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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와 김몽
2015년 02월 17일 23시 58분  조회:4215  추천:0  작성자: 죽림

 

절대적자유와 무변의 공간 ㅡ감각하고 사유하는 

ㅡ김파의 디지털하이퍼시 경우

 

 

김몽

 

 

중국조선족시단에서 줄곧 시 혁신과 시 갱신에 몰두하여온 시인이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에 김파시인도 있다. 80년대 중기부터 김파시인은 새로운 시 탐구에 몰두하였고 그 결과물로 입체시론을 내놓기도 했다. 70이 넘은 오늘도 김파시인은 혈기왕성한 심신으로 새로운 시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줄기차게 달리고 있으며 그 와중에 디지털하이퍼시를 만나 사귀게 된다. 요지음 한국에서 이백 여수의 시로 묶은 디지털하이퍼시집을 펴낸다고 하니 그 왕성한 창작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호 <장백산>에 선보이는 10수의 시도 모두 디지털하이퍼시이다. 사실 김파시인은 이전에도 알게 모르게 사물시나 디지털시, 하이퍼시와 유사한 시들을 써왔다. 다만 이론적으로 정립이 되지 않았고 명확하게 지칭을 하지 않았을뿐이다. 이전에 비자각적으로 하이퍼시를 썼다면 얼마 전부터는 하이퍼시의 이론을 접수하고 자각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와 디지털문화의 거센 물결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국가들에서 하이퍼텍스트문학이 발걸음을 뗐고 그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10여년전부터 심상운, 문덕수, 최진연, 오진연 등에 의해 하이퍼 문학 열기가 일기 시작했으며 중국조선족시단에서도 한국의 영향을 받아 금방 하이퍼시 운동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그 운동의 앞장에 김파, 최룡관 등이 서있으며 김파는 창작에서 성과가 돌출한 시인중의 한 사람에 속한다.

 

김파의 시세계를 들여다보자면 우선 얼마간이라도 하이퍼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야 할 것 같다. 하이퍼의 영어 원뜻은 암소, 계집애, 젊은 여자를 지칭하는데 거기에 시라는 말이 가첨되여 하이퍼시라는 신조어로 되면서 과도, 초월, 건너뜀, 최고도의 의미를 나타내는 접두사로 둔갑하였다. 하이퍼시에서는 탈관념(무의미)을 선언하며 초월, 건너뜀의 기법을 제창한다. 연과 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인과적관계가 없으며 상상력의 비약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다. 한국에서 하이퍼시의 선두주자인 심상운은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나아가는 것이 하이퍼시라고 했고 문덕수는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 두 단위의 초월관계를 결합하여 완성하는 것이 하이퍼시라고 말하였다.

 

 

하이퍼시의 고창자들은 하이퍼시의 배경이 첫째로는 탈구조주의와 포스터구조주의라고 보고있으며 둘째로는 21세기의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디지털은 0과 1로 이루어지는 이진법 논리를 사용해 0과 1의 각종 조합을 만든 후 그것의 조작과 처리를 통해 여러 기지 정보를 생산, 유통,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아날로그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나타내는 반면에 디지털은 비연속적이고 단속적이다.

 

하이퍼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는 <집합적 결합>이다. 이 이론은 문덕수가 내놓은 것으로 풀이하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 별 관계가 없는 이미지들로 한 수의 시를 구성한다. 한마디로 상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의 불연속적결합이 하이퍼시의 중요한 특성이다.

 

다음으로 심상운에 의하면 하이퍼시는 종래의 관념시처럼 단선구조인것이 아니라 다선구조라고 말한다. 최진연은 또 아예 뚜렷한 선이 없으므로 비선(非线)、무선(无线)구조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이미지들이 각기 독립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연과 연, 행과 행을 바꿔놓아도 상관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므로 의미론적, 정신적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것도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세 번째 특징은 상상력에 의한 시적공간의 확장이다. 하이퍼시에서는 이미지들이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극대의 자유의 자성(自性)을 갖게 된다. 단순한 상상을 넘어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공상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경계가 무너지고 공간도 자기로부터 세계와 우주에까지 제한 없이 넘나드는 이미지 창출을 보여준다.

 

하이퍼시의 또 다른 특징은 디지털감각의 영상성과 동시성, 정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들이 동영상과 유사한 동적, 입체성특징을 갖는다. 종래의 단선적인 시는 지속적사유의 사물이지만 다지털은 순간적 단속의 직관적인 사유이다.

 

하이퍼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탈관념이다. 이것은 무의미하고도 통한다. 추상적관념이란 바로 사랑, 증오, 분노, 폭로, 비판, 찬양 등등인데 하이퍼시에서는 이런 관념을 배제하고 추방한다. 심상운은 “시인의 주관적 생각(감정, 의미, 판단) 등이 들어간 것이면 관념이고 인지적 사실 자체에 그치면 탈관념”이라고 말하였다. «최진연, <하이퍼시의 이해>»

 

심상운의 하이퍼시 한수를 보자. “앉아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빨간 뻐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중략)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뻐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후략)”

 

이 시를 보고 최진연은 “시에서 상상력을 공상세계에까지 확대한 점은 우리 시사(诗史)에서 처음”이라고 말하였다.

 

하이퍼시에 대한 이와 같은 소개를 전제로 김파 시를 살펴볼 수 있다. 10수의 시는 절대적자유와 무변의 공간을 종횡무진하면서 다감각, 다정서, 의미지 다층차구조로 의미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무변의 다공간속에서 다감각세계를 맛보게 해주려 하고 있다.

 

«발자국» 은 각 시구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한 시스템속에서 상호보완적 생산기능을 한다. <구름>, <증발된 령혼), <고갈된 시간>, <오솔길>, <선바위>, <ㄱㄴㄷㄹㅏ ㅗ ㅜ ㅣ >, <13579,,>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리고 일체의 관념이 무존재상태이다. 작자는 다만 독자들이 상상의 공간을 누비면서, 자기가 얽어놓은 의미망에 걸려있는 각이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흰옷의 나그네/ 휘파람 불어 휘호호>와 같은 맑은 감각을 얻기를 바랄뿐이다.

 

<나그네의 행적>은 링크(연결고리)와 시푸드(옮김걸쇠)의 방법으로 비인과적, 비논리적, 비순차적 방법으로 이미지의 그물망을 형성한 하이퍼시다. <나그네>라는 대상이 강물로 되기도 하고 날새가 되기도 하고 해빛으로 되기도 하도 꽃잎으로 되기도 하고 얼음덩이로 되기도 하고 피아노로 되기도 하고 태풍으로 되기도 하고 길이 되여 누워있기도 한다. 모든 사물이 텔레비에 나오는 동영상처럼 동적이며 생명의 운동을 갖고 있다. 특정된 관념이 없이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으로 이미지집합이 이루어져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고 혹은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하이퍼시의 고창자들은 이런 무의미의 세계에서 독자들이 마음대로, 나름대로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독자들이 과연 그러한 무변대의 사유공간에 들어가기를 원할지 또는 설사 들어간다 할지라도 감각이나 가치를 얻겠는 지가 사뭇 의심스럽고 한편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가는 그림자들»은 시표제가 원문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가지끝에 매달렸던 여름이

때이르게 단풍들고

술잔에 익사한 령혼이

하늘숲으로 증발했다

 

까마귀 울음 빨아서

하얗게 다듬이질하고

묵은 세월 채쳐

몇알의 고전을 줏는다

 

목슴을 쥐여짜면

떨어지는 한방울을 욕망

프로이드진언이

가물에 해빛을 싹틔우는

 

그렇듯

오늘도 강물에는

떠가는 기포들

 

ㅡ«지나가는 그림자들» 전문

 

이 시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6개의 이미지, <때이른 여름>, <익사한 령혼>, <까마귀울음>, <몇알의 고전>,<한방울의 욕망>,<프로이드진언 등>이 기포가 되여 강물로 흐르며 이 모든것이 <지나가는 그림자들>이라는 그물망을 형성한다.

 

«태양의 언어»도 우의 시와 맥락을 함께 하고있다. <바위>,<풀꽃>, <웃음>, <향기>,<숨결>, <나비춤>, <잠자리>, <귀뚜라미>, <벌떼>, <한방울의 시> 등 상호 무관한 이미지들이 집합을 이루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즐거워한다.

 

김파 시 모두가 탈관념인 것은 아니다. «안개 낀 미로»가 그러하다. 한숨을 내쉬고있는 <간판>, 꺼이꺼이 눈물을 짜고있는 <설명패쪽>, 컹컹 짖어대는 <세퍼트>, 열두쪼각 울음소리를 내는 <빈 거울> 등은 비록 유기적인 련계는 없으나 한숨, 눈물,울음으로 어떤 전도된 시비나 진리 등을 역설적으로 야유하고 폭로하고 반항하고 있다. 즉 어느 정도의 관념이 받쳐주고 있다. 하이퍼시는 적지 않은 숙제를 안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념의 수용여부이다. 관념에 대한 지나친 배척은 자칫하면 황당성과 미로, 미궁 그 자체에 머무르고 말 확률이 사뭇 크다. 따라서 독자들에게서 외면당할 수 있는 확률도 그만큼 크다. 필자는 «일체의 관념을 배제한다면 유희성만 남을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관념이라도 살려 대상에 대한 감각과 인식의 인지단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엷고 투명한 정도의 관념을 함유하게 함으로써 시적가치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최진연 <하이퍼시의 이해>)는 견해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상으로 몇수의 시를 읽어보았다. 예문에 올리지 않은 시들도 기본상 위에 설명한 시들과 같은 구조이므로 더 살펴보지 않기로 한다. 김파의 시들은 절대적자유와 무변의 공간을 제공하는 시이며 읽고 생각하는 시가 아니라 보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이다. 이러한 시들을 독자들이 즐길지 배척할지 필자로서는 확단하기 어렵다.

 

아무튼 21세기 디지털시대에 태여난 디지털시나 하이퍼시는 확실히 하나의 새로운 문학현상임은 틀임없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라고 하여 다 좋다는 보장도 없고 생명이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하이퍼시가 어느 만큼 공감대를 가지며 그 수명이 어느 만큼 길지를 두고 왈가불가하기가 아직은 시기상조다. 금후 독자층의 선호도에 의해 그리고 시간에 의해 하이퍼시의 존재가치와 운명이 결정지어지게 될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한마디 부언할 것은 하이퍼시에 매료되고 현혹된 일부 사람들이 무릇 하이퍼시가 아닌 시는 모두 시가 아니라고 하고 하이퍼시를 경멸하는 사람들은 하이퍼시는 시가 아니라고 폄하하면서 서로 옥신각신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백화제방에 위배되는 것으로 제창할 바가 못된다. 남이야 뭘 쓰든 관계치 말고 조용히 자기가 즐기는 시를 쓰는것이 바람직한 행위, 점잖은 군자다운 행위가 아닐가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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