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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 운동과 公演詩
2015년 02월 18일 11시 20분  조회:3625  추천:0  작성자: 죽림

공연시의 특성과 전망

 

 

                                             심 상 운

 

1.

 

현대는 사회의 곳곳에서 창조적인 상상력이 활화산처럼 분출되는 시대다. 이 상상력은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존재성을 높이면서 다양한 가치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대표적인 예(例)가 현대예술의 첨단에 위치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다. 그는 이전의 예술가들에게는 전혀 예술의 재료가 되지 못했던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최초의 ‘테크놀로지 사상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현대시의 실험적인 시인들은 언어문자의 틀을 넘어서, 시가 음악과 영상, 시인의 연기를 포함하고, 연극의 무대로 진출하여 독특한 시의 공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시에서 시가 언어의 의미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무의미시, 탈관념시). 시가 사물화 되려는 것(사물시). 시가 순수 이미지의 집합만으로 만족하려는 것(디지털 시, 기호시)과는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현대시의 창조적인 변화의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언어(문자)를 유일한 표현매체로 삼는 전통적 시의 기능에서 벗어나는 창조적인 변화의 양상으로서 그 속에는 현대의 특성인 ‘경계 허물기’ 와 ‘통합하기(퓨전)’가 들어있다. 그들은 시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시인의 사상, 감성, 상상, 영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시의 공연화(公演化)는 시와 연극, 시와 무용, 시와 회화, 시와 음악 등이 융합하는 현대시의 혁신적 변화로써 독창적인 표현영역을 확립해야 하는 미래지향적 과제를 안고 있지만, 영상매체에 위축된 현대시의 독자(관객)를 향해 새로운 소통의 문을 여는 ‘열린 시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존재의미가 평가된다.

 

 

2.

공연시(公演詩)는 이미 존재하는 극시나 시극과는 성격이 다르다. 극시나 시극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1시간 이상 공연되는 연극의 대본(희곡)이지만, 공연시는 보통의 짧은 서정시의 낭송언어를 공감각적 이미지에 조화시켜 5~7분 동안 무대에서 연출하여 보여주는 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시(perfomance poetry)는 글자 그대로 ‘공연+시’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시와 다른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공연시를 창작할 때에는 첫째로 ‘공연을 위한 시’의 요소(극적 요소)가 창작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둘째로 무대에서 연출되기 위해 시인, 연출자, 배우 등의 역할분담(분업화)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공연시의 독자성을 살리기 위해서 연극, 음악, 무용 등 기존의 예술들과 융합되면서 ‘시의 언어감각과 이미지와 상징성’을 살려나가는 독창적인 표현양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연을 위한 시의 목적에 부합되는 새로운 장르로서의 공연시가 정착되고 창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창작된 기존의 작품들은 ‘각색(脚色)’의 과정을 거치거나 창조적 연출의 기능에 의해서 공연시(각색시)로 재탄생할 수 있다.

 

 

현재 무대에서 공연되는 공연시는 ‘1인 낭송시’, ‘합송시’, ‘무용시’, ‘퍼포먼스’, ‘영상시’ 등으로 분류된다. 1인 낭송시의 경우에는 도우미가 캐릭터의 역할을 하고, 배경음악, 효과음, 소품사용 등을 통한 시인의 낭송연기로 문자시의 한계를 벗어나는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일반적인 시낭송(詩朗誦)과 차별성을 갖는다. 그리고 녹음된 시의 낭송을 곁들이는 무용시(舞踊詩) 언어의 시를 몸의 시로, 퍼포먼스는 간단한 무대 장치를 갖춤으로써 언어의 시를 극적인 연출의 시로, 영상시(映像詩)는 노래나 해설과 함께 사이버 공간에서의 영상과 시의 결합이라는 방법으로 시의 이미지를 표현하여, 문자를 유일한 매개로 하는 ‘종이 속에 갇힌 시’와는 차원이 다른 전달성을 드러낸다. 이런 공연시의 표현 효과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평면성을 입체성으로, 청각이나 시각을 공감각으로 바꾸는 이미지의 다양한 변화다. 그리고 이와 함께 영상시를 제외한 공연시에서 이루어지는 시공연자(시인)와 관객(독자)의 직접적인 만남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관객(독자)들에게 문자시에서 맛보지 못하는 즐거움을 주고 독자와 함께 시의 호흡을 나누는 것이다. 오늘날의 관객(대중)들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적 특징인 비유적, 상징적 표현이나 문맥 파괴적인 현대시의 공연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3.

공연시는 시의 커뮤니케이션에서만 아니라 시의 창조적인 이미지 면에서 현대시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 예상된다. 공연시는 언어와 문자를 기본으로 하지만 무대의 공연을 통해서 시인(배우)의 연기와 무대장치, 조명, 소리 등의 효과로 전달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째로,그 변화의 양상에 일반적인 현대시를 대입해보면  영상시를 지향하는 시에서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을 통한 복합적인 이미지의 세계(하이퍼택스트)를 구현하는 시가 더 확산 될 것 같고, 짧은 서정시에도 극적인 요소를 넣어서 입체적인 표현을 하는 시가 일반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전망이 가능한 것은 공연시가 확산되면 그것이 전통(일반) 서정시의 표현 방법에 도미노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시의 주체는 시인(창작자)이라는 고정관념의 변화다. 시를 무대에서 행위예술로 표현하는 배우나, 시를 각색하고 연출하는 연출자도 시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독창적 해석에 의해 시의 의미와 감각이 여러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다.

셋째로는 시의 표현에 사용되는 음향과 영상기기와 시의 만남이다. 악기와 전자기기들이 시의 표현양식 속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언어를 대신하는 매체로 자리를 잡게 된다. 따라서 물리적인 기기(機器)와 시의 합성은 새로운 감각의 시를 탄생하게 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시가 한정된 종이의 공간에서 무한정한 사이버의 공간으로 확산되어서 시의 대중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예상이다.

 

 

공연시의 이론을 세우고 실제적 공연에 앞장서서 새로운 시의 영역을 개척해온 신규호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은 이제까지 벌여온 공연시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현대사회에서 구현가능한 공연시의 전망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금요포럼> 「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2007, 4,27)

“실제로,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무대 위에서 직접 창작시를 합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낭송하거나,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거나(노래시), 또는 시극이나 무용시, 퍼포먼스 등을 시청각 매체를 이용해서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청중들에게 몸으로 다가가고자 시도하는 ‘공연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200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좋은시 문학회’가 총 88회에 걸쳐 실험하고 있음.)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시는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나 카메라 폰 등으로 녹화하여 다시 사이버 공간이나 DMB, TV 등에 재생하여 감상하게 함으로써 ‘공연시’의 재생산,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본다. 더구나, 최근에 새로 등장한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나 'SECOND LIFE'와 같은 콘텐츠 제작 방법을 ‘공연시’가 앞으로 잘 활용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망은 현대 영상매체의 기기와 공연시를 밀접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는 백남준이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과 유사한 독창적인 비전이다.

 

 

4

공연시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시인은 ‘시인, 연출가, 배우’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종합예술인의 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의 시를 언어(문자)에서 해방시켜서 온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전문가적인 정신과 열정이 있다. 그래서 “ ‘공연시’는 보다 ‘인간적’이다. 시인과 청중이 시를 가지고 직접 서로 만나서, 면대 면으로 호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발표해 보여줌으로써, 창조적인 시적 상상력을 통한 감동을 서로 공유한다는 데에 참뜻이 있다. 비인간화 시대에 시적 정서를 직접 교환함으로써 인간적 유대감을 증진함은 실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신규호 시인의 글(「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은 더욱 공감을 준다.

 

예술작품을 비롯한 문화 현상들에서 형식이 내용의 대부분을 만들어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근거가 되는 예(例)는 집의 형태에 따라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달라지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고, 환경이나 제도가 사람의 생활 형태와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형식은 내용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용기(容器)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공연시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오늘 열리는 ‘한국 현대 시인협회 주최 제1회 <전국 공연시 경연대회>’는 이제까지 검토한 여러 가지 사실에 비추어볼 때 매우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된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시인과 도우미(조연)는 전문적인 연기자가 아닌 순수한 아마추어들이지만 그들은 자기가 창작하는 시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있으며 열정이 넘친다. 따라서 어설픈 장면도 많겠지만 전문가를 넘어서는 재치와 상상력의 싱싱함도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몸의 시, 행위의 시를 받아들이고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자. 그리고 우리도 그들과 한 몸이 되어 보자. 그러면 ‘종이’에서 해방된, 뜨겁고 빛나는 새로운 시의 혼(魂)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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