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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of the Real』 Hal Foster 누가 네오-아방가르드를 두려워하는가? *네오-아방가르드: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적 고안들, 즉 콜라쥬와 앗상블라쥬, 레디메이드와 그리드, 모노크롬 회화와 구성조각 같은 것들을 재활용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북미와 서유럽 미술가들을 느슨하게 묶어서 지칭하는 말. 할 포스터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던 수많은 '네오'와 '포스트'들 중에서, 예술적 관례들과 역사적 조건들 둘 다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려 열망했던 복귀들에 주목한다. 그는 '근본적인 독해'의 예로, 알튀세의 마르크스 독해와 라캉의 프로이트 독해를 들고 있다. 이 두 복귀의 핵심은 담론의 구조,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나 정신분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의미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변형시켰는가 하는 데에 있었다. 알튀세는 마르크스 내에서 잊혀진 단절을 분명히 밝혀내는 데에, 라캉은 프로이트와 소쉬르 사이의 잠재된 연계를 명료화시키는 데에 집중하여 각기 다른 내부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해의 방법과 모티브는 유사하다. 즉, 억압적으로 느껴지는 현재의 작업방식으로부터 그 담론을 떼어내기(disconnect)위해서, 그것을 어떤 상실된 실천과 다시 연결시키려는(reconnect) 전략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후자의 움직임(다시)은 시간적인 것으로, 전자의 공간적인 움직임(떼어내기)속에서 새로운 작업장소를 열어놓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술에서는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의 뒤샹적인 다다의 레디메이드들과 러시아 구축주의의 불확정적 구조들의 복귀가 앞서 말한 근본적인 복귀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두 움직임은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모두 자율적 미술 및 표현주의적 미술가의 부르주아적 원리들에 대해 투쟁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방법-전자는 미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의 포즈와 일상 사물들을 포용함으로써, 후자는 산업 재료들을 사용하거나 미술가의 기능전환을 시도함으로써. 목적-미적 범주들에 대한 인식론적 탐구를 통해서 예술 제도를 규정하고/하거나 그것의 형식적 관례들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공격을 통해 그 같은 예술제도를 파괴하려고. 그러한 제도를 혁명적 사회의 유물론적인 실천들에 따라 변형시키려고.) 두 경우 모두 미술을 세속적인 시·공간과의 관계 속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적 실천과의 관계 속에서 재위치지우기위한 것이다. 50년대의 미술가들이 대체로 아방가르드적 고안들을 재활용했다면, 60년대의 미술가들은 그것을 비판적으로 탐구했다. 두 가지 전제: 아방가르드를 구축하는 일의 가치에 대한 것, 아방가르드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서사들의 필요에 대한 것. 아직까지도 아방가르드에 대해서 논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적 형태와 정치적 형태사이의 상호접합(articulation)이라는 문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예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상호접합이야말로, 포스트모던이라는 절충적 개념 뿐 아니라 네오-아방가르드에 대한 탈역사적(posthistorical)설명이 말소하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온 과거를 복합적으로 만들고 나아갈 미래를 지원하는,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계보가 필요하다. <아방가르드 이론 Ⅰ> *페터 뷔르거의 <아방가르드 이론>의 핵심과 할 포스터의 관점. 뷔르거의 전제, 그러니까 아방가르드의 모든 활동들이 부르주아 예술의 허구적 자율성을 파괴하려는 기획 아래 포섭될 수 있다는 것에 문제가 많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절대적 기원으로, 즉 그 미적 변형이 첫 번째 단계에서 완전히 그 의미를 드러내고 또 역사적으로 그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그려낸 것. 이는 지금 현재 역사적 아방가르드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작업(작가)들이 아방가르드적 실천과 제도적 수용 사이의 대화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나아가는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뷔르거의 전제: 어떤 한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오로지 그 예술이 진전하는 정도에 따라서만 진전할 수가 있다. 뷔르거의 주장에 따르면, 부르주아 예술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비판은 이 부르주아 예술의 전개, 특히 그 역사 안에서의 세 단계들에 의존한다. 첫단계는 18세기 말경 예술의 자율성이 계몽주의 미학에서 하나의 이상으로서 선언되었을 때 생겨났고, 두 번째 단계는 19세기 말경 이러한 자율성이 바로 예술의 주제자체로 바뀌었을 때, 그리하여 추상적 형식뿐 아니라 또한 세상으로부터의 유미주의적 퇴각 역시 추구했던 예술 속에서 생겨났다. 세 번째 단계는 20세기 초엽 이 유미주의적 퇴각이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의해, 예를 들면 미술은 사용가치를 회복해야한다는 생산주의자들의 명백히 드러난 요구나, 혹은 미술은 자신의 무용성을 인정해야한다는-문화질서로부터의 예술의 퇴각은 또한 이 질서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다다이스트들의 함축적인 요구의 형식으로 공격받았을 때 생겨났다. 그의 이론이 신봉하는 진화의 개념은 이전과 이후를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전혀 별개의 것과 합성시키는 단순한 것이며, 역사를 순간적이면서 또한 종국적인 것으로 제시하게끔 그를 이끌어 갔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네오-아방가르드에 의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반복은 오로지 반-미학을 예술적인 것으로, 위반적인 것을 제도적인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뿐이다.(물론 그것이 다 거짓은 아니지만) 따라서 역사적 아방가르드=영웅적(성공한) 과거, 네오-아방가르드=실패한 현재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두 아방가르드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뷔르거는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예술양식들이 역사적 관례들임을 드러냈으며, 그것들을 실천적인 수단들로 다루었다고 주장하며, 이것들이 예술-역사를 넘어서고 목적을 결여한 것으로 간주되는 -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비판에 근본적인 이중의 수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이런 자의성은 네오-아방가르드의 "어떤 의미설정도 가능케 하는 공허한 의미의 선언"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질적 차이는 아니다. 여기서 두 아방가르드 사이의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 할 포스터가 뷔르거를 걸고넘어지는 목적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 사이의 시간적 교류, 말하자면 예상과 재구성의 복합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데에 있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패를 시뮬레이트하는 네오-아방가르드라는 뷔르거의 논리는 더 이상 충분치 않으며, 그가 주장해마지않는 역사적 진화라는 개념과도 모순된 것이다. 그의 결론은 1. 아방가르드의 다음과 같은 교훈, 즉 동시대 예술의 역사성이라고 하는 교훈을 무시하고 있는데, 그러한 교훈을 뷔르거는 다른 곳에서는 우리에게 설파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이러한 역사성에 대한 이해가, 바로 그로 인해 예술이 오늘날 예술로서 진전되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2. 그것은 네오-아방가르드가 예술제도에 대한 전전의 비판을 전복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애썼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네오-아방가르드가 그렇게 하는 가운데 새로운 미적 경험들과 인식상의 연관들, 그리고 정치적 개입들을 생산해냈다는 사실을 무시하며, 또 이러한 새로운 개방들이 바로 그로 인해 예술이 오늘날 진전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평가기준을 구성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할 포스터는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을 무효화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은 아닌가?'라는 가설에서부터 새로운 개방의 가능성을 탐구해나가려 한다. <아방가르드 이론 Ⅱ> 뷔르거에게 또 한 번 딴지를 걸자면, 그는 아방가르드가 예술과 삶을 다시 연결시키기 위해 자율적인 예술제도를 파괴한다고 했는데, 이런 관점은 문제가 되는 자율성을 예술에게 할당하고 삶은 그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시켜서 필연적으로 아방가르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방가르드의 실천들이 지닌 결정적 차원을 놓치게 된다.(예: 아방가르드가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타락한 세계를 조롱하기 위해서 흉내낸 모방적 차원, 아방가르드가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보다는 무엇이 존재할 수 없는가를 제안하려고 했던 유토피아적 차원) 하버마스는 뷔르거에 한 술 더 떠서 아방가르드는 단순히 실패했을 뿐 아니라, 항상 이미 잘못된 것, 즉 "넌센스한 실험"이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아방가르드는 예술-그-자체라는 범주를 그대로 유지하며 그저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의 역전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들의 목표는 예술의 추상적 부정이나 삶과의 낭만적 화해가 아닌, 삶과 예술이라는 이 양자의 관례들을 지속적으로 시험하는 것이며, 그 실천은 모순적·유동적, 악마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것은 예술과 삶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예술의 관례와 제도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예술제도는 미적 관례들을 총체적으로 지배하지는 않는다. 또 이러한 관례들은 예술제도를 총체적으로 구성하지는 않는다. 이런 차이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의 역점들을 구분하게 해주는데, 전자가 관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제도적인 것에 집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네오-아방가르드들은 역사적 아방가르드들이 수행한 전통적 매체들의 관례들에 관한 비판을 미술제도에 대한 탐구, 즉 그 제도의 지각적이며 인식적인, 또 구조적이며 담론적인 매개변수들에 대한 탐구로까지 발전시켰다. 따라서 할 포스터의 세 가지 주장은 1) 예술제도가 그 자체로 포착되는 것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더불어서가 아니라 네오-아방가르드와 더불어서이다. 2) 네오-아방가르드는, 최상의 상태에서는, 이 제도에 대해서 특정하면서도 해체적이기도 한 창조적인 분석(역사적 아방가르드에서 자주 그랬듯이, 추상적이면서 무정부적인 성격을 띠는 허무주의적 공격이 아니라)을 수행한다. 3)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무효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기획을 처음으로-이 처음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재차 끝이 없는 것이다-실행한 것이다. <저항과 회고> 네오-아방가르드라는 용어를 더 세분화해보면, 초기 네오-아방가르드에 있어서 두 계기를 구분할 수가 있다. 첫 번째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본적인 고안들을 반복함으로써 미술제도를 변형시킨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방가르드를 제도로 변형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억압과 반복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모델과의 유비에 따르면 이는 억압된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그 모순들이 충분히 다뤄지기 전, 그러니까 회고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반복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평가와 판단, 분류가 있기 전, 무의식적인 저항으로서 수용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이런 아방가르드의 제도화는 두 번째 네오-아방가르드에 있어서,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첫 번째 네오-아방가르드 양자의 한계들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촉구한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첫 번째 네오-아방가르드의 소위 말하는 실패, 즉 미술제도를 파괴하는 데에 있어서의 그것들의 실패는 두 번째 네오-아방가르드에 의한 이 제도의 해제 실험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네오-아방가르드를 종착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럴려면 그것의 비판이 그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여러 상황은 두 번째 네오-아방가르드에게 또 다시 성찰을 요구하는데, 그 제도적 분석을 발전시키려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시대 미술가들은 거대한 대립들(oppositions)로부터 미묘한 전치들(displacements)에로, 그리고/혹은 다른 집단들과의 전략적인 협업들(collaborations)에로 옮겨갔다. 이런 과정이 아방가르드의 비판이 지속되는 한 방식이며, 아방가르드가 지속되는 한 방식이다. <지연된 작용>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 사이의 이러한 개정된 관계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로 다시 되돌아가자. 할 포스터의 텍스트를 관통하는 한 가정을 전면으로 드러내면, '역사는, 특히 모더니즘의 역사는 자주, 암암리에건 혹은 그 반대이건 간에, 개인 주체라는 모델에 입각해 실로 하나의 주체로서 포착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가정에서 자유로워지거나 포기하는 대신, 그것을 하나의 덕목으로 만드는데, 개인 주체에 대한 이러한 유추가 역사 연구에 있어 거의 구조적인 것이라면, 차라리 주체에 관한 가장 정교한 모델인 정신분석학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공공연히 제안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심리적 시간성을 포착한 것을 라캉의 프로이트 독해로 풀어보면, 하나의 사건은 오로지 그것을 기록하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서만 등재되며, 또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오로지 지연된 작용 속에서만 알게 된다는 내용인데, 포스터는 모더니즘 연구 목록들 속에 이런 유추를 집어넣는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즉 미리-당김(protention)과 다시-당김(retention)의 지속적인 과정, 예상된 미래들과 재구성된 과거들 간의 복잡한 이어달리기로서-간단히 말해, 이전과 이후, 원인과 결과, 기원과 반복이라는 그 어떤 단순 도식도 헛되게 되고 마는 지연된 작용 속에서-구성된다는 것이다. 뷔르거의 '최초의'시작과 끝이라는 결론과 달리, 이런 유추에 의거한다면 아방가르드 작업은 그 시초의 계기에 있어 결코 역사적으로 효과적이지도, 또 충분히 의미있지도 않다.(그저 그 시대의 상징질서에 뚫려 있던 하나의 외상(구멍)일 뿐.) 이 외상은 레디메이드와 모노크롬 같은 아방가르드적 사건들의 반복이 지닌 또 다른 기능, 즉 그러한 구멍들을 깊게 할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덮기도 하는 기능을 지시해 준다. 그리고 이런 기능은 처음에는 분열적이고 두 번째에는 회복적인 두 작동방식을 구별할 것인가, 과연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지시해 준다.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의해서 그것이 작용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작용하기도 한다. 억압되었던 아방가르드는 복귀를 거듭한다. 미래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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