 이같은 결정이 물론 곁에있어주기를 바라는 향란이를 기쁘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20발배기 모제르 한자루주면서 민호보고 매일 탄알 5발씩 쏘아 누가 관혁을 더 많이 맞히는가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좋지, 좋아1 해보려거든 해봐!》

    황차 묘동기간에 사격련습을 하려고 계획하던 참이라 민호는 제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때로부터 서쪽골 사격장에는 매일 그들 둘이 나타났고 그때마다 총소리가 산간을 울리였다.

    이번 묘동에 밖으로 나가지 않은 60여명의 류자들은 남쪽산채와 북쪽산채에 갈라져있었는데 민호는 남쪽산채에 있었다. 어느날 사격을 끝내고 숙사로 돌아오니 류자들이 한창 수수께기풀이놀음을 하고있었다. 대머리포토우가 거기에 와 있었다. 그는 성명이 담추(覃秋)고 별호는 비룡(飛龍)이다. 맏두령과 사량팔주를 비롯한 위층류자들은 묘동이 돌아와도 여지껏 산채를 나가는 법이 거의없다보니 이렇게 수하의 새자들과 섭슬려 날을 보내기일쑤였다. 향란의 말마따나 그렇게 하면 산채에 남은 류자들을 위로하는 겸 상호간 리해를 깊게하고 우의를 돈독히 키우는것으로도 되는것이다.

    포토우가 수박을 고르듯이 번들거리는 제 이마빼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더니 입을 열었다.

   《곧은 몸 삐뚜렁 목 그래도 손님오면 먼저나가네.》

   《삼척동자도 알아맟히지요. 그건 긴 대통아닙니까.》

   《맞네. 긴 대통이지. 그럼 또 하나 내볼가. 한집식구건만 앉은 놈 서지 못하고 선놈 앉지 못하는게 뭔가?》

    모두들 눈을 꺼무럭거리면서 얼른알아맞히지 못한다.

    민호가 모았던 량미간을 펴고 먼저주어댔다.

   《그게 절간에 있는 불상들이 아닙니까. 선놈이야 평생 앉지 못하고 앉은 놈이야 서지를 못하지요. 안그렇습니까.》

   《오, 그래! 바로그거야!》

   《맞아, 맞았어!》

    새자들은 모두 탄사를 뽑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대머리는 빙그레웃더 민호를 향해 입을 다시열었다.

   《그럼 이걸 알아맟히게. 털배때기 씹구멍에 들어가 뼈좆문다지는게 뭔가?》

   《하하하....》

    모두들 웃음을 텃뜨렸다.

    민호도 따라웃었다.

    건실한 사나이로서 의례 구실을 해야하는 그놈의 연장을 사타구니에 가두어 놓고 쓰지 않다보니 기능을 상실해 이제는 불깐 말같이 생각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아 원망 끝에 에라 팔자가 이런걸 어쩌나 별수없지 하고는 남들앞에서는 되려 모두들 나를  보거라 계집볼 궁리를 하잖으니 몸이 튼튼하지 않느냐 뭐니뭐니해도 이게 제일좋은 보생법이네라 하고 선전했다는 포토우다.   

    민호는 그를 다시보았다. 속으로 젊잔을 빼는 네입에서도 묘한 쌍담이 나올때가 있구나 하면서 입을 열어 답을 맟췄다.

   《그건 칫솔질하는겁니다.》

    새자들은 대답이 맞다면서 한번다시 탄사를 올렸다.

   《그래두 자네가 도는게 빠르군.》

    포토우는 민호를 칭찬하고나서 듣자니 요즘 실탄련습을 열심히 하고있다는데 이제 어느때 자기와 비교해보자했다. 민호는 동의하나 계획했던 훈련이 끝나면 하자했다. 최고수평에 오르지 않고는 포토우와 겨뤄볼 궁리를 말아야함을 그도알고있었던거다. 독립군에 있을 때 홍범도가 포수출신이 돼서 총잘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염왕산의 이 포토우역시 포수출신이여서 그런지 귀신이 놀랄지경 사격술이 뛰여났다. 민호는 괘주를 한지 얼마안되여 하진국이한테서 이 명사수의 전설같은 래력을 들은바있는데 이야긴즉 이러하다.

    길림(吉林)에 만석자랑을 하는 성이 왕씨(王氏)인 지주 하나가 있는데 심보가 고약했다. 그자는 남을 부려먹고는 언제나 무슨 트집이든지 잡아서 삯전을 깎거나 아예 주지 않았다. 그 수작에 들어 뼈빠지게 일하고도 단돈 한잎못쥐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얼만지 모른다. 바로 그 왕지주가 도적을 막기위해 불질잘하는 사람을 찾다보니 포수인 담추를 마음들어했던것이다. 그는 품값을 많이주마하고 그를 자기집호위를 서게했다. 왕지주한테는 커다란 과수원이 하나 있었다. 담추가 그자의 집에 간지 3년되는 해의 가을이였다. 왕지주는 그보고 과수원에 도적이 드니 그걸 지키라면서 만약 과일을 따들이기 전에 한개라도 잃어진다면 그때는 한해의 보수는 주지 않으리라했다. 이에 그도 그럼좋다. 나역시 한가지 요구있다. 집사람이건 친척이건간에 무릇 내몰래 달려들어 과일을 따다가 들키면 그때는 불질을 할것이니 그런줄을 알라했다. 왕지주는 별다른 생각없이 그럼 그리하라했다.

    담추가 과수원을 지킨지 5일째되는 날 밤이였다. 삼라만상이 고요한데 홀연 널다란 과수원 저 귀퉁이에서《똑! 똑!》소리가 나는것 같았다. 하여 귀를 다시기우리고 들어보니 그건 분명 누군가 과일을 훔치는 소리였다. 담추는 먼저 기침을 깆어 자기가 자지 않고있음을 암시했다. 한데도 저쪽은 그냥따는것이였다. 아무렴 이렇게 먼거리에서 가만가만 따는걸 네녀석이 알겠냐 생각하는모양이였다. 빌어먹을게 그만큼 성심다했으면 감사하달게지 삯전을 깍자고 수작부리다니 원. 언녕부터 그자의 속심을 알고 분노한 담추는 총을 질끈 갈겨 단방에 저쪽을 꺾구려놓고말았다.

    죽은건 왕지주의 삼촌이였다. 그날 왕지주의 삼촌이 조카집에 놀러왔다가 그한테서 담추가 포수출신이 돼서 불질을 아주잘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렇다해도 아무럼 귀까지 뛰여나게 밝겠느냐 하면서 제 조카를 도와 계책을 이루게 한다는것이 그만 황천객이 되고만거다.

    담추는 그날로 거기를 떠나 염왕산에 들어와 마적무리에 가담해 류자로 됐고 불질을 잘하는데다 귀까지 하도밝고 행동이 날래여 비룡이라 별호를 지어 부르게 된것이다.

 

    묘동이 끝나 이듬해 봄이 돌아왔다. 위삼포는 또 한차례 기와가마를 마슬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 목표물로 정한건 밀산(密山)의 대지주 송곰보였다. 전에 청보산패가 그 근방에 있으면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거니와 다른 어떠한 토비도 그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한것은 군대에 나간 그의 아들이 장교가 되여 군사를 휘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면서도 송곰보는 자체의 호위력을 증강하여 지금은 너깟것들이 다 뭐냐 덤벼들겟거든 어디 덤벼들어봐라고 깃대까지 꽂기에 이른것이다.

    내가 거만한 저자의 콧대를 꺾어놓고말테다고 마음먹은 위삼포는 준비가 되자 단오를 쇠고 3일만에 300명의 인마를 끌고 원정에 나섰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옆에 채 붙기도 전에 뜻밖에 강력한 반격에 들어 쟁반밟으러 갔다와서 앞장을 서던 두 류자가 넘어지고 이어서 포토우마저 쓰러지고말았다. 하여 의켠의 맹공격은 좌절당하고말았다. 위삼포는 인명만 내고 철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마마스러 나섰다가 이같이 참패당하기는 생전처음이였다.

   《내가 무슨짓을 해느냐. 아, 어찌하여 이지경이 됐느냐.》

    염왕산에 돌아온 위삼포는 울화통이 터져 죽을것만같았다.

    이럴때면 그는 문을 닫아 걸고 방안에서 혼자 골을 쓴다.

    차챈더가 죽자 적임자가 없어서 여지껏 그 자리를 메우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좋은 포토우까지 잃었다. 대오를 이끄는 코기러기가 없어서야 되는가. 그 자리까지 비울수는 없어서 위삼포는 아들을 정포토우로 승임시키고 비여있는 차챈더의 자리에다는 별수없이 조선족청년을 세우기로 맘먹었다.

    산채에서눈 포토우를 비롯한 류자몇의 장례를 치르고나서 이틀만에 두사람의 승임도 서포되였다. 류자가 사량팔주에 드는 례식이 괘주할 때와는 퍽 달랐다. 괘주할 때는 향을 피워 꽂지만 이때는 마당에서 향을 피우는 의식은 없고 대중앞에 선서만한다. 그런 후 승직자가 선대두령들의 위패가 있는 사당에 들어가 참배만 하면 행사는 끝나는것이다.

    그러면서 점심이나 저녁에는 의례 주연을 크게 베풀어 모든 류자들을 즐겁게 한다.

    이날 오전에 정포토우로 승직한 위용강이 전체류자들의 앞에서 사격표연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애용하는 모제르권총 두자루를 량손에 하나씩 쥐고 나섰는데 그 자태가 자못 름름했다. 새자둘이 유리접시 하나씩 손에 쥐고있다가 동시에 공중에 높이 올려뿌렸다. 위용강은 량손에 쥔 권총을 갈겨 접시두개를 박살냈다.          

   《잘한다!》

    박수갈채가 터졌다.

    포토우로 되자면 반드시 량손잡이가 돼야하는데 위용강은 그 수준에 도달한것이다.

    다음에는 화살맞히기 표연이였는데 그는 통나무등에 꽂아놓은 화살을 처음에는 10보 다음에는 30보 그 다음에는 50보거리에서 권총을 쏘아 꽂는족족 다 맞혀 날려버렸다.

   《명사수다!》

    그의 재능을 지켜보고있던 류자들은 이번에도 박수사태를 쏟으면서 탄사를 련발했다.

    닫는 말우에서 량손에 권총쥐고 좌우로 몸을 돌려가면서 쏘거나 엽전을 날려보내기 표연도 있었다. 이제 남은것은 어두운 밤 향을 피워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그것을 쏘아 맞히는것이였는데 위용강은 그것마저도 자신있어했다. 

    남의 그같은 사격술을 보고나서 민호는 스스로 얼굴이 붉어나면서 자곡지심이 들었다. 못난물오리 이제겨우 개울물을 건너고서는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듯이 자기야말로 그깟재간갖고 만족했으니 실속없는 자만이였음을 그는 깨닫게되였다.    

   《축하해요.》

    의식이 끝나서 향란이가 민호의 승직을 축하했다.

   《감사하오. 그런데 저....》

    민호는 혀끝가지 나온 말을 되삼켜버렸다. 차챈더로 되고싶은 마음을 전번어느땐가도 내비치긴했지만도 정작되고보니 왜선지 돌연스러운 감이 났던거다. 팔대금강으로 떠받들리우는 사량팔주가 되려면 류자노릇을 적어서 20년이상은 해야한다고 왕견도 하진국이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데 나는 염왕산에 들어온지 이제 4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도 대단한 파격승급이니 되려 불안스러웠던거다.

   《저의 부친님께 감사드려요.》

    아니나다를가 향란의 입에서 또 튀여나오는 당부였다.

    소꼬리보다 닭대갈노릇하는게 더 놓다만 그야말로 죽음의 신이 휘파람불며 부르고있는데로 먼저나서야한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저절로 시들해짐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위씨네를 위해 헌신하지 않았던들 오늘 이 벼슬이 차례지지 않았을건데... 민호는 이런 상념에 줄달음치려는 자기를 다잡아놓고나서 고개를 천천히 치켜 들면서 녀인에게 물었다.

   《나보고 위두령한테 감사드리라는데 그래 뭐라고 해야하는지 그걸 좀 알려줄순없겠소.》

   《어쩜 신통히 서당초학동이를 닮았을가. 그걸 다 알려달라니.》

    향란이는 토심스레 뱉어놓고는 결국 입을 놀려 알려주었다.

   《이 한 몸을 염왕산위패로 서게끔 해줘서 고맙습니다해요.》

   《오, 그렇게 하란말이지!》

    민호는 한마디 맥빠진 감탄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죽으면 여기 염왕산의 토비귀신으로 추앙되리라고 생각하니 영광이나 기쁨이 아니라 내가 이제는 과연 염왕의 팔열지옥에 빠진거 아니냐 정년 그렇다면 죽어 귀신이 된다해도 저 세상에서 고통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가슴을 때려 전신이 싸늘해났다. 그는 자신에게 재삼물어보았다. 네가 그래 이젠 진짜토비로 됐단말이냐? 정직개결하리라던 독립군 민호는 어디로 가버리고 점점 이모양으로 탈태환골을 한단말이냐?.... 생각하면 과연 끔찍스러운 일이여서 내가 그래 자신이 옳은가고 의심까지 하게되거니와 그것을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웠다.

    정오부터 벌려놓은 연회석은 두부장끓듯 그냥끓었다.

   《승진을 축하해요!》

    두 번째로 웃음지으며 찾아온 사람은 소춘매였다.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게끔 해준 그를 처음부터 지혜많은 좋은사람으로 여기면서 늘 감지덕지해하고 있었다.

    민호는 선연한 그녀의 모습을 마주보면서 신사답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다.

    흥성한 연회석에 눈길이 달리고 있는 소춘매의 아련한 얼굴에는 웃음꽃이 남실거렸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안광은 제마끔이였다. 소춘매의 눈에 정인군자란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사람으로 나서서 행세하는 어른도 지내고 보면 다가 낯짝에다 탈을 쓴 위선자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자 보아라 나는 이런사람이다 하고 제할짓을 떳떳이 하는 자가 외려 더 실다운 인간으로 돼보이였다. 하여 이젠 자기가 평생을 기탁하고 몸을 맡긴 위용강은 물론이고 민호까지도 그녀의 눈에는 호걸풍의 사나이로 안겨졌던것이다.  

   《차챈더두령! 두령님님께서 받으시오!》

    술이 얼근히 된 류자여럿이 이켠으로 욱 쓸어와 메뚜기를 쫓는 수탉모양으로 답치기를 놓으면서 분대질을 쳤다.

    민호는 사량팔주석에 앉아만있을 수 없어 술잔을 들었다.

   《오!... 》

   《아!...》

    그가 자리에서 얼른일어나니 류자들은 환성을 올렸다. 그 무리에 진정으로 축하하는 자가 있고 덩달아 끼여 노는 자도 있을것이였다. 직심스러운 왕견이와 하진국의 얼굴도 보였다.

    손에 쥔 술잔을 높이들고 자기와 건배를 청하는 자들과 술잔을 맛쪼을 때다. 진사해가 중뿔나게 나타나 엉너리를 떠는것이였다.

   《첨자만두령님의 행운을 축하해서 자 나두한잔!》

   《건 무슨뜻인가?》

    왕견이 그 소리를 잡아듣고 눈알을 굴리였다.

   《불알이 세쪽같아서. 하하하....엉? 이거 내가 롱담이 그만 지나쳤군!》

    진사해는 매양 그본새로 너털웃음쳤다.

    민호는 물러가는 그의 뒤통수에 눈총을 놓고나서 땅바닥에다 침을 탁 뱉었다.

   《구데기같은 자식, 그 꼴이 몇참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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