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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 마광수(馬光洙)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
-- 시집 『광마집』(심상사, 1980) 중에서
마광수(馬光洙) 시인
1951년 경기도의 수원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1983년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음.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망나니의 노래>,<고구려>,<당세풍의 결혼>,<겁>,<장자사>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시문단에 데뷔. 문학이론서와 평론집을 출간해오던 그는 1989년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출간함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모음. 《문학사상》에 장편 <권태>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로 인해 구속되고, 교수이던 연세대학교에서도 해직당하지만 복직됨.
작품 해설
마광수(馬光洙) .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10일, 가족들이 1.4 후퇴로 피난가서 잠시 머물렀던 경기도의 발안에서 태어났다. 그후, 종군사진작가였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그는 서울 청계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통해 1983년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최초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의 결혼>, <겁>, <장자사> 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시문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1980년 처녀시집인 『광마집』을 심상사에서 출간했다.
그는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전임강사 시절도 있었지만 1982년 조교수로 승진한다. 1984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조교수로 취임하고, 1988년 부교수로 승진했다. 문학이론서와 평론집을 출간해오던 그는 1989년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출간함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문학사상》에 장편 <권태>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로 인해 구속되고, 연세대학교에서도 해직당하지만 1998년 3월31일에 사면·복권되고 연세대학교 교수로 다시 복직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교수와 작가로서의 마광수의 언행은 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구속', '수감', 항소심' 등이 말이 등장하는 마광수의 이력은, 그동안 그의 글들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광수가 정작 자신은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마광수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주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광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자신은 자신의 하고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광수는 무슨무슨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글과 생각은 그것이 발표될 때마다 일종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그처럼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회적 issue가 되었던 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 그 때문에 그를 가리켜서 이른바 '이 시대의 광인(狂人)'이라 論하고 있음에도 이젠 그런 애칭이 오히려 더욱 잘 어울리는 작가인지 모른다.
오늘 소개하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1979년도에 발표된 시로 그의 첫 시집 『광마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의 근엄한 엄숙주의 밑의 속물근성을 드러내고 폭로해주는 시이다. 1980년대 후반 또 하나의 엄숙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 시인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수필집을 내면서 법정시비에 휘말리고 대학에서 쫓겨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정작 이 시가 씌어진 것은 1970년대 후반 시인이 대학원 다니던 시절이었다. 수필집과 더불어 즐거운 사라 등 소설에 손을 대면서 한 쪽 방향으로 멀리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 시는 나름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화장한 여자에 대한 긍정과 화장기 없는 여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 문화 저변에 팽배해 있는 엄숙주의적인 태도의 허위성을 비판하고 폭로해주는 시이다.
연 구분 없이 전체 23행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의미상으로 화장한 여자에 대한 예찬, 화장기 없는 여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나도 화장하고 싶다는 내용의 세 단락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첫단락에서 시인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파격적인 발언에 이어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다음 단락의 "덕지 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로 화장의 농도를 점층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면서 화장한 여자가 좋다는 주장을 과장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첫 단락의 과장적인 어조는 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부분이 지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화장에만 신경을 쓰는 여인들의 천박한 속물성을 비꼬기 위한 언어적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묘미는 그러한 상식적인 논리를 뒤집어엎는 마광수 특유의 어법에서 나온다. 시인은 순진한 척 하면서(실제로 순진하다) 화장한 여자가 좋다고 우겨댐으로써 실제로는 화장기 없는 메마른 여성보다 화장한 여자를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화장한 여자를 천박하게 생각하는 엄숙주의적 태도의 이중성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리숙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진지하고 세상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그것에 부딪칠 만한 힘이 없는 시인의 자신에 대한 씁쓸한 시선이 반어적인 어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 단락에서 시인은 화장한 여자와 화장기 없는 여인을 대조시켜 화장한 여자의 얼굴에서는 순수한 얼굴이 보석처럼 빛나고 화장기 없는 여인은 독재자, 속물주의적 애국자 같다는 역설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상식적인 의미에서 화장은 거짓이나 감춤, 속임수 등을 상징하기 때문에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는 구절은 논리적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구절은 화장이라는 것이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의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표면적인 논리 이면의 또 다른 진리를 드러내게 된다.
이성 중심적 사고에서 지상적 욕망이나 감정은 부정적인 것, 또는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감정과 욕망은 생명 그 자체의 자연스런 표출이며 어떤 의미에서 생명 자체와 동일시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시인이 보석에 비유한 순수한 얼굴은 바로 이성에 의해 억압되지 않은 원시적인 발랄한 욕구와 생명력을 의미한다. 화장은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원시적 생명력의 존재를 드러내주는 양식이기 때문에 화장한 여자는 아름다운 것이다.
억압되지 않은 발랄한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거기에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완벽한 조화와 통일이 있다. 현대의 이성 중심적 사회는 그러한 조화와 통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냉정한 가슴과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만이 가득할 뿐 인간의 발랄한 생명력은 가슴 속 깊이 억압되어 묻혀 있다. 이성 중심적 사회에서 그것은 마치 땅 속 깊이 묻혀 있는 보석과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화장은 묻혀 있는 보석, 즉 억압되어 있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인간적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주는 수단인 셈이다. 따라서 화장한 여자는 욕망을 억압하고 감추는 이성 중심적인 냉정한 가슴을 의미하는 화장기 없는 얼굴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인이 화장기 없는 여인을 독재자나 속물적 애국자와 비유하여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재자나 속물적 애국자는 그들의 획일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욕망을 억압한다. 그들에게 지상적 욕망은 부정적이고 천박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엄숙한 얼굴을 가장한다. 그들의 엄숙주의 밑에서 지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생명과 욕망은 질식당한다.
화장을 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가장 인간적인 행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남에게 자신을 잘 보이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와 관련된다. 따라서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부정과 같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만은 아니다. 화장을 기피하거나 천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성적 엄숙성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은 여인이나 화장기 없는 여인은 인간다운 욕망이 없거나 그것을 감추고 엄숙을 가장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똑같이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는 독재자나 속물적 애국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에서 시인은 자신도 현실적으로 되어 화장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되어" 라는 구절은 시인 스스로 현실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 즉 엄숙주의적 세계에서 욕망을 숨기고 그것을 가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인을 억압하고 있는 엄숙주의적 세계는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 그대로 마광수로서의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인의 자아는 질식당할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시인은 과장적인 어조로 "화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귀걸이 목걸이, 팔찌로 주렁주렁 몸을 감싸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데 이는 이성 중심적 사회 속에서 극도로 억압된 자아의 자기실현을 위한 애절한 몸짓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성중심적 사회에서 엄숙주의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시인의 지상적 자아는 극도로 위축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다. 분열 직전의 위축된 자아는 화장한 여자들처럼 화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귀걸이, 팔지, 반지, 목걸이로 몸을 주렁주렁 감쌈으로써 자연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살고 싶은 것이다.
욕망이란 인간이 타고난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욕망 역시 신이 만든 것이다. 모든 욕망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도, 도와주고 싶은 것도, 부처가 되고 싶은 것도 욕망이다. 욕망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서 욕망을 부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욕망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욕망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 즉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아름다울 수 있으며 욕망이 살아 있는 사회는 자유와 생명이 살아 넘치는 사회이고 욕망이 억제된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신적인 세계관과 지상적인 세계관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한 시대에 신적인 질서가 지배적이면 다음 시대에는 지상적인 질서가 들고 일어나게 된다. 신적인 질서가 지배적일 때 인간의 지상적 욕망은 억압된다. 반대로 지상적 질서가 지배적일 때 무질서와 혼돈이 초래된다.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을 초래한다.
인류 역사가 시대별로 지향점을 바꾸는 이유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신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류 역사가 두 축을 중심으로 교체되기는 하지만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지상적인 질서와 욕망에 억압이 가해지지 않는 시기는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문학들이 성적인 자유와 해방을 외쳤던 것도 이성주의적이고 신적인 세계관의 억압으로부터 지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자유를 획득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적인 자유를 외쳤던 많은 문학들은 당대에는 외설로 지탄받고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뒷날 그런 문학들은 고전으로 추앙받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훗날 문학史에 지금까지 발표했던 마광수의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현재로선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주목하고 늘상 우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도 바로 이 시와 소설 '즐거운 사라' 등의 작품들로 인해 구설수로 끊임없이 독자들의 입과 매스콤에 오르내리면서 사회의 비판과 혹독한 곤욕을 치루었고 '즐거운 사라'는 외설 소설이라는 비판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또한 향후에도 논란과 비판의 대상으로 여전히 주목받는 작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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