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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79
2015년 02월 11일 16시 37분  조회:1906  추천:0  작성자: 죽림

 

781□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유진택, 문학과지성시인선 187, 문학과지성사, 1996

  주변의 사소한 것을 버리지 않고 시로 건져 올리는 발상과 태도가 성실성을 증거한다. 그러나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결론에 이르는 주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가 꼭 새로운 사실만을 결론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 무난함으로 인하여 시 전체가 무기력해 보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인식도 상상력도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4337. 8. 20.]

 

782□무덤을 맴도는 이유□조은, 문학과지성시인선 187, 문학과지성사, 1996

  시에는 정신이 움직이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에 따라서 이미지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해도 좋고, 사상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이 불투명하면 좋은 표현과 적절한 구성을 가지고도 시는 불투명해진다. 시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나 이미지를 잡아내는 능력도 좋다. 하지만 바로 이런 불투명함을 한 꺼풀 걷어내야만 시가 힘차게 움직일 것이다. 이미지들이 선명한데도 시를 읽고 난 뒤 특별히 남는 것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불투명함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주제의식부터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한자를 없애는 것은 그보다 먼저 할 일이다.★★☆☆☆[4337. 8. 20.]

 

783□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이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180, 문학과지성사, 1996

  시가 대중문화의 발빠른 움직임을 뒤따라갈 때가 있다. 서태지의 노래에서 제목을 딴 이 시집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문명에는 속도가 있고, 그 속도는 그 속도 위에서 태어나지 많은 사람에게는 멀미를 일으킨다. 그 속도의 여러 양상이 아주 잘 잡힌 시집이다. 하지만 아직 대중문화의 발빠른 움직임을 따라잡을 만한 율동은 아니다. 그리고 성급한 마음이 시의 앞쪽으로 이따금 불거져 나온다. 성급하거나 미숙하다는 증거이다. 이 점만 해소한다면 대단한 시인이 될 것이다. 한자는 속도의 걸림돌이다.★★☆☆☆[4337. 8. 20.]

 

784□바닷가의 장례□김명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194, 문학과지성사, 1997

  세월 탓인가 치열함이 많이 줄었다. 시간에 대한 인식과 세월의 뒤편을 돌아보는 회고조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김명인의 시는 그 탄탄한 구조가 늘 좋았다. 이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풍경 묘사를 하는 듯하면서도 내면풍경을 교묘하게 겹쳐놓아서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상징으로 승화돼버리는 묘한 착상이 많았다. 이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주제가 좀 약해진 것이 상징으로 건너가는 힘을 약화시킨 것 같다. 뒤쪽의 러시아 관련 시는 일정이 분명치 않고 내면 풍경이 많이 드러나서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4337. 8. 23.]

 

785□극에 달하다□김소연, 문학과지성 시인선 192, 문학과지성사, 1996

  방향은 잘 잡았는데, 그 방향에 대한 상상력은 아직 그 방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거의 설명투다. 실험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내용은 거의 서정시이며, 그것은 정신의 실험이 끝나지 않은 상태임을 뜻한다. 실험은 정신이 밀고 가야하고, 정신의 번득임이 새로운 형식을 찾는 것이 실험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시집의 정신은 너무 밋밋하다. 전제된 결론을 위해서 증거 찾기에 바쁘다. 그 결론도 이미 시의 독자들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가 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집이다.★☆☆☆☆[4337. 8. 24.]

 

786□이슬의 눈□마종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193, 문학과지성사, 1997

  시 전편에 외로움이 절절이 배어있다. 어떤 것이든 분명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재주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 외로움이 말을 많이 하게 하고, 급기야 일기체나 수필체로 접근하게 하지만,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외로움이 처음부터 요구한 운명이기 때문이다.★★☆☆☆[4337. 8. 24.]

 

787□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이창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198, 문학과지성사, 1997

  사물을 보는 시각도 독특하고 상상력도 유연하다. 시에서 자기만의 빛깔을 갖는다는 것은 생명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일인데, 그런 중요한 단계를 이미 지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세상에 대한 흔한 결론에 뒤를 대고 있어서 애써 이룬 시의 경지를 탈색시키고 있다. 게다가 장난끼가 다분해서 더욱 문제다. 장난끼가 풍자로 넘어가지 않으면 다소 경박스러워 보인다. 내 장난끼가 시에서 독자에게 어떤 암시를 주는가를 잠시 생각해볼 일이다. 장난끼가 시에서 도움이 될 때는 상상력의 걸음을 가볍게 해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 배경을 더욱 확충시켜줄 때이다. 그렇지 않고 그런 장난이 주제 전체를 가볍게 만드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난이다.★★☆☆☆[4337. 8. 24.]

 

788□불쌍한 사랑 기계□김혜순, 문학과지성 시인선 199, 문학과지성사, 1997

  언어는 어떤 대상을 대신하도록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리고자 대상이 분명할수록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것은 이미지를 대신하는 시의 언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시의 이미지는 흐리멍덩해진다. 그 흐리멍덩함은 주제가 분명치 않거나,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그 주제에 딱 알맞은 표현력을 얻지 못한 탓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말하는 이의 재주이고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시집은 아직 흐리멍덩하다. 표현력의 문제이기보다는 주제의 빈약쪽이 더 가까울 것이다. 주제가 미약한 상태에서 처음 잡힌 이미지만으로 살림을 꾸려가다 보니 외화내빈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표현력의 문제까지 번져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할 말이 분명하다는 것과 거기에 걸맞은 표현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거의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피해야 할 도구이다.★★☆☆☆[4337. 8. 24.]

 

789□새벽달처럼□김형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197, 문학과지성사, 1997

  특별히 재주를 부리려 하지 않고 생각을 잘 요약한 것이 장점이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시들일수록 그 생각의 가치가 돋보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치명상을 갖고 있다. 생각이 자기 한계를 드러내면 마치 풍선과 같아서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밀려나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에 관한 시는 우습기까지 하다. 한자도 우습다.★☆☆☆☆[4337. 8. 24.]

 

790□빠지지 않는 반지□김길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203, 문학과지성사, 1997

  시에서는 관념이든 이미지든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길어진다. 그리고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꾸 반복되고 상황만 길어진다. 이것은 생각과 언어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거기에 꼭 필요한 말들만 취하면 이미지는 선명하게 정리되면서 메시지와 언어는 아주 가깝게 밀착된다. 그렇지 못하고 생각이 덜 정리된 채 쏟아져 나온 이미지에 취하면 정작 할 이야기를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언어와 생각 사이에 묘한 틈이 생기고 그것을 메우려고 자꾸 설명하려 든다. 이 시집에 불필요하게 긴 시들이 많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따라서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시는 자꾸만 길어질 것이고, 산만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자는 더욱 산만한 장치이다.★☆☆☆☆[4337.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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