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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장과 련
2015년 04월 09일 21시 28분  조회:4667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조의 장(章)과 연(聯)
-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과 문무학의 『ㄱ』-

 

이솔희

 

“요즘 쓰는 시조는 자유시인지 시조인지 알 수가 없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한 마디를 듣고 생각이 많아진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시가(詩歌)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유시와 변별성이 없구나.’라는 생각이다. 그 다음으로 옮겨 가는 생각이 자유시와 변별성이 없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다. 
문학작품의 성공여부는 독자가 느끼는 감동의 여부에 달려있다. 즉 형식과 내용을 떠나 궁극적인 목적은 독자의 감동을 끌어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독창성과 신선함도 결국은 독자의 감동에 기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감동이라는 영역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한 제대로 된 형식과 내용이다. 서정(抒情) 장르인 경우 서사(敍事)나 극(劇)장르와는 달리 율격미가 있어야 하고 또한 압축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곧 압축미와 율격미가 서정 장르의 날개 구실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정 장르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사나 극 장르의 형식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서정 장르만이 가지는 개성을 살려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시조인 경우 시조의 형식 안에 독자에게 줄 감동을 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형식이 자유시와 구별되는 시조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시조의 경우 3장의 형식에도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신선함과 독창성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선택한 것이겠지만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되지 않을까 하여 매우 불안하다.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그것과 근원적 연결고리 관계에 있는 고시조의 정체성 파악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그것과 대립적 경쟁관계에 있는 자유시와의 관계 설정에도 명백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임에도 정작 문단에서는 소홀히 여겨왔던 데에서 혼란의 요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김학성, 「시조의 정체성과 현대적 계승」) 따라서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서는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형식부터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철종시 유만공(柳晩恭)의『세시풍요(歲時風謠)』 에는

시절단가음조탕(時節短歌音調蕩) 풍냉월백창삼장(風冷月白唱三章)
(시절단가는 음조가 질탕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3장으로 부른다.)
- 유만공(柳晩恭), 『세시풍요(歲時風謠)』-

이라고 한 삼장은 시조 한 수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노래한다는 뜻이다. 즉, 장이란 일정한 음보율(4음보)과 대개 2개의 구로서 한 의미덩이(시상의 단위)를 이루는 것이다.(고경식ㆍ김제현, 『시조ㆍ가사론』)
시조의 삼장은 한시(漢詩) 절구체(絶句體)의 전형적인 구성법인 기승전결[起承轉結]과 같은 형식이다. 초장은 기구(起句)에, 중장은 승구(承句)에, 종장은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 해당한다. 기구(起句)에서 시상(詩想)을 일으키고, 승구(承句)에서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며, 전구(轉句)에서는 장면과 사상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결구(結句)는 전체를 묶어서 여운(餘韻)과 여정(餘情)이 깃들도록 끝맺는 것이다. 육당 최남선이나 노산 이은상 등이 6구설이나 12구설을 주장한데 맞서 가람 이병기가 8구설을 주장한 것은 시조 삼장은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종장에 전환과 결말을 갖는 의미 중심의 이론으로 본 까닭이다. 경우에 따라 위의 수순(隨順)을 완전하게 지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단시조 한 편이라 하면 최소한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지는 시조 삼장 안에서 하나의 주제가 완결(完結)되어야 할 것이다. 형식 또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완결성을 드러내 주어야 할 것이다.
근대시조를 거치면서 성행(盛行)하기 시작한 연시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연시조(聯詩調)는 단시조가 2편(編) 이상 모인 것으로 각각의 단시조는 작품 한 편으로서 완결되어야 하며 이 한편이 주제의 통일을 이루면서 또 다른 한 편과 연계성(連繫性)을 이루는 가운데 소주제가 확장되고 발전되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단시조에서 하나의 소주제문을 완결하여야 하며 각 연의 소주제문이 모여서 전체 한 편의 연시조가 추구하는 주제를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시조의 형식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현대시조를 창작함에 있어, 형식에 비해 내용의 중요성이 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형식은 어디까지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나 다만, 그 형식을 제대로 쓸 때 내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까닭에 강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감동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먼저 진솔(眞率)해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풀어나갈 수 있는 해결방법을 작품 내에 용해시키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 되겠으나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작가 자신이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솔직성이 작품 전체에 깔려있을 때 독자는 스스로 동일성을 갖게 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경우 통찰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통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카타르시스(감정 정화)가 전제되지 않은 까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과 문무학의 『ㄱ』은 시인 자신들의 솔직한 심정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시집을 읽고 있으면 시인들이 걸어온 발자취가 눈에 훤히 보인다. 그 발자취 곳곳에는 절망의 눈물이 묻어 있다. 그러나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하여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아! 인생이란 이러한 것이구나.’라는 통찰에 이르게 된다.

1.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 2014년 발간

  장식환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79년 『매일신문』신춘문예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문학동인 ‘낙강’, ‘문학경부선’, ‘대구시조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등에서 시작(詩作) 활동을 했으며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대구문인협회 부지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교사로 교육계에 입문하였으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후에도 계속 가르치면서 한편으로 공부하여 중고등교사, 대학교수, 대구광역시 교육위원, 교육위원회 의장, 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구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연등을 들고 서는 바다』가 있다.
  장식환 시인의 『그리움의 역설』은 ‘가을 벌에 선 나’,  ‘천지개벽의 꿈’,  ‘아름다운 세상에’,  ‘세월을 지고’ 등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시인의 힘이 수채화 같은 시상(詩想) 속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리움의 역설’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된 작품집에 실린 94편의 시조 가운데 ‘그리움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한 편의 제목을 따서 시집의 제목으로 올리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나 장식환 시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체 작품의 저변에 ‘그리움의 역설’을 깔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역설’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이다. 수사법으로는 역설법을 떠올릴 수 있는데 역설법이란 ‘표면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은 것 같지만 실은 그 속에 절실한 뜻이 담기도록 하는 표현 방법’이다.

바닷가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조개껍질

달 지면 해가 뜨고
해 뜨면 안개 걷듯

이ㆍ취임
허전한 마음
텅텅 빈 시골 같다


파장의 시골 장터
바람은 설렁한데

꽃 피면 찾아오던
나비도 가고 없고

꽃다발
주는 정에도
노을빛이 지고 있다.
                - <이ㆍ취임> 전문 -

언뜻 보면 흔히 우리가 느끼는 각박한 세태를 노래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달 지면 해가 뜨고/해 뜨면 안개 걷듯’, ‘꽃 피면 찾아오던/나비도 가고 없고’ 등이 그러하다. 앞에서 노래한 것들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러한데도 시적 화자의 마음이 ‘텅텅 빈 시골 같’고 ‘노을빛이 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부분에서 역설적 해석이 필요하다.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자연을 정확히 관찰하거나 우주 만물의 진리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 관계를 상호성에 바탕을 두고 파악해야만 인간과 생명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안드레아스 바그너 저 / 김상우 역,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
시적 화자의 이성(理性)은 이임식의 한산함과 취임식의 북적함을 모두 이해한다. 하던 일을 마쳤으니 한산한 것이 당연하고 새로운 일을 맡았으니 북적거리고 바쁜 것이 당연한 이치(理致)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감성(感性)은 그렇지 못하다. ‘한산함’은 ‘허전함’으로 이어지고 ‘북적거림’은 ‘충만함’으로 해석된다.(‘북적거림’이 ‘충만함’으로 여겨지는 것은 떠나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경우이다.) 어쩌면 이렇게 느끼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의 사고일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깡에 따르면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완전한 상태라고 한다. 태어나면서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을 반쪽이라고 느끼는 결핍 상태가 지속된다. 아기는 자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완전체가 되길 욕망한다.” 따라서 <이ㆍ취임>에서 느끼는 시적 화자의 허전함은 원초적으로 인간들이 가지는 허전함 내지(乃至)는 상실감 또는 그리움이라 할 수 있겠다. 원초적 그리움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더 갈증이 나는 것이다. 장식환 시인은 자연적인 현상과 시적 화자의 심상을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이 가지는 역설적 본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다음에는 형식면에서 특이점이 발견된다. 우선 <이ㆍ취임>은 두 편의 단시조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초장, 중장, 종장을 각각 분리해 놓았으며 각 장은 구별 배행, 또는 음보별 배행을 하여 각 장은 2행 또는 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 사이에 연 구분을 하여 ①과 같이 한 행씩 띄워 놓았다. 그리고 각 연 사이에는 ②, ③과 같이 두 행씩 띄워 놓았다. 정리하면, 결과적으로 각 장은 몇 개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 사이에는 한 행씩 띄워 놓았으며 연시조에 있어 각 연 사이에는 두 행씩 띄워 놓았다.

대동강 잠긴 강물

말끔히 옷 다 벗고

새 봄을 품에 안을

그 날을 그리면서

봄비가

빗장을 풀고

새봄을 재촉한다.
①               - <우수(雨水)> 전문 -

 <우수(雨水)>는 겨울 지나 봄이 오는 풍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장식환 시인은 ‘가을’을 소재로 쓴 시조 작품도 많지만 ‘봄’을 소재로 한 작품도 적지 않은 듯하다. ‘봄비’라는 작품이 대구 북부도서관 입구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팔공산 깊은 골짝/꿈꾸던 서설의 숨결’로 시작되는 작품으로 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역시 대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팔공산을 시적 배경으로 삼고 있어 장식환 시인의 향토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형식적인 특이점이 나타나고 있다. 시집 『그리움의 역설』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앞에서 살펴본 <이ㆍ취임>과 같은 형식인  각 장 사이에는 한 행씩 띄워 놓았으며 각 연 사이에는 두 행씩 띄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수(雨水)>는 단시조인데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각 구별로 ①과 같이 연 구분을 하고 있으며 ②와 같이 음보별 구분을 하여 연을 나누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형식을 그대로 취했다면 3연 7행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7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 문무학의 『ㄱ』: 2013년 발간

문무학 시인은 경북 고령 낫질 출생으로 1981년 『시조문학』지 「도회의 밤」으로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현대시조문학상, 대구문학상, 유동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이호우 시조 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을 거쳐 현재 대구문화재단 대표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는 『풀을 읽다』, 『달과 늪』, 『벙어리 뻐꾸기』,『낱말』, 『ㄱ』  등이 있다.
시조집 『ㄱ』은 시와 반시가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문학적 자서전 간행을 통한 문화의 향수를 기대하며 펴낸 손바닥 크기 기획 시집이다. 한 손에 딱 잡히는 크기로 포켓용으로 앙증맞게 나왔다.(권성훈 기자, 《매일신문》) 문화재단 문무학 회장이 입버릇처럼 부르짖는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요즘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의 문화강좌에서는 자서전 쓰기에 한창이다. 한평생 살아온 행적을 책으로 묶어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바람이 이러한 열풍을 몰고 온 듯하다. 대부분 수필 형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조집 『ㄱ』을 보고 나니 자서전이라고 하여 굳이 산문의 형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일생이 잘 드러나는 자선시와 작품의 배경이 될 만한 추억의 사진, 그리고 소상한 자술 연보를 덧붙이고 보니 구구절절 써 내려간 산문 형식의 자선전보다 훨씬 참신하면서 명료한 느낌이 들어 좋다.
‘ㄱ’이라는 시집 제목이 특이하여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낫 놓고 ㄱ자로 모른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은상 시인이 홍원옥중에서 지었던 ‘ㄹ자’라는 시 제목도 생각난다. 한글 사랑과 민족 사랑이 잘 형상화된 시조로 2연 종장 ‘ㄹ(리을)자 같이 꼬부리고 앉았소’라는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장식환 시인과 마찬가지로 문무학 시인의 시조집 『ㄱ』에도 ‘ㄱ’이라는 시조 작품은 없다. 다만, ‘시인의 말’에서 “시집 제목으로 한 번 튀어보고 싶어서”, “내 시의 방향을 달리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커다란 걸 남기겠다 그런 욕심 없습니다
비틀비틀 휘청휘청 내가 걸은 형상으로
찍힐 것
찍힌 그대로
그냥 그냥 좋습니다.

되돌아간다 해도 잠시 또 머물고 싶고
그 무렵 하던 생각 지금 다시 추스르며
후회가
묻어 있어도
섧다 할 수 없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흠 없는 발자국
눈밭에 놓이거나 모래밭에 놓이거나
내 걷는 
길 위에 곱게
이름 쓰듯 찍겠습니다.
- <발자국> 전문

시조 작품 <발자국>은 옆에 있는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이 명상에 들어 본연의 순수자아를 회복한 후 풀어놓는 심상(心象)이다. 때로는 타인(他人)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또 때로는 ‘장엄한 인생을 이루고 싶은’ 욕망도 일어나지만 모든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돌아왔을 때 생각이 달라진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진실, 정직을 생활신조로 삼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시인의 각오가 엿보인다. 그리고 현실의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엿보인다. 
시집을 통해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문무학 시인의 생애는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출생과 더불어 아버지를 여윈 까닭에 ‘아버지’라는 낱말은 시인의 목청에 맞지 않는 그런 낱말(<어떤 낱말>)이었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먹어본 자장면이 너무 맛있어 한 그릇 더 먹어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후회>)할 만큼 가난한 생활을 겪었다. 또한 부산 화신타올공장에서 라면만 먹어 온 몸의 부기가 빠지지 않던 고충을 겪기도 했다.(<부산>)
이처럼 문무학 시인은 늘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로웠다. 졸업여행을 가지 못하고 자장면을 마음껏 먹어보지 못할 만큼 가난했지만 그 가난이 단지 불편했을 뿐 수치심으로 자리 잡지는 않았다. 그래서 문무학 시인은 언제나 당당했으며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다. ‘솔직성’과 ‘정직’이 가져다 준 에너지라고 분석된다. 그 에너지가 또한 오늘날의 문무학 시인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가난은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명언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시조 <발자국>은 3연으로 이루어진 연시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각 연의 마지막 종결어미는 ‘-습니다’라는 경어체를 쓰고 있어 고백 형식을 띠고 있다. 1연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행은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형식으로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1연에서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겠다는 정직성이 드러나 있으며 2연에서는 지나간 일이 후회가 될 지라고 그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초연(超然)함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연에서는 남은 미래도 소박하지만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의지(意志)가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각 연마다 소주제의 완결성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주제가 모여서 거짓 없이 현실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인생철학을 하나의 큰 주제로 드러내고 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우리네 삶 속에서 기쁨은 가볍고 슬
픔은 무겁더라 가벼워 쉬 사라지고 무거워 오래 남더라.
가벼워 낄낄 거리고 무거워 허우적대며 삶이란 그렇게
살도록 짜여져 있는 연극 끝내는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
으로 지더라.
- <그렇더라 그렇더라> 전문

뒤돌아보면 기쁨은 없고 슬픔만이 남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듯 느껴진다. 그러나 찬찬히 더듬어 보면 슬펐던 일만큼 기뻤던 일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기뻤던 일은 기억되지 않고 슬펐던 일 위주로 기억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네 기준이 기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은 특별한 일 곧 큰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일은 기억되기 마련이고 작은 일은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한 인간의 심상을 문무학 시인은 2연의 연시조로 풀어내고 있다. 1연에서는 기쁨은 가볍고 슬픔은 무겁다고 단정(斷定)짓고 있다. 이어서 2연에서는 1연의 심상을 확대ㆍ발전시키고 있다. 즉, 기쁨이나 슬픔이나 모두 연극에 불과하여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리운 것이라는 초탈(超脫)의 경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형식에 있다. 두 편으로 확연하게 나누어지는 심상을 문무학 시인은 왜 장과 연을 무시하고 산문시처럼 쭉 이어서 서술을 해 놓았는지 궁금하다. 어떤 효과를 노리고자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두 권의 시집, 장식환의 『그리움의 역설』과 문무학의 『ㄱ』을 통해, 시인의 생애와 더불어 그가 가진 가치관, 생활신조, 추억 등을 살펴보았다. 두 시인 모두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작품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가난이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빛나는 삶의 훈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독자 스스로가 발견하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특히 문무학 시인은 문화 콘텐츠 측면에서 독자들이 다가오는 시조가 아닌 시인이 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한 방법 - 현재 대중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서전 쓰기 - 을 시조형식과 접목(椄木)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고시조가 그러했던 것 이상으로 현대시조에서도 대중성이 살아날 때 시조문학의 위상은 살아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성 확보와 더불어 놓칠 수 없는 것이 시조의 정체성 확립이다. 김학성이 이미 강조했듯이 “현대시조의 정체성은 그 명칭에 명백히 드러나듯이 현대성과 시조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데서 확립될 수 있다. 현대성을 충족해야 이미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사라진 고시조와 변별되는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고, 시조성을 획득해야 자유시와 경쟁관계에서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현대성을 무시하고 시조성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현대시조가 나아간다면, 엄청나게 달라진 현대인의 미의식에 걸맞는 공감대를 획득하기 어려우므로 시대착오적 복고주의 혹은 국수주의로 매도되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이와 반대로 시조성을 무시하고 현대성으로 과도하게 기울어 추구한다면 자유시와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그러려면 차라리 자유시 쪽으로 나오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김학성, 「시조의 정체성과 현대적 계승」)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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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력사는 력사... 北島 / 대답 2015-04-05 0 5429
330 중국 당대 시인 10인 2015-04-05 0 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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