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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壇과 그 뒷소문...
2015년 02월 11일 10시 28분  조회:4471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단에 떠도는 소문들에 대하여(2012년)


                                    정 성 수(丁成秀)

 

 

 

 이번엔 대한민국 시단(문단)에 떠도는 몇 가지 소문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소문은 시단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일부에 해당되는 것이다.

 

 언제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서나 전체가 아닌 일부의 문제는 항상 존재해 왔다. 왜냐하면 지구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불완전한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1.시인 등단에 대한 소문

 

 

 잘 아시다시피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공인된 시인이 되는 데는 몇 가지 길이 있다.

우선 중앙(서울)의 각 신문사에서 공모하는 ‘신춘문예’가 있다(지방 신문 신춘문예 당선은 원칙적으로 등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중앙 일간지라 할지라도 ‘당선’이 아닌 ‘가작’ 입선은 등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문은 그 대중적 특성상 대량 인쇄되는 출판물이기 때문에 신춘문예에 당선하면 일단 한 시인의 등단 사실이 빠른 시간 내에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거기다가 상금(원고료)도 다른 등단 관문에 비해 그런대로 두둑(?)하다.

 

 또한 수많은 시인 희망자(응모자)들을 제치고 당선했다는 긍지와 자부심, 그 나름의 쾌감도 작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다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선배 시인들, 혹은 다른 사람들(아마추어)의 작품 일부를 슬쩍해서, 말하자면 남의 작품을 표절해서 당선됐다는 얘기가 가끔 심심치 않게 솟아나온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신이 아닌 이상 세상에 발표되는 그 많은 시들을 평소에 한 편도 빠짐없이 모두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표절에 관한 기본적 허점은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표절이 심할 경우, 당선 취소도 되고 때로는 말만 무성했다가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그 중에는 당선 뒤 환골탈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좋은 시를 쓰거나 남기고 죽은 시인들도 없지 않다.

 

 그런가하면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간판을 적절히(?) 이용, 석사나 박사 과정을 거쳐 대학 교수가 되거나 사회적 감투를 쓰거나 문단 권력층의 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본인의 터무니없는 이론과 주장과는 달리 끝까지 ‘좋은 시’는 쓰지 못한다.

그저 안정된 직장인 대학 교수로, 한 사람의 시인으로, 무슨 단체의 임원으로 적당히 사회적 대우만 잘 받다가 어느 날 이 땅에서 소리없이 사라져버린다.

 

 살아있을 때와 달리 그는 사망하는 순간 시인의 족보에서 자동 삭제된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이나 독자, 평론가, 학자 등 그 누구도 그를 한 사람의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생존 시에 부당하게 과대평가, 과대대우를 받고 살았으니,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또 시단(문단)에서는 이런 소문도 떠돌아다닌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신춘문예 응모자와 심사위원의 사전 결탁 문제이다. 보다 젊잖게 말하자면 응모자와 심사위원간의 이심전심이다. 이것은 대학이나 문화센터나 그밖의 공적 사적인 사제지간의 경우 가장 심하고 물론 특별한 예외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당선돼야 할 사람이 낙선하고 낙선해야 할 사람이 당선되는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연출된다. 전자의 경우, 즉 표절의 경우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 그 시인은 당선 후에도 대개는 지지부진, 그저 평범한 시만 가끔 써서 시인이라는 이름만 겨우 유지할 뿐 그에게는 훌륭한 시인으로서의 아름다운 미래가 없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자신이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그 자부심만은 절대로 놓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역시 개과천선(?), 나중에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신춘문예 출신 시인들의 경우, 이상하게도 수준 높은, 혹은 개성적인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예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 현대 ‘시 문학사’를 보더라도 그렇고(필자가 다른 평론에서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시인들을 봐도 역시 그렇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혹시 신춘문예 출신자들의 쓸데없는 ‘자만심’ 내지는 ‘오만’ 때문이 아닐까?

 

 혹시라도 그것이 그들의 보다 고양되어야 할 시 작업을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피나는 노력보다는 화려하게 등단했다는 긍지와 자부심, 선민의식, 뭐 이런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신춘문예 당선 시인들을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시인으로 타락시키는 게 아닐까? 이것은 나의 추측이 아니라 시단에 떠도는 소문이다.

 며칠 전 대학 교수(문창과) 몇 사람과 술을 마시면서 나온 얘기도 이와 똑같다.

 

 

 다음엔 ‘문예지’를 통해 시인이 되는 경우를 보자.

월간 문예지, 계간 문예지 등 전국에서 발행되는 정기 간행 문예지들이 적어도 300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문예지(지난 ‘80년대만 해도 중앙 문예지는 10종 내외였다)들마다 1년에 몇 번씩 시인들을 양산한다. 1년이면 엄청난 숫자이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시인이 돼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시인다운(?) 시인, 즉 그 나름대로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전제조건으로 한 경우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점 중의 하나는 잘 아시다시피 거의 대부분의 문예지가 모두 적자 운영이라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말 전후에도 필자 친구인 <대한교과서>와 <현대문학>(대한민국 최장수 종합 문예지)의 김필식 사장이 점심을 먹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개탄한 적이 있다.

 

 “<현대문학>이 지금 1,000부(판매부수)가 안 나간다…!”

 “그래에…?”

 

 그 당시 나는 깜짝 놀랐었다. <현대문학>은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한국 현대문학사’가 아닌가.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가 다시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였다. 그런 <현대문학>조차도…!

 

 적자 운영중인 일부 문예지들이 그 문예지의 수명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아직 문학독자 수준을 넘지 못한 함량미달의 평범한 문학 애호가들을 한 사람의 시인(문인)으로 무리하게 등단시키면서 해당 문예지를 100부씩(?) 강매하거나 후원금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문예지 경영난 상황이 안타깝고 속상하긴 하지만 이것은 한 마디로 말이 안 되는 짓이다. 그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당연히 우선 등단 시인(문인)은 시인(문인)으로서의 역량(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또한 한 사람의 시인(문인)을 등단시키는 해당 문예지가 자기 지면으로 등단하는 시인(문인)에게 상금이나 원고료를 건네주지는 못할망정 그 문예지를 등단 시인(문인)에게 대량으로 강매한다는 것은 글을 쓰는 소위 선비의 행위로서 너무나도 파렴치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신진시인(문인)에 대한 모독이자 시인(문인)들의 등단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누군가가 등단 희망자의 작품을 대폭 손질해 줘서 등단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엄연히 말도 안 되는 부정행위이다.

 

 그렇게 해서 시단(문단)에 나온들 그 시인(문인)이 제대로 좋은 작품을 쓰는 훌륭한 시인이 되겠는가. 슬프고 쓸쓸한 일이다.

 

 또 다른 등단 방법은 ‘시집(소설집, 수필집 등)’을 출판하고 등단하는 경우이다. 8.15 해방 이후의 경우, 조병화 시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당선이나 추천으로 시 1편(혹은 여러 편)을 들고 시단(문단)에 나오는 것보다 시 50~70편을 들고 문단에 나오는 것이 그 시인의 시적 능력을 평가하는 데 더욱 효과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야말로 한 시인의 시적 역량을 정확하게 제대로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 중에는 시적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작품 수준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정을 받았는지 하여간 무리하게(?) 등단하는 경우이다. 그런 시인들은 대개 어물어물 시인 행세만 하다가 역시 소식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때문에 시적 역량도 없이 그저 등단만 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사기일 수도 있다.

 

 또한 ‘동인지’를 통해 등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그 동인지의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시적 수준이 문제이다. 훌륭한 역량을 갖춘 동인이 한 사람의 시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문단에서 시적 역량을 인정받지 못한 동인지 출신들이 언제부터인가 문단 등단의 질서가 해이해진 틈을 타서 젊은 시절의 동인 활동이 끝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아무 문예지에나 대충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그것도 신인이 아닌 중진이나 대가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우스꽝스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2.각종 ‘문학상’에 대한 소문

 

 상은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즐겁다’는 말이 있다. 물론 ‘상’이란 것은 말 그대로 좋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상에는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시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등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각종 문학단체에서 제정한 문학상들이 있다.

 

 또한 ‘예술원상’ ‘서울시 문화상’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 제정한 문학상들도 있다. 그리고 작고문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김소월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만해 문학상’ ‘지용 문학상’‘편운문학상’. ‘동리 문학상’ ‘목월 문학상’ 등 수많은 상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것은 여러 문예지에서 제정한 문학상들이다. 상의 종류도 적지 않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그 이름을 다 기억할 수도 없다. 더구나 난생 처음 들어보는 문학상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문학상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시인(문인)들의 숫자를 당할 재간이 없다.

 

 상을 타고 싶은 사람은 많고 상은 적다 보니 수요와 공급이 원활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상에 얽힌 여러 가지 소문들이 떠돈다.

 

 누구는 상금은 받지 않을 테니 상만 달라고 하고, 누구는 아예 상금을 자기가 내고 상을 타겠다고 하고, 누구는 상금도 받지 않고 후원금도 낼 테니 상을 달라고 하고, 누구는 상을 주면 문단 선거운동을 잘 해주겠다고 하고…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또 어떤 문학상들은 크든 작든 상금을 내걸어놓고 실제로는 상금 없이 상패만 주고 만다고도 한다. 상금용으로 수상자에게 빈 봉투만 준다고 하던가.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지만 그 어떤 문학상이든 상금이 있든 없든 상을 탈 만한 역량을 갖춘 시인(문인)이 그 상을 탔다면 그것은 아무 하자가 없다. 문제는 상을 탈 만한 역량도 갖추지 못한 함량 미달의 시인(문인)이 문학상을 탔을 때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다.

 

 그런 문학상은 상 자체가 치욕이고 따라서 그 문학상을 받는 것 또한 치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이라면 아무 거나 덮어놓고 타려고 하는 상 중독증(?) 시인(문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쓸쓸한 일이다.

 

 모든 문학상은 상금이 많고 적고 간에 받아서 즐겁고 당당하고 영광스러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상이 아니라 다만 구차스럽고 수치스러운 구걸 행각이자 역시 일종의 문화적 사기일 뿐이다.

 

 

3.문단 권력, 그리고 문단 선후배에 대한 소문

 

 

 우리나라에는 ‘문단 권력’이라는 것이 있다. 문단 중진이나 원로로서 권위있는 각종 문학상의 심사를 자주 하는 문인들, 유수한 문예지의 주간(혹은 발행인)이거나, 문단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학 교수들, 일부 유명한 평론가들, 혹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각종 문학단체의 장이나 고위직 임원을 맡고 있는 경우 등이다. 아마도 그런 문인들의 힘을 ‘정치권력’과 대비해서 ‘문단권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밖에도 전국 방방곡곡의 크고 작은 문학단체들은 부지기수이고 각종 문예지 또한 부지기수이다. 그쪽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문단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인들 역시 물론 ‘문단권력’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대한민국 문단에서 일정 부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은 그 문단권력 모두가 살신성인(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의 정신으로 한국문단에 그야말로 양심적으로 좋은 영향력만을 발휘한다면 대한민국 문단은 훨씬 더 풍요롭고 넉넉해질 것이다.

 

 하지만 우선 먼저 문단에서 풀어야 할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가 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일부 문단권력들의 권력투쟁이다.

 

 특히 권위있는 큰 문학단체들의 이사장이나 회장을 뽑는 선거에서 일부 입후보자들이 선거 과열을 넘어서 그야말로 후안무치, 상식을 초월한 중상모략,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파렴치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야말로 경악하게 한다.

 

 그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하고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해 봐도 역시 정상적인 문인의 얼굴이 아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부 문인들의 경우이다. 일부를 전부로 생각하거나 착각하는 것은 전혀 온당치 못하다.

 

 그것은 마치 일부 공무원이나 일부 성직자나 일부 교육자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일부가 저지르는 폐해는 엄청나다. 더구나 그들의 상황이 언론을 타거나 인터넷, 또는 법정 쪽으로 이동했을 때, 문인 전체, 문단 전체에 끼치는 이미지 손상, 그 악영향은 그 무엇으로도 메우기 힘들다.

 

 더구나 나쁜 소문은 늘 확대 재생산되는 못된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더욱 큰 문제이다. 적어도 문단선거는 언제나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인이 무엇인가.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것은 상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문단의 무엇이 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은 적어도 문인의 발상은 아니다. 졸렬한 소인배 정치 모리배나 정치 야바위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문단의 질서를 흐리게 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문단 선후배 관계이다. 나이 들어 뒤늦게 어물어물 문단에 나온 지 불과 몇 년밖에 안 되는 신인이 자신의 역량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지 40년이 넘는 비슷한 나이의 대선배에게 모두 다 명찰을 달고 다니는 문인 모임에서 “당신, 언제 등단했어?”라고 묻는 해괴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오랫동안 문학을 포함하여 최소한 인문학 전반에 걸친 폭 넓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문단 선배들의 작품을 열심히 읽어보지도 않은 채, 피나는 문학수련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어떻게 적당히 등단 절차를 마치고 문인 행세를 하면서 누가 선배인지도 모르고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작품의 가치 판단도 할 줄 모르면서 그저 여기저기 얼굴이나 내밀고 다니면서 아무 데서나 대우나 받으려고 하고 자기 혼자서 대단히 훌륭한 문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고 한다.

 

 시인(문인)이 이승을 떠나면 남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오직 하나, ‘좋은 시(작품)’뿐이다. 그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대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일종의 참고 자료일 뿐이다.

 

 따라서 그 누구나 시인에 대한 평가는 공평하게도 오직 ‘시(작품)’ 한 가지로 받을 뿐이다. 어디로 등단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수많은 문학상 수상도, 대단한 문단권력도, 요란한 사회적 지위도, 넘치는 경제적 부유함도, 많은 나이도 모두 다 아무 소용이 없다.

 

 김소월 시인이나 이상 시인이나 윤동주 시인이나 김영랑 시인이나 한용운 시인이나 정지용 시인이나 서정주 시인이나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들이 발표한 ‘시’로써 평가받을 뿐이다.

 

 만약 그들의 시가 그냥 그저 그렇게 평범하였다면 지금 이 시간 아무도 그 시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시인은 아무 때나 시인이 아니라 ‘좋은 시’를 썼을 때 비로소 시인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를 남긴 시인의 그 눈부신 탄생은 영원히 반복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시(문학)’의 위대한 힘이다!

 

 

 

 

 

 

 

-일당산 곰지기 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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