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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8일 18시 25분  조회:4062  추천:0  작성자: 죽림

라. 예시 작품에 대한 디지털적 독해(讀解)

 

다음은 <가. 디지털 시의 개념과 근거>와 <다. 디지털 시의 조건>에서 예시작품으로 거론된 시에 대한 디지털적 독해다. 예시된 시들은 탈-관념의 세계를 보여주는 1950년대 한국의 초현실주의 시와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시의 방법론을 의식하고 쓴 작품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열 가지의 조건(방법)에 대입하여 디지털 시의 가능성을 진단해보고 새로운 감상과 해석의 길을 열어보는 것은 실제의 창작을 위해서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낡은 아코오딩은 對話를 관 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다리아>

<마주르카>

<디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바다의 층계(層階)」전문

 

 

1950년대 한국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이 시는 시가 “의미의 예술”(최재서「문학원론」)이라는 종래의 시론에서 벗어나서 탈-관념의 순수한 영상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불연속적인 각 연의 언어들은 집합적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의 각 연은 서로 독립적인 관계 즉 객체지향성(모듈)을 드러낸다. 그것은 시인이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자 같은 입장에서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연 <모래밭에서/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는 통사적 구문에서 벗어난 시의 한 형태를 보여주면서, 단위(단어, 구문)들의 충돌과 간섭을 통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전체적 면에서 구성이 산만하다. 그 원인은 이 시에 숨어 있는 시인의 의식(의도)이 시 전체를 통제(관통)하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마을을 덮은 코스모스 덤불

아무거나 한 송이 골라 꽃잎을 열심히 세어 본들

나비처럼 머무를 수야.

대추나무 밑동을 감고

한창 뿌득뿌득 기어오르고 있는 나팔꽃

푸른 것은 깔때기 모양

흰 것은 나팔주둥이

한 잎 두 잎 세 잎 네 잎 다섯 여섯 세어보지만

실은 한 송이일 뿐이다.

돌담을 돌자 앞장선 나비는 오간 데 없고

순하고 야들야들한 연보라 무궁화꽃

그 한 송이의 여섯 개 꽃잎을 확인한들

내 어쩌랴 어쩌랴.

해바라기는 서른네 개의 황금 꽃잎을 둥글게 박고

들국화는 서른아홉 개로 쪼개진 보랏빛을 빽빽이 둘렀거늘

내 어찌 머무를 수야.

-------문덕수「꽃잎세기」전문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디지털 시의 탈-관념된 언어 단위(unit)들은 결합을 통해서 대상의 모습(현상)을 드러내지만 분리(해체)를 통해서 존재의 본질을 확인하게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나팔꽃은 여섯 잎, 무궁화꽃 여섯 잎, 해바라기 서른 네 개의 꽃잎, 들국화 서른아홉”이라고 대상을 구성하는 작은 부분들을 분리하고 숫자화 함으로써 색(色)과 공(空), 결합과 분리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구상적인 자연현상을 추상적 디지털 언어로 환원하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문덕수는 이러한 시적 형상의 방법론을 그의 시론 「나의 시쓰기-물리주의와 집합적 결합」에서 “사물이나 대상 하나하나를 1,2,3,4,5.......와 같은 추상적 기수(基數)로서 개개의 구체적 특성을 추상화할 수 있고, 추상된 그 대상을 결합하여 한편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을 나는 역시 인접학문의 용어를 빌어서 “집합적 결합”이라고 명명해둔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디지털을 형성하는 수리적(數理的) 데이터의 의미 즉 디지털의 최소의 단위의 개념을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이 시는 디지털 시의 본질인 단위의 분리와 결합의 원리를 보여준 시라고 판단된다. 이 시에서 ”나팔꽃, 무궁화꽃, 해바라기, 들국화“는 디지털 시의 구조를 형성하는 부분 단위(module)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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