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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1939년 4월 <여성>
이 시 또한 李箱이상을 기리며 쓴 시로 이해된다.
주피터가 된 이상, 까마귀가 된 이상, 산 오뚝이가 된 이상, 나비가 된 이상 이상은 흰나비가 되여 쫒기 듯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갔다. 이상의 작품 속에는 여러 번 나비 이야기가 나온다.
나비가 의미하는 바는 烏瞰圖 詩第十號 오감도시제10호 "나비"에서 보면 “나비”의 상징은 “조국의 독립 의지를 펼치는 임시정부 레지스탕스”를 이르는 말로 그려지고 있다. “나비”의 상징은 이상과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이 공유한 Allegory알레고리이다.
김기림은 이상과 가장 절친한 사이였으며 이상의 멘토Mentor이기도 했다. 이상의 재능을 보고 프랑스로 같이 유학을 가자고 권유하기도 했고 이상 사후 가장 애석해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독립투쟁, 레지스탕스 활동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상이 일본에 건너간 이유는 행동파 독립군이 되어 윤봉길처럼 의거를 하려 했던 것이다. 그 활동 내용은 그의 작품 “종생기” “파첩” “봉별기” “날개” “실화” “황소와 도깨비”등등의 작품 속에 우거지 쓰레기처럼 기록해놓았다. 소설 "날개"속에는 그 계획을 알리는 통지문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 간 후 독립군 본진에서 작전취소를 통보한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려 했으나 그의 계획은 누설되어 실패하고 만다. 배신자가 있었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1939년 4월 <여성>-
그의 작전 개시일은 1937년 3월 3일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1937년 2월 12일 사상불온자로 경찰에 구속된다. 일경이 어떤 제보도 없이 무작위 불심검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이 비밀을 제보한 것일까? 꿈도 펼치지 못 한 체 3월 16일 죽음 일보직전에 새파란 초생달이 되어 풀려나왔다. 3월 새파란 초생달 병상의 이상을 마지막 방문한 친구도 김기림이었다. 혹? 이상의 허리에 새파란 고문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던 것일까? 이상의 애처로운 사연을 김기림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글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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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회(문학박사)
시인?평론가. 호는 片石村. 함북 성진 출생. 김기림은 1930년대 시와 시론 분야에서 동시에 두각을 나타낸 문인이다. 그는 주로 모더니즘에 입각하여 시를 제작하고 시론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모더니즘이란 현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최재서는 「주지주의 문학이론」을 통하여 T. E 흄, 올더스 헉슬리, 허버트 리드, T. S. 엘리엇 등의 생각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있다. 흄을 통하여 전파된 모더니즘이란 가치관의 혼란으로 야기된 현실의 새로운 질서를 요망한다는 의미에서 ‘고전주의적’ 이다. 김기림의 문학관 역시 최재서의 그것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고전주의적인 의미에서 모더니즘의 가치관을 담고 있는 것이다.
김기림은 ‘9인회’ 회원으로서 정지용?박태원?이태준?이상 등과 교류하였으며, 이들과 함께 여러 후배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에서 모더니즘 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지용이나 이상처럼 시의 질적인 성취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측면을 김기림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김기림은 『바다와 나비』(1946)에서 이미지즘의 경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 「새노래」에서 보여주는 그의 목소리는 어떠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전언으로 가득 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김기림이 1940년 무렵 낙향하여 그의 고향에서 교사직을 맡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제자로서 시인 김규동의 전언에 의하면 김기림은 문학도 문학이지만 물리라던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 자신 『과학개론』등의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근대문명이 안겨준 과학과 이성에 대한 확신은 그의 문학관 여기저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해방이후에 「시론」, 「시의 이해」, 「문학개론」, 「문장론신강」 등의 여러 괄목할 만한 저술을 남기고 있다. 해방이전의 이론적 탐색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형편인데 애석하게도 이에 대한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없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의 이름이 복자로 가려진 상태에서, 여러 비판의 화살을 받고 있었지만, 외국의 여러 시에 대한 소개와 이론이 범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기림의 『시론』이라는 조그마한 책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시에 대하여 공부하려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시론』이라는 책에서 위안과 불만과 고통의 편린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김기림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시론을 가진 시인이었다.《문장》
김기림(金起林.1908.5.11∼?)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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