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한국 시
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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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식과 형상으로 이루어진 약속체계이다. 문학과 시 역시 이 점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부레와도 같아서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커지고, 다른 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 무게가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서 사실주의와 현대주의의 논쟁이 불붙기도 하고, 또 길게는 문예사조의 흐름을 결정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런데 새로운 변화가 어느 쪽에서 촉발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논의의 성격 때문에 인식과 형상이라는 개념으로 갈라서 보지만, 사실 이 두 가지 요인은 따로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 때문에 구조라는 틀로 형식과 내용의 상충성을 극복하려는 꾀를 발휘해보기도 하지만, 상대성의 가치체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그 어떤 것도 없기에, 문제는 늘 그 자리를 맴돈다. 맴도는 그 자리를 치고 들어오는 것이 시대의 상황이다. 모든 예술행위가 자신의 완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시대의 문제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래서 문제가 늘 어렵고 복잡하게 꼬인다.
형상은 늘 고정성을 수반한다. 그런 반면에 인식은 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곳을 향해서 더듬이를 뻗는다. 만약에 이미 찾아서 안주한 형상에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인식은 새로운 형상을 낳기 위해 마치 매미처럼 껍질 벗기를 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을 대부분 시대가 제공하며 그런 자극에 따라 문학은 뜻하지 않은 방향에서 새로운 모색을 한다. 그리고 그 모색이 유달리 격렬한 시대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상황은 틀림없이 문학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에 따라 전개된다. 그런 전형을 1980년대에서 본다.
따라서 1990년대의 한국 시가 흘러간 방향을 더듬으려면 그 앞 세대인 1980년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그 어느 때보다도 1990년대 이후의 시는 1980년대의 반동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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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려준 수업시간의 가르침대로 최초의 근대시라는 주요한의 '불노리'로부터 셈한다고 해도 100년에서 조금 빠지는, 어떻게 하면 길고 어떻게 하면 짧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역동성이 가장 넘치는 두 시절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눈길 가는 것이 1920년대와 1980년대일 것이다. 10년 단위로 끊는 버릇으로 끊어본 이 두 시대는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가히 격동이랄 만한 변화가 감지되던 시절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문학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급박한 변화와 충격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었다.
한 갑자인 60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 두 시대는 이상하게도 닮은 점이 많다. 경직된 지배체제가 붕괴되면서 역사의 전환점이 된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 그에 따라 기존의 세계관이 몽땅 흔들려 백성들 스스로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많은 부분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점, 그 실패의 체험이 귀중한 문학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그런 것들이다.
1920년대의 정국은 당연히 1919년의 3.1운동에서 시작되었고, 1980년대는 광주민중항쟁에서 시작되었다. 둘 다 조선 독립과 민주화의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가 일본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탄압과 미국이 묵인한 군부 쿠데타로 희망이 꺾여버렸다. 이런 사건은 당시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정신의 공황상태에 빠지게 했고, 그 와중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을 두고 격렬한 사상논쟁이 벌어지면서 각기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섰다.
문학에서도 이런 징후는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1920년대의 카프와 1980년대의 노동문학은 변혁운동 전반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당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문학사에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면서 문학의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했다. 이 역동성은 물론 문학 내부의 것이기보다는 당시 사회를 개혁하려는 사상의 움직임에서 파급된 것이다. 문학이 사상과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리고 이런 것은 그 이후의 문학들이 보이는 행태로부터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한 카프는 스스로 해산계를 내면서 힘을 상실했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활화산처럼 솟구친 변혁운동을 무력화시킨 일본제국주의 세력으로 인하여 1930년대 이후의 문학은 문학 바깥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채 문학 내부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학으로서는 가장 치욕스런 '조선어말살'이라는 상황에 부닥쳐 대부분의 시인들이 일제의 앞잡이로 변절을 하거나,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침묵으로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상황에 이른다. 문학이 스스로 바깥과 교류를 끊고 자기만의 영역으로 퇴화할 때 어떤 결과에 이르는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일이다. 이때의 변화는 문학 내부의 선택이기보다는 바깥의 거대한 힘에 저항하는 힘을 상실하고 굴복한 경우이다.
겉으로 보면 1980년대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미국의 묵인 하에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부도덕한 정권에 대한 극심한 반발이 당시의 문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 원동력은 물론 그 이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현실참여 문학의 확대를 뜻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문학의 주류로 바꾸어놓은 공은 당시의 사회의 부조리를 좌시하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인 양심 세력이라 할 것이다. 1980년대를 산 문학인은 광주 앞에 모두 죄인이었고, 그 죄를 어떻게 떨어낼 것이냐 하는 것이 의식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렸으며, 그것이 새로운 문학의 동력으로 분출했다. 3.1운동의 좌절로 인하여 당시 백성들이 느낀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두 시대가 서로 다르다. 1930년대의 문학은 일본제국주의의 강고한 힘 앞에서 굴복한 문인들이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인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1990년대 이후의 문학은 문학 내부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강고한 힘을 '변화된 새 문화환경'이라고 강변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그것을 1930년대의 상황과 동일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90년대 이후의 변화는 문학의 위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1980년대의 왕성한 창조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 문학 내부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여기에 작용한 '디지털 시대의 도래'라는 문제는 따로 논의해야 할 주제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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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사회의 산물이다. 사람은 사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며 그것은 문학에서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형식으로 정착한다. 그러나 사회 변화와 관련하여 문학이 현실참여 기능을 스스로 축소하거나 어떤 계기로 하여 위축되면 문학은 자신의 내부로 눈을 돌린다. 1930년대 이후에 문학이 자의든 타의든 사회 변혁에 등을 돌리고 문인들이 농촌소설이나 서구문예사조를 소개하는 것으로 자족하던 흐름은 이런 경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격렬한 사회 변화의 태풍이 쓸고 지나간 뒤에는 문학의 자기성찰이 시작된다는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문학의 도구성에서 예술성으로 새로운 탐색을 떠나는 것이다.
이 점 1990년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의 사회 변혁 열풍이 문학을 한 바탕 쓸고 간 뒤, 그러한 행위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반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문학의 자기성찰이라는 해묵은 경향이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시에 나타난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되는 바, '현실인식의 퇴조'와 '유미주의 경향의 강화'가 그것이다. 유미주의는 언어를 재료로 하는 문학이 자신의 상상력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탐닉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타고나면서부터 무언가 의미를 전달하게 되어있다. 그 의미는 곧 주제이고 관념이고 사상이다. 그런데 작품에는 이런 것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미일진대, 거기에 탐닉하여 언어가 지닌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가장 멀리 물러나는 것을 미의 완벽한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 유미주의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내용이 부실해진 것을 상상력의 빛깔로 메우려는 애절한 시도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징은 이런 변화가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급격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불과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노동문학은 한물 간 유행이나 천덕꾸러기로 간주되어 출판하기조차도 힘든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것은 출판사들의 '전향'에서 쉽게 확인된다. 1970년대부터 꾸준히 민중 민족문학 계열의 작품을 내던 '창작과비평사'와 '실천문학사' 같은 회사들이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경향의 작품집을 내기 시작하여 그것을 출판사 운영의 주된 사업으로 여기고 있다. 불과 10년 전의 힘찬 기백과 전망은 시집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그저 옛 시절에 대한 회고나 환멸이 꼬리뼈처럼 남아 '문학사에 한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정도의 정서를 환기한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의 문학사는 1980년대로부터 얼마나 멀어지느냐 하는 것에 마치 시의 성과가 있기라도 한 양 사회 변혁의 중심으로부터 잽싸게 멀어지는 발걸음들만 어지럽다. 사회 변혁에 집중했던 문학의 에너지가 그 반작용으로 문학의 내부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그런 경향들을 몇 가지로 추려서 정리해본다.
1) 곶감 빼먹기
시가 다루는 내용은 무한정이다. 시는 오래 묵은 한 형식이고 그 형식의 대상은 인간이 바라보는 모든 대상들이면서 또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인식이 시에서 사라지면 대상은 아주 단순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시가 발생한 이래 꾸준히 이어진 것이기도 하다. 시가 현실을 버리면 남는 것은 내면의 정서이다. 내면의 정서 중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절망, 고독, 사랑 같은 것이다.
1990년대가 1980년대의 반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으로 본다면 이런 경향은 아주 강한 전통을 지니면서 제일 먼저 시의 전면으로 등장할 내용이다. 예상대로 그간의 변화에서 이런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실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내면에 서린 고독과 절망과 힘겨움 같은 것을 시로 그려낸 시인들이 앞 세대의 거친 현실 인식을 비웃으며 나타난다. 그 대표주자는 나희덕일 것이다.
나희덕은 첫 시집에서 나름대로 현실 인식을 성실하게 다룬 시인이다. 그러다가 두 번째 시집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여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리고 거기서 고독을 찾아내어 좌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자신의 독자로 확보한 경우이다.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을 잘 드러내었다. 그런 점에서 재주꾼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눈여겨볼 만한 시인은 장석남과 김선우이다. 장석남 시의 주제는 쓸쓸함과 원인 모를 상실감 같은 것이다. 그것을 아주 섬세한 관찰로 주변의 사물에서 읽어내어 깔끔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김선우의 경우는 '엎지르기 시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감정을 과감하게 노출하여 성공한 경우이다. 그 전까지 서정시의 미덕은 넘치는 정서를 절제하려고 사물에 빗대거나 과장을 자제함으로써 그 자제하려 애쓰는 옆모습에서 고독과 절망과 우울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김선우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버렸다. 단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시인의 기법을 엿보면서 찾아내야 하는 서정시의 전통을 넘어서 시인이 왕창 보여주는 모든 것을 느끼게 만드는 기묘한 과감성이 있다. 기존의 서정시가 슬픔을 감추려는 가운데 독자의 눈물을 짜낸 것이라면 김선우는 대성통곡을 해서 구경꾼을 함께 울린 경우가 되겠다. 이 점은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주제를 아주 확실하게 보여줌으로 해서 얻은 효과이다.
이런 경향이 갖는 한계는 자명하다. 수천 년 동안 반복해온 내용을 또 다시 반복하는 지루함을 극복할 길이 없다. 잠시 스쳐 가는 유행가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 들인 공에 비해 별로 남을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재주가 아깝다는 탄식을 듣지 않으려면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2)상상력의 자기 만족
앞의 것이 내용에 대한 반동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와 달리 형식에 대한 반동에서 나온 시들이 있다. 이 경우에는 시가 지닌 본래의 상상력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빠져나간 자리를 상상력의 극대화로 메워보려는 시도이다. 그런 시인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경향은 이윤학, 이정록, 박정대 같은 시인들이다.
이윤학의 경우는 묘사 뒤로 자신을 숨기는 경우이다. 그 전까지 시의 특징은 대부분 화자와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이 동시에 드러난다. 그것이 비유라는 독특한 시만의 표현법을 형성해온 것이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에서 이 둘이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 시라는 화법의 공통점인데, 이 경우에는 원관념을 될수록 줄이고 보조관념 속에 원관념이 포함되도록 한 방법이다. 그래서 시에서 화자는 냉정한 풍경 묘사 뒤로 숨어버린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방식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식으로 한 독특한 세계를 이룬 것은 이 시인의 큰 업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묘사의 뒤편으로 숨으면 시가 어려워진다는 점이 큰 문제이고 이것은 어렵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 본래의 기능을 제약하는 악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머지 않아 이런 경향은 시의 귀족주의화와 유미주의화를 면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런 경향을 강화하여 다른 시인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차별화하여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데 묘사 뒤로 숨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가 아니다. 세상을 본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자의 관념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불가피하게 선택이라는 방법이 놓이게 된다. 이 방법은 자연이 본래 부여한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을 묘사 뒤로 숨기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신선한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고 해도 결국 이 부분에서는 시인 자신의 판단과 가치관이 드러나고, 이 부분에 대한 성찰과 숙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애써 이룬 성과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묘사는 방법일 뿐이다. 방법이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정록의 경우는 시의 전통 문법에 더욱 충실한 경우이다. 전통 서정시의 방법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경우라 할 것이다. 서정시에서 가장 중요한 기법은 비유이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간격과 그 관계의 적절성 여부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간격이 엉뚱하고 멀수록 독자는 강한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다. 바로 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파고든 시인이 이정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벌려놓았을 때의 관계가 얼마나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비유는 본래 두 사물 사이의 공통점에 기반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 상이성을 드러냄으로써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관계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그럴듯하게 합리화시켜주어야 한다. 바로 이 합리화 부분에서 이정록은 무리를 범하고 있다. 둘 사이의 간격을 한껏 벌려놓아서 감탄을 하는 순간, 그것을 수습하느라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애써 수습을 해놓은 것이 어거지로 갖다 맞춘 듯한 미숙함을 결국은 씻지 못한다. 바로 이 부분이 큰 숙제로 남은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관계로 사물을 엮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런 경향은 한시의 영향이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한시의 영향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는데, 이 시인의 상상력은 많은 부분 한시에서 확인되는 발상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추구집의 <日月千年鏡, 江山萬古屛, 月爲宇宙燭, 風作山河鼓> 같은 상상력을 보면 이 시인이 벌려놓고자 한 두 사물 사이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발상과 긴장의 출처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시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이런 조충소기가 아니라 그런 엄청난 기교를 낳게 한 거대한 사상과 정신의 흔적이다. 이것을 수용하지 못한 한계로 인하여 억지춘향의 느낌을 씻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박정대의 경우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는 모두 현실 속의 어떤 사물이나 현상과 연관을 맺고 있다. 즉 언어가 그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박정대의 경우는 시 안에 완전히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특히 무가당 담배클럽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세계는 현실 속의 그 어떤 현상과도 관련이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있다. 환타지의 세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것은 상상력이 자기 만족을 꾀하는 절정의 세계이다. 시는 더 이상 현실의 어떤 고리에 매달려있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가 또 위험한 것은 끊어진 풍선은 하늘 꼭대기로 올라감으로써 아무런 존재도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시가 현실로부터 가볍게 떠올라서 상상력의 형태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가 자신의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이다.
3)관찰의 미학
어찌 보면 필연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우연 같기도 한 한 가지 경향이 큰 물줄기를 이루었다. 허만하로부터 시작된 현미경식 관찰력이 그것이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와 “물은 목마른 쪽으로 흐른다”라는 두 시집을 연달아 내면서 허만하는 이후 시의 한 경향을 결정해버렸다.
시는 섬세한 관찰과 명민한 시각이 요구되는 갈래이다. 특히 섬세한 관찰은 세상을 재편하는 기초가 되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의 중요성을 한껏 강조하고, 또 성공했다는 점에서 허만하의 공은 실로 만만찮다. 그리고 이런 작품으로 하여 이후의 시에서는 정밀하고 정교한 관찰이 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런 경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는 본래 가장 작은 사물을 통해서 가장 큰 문제를 간단히 설명하는 갈래이다. 그래서 너무 세밀한 부분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쉽게 전할 수 있는 큰 주제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후의 시인들이 세밀함의 늪에 빠져서 정작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안 좋은 영향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강화시키는 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현실 인식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사상과 가치관이 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옳고 그름이 서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밀한 부분보다는 거대주제가 이들의 관심사다. 노동문학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대주제를 놔두고 다슬기의 껍데기 색깔에 관심을 집중한다면 적절치 못한 집중의 반대급부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인인 거대주제는 어디론가 증발하고 만다.
어쨌거나 허만하 이후에 극세밀 묘사는 문단의 한 흐름으로 정착했고, 그 흐름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하면서 시인의 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런 흐름 가운데서 최근에 김기택과 조용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4)세월과 함께 사그라드는 꿈의 노래
지금까지 새 경향을 얘기했지만, 이미 그 전부터 이어져오던 경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을 형성했다. 전통 서정시의 문법을 착실하게 지키면서 현실의 생활 속에서 시인의 시각을 적극 살리는 경우이다. 문정희, 박미라가 그런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
문정희는 시인의 긴장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시인이다. 이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소재는 모두가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삶을 중요시여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상상력의 특별함이나 소재의 독특함에 의존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고 확인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곳에서 삶의 의미를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이 점이 사실 어려운 것이다. 일상 속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것보다 더 탁월한 능력도 없다. 이런 점에서 문정희야말로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면서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에 오른 셈이다. 대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아깝지 않은 경우이다.
박미라의 경우는 이름이 잘 안 알려진 시인인데, 시가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그렇다고 늘어지지도 않는 대단한 긴장을 품고 있다. 서정시의 문법에 가장 충실한 시인이다. 서정시라는 것이 원칙에 너무 충실하면 지루한 법인데, 이 시인의 시에서는 그런 충실성이 느껴지면서도 지루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로 정신이 긴장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 점에서 대단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런 시인을 보면 왕따가 비록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향의 시인들은 성실하다는 점이 쉽게 느껴지는데, 문제는 꿈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무기력한 일상 속의 느낌을 시로 표현하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과장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태도가 전제하는 무기력증 때문이다. 이 무기력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끝내 화합할 수 없다. 이 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5)문명비판
노동시의 대척점에서 빛을 되비치던 경향이 문명비판이라는 넓은 명칭으로 아우르던 경향은, 노동시가 궤멸 당한 후에 유일한 절대강자가 되어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 경향 안에는 생태주의, 여성주의가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노동시의 대자로서 존재하던 경향은 그 대극점이 사라짐으로 해서 자기분화를 시작해야 했지만, 아직 그런 경향이 뚜렷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게으르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리고 이 비판은 주류가 주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시의 앞날을 아득하게 하는 경우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시의 몰락이 예견되는 바, 이에 대한 책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이 경향의 시인들의 받아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이 경향의 시인들이라면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오규원, 황동규 같은 낡은 세대의 경향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 하는 것이 이 경향에 대한 잣대가 되겠지만, 김정란의 수다스러움이나 이원의 장광설 가지고는 발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경향의 문제점이다.
6)실험 시의 새 경향
이런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시인이 이수명이다. 이수명은 넓게 보면 실험의식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전의 실험이라면 보통 이상이나 박남철 황지우처럼 형식을 깨면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수명의 경우는 시의 형식을 그대로 두면서도 그 안에서 시의 와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할 것이다.
이수명의 새로움은 관계의 도착과 혼란에서 비롯된다. 언어는 어차피 고정관념이다. 사회의 약속체계이기 때문이다. 시는 그러한 체계를 전제로 하고서 그 쓰임의 일부를 변용한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시이다. 그리고 그런 의도의 밑에는 시의 메시지가 관념이 아니라 정서라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그러나 이수명의 시에서는 이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는 시인의 의식 속에서 완전히 재편된다. 그리고 시인 자신만의 질서로 바깥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관계가 독자의 눈에 제대로 비칠 리 만무하다. 이것이 이수명 시가 어려워 보이는 이유이다. 두 시집에서 이런 관계의 긴장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세 번째 시집인 “붉은 담장의 커브”에 이르면 이 시인이 실험을 포기했는가 싶을 정도로 시가 안이해졌다. 그래서 말장난이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이것이 어쩐 연유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시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큰 패착이다.
더 큰 문제는 문단에 그의 시를 제대로 평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시집 해설을 두 번 다 황현산이 썼는데, 그나마 이 평론가 정도가 이수명의 시를 좋게 봐주는 정도이다. 이 경우 다른 이들의 침묵은 채찍이 아니라 돌팔매질이다. 그러니 반성할 것은 시인이 아니라 시인 주변의 무책임한 자들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수명의 세계는 한국 시가 뚫어야 할 한 방향이다.
7)현실참여의 또 다른 방향
노동시가 지리멸렬한 가운데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징후가 있다.
노동시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고 현실 인식은 거대담론으로 귀결된다. 거대담론은 거대사회를 먼저 변화시킨 다음에 그것을 사소한 삶의 영역까지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따라서 거대담론의 밑바탕에는 개인이 속한 현실과 그 현실의 무대인 사회가 있다. 그렇다면 시는 인생 전반의 거대담론을 거론하는 가운데,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만나는 것이다. 이런 만남이 시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만남은 그 개인 속한 지역과 연관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시에서는 이런 지역과 정확한 점접을 갖고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시가 한 지역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그것의 성과 여부를 떠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다가 시가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때 지역의 문제는 지역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한국 시의 넓은 바다와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법은 거대담론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거대담론은 뿌리를 잃으면 늘 허황함을 시에 남기고 만다. 그런데 이런 허황함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 바로 지역에 뿌리를 드리우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거대담론인 노동시가 썰물처럼 퇴각한 시점에서 이것은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 서있는 시인이 박세현이다.
박세현은 강원도 출신이다. 저절로 강원도라는 산악지대와 연줄을 댄 셈이다. 그런 시인이 노동시가 퇴각하는 그 시점에서 원주에 정착을 하면서 원주와 정선을 잇는 강원도 지역의 현실에 시의 초점을 맞춘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지역에 드리운 역사와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시가 현실과 가장 가깝게 밀착되는 놀라운 경지를 연다. 그것은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끌려 다니지도 않는, 현실과 시가 정확히 맞물리는 방법상의 지점이다. “정선 아리랑”의 성과를 말하는 것이다. 노동시가 지리멸렬한 시점에서 이런 절묘한 해법은 이 시인이 이룬 큰 성과라고 하겠다. 그리고 한 시인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한국 시의 새로운 방향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여러 군데서 감지되지만, 일단 눈에 들어오는 시인은 우포의 상상력을 잡고 늘어진 배한봉이 있다.
4
1990년대 이후의 시는 그 앞 세대인 1980년대의 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격렬한 사회 변혁의 의지에 휘둘렸던 시대이기에 형식의 문제보다는 인식의 문제가 시의 전면으로 떠올랐고, 인식은 종종 형식의 조건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징후가 1980년대의 가장 큰 상처이자 부족한 점일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한 것이 1990년대 이후의 시에서 보인다. 그것은 문학 내부의 상상력을 성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의 시는 그 앞 시대의 현실 인식으로부터 후퇴하여 시의 자기성찰을 깊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내용의 결핍 대신 형식의 다양성과 충실성에 시인들의 노력이 집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에 대한 집착이 1980년대의 시가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경향은 오히려 역사의 퇴보요 시의 퇴행이라고 악평을 할 수도 있다. 한 쪽이 너무 강조된다고 해서 그것을 악으로 설정하는 것은 논리상의 모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의 시에는 그런 혐의가 너무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목청을 높였던 시인들이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로 살아있다는 점에서 이 모순에 대한 자기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공론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90년대 이후의 시에서 보이는 가장 큰 문제점을 두 가지만 짚고서 마무리하겠다.
먼저 ‘현미경 증후군’이다. 허만하의 등장 이후, 그 방법의 명확성이 매력으로 작용했는지, 이것이 문단에 한 유행이 돼버렸다. 아주 작은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기법은 잘 하면 좋지만 조금만 허술하면 시 전체를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런 기법이 시 한 편에 발견의 재미를 주는 데 치중해 시집 전체의 큰 흐름을 답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많은 시인들이 잊는다.
시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노래하는 데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양식이다. 그러나 작은 것에 너무 집착하고 그것을 그리는데 정력을 소진하면 정작 큰 것을 담지 못하는 비극에 도달한다. 한국의 시는 지금 바로 이 마술에 걸려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시는 몇 행으로 인생을 요약하기도 하는 엄청나게 큰 양식이다. 큰 것을 담을 수 있는 데도 작은 것에 집착해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잔재주에 매달리는 것이다. 작은 것에 집착하여 그리느라 큰 것을 정작 말하지 못하는 ‘현미경 증후군’이야말로 한국시가 넘어야 할 한 벽이다. 물론 이것이 거대담론을 놓친 시대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규정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조건마저 뛰어넘지 않는다면 시인의 영혼은 죽은 것이다. 죽은 자들이 쓸 수 있는 시는 쓰나마나 한 시이다.
다음으로 ‘애늙은이 증후군’이 있다. 인생의 달관을 노래하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이것은 세밀한 것을 만들려는 앞의 경향과 맥을 대고 있다. 사회 변혁은 어찌 보면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 친 것이 1980년대이다. 그런데 그런 몸부림을 허황한 것으로 보면 그 나머지 시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달관이나 꿈 없는 노인들의 목소리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에 꿈이 없고 늙은이들이나 볼 수 있는 희망 없는 달관의 표정들은 이런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달관들이 정말 삶의 깊은 내면에서 울린 것이라면 그것이 독자의 감동으로 이어지지만, 정말 많은 젊은 시인들의 그런 표정이 어쩐지 어거지로 만들어 낸 조작품 같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런 유행의 한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젊은 시인에게 아픔 없는 꿈의 상실은 치명상이다. 시대의 그 무엇을 아파하기도 전에 달관부터 하고 60대가 된다면 누가 거기에 동의하고 함께 슬퍼하겠는가? 이 무기력한 마술을 젊은 시인들이 풀어야 할 일이다.
이 두 가지 증상은 그러잖아도 심화되는 시의 소외 현상을 자초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한국 시가 새로운 방향으로 자기 혁신을 시도하여,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내부의 무기력증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4338.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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