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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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숭배와 거녀이야기
2010년 06월 05일 19시 26분  조회:5604  추천:29  작성자: 김정룡




생식숭배와 거녀 이야기



한반도에는 지금까지 전해온 거녀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바, 이것은 한반도 역사문화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료라 생각된다.

한반도의 거녀 이야기가 문헌으로 처음 기재된 것은《삼국유사》이다. 사비(泗沘:백마강) 남쪽 해중에 여인의 시체가 있었는데 신장이 73척, 족장(足長) 6척, 음장이 3척이었다. 혹은 신장이 18척이라고도 한다. 이 거녀담은 백제의 패망을 알리는 메시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문대할망>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널리 전해지고 있는 거녀의 주인공은 단연 제주선문대할망이다. 그녀에 대한 전설을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옛날 제주도에 선문대 할망이란 노파가 살았다. 이 할망은 키가 얼마나 크던지 하늘에 치솟아서 아득히 머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노파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베고 누우면 두 발은 성산포 앞바다까지 닿아서 발로 물장난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서귀포 법환리(法還里) 앞바다에 바위로 된 섬이 있는데, 이 섬에는 커다란 구멍이 두 개 뚫려 있는데 노파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남쪽으로 발을 뻗었을 때 잘못하여 두 엄지발가락이 닿아서 생긴 구멍이라고 한다.

선문대할망은 키가 큰 만큼 식사양도 컸으니 밥을 짓는데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구좌면 송당리에 있는 큰 바위가 세 개 있는데 할망이 밥을 지을 때 솥받침대로 사용했던 돌이라 하며 세화에서 목장으로 가는 도중에 언덕 셋이 있는바 이것 역시 노파가 밥을 지을 때 솥을 올려놓았던 곳이라고 전한다.

안덕면에 있는 산방산(山房山)은 소금강이라고 할 만큼 경치가 좋다. 395미터나 되는 이 산은 노파가 한라산의 한쪽 부리를 뽑아 집어던진 것이라고 하며 산부리가 뽑혀 웅덩이 진 곳이 바로 백록담(白鹿潭)이라 한다.

한림에 있는 산의 하나는 노파가 신고 다니던 나막신에 묻었던 흙이 떨어져 굳은 것이라고 하니 이와 같은 오름이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키가 큰 노파는 육지와 왕래할 적에는 신발을 벗고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목포 쪽을 향해 건넜다고 하는데 바다의 가장 깊은 곳도 무릎 아래밖에 닿지 않았다고 하니 크기가 짐작이 된다.

이처럼 키가 크고 힘이 센 노파에게 큰 고민이 있었으니 옷을 제대로 지어 입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키가 너무 크고 보니 천이 많이 소용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섬사람들과 의논을 한 결과 노파는 제주도에서 육지까지 이르는 다리를 놓아주기로 하고 그 대신 노파에게 섬사람들이 속옷을 한 벌 지어주기로 했다. 노파의 속옷 한 벌 만들려면 명주 백 통이 필요했으나 섬에 있는 명주를 모두 모아보니 99통밖에 모아지지 않아 속옷 한쪽 가랑이가 짧게 되었다. 노파는 소원의 속옷이 만족한 것이 되지 못하자 화가 나서 육지와 다리 놓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어 섬사람들이 육지와의 자유왕래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고 노파가 다리를 놓으려고 하던 자리가 조천면에 남아 있으며 근처 암석에 남아 있는 큰 웅덩이는 그때 노파의 발자취라고 전한다.

노파가 키 자랑을 하기 위해서 제주팔경의 하나인 용연에 들어갔으나 물이 겨우 발등을 묻힐 정도였으며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에 들어갔던바 얼마나 깊던지 그처럼 키 큰 선문대할망도 빠져죽고 말았다고 한다.

<장신대력지녀>

이능화의《조선무속고》에 보면 한반도 무속인 중에 거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간의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 우암천사에 법우스님이 있었는데 도행이 깊었다. 어느 하루 방에 한가히 기거하고 있는데 갑자기 산간에 비가 내리지 않고 홍수가 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천왕봉 꼭대기에 올랐는데 한 장신대력지녀가 스스로 말하기를, 저희는 성모천왕인데 하늘에서 벌을 받고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고 당신과 인연을 맺고 싶어 수술(水術)을 부렸습지요. 이렇게 그들은 수술을 중매로 부부가 되었고 가옥을 짓고 살면서 팔녀를 낳아 자손이 많이 번식했고 그들에게 무술(巫術)을 가르쳤다.

<해남의 마귀함씨>

마귀함씨에 관한 전설이 선문대할망의 이야기처럼 상세하고 구체적인 것이 많이 없는 것이 유감이나, 그녀는 한발자국에 백리 오백 리는 문제없이 거닐 수 있었다고 하며 목포에서 완도까지 세 발자국이면 된다고 하니 거녀임에는 틀림없다.

<강화도의 마귀할머니>

강화도의 마귀할머니는 고인돌 전설로 유명하다.

옛날 한반도에는 너무나 많은 명현이 있었으므로 중국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명현이 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명현이 나는 까닭인즉 살펴보니 산맥이 활기 있고 땅기가 왕성한데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키 크고 힘이 센 마귀할머니를 보내 땅기를 죽이게 하려고 고인돌을 가져다 놓으므로 맥을 끊게 했다. 강화도 서단에 있는 외포리란 곳에서 지금의 고인돌을 마귀할머니가 운반했다고 한다. 고인돌 윗돌은 머리에 이고 기둥돌은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약 배 미터 지점에 있는 큰 돌은 다리사이에 끼고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외포리 앞을 지나올 때 속옷이 조금 젖었다고 하며 이곳이 제일 깊은 곳이라 한다. 고인돌의 크기는 50명이 되는 사람이 올라가도 끄떡없다고 한다.

<축성녀>

한 과부가 두 남매를 데리고 사는데 아들은 말을 타고 서울에 다녀오게 하고 딸에게는 뒷산에 석성을 쌓으라고 명하였다. 딸은 앞치마를 두르고 산 아래에 있는 강변에 가서 큰 돌을 담아다가 성을 쌓았다. 성을 거의 다 쌓고 마지막 석문만 하면 완성할 무렵 어머니의 계책에 따라 딸이 지고 아들이 이 경쟁에서 이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딸의 신장을 비롯해 어느 만큼의 크기의 여인으로 밝힌 것은 없지만 여하튼 앞치마에 돌을 주어다가 성을 쌓을 정도이니 굉장한 거녀임에는 틀림없다.

한반도에는 왜 거녀담이 많고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을까? 필자는 이것이 곧 한반도의 모계사회잔재의 영향이라 생각하며 따라서 한반도에서도 생식숭배문화가 발달해 있었다는 증거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삼천년 전 주나라시기부터 부계사회 확립이 시작되었고 일본은 AD5세기경까지 모계사회였다고 한다. 그럼 한반도는 언제부터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이행하게 되었을까? 필자는 그 시기를 박혁거세의 신라건국, 주몽의 고구려건국, 온조의 백제건국이었던 기원 전후로 본다. 하지만 제주도는 지금까지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인이 많은 삼다도로 유명하다는 삼다 중에 다녀가 의미하는 것은 제주도 모계사회는 그 시기를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육지보다 썩 후에까지 유지되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육지인 백제에서 서기 661년 백제가 멸망하는 메시지로 거녀의 시체를 들먹인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여성숭배의식이 깊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한반도의 여러 거녀담을 통해 한반도도 중국처럼 생식숭배사상이 뿌리 깊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1991년 중국학자 조국화 선생은 그의 저서《생식숭배문화사상》이란 글을 통해 “중국문화는 생식숭배문화사상을 핵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주장을 펼쳤고 그 후 중국학계에서 대다수가 그의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웃나라인 한반도에서도 고대에 생식숭배문화사상이 뿌리 깊었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 한국학자들은 이 면에 관해 연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며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고대문화본질이 무엇이었느냐? 는 것을 캐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해방 후 한국은 전통문화라 말하는 유불도 연구와 서양학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자국의 고대문화본질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생각한다.

위의 여러 가지 거녀담 외에 한반도에서 생식숭배문화를 엿볼 수 있는 증거들이 많다.

《삼국유사》에 경덕왕의 옥경이 팔촌(八寸)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제22대 지철노왕(智哲老王)의 음장이 일척오촌(一尺五寸)이었다고 했는데 이는 중국에서 황제의 옥경이 일척이촌(一尺二寸)인 진규(鎭圭)보다 삼촌(三寸)이나 더 크다.《삼국유사》는 지철노왕의 음장크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왕의 음장이 일척오촌이나 되어 배우자를 얻기 어려워 사자를 삼도에 보내 구하게 하였다. 사자가 모량부 동로수(冬老樹) 아래에 이르러 본즉 개 두 마리가 큰 북 만큼의 똥 덩어리 양 끝을 물고 다투는지라 촌인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말하기를 이곳 상공의 딸이 여기서 빨래를 하다가 수풀 속에 숨어서 눈 것이라 하였다. 그 집을 찾아가 보니 여자의 신장이 칠척오촌(七尺五寸)이었다. 사실을 고하니 왕이 수레를 보내어 그 여자를 궁중에 맞아들여 왕후를 삼으니 여러 신하가 모두 하례하였다.

왕의 음장이 실제로 일척오촌이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사회에서 왕이란 양력이 강하여 후대번식의 전범이여야 한다는 생식숭배문화사상의 맥락에서 꾸며진 것이며 그만큼 옥경의 크기에 걸맞을 여인도 음문이 커야 하는데 위 이야기에서 우회적으로 큰북만한 똥 덩어리로 음문이 크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중국의《시경》에는 남녀사랑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굉장히 많은바 이것은 곧 당시 문화 본질을 정확히 그려냈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마땅하다.

《삼국유사》에 왕의 음장이 엄청 크다든지 노골적으로 백마강의 여시체의 음장이 삼척(三尺)이라 했고 또 김현감호와 같은 사랑이야기라든가 선덕여왕의 예지삼사 중 여근곡 이야기는 모두 그 시대의 문화 본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생식숭배문화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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