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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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의 밤>> 제2부(25)
2015년 02월 04일 10시 02분  조회:2472  추천:2  작성자: 김송죽
 

                            25 

      

 

 

 

 

    전화(戰禍)를 입고있는 만주땅. 새만주국이 성립되였어도 총소리는 멎는 날이 없고 곳곳에서 비명횡사가 끊지 않았다. 처절한 곡성은 듣는 사람이 구곡간장을 끊을 듯. 3천만이 당하고있는 처경에 그야말로 초목이 흐느낄 지경이다.

    하건만 여기 염왕산만은 새외도원인양 매양 평화로운 기분에 잠겨있다. 물론 산밖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는건 아니지만 집에 화가 떨어져 부득히 가야 할 사람을 내놓고는 어느 류자든 산채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전대로 마음편안히 주사위를 놀고 장기를 두고 술을 마시였으며 잡담과 음담패설로 세월을 보냈다. 이런 환경이 이네들에게서 반일의식을 흐리우고있었던것이다.

    향란이가 몸단장을 끝내고나서 건너방에 가보니 오빠는 어디로 가고 올케혼자 책을 펼쳐들고 무엇엔가 정신팔고 있었다.

   《올케는 뭘 그리보고있어요?》

   《당사주. 재미있네요.》

    소춘매는 얼굴을 들어 시누이를 향해 웃고는 다시 책에다 고개를 떨구었다.

   《운수를 맟추느라? 팔자가 어떻대요?.... 내것두 좀 보지.》

    향란이는 소춘매가 들었는지 말았는지 반응이 없자 두꺼비 메뚜기를 삼키듯이 탁 채여 책장을 훌훌 번져 그림만 보다가

   《팔자도망은 독안에 들어도 못하는거야.》

    하면서 탁상우에다 훌 던졌다.

    소춘매는 토심스러워 눈을 할끔빨고나서 그 책을 다시주어들며 말했다.

   《내 시누이걸 봐줄가.》

   《그런거는 보나마나. 안보는게 약이야.》

    향란이는 심드렁한 태도였다.

    그 당사주는 전에 불임약만드는 법을 향란에게 가르친바있는 녀인이 보배처럼여겨 애지중지하면서 손에서 놓지 않아 가위에 보풀이 인 책이였다. 여지껏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었는지 보이지 않던것이 나왔다. 아마 오빠가 건사했다가 안해가 심심해하는 것 같으니 보라고 내놓은 것 같았다.

    워낙 향란이처럼 책보기를 즐기는 소춘매는 마치 보배라도 얻은 것 처럼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향란이가 다시보자니 던져버리자고 그러는 줄로 알고 뒤로 감추면서 방어태세까지 취하니 향란은 우수워죽겠다고 배를 끌어않았다.

   《그만웃고 내말이나 들어봐요.》

    소춘매는 시누이가 웃음멋기를 기다려 사주본 얘기를 했다.

   《내나 시누이나 다 팔자는 기구해요. 둘다 무자식이래.》

   《무자식이면 뭐래. 무자식이 상팔자지.》

   《그게 어쩜 상팔자되나?》

   《자식같아나 속태우는 일 없으니 그러지.》

    향란의 대답은 단순하고도 시원했다.

    평생 새끼하나 못낳아 볼 이 두 돌계집은 팔자얘기가 시들해지자 이제는 보름전에 산채에 왔다간 오인 정민호가 하고있는 일을 꺼내놓고 얘기했다.

    중동철로에서 일해온 공인들로 조직된 한 자그마한 유격대가 해림웃쪽에 있는 고령자(高嶺子)에서 목단강으로 오는 렬차를 전복하고 거기에 탓던 일본군을 섬멸할 때 민호도 자기의 무장대를 거느리고 가 협력해서 그번의 전투가 큰 승리를 거두게되였다. 전복된 차에는 일본군의 군수품이 적잖았다. 이쪽에서는 군용털탄자 500착과 털내의 1,000벌외에도 탄약 50상자, 사탕가루 20포대, 밀가루 5마차를 염왕산에 갖고왔던것이다.

    그것은 형세가 불리해서 큰가마를 마스지 못하고 들어앉아있던 류자들을 얼마나 기쁘게했는지 모른다. 위삼포는 돼지를 잡고 주연을 베풀어 염왕대류자들을 열열히 환영했던것이다.

    그번에 민호는 한주일간 묵고 산채를 나갔다.

    향란이는 올케앞에서 장성이 센 오인 정민호야말로 현시대의 영웅답다면서 안해가 리별한 제 남편을 그리듯이 그를 그리면서 신상에 어떤 변고라도 생길까봐 근심하고 념려하군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난 꿈에 그이가 타고다니는 백말을 보았어요. 건데 웬 일인지 사람은 안뵈이구 말만 와서 울고가던란말이애요. 흉몽이 아닌지.》

   《어린애를 강가에 내보냈나요. 어쩜 장참.... 이젠 그따위 불측한 생각을랑말아요. 내가 뭐랬어요, 그인 불사조라잖아. 싸움을 하느라니 너무나고달파 올수 없어 꿈에 백마라도 보라고 보낸거야. 안그래?.... 내 해몽이 딱들어맞을걸.》

    소춘매는 놀림절반 위안절반해서 향란이를 웃기였다.

    꿈에 백마를 보면 죽는 수라고 들어온 향란이는 올케의 해몽대로 좋은쪽으로 생각을 굴리면서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올케! 갑갑한데 우리 바깥 좀 나갔다올까? 화장품도 살겸.》

   《분과 크림을 벌써 다 썼나보지.》

   《다 쓰기야 뭐. 바람쐬자구그러는게지.》

    향란이는 말만들었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일본병을 제눈으로 직접보고푼 생각이 났던것이다..

    두 녀인은 각기 자기 말에 올라 태평진으로 달리였다.

    향란의 말도 소춘매의 말도 다 털빛이 고운 백마였다. 그 말들은 원체 덩치크고 좋은데다 굴레며 안장이며 가슴걸이 따위의 갖은 삼거리는 물론 등자까지도 구리로 장식해서 멋들어졌다. 그런것을 얼굴고운 녀인들이 탔으니 금상첨화라 황홀감을 자아낸다.

    위삼포가 안다면 그들을 절대 그런모양으로 버젓이 나돌게 하지 않을것이였다. 이게 어느땐가. 아직도 란리판이 끝나지 않았는데. 하건만 두 녀인은 여유작작하게 그따위가 다 뭐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마치 유람이라도 하듯이 기뻐했다.

    한창좋은 봄날씨다.

    태평진은 정안군병사들이 북문을 지키고있었는데 드나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주로 남자들만 몸수색하고 여자는 별반 건드리지 않는것 같았다. 더구나 말타고 의젓이 나타난 두 녀인은 어느 세력가의 유한부인같아보였는지 허리까지 굽혀가며 들여보냈다.

    해자를 파 토성을 쌓고 네귀에 포대를 세운 태평진의 거리에서 렬을 지어 다니는 일본병을 볼 수 있었다. 좀 긴장한 감을 던져주고있지만 이곳 주민들의 생활이나 질서는 그리흩어지지 않았는지 예전과 별반다른것 같지 않았다. 가게마다 문을 열었고 거리에는 의연히 분주할지경 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던것이다.          

    여기에 오면 말을 건사하기가 말째였다. 태평진에는 마방이 하나뿐인데다 그마저 동남쪽귀퉁이에 있거니와 늘 만원이여서 오래묵지 않을 사정이면 거기로 가게되지 않았다.

    말을 어떻게 건사할가고 궁리하던참에 마침 저기 잡화점앞 행길가에 전선주 한 대 서있는것이 눈에 띠였다. 전기를 가설하느라 세운지 오라잖은것이였다. 

    두 녀인은 말을 그리로 끌고가 서슴치 않고 매놓았다.

   《시누이, 혼자들어가 장봐요.》

   《아니 올케? 누가 대낮에 남의 말을 감히 훔친다구 그래요.》

   《그래두..... 난 말없이는 걸어못가겠어.》

    소춘매는 이러면서 기여히 시누이혼자 잡화점에 들어가라했다.

    향란이는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와 올케가 오래두고 쓸 분이며 크림이며 치약같은것들을 두루사고나서 더 사야할게 무엇일가 궁리하다가 올케를 주려고 클리프 몇 개를 더 사갖고 거기를 나왔다.

    그가 밖에 나와보니 그사이 말을 매놓은 전서주가에 숱한 사람이 모여있었다. 향란이는 대뜸 일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려 그리로 달려갔다.

   《올케 무슨일인가요?》

   《이 경찰이 글쎄 날보고 벌금을 하래요. 호....》

    시누이를 보니 구원자가 나진것 같은지 소춘매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경찰은 향란이를 보더니 허리를 깜신거렸다.

   《저 아씨님! 이런겝니다. 전선대에다 말을 매지 말라고 이미 통보까지 내렸는데 그냥 이렇게....》

   《정말 시시하게 노네!》

    향란은 그가 말을 더 못하게 문질러놓았다.

   《깜박 모르구맨것두 그래 죈가요. 얼마를 벌금하래요?》

    제쪽에서 외려 도리가 있는것 처럼 쏘아붙이면서 돈지갑을 여니 경찰은 손을 내저었다.

   《관두시오! 관두시오! 제도를 다시위반하지 않으면 됩니다.》

    시끄러워운지 그만 가버리는 경찰의 뒷등에 대고 향란이는 한마디 욕을 던졌다.

   《피자!》

    모여선 사람들은 저마다 말이 과연좋다고했다.

    소춘매가 길건편에 있는 사진관에 눈길을 꽂더니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시누이, 우리 왔던김에 사진이나 한 장 찍고갈가?》

    류자들은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이 있어서 만일의 경우 그것이 경찰손에 들어가는 날이면 오히려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향란이는 나이를 서른살넘어먹도록 여직 한번도 사진기앞에 나선본적이 없다. 한데 오늘 올케가 기여이 기념으로 한 장 같이찍고싶어하니 막을 수 없었다.

    마침 사진관에는 사진찍으러 온 사람이 거의 없으나다름없었다. 그들이 들어가니 소춘매모양으로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서양식으로 빠마를 한 미모의 녀인하나가 제 애인인듯한 멋진 사나이와 머리를 맛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이 찍고나니 이쪽차례였다. 두녀인은 그 자리에 가 앉았다.

   《아가씨, 아가씨는 여기분아니지요?》

    사진을 다 찍고나서 생각밖에 사진사가 소춘매를 눈박아 보면서 건늬는 말이였다. 소춘매는 그가 전혀 면목이 없었다. 하여 어정쩡 보기만하는데 사진사가 다시금 알은체했다.

   《아가씨는 할빈 연하루에 있잖았습니까? 참 오래간만인데요.》

    사태가 좋지 않은지라 향란이가 제꺽 끼여들었다.

   《사람을 잘못봤네요. 세상에 몰골이 같은 사람이 얼마라구요. 우리 올케는 아직도 할빈이 어디붙은것도 몰라요.》

    사진사는 고개를 찌붓거리더니 그렇다면 내가 아마 사람을 잘못본게로군 하면서 미안함을 표시했다.

    향란은 그보고 사진을 딱 두장만 씻어달라 부탁해놓고 소춘매와 함께 거기를 나와버렸다.

 

    담즙질이 있는 위용강은 요즘 늘 꿈자리사나왔다. 남한테 쫓겨 기진맥진하지 않으면 매를 맞았다. 한정없이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는 나오지 못하기도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했다. 그러다가 요행 떠내려오는 통나무를 만나 끌어안고 보면 그것은 제 안해의 몸뚱이였다. 어떤때는 안해를 질식시켜 아부재기를 치게 만들기도했다. 그럴때면 위용강은 심장이 어찌나 세차게뛰는지 잠을 다시이루기힘들었다. 왜 이럴가? 내가 왜 악몽만 자꾸꾸는걸가?.... 한번 꾼 악몽은 강박상태에서 환각을 만들어내기도했다. 그것은 그를 몸서리치게 하는 스산한 장면이였다.

    남편한테서 전염됐는지 소춘매도 가끔 꿈자리가 사나왔다. 

   《이건 아마 장평때문인것 같애요. 나가본걸 들어와서 그대로 번질건 뭐얘요. 어떤 얘기는 해도 듣지 말았어야 옳았어요.》

    소춘매는 지어 밥맛까지 잃을 때가 있다면서 불평이였다.

    위용강은 자기도 아마 그래서 그런모양이라했다. 간밤에도 그는 인중에 단추만한 콧수염을 단 안경쟁이 일본군장교가 긴 군도를 번쩍올려 자기 목을 내려치려는 꿈에 가위눌려 신음하다가 안해가 깨워서야 정신차릴 수 있었던것이다.

    며칠전에 장평이 다른새자와 함께 볼일이 있어서 태평진에 갔다가 거기서 과연 끔찍한 일을 목격했다. 그곳을 점령하고있는 일본군이 반일분자를 잡아다 참혹하게 학살했다. 그자들은 장정 다섯과 부녀 둘, 아이 하나를 고문하여 거의 반주검이 되게 만들어놓고는 옷을 벗겨 웅덩이에 처넣고는 갇혀있던 굶주린 군견 20여마리를 풀어놓아 물어죽이게 했다.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사나운 개들은 사람을 물어죽이고 살을 뜯어먹었는데 어떤 깨는 아가리에 시퍼런 창자를 문채 뛸쳐나와 질질 끌면서 거리바닥을 뛰여다녀 행인들을 질겁케 만들었다.

    장평은 산채에 돌아와 본 그대로 생동하게 서술했던것이다.

 

    품들여 점찍어놓은 큰기와가마가 몇개있었건만 모두 일본군쪽으로 넘어가 그들의 보호를 받고있어서 이전같이 쉽사리 들부실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위삼포는 일본군을 몹시 증오하게 되였다. 그는 이럴바하고는 차라리 일본군의 군고를 털어볼가고 궁리를 해보기도했다. 한데 그러자면 큰싸움을 해야하는데 제 혼자의 힘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일본군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한편 의용군인 왕덕림의 구국군, 리두의 호로군, 정초의 자위군은 다가 처음에는 왁자하게 소문내던것이 새해를 잡자 년초부터 완강한 적의 진공앞에서 련속패전을 거듭하다가 나중에는 형편없이 되고말았다. 정초는 일본군에 투항했고 리두와 왕덕림은 배겨내지 못하고 국경을 넘어 로씨야로 철퇴했다.

    일본군은 염왕산주위의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적들은 아직도 만주의 주요성시와 철도연선만 장악했을 뿐이니 위만정권은 사실상 공고하지 못했다.

   《우리는 왜 이꼴이 되는가, 힘을 합쳐 싸우면 되련만.》

    민호는 10월 중순에 이르러 의용군과 련합작전을 해오던 3,000여명의 한국독립군마저 맥을 더 쓰지 못하고 와해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나도 그들과 결맹하여 꼭 련합작전을 해보자고했는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고말았구나!

    이 몇해간 한국독립군은 몇차례 싸움을 아주본때스레 했고 전과도 휘황했다. 구국군 시세영부대와 손잡고 함께 이쓰카라련대를 전멸시킨 수분대전자전투같은것은 청산리전투만 못지 않아 력사에 기록할만한것이였다. 한데 그렇게 싸워온 부대가 결국 자기가 믿어준 부대의 손에 리유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무장해제를 당해서 그만 붕괴되고만것이다. 그 내막을 민호는 알수없지만 한국독립군이 그렇게 되였다니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이 아파났다. 어쩌면 로씨야에 건너갔던 한국독립군이 그곳의 자그마한 역전마을이나답지 않은 블라고베쉔스크(해란포혹은 자유시라고도 부름)에서 남의 군권쟁탈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붕괴되고만 그 피비린 사변이 오늘 여기서 또다시 재연되는것일가. 아, 아, 세상도 야박하구나! 이제는 우리의 독립혁명은 누가 완성한단말인가?....

    최기덕이도 그 한국독립군에서 총들고 싸웠을텐데 지금은 어떻게 되였는지? 살아나 있는지?....

 

    민호가 모르는 일은 너무도 많았다. 한국독립군이 와해되자 주요간부들은 하나 둘 관내로 나갔으나 어떤 장병들은 나가지 않고 만주에 그냥남았다. 그들은 다른 의용군부대를 찾아 살림속에 들어가 총을 다시잡고 계속싸우고 있었던것이다. 최기덕역시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한국동립당에서 군인모집이 있어서 빈현에 갔다가 거기서 다행히 민호의 백형 민수를 만날 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적기단사람은 아니지만  그역시 공산주의경향이 있 사람이였다. 하여 두사람은 만나자마자 남달리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최기덕은 불행한 자유시사변때 흑룡강에 뛰여들었다가 4일만에 민호와 같이 극적으로 허저인손에 구원된 일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다가 언제면 민호를 다시만날 수 있을가고 늘 그리고있었던것이다.

   《그야 다시 토비굴에 들어가도 반일에 나섰을겁니다.》

   《나도 그리믿소, 적잖은 살림대들이 구국성전에 나섰으니.》        기덕이도 백형도 이렇게 단언하고 있었다.

    한국독립군이 와해되여 장병이 제가끔흩어질 때 최기덕과 정민수도 갈라져 살림속에서 헤매다가 각기 반일부대를 찾았거니와 또한 거기서 지하공작을 나선 중국공산당원을 알게되어 둘은 각기 다 그 당에 가입한것이다. 항전대렬에 서서 선줄을 이끄는 조선사람의 혁명가와 투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즈음 할빈동부지구에서 중국공산당이 독립적으로 령도하는 하나의 무장대가 창건되기도하였는데 그 명칭은 주하동북반일유격대였다. 초창기 인원은 13명이고 대장은 이제 나이가 20대중반에 이른 조상지(趙尙志)이라는 한족청년이였는데 정치지도원과 경제부장을 맡고있는 사람은 다가 조선족이였다.

    한편 자발적인 반일의용군가운데 아직까지도 항전을 계속하고있는 살림대가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기치중(祁致中)의 명산대(明山隊)(주)를 내놓고 손을 꼽아야 할 것이 아마 오군자(五軍子)였다. 오군자는 싸움을 잘하여 계속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거다. 기덕이도 민수도 다가 오군자에는 염왕대라는것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그것이 바로 염왕산 위삼포토비가 내놓은 반일무장일것이다, 오군자의 두령이 오인이라는 조선족사나이라니 그게 바로 민호일것이라고 짚고있던것이다.

    날이 갈수록 동생생각이 간절해진 정민수는 내가 언제면 그애를 만나볼 수 있을가 했는데 마침 기회가 생기였다. 신분을 속이고 청림대(靑林隊)에 들어와 참모장노릇을 하고있는  김휘가 그를 조용히 불러 중요한 담화를 했던것이다. 김휘는 민수와 동갑이고 그도 3.1운동직후에 만주로 들어왔다.

   《듣자니 오군자의 두령이 조선사람이라는데 그게 동무가 찾고있는 동생이 아닐가?》

    그가 하는 말이였다.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디 만날 수가 있어야지.》

   《만나는 방법이 있지. 동무가 거기로 가란말이요. 토비무장이라해서 꺼릴거야 없잖소. 황차 그들이 우리보다 싸움을 더잘해 전과도 숱해올리고있는데. 우리는 되도록 손을 빨리써서 그들을 우리쪽으로 끌어오잔말이요. 모든 반일력량을 련합하여 반일반제투쟁과   유격운동을 전개하잔말이요.》

    김휘는 이것은 당내에 하달된 상급의 지시라면서 반제통일전선을 집행하고 무산계급령도권을 쟁취해야한다고 했다. 그 가 말하는 상급이란 중공만주성위(中共滿洲省委)를 가리키는 것이고 거기의 결의(決議)니 곧 지시라는거다.

   《나더러 토비속에 들어가보란말이지.》

    그러잖아 백수를 써서라도 동생을 만나보고싶었던 민수는 자기를 믿고 임무를 맡기니 못하겠다는 말이 없이 흔쾌히 나섰다.

    

    초가을의 어느날 정민수는 동생을 동생을 만나러 염왕산이 있는 장광재령에다 발을 들여놓았다. 수행인원 둘까지해서 모두 세사람이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위험한 길이였다. 하지만 대도리앞에서야 사리가 통할게 아니냐 하는 제 생각에서 신심이 부풀기도했다.

    한데 그들은 정보를 잘못장악했다. 얼마전에 염왕대가 왔다갔을 뿐 오군자가 다 함께 염왕산으로 들어온적은 한번도 없는것이다. 민호도 다시들어오지 않았다. 그런줄을 모르고 그들은 여기에 있는줄로만알고 삼림을 파고들었던것이다.

    산에서 발이 익은 그들이였다. 한들 낯선산에서야 무슨 용빼는 재간이 있는가. 더구나 짐승도 길을 잃고 울어댄다는 염왕산에서.

    그들일행은 산채밖 50여리 지점에 설치되여있는 보초선에서 류자들의 손에 붙잡혔다. 류자들은 그들의 몸을 수색하여 권총 3자루와 경비로 쓰는 얼마가간의 돈을 빼앗아냈다. 무기에는 흥취없는 류자들이라 돈을 보자 그 자리에서 즉각 나누어가졌다.

    수행인원중에는 춘만이라 부르는 조선젊은이가 있었는데 몸을 무리하게 수색당하고 보니 분하기 짝이없는지라 참지 못하고 우리는 반일부대의 대표다 너희들의 두령을 만나 단판할 일이 있어서 온건데 왜서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느냐고 그닥지 않은 중국말로 항의를 했다가 그만 혼빵났다. 류자들은 야 이 철도 모르는 메뚜기야 어디라구 이꼴로 놀아대는거냐 하면서 치고 박고해서 그를 늘어지게 만들었던것이다.

    정민수가 이 젊은이는 아무것도 몰라서 망탕소리를 했으니 제발 용서해달라 빌었다. 그래서 춘만이는 더 큰 화를 입지 않았다. 

    보초선의 류자들은 그들 셋의 눈을 싸맨 후 말잔등에 태워서 산채로 들려보냈다.

    위삼포는 선문도 없이 자기를 찾아온 세 사나이를 그닥반가와하지 않았다. 셋중 나이가 제일많은 사람이 자기는 이곳에 와있는 민호의 백형이라 자아소개를 하니 험하게 굴수는 없지만 그가 혹시 왜놈의 밀정이나 아닌지 해서 경계했다.

    이쯤한건 각오하고 들어온 민수였다. 다행히 한어로 제앞의 말은 할줄을 알아서 그는 입을 다시열어 간절히 사정했다.  

   《절 제발믿어주십시오. 민호는 정말 제 동생이 옳습니다. 안그런걸 제가 이토록 우기겠습니까. 본인이 오면 제꺽알건데요. 걔를 만나게해주십시오. 저는 개를 볼려고 위험불구하고 찾아온겝니다.》     《네가 동생을 만자는 용의가 뭐냐?》

   《그하고 한가지 사정얘길 할것있어서 그럽니다.》

   《사정얘기라니 딱 그하고만 할 얘기냐? 그러니까 내가 들어서는 안될소리란말이지?》

   《아, 그건 저....》

   《왜서 말을 못해?》

    대방이 쭈물대니 위삼포는 단통 낯색이 굳어지면서 눈살을 꼿꼿이 세운다. 그의 눈은 네놈이 나를 어째볼려고 게발아들어온 협화회녀석이나 아니냐 의심하고 있었다.

    민수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에 구멍이 났음을 깨닫고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동생의 이름만 대면 반가와할 줄 알았는데 판판달랐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행동이 너무가벼웠어. 스스로 반성해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변화무쌍한게 토비라는데 동생이 혹시 저 늙은것과 화합이 맞지 않은거나아닐가, 정녕 그렇다면 있어도 만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꼬리물고 불길한 예측들이 착잡하게 갈마들었다. 그는 머리가 뗑해나기까지 했다.

    위삼포의 예리한 눈길이 그의 심리상태를 짚어보고 있었다. 흡사 사나운 삵이 토끼를 잡아놓고 먹기전에 혼을 빼듯이.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차리라했더라, 정신만은! 민수는 숨을 길게 들이긋고나서 그앞에 실속을 풀어놓았다.

   《전 워낙은 한국독립군이였습니다만 지금은 청산반일부대에 있습니다. 두령께서 혹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한국독립군은 갑작변을 당해 다 흩어지고....나는 동생을 찾느라 여지껏 헤맨겁니다..》

   《여기에 동생이 있다는건 어떻게 알게된건가?》

   《최기덕이라구 하는 동생의 친구가알려줘서요.》

   《언제?》

   《구일팔사변이 금방나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삼년철이 다 되는군. 건데두 인제야 찾아온단말이지? 꼭 그 목적뿐인가? 다른생각은 없고?》

    위삼포는 바투들이댔다. 이 로련한 토비괴수는 대방의 똥집까지 다 들여다보는것만같았다. 동생을 만나보자고 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온 것이다. 그것을 숨겨서야 되는가?

   《우리는 싸움을 그냥해왔지요. 지금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싸우자고 보니 력량이 모자라서....》

   《그래서 자는 범을 깨우는건가? 산에서 끌어내려구?》

    위삼포는 경험도 수완도 없이 덤벼치는 그를 하룻강아지로 보고있었다. 그러면서도 험하게 박대는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거짓같게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청산패의 <대표>라고 하는 민수와 둘을 민호가 맨처음 여기로 왔을 때 갇힌바있는 그 깔까래를 편 온돌방에서 그날밤을 지내게 했다. 그냥 쫓아버리기보다 좀 두고 볼 생각이였다.

    한편 민수는 아무튼 말은 꺼내놓은것이니 동생을 만나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반일전을 잘해나가기 위해서 서로손을 잡을데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담판해보는게 났지 않을가 생각했다.

    민수가 이러고 있을 때 향란이가 문득나타났다.

    세사람의 눈길은 모두 그녀의 몸으로 날아갔다. 춘만이를 내놓고 다른 한 청년, 부대에서 련장노릇을 하고있는 안원식이 녀인의 도고한 태도에 어떤 위압감이 생겨 혀아래소리도 뇌이였다.

   《저건 왼 계집년일가?》

   《아마 두령의 딸님인것 같은데 입조심하라구.》

    민수는 마뜩잖아하는 그한테 주의주었다.

   《저 계집년도 토비니 사납겠지.》

    춘만이는 들어올 때 곤욕을 치른지라 그녀를 밉게봤다.

    한데 녀인의 태도는 생각밖에 달랐다. 그녀는 세사람을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

   《세분중 누가 민호의 형님인가요?》

    목소리가 부드럽거니와 화기애애한지라 셋은 멍해졌다.

    향란이는 얼굴에 웃음지은채 다시물어왔다.

   《어느분인가요? 듣자니 민호형되는 분이 동생보러오셨다니....달리생각말아요. 난 그분을 보러온거얘요..》

    민수가 나섰다.

   《접니다. 바로 접니다. 아가씨는?...》

    녀인은 상냥한 웃음으로 존경을 표하면서 자기를 소개했다.

   《전 향란이라고 부르는데 오인의 친구얘요.》

    동생의 친구라니 민수는 알아맞히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전에 최기덕이한테서 동생이 여기에 들어와 있으면서 토비두령의 딸과 치정관계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바있었던것이다. 

   《오 알만합니다. 내 동생이 제 각시를 못찾고 여기서 다른녀인을 보구있었다더니 바로 그녀로구만!》

   《그런것까지 알고있었나요.》

   《그 애의 친구가 알려줘서....》

   《그렇구만요! 참 그 친구는 어떻게 됐나요. 지금 생존인지?》

   《생존이지. 나하구는 다른 삼림대에 들어 싸우고있지요.》

   《아, 그런가요. 그러잖아 가끔 뇌군하던데.... 건데 참 안됐어요, 모처럼 찬아와갖고 만날분을 만나지 못해서.》

   《아가씨, 건 무슨소립니까? 내동생이 여기에 없다는겁니까?》

    향란이는 바로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댁였다.

   《대체 어떻게 된건가?》

   《접때들어와 한주일가량있곤 나가서는 다시들어오질 않고있어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걔가 여기사람이야 옳겠지?》

   《옳아요. 옳구말구요. 왜 여기사람아니겠나요.》

    향란이는 동생을 못만나서 몹시 서운해하는 사나이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물었다.

   《그러니 그분이 여게있을줄알고 찾아오셨겠군요?》

   《그렇습니다. 오군자가 염왕산의 무장아닙니까. 그러니 여기에다 둔을 치고있는줄로 알았는데.》

   《왜 여기다 둔을 치겠나요. 오군자가 다 우리 염왕산의 것이  아닌데요. 거기서 염왕대 하나만 우리해죠. 하긴 어찌보면 다 우리해같기도하지요. 거기 맏두령이 우리 사람이니까요. 오인이 누군지 알아요, 그가 바로 정민호인거얘요.》

   《그렇겠지! 내 짐작이 들어맞았어! 하하하...》

    민수는 웃고나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헌데 그자식이 여기도 안있구 어디루갔을가? 있어야할테데.》

    조선말이여서 향란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없으니 방법없습니다. 나가 찾아봅시다.》

    춘만이가 하는 소리였다.

    안원식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산채를 나가는게 그리급하지 않다면서 위삼포앞에 이미 찾아온 다른 하나의 리유를 내비치였으니 노여움을 다시촉발하더라도 되든 안되든 한번 더 끄집어내보자했다 이 훌륭한 토비무장을 반일전에 내몰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하면서.

   《생각은 무지개같소만 만나야 할 사람이 없는데 어디될가?》

    춘만이는 되지 않으리라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토론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나요?》

    향란이가 알고싶은지 물어보는 말이였다.

   《위두령께서 반일을 어떻게 생각하고계십니까? 우린 그분하고 긴하게 상담할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안원식이 알려주었다.

   《참 괴상한 질문을 다하네요. 저의 부친이라고 왜 항일을 안하겠나요. 생각해봐요. 그것을 안할분이면 기마대를 주어서 데리고 나가싸우라했을가요. 그렇지 않아요?》

   《하긴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온건데 아까 위두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가 온걸 대단히 언잖아하시더구만, 사실은 내가 임무를 맞고 온건데.》

   《수편하려구 드니 그러지요. 되지도않을 짓을.》

   《왜 안됩니까?》

    민수가 따지듯 하니 향란이는 맵짜게 쏘아붙인다.

   《염왕산을 어떻게 보고그래요. 그깟 청룡대가 다 뭔데? 우릴 수편해서 제걸로 말들자구, 흥! 두꺼비 고니고기를 먹자는게지.》

    듣고보니 과연그러했다. 한 개 사단의 힘이나 갖고있으면 몰라도 인원이 백명도 안되는 자그마한 청림대가 정비되고 완강한 염왕산토비무장을 자기부대에 끌어넣으려는 생각 그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는것이였다. 열망과 욕심이 분초를 가릴줄 모르면 그런것이다. 민수는 파악이 미숙했음을 이제야 심절이 느끼였다.

   수편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같이 손잡고 련합작전은 할 수야 있지 않는가. 제기법이 다르지만 산속에 들어앉아있는 무장을 항전에 내몰면 구경은 같은것이라고 민수는 생각했다.

   《련합작전을 해볼 의향이라면 용기를 내봐요. 저의 부친도 도리를 아시는 분이길래 무턱대고 반기를 들지 않을거얘요. 그러잖아 왜놈을 대단히 미워하고계시는데요.》

    민수가 련합작전을 하련다니 향란이는 이같이 지지했다.

    정민수는 위삼포를 다시만나 그의 앞에서 염왕산과 청림대는 련합여 항일을 해보는게 어떤가고 제기했다. 위삼포는 곰곰이 듣더니 항일이야 해야지 해야지 했다. 그러면서도 태도는 너무나 차가와 민수는 속이 개연치않았다.

    이시각 위삼포는 언젠가 보승(保勝)이란 산림대가 이름이 쌍승(双勝)으로 고쳐진 일을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9.18사변이 나자 보승내의 원동북군병사였던 왕아신(汪雅臣)이란 류자가 항일을 반대하고 백성을 그냥 털어먹을각질하는 두목 보승을 죽여버리고는 그것을 쌍승이라 고치쳐갖고 항일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염왕산도 자칫 그모양이 될것같아서 위삼포는 기분이 좋지 않았던거다.

    민수는 향란이를 찾아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위두령께서 련합작전을 동의하더구만요. 헌데 참 리해안됩니다. 위두령의 마음이 정녕 그렇다면 나하구 왜 그토록 랭담했답니까? 너무하지않는가요.》

   《너무한게 뭐얘요.》

    하면서 향란이는 제 아버지를 두둔했다.

   《저의 부친께서는 이젠 년세가 많으셔 마상에 올라 산채를 나가 싸울 수 없는거얘요. 그런분하고 나가자면 반가와하겠나요.》

   《오, 그렇지! 알만합니다!》

    민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한편 위삼포는 당전의 형세가 염왕산류자라 하여 산채에만 그냥 들어앉아있게 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기시작했다. 황차 위험불구하고 찾아와 손잡고 싸워보자고 권유하는데 그것마저 거절한다면 그때는 평판이 어떻게 될지 그것이 우려돼였다. 하여 위삼포는 사량팔주를 모여놓고 회의를 열어 그들의 의사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때 용력을 들날렸던 팔대금강중 반수이상이 나이많아 이제는 총들고 나가 싸울 수 없었다. 허나 지금은 이전처럼 심드렁한 태도가 아니였다. 오인이 나가 용감히 싸웠기에 염왕산의 이름을 크게 세워준것이다. 그들은 다가 반일을 한다해서 산채가 뿌리빠질건 아닐테니 류자들을 할 일이 없어서 빈들거리게 말고 더 내보내여 왜적을 잡게하는게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위삼포는 마침내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10일후. 만단의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지자 위용강이 200명류자를 거느리고 산채를 나갔다. 청산대의 대표로 온 이쪽 세사람도 말 한필씩 받아 타고서 함께나났다.

    이 알쭌한 기마대에 비하면 지금 저쪽에 있는 청산대는 얼마나 초라한가. 말은 물론 무기마저 형편없는것이다. 민수는 자기가 이같이 훌륭한 기마대를 이끌고 동지들 앞에 척 나설때의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수편은 하지 못햇지만 이 하나의 훌륭한 기마대를 반일에 내세우는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청림반일부대와 회합하기 위해서 남진하고있던 기마대는 태평진을 앞에 놓고 행진을 멈추었다. 태평진은 지난해 5월에 일본군에게 점령된 이래 그네들의 든든한 거점으로 건설되여 있었다. 주둔군은 무기장비가 훌륭했다.

    민수는 눈앞에 있는 태평진이 생소하지 않았다. 전해의 여름에 민수가 소속해있었던 한국독립군은 쌍성(雙城)을 들이 칠 때의 모양으로 한조에 20명씩 15개조로 나누고 가운데 기관총대를 세워 정면과 좌측으로 태평진을 공격했으나 련합군의 배합이 제대로 되지 않은 관계로 성공못했다. 후에도 두차레나 들이쳤지만 번마다 실패하고말았던것이다.

    태평진은 지금도 난공불락의 성새로 오연히 자리틀고 있었다.

    이 완고한 보루를 그래 깨뜨리지 못한단말인가고 궁리하던 정민수는 머릿속에 문득 한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 두 전우에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하기오. 들어가서 가짜투항을 하잔말이요. 그래서 훌륭한 무기를 정비한 다음 거기를 살짝 빠져나오잔말이요. 기관총, 박격포가 생기게 될게 아니요. 연극을 잘만 놀면 성공은 떼놓은 당상일거요!》

    안원식이 그 소리를 듣더니 펄쩍 뛰였다.

   《무슨 궁리를 그렇게 하오. 요행동원시킨 병력을 잃어버리자구 그러오. 부대에서 기다릴텐데 빨리가기나하기오.》

   《떼우다니. 다 된 밥을 갖고 걱정할게 뭐요. 부대로 돌아가는것도 그렇지 뭐가 급해서 그러오. 떠날 때 기한을 늘게잡은거요. 염왕산과 합작이 되겠다 시간도 있겠다. 거기다 이제 장비까지 더 훌륭히 갖춰갖고 돌아간다면야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게 아니겠소.》

   《생각이야 좋지만 그렇게 될가. 내가 꿈꾸면 남은 해몽한다는 걸 알아야하오.》

   《단단히 짜고들면야 제깟것들이 어떻게 안다구 그러오. 범을 잡자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지. 안그렇소? 그따위 겁쟁이심리같고는 아무일도 못해내, 아무일도.》

    민수가 이러면서 하도 장담하니 나어린 김춘만이 위용강을 힐끗 눈깃질로 가리키며 묻는다.

   《저 토비대장을 믿을만할가?》

   《믿을만하지, 믿을만하구말구. 그렇지 않으면야 데리고나와?》      하도 신심있어하니 둘은 그만 입을 다문다. 그렇다, 믿지 못할 무장이면 어떻게 련합작전을 한단말인가 하고 생각해버렸다.

    정민수가 자기가 고안해 낸 계책을 위용강의 앞에 내놓았더니 위용강은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던것이 차츰 얼굴에 웃음을 피여올렸다. 자기 생각에도 그쯤한 모험은 해볼만했던것이다.

    바둑을 한수만 잘못쓰면 실패하고마는건데....

    깊이 판 해자, 높다란 토성, 엄엄한 포대.... 태평진은 이름그대로 태평스러운 자태이기도했다. 이런데로 200여명의 기마대가 흰기를 들고 입성하니 그곳의 일본군주둔사령관인 오도야마는 이게 웬 떡이냐싶어서 입이 함박만큼 버그러졌다. 그러잖아 염왕산토비를 끌어당기자고 머리를 쓰던참이였다. 반일의용군을 토벌하자면 산길에 환하고 미립있는 그들의 방조가 없시는 안되였던것이다.

   《우리들의 패 하나가 밖에 나돌면서 황군께 적잖은 욕을 뵈인것 같은데 이제야 그 그릇됨을 깨달아 오늘 내가 먼저와서 투항을 신청하니 사령께서는 너그럽게 받아주십시오. 반만항일이 무모한줄로 압니다. 이제 사람을 보내여 오인마저 돌아서도록 할텝니다.》

    위용강이 이같이 말하니 오도야마는 대단히 흡족해하였다.

    그의 얼굴에 난 구렛나루수염이 다 웃어주는것만같았다.

    오도야마는 위용강을 보고 적시에 총명한 선택을 했다고 칭찬하면서 그를 선견지명이 있노라 개여올렸다. 그리고는 그날저녁으로 연회를 크게 차려 그가 끌어 온 전체류자들을 환영했다. 이틑날도 사흗날도 역시 그모양으로 대연을 베풀었다. 오도야마는 금고를 열어 위용강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 아래의 장자붙은 류자들에게도 급에 따라 일일이 상금을 주었거니와 새자에 이르기까지 돈을 아끼지 않고 뿌려주었다.

    오래동안 가마를 마스지 못해 돈주머니가 비여있었던 류자들에게는 이것이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못했던 일이라 횡재나 다름없었다. 하여 그들은 기뻐서 어쩔줄모르면서 반일이 다 뭐냐 위포토우는 과연 명지한 처사를 했다고 칭찬했다.

    오도야마는 주위에 화초담을 두르고 청기와를 얹은 아담진 벽돌집 한 채를 위용강에게 주고는 여자까지 하나 들이밀었다.

    주헤란이라 부르는 미인이였다.

    때마다 주반상에 미주가효가 올랐다.

    위용강은 차츰 주색에 빠지기시작했다. 한간과 특무들이 매일 동무해서 먹고 마시고 질탕놀아대면서 인생이 뭐냐 하루라도 즐겁게 놀고 쾌락하게 지내는 것이 인생이지 고생하며 목숨을 내받칠건 뭐냐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황군은 은덕높고 후하다느니 마음만 맞춰주면 인재를 등용한다는지 어쩐다는지 했다.

    한편 주혜란은 고집스럽고 오만한 토비사나이를 양초를 주물러 무르게 하듯이 녹여내기 시작했다.

    밤자리에서. 사나이가 매달려 한창 껍썩거릴 때 요분질을 멈추고 캐물었다.

   《나하고 노는 재미 어때요?》

   《좋지! 좋아!》

   《잘죽는다해도 가난하게 사는것만 못하잖아요. 숨끊어지면 이런 재미는 다 봐요.》

   《건 나도알아.》

   《알면서 왜 위험한 짓은 해요?》

   《내가?....》

   《솔직해요. 여긴 왜 들어왔어왔나요?》

   《무슨소린지....》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속여요. 솔직히 말해봐요. 여기로 왜 들어왔는가말이얘요?》

   《......》

   《남을 아두로 여기면서 자기만 총명한체말아요. 그게 뭔가요. 황군은 미런해서 그대에게 상을 주는줄알아요?》

   《저....》

   《빨리 재미나봐요.》

    녀인은 태연하고 뜨겁고 열열했다.

    위용강은 폭발하는 정욕을 만족스럽게 채웠지만 놀랜 가슴은 얼어들기 시작했다. 녀인이 발가벗은 자기몸뚱이를 보듯이 오도야

마가 이 위용강의 속궁리를 환히 알고있는 것만같았다. 그는 속으

로 자기와 말했다. 류자를 끌고 여기로 들어온 목적을 그 털보녀석이 언녕알고있는데도 눈가리고 아웅하다니 과연 미런한 짓이 아니냐. 바람안통하는 벽이 없다는데 비밀이 다른데서 새여나가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담보하겠느냐. 저 계집의 말이 맞다. 계속 아닌보살을 하고있다가는 후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 위용강은 속히고있는 제 본심이 그들의 강박에 못이겨 드러나는 날이면 그때가서 차례지는 후과가 어떠하리라는것을 너무도 잘알고있다. 과연 주혜란의 말과 같이 잘죽는다해도 가난하게 사는것만 못한거다. 똥물창에 구불서라도 살아야지. 그는 죽고싶지 않았다. 인생락을 그냥 누리고싶었다. 마음만 맞춰주면 황군은 과연 이 용강이를 중용할지도 모르는것이다.

    그랬다. 선악(善惡)과 정사(正邪)를 가리지 못해 혼매해진 위용강은 다음날 제발로 오도야마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자기가 태평진에 들어오게 된 진상을 고스란히 고백했다. 애비가 충용하리라 믿은 위용강은 이렇게 시례지훈(詩禮之訓)을 잊고 변절한이 되고말았다.

    정민수가 제아무리 총명하다한들 위용강이 이같이 제 구미에 당기는 떡만 골라먹는 인간임을 어찌알았으랴. 토비가 이럴 때 제 사욕과 리별한다면 출중한 애국공신이 될것이다! 오도야마는 세 조선족 반일용사를 비밀리에 생매장해버렸다. 누구를 원망하랴, 그들은 이렇게 미몽속에서 스스로 화를 당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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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明山隊는 일본군이 1933년 2월에 樺川縣의 駝腰子金礦을 점령하자 그곳의 공인들이 기의하여  조직된 것이다. 僞滿은 800여명의 경비대를 보내여 채금공인들을 감독케 하면서 혹사시켰다. 의기남아 祁致中(祁寶堂)이 압박에 견디다못해 6월하순에 친구 6명과 함께 금광을 지키는 일본군 7명을 때려죽이고 폭동을 일으키고는 공인 20명으로 동북산림의용군을 설립하고 항일에 나섰는바 이를 明山隊라 불렀다. 明山隊는 후에 東北抗日聯軍 제11군으로 발전하였는데 전성기에 기병이 1,500명에 달했다. 전공이 혁혁했다. 軍長은 祁致中이고 政治部主任은 조선청년 金正國이였다. 金正國은 1937년 12월하순에 日本關東軍司令部의 특무며 三江省協和會特別工作部部長인 金東漢을 총살했다. 金東漢은 한때 독립운동자로 분장하고 나섯다가 변절하여 大漢奸으로 전락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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