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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시의 구조
2015년 02월 19일 15시 42분  조회:3844  추천:0  작성자: 죽림

하이퍼시의 구조란 무엇인가

―하이퍼시란 무엇이냐?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 두 단위의 초월 관계를 연결하여 완성한 시다

 

 

                                                                                 문 덕 수<시인 . 예술원회원>

 

 

[1] 가끔 하이퍼시란 무엇이냐고 묻는 시인들이 의외에도 많습니다.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 중에도 그렇게 묻는 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우나,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를 연결한 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탈관념의 사물을 한 단위로 보고, 상상의 이미지를 한 단위로 본다면 모든 하이퍼시는 A단위와 B단위의 두 단위의 구조를 이룹니다. 결국 하이퍼시는 A단위를 어떻게 만들고, B단위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점으로 귀결되고, 그 두 단위를 연결함으로써 완성됩니다.

우리말에 ‘비근’(卑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상하거나 웅승깊지 아니하고 주변에 가깝게 있는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이퍼시는 비근한 사물을 묘사하여 A단위를 먼저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즉 ‘이성’(理性)이나 ‘정의’나 ‘선(善)’이나 하는 말이 아니라, 즉 관념이 아닌, 우리 주변에 가깝고 낮은 모든 사물들(집, 부엌, 그릇, 호미, 쟁기, 나무, 펜, 그릇, 종이 등)을 가지고 묘사하여 시를 쓰라는 것입니다.

영어에 ‘아우트리치’(outreach)라는 말이 있습니다. “팔을 뻗는다”는 뜻입니다만 동시에 팔을 뻗은 범위 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곧 비근한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팔을 뻗어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이 비근한 사물입니다. 즉 하이퍼시란 ‘아우트리치의 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탈관념 사물과 상상 이미지가 연결된 구조의 시라는 것이 제일 정확한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이퍼시를 쓰기 위해 칸트나 사르트르 같은 위대한 철학적 저서를 읽기 위해 인공위성을 탈 필요가 없습니다. 장자나 맹자나 불교학자인 용수(龍樹, Nagrhuna, 150~250)의 저서인 「중론」(中論)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물론 읽으면 더 좋지요) 지금은 아득히 높고 먼 시대가 아니라 아주 낮고 가까운 시대입니다. 즉 아우트리치의 시대입니다. 아우트리치의 시대에는 아우트리치의 시를 써야 하겠습니다.

아우트리치의 사물로 하이퍼의 A단위를 만들고, 그 다음에 상상세계의 이미지로 B단위를 만들어 연결함으로써 완성해야 합니다. A단위와 B단위의 연결을 ‘초월’(超越)이라고 합니다. A와 B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나 그 사이에 함부로 뛰어 오르거나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닌 ‘갭’(gap)이 있으므로 ‘초월’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하이퍼 시는 표현에 있어서 설명보다(특히 관념적 설명보다) 묘사(描寫)를 더 강조합니다. 묘사에는 암시적 묘사(suggestive description)를 중시하고, 설명적․기술적 묘사(technical or expository description)도 섞어 쓰기도 합니다만(문덕수 지음, 『문장강의』, 시문학사, 1994) 암시적 묘사를 더 중시합니다. 또 객관적 묘사보다 주관적 묘사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먼저 객관적 묘사의 실례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사십이 가까운 처녀인 그는 죽은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시들고 꺼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공팍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맘대로 쪽지거나 틀어올리지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벗겨 넘긴 머리꼬리나 뒤통수의 틈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전체적으로 또는 당시의 시조적 입장에서는 객관적 묘사입니다만, 그러나 관찰자의 심리적 반영이 도처에 나타나 있어서 객관 묘사와 주관적 묘사가 섞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A] 매력적인 케이프 코드(Cape Cod)의 별장, 큰 거실(13×25), 매듭무늬 소나무 모양이며 돌로 된 벽난로, 햇볕이 잘 들어오는 식당(12×14), 작은 서재, 현대식 전기 스토브, 개스 냉장고, 접시 닦는 기계가 있는 부엌(모두 실제로 새것임)...

 

 

[B] 만추는 햇살이 만든다. 햇볕이 나면 풀과 나무가 활짝 꽃피며 웃다가 해만 구름에 가리면 금방 시무룩하니 몸을 움츠린다. 코를 찌르던 여름의 풀냄새는 없고 산에는 마른 풀 향기가 희미하게 떠돈다

-진웅기의 「가을풀」에서

 

 

[A]는 설명적·기술적 묘사문이고, [B]는 암시적 묘사문입니다. 한 가지 더 들겠습니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피 떨어지는 누우 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심상운, 「파란의자」에서)는 객관묘사이면서 주관적 인상(印象)을 강조한 글입니다.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를 구별하는 것은 인상을 얼마만큼 강조했느냐 하는 점에 있습니다. 심상운의 대부분은 암시적 묘사입니다.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선생의 두 권 시집(『정지용시집』과 『백록담』)의 시는 대부분 암시적 묘사로 되어 있습니다.

 

 

[3] 하이퍼시는 단위(unit)를 모아 구성됩니다. 연(聯)이나 절(節), 리좀 덩어리 등과 구별하여 ‘단위’라고 부르는 것이 편리하고 좋겠습니다.

 

 

들판에서 순산한 어머니는 탯줄을 짚으로 묶고 이빨로 끊었단다.

-김기덕, 「끈 자르기」에서

 

 

김기덕의 「끈자르기」라는 하이퍼 시의 제1 단위입니다. 센텐스 하나로서 한 단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굉장히 짧습니다. 이 첫 단위 다음에 다섯 개의 단위가 연속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하수 흐르는 밤의 자궁 속에서 별들이 태어나는 밤, 또 유성 하나 푸른 목숨 줄을 끊는다”라는 마지막 단위가 끝맺음으로 접속됩니다. 이 단위도 한 센텐스로 이루어져 짧습니다. 들에서 일하다가 순산한 어머니와, 은하수의 자궁 속에서의 별(천체) 탄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탄생과 별(천체)의 탄생이 우주적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A] 길이 1cm 쯤 될까 말까 한

배추벌레 한 마리가

 

 

[A-1] 파란 배추 잎 위로

배밀이하며 올라가고 있다(....)

 

 

[B] 마추픽추의 무너진 돌계단 위에

노랑나비가 하늘하늘 날고 있다

-심상운, 「길」(『시현장』4호, 2008.11)

 

 

[A] 단위에 [A-1]의 단위가 갈라져 있으나 이것은 하이퍼시의 구조상으로 볼 때 한 단위로 묶을 수 있습니다. [A]와 [A-1]의 연결은 단위를 달리 해야 할 이유보다 한 단위로 묶어야 할 이유(이렇게 연처럼 갈라서 표현해도 괜찮습니다만)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진다면 [A-1]은 [A]를 전제로 해서 성립되며 따라서 인과관계로 연결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손해일의 「떴다방 까지집」(『하이퍼시』, 시문학사, 2011)도 두 단위가 한 단위로 합쳐진 것 같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김규화의 「매미소리」는 한 단위에 두 개의 단위가 합쳐서 구성되고 있는 듯 합니다.

 

 

역사박물관에서 <미륵>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마당 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

미륵 미륵 미륵, 미르 미르 미르 르르르

흘린다

-김규화 「매미소리」에서

 

 

그리고 김금아의 「오후의 스케치」(『하이퍼시』, 시문학사, 211), 「내시경」, 김은자의 「꽃과 물고기 정물」(동상), 고종목의 「소리」, 신진의 「작은 눈사람」 등은 모두 한편 전체가 한 단위로 구성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단위 구성의 길고 짧음, 연(聯)과 구별된 단위의 분석 등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4] 심상운 「길」제 1, 2단위입니다. 이 시에서 배추벌레/노랑나비는 자연/역사, 생명체/비의식의 존재, 현재/과거, 흔적(자취)/소멸 등의 대립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대립 사이에는 그냥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어떤 논리로도 메울 수 없는 심연(深淵) 같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앞에서 김기덕의 「끈 자르기」에서 인간의 탄생과 천체(千体:별)의 탄생이라는 두 현상 사이의 심연의, 운명적 연결을 본 바 있습니다만, 바로 그러한 분열, 틈, 단절 등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두 존재의 관계 사이에 있는 심연, 단절, 틈을 ‘갭’(gap)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괄적으로 ‘초월’(超越, transcendence)이라고 하면 괜찮을 듯도 합니다.

모든 하이퍼시 속에는 초월의 공간이 두 세계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초월의 이쪽과 저쪽의 세계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고종목의 「퍼즈놀이」에는 “바늘 외다리 축지법을 읽는다/서울 잠실에서 만리장성으로 건너 뛴다”의 바늘 외다리가 있는 곳(만리장성)과 잠실 사이엔 지리적으로 서해(西海)라는 심연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고대에 ‘기’(夔)라는 외다리 짐승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믿을 수 없습니다.

 

미륵과 매미 우는 소리의 사이에도 초월이 있습니다.(김규화 「매미소리」에서), 백암학교 이 선생이 거주하는 한국과, 도롱뇽알 같은 눈을 가진 인도인이 사는 지역의 사이에도 초월이 있습니다.(이솔 「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에서), “까순이 까돌이가 돌아온 주상복합 아파트와 난 거지 뜬 부자 윤봉길의 민족정기”(손해일 「다시 떴다방 까치집」에서) 사이에도 초월이 있습니다. 막장과 기미독립선언문 사이에(송시월 「막장」에서)도 초월이 있습니다.

 

초월(超越)의 어원은 “올라가 넘다”라는 뜻입니다. 접두사 trans는 ‘넘어서’의 뜻입니다. 즉 ‘넘는다’라는 뜻입니다. ‘넘어서’라는 접두사 trans가, ‘오르다’라는 동사 scandere와 조합되어서 transcendere가 되고, 이것의 분사형인 ‘초월’(transcendence)이 됩니다. 사전에는 표준을 훨씬 넘어버리는 것, 속사(俗事)로부터 빠져나가버리는 것,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 양, 성질, 장소, 관계 등 열 가지의 카테고리를 들고 있으며, 중세에는 이 카테고리를 넘어서는 것을 ‘초월’이라고 했으나 현재의 의미와는 관계가 희박한 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인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초월론적’이라고 하여, ‘초월’과 ‘초월론적’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여기서 굳이 다룰 필요가 없습니다.

 

앞에서 초월(超越)의 어원을 설명할 때 ‘올라서 넘는다’라는 뜻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춘하의 「종이로 만든 집」(『시현장 6집』)에는 “언덕에 오르면 아직도 무지개 마을이 있을까요”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 대목은 초월의 행동을 보여줍니다. ‘무지개 마을’은 상상 세계 속의 마을입니다. 하이퍼시에 초월이라는 특징이 없으면 하이퍼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이퍼시에는 초월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 초월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만드느냐)에 하이퍼시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핵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올라서 넘는다’라고 할 때, 두 세계가 평탄하게 이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사이가 갈라져서 틈이나 균열이 있다는 뜻이고, 지옥과 천국의 사이나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사이처럼 그 틈이나 균열을 쉽게 넘거나 건널 수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이퍼시의 생명은 이 초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월의 이쪽과 저쪽은 마치 절벽 밑의 심연(深淵)과 같습니다. 그 사이에는 함부로 뛰어 넘거나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월의 이쪽과 저쪽은 하나의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고 이어져 있으면서 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이접(離接)과 연접(連接)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초월을 어떠한 관계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하이퍼시의 비밀입니다. 틈이나 단절을 역사와 관련되는 것으로 연속시키면 유심적(唯心的)과 유물론적(唯物論的), 권력과 소외 등이 될 것입니다. 종교와 관련시켜 말한다면 신(神)/신자 또는 천국/지옥의 연속이 되겠지요. 사물의 연접과 이접은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가령 전쟁과 관련되면 승리/패배 또는 정복/피정복으로, 단순히 반대나 대립으로 본다면 밤/낮, 빛/어둠, 먼 것/가까운 것, 존재/부재(不在), 유(有)/무(無), 이 밖에도 긴 것/ 짧은 것, 안/밖, 기쁨/슬픔, 남성/여성, 땅/하늘, 아름다움/추악한 것, 강함/약함, 비쌈/헐함, 선(善)/불선(不善), 정의/불의, 완전/불완전, 적음/많음, 높음/낮음, 사람/짐승 등 초월을 이루는 계기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이퍼시는 이러한 계기를 발견하여 시로서 잘 살려야 합니다.

 

중요한 부분이므로 예를 조금 들겠습니다. 심상운의 「길」(『시현장』 4집)에서는 배추벌레와 마추픽추의 돌계단 사이, 김규화의 「매미소리」(『하이퍼시』, 2011)에는 미륵보살과 매미울음 사이, 송시월의 「막장」(『하이퍼시』, 2011)에서는 막장과 기미독립선언문, 신진의 「행락」(『하이퍼시』, 2011)에서는 일상의 현실(잠재되어 있음)과 행락(行樂)지의 풍경, 박이정의 「북두칠성 돌리는 여자」(『하이퍼시』, 2011)에서는 성산동 진관동 등 현실과 북두칠성을 돌린 뒤의 상황, 이솔의 「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하이퍼시』, 2011)에서는 도룡뇽 알의 눈과 인도의 짐꾼 사이엔 각각 초월이 있습니다. A와 B의 두 단위로 이루어진 시라면 A단위와 B단위의 초월이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입니다. 단위가 많을 때에는 적절하게 A와 B로 나누어 보면 될 것입니다.

 

 

[5] 하이퍼시의 한 단위와 단위 각각의 관계를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한다면 ‘초월’이라고 할 수 있고, 유무(有無)의 대립적 관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有니 無니 하는 개념은 철학적 어휘여서 어렵게 생각됩니다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시를 껴안고 자다가 깨어난 아침

문득 떠오르는 시상(詩想)이 있어

-조명제, 「물끄러미」(시현장 2010)에서

 

 

이 시의 “시를 껴안고 잔” 간밤은 無이고, 깨어난 아침은 有입니다. “문득 떠오른 시상(詩想)은 무입니다만 이것은 시의 한 단위에 부분적으로 들어 있는 비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66회 광복절 경축식이 진행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식장을 가득 채운 애국가 합창이

바람을 타고 훠이훠이 날아간다

 

<중략>

 

쿰부 히말라야 높고 험한 고갯마루에

찢길 듯 바람에 휘날리는 오색 타르초

절절한 바람의 끈을 움켜쥐고

파르르 파르르 말 울음소리를 낸다

-안광태, 「바람 바람 바람」에서

 

 

안광태의 시에 보이는 광복절 경축식의 바람인 통일의 열망은 有이고, 그 다음 단위의 그곳 선주민(先住民)의 “오색 타르초”는 無입니다. 옛날의 경험인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無입니다. 앞 단위의 有는 시간적으로 현재의 경험이며, 그 다음 월남전에 참전한 친구 이야기인 단위는 공간적으로 볼 때 멀고 먼 有이긴 하나 현재 경험할 수 없으므로 無입니다.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은 민족적․역사적으로 전혀 다르므로 無로 간주됩니다.

 

 

통곡의 벽 앞에 검은 복장을 한

유태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신규호, 「인터넷망을 타고·2에서

 

전행(前行)은 검은 복장을 입은 유태교 신자인 유대인들로서 사물 묘사의 단위이고, 후행(後行)의 유대인들이 기도하고 있는 이미지 자체는 사물묘사이나 ‘기도하는 마음의 내용’은 다 다른 것으로서 독자가 경험할 수 없는 무(無)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시에서 무의 세계 묘사가 좀 모자라기는 하나 역시 유와 무의 대립에 있습니다. 신규호의 최근의 시집 『허무의 물레』는 무의 세계를 추구한 희귀한 시집입니다. 대부분의 하이퍼시는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무의 세계를 현실에서는 경험이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A] 망치를 들고 깨진 유리창 조각들을 더 잘게 부수고 있는 인부들의 얼굴이 점점 환해지고 있어요. 그들은 망치질에 신명을 풀어내는 듯 리듬을 타고 있어요. 작은 알갱이로 돌아간 유리들도 햇빛에 반짝이고 있어요.

 

[B] 아아, 여보세요. 조주 선사가 신발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한강대교를 걸어가고 있다구요?

-심상운, 「통화」에서

 

 

심상운의 다른 작품인 「길」에 보이는 마추픽추의 무너진 돌계단은 역사적인 실재(實在)이나 현재 경험이 안 되는 無입니다. 앞의 심상운의 [A] [B]도 有無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자의 해석을 장황하게 하는 이 하이퍼시는 有의 특질과 無에 특질이 잘 병존하고 있습니다.

하이퍼시는 有와 無의 초월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종전처럼 한 테마에 하나의 이미지를 펼쳐보이는 시여서는 안 됩니다. A. B 두 단위가 있을 때, A의 유와 B의 무가 초월적으로 관계를 맺고 결합되면서 하이퍼시가 성립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구조적 특징입니다.

 

 

저녁은 고해신부의 귀처럼

비밀을 향해 자라기 시작했다

-위상진, 「가방 속의 탁상시계」에서

 

 

이 시의 전행(前行)은 유(有)이며, 후행(後行)은 무(無)인 것 같습니다. “고해신부의 귀처럼 자라기 시작했다”라는 대목은 놀랍고 매우 인상적인 비유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줄시계처럼 늘어졌다”(「여름감기」)에서처럼 일상적인 나와,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시계줄처럼 늘어진 나를 각각 한 단위로 그 속에 ‘초월’이 끼어든다면 굉장한 하이퍼시가 될 것입니다.” “얼음조각 같은 연인들”(「여름감기」), “죽은 사람의 전화번호”(「여름감기」) 등은 이 자체로서도 뛰어나고 놀라운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저녁”과 고해신부 사이에 초월의 세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스크린도어 앞에서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줄시계의 사이에도 유무(有無)의 대립에 의한 심연이 있고, 그 초월이 하이퍼시를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6]

 

꾸역꾸역 도시인을 삼키며

검은 입 벌리고 있는 4번 입구

 

전파상에서 밀려오는 쓰나미

검은 화면을 계속 뱉어내고 있다

-신규호, 「전철역, 입 벌리다」에서

 

 

신규호의 이 시 속에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도시인을 삼키며”나 “입 벌리고” 등은 모두 은유입니다. 이 은유의 본의와 유의가 각각 하나의 단위로 나뉘어져 구성된다면 굉장한 하이퍼적 특질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심상운의 「아우슈비츠」에서도 진술의 부분적 비유(예를 들면 “하늘 한 자락을 꺼내들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야크가 만들어 놓은 히말라야 설산고봉을/철새들이 넘는다”(최진연, 「목화꽃」)에서도 “야크가 만들어 놓은 히말라야”는 진술 속의 비유입니다. “정신의 히말라야”도 그렇습니다. 최진연의 「목화꽃」에선 “히말라야 설산고봉”과 “설악의 울산바위” 그리고 “청량산(淸凉山)” 등의 지리적 원거리의 대조관계가 있습니다만 그 사이에는 초월을 만들어 하이퍼시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에서는 이미지들이 평면화(平面化) 되어 비유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손해일의 「떴다방 까치집」에도 있습니다. ‘초월’은 모두 하이퍼시의 구조적 특성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A] 막장을 먹는다

강원도 태백 지인이 부쳐온…

 

 

[B]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을 선언하노라” 이명처럼 들려오는 33인의 목소리 대한독립만세소리……

-송시월, 「막장」에서

 

 

송시월의 [A][B]의 관계는 부분이 전체 구조로서의 비유구실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이퍼시의 기본구조입니다. [A]와 [B]의 연결에서 “같이, 처럼, 듯이, 듯”의 직유의 특징인 연결사가 없고, “사람은 갈대다”, “그는 온순해서 양(羊)이다”와 같은 은유 등과 구별해 보아도 본의(本義)와 유의(喩義)가 분명하지도 않고, 두 사항의 유사성이 드러남이 없어 즉, 보통의 은유와 같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비유일까요. [A]와 [B]의 연결과 같은 하이퍼시의 단위간의 연결을 나는 ‘교유’(交喩, diaphor)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교유’는 휠라이트(Philip Ellis Wheelwright)라는 사람의 처음 한 말입니다. 서강대의 김태옥(金泰玉) 교수의 『은유와 실재』(문학과 지성사, 1982)는 휠라이트의 책의 역서입니다.

 

 

[7] 앞에서 예를 든 바와 같이, 하이퍼시의 구조는 거의 교유(交喩)로 되어 있습니다. 교유이니까 비유의 일종이며, 따라서 비유의 일반적 구조의 특성인 본의(本義)와 유의(喩義)의 간의 유사성에 의해서 결합되어야 합니다만 그것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비유는 (1)본의(本義, tenor)나 유의(喩義, vehicle)가 있고, 그 본의와 유의는 (2)유사성(類似性, similarity)과 근접성(contiguity)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모두 비유를 성립시키는 구조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의’란 본디 표현하고자 한 고유의 관념이며, 실제로 말하거나 생각된 사물입니다. 유의란 이와 비교된 사물로서 상상에 의해 도입된 사물이며, ‘차용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본의와 유의라는 말이 도입되기 전에는 ‘고유관념’과 ‘차용관념’이라고 말해졌습니다. 이 밖에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먼저 앞에 든 송시월의 「막장」은 [A]와 [B]의 두 단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만, 이 경우 어느 단위가 본의이며 어느 단위가 유의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강원도 태백의 지인이 보내온 막장을 먹는 장면([A])이 본의인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인의 독립국임과...”의 독립선언문이 본의인지 구별이 잘 안됩니다. 본의와 유의 구별이 잘 안된다고 해서 하이퍼시를 비유구조와 같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본의/유의의 위치변경이 자유롭다는 것을 인정해도 하이퍼시라고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바로 그 점이 하이퍼의 특징 중의 또 다른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상운의 「길」이라는 하이퍼시도 ‘교유’(交喩)로 되어 있습니다. “배추벌레/노랑나비, 배추잎/마추픽추의 벽돌계단”의 대립(차이성) 등이 현재/과거, 생명/역사(문명), 현실/상상 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배추벌레는 현실의 생명체이고, 노랑나비는 북미 마야문명 유적지인 마추픽추의 벽돌이며 이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배추벌레와 노랑나비의 관계를 유추하기는 거의 어렵지만, 도리어 유사성(類似性, similarity)과 차이성(差異性, differenc)은 근접성에 의하여 잘 드러납니다. 여기서 유사성이란 무엇일까요. 배추벌레가 배밀이로 기어가고 있는 ‘자연’(배추)과 마야문명 유적지인 ‘역사의 벽돌’이 생명의 시간적 경과에서의 공통성이 드러나는 어떤 시간성이라고 할까, 소실성(消失性)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에서 은유 구조의 일반적 특성인 본의와 유의의 구별이 아주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교유’(交喩)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설령 이러한 암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교유에 의한 하이퍼시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휠라이트라는 사람은 은유가 되느냐의 여부는 문법적 형태의 법칙 문제가 아니라 “의미 변환(semantic transformation)의 질”이라고 말합니다. 의미 변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송시월의 「막장」의 [A][B]나, 심상운의 배추벌레와 노랑나비는 서로의 영향 하에 어떤 의미로 변한 것은 분명하며 모두 교유임이 확실합니다.

 

 

[8] 하이퍼시를 구성하는 연(聯)을 ‘리좀’이나 ‘모듈’ 같은 이름을 말하지 말고 그냥 단위(單位, unit)로 통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앞에 예를 든 심상운의 [A][B]나, 송시월의 [A][B]는 연으로서 단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때의 [A]와 [B]를 하이퍼시의 단위로 보고 해설했습니다. 그런데, 이솔의 「저는 지금 세느강가에 있어요」(『하이퍼시』, 시문학사, 2011), 최진연의 「재채기」(『하이퍼시』, 시문학사, 2011), 조명제의 「풀밭에서의 저녁식사」(『하이퍼시』, 시문학사, 2011), 김규화의 「한강을 읽다」 등은 단위 구별이 없고, 한 단위로 한 편의 하이퍼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손해일의 「동편제」(『하이퍼시』, 시문학사, 2011), 김규화의 「매미소리」(『하이퍼시』, 시문학사, 2011)는 한 단위(한 연)에 하이퍼적 특성이 둘 이상 있습니다.

이 단위는 A B C D의 네 단위로 된 하이퍼시의 첫째 단위입니다. 그런데 이 시의 제1 단위 속에는 하이퍼인 두 개의 단위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역사박물관에서 청강한 <미륵>은 불교의 미륵보살(彌勒菩薩)의 ‘미륵’과 같은 시니피앙인데, 미루나무 숲의 미륵은 실제 매미의 울음소리입니다. 이 단위에는 이질적인 두 개의 시니피앙이 그 사물인 시니피에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단위 속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위를 하이퍼시의 구조의 뼈대라고, 반드시 그렇게 우기면서 볼 수는 없습니다.

 

 

말죽거리 지나 양재천 다리 마악 건너면 분당 가는 1005-1번 좌석 서는 들머리 ‘시민의 숲’ 키 껑충한 미루나무 꼭대기마다 둥게둥게 까치집 아슬하다. 여름내 은폐엄폐 짙푸르던 잎새 죄 떨구자 줄줄이 들통난 로빈후드 숲속 아지트들

얼짱 몸짱 까순이 까돌이 철떡궁합 눈맞아 몇 배 새끼깐 뒤 늦동이 막내 보기까지, ‘맹부 삼천지교’라 이왕이면 매헌 윤봉길 의사 민족정기부터 내려받고, 양재천 물길따라 강남 8학군의 배꼽 대치동 아랫녘까지 나와바리 넓혔더라

-손해일, 「떴다방 까치집」에서

 

 

손해일의 「떴다방 까치집」 6연 중의 제2연이다. 이 시는 하이퍼시인지 현실에 대한 풍자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그러나 하이퍼적 특색이 없지는 않습니다. 넓은 의미의 하이퍼시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제1연 [A]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지리적으로 인도네시아의 관광지 ‘발리’라는 지명이라면 그 발리와 서울의 ‘강남’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로빈후드’라는 말까지 있으니까 영국의 전설상의 의적(義賊)인 로빈후드가 그 거점인 영국의 숲속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 ‘얼짱 몸짱 까순이 까돌이’ 등의 말은 이 시가 부분적으로 해학적인 풍자시임을 보여줍니다. ‘까순이 까돌이’는 까치집의 ‘까치’와 연결되는 말이어서, 시니피앙을 연상케 하는 조어로서는 매우 재미 있는 말입니다. 다시 「떴다방 까치집」에는 “한동안 안 보이던 까순이, 까돌이가 돌아왔다”라는 대목이 돋보입니다.

 

 

[9] 신진(辛進) 시인이 “차유”(差喩, transphor)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은유나 환유 등의 비유는 비유구조의 요소인 본의(本意, tenor)와 유의(喩義, vehicle)가 유사성(類似性)이나 차이성(差異性)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이 주장은 굉장히 중요하고 흥미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비유는 1)본의(本義, tenor, 본관념, 고유관념, 실재로 말해지거나 생각된 사물), 2)유의(喩義, vehicle, 비교된 사물, 상상된 사물, 차용관념), 3)유사성(類似性, similarity), 4)상이성(相異性, 差異性, difference) 등의 네 가지가 어울려 성립됩니다. 그런데 모든 비유는 본의, 유의, 유사성으로 성립한다고 하면서 ‘차이성’만 쏙 제외합니다. “사람은 갈대다”라는 은유에서 본의는 ‘사람’이며 유의는 ‘갈대’이며, 유사성은 연약함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유구조를 설명할 때 본의, 유의, 유사성은 다 들면서 차이성만은 배제하는가, 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람은 인체(인격체)이고 갈대는 식물(식물성)이므로 사람은 갈대같이 연약한 존재다라고 말할 때 그 차이성도 드러난다고 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왜 제외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심상운의 「길」에서 보이는 배추잎과 마추픽추의 돌계단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또 송시월의 막장과 기미독립선언문과의 차이성은 무엇일까요? 얼른 답이 안 나옵니다. 그만한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차이성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요. 이런 점에서 ‘차유’(差喩)라는 비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면 신진은 차유를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차유는 은유와 환유에 대비되어 문자 그대로 차이성의 비유라는 의미다. 은유가 유사성에 의한 대치(substitution)를, 환유가 인접성에 의한 연결(contexture)을 지향한다면 차유는 차이성에 의한 긴장(tension)을 지향한다. 꿈의 작용과 관련하여 추론하자면 응축과 치환이 환유의 원리이고 상징이 은유의 원리이며 모순은 차유의 원리가 된다. 차유에는 언어의 표현과 실제의 의미 사이에 간극(대조를 포함)이 있는 경우가 있고, 언어 표현 전체가 모순되거나 불합리가 있는가 하면 상식파괴나 언어의 우연적 만남 같은 차이 자체가 목표인 경우가 있습니다.”(신진 저 『한국시의 이론』 산지니, 2012, 75쪽)

 

신진의 차유의 예로서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을 들고 있다. 이 시에서 그는 “언어적 불합리와 모순에 내재하는 맥락”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텍스트 전반에 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신진은 윤동주 외에 이상(李箱)의 「절벽」(絶壁)도 들고 있습니다. 신진은 특히 상황적 맥락을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휠라이트(Pulilp Ellis Wheelwright, 1901~1970)가 말한 디아포르(diaphor)는 우리 나라에서 ‘교유’(交喩)라는 역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서강대학의 김태옥(金泰玉) 교수가 휠라이트의 저서, 『은유와 실재』(Metaphor and Reality, 문학과 지성사, 1982)를 번역했는데, 이 책에서도 교유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진 교수가 제기한 ‘차유’도 이 교유와의 넓은 접점이 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휠라이트는 미국의 이미지즘 시인이나 주지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의 「지하철 정류장에서」를 그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군중 속에 낀 이 얼굴들의 환영(幻影)

비에 젖은 검은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

-파운드, 「지하철 정류장에서」의 전문

 

첫 행과 둘째 행의 관계를 휠라이트는 ‘교유’라고 봅니다. 휠라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전의(轉義, transterence)라는 말 대신에 “의미의 변화(semantic transformation)의 질”이라고 말합니다. ‘같이, 처럼, 듯이’ 등의 연결어가 없으므로 직유(直喩)가 아닌 것은 확실하고, 또 위의 제1행을 본의(本義)라고 하고, 제2행을 유의(喩義)라고 하고, 거기서 두 사항 사이의 유사성(類似性)을 발견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은 갈대다”라는 은유에서는 ‘연약함’이라고 하고, 그 유사성은 사람과 갈대의 두 사물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유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만, 앞에서 예를 든 파운드의 「지하철 정류장에서」의 제1행(본의)과 제2행에서는 그 유사성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휠라이트는 은유에 대하여 문법적 형태의 변화가 아니고 의미의 변환(semantic transformation)이라고 하고, 의미 변환의 은유에는 의미의 탐색과 의미의 결합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유는 ‘의미의 결합’에 의하여 성립하는 비유라는 것입니다. 일반적 은유는 의미탐색입니다. 예를 들면 “그녀는 꽃이다”, “그녀는 양이다”와 같이 앞에 예를 든 파운드의 시의 제1행과 제2행은 의미의 결합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송시월의 「막장」에 보이는 [A][B]도 의미의 결합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심상운의 「길」에서 의미의 결합에 의한 교유가 드러납니다. 교유가 의미의 탐색에 의하여 성립하는 은유가 아니라, 의미의 결합에 의해서 성립하는 교유라는 점은 하이퍼시의 구조 이해에 큰 도움을 줍니다.

 

 

[10] 하이퍼시를 성립시키는 요소는 단위(單位, unit)이며 ‘연’과는 다릅니다. 그 단위와 단위의 관련은 교유(交喩, diaphor)에 의하여 관계를 맺어 구성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이 교유는 결합에 의해서 발생하는 은유의 일종입니다. 종래에 우리는 병치(竝置, 竝存)나 대구(對句)라고도 막연히 일컬어왔습니다만 이제부터는 ‘교유’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유나 은유 같은 비유는 본의(本義, 본관념)와 유의(喩義, 보조관념) 등이 있고, 이 두 사항은 어떤 유사성에 의해 연결됩니다. “그녀는 꽃이다”, “그녀는 양(羊)이다”와 같은 경우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꽃에서 느끼게 되는 아름다움과 같다는 유사성이 결합되어 “그녀는 꽃이다”라는 비유가 성립됩니다. 그러나 교유는 은유의 일종이기는 하나 의미의 탐색에서 그 유사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결합’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의미의 탐색에서 본의와 유의 같은 두 요소에서 어떤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관계의 결합이 있고, 그 결합의 범위가 깊고 넓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모두 하이퍼시를 구성하는 단위간의 결합은 원칙적으로 교유이지만, 예외를 인정한다면 그 범위는 더욱 광대합니다. 달리 말하면 하이퍼 단위간에도 의미 탐색에 의한 은유(교유를 제외한 일반적 은유)도 있고, 심지어 직유적 비유의 하이퍼시의 가능성도 말할 수 있습니다.

 

 

칠레 샌디아고 지하 700m 막장에 69일 동안 갇힌 광부 33명

나는 숟가락 슈퍼캡술을 막장에다 집어넣어

360도로 회전시키며 한 사람 한 사람 끄집어 올린다.

-송시월, 「막장」에서

 

 

송시월의 「막장」의 제5 단위입니다. 이 단위는 앞의 제1 단위로서 음식물인 막장과 연결됩니다. 이 때 연결된 고리는 이질적인 사물인 막장과 칠레 광산의 갱도의 막장이 갖고 있는 청각적인 소리(즉 ‘시니피앙’입니다)의 유사성 자체입니다. 물론 교유라고 볼 수 있으나, 교유로 본다면 교유에도 이러한 연결고리(또는 유사성)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플랫폼에 혼자 두고 기차가

소리 한 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

 

맴맴맴 매애애

매앵매앵 앵앵앵

미잉미잉 잉잉잉

-김규화, 「매미소리」에서

 

 

위의 예는 「매미소리」의 제4 단위입니다. 여기서는 기차가 “매앵!” 소리를 지르고 바퀴를 굴리며 떠나버립니다. 기차 소리와 매미소리 사이는 소리의 유사성을 실제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매앵”이라는 유사성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의미의 변환’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변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기차의 출발이라는 기계 소리는 생명체인 매미소리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이 시에서는 “매앵”이라는 유사성에 의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차 소리도 듣는 주체에 내재화(內在化)하면 주체의 안에 존재하는 것과 동화(同化)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표현에서는 “매앵”이라는 유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재의 소리는 다른 것이니까. 매미/기차의 대립과 마찬가지로 매미울음(매앵)/기차소리의 대립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여기서 실재로는 단위간의 교유(交喩)가 존재한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논리가 조금 이상 방향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풀벌레 한 마리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가

밑둥으로 내려온다

종일 사삭사삭

발효향 그윽한 노자를 끄적거리고 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지껄이는 자는 알지 못한다

변솟간 벽에다 낙서 한 줄 누고 나온다

 

어이! 시원하다

-박이정, 「노자의 벌레」에서

 

 

「노자의 벌레」의 제2 단위, 제3 단위, 제4 단위입니다. 3단위와 4단위가 있어서 하이퍼 시의 특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풀벌레가 밑둥으로 내려온 제2 단위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기술한 제1 단위와 문맥적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3 단위는 노자(老子)가 말한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를 옮긴 말이기에 인용부를 썼습니다. 선자불변 변자불선(善者不辯 辯者不善)과도 연결됩니다. 고전(古典)은 풍부한 시의 귀중한 원천적 소재원입니다. 제3 단위와 제5 단위의 연결은 교유(交喩)라고 할 수 있고, 의미 변화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단위와 마지막인 4단위 사이엔 어떤 맥락을 찾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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