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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 시론
2015년 02월 19일 16시 19분  조회:4186  추천:0  작성자: 죽림
 

이 글은 <한국 전후 문제시집>(신구문화사 1961년11월)의 '시작노트'에 실려 있는 초현실주의 시인 조향의 시작노트를 원문 그대로 수록한 글이다. 한국 현대시 이해의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조향(趙鄕)의 시작노트

 

                       데뻬이즈망의 미학

 

 

 

1

 

요 몇 해 동안 글을 쓰지 않는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발달된 <저널리즘>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손해가 아니냐고 날보고 말하는 사람이 흔히 있다. 그러나 손해니 이익이니 하는 그런 실리적인 사고방식보다도 나는 나대로의 계산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첫째로, 나는 스무 장, 열 장.......씩의 나부랭이 글을 쓰기 위하여 정력 소모하는 것을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둘째는, 이상한 걸작의식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늘 나의 머릿속에 도사리고 앉아서, 냉큼 펜을 들지 못하게 한다. 일년에 시 너댓 편 정도 밖엔 쓰지 않는다.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그 너댓 편이 모조리 걸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할 수 없이 내어 놓는 수가 많다. 어떻게 했으면 “Ulysses"와 겨룰 수 있는 소설을 한 번 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만 하면서, 이론으로만 꼭꼭 메꾸어져 있는 강의실을 드나드는 것이 나의 일과다.

그러한 나에게 장만영(張萬榮) 형이 사신(私信)까지 붙여서 청탁을 해 왔다. 나의 시법의 비방을 원고지 스무 장에다가 통조림을 해서 공개해 달라는 것이다. 모처럼의 청탁을 아무런 뾰족한 이유도 없이 저버릴 수도 없고 해서 쓰기로는 하는데, 사실인즉 자기 자신의 작품을 뇌까려서 다룬다는 것은 약간 쑥스러운 일의 하나에 속한다. 무슨 허세를 부리고 뻐기는 것 같아서 나는 강의 시간에서도 나 자신의 작품을 교재로 하는 일은 별반 없다. 그저 현대시, 현대예술 전반에 걸친 이론을 꾸준히 강의할 따름이다. 그러나 내 작품에 관한 질문이 있을 때엔,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간에 열심히 이야기해주는 친절을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고 있다.

 

 

2

 

 

낡은 <아코오딩>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이것은 나의 「바다의 층계」라는 시다. 시에 있어서 말이라는 것을, 아직도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단순한 연모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나의 시는 대단히 이해하기 곤란할 것이다. <말>의 구성에 의하여 특수한 음향(운율이 아니다) 이라든가, 예기하지 않았던 <이마주>, 혹은 활자 배치에서 오는 시각적인 효과 등, <말의 예술>로서의 기능의 면에다가 중점을 두는, 이른바 <현대시>. 이것에 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면 위의 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뽄뽄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 엔진>, <들국화>. 이 셋째 <스탄자>에 모여 있는 <말>들을 두고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거기엔 아무런 현실적인, 일상적인 의미면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동떨어진 사건끼리가 서슴없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이와 같이 사물의 존재의 현실적인, 합리적인 관계를 박탈해버리고,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어 주는 것을 데빼이즈망 (depaysement)이라고 한다.

 그 움직씨 데빼이제 (depayser)는 <나라>(혹은 환경, 습관)를 바꾼다는 뜻이다. 국적을 갈아버린다는 뜻이다. 초현실주의 (앞으로는 ‘sur.’라고 생략해 쓰기로 한다.) 에서는 전위(轉位)라고 한다. sur.의 화가들은 데빼이제 하는 방법으로서 빠삐에. 꼬레 (papier colle 서로 관계없는 것 끼리를 한데다 갖다 붙이는 것), 이것의 발전된 것으로서 꼴라아주 (collage) 그리고 프로따쥬 (frottage) 혹은 Salvador Dali의 유명한 편집광적 기법 (methode paranoiaqure) 등을 쓴다. sur.의 선구자로서 봐지고 있는 Lautre'amont (본명은 Isidor Dur-casse) 의 <미싱과 박쥐우산>의 미학이며, Dali의 <한 개의 토마토를 보고 내닫는 말(馬)을 영상할 수 없는 사람은 천치다>라고 한 말들을 참조해 보면 석연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들에 의해서 데빼이제 된 하나하나의 사물을 sur.에서는 오브제(oobjet)라 부른다. 오브제란 라틴말 “...의 앞에 내던져 있는 물건”에서 온 말로서 사전에서의 뜻은 , <물체>, <대상>, <목표> 등이지만 sur.의 용어로서는 일상적인, 합리적인 관념에서 해방시켜버린 특수한 객체를 의미한다. 주로 sur. 계통의 미술용어로 쓰이지만, 시에서도 물론 쓸 수 있는 말이다. term(논리학 용어로서 ‘명사’라고 번역 된다. 개념을 말로써 표현한 것)의 기묘한 결합, 합성에 의하여 어떤 특수한 , 돌발적인 이마쥬를 내려고 할 때, 거기에 쓰인 term의 하나하나는 훌륭히 오브제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바다의 층계>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뽀엠.오브제(poeme objet)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레뗄이 붙은 통조림통이 아직 부엌에 있는 동안은 그 의미는 지니고 있으나, 일단 쓰레기통에 내버려져서 그 의미와 효용성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입체파   운동의 영도자 브라끄 (Bracque)의 이 말은 오브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브제는 서양의 모더니스트 들이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다. 정원을 꾸미기 위해서 우리가 흔히 주워다 놓은 괴석(怪石), 일본 사람들의 이께바나(生花)의 원리, 동양 사람들이 즐기는 골동품 등은 모두 오브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3

 

 

 이와 같이 의미의 세계를 포기한 현대시, 19세기적인 유동(流動)하는 시에 있어서의 시간성이 산산이 끊어져 버리고, 돌발적인 신기한 이마쥬들이 단층을 이루고 있는 현대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의미도 음악도 아니고, 순수한 이마쥬만 읽으면 그만이다. 사람에게 순수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곧 카타르시스다. “이마쥬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다.”(Reverdy) “이마쥬의 값어치는 얻어진 섬광(閃光)의 아름다움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그것은 두 개의 전도체(電導體)사이의 단위차(單位差)의 함수(函數)다.”(Adntre' Breton)

 시인에 있어서 이마쥬는 절대와 본질로 통하는 유일의 통로요, 탈출구다. '절대 현실'은 곧 초현실(超現實)이다. 이렇게 따져 봤을 때, 나의 <바다의 층계>는 순수시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후예 발레리의 ‘순수시’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순수시’요 ‘절대시’다. 쟌 . 루스로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말라르메가 의식론(意識論)에다 구한 것을 마술(魔術)에다 구하긴 했으나 그 덕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공통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곧 ‘순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의 갈망을”이라고.

상징주의자들이 갈망한 순수는 음악적(시간적)인 것이었고, 초현실주의자들이 갈망하는 것은 조형예술적(造形藝術) 곧 공간적인 순수 그것이다. 두 가지의 순수가 다 현실이나 일상생활에서 떠난 동결(凍結)된 세계임에는 다름이 없다.

 나는 순수시만 쓰지는 않는다. 꼭 같은 방법으로서 현대의 사회나 세계의 상황을 그린다. 곧 나의 <검은 DRAMA>(어느 날의 지구의 밤) <검은 신화> <검은 전설> <검은 series> 등 일련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상황악(狀況惡)이란 곧 <현대의 암흑>을 말한다.

 

 

4

 

 

 자유연상(自由聯想)은 예술가나 과학자의 마음이 창조를 할 때의 자연의 과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잊어버려지고 있다. 자유연상은 정신의 본도(本道), 간도(間道)를 통하여, 의식의 제한에 방해 당하는 법 없이 사고(思考)와 인상(印象)을 모아서, 그것을 가지가지로 결합시키면서, 드디어 새로운 관계나 형(型) 이 생겨나도록까지, 심리과정을 자유스럽게 헤메도록하는 것이다. 과학에 있어서나, 예술에 있어서나, 자유연상은 창조적 탐구의 과정에 없지 못할 수단이며, 이렇게 해서 얻어진 새로운 형은 거기에 잇닿은 논리를 찾아내는 것에 의하여, 필요한 제2의 과정인 검사(檢査) 또는 시험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신분석에 있어서는, 자유연상은 환자가 하고, 논리를 찾아내는 것은 분석기(分析機)가 하는 것이다.

-Lawrence S. Kubie: Practical and Theoretical Aspects of psychoanalysis-

 정신분석의 임상의(臨床醫)인 큐비의 이 글에서도 밝히 알 수 있다시피, 자유연상이란 예술가에겐 없지 못할 것으로 되어 있다. 자유연상 상태란 곧 자아(ego)초자아(super ego)의 간섭이 없거나 극히 약해서 상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일종의 방심상태(放心狀態)를 말한다. 벨그송 (Bergson)의 ‘순수지속(純粹持續)’의 상태와 흡사하다. 이런 방심상태에서는 무의식(無意識) 혹은 전의식(前意識)의 세계, 곧 심층심리면(深層心理面)에 잠겨 있던 것들이 순서도 없이 곡두(환영幻影)처럼 의식면에 떠올랐다간 가뭇없이 스러지고 스러져버리곤 한다. 그런 현상을 옛날 사람들은 영감(靈感)이라고 불렀다. 나의 시채첩(詩債帖)에는 이러한 순간적인 이마쥬의 파편들이 얼마든지 속기(速記)되어 있다. 나의 에스키스 (esquisse)다. 그것을, 적당한 시기에 바리아송(variation, 變奏)을 주어 가면서 몽따쥬(montage)를 하면 한 편의 시가 되곤 한다.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시인으로서의 재간은 이 몽따쥬하는 솜씨에 결정적인 것이 있다. 현대의 영상미학의 근본이 되어 있는 몽따쥬 수법은 현대시의 수법에서 빌려간 것이다.

 

 

 

5

 

 

 다시 나의 <바다의 층계>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낡은 <아코오뎡>의 서투른 연주가 끝났다. 막이 열린다. 고요가 있다. 어디선지 “여보세요?” 소녀의 부르는 소리. 그것은 먼 기억의 주름주름 사이에서 잠자고 있던 청각인지도 모른다. 다시 고요가 돌아와서 도사린다. 앞에서 말한 오브제의 모꼬지. 그 가운데서도 메커닉 하고 거창한 <디젤.엔진>과 연약하고 서정적인 <들국화>의 결합은 엑센트가 꽤 세다. 이렇게 거리가 서로 먼 것끼리일수록 이마쥬의 효과는 크다.

 새삼스럽게 어디선지 아까번의 소녀의 부르는 소리에 응하는 소리가 있다. “왜 그러십니까?” 음향의 몽따쥬로서 바리아송을 주기 위한 수법이다. 다시 고요가 도사리고 앉는다.

다음엔 제2의 <오브제>의 심포지움. 장소는 하얀 모래밭. 메커닉하고 딱딱한 <수화기(受話器)>와 휴먼(human)한, 보드랍고 오동통한 <여인의 허벅지>와 그로데스크한 <낙지의 까아만 그림자>의 대비에서 빚어지는 강렬한 뽀에지! 새로운 시적 공간 구성. 그리고 여기에선 하나하나의 오브제에다 위치적인 바리아송을 추가하기 위하여 포르마리슴 (formalisme)을 시험해 봤다. 포르마리슴은 언제나 언어단편(言語斷片) 아니면 단어문(單語文)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명사 종지법이 많이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음엔 <비둘기>와 <소녀>와 <랑데.부우>와 <파아란 기폭들>. 이 시 가운데서 가장 서정적이고 로망이 풍기는 스탄자다. 이 스탄자 때문에 이 작품 전체에 서정적인 색깔이 유독 더 짙어 뵌다. 나는 항상 시에다가 이러한 바운딩(bounding) 곧 ‘넘실거림’을 끼워 두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로 하고 있다. 나의 밑창에 로만티스트(romanticist)가 살고 있다는 증거다. 맨 끝 스탄자에서는 연약한, 서정적인 <나비>와 육중하고 메커닉한 <기중기起重機>가 가지는 원거리로서 효과를 내보려고 했다.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로서 맺으면서 서정적인 여운을 남겨 놓았다. 혜안을 가진 독자라면 여기에서도 포르마티슴이 시도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리인의 구성을 층계처럼, 원근법에 의하여 층을 지어 놓았다. 이와 같이 현대시는 여러모로 퀴즈다운 데가 많다. (단기 4291년 10월호 신문예新文藝)

 

 

참고: 여태까지의 시란 ‘진보(進步)’만 해왔으나 20세기의 시는 ‘조화(造化)’를 했다. ‘진보’는 ‘수정(修正)’이고 ‘조화’는 ‘혁명’이다. 공산주의의 시는 기껏해야 ‘퇴행적 수정’밖엔 아무것도 아니다. 진보만 알고 있던 시인이나 속중(俗衆)들은 이 조화를 보곤 꽤들 당황했다. 특히 한국의 풍토에선 지금도 한창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시가 조화해 나간다는 것을 이상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뇌가 발달해 나간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벽창호씨(壁窓戶氏)가 아니면 혼돈씨(混沌氏)다. 인간 자체가 조화의 첨단에 놓여 있지 않은가! <‘시의 발생학’에서 국어국문학회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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